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오덕 선생을 생각함

 

처음 책을 쓰기 시작하면서, 당연히 나도 많은 사람들을 참고했다. 요즘은 경북이라고 하면, 어쩐지 마초들이고, 어쩐지 새누리당 지지자들이고, 민주주의와 반대되는 상식을 가진 사람들로 비춰지는 경향이 있는 듯 싶다. 그 한 가운데 청송이라는 곳이 있다. 작년, 올해는 안 갔지만, 지난 수 년 동안 해마다 몇 번씩 갔던 도시가 청송이다.

 

청송, 영화 <홀리데이>의 바로 그 청송 감호소가 있는 곳이다. 그리고 신정아가 농업에 대한 지원금 명목으로 대출받은 청송 농협이 이곳에 있다. 그러나 나에게는 이오덕 선생이 태어나신 곳으로 기억된다.

 

책을 내면 출판기념회를 하지 않는다. 이오덕 선생의 출판기념회라는 재수없는 행사에 대한 글을 읽었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당신 보시기에 흡족하게 산다는 보장은 전혀 없지만, 어쨌든 최대한 그렇지 않도록 노력은 한다.

 

교육에 대해서 계속해서 고민하고, 어린이들에 대해서 고민하고, 그냥 신나게 내 삶의 무궁한 영광만을 위해서 살지 않는 데에는 이오덕 선생의 영향이 크다. 그렇다고 내가 이오덕 선생 책을 그 후에도 늘 옆구리에 끼면서 펼쳐 보는 것은 아니다. 안 읽은 책도 많고, 이제는 어디 가 있는지 찾기도 어려운 책들도 많다. 어쨌든 그런 양반들이 우리 선대에 있었다는 거, 그게 참 좋았다.

 

권정생 선생의 삶은 감히 따라하거나 흉내내겠다고 생각을 먹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삶이다. 인생은 소풍, 아니 인생은 쇼핑, 우린 그렇게 산다. 이오덕 선생의 삶은, 어쩌면 비슷하게 흉내내본다고 하면 아주 다르지는 않게 살 수 있는 삶이다. 물론 그 이유 때문에 이오덕 선생을 좋아했던 것은 아니다.

 

어쨌든 명박네 애들이 최고라고 얘기하는, 지네들끼리 베스트 오브 베스트라고 했던 그 삶의 정반대편에 이오덕 선생의 삶이 있다. 소박하고, 은근하고, 그러면서도 우리가 모두 이렇게 하면 참 세상이 좋아지겠다고 생각하는 그런 삶. 당신은 꾸밈이 없는 문장이 좋은 문장이라고 하셨다. 나 같이 글 잘 못 쓰는 사람에게는 이게 참, 큰 위안이 되었다.

 

그냥 하고 싶은 얘기, 부담 없이 편하게 풀어놓으면 된다나도 남들에게는 그렇게 가르친다. 다 당신 덕분이다.

 

<울면서 하는 숙제>, 이런 게 참 좋은 작품이다.

 

운동회에 관한 얘기를 한 번 해보자. 그 시절, 이 양반들은 운동회에서 꼴찌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 100미터 달리기를 손잡고 하자는 얘기들을 했다. 예전에 그거 볼 때, 좀 지나친 이상주의자 아닌가, 그런 생각을 했었다. 그래도 달리기라고 하면, 숨이 턱에 받치듯이 뛰고, 승부가 칼 같이 갈리고, 그래야 하는 거 아닌가, 솔직히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그냥 소박한 그 마음만 받자, 뭐 요런 식으로 간단하게 생각했었다.

 

이런 된장최근에 일본 방송을 하나 봤다. 안경 쓰고, 어지간히 시니컬한 인텔리처럼 보이는 어떤 패널이, 요즘 일본 운동회에서 손잡고 달리기를 하는 바람에 일본 아이들이 패기가 사라지고,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아주 생지랄을 하고 있는 걸 봤다.

 

아니, 일본에서는 손잡고 달리기, 그걸 한단 말이야? 리얼리? 순간 이오덕 선생이나 권정생 선생이 늘 하던 손잡고 달리기 얘기가 생각났고, 도대체 우리는 뭐 하는 사람들인가, 그런 생각이 뒤통수를 팍 치고 지나갔다. 명박네 애들은 일제고사 쫙 보고, 그게 과학적 평가라고 엄청 생지랄들 했다. 당근, 많은 부모들도 시험 보게 해달라고 사정 사정. 우리가 그 지랄하고 있는 동안에, 일본에서는 운동회에서 이오덕 선생 같은 양반들이 정말로 아방가라드처럼 한 얘기를 정말로 구현하고 있단 말이야? 오 마이 갓!

