경제학자로 산다는 것

 

사람한테는 여러 가지 모습이 있다. 경제학자로서의 내 삶은, 그 많은 모습 중의 하나일 뿐이다. 지난 몇 년 동안, 내 감정이 가장 많이 움직인 것은, 마당에 살던 고양이들과의 삶이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녀석들을 데리고 이사를 오고, 그들이 무사히 정착한 모습을 보여줄 때까지, 그야말로 긴장의 연속이다. 그러나 감정의 크기가 삶의 크기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아무리 고양이들에게 많은 감정을 주었다고 해서, 내 삶이 고양이를 돌보는 것이 되지는 않는다. 내가 고양이를 몇 마리를 돌보고 있든, 나는 경제학자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 가장 많을 때는 막 태어난 새끼들까지, 8마리의 고양이를 동시에 돌본 적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경제학자가 아닌 것은 아니다.

 

지난 대선은, 내가 경제학자로서의 삶을 내려 놓기로 오래 전부터 결정해놓고 있던 시기였고, 또 그 시간만을 기다리면서 지냈을지도 모른다. 나에게 경제학자라는 말은, 직업과는 좀 다른 의미이다. 수치를 표고, 자료를 보고, 그 사이에서 새로운 수치를 찾아내거나 관계를 뒤집어본다. 그게 내가 주로 하는 일이다.

 

한국의 언론과 기사는 광고주 혹은 스폰을 보면 90% 이상 읽힌다. 누가 뒷돈을 대느냐, 그것에 따라 거의 대부분의 말이 결정된다. 뒤집어서 말하면, 스폰 관계만 읽으면 90% 이상의 진실은 그냥 먹고 넘어간다는 것이다. 아파트 분양 광고를 전면에 내고 있는 신문에서 부동산에 대한 상식적인 진단을 내리겠는가? 이건희에게 월급을 받는 삼성경제연구소에서 삼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한국 자체를 위한 얘기를 과연 몇 퍼센트나 하겠는가?

 

그런 고통 속에서, 과연 누구를 위해서 생각을 하고, 어떤 사실을 말할 것인가, 그런 게 학자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긴장감이다. 약간만 눈을 감고, 조금만 뉘앙스를 흐뜨리면 사는 건 아주 편하다. 그렇게 살 것인가?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산다.

 

그 생각을 속으로만 할 수 있고, 한다고 하더라도 술자리에서 아주 절친한 사람들 사이에서만 얘기할 수 있다. 술이라는 핑계, 지인 사이의 농담이라는 안전장치, 그렇게 겹겹이 안전장치를 만들어놓고 얘기를 할 수 있다. 사회적으로는, 아무 얘기도 안 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래도 얘기를 해야 한다는 게, 학자의 삶이다.

 

물론, 아주 쎄게 얘기할 수 있고, 아주 살살 얘기할 수는 있다.

 

그런 삶은 그만 살고 싶었다.

 

돈은 아주 조금만 벌고, 소비도 아주 조금만 하고.

 

하여간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고, 경제학자로서의 삶은 이제 그만 살려고 하던 원래의 생각을 조금 바꿨다. 엄청나게 고강도는 아니고, 아주 살살, 아주 가늘게, 뭐가 맞고 틀리다, 그런 경제학자로서의 얘기를 조금 더 하려고 한다.

 

누군가는 그런 얘기를 해야 할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이 한 가지 있고, 이제 이재영이 없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이재영은 내 삶과 생각을 바꾸어놓은 친구이다. 언제 바꾸었는지도 몰랐는데, 지나 보니, 많이 바뀌어 있었다.

 

이재영은 명랑했고, 밝았고, 그리고 진보가 집권을 한 순간을 위한 준비를 늘 해야 한다고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그 생각이 바로 선거 과정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이재영의 그런 주장을 믿었던 사람이 그렇게 많은 것 같지는 않다. 어쨌든 나는 그의 말을 믿었다.

 

젠장. 삶의 타이밍은 언제나 예술이다.

 

이재영이 장지로 떠나는 날, 그날이 바로 문재인 후보의 두 번째 광화문 유세가 있던 날이었다. 명목상으로 그의 공동 장례위원장 중의 한 명으로 이름을 올려놓았는데, 그의 마지막 길에도 역시 나는 같이 하지 못했다. 삶이, 왜 맨날 이런가!

 

이재영의 친구들은 꼬질꼬질해졌고, 그가 지지했던 사람들의 삶은 남루해졌다. 그렇다면 이재영의 꿈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이재영과 우리가 꾸었던 꿈에 대해서 5년만 더 같이 생각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재영을 위해서 나의 평생을 살 수는 없다. 그렇지만 내가 살면서 가장 존경했던, 그리고 가장 똑똑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그리고 늘 밝았던 이재영을 위해서 경제학자로서의 활동을 조금 더 연장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했다.

 

이재영이 누구야?

 

‘88만원 세대라는 책이 레디앙이라는 출판사에서 출간된 이유는 이재영 때문이었고, 이 책의 마지막 교정교열을 보면서 내가 마지막으로 생각을 가다듬을 수 있게 도와준 담당 에디터가 바로 이재영이었다.

 

, 이런 생각을 하면서, 경제학자로서 조금 더 살아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제영이 꾸었던 꿈을 대신 이루어줄 수는 없지만, 그의 꿈이 그냥 땅바닥에 팽겨쳐지는 것을 친구로서 그냥 보고 있고 싶지는 않다.

 

하여간 이런 복잡한 생각을 하면서, ‘경제학자로 살아가기’, 이 삶을 조금 더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명박, 박근혜, 10년 정권을 보내게 되었다. 그 기간 동안, 나는 전향하지도 않을 것이고, 화려한 자리를 맡지도 않을 것이다. 그냥 꼬질꼬질하게, 고통과 비극 그리고 무기력함을 사람들과 같이 보낼 것이다. 그리고 경제학자로서, 분석도 하고, 발언도 할 것이다.

