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는 일도 별로 없는데, 하루가 왜 이렇게 후딱후딱 가는지 모르겠다. 신문에 글을 하나 썼는데, 결국 뭘 쓸지만 며칠을 고민을 했다. 한참 돌아다니던 시절에는 늘 다루어야 하는 주제가 넘쳤는데, 요즘은 하는 일이 없으니까.. 주변에 얘기가 넘치지는 않는다. 그냥 그렇게 살아간다.
그럼 깊이가 더 생겼는가? 그러면야 얼마나 좋겠냐만은.. 사는 건 그냥 지지리 궁상일 뿐이다. 속도가 늦어졌고, 하는 일이 줄었다고 해서 저절로 깊이가 생기지는 않는다. 천천히 한다고 깊이가 생기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그딴 건 없다.
그럼 포용력은 늘었는가? 그럴 리가. 그래도 화는 좀 덜 내게 된 것 같다. 원래도 화를 많이 내는 편은 아니었는데, 이제는 거의 화를 내는 일이 없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화 내는 것도 귀찮은 일이다. 에너지 소모가 많다. 화를 낼 정도로, 누군가의 흉을 볼 정도로, 그렇게 에너지가 넘치지는 않는다. 포용력이 늘어난 게 아니라, 귀찮아서 화를 안 낸다고 하는 게 솔직한 상황일 것이다.
아마 회사에서 지금처럼 일을 대충대충 했으면, 바로 쫓겨났을 것 같다. 솔직하게는 그렇다.
그래도 일 년에 책 세 권을 쓰는 게 보통 일은 아니다, 이렇게 나는 스스로를 위로한다. 그렇지만 내가 나를 속일 수는 없다. 사실 하는 일이 별로 없기는 하다. 그렇다고 대오각성을 해서, 우리 집 어린이들에게 “자신의 일은 자신이 하자”, 그럴 수도 없는 일이다. 그냥 주어진 시간을 조금 더 즐기는 수밖에.
오늘은 아내가 지방 출장 중이다. 저녁 때 어린이들 밥 먹이는 게 가장 큰 일인데, 이것저것 정신이 없어서.. 그냥 동네 작은 식당에 가서 백반 먹었다. 매운 반찬이 너무 많아서, 내 몫으로 나온 고등어까지 둘째 줬다. 큰 애는 감기 기운이 있다. 보일러를 틀었는데, 그래도 춥다고 내가 밖에 나갈 때 입는 조끼 잠바까지 껴 입고 잔다. 둘째는 덥다고 웃통을 벗었다. 하이고.. 돌아비리.
이번 주에는 노벨경제학상 탄 책을 읽기로 했다. 도서관 책 끝나면, 다음 책 시작하기 전에 김탁환의 <불멸의 이순신>을 읽을 생각이다. 김탁환 소설은 뜨문뜨문 읽어서, 읽은 것도 있고, 안 읽은 것도 있다. <불멸의 이순신>은 드라마만 봤지, 책은 못 읽었다. 뭔가 했다, 그런 느낌을 받기 위해서는 역시 긴 걸 한 번 해야. 어렵고 곤란한 걸 한 번 해야 그래도 소소한 성취감이라도 생기는데, 역시 그럴 때에는 장편 소설만한 게 없다.
어영부영, 대충대충, 한 번도 그래본 적이 없었던 스타일로 사는 중이다. 되면 하고, 안 되면 말고.익숙하지 않은 방식인데, 이것도 몇 년 하니까, 이제 조금씩은 익숙해져 간다. 왜 이렇게 별 거 하지도 않았는데, 하루가 가지? 여기에는 아직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하루가 지났으면 뭐라도 했어야 하는데, 어린이들 보다 보면, 또 그냥 하루가 훌렁훌렁 간다. 여전히 이렇게 대충 사는 삶이 잘 적응이 되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