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10대용 경제학 책 쓰는 중인데, 악전고투 중이다. 가볍게 생각하고, 소프트 터치로 할 생각으로 시작한 건데.. 전주 등 고등학교 강연을 몇 번 가보고, 이렇게 가볍게 갈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대가 많이 바뀌었고, 10대들도 변화하였다. 당연한 얘기인지도 모른다.
그냥 난이도를 10대용으로 낮추는 것으로는 하나마나한 얘기들의 연속일 것이고.. 진짜로 우리 아들들이 본다는 생각으로, 그들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를 정리한다는 걸 넘어서는 컨셉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좀 더 고민을 많이 하는 중이다.
고민을 많이 한다고 꼭 더 좋은 책이 되거나, 더 잘 팔리는 것은 아니다. 속도감 있게, 가볍게 가는 게, 읽기에는 더 좋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게 더 전달성과 수용성이 높을 수도 있다. 꼭 무겁고, 밀도가 높은 책이 좋은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10대용 책에는 좀 더 많은 것을 갈아넣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래야 내 맘이 편하다. 다른 데서는 못 들어본 얘기, 그래도 한 번 읽어두면 10년 후 혹은 20년 후에라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인생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얘기들, 그런 걸 갈아넣기로 마음을 먹었다.
물론 마음을 그렇게 먹는다고, 이미 다 준비된 것처럼 모든 게 술술 풀리는 것은 아니다. 처음에 생각한 마지막 장면, 클라이막스, 이런 게 다 바뀌고.. 드리블해나가는 경로와 속도도 다 바뀌니까, 대가리 빡빡해진다. 오 마이 갓!
10대용 책이 어려운 게, 예전에도 그랬는지 모르지만, 이제는 남학생과 여학생의 감성이 너무 달라져서.. 그 사이를 간다는 것은 아무 것오 아닌 얘기를 한다는 것이고, 두 집단 모두에게 일정한 수용성을 만든다는 것은.. 경제 성장론에서 흔히 얘기하는 것 같은 ‘면도날 궤적’을 가는 것과 같아서, 표적에 도달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리고 쓰는 입장에서는, 그걸 미리 알기가 어렵다. 최선을 다 해서, 어지간해서는 책 안 읽는 집단에게 수용될 수 있는 것으로 만드는 노력을 할 뿐이다.
그래서.. 몇 줄 쓰기가 어렵다. 몇 줄 나가는 데, 진짜 영혼을 갈아넣는 것 같은 기분이다. 하이고, 원고 한 줄 쓰기가 이렇게 힘들었나? 그냥 팍 내 팽개치고, 차라리 이제 책은 그만 쓰겠다고 하고 싶은 심정이 몇 번이나 들었다. 내가 쓴 책이 50권 넘었나, 안 넘었나, 이젠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몇 년 전에는 세어본 적도 있었는데, 그뒤로는 세어보지도 않았다. 이만큼 썼는데, 뭘 또 쓰나, 그런 생각이 10대용 경제학 책 쓰면서 몇 번 들었다.
한 번 그런 생각이 들면, 며칠 동안 한 줄도 나가기 힘들다. 아니, 꼴도 보기 싫다. 원고 보면서 그만 쓰고 싶고, 꼴도 보기 싫다는 생각이 든 것은 진짜로 50권 가량 쓰면서 처음이다. 볼 생각이 전혀 없거나, 욕할 생각으로 무장된 집단을 위해서 책을 쓰는 것.. 딱 요런 심정이다. 게다가 남녀 차이가 가장 극단적으로 차이나는 집단이고. 한 발 한 발, 또랑으로 가득한 좁은 길을 걷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까, 시간도 많이 늦어졌다. 이런 게 그냥 빨리 하겠다고 마음 먹는다고 되는 일도 아니고. 주변 여건도 메롱이다. 이제부터는 아들들 여름 방학이다. 하이고, 지옥의 일정이다.
일상에서 추가로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어서, 한참 시즌 중이던 몇 주 전부터 야구를 안 보기 시작했다. 1996년에 학위 받고 한국에 돌아왔는데, 그 이후로는 처음이다. 야구 하루라도 안 보면 죽을 것 같았는데, 지금은 워낙 다른 거에 정신이 가 있어서, 그렇게까지 꼭 야구를 보고 싶지는 않다.
사람들은 책에 영혼을 갈아넣는다는 표현을 쓰기도 하는데, 나는 그렇게 갈아넣을 멀쩡한 영혼이 없고. 그대신 야구를 갈아넣는다.
하이고. 한 칸 한 칸, 새로운 논리를 만드는 게, 끝나지 않는 오딧세이의 항해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