 

노무현 정권 때, 정권의 사람들은 참 나를 싫어했다. 명박 정권 때, 아마도 힘 있는 사람들은 나를 끔찍이 싫어했던 것 같다. 청와대 홍보 쪽인가, 하여간 그런 데서 나온 얘기가 돌고 돌아 결국 입 조심하라는 협박 비슷한 메시지를 받은 적도 있다. 박근혜 시대의 실세들, 역시 나를 싫어할 것이다.

 

그게 경제학자의 삶이다.

 

아마 어떤 정권이 오더라도, 그것이 이재영이 꿈꿨던 정권이 아니라면, 나는 늘 핍박받고 견제받고, 때때로 사이비라는 얘기를 들으면서 살 것이다.

 

그래서 나는 경제학자로서의 삶 보다는 고양이들을 돌보는 어느 아저씨의 삶이 더 좋다. 그리고 영화 기획자나 시나리오 작가 혹은 동화 작가로서의 삶이 더 좋다.

 

그러나 5년간은, 경제학자로서 살아갈 생각이다.

 

내 친구 이재영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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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 고양이들, 풀어주다

 

지난 집에서 이사 오면서 마지막으로 고양이들을 전부 잡은 것은 크리스마스 날 오후였다. 엄마 고양이와 강북걸은 금방 잡혔는데, 열흘 넘게 바보 삼촌이 애를 먹이고 있었다. 엄청 추운 날들, 시간을 맞춰가면서 겨우겨우 열흘 넘는 시도만에 겨우 바보 삼촌을 잡았다.

 

그리고 긴 겨울을 지금의 집에 설치한 케이지 안에서 보내면서 언제 풀어줄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봄을 맞이하고 있었다. 지난 겨울, 케이지 안에서 고양이들 화장실 치워주고, 여기저기 싸놓은 똥들 정리하고, 최소한의 청결이라도 유지하느라고 엄청 애먹었었다.

 

이제는 풀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두 가지 이유였다.

 

몇 주 전부터 내가 케이지 안에 들어가는 것을 바보 삼촌이 엄청 싫어하면서 좀 심하다고 할 정도로 하악질을 했다. 문을 열기 위해서 잠금쇠를 풀 때마다 바보 삼촌의 발톱을 피하기 위해서 좀 신경을 썼어야 했다. , 이 정도로 자신의 집을 지키기 위해서 투쟁적으로 나오는 바보 삼촌이라면, 기억도 나지 않을 예전 집으로 무작정 가려고 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여간 더 이상 케이지가 자신들의 집이 아니라고 의심하는 일은 없을 듯 싶었다.

 

두 번째 이유는, 위생상의 문제였다. 세 마리가 화장실을 같이 쓰는데, 매일 치워주어도 엄청나게 쌓이는 배설물을 깨끗하게 치워줄 수 있는 물리적 방법이 없다. 그러다 보니 좁은 케이지에 모래가 흩어진 곳들에다 고양이들이 배설을 하는데, 그것도 고양이들 놀랄까봐 매번 치워주기가 어렵다. 겨울에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날씨가 따뜻해지니까, 케이지 안에서 위생을 지킬 수 있다는 자신이 없었다.

 

몇 주를 고민하다가 드디어 오늘 케이지 문을 열어주었다. 처음 열어주었을 때에는, 전혀 케이지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문이 열렸다는 것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물과 사료를 주었다. 녀석들은, 열린 문에 대해서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한참 후 다시 열어주었다. 그리고 잠시 나는 집으로 들어갔다. 5분 후, 케이지 안에 더 이상 고양이는 없었다. 이제 그들은 문 밖으로 나가는 선택을 한 것이다. 이곳에서 살지, 아니면 예전에 살던 곳을 죽어라고 찾아갈 것인지 혹은 또 다른 선택을 할지, 하여간 그들은 나갔다.

 

그리고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느낌과 상상으로는, 케이즈 바깥부터 천천히 관찰을 하고 그렇게 활동범위를 넓혀나갈 것 같지만, 고양이들이 늘 상상을 뛰어넘듯이, 그냥 보이지 않았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딱 한 가지였다. 예전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그곳은 잘 못 찾고, 그렇다고 지금의 집으로 돌아오지도 못하는

 

그 거리가 직선 거리로 1.8킬로미터 정도 된다. 먼 거리는 아니지만, 북악산과 북한산, 다른 산으로 완전히 생태계가 바뀌는 일이다. 이 이주방사 계획을 짠, 그야말로 전문가들과 가장 걱정한 것은, 두 지점 사이에서 길을 잃는 일이었다. 중간에 머물 수 있는, 소위 임시 스팟 같은 게 혹시 있나 점검을 했는데, 그런 것도 없었다.

 

이 집에 있거나, 저 집에 가거나, 두 개 다 해법인데, 그 중간에서 어느 집도 못 가고 완전히 길을 잃는 게 최악의 상황이었다. 그리고 1.8킬로의 거리가 딱 그러기에 좋은 거리였다. 아예 멀지도 않고, 아주 가깝지도 않은. 그래서 몇 달에 걸친 케이지 생활이 시작된 이유가, 그렇게 과학적으로 계산된 거리 사이에서 적정 방식이었다.

 

그리고 원래 우리가 계획한 것은 6개월이었다. 그 정도면 예전 집의 기억을 잃고,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기에 충분한 시간.

 

그런데 위생상의 문제 등으로, 4달 반만에 문을 열어주는 일을 오늘 한 것이다.

