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유월 혹은 살아남은 자의 슬픔

 

브레히트의 <살아 남은 자의 슬픔>이라는 시집은 그 제목만으로도 천 년을 갈 듯 싶다.

 

닝기미, 살아 남아야 슬픔이라도 느끼지, 디진 자가 무슨 슬픔을 느끼겠나? 그 논리적 결론을 시의 제목이 딱 짚었다. 20대에도 이 얘기를 했고, 30대에도 이 얘기를 했는데, 40대에도 이 얘기를 하게 된다.

 

차이가 있다면, 20, 30대에는 정말로 시를 읽었고, 40대에는 이미 여러 번 읽었으니 읽었다 치고. 그러니 더 슬프다.

 

얼떨결에 아침 방송을 시작했는데, 지난 주로 막방을 했다. 이래저래 50명 가까운 사람들이 만들던 방송이었는데, 이제 거의 혼자 남아서 후속 방송을 준비하게 되었다. 뭐래? 그런 데도 남아 있어야 하나? 나머저 떠나면 그나마 남은 사람들 멘붕이다. 진짜, 뭐래..

 

이 와중에 대선 이후 처음 낸 에세이집은 출발이 아주 늦게 되었다. 아주 작은 출판사라, 그 잠시의 경영난을 버티지 못하고, 몇 년째 파트너로 일하던 에디터는 훨씬 큰 다른 출판사로 옮겨가게 되었다. 힘든 시대를 버티려면 그나마 입이라도 줄여야

 

이래저래 나와 파트너로 일하던 사람들이 줄줄이 짤리거나, 아니면 직을 옮기거나, 그것도 매일 한 명씩. 뭐래?

 

꼬질꼬질한 삶을 살게 될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런 요상한 방식으로 같이 일하는 파트너들이 한 명씩 사라지는 상황을 전격적으로 버티면서 지내야 할지는 나도 몰랐다. 그러면 같이 그만두면 될 거 아냐? !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그래서 더러운 자들의 기억이라는 것을 동의할 수밖에 없다.

 

하여간 되는 일은 아무 것도 없고, 그 사이에 내 주변 사람들은 속수 무책으로 무너지고.

 

오랫동안 명랑을 모토로 살아왔는데, 이게 요즘 흔들린다. 내 주변 사람들과 동료들이 하나씩 무너지는데, 나만 혼자 얼굴에 스마일! 이게 얼마나 잔인해보이겠는가?

 

이렇게 혼자 고민 중이었는데, 그 클라이막스는!

 

‘150만원 세대작업할 때 중요한 키맨으로 같이 작업하려고 했던 알바 연대의 대변인이

 

이번 주, 그러니까 오늘 아니면 내일쯤 차를 한 잔 마시기로. 그것도 벌써 2달 전부터 몇 번씩이나 얘기를 하면서도 내가 정신이 없어서 미루어두었던 자리였다. 아침 방송 끝났으니, 이번 주 커피 약속이라도 다시 잡을까, 막 전화기 뒤적거리고 있는 찰라.

 

세브란스 영안실 4.’

 

이렇게 문자가 날라온 거다. 뭐야?

 

결국 그날 저녁, 만사 제끼고 영안실부터 달려갔다. 사인도 모르고, 그냥 늦게 집에 들어와서 TV 보다 새벽 3시에 부인이 살펴보니, 그냥, 이런 죽음도 있나 싶을 정도로, 그렇게 허무하게.

 

정말로 죽었어?

 

정말?

 

이런 법도 있나?

 

너무 놀라니까 눈물도 나지 않는다.

 

이재영이 죽은지 얼마나 되었다고하여간 세브란스 영안실 요즘 엄청 자주 가게 된다.

 

이런 억울한 죽음도 있더냐나이 서른 다섯에.

 

이 와중에 나꼽살 번외편 기획하고, 녹음하고, 또 왜 이건 이렇게 안 해주냐, 저건 저렇게 안 해주냐

 

다 됐다, 니들끼리 해, 이 말이 목천정을 뚫고 나오려는 것을 가까스로 참고, 집에 와서 혼자 소주 기울이고 앉아 있으려니, 이게 살아도 사는 게 아니다 싶다.

 

하여간 이렇게 잔인하게 6월이 시작되었다.

 

그 와중에 장모님은 급성위염, 어머님은 점점 치매 초기 증상, 뭐 삶이 이렇게 복잡해졌드냐.

 

이제 아홉 달 넘은 아들은 잠시도 봐주지 않고, 이것저것 부수어대고, 야옹구는 또 가만히 있어주시나, 연신 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웃음을 잃지 말자, 다시 한 번 마음을 가다듬어 먹는다. 그리고 잠시 후 벌어지는 또 다른 슬픈 사연에 급 마음 냉각.

 

5 31, 난지 캠프장에서 동료들과 죽어라고 술 마실 때만 해도 좋았지, 이제 이렇게 술 처먹고 아픈 기억들은 탈탈. 근데 왠 걸, 슬픈 사연은 왜 끊이지가 않는가!

 

그래도 죽어라고 즐거운 생각들을 하려고 하는 것은, 그게 살아남는 자의 슬픔이 가지고 있는 역동성 아니겠는가.

 

억지로라도 웃고, 또 웃을 구석을 찾아내지 않으면, 이 지긋지긋한 어둠이 결코 끝나지 않는다. 영원히 박근혜와 살 수는 없는 것 아닌가?

 

Posted by retir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