 

오 신이시여, 저들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나이다.

 

내가 생각하는 한국 교육의 최고 개판은, 대치동 교육도 아니고 목동 교육이다. 꽤 많은 학원원장이나 사교육 종사자들과도 이 문제를 가지고 논의를 해봤는데, 이유와 근거는 조금씩 달라도 결국 동일한 결론에 도달한 것은 사실이다.

 

목동, 이건 교육도 아니다. 할 수만 있다면, 아니 교육을 위해서라면, 일단 목통을 탈출하라!

 

목동 교육은 대치동 비슷한 것 같은데, 그건 보이는 양상만 그렇고 내면적으로는 더 개판이다. 실제로 대치동에는, 사실 그 동네 사람 자녀들은 별로 없다. 이미 다 미국으로 보내셔서, 이러 거나 저러 거나, 오리지날 대치동 주민들은 사실은 사교육이든 공교육이든, 한국 교육과는 무관한 사람들이고. 아주 희한하지만, 그 묘절함이 대치동 교육을 완전 개판 5분전에서 구원해준 힘이 되었다.

 

이오덕 선생의 정신을 생각해보면, 사실상 최악의 교육은 목동 그것도 초등교육이다. 처음에 목동 초등학교 1학년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축구 클럽에 대한 연구부터 시작한 건데, 이게 살펴보면 살펴볼수록, 정말로 지옥의 야차들을 만들어내는 바로 그 교육인 거라. 간단하게 말하면, 공개적이고 공식적인 방식으로 왕따 놓는 걸 교육 시키고 있더라, 이 얘기이다.

 

통계를 내보고 싶었는데, 어지간히 돈 들이지 않으면 나오기 어려운 통계라서 일단 접어놓고 있지만, 구조적이고 근본적으로 왕따 지수가 가장 높이 나올 곳이, 목동 아닐까, 그런 작업 가설을 가지고 있다. 초등학교 때의 축구 클럽이 나중에도 계속 가고, 부모들이 만들어주고 싶은 건, 뭐 잘 알지도 못하면서 네트워크와 친분 관계라는 건데. 나중에 학교에 오거나 혹시 숫자가 맞지 않아서 축구 클럽에 못 들어간 아이는 구조적 왕따에 시달리게 되어있다. 내가 아는 고위 공직자 몇 사람은 결국 목동에서의 이 지독한 왕따를 견디다 못해, 엄마까지 딸려서 미국 유학 가거나, 온 가족이 지방 근무로 간 사례들이 좀 있다. 그 때는 왜 그런 일이 벌어지는지 잘 몰랐는데, 목동이라는 곳이 독특한 교육 시스템을 들여다 보니

 

, 그럼 그 왕따 놓으면서 한 명씩 따돌리고 제끼는 게 삶의 지혜라고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칼 같이 습득한 그 어린이들의 삶이 부모들의 바람처럼 행복하겠는가? 그리고 그들이 이 사회의 지도자가 되겠는가?

 

그게 그렇게 간단한 거면, 일본이 왜 초등학교 운동회에서 손잡고 뛰는 달리기를 하겠는가? 그 사람들은 자본주의 아니고, 그 사람들은 바보라서? 이오덕 선생 같은 분은 왜 수 십년 전에 그런 주장을 하였겠는가? 이상주의자이고 빨갱이라서? 그게 아니라는 데 사태의 심각성이 있다.

 

지금 우리의 교육은 수 십만명 아니 수백만명의 예비 이명박을 만드는 교육 같은 것 아닌가?

 

목동 엄마들한테 조언을 한다면, 혹시 축구 클럽 같은 데 자기 아들이 다니고 있으면, 일단 그것부터 끊으시길. 자식의 미래를 망치는 지름길이다. 사교육은 좀 천천히 끊어도 되고, 독서 교육은 적당한 때에 자연스럽게 시작해도 된다. 그러나 구조적으로 왕따 놓는 것이 삶이고 자연스럽다고 느끼게 하는 것, 그건 정말로 자식들을 구조적이고 근본적으로 망치는 길이다.

 

내가 이해한 이오덕 선생의 가르침은 이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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