 

케이지 안이 오염될 위험이 있다

 

그런데 고양이들이 사라져서 보이지 않으니, 내 속이 얼마나 타들어갔겠나.

 

케이지 안에 마련한 물통에 물 마신 흔적도 없고, 사료를 먹은 흔적도 없이, 시간은 속절없이 지나간다.

 

너무 일찍 열어주었나?

 

녀석들이 떠나간 케이지를 계속해서 보고 있을 수 밖에 없다.

 

 

 

10, 현관문을 열고 나가기, 어두운 밤에 고양이들의 실루엣이 잡혔다. 물도 먹고, 먹이도 먹고, 그렇게 노는 걸 보았다.

 

왔구나!

 

너무 반가워서 눈물이 날 뻔했다.

 

생협이 맨 처음 모습을 보였고, 가로등 사이로 바보 삼촌이 걸어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엄마 고양이는? 이리저리 살피는데, 언뜻 보인다. 엄마 고양이는 먼저 케이지 안에 들어가서 저녁 먹고 있었다.

 

놀라지 않게, 천천히 캔을 뜯어놓고, 고양이들을 살펴본다.

 

시간이 좀 지나니까, 엄마 고양이는 조그만 텃밭에, 아내가 겨우 땅을 골라놓은 곳에 시원하게 대변을 놓고, 열심히 흙을 덮어놓고 있었다. 아내가 보면, 경일 치리라!

 

이들의 이사는 이제야 끝났다. 내가 이 녀석들과 얼마나 더 같이 살게 될지, 나도 모른다. 그러나 삶의 또 한 고비를 녀석들과 넘어갔다.

 

아내의 얘기로는, 녀석들을 풀어주고 내가 나간 다음에, 고양이들끼리 살벌하게 싸우는 소리가 났었다고 한다. , 이 골목에 먼저 살던 녀석들이 있었을 것이고그 싸움과 그 삶을 내가 대신 해줄 수는 없다. 그건 녀석들이 풀어야 할 문제이다. 물과 사료는 줄 수 있지만, 그 공짜의 대가댓 아주 없지는 않다. 이런 삶의 공간을 원하는 고양이들은 엄청 많다.

 

어쨌든, 이런 복잡한 얘기는 다음에 생각해도 좋을 듯 싶다.

 

죽도록 춥던 지난 겨울을 같이 보낸 마당 고양이들, 오늘 처음으로 케이지에서 나온 날이다. 그리고 갇히지 않은 상태에서, 이 마당에서 첫 밤을 보내는 날이다.

 

삶은, 때때로 행복하다.

 

아직은, 그런 것 같다.

 

(명랑이 함께 하기를, 이 디렉토리의 마지막 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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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다음 주제는?

 

오랫동안 하나의 주제를 정하고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한다. 처음 정했던 주제는 ‘40였다, 그 글들은 ‘1인분 인생이라는 제목으로 묶였다. 그 다음은 주제라기 보다는 소재였다. 나랑 같이 지내는 마당 고양이들과의 삶과 애정 그리고 슬픔. 이 글들은 아닐로그 사랑법이라는 제목으로 묶여서, 아마 다음 주면 시중에 나오게 될 것 같다.

 

요즘은 내 삶도 길을 잃은 듯하고, 사람들도 길을 잃은 듯하다. 대선 이후, 한국은 전체적으로 길을 잃은 듯 싶다.

 

아마 길을 잃지 않고 마음 먹은 대로 가는 사람이라면 변희재와 고성국 정도? , 좀 그로테스크하지만, 그들이 길을 잃은 것 같지는 않다.

 

하여간 나는 무엇을 해야할지도 잘 모르겠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잘 모르겠다.

 

물론 살던 대로 살면 그만이고, 하던 대로 하면 그만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개인적 삶이나 사회적 삶이나, 지는 것은 그닥, 매력적이지 않은 것 아닌가?

 

그렇다고 엄청나게 정치적인 얘기를 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정치를 할 것도 아니고, 그런 얘기를 엄청 재밌게 생각하는 것도 아니다.

 

재수없지 않고, 불편하지 않고, 너무 무겁지 않고 그리고 슬프지 않고.

 

그렇게 소일 삼아 새로 생각해보면서 쓸 수 있는 주제들을 요즘 생각해보는 중이다. 그렇지만 아직은 이거다 싶은 게 잘 떠오르지는 않는다.

 

좀 더 아줌마틱하고, 좀 더 수다스럽고, 뭐 그런 글을 써보고 싶다는 막연한 방향감만 있는 게 딱 지금 상황이다.

 

각을 잡고 정확하게 테제를 향해서 돌진하는 글, 그렇지만 그런 걸 일상 속에서 쓸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살다 보면 아픔도 있고, 실망도 있고, 예기치 않게 남에게 상처주기도 한다. 그런 게 삶이다.

 

40대 후반의 삶을 보내면서, 아기와 함께 같이 생각해볼 수 있는 그런 주제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중이다.

 

사람들의 지혜를 좀 빌리고 싶다.

 

선거에서 진 우리들, 무슨 얘기를 하고 있으면 좀 재미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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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 토건 앞에 여야 없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부동산종합대첵에 대한 합의 내용을 보면서, 2004년 이헌재 경제부총리가 한국형 뉴딜을 주장하던 시절이 문득 생각났다. 당시 부동산 경기는 안 좋았고, 업계에서는 부동산 연착륙을 주문하고 있었다. IMF 이후 건설사의 규제를 대거 풀어주면서 건설사가 3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 시기가 한국 경제의 질적 전환을 할 수 있던 거의 유일한 시기로 나는 이해한다.

