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가지 않아도 괜찮아, 말할 수 있을까?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솔로와 부부로 구성된다. 동어 반복인가? 어떻게 하다 보니, 동료들 중에는 여성들이 더 많다. 출판계, 방송계, 이런 데 워낙 여성들이 많아서 그런 듯 싶다. 영화를 같이 준비하는 동료 집단만, 그곳은 완전 남성들의 세계이다.

 

그리고 결혼한 부부 중에서 맞벌이가 아닌 집은 한 곳도 없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그런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내 주변의 여성들은 모두 일을 한다. 에디터와 작가들이 많고, 연구직도 상당히 많다. 전혀 그런 일 할 것 같지 않던 여자 후배가 얼마 전부터 헤드헌터로 새롭게 일을 시작했다. 중학생 딸을 둔, 평생 마케팅 부서에서 일하다가 이제는 사람을 가지고 장사를 시작한 것일까? 원래는 바이올린 전공이었다.

 

그 맞벌이 부부 중에서 아이가 없는 사람들도 가끔은 있다. 뒤늦게 감독 준비하는 조철현, <황산벌> 등 대부분의 이준익 감독의 영화를 기획했던 이 아저씨가 아기가 없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아빠가 없는 경우도 벌써 생겼다. 급작스럽게 암으로 떠나간 이재영이 딸과 아들, 두 아이를 남겨놓았다. 이재영이 떠난 뒤에 나도 정신이 없어서 한동안 못 봤는데, 요즘은 가끔 그 녀석들과 만나서 밥을 먹는다.

 

우리들 주변에 있는 수많은 아기들이나 청소년들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이제는 주식투자나 아파트 값 같은 것보다는 그들에게 펼쳐주고 싶은 미래에 대해서 더 많은 시간을 고민한다.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나온 우리 주변의 학생들 중에서 가장 편안하게 풀린 경우는, 외고를 그만두고 나온 조모 교수의 아들이다. 나의 첫 번째 조교라고도 할 수 있는데, 어느덧 경제학 박사가 되었고, 미국 공무원과 결혼도 하였다. 좀 극단적인 경우이다. 검정고시로 다시 대학에 들어갔다.

 

그 중에는 아예 대안학교로 간 녀석들도 많다. 그리고 대안학교를 그만두고 검정고시로 대학에 간 친구도.

 

내 주변에는 아예 조기 유학을 떠난 녀석들은 없었는데, 작년에 한국에서의 고등학교 생활을 접고 엄마와 아빠가 아예 미국에 가서 같이 정착을 한 경우가 생겼다. 아빠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서 월급 받는 생활을 다시 시작했고, 그 아빠가 요즘 나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동료 중의 한 명이다. 기러기 아빠가 된 셈이다. 나와 주기적으로 술자리를 같이 하는, 그리고 10년 이상 된 동료 중에는 첫 번째 기러기 아빠가 되었다.

 

캐나다 교포라서 캐나다 사람도 내 주변에 있다. 이제 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었으니 토론토로 돌아가서 캐나다 사람으로 키우는 게 나을지, 아니면 한국의 이 황당한 입시 지옥에서 딸을 한국인으로 키우는 게 나을지, 부모들이 요즘 심각하게 고민하는 중이다.

 

내 주변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이 공교육주의자이고, 사교육은 되도록이면 안 시킨다는 철학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우리가 지켜온 신념들이다. 그러나 지금의 중등교육 특히 공교육 고등학교의 현실을 보면서 나름 걱정들이 깊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내 주변의 좀 나이 먹은 녀석들, 이제 20대 후반을 향해 달려가는 녀석들 중에는 대안학교 1세대들이 있다. 그 사회적 실험 한 가운데에서 어른이 된 것인데, 아주 화려하지는 않지만 나름대로는 재밌게 살아간다. 남자 한 명, 여자 한 명, 둘 다 검정고시를 거쳐서 적당한 대학을 나왔다. 한 명은 활동가로, 한 명은 출판사 에디터로 살아간다.

 

이제 초등학교에 아이들을 보내야 하는 엄마 중에서는 사립학교에 보내는 것에 대해서 고민하는 친구들이 생겨났다. 다들 직장에 다니는 처지라서 초등학교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엄마들을 자꾸 불러내면 어떻게 할까, 아예 그런 거 없는 사립학교로 보내야 하는 거 아닌가, 이런 고민을 한다.

 

우리 아기는 돌이 지났다. 아직 어린이집을 보내지는 않았는데, 동네에 어린이집이 이제 막 공사를 시작한 상태이고, 좀 먼 동네의 어린이집은 대기 순위 100번쯤 되니까 어쩔 수 없이 집에서 데리고 있다. 아내는 복직했고, 내가 시간을 좀 더 내서 이렇게 저렇게 버티는 중이다.

 

, 당연히 아직 엄마도 제대로 못하고, 걸음마는 몇 달째 시도 중이다. 머리 숱이 많은 거 말고는 그냥 평범한 남자 아이다. 짐승의 소리로 울부짖는 것을 좋아하고, 요 몇 달 사이에 업어 달라고 땡깡도 부쩍 늘었다. 아기가 들을 동요 CD를 사러 나갔다가 깜짝 놀란 건, 우리 말로 된 동요 CD가 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거... 거의 다 영어 동요이다. 고르고 골라서 두 셋트 사왔는데, 거기에도 한 장씩은 영어 CD가 들어있다.

