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자로 산다는 것

 

사람한테는 여러 가지 모습이 있다. 경제학자로서의 내 삶은, 그 많은 모습 중의 하나일 뿐이다. 지난 몇 년 동안, 내 감정이 가장 많이 움직인 것은, 마당에 살던 고양이들과의 삶이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녀석들을 데리고 이사를 오고, 그들이 무사히 정착한 모습을 보여줄 때까지, 그야말로 긴장의 연속이다. 그러나 감정의 크기가 삶의 크기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아무리 고양이들에게 많은 감정을 주었다고 해서, 내 삶이 고양이를 돌보는 것이 되지는 않는다. 내가 고양이를 몇 마리를 돌보고 있든, 나는 경제학자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 가장 많을 때는 막 태어난 새끼들까지, 8마리의 고양이를 동시에 돌본 적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경제학자가 아닌 것은 아니다.

 

지난 대선은, 내가 경제학자로서의 삶을 내려 놓기로 오래 전부터 결정해놓고 있던 시기였고, 또 그 시간만을 기다리면서 지냈을지도 모른다. 나에게 경제학자라는 말은, 직업과는 좀 다른 의미이다. 수치를 표고, 자료를 보고, 그 사이에서 새로운 수치를 찾아내거나 관계를 뒤집어본다. 그게 내가 주로 하는 일이다.

 

한국의 언론과 기사는 광고주 혹은 스폰을 보면 90% 이상 읽힌다. 누가 뒷돈을 대느냐, 그것에 따라 거의 대부분의 말이 결정된다. 뒤집어서 말하면, 스폰 관계만 읽으면 90% 이상의 진실은 그냥 먹고 넘어간다는 것이다. 아파트 분양 광고를 전면에 내고 있는 신문에서 부동산에 대한 상식적인 진단을 내리겠는가? 이건희에게 월급을 받는 삼성경제연구소에서 삼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한국 자체를 위한 얘기를 과연 몇 퍼센트나 하겠는가?

 

그런 고통 속에서, 과연 누구를 위해서 생각을 하고, 어떤 사실을 말할 것인가, 그런 게 학자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긴장감이다. 약간만 눈을 감고, 조금만 뉘앙스를 흐뜨리면 사는 건 아주 편하다. 그렇게 살 것인가?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산다.

 

그 생각을 속으로만 할 수 있고, 한다고 하더라도 술자리에서 아주 절친한 사람들 사이에서만 얘기할 수 있다. 술이라는 핑계, 지인 사이의 농담이라는 안전장치, 그렇게 겹겹이 안전장치를 만들어놓고 얘기를 할 수 있다. 사회적으로는, 아무 얘기도 안 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래도 얘기를 해야 한다는 게, 학자의 삶이다.

 

물론, 아주 쎄게 얘기할 수 있고, 아주 살살 얘기할 수는 있다.

 

그런 삶은 그만 살고 싶었다.

 

돈은 아주 조금만 벌고, 소비도 아주 조금만 하고.

 

하여간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고, 경제학자로서의 삶은 이제 그만 살려고 하던 원래의 생각을 조금 바꿨다. 엄청나게 고강도는 아니고, 아주 살살, 아주 가늘게, 뭐가 맞고 틀리다, 그런 경제학자로서의 얘기를 조금 더 하려고 한다.

 

누군가는 그런 얘기를 해야 할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이 한 가지 있고, 이제 이재영이 없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이재영은 내 삶과 생각을 바꾸어놓은 친구이다. 언제 바꾸었는지도 몰랐는데, 지나 보니, 많이 바뀌어 있었다.

 

이재영은 명랑했고, 밝았고, 그리고 진보가 집권을 한 순간을 위한 준비를 늘 해야 한다고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그 생각이 바로 선거 과정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이재영의 그런 주장을 믿었던 사람이 그렇게 많은 것 같지는 않다. 어쨌든 나는 그의 말을 믿었다.

 

젠장. 삶의 타이밍은 언제나 예술이다.

 

이재영이 장지로 떠나는 날, 그날이 바로 문재인 후보의 두 번째 광화문 유세가 있던 날이었다. 명목상으로 그의 공동 장례위원장 중의 한 명으로 이름을 올려놓았는데, 그의 마지막 길에도 역시 나는 같이 하지 못했다. 삶이, 왜 맨날 이런가!

 

이재영의 친구들은 꼬질꼬질해졌고, 그가 지지했던 사람들의 삶은 남루해졌다. 그렇다면 이재영의 꿈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이재영과 우리가 꾸었던 꿈에 대해서 5년만 더 같이 생각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재영을 위해서 나의 평생을 살 수는 없다. 그렇지만 내가 살면서 가장 존경했던, 그리고 가장 똑똑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그리고 늘 밝았던 이재영을 위해서 경제학자로서의 활동을 조금 더 연장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했다.

 

이재영이 누구야?

 

‘88만원 세대라는 책이 레디앙이라는 출판사에서 출간된 이유는 이재영 때문이었고, 이 책의 마지막 교정교열을 보면서 내가 마지막으로 생각을 가다듬을 수 있게 도와준 담당 에디터가 바로 이재영이었다.

 

, 이런 생각을 하면서, 경제학자로서 조금 더 살아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제영이 꾸었던 꿈을 대신 이루어줄 수는 없지만, 그의 꿈이 그냥 땅바닥에 팽겨쳐지는 것을 친구로서 그냥 보고 있고 싶지는 않다.

 

하여간 이런 복잡한 생각을 하면서, ‘경제학자로 살아가기’, 이 삶을 조금 더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명박, 박근혜, 10년 정권을 보내게 되었다. 그 기간 동안, 나는 전향하지도 않을 것이고, 화려한 자리를 맡지도 않을 것이다. 그냥 꼬질꼬질하게, 고통과 비극 그리고 무기력함을 사람들과 같이 보낼 것이다. 그리고 경제학자로서, 분석도 하고, 발언도 할 것이다.

 

노무현 정권 때, 정권의 사람들은 참 나를 싫어했다. 명박 정권 때, 아마도 힘 있는 사람들은 나를 끔찍이 싫어했던 것 같다. 청와대 홍보 쪽인가, 하여간 그런 데서 나온 얘기가 돌고 돌아 결국 입 조심하라는 협박 비슷한 메시지를 받은 적도 있다. 박근혜 시대의 실세들, 역시 나를 싫어할 것이다.

 

그게 경제학자의 삶이다.

 

아마 어떤 정권이 오더라도, 그것이 이재영이 꿈꿨던 정권이 아니라면, 나는 늘 핍박받고 견제받고, 때때로 사이비라는 얘기를 들으면서 살 것이다.

 

그래서 나는 경제학자로서의 삶 보다는 고양이들을 돌보는 어느 아저씨의 삶이 더 좋다. 그리고 영화 기획자나 시나리오 작가 혹은 동화 작가로서의 삶이 더 좋다.

 

그러나 5년간은, 경제학자로서 살아갈 생각이다.

 

내 친구 이재영을 위하여

 

Posted by reti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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