 

결론적으로, 이헌재 부총리는 한국형 뉴딜을 주장하면서 각종 규제를 푸는 것은 물론 정부의 각종 기금을 부동산에 탈탈 털어 넣었다. 기업도시와 혁신도시와 같은 토건정책들이 이 시기에 나온 것임은 물론, 당시 열린우리당 국회의원들이 소위 뉴타운법제정에 앞장서기도 하였다. 지금 우리가 보는 하우스 푸어와 PF(Project-Financing)으로 인한 저축은행의 부실화 등, 많은 문제점이 이때 생겨난 일이다. 그리고 그렇게 토건에 묶여 들어간 한국의 중산층의 정치적 보수화는 급격히 진행되었다. 그 이후 민주당은 주요한 선거에서 족족 패배했다. 그리고 어느덧 박근혜 대통령이 중산층 복원을 외쳐야 할 상황이 되었다. 중산층 2세가 지금과 같은 토건 경제에서는 중산층으로 재생산되기가 어렵다는 게, 내가 신빈곤화라는 용어를 통해서 주장하던 내용이다.

 

탈토건, 이헌재 이후의 강력했던 토건 정책의 문제점을 해소하고, 포화과잉 상태인 건설자본을 적절하게 연착륙하도록 유도하는 게, 내가 생각하는 탈토건이다. 그리고 일본 경제와 같은 장기 불황으로 가지 않고, 적절하게 기술중심 경제와 문화형 경제로 전환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이 길이라고 생각했다. 아마, 한국에서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또 있는지 모르겠다. 적어도 정치권에서는 그런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서승환 국토부 장관은 머리 속에서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대부분을 부동산종합대책에 담았다. 간단히 표현하면, 아직 집을 사지 않은 20~30대를 주축으로 한, 무주택자에게 온갖 특혜를 줄테니까 빚내서 집사라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수직증축 허용과 보금자리주택 폐지 등 건설사의 민원성 청원을 끼워넣은 것이다.

 

공은 이제 야당인 민주당으로 넘어갔다. , 이제 그들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현재 민주당의 지도부들이 토건에 대해서 명확한 자신들의 입장을 가지고 있다고 보이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어느 정도로 모양내기를 할 것인가, 이게 관전 포인트였다.

 

상식적으로, 예산안 같은 것으로 비유를 해보자. 정부 예산안이 오면, 야당은 대개는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자고, 그 예산을 줄인다. 그걸 염두에 두고 정부는 미리 예산 부풀리기를 한다.

 

이번 부동산종합대책은, 정부안이 나온 거에 야당이 더 갖다 예산을 얹어준 셈이 되었다. 6억원과 전용면적 85제곱미터, 즉 국민주택 중 택일, 그렇게 하여 아파트 주택 전체의 95.5%가 수혜를 받게 되었다 (원래는 80%). 정말 통 크게 정부안에 확 얹어준 모양새가 되었다. 하여간 더 많은 가구가 양도세를 면제받게 되었다.

 

여기에 부부합산 소득 기준도 6,000만원에서 7,000만원으로, 통 크게 올려주었다.

 

기타 소소한 취득세 면제 등, 정부안에 더하여 민주당이 확실히 밀어준 것은 사실이다.

 

유사한 일이 미국 민주당에서 벌어진 적이 있기는 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단초가 된 클린턴의 주택 정책이, 기본적으로는 메커니즘이 이와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공공주택을 늘리기 보다는, 다들 일단 집을 좀 사게 해주자

 

인기도 좋았고, 단기 효과도 좋았지만, 결국 전세계가 혹독한 대가를 치루게 되었다.

 

한 가지는 민주당이 입증하였다. 정부안보다는, 자기들이 하면 더 크게 하겠다는 토건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

 

만약 정확하게 정부안을 가지고 따지면서 자신들의 일관성을 지킨다면, 수직증측 리노베이션에 대해서 확실하게 먼저 따졌어야 했고, 공공분양 주택 즉 보금자리 주택을 지금의 정부안처럼 그렇게 은근슬쩍 없애는 것이 옳으냐, 그런 논의를 먼저 했었어야 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양보와 타협을 하다 보면, 양도세 면제 등에서 또 다른 양보안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순서를 뒤집었다. 그리고 자기들이 먼저, 조금 더! 그러니 토건이 아니라고는 말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양도세 면제라는 게, 기본적으로는 아무리 미사여구를 붙여도 세금을 면제해주는 것이다. 이것도 감세고, 취득세 면제도 감세다. 지금 수십조원의 추가경정 논의 앞에 전가의 보도처럼 증세를 요구하는 민주당이, 거듭 감세 조치에 동의해주는 이 상황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이헌재 이후, 여야의 위치만 바뀌었지 토건 앞에 야합하는 것을 본 것은 한 두번이 아니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한 가지, 민주당이 자신들은 토건 아니다, 그런 이상한 말만 하지 않으면 좋겠다. 토목과 건설, 이번에 건설 쪽을 쎄게 밀어주는 것 아닌가?

 

그렇지만 여기에는 관전 포인트가 하나 더 남았다. 하여간 무조건 빚내서 집사라고 여야가 밀어붙이고 있는 생애최초주택구입자, 이들이 과연 집을 살 것인가 말 것인가?

 

예전에 김예슬 학생이 자퇴하면서 했던 명언이 있다.

 

“G20 세대로 빚나거나 88만원 세대로 빚내거나…”

 

빚 권하는 정부와 여야, 그야말로 하우스 푸어로 빚낼 거냐 말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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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ke 방송후기 19. , 황유미!

 

드디어 내가 쓰는 방송 후기에 정부 쪽 인사에게서 항의가 들어온 것 같다. 우리는 논쟁은 언제나 환영! 반론이 있으면 언제든지 손님 접대할 생각이 있다. 기꺼이 항의 주시라!