 

이 사회의 무의식 한 단면을 본 듯 했다. 엄마들의 조바심과 지독할 정도의 마케팅이 딱 결합해서 생겨난 유아 영어교육 시장, 소름이 끼칠 정도이다. 돈이면 다냐 싶지만, 돈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최소한의 염치나 상식 같은 것도 거추장스러운 윤리 타령일 뿐일 것이다.

 

아기가 첫 울음을 떼자마자, 아니 뱃속에 들어 앉아마자 시작된 영어 태교 같은 것으로, 교육받는 것은 아기들이 아니라 바로 그 부모들이 아닌가 싶다. 아기들보다 먼저 엄마가 살벌한 경쟁을 체화해나가며, 그야말로 아기가 아니라 부모가 사육되는 세계.

 

이런 나라에서 살고 있구나 생각하면 좀 섬찟하다.

 

최근 나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피디가 한 명 있다. 딸이 중3인데, 초등학교는 대안교육에서 그리고 지금은 공교육에 들어가 있다. 책은 전혀 읽지 않고, 아무 것도 하고 싶어하지 않는 전형적인 중3이다. 얼마 전에 학교에 왜 가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래, 그럼 안 가면 되겠네.

 

아비가 너무 솔직하게 말을 하니, "아니, 일단은 좀 더 다녀보고..."

 

학교에 가기 싫으면 보내지 않을 수도 있다는, 무지막지해 보이지만 정말로 현실적인 아비의 말 한 마디에 딸은 일단 학교에는 가기로 했다.

 

그 녀석에게 우리가 무슨 조언을 해주거나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이게 오늘 내가 시작한 고민의 출발점이다.

 

어떻게든 대학에 보내야 한다면, 적당한 방식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게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지 않을 것이고, 그 사람의 잠재력마저 죽이게 된다는, 무지무지한 2013년의 현실이야 너무 자명하지 않은가?

 

어쨌든 좀 지켜보자, 그런 심정이다.

 

무책임한 얘기인가?

 

나도 그냥 생각을 해본다. 아들은 영어학원은 물론이고 어떤 학원도 보낼 생각은 없다. 정 뭔가 교육을 시켜야 한다면 그냥 내가 시킬 생각이다. 그래도 안되면?

 

그래서 대학을 갈 수 없다면?

 

지금 내 생각으로는, 안되면 마는 거고... 인생을 살아가는데 죽어라고 대학을 가야하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지 않은가?

 

대학을 일부러 가지 못하게 할 생각도 없지만, 그렇다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가게 만들거나, 가야만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는 살면서 꿈을 가진 적이 한 번도 없었고, 무엇인가를 간절하게 소망해본 적도 없다. 그래도 그냥, 세 끼 밥 먹고 사는 데 별 문제는 없었다. 그 대신 외제차 같은 거나 좋은 옷을 일상복으로 입는, 그런 일은 하지 않았다. 없으면 없는 대로 살면 그만이다, 그렇게 살아왔다.

 

아기도 나를 닮았으면 꿈도 없을 것이고, 하고 싶은 것도 없을 것이고, 그 대신 혼자 처박혀서 책 읽는 것을 좋아할지도 모른다.

 

하고 싶은 것도 없었고, 누군가를 이기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우리 또래에서는 남자들은 다 하는 당구를 칠 줄 모르고, 포카 같은 것도 해본 적이 없고, 섯다를 비롯한 화투장 숫자도 못 읽는다. 고도리는 규칙을 겨우겨우 알 정도이다. 볼링도 해본 적이 없는 것은, 내가 생각해도 좀 너무하다 싶다. 스타크래프트 정도가 해 본 거의 유일한 오락이고.

 

내 삶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꿈이 없는 대신, 누군가를 이겨야겠다는 강렬한 열망도 없다면, 어쨌든 밥은 세 끼 먹고 사는 것 같다.

 

만약 내가 아들에게 무엇인가를 하나 가르쳐주어야 한다면, 카지노에는 절대 가지 말라는 것 하나를 남겨주고 싶다. 친하게 지내던 사람이 정선에서 카지노로 행방불명이 되었다. 의지로 극복하지 못하는 일들이 세상에는 종종 있는 법이다.

 

나의 아들이 대학에 가지 않아도 좋아, 이렇게 나는 말할 수 있을까?

 

며칠을 곰곰 생각해봤는데, 나는 그렇게 말할 수 있고, 생각도 정말 그렇게 한다. 그렇지만 그만큼 약간의 절제와 얼마간의 지식은 가지고 있어야 할 것 같다. 절제와 지식, 그건 대학에서 배우는 것은 아니다.

 

대만에서 6세 이하인가, 하여간 유아에게 영어 과외를 시키는 것을 법으로 금지하게 되었다는 얘기를 얼핏 들었다. 한국과 대만의 차이는, 딱 지도자의 상식의 차이 아니겠는가? 상식을 가진 시민을 육성하는 것, 그게 원래 미국 대학 교육의 목표라고 들었던 적이 있었다.

 

Posted by reti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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