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억압의 시대를 맞아

 

이번의 해병대 캠프 사건을 보면서, 참 이것저것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 것을 교육이라고 이수해야 하는 상황도 안됐지만, 게다가 죽음이라니게다가 그 질문을 처리하는 방식을 보면서, 정말로 뇌가 띠오옹, 아 이게 사람 사는 세상이 맞나 싶을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억압이라는 것은 좀 오래된 테마이기는 하다. 우리에게는 군사 정권으로 익숙하기는 하지만, 어쨌든 좀 지난 주제이다. 그렇지만 그게 다시 돌아오는 이 시대를 보면서, 그냥 있기가 좀 그렇다.

 

해병대에서 무얼 배울 것인가? 부모들이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굴종을 내화시키고, 억압을 체화하는 것, 그거 아닌가? 이 시대, 사회 전면에 나선 기관들이 군대와 대형 교회 아닌가? 대표적인 억압의 내재화 장치들이다. 학교는 군대처럼, 기업은 교회처럼, 통솔과 순종이 강조되는 시기, 그 사이에 벌어진 병영 체험에서의 상징, 지독할 정도로 아이러니한 순간이다.

 

무기력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 마냥 손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지만, 어쨌든 하고 싶은 일은 할 수 없고, 하는 일은 잘 안 되고

 

억압과 무기력, 그 사이에는 약간의 뉘앙스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하나의 흐름에 있는 것 아닌가? 억압해도 별 반응 없이 무기력하게들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더욱 강력하게 억압하고.

 

2000년대 후반 일본에 가면 시민단체 일각에서 지독할 정도의 무기력증을 본 적이 있었다. 68세대 혹은 전공투 세대는 너무 나이가 많았지만, 그들을 대체할 다음 흐름은 나타나지 않고. 주간금요일이라는, 우리 식으로 치면 시사인 정도 되는, 아사이 있던 기자들이 나와서 만든 잡지에 혜성처럼 아마미아 카린이 등장하여 편집위원이 되는 걸 보면서, 뭘까, 그럴 정도였다.

 

민주당으로 새로 결집해서 정권을 바꾸게 되는 흐름은 그 직후에 나타나게 되는데, 자민당의 장지 통치 아래에서 이래도 안되고 저래도 안되고, 그런 무기력증을 일본에서 본 적이 있다.

 

요즘 한국이 그런 것 같다. 뭔가 변화를 생각했거나, 억압이 아닌 방식으로 생각하려고 했던 이들이 하는 일들은 대부분 잘 안 된다. 한 명 한 명에게는 그냥 잘 안되는 것이기는 한데, 이게 전체로 모이다 보면 집단적 무기력 같은 것이다.

 

요즘 새누리당과 민주당 사이에서의 벌어지는 논쟁은 퇴행적이기는 한데, 그렇다고 해서 딱히 뭔가 대안이 있지도 않은 상황이다. 그저 숨죽이고 지내는 것 외에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 그게 객관적이기는 한데.

 

그래도 억압의 시대로 들어간다는 것이 명확해진 지금, 세 끼 밥만 먹고 그냥 숨죽여서 살 수는 없는 것 아니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억압의 시대, 그래 그게 박근혜를 선택한 사람들이 우리들에게 준 선물이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무기력증과 억지로 끌어내서 만든 성장담론, 그야말로 지독할 정도로 익숙한 경제 살리기, 그 시대로 다시 들어간다. 사회적으로는 억압, 정치적으로는 무기력 그리고 경제적으로는 죽지도 않은 경제를 살려야 한다고, 모두 얼굴 박고 빚 내요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집단 무기력증으로 다시 들어간다.

 

생기발랄, 그런 단어들이 유행하고 사람들의 열정을 끌어내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군대와 군대 용어가 그 자리를 다시 차지한다. 그럼 우리 군인이 작전도 수행하고, 뭐 그래야 할 것 같지만, 지금의 장교들은 그래도 미군 지휘를 받는 것이 더 좋겠다고정말로 찬란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렇게 해서 억압받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나는 상상력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말로 두려운 시대가 오면 상상하는 것 마저도 두려워진다. 그리고 그 가장 약한 고리인 중고등학생들, 10대들의 상상을 억압하는 시대가 된다. 지금이 딱 그런 시기가 아닐까 싶다.

 

<행복은 선착순이 아니잖아요>, 이런 얘기를 영화로 만들면서 우리가 가야 할 길에 대해서 모색하던 순간이 있었다. 정말로 깜깜하게 오래된 기억으로, 멀고도 먼 시대의 얘기처럼 느껴진다.

 

얼마 전부터 주변에 대한 정리정돈을 시작했다. 얼마 전에 시작한 sbs cnbc의 방송 한 개만 남겨두고, 나머지 것들은 정리하는 중이다. 방송에서 배우는 것이 적지는 않은데, 어쨌든 절대 시간이 나에게도 필요하니까.

 

신문 칼럼들도 정리 중이다. 몇 가지 생각이 좀 있는데, 이쪽이든 저쪽이든, 욕하는 일 외에 이 시대에 쓸 글이 별로 없다. 그렇다고 맨날 욕하는 것도 지겨운 일이고, 그런다고 해서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게 너무 뻔한 데 줄구장창 그 얘기만 하는 것도 서로 안스러운 일이고.

 

그럼 비판하지 않는, 좀 풋풋한 글을 쓰면 될 거 아니냐? 눈에 보이는데 안 쓰는 것은 양심에 걸리는 일이고, 어쨌든 여전히 바닥에서 세상은 모색을 하고 있는 중이다, 그렇게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괜찮아, 다 잘 될 거야, 이런 것도 영 내 스타일 아니고.

 

어쩌면 좀 비겁한 변명일 수도 있는데, 내가 살아가는 동안, 그래도 나는 최선을 다했다, 그런 거? 그래도 그 정도의 변명거리라도 만들어야 할 것 아니냐?

 

굉장히 고통스럽고 힘겨운 몇 년이 될 것 같지만, 그래도 또 걸어가야 할 거 아닌가 싶다. 5년 후의 일은 모른다. 그런 거 알면 나부터라도 당장 주식투자부터 하겠다.

 

엄청나게 큰 일을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무지막지하게 희생하겠다는 생각도 아니다. 그러나 지금부터 펼쳐질 억압의 시대에 숨죽이고 살지는 않겠다는 정도?

 

블로그는 어떻게 할지, 아직 마음을 못 정했다.

 

하여간 조금이라도 신경 쓰게 되거나 정신을 분산시켜야 하는 것은 다 정리한다는, 그런 게 지금 기조이기는 한데

 

예전에 한참 힘 좋던 시절에는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그렇게 부지런을 떨기도 했었는데, 지금은 에고고고, 조금만 움직여도 힘들다나도 나이를 먹었고, 아이 키우면서 이것저것 하는 것은 그야말로 무리데쓰

 

해보고 싶은 얘기와 해야 하는 얘기를 구분하기가 좀 어렵다. 어쨌든 억압에 관한 얘기는, 그야말로 해야 하는 얘기이다. 하고 싶은 얘기야 언제든 또 할 기회가 있겠지만, 지금 해야 하는 얘기를 지금 하지 않으면, 마음에 두고두고 후회로 남을 듯싶다.

 

하여, 여러 가지 일정들과 살아온 방식들에 대한 전면적인 재조정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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