 

오늘 방송은 산업재해편, ‘산업공화국이라는 키워드를 달고 나갔다. 그러나 아마도 이 방송을 그렇게 산업재해에 대한 일반적인 얘기로 이해할 사람은 없을 듯 싶다. 그렇다! 오늘은 고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 선생님이 방송에 나오는 날이다.

 

그렇게 논란 중에 진행되었고, 이제 2심이 두달 앞으로 나온,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이게 정말로 처음으로 알고 있다. 공중파를 비롯해서 어지간한 케이블에서도 다 한 번씩 아이템을 준비한 건데, 실제로 나간 적은 없다.

 

, 이유야 경로는 잘 모른다. 하여간 이게 처음이다. 그래서 너무 감격했다. 과연 우리가 이걸 방송할 수 있을지 없을지, 어제까지도 좀 아리송한 상황이었다. 어쨌든 방송은 나갔다.

 

 

21살에 취직해서 23살에 사망한 고 황유미씨, 그 사건도 놀라운 일이지만, 그걸 직접 겪어낸 부친이 너무 담담하게 얘기를 하셔서 더 놀랐다.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모친도 이 사건으로 돌아가시게 되었다는 얘기는 처음 들었다.

 

3시간마다 한 명이 사망한다는 한국, 여기에 더 보탤 말이 뭐가 있겠나. 산업재해로 암이 판정되는 비율은 프랑스의 1/50, , 더 할 말이 없다.

 

여기에 무슨 말을 더 보탤 수 있겠나, 그런 생각을 하는데, 괜히 눈물이 나서. 오늘은 얘기를 별로 못하고, 그냥 우는 모습만 방송에 나갔다. , 나야 원래 눈물이 많으니까, 내가 울었다는 건 아무 의미도 없는 얘기이기는 하다.

 

시간도 짧고, 서브 아이템으로 들어와 있고, 그 짧은 시간에 무슨 얘기를 더 보탤 수가 있겠는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고 황유미씨의 아버님의 얘기를 듣는데, 그렇게 자꾸 눈물이 났다.  

 

 

(고 황유미씨. 출처 - 반올림)

 

세 시간마다 한 명씩 사람이 죽어나가는데,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는 듯이 눈감고 살고 있는 나라!

 

이 나라 언론이 언론이냐 싶다. 오늘은 그냥 울고만 싶다. 경제고 뭐고, 이게 사람들이 하는 얘기지, 동물들이 하는 얘기이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만들고 싶은 미래는 사람들의 공동체이지, 개돼지들의 공화국은 아니다. 집에서 키우던 고양이가 죽어도 이렇게 하지는 않는다.

 

(‘또 하나의 가족이 영화 두레 형식으로 만들어진다. 도움들 주셨으면 고맙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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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원의 길고양이 통신> 독서감상문

 

어떤 책은 머리로 읽고, 어떤 책은 가슴으로 읽는다.

 

그러나 어떤 책은 머리가 거부하고, 어떤 책은 가슴이 거부한다.

 

요즘 싫은 데도 참고 읽는 책이 너무 많았다. 아기 옆에 놓고 책을 읽으려고 하면 아기가 달려와서 책 날개를 뺏어가고, 표지를 쥐어 뜯는다. 그래서 아기의 감시를 피해서 책 읽는 게 아주 큰 일이다. 책 읽는 것도 일종의 직업인지라, 나는 머리가 거부하고, 가슴이 거부하는 책도 읽는다. 참고 읽는다. 프랑스에서 우파들과 경쟁하던 게 습관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한국에서, 우파들은 돈과 네트워크 그리고 프레임을 쥐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내가 움직일 골목을 모두 대부분 - 막아놓고 있고, 내가 움직이려고 할 때마다 기습 공격을 하거나, 심통을 부린다. 내가 한국에서 우파보다 잘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책을 많이, 그것도 아주 많이 읽는 것 외에는 없다. 그래서 머리가 거부하거나 가슴이 거부하는 것도, 읽어야 한다고 하면 참고 읽는다.

 

그러면 마음이 답답해진다.

 

그 와중에 집어든 책이 <고경원의 길고양이 통신>이다. 이 책은 가슴으로 읽고, 눈으로 감상하는 책이다.

 

사진들을 보면서 설래이는 마음이 생기고, 가끔 가슴을 후비는 듯한 짠한 마음이 든다.

 

사진이 위주로 된 일종의 포토 에세이라서, 사진을 따라가면서 읽으면 마음은 자연스럽게 동화가 된다.

 

이 책을 보면서, “이건 좀 아니다 싶다”, 그렇게 가슴이 거부하는 느낌이 든다면, 정신치료를 위한 상담이 필요하지 않을까? 인간이면 가질 수 있는 보편적 정서인 측은지심과 미적 공감능력을 끌어내는 책이다.

 

여기에서 작가가 무슨 카메라를 썼을까, 무슨 렌즈를 썼을까, 이런 게 자꾸 궁금하다면, 자신이 기계에 너무 매몰되었던 것이 아닌가, 그렇게 의심해도 좋을 듯 싶다.

 

작가가 우리에게 알려준 팁은 한 가지낮은 자세로, 그리고 더 낮은 자세로. , 이게 길고양이들의 시선이구나, 그렇게.

 

, 그렇게 책을 두 번 읽고 나니, 조금 더 주제를 가지고 얘기들을 재구성했으면 어떨까, 길고양이라는 대상 말고 조금 더 세밀화된 모티브가 있었으면 어떨까,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여기까지

 

그렇게 사진과 얘기를 구성하는 것은 작가의 몫이다. 그리고 사진과 글을 감상했으면,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싶어지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여기다 참견질을 하려고 하는 것은, 잠시 발동하려던 내 가슴을 시기한 머리의 질투일 뿐이다.

 

우리 모두 가슴으로 세상을 느끼고 보던 시절이 있지 않았나? 고경원의 고양이 얘기와 함께, 잠시 머리를 눕혀놓고 가슴이 움직이도록 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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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ke 방송후기 18. 축제의 경제학 혹은 장소 마케팅의 종말

 

내가 학위 받은 게 1996년이니까, 올해로 18년째이다. 그 동안 참 많은 논쟁을 했다. 큰 논쟁도 했고, 작은 논쟁도 했다. 그 중에는 울산에서 술고래 축제를 만들자는 단체장에 맞서, 그거 아니다, 뭐 그런 소소한 논쟁도.

 

하여간 페스티발 혹은 카니발, 이런 거에 대해서 난 기본적으로는 찬성이고, 이런 게 더 많아지는 게 문화적인 측면에서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하는 게 기본입장이다.

 

경제인류학자 중에 라파포라는 사람이 있다. ‘Pigs for the ancesters’, 조상에게 바치는 돼지, 요 테제로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사람이다. 그 덕분에 생태인류학이라는 게 생겨났다. 요즘은 그런 얘기 덜 하지만, 라파포를 적극적으로 해석하면서 생태인류학이라는 한 분과를 만들려고 하던 시절도 있었다. 벌써 몇 년 되고, 대학 강의를 그만하겠다고 하면서 좀 시들해진 얘기이기는 하지만. 스페인의 투우나 파파아 뉴기니아 등 도서 지역에서의 돼지 축제 등, 기본적으로는 축제에 관한 얘기이다.

 

생태인류학이라는 주제로, 축제에 관한 얘기들만 모아서 별도의 책을 하나 기획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것도 불과 2년 전인가?

 

연이나

 

2000년대에 유행처럼 돌풍을 일으켰던 한국의 축제붐은, ‘장소 마케팅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었다. 토건 + 토호, 딱 요 포맷이다. 내가 여행을 반대하는 것도 아니고, 페스티발을 반대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야말로 토건의 장소 마케팅으로 각 지역에서 진행되던 많은 축제들과는 참 많은 논쟁을 했던 기억이다. 무슨무슨 아가씨 선발대회, 요런 거 가지고도 많이 싸웠다. 예전 한나라당 성향의 사람들과도 힘을 합쳤던 적이 있었다.

 

지금 와서 보면, 시간이 많은 것을 자연스럽게 해결해주지 않는가, 격세지감이다. 그 화려했던 시기도 끝나가고, 이제는 구조조정 단계로 들어간다.

 

장소 마케팅 논쟁이 한참일 때, 내가 주로 사례로 들었던 것은 영화 <반지의 제왕>이다. 3부 전체의 배경이 되었던 미나스트리스 같은 셋트장, 한국 같았으면 무슨무슨 촬영지, 무슨무슨 페스티발, 이렇게 생난리를 쳤을 듯 싶지 않나? 더군다나 <반지의 제왕> 트릴로지 정도의 세계적 히트작이고, 특수효과를 담당하던 피터 잭슨팀이 여전히 뉴질랜드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장소 마케팅 한참하던 우리의 눈으로 보면 그게 얼마나 중요한 경제적 자산이고, 문화적 유산이고, 에또, 경제적 파급효과가 몇 조원대이고, 일자리 창출도….

 

<반지의 제왕> 셋트는 영화 촬영이 끝나고 아낌없이 철거되었다. 그 편이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그게 100, 답이다.

 

한국과 뉴질랜드의 차이는, 한국은 지방 토호들이 토건을 이끌어가는 나라였고, 뉴질랜드는 그렇지 않았다, 그 차이 하나 밖에는 없다.

 

그렇다면 일본의 그 무수한 테마파크들은?

 

에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권해드리고 싶다. 그 배경이 바로 90년대 버블붕괴로 폐허가 된 테마파크다.

 

좀 너무 야박하다 싶은 평가일 것 같아서 미안하지만, 지금 한국 지자체에서 억지로 하고 있는 축제 절반은 곧 귀곡성으로 바뀔 것이다.

 

한 때, 일본 사람들이 세계를 헤매고 다닐 때, ‘유럽 3대 사기라고 했던 게 있다. 독일의 로렐라이 언덕, 브뤼셀의 오줌 싸는 소년, 코펜하겐의 인어공주상. 그렇지만 이 3대 사기는 앞으로도 10년은 더 갈 것이다. 기념상 자체는 아무 것도 아닐지라도 그곳의 삶은, 뭉클한 무엇인가가 있기 때문이다.

 

관제 축제의 미래를 말하기에 앞서, 그렇게 난리치던 장소 마케팅의 종료되는 걸 보면서, 정말로 만감이 교차하게 된다. 나한테 이 축제의 경제적 효과는, 고용창출효과는, 혹은 지역경제에 대한 기여도가 등등 침 튀기며 떠들던 그 많던 연구원들, 그들은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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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ke 방송후기 17. 갑을공화국편

 

가끔 살다 보면 정말로 지지하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번에 나온 황치오 변호사와 강운산 박사의 경우가 그렇다. 오늘은 이 두 사람을 이해하는 데, 약간의 시간을 써보려고 한다.

 

두 사람 다 방송은 거의 처음이라고 하는데, 이렇게 중요한 사람들을 방송에서 보기 어려웠다는 게, 참 그렇다. (아쉽게도 강운산 박사는 시간관계상 1부에만 참여하고 먼저 나가서 사진이 없다.)

 

계약이라는 것은 청약과 응낙이라는 두 가지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물론 이건 교과서에 나오는 정의이고, 기본적으로는 비대칭적 관계가 존재하게 된다. 사주와 노동자가 그렇고, 하청관계의 많은 계약들이 비대칭적이다.

 

황치오 변호사는 아마 우리나라에서 공정거래 분야에 특화한 거의 유일한 변호사이고, 약자들을 위해서 지금까지 뛰어온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별 돈도 되지 않는 일에 삶을 바친 사람

 

, 이렇게 얘기하면 무기력하면서도 정의감만으로, 주변 사람을 피곤하게 하는 그런 루저 분위기를 상상할테지만! 서울중앙지법 등 판사 출신이었고, 김앤장, 그렇다, 바로 그 김앤장 변호사였다. 여기에 워싱턴대 로스쿨을 졸업해서 뉴욕 변호사 시험에 붙었다. 국제 변호사, 이런 걸로 M&A나 론스타 같은 쪽에 일을 했을 법한 사람이다.

 

그러나 지금은 공정거래전문변호사이다. 그야말로 공정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양반이다!

 

그렇다, 우리는 이런 삶을 동경하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과 있다고 부자 쪽으로 배 바꿔 타고 가는 사람들만 줄구장창 보는 요즘과 같은 시기에, 가슴 찡한 감동을 느꼈다.

 

 

 

기왕 인물 얘기를 하는 김에, 강운산 박사에 대한 얘기를 더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양반을 보는 키포인트는, 이 양반이 소속된 기관인 건설산업연구원이라는 곳이다.

 

선대인 연구소의 바로 그 선대인이 틈만 나면, 업자들 기관이면서 정부출연연구소 코스프레를 한다고 방방거리는, 문제의 바로 그 연구소이다. 업자들 대변하는 업자 스피커, 뭐 그런 이미지이고, 실제로 그런 일도 많이 한다.

 

개인적으로는 난 좀 착잡하다. 초창기 시절, 이 연구원을 만든 초기 멤버들은 그런 사람들은 아니었다. 나도 현대시절, 회의한다고 여기 많이 갔었고, 같이 일한 적도 있다. 조금 더 중립적인 위치에서 정부가 직접 하지 않지만, 회사 이권과도 좀 떨어져서 연구할 수 있는 인프라를 만들어보자는 그런 취지가 좀 있었다. 그야말로 믿거나 말거나

 

연구소라는 게 좀 묘하다. 삼성경제연구소면 삼성의 잇권을 위해서 맹수처럼 뛰는 그런 사람들만 있느냐, 현대경제연구원이면 정씨 일가에게 충성하는 사람들로만 구성되어 있느냐, 꼭 그렇지는 않다. 거기도 다 사람 사는 데다.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고, 그런 데서 하는 연구 프로젝트 중에는 정말로 공익적 의도를 가지고 추진되는 것도 있고.

 

강운산 박사가 하여간 하도급에서의 불공정 문제를 풀고자 애쓰는, 그런 대표적인 연구자다.

 

두 사람 모두,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지지를 보낸다.

 

언제가 더 많은 성과로, 한국 계약의 불공정 관행이 얼마나 시정되었는지, 그런 얘기를 다시 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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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저술 모드로

 

아기 태어나고 대선 치루면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뭘 하고 살아야 할지,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그냥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지냈다. 그 동안 이사도 했고, 몇 달이 지났지만 아직 내 방은 제대로 정리도 하지 못했다. 스피커랑 스크린, 그런 거 셋팅도 안하고, 컴만 겨우겨우 돌리면서 지냈다.

 

4월말 정도나 되어야 올해 내가 뭐하고 지낼지 결정이 될 것 같았는데, 그렇게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 같다. 언제까지 하게 될지 모르지만, 아침 방송을 하는 게 하나 있다. 이게 오후로 가면 새벽 작업을 하면서 일을 하려고 했는데, 당분간은 계속 아침 방송으로 남을 것 같다.

 

YTN 뉴스 정면승부에서 주간논평 하는 게 하나 생겼다. 어쨌든 1주일에 한 번 정도 하는 거지만, 그런 창문 하나는 맡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그냥 하기로 했다. 라디오에서 다른 코너의 고정 출연 제안들이 좀 있기는 했는데, 전문 방송을 할 것도 아니라서, 2개면 나에게는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저런 팟캐스트 방송 진행 요청도 있기는 했는데, 그것도 무리이다.

 

아직 제목이 결정되지는 않았지만, 경향신문에서 30회를 목표로, 토요일마다 통면으로 나가는 기획 기사가 하나 있다. 내가 2, 선대인이 한 번, 그 주기로 하기로 했다. 원래는 격주로 할 생각이었는데, 선대인이 한 번만 더 내가 맡아달라고 해서. 광장시장편 첫 원고는 오늘 써서 넘겼고, 다음 회는 포항 롯데백화점을 다루려고 한다. 매번 지방에 갈 수는 없지만, 어쨌든 목요일은 현장 취재하는 날이다.

 

내 작업 스타일상, 인터뷰도 더 많이 일정을 잡아야 하는데, 그 시간까지는 잘 안 나온다. 소설 작업은 인터뷰를 많이 하고 할 생각이었는데, 그 일정이 잘 안 잡혀서 고민이다.

 

얼마 전부터 국민연대 공동대표를 맡았고, 화요일마다는 상임회의가 열린다. 이렇게 저렇게 시간을 맞추면, 1주일에 단 하루도 남지 않고, 단 한 끼도 누군가 식사를 할 공간이 없다.

 

일요일, 월요일은 경향신문 연재 마감하는 날이고, 화요일은 회의와 ytn 방송 원고 쓰는 날. 수요일은 ytn 방송. 목요일은 취재가는 날. 그리고 금요일은 거의 예외 없이 take팀 회식하는 날. 그리고 토요일은 유일한, 휴식일.

 

여기에 한국일보와 주간경향에 순번제로 돌아가는 칼럼들.

 

당분간은 이렇게 일정이 잡히고, 나머지는 아기 보면서 책 쓰는 시간. 8월까지는 이 모드로 돌아가게 된다. 8월에는 아내가 복직한다. 지금 시작한 일 중에서 상당수는 그즈음에, 꼭 해야 하는 거 아니면 종료하려고 한다.

 

다음 주에는 포토 에세이인 아날로그 사랑법, 대선 후 나오는 책으로는 첫 책으로 나온다. 이것저것, 공저로 준비하고 있는 책 등, 지금부터는 다시 월간지 모드처럼 될 것 같다. 내가 올해에 혼자 쓰는 책으로 준비하고 있는 건 4권인데, 여력이 안되면 한 권은 내년으로 돌릴 생각이다.

 

고등학교 친구들, 대학 친구들, 유학 같이 했던 사람들, 정말 절친한 사람들 못 만나고 산지 10년도 넘는 것 같다. 공식적인 동창회는, 나가본 게 거의 기억이 안 난다.

 

방송도 더는 늘릴 생각이 없고, 책도 지금 준비하고 있는 것 외에 더 늘릴 생각은 없다. 일단 무리이고

 

보통은 한 해 계획을 이전 해 10월 늦어도 11월까지는 짜는데, 올해는 대선 치루면서 모든 것이 미루어져서 4월 중순이나 계획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몇 달간, 정말 아무 것도 안하고 아기 보고, 놀고, 그렇게만 했다.

 

그리고 그 와중에,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다른 사람들의 책을 소개하는 일을 올해는 좀 더 신경써서 해보려고 한다. 그래봐야 블로그에 독서감상문 올리는 정도지만올해는 신경 써서 그런 걸 좀.

 

영화 기획은, 같이 해보자고 온 작업들이 몇 개 있기는 한데, 올해는 무리데쓰다큐 작업은 정말 해보고 싶었는데, 이것도 무리데쓰.

 

하여간 주변 상황과 일상적인 일들을 이렇게 정리하고, 이제는 본격적으로 책 작업을 시작한다.

 

올해 출판계 상황이 정말 안 좋다고, 대부분이 우울한 전망을 말한다. , 그렇기는 한데, 계속 미루어두고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고.

 

아기 돌보면서 책 쓰기, 하여간 새로운 형태의 삶이 다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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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ke 방송후기 16. 창조경제편

 

창조경제라는 단어에 대해서 나는 반대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도 동의한다. 그렇지만 이게 어디까지 갈지, 어디가 한계일지, 그런 것에 대해서는 명확한 상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박근혜 자신도 모르는 걸, 도대체 외부에서 어떻게 알 수가 있겠는가? 다른 방송에서도 창조경제에 대한 논쟁을 몇 번 하기는 했는데, 불투명한 것은 나만이 아니라 저 쪽에서 나온 선수도 마찬가지였다.

 

드디어 이 말을 김종인에게 건의해서 박근혜가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그 최초의 입안자를 만나게 되었다. 김창경 교수, 그가 바로 이 복합적인 사건의 첫 출발이다. 어쨌거나 첫 입안자이니까, 그를 통해서 개념이 해석되는 것이 옳다. Take에 바로 그 양반이 나왔다. 오메나야!

 

 

방송이 부드럽게만 진행된 것은 아니다. 전화 연결된 이인영 의원을 통해서 창조 경제에는 노동이 빠져 있다는 지적이 있었는데, 그는 이 질문에 대해서 너무 두리뭉실하게 빠져나가려고 하였다. 만약 토론 방송이었다면, 여기에서 더 한바탕 했을테지만, 그 정도의 전격적인 NS 토크를 하기 위한 토론 방송은 아니다.

 

진화경제학이라는 흐름 내에서 내가 이해하고 있는 creativity라는 개념이 있고, 창의성과 관련해서도 몇 가지 생각이 있다. 어쨌든 김창경이 이해하는 정도가 창조경제의 개념의 전부라면, 약점이 너무 많거나 아니면 덜 정리되었거나. 약간 이론적인 용어로, ‘enabling environment’라고 부르는, 일종의 환경조성에 관한 얘기들은 전혀 정리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그가 얘기하는 대로, 가난한 사람도 자신의 기술로 먹고 사는, ‘짬짜면이 창조경제의 대표사례라면, ‘의자뺏기가 아니냐라는 반론을 피하기 어렵다. 자신은 수요자 중심으로 사유한다고 말하면서도 결국은 생산자 중심의 창업론 해석 성향이 너무 강하다.

 

 

일단은 어디가 구멍이고, 어디가 한계인지, 약간의 이해가 생겼기 때문에, 나에게 오늘 방송은 특히 유익한 것이었다. 하여간 어쩌다 보니, 그야말로 지적재산권을 가지고 있는 원작자가 방송에 나오게 된 셈인데, 원래는 A4 용지 앞뒤로 가득찰 만한 섭외자 리스트가 있었는데, 모두 실패하였다는 후문이다.

 

각론보다는 총론을 정리하는 상황이라, 황세진씨가 준비한 자료들의 상당 부분은 결국 사용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리고 1, 2부로 나누었던 것도 진행 과정에서 통합해서, 별도의 부 구분 없이 통으로 갔다.

 

오늘 방송의 최고 코멘트는 김학도씨의 입에서 나왔다. 그늘 오늘은 정말 펜을 들고 메모하면서 열심히 경청하였는데, 방송 끝내기 직전에

 

별 거 없네요!

 

사실 별 거 없다. 그렇지만 앞으로 별 거가 생길 것인가? 현재 형태로라면, 앞으로도 별 거 없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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