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끼 고양이들의 시대

 

 

 

엄마 고양이가 얼마 전에 새끼를 또 낳았다.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일단은 무언가 태어났다는 게 그저 즐거울 뿐이다. 얼마나 살아남을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일단 세 마리가 있다. 노랑이, 반노랑 그리고 삼색. 녀석들이 얼마나 까탈스러운지 나도 아직 제대로 얼굴도 못 봤다. 인기척만 나오면 후다닥 도망가는데, 그렇다고 억지로 따라가고 싶지는 않고.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엄마랑 물을 먹고 있는 순간을 보았다.

 

영원히 붙잡고 싶은 순간, 그건 녀석들에게도 그럴지도 모르고, 나한테도 그럴지도 모른다. 나는 그렇게 모범적으로 살아온 사람도 아니고, 남한테도 내 삶이 모범이라고 그럴 생각은 추호도 없다. 아니, 누군가가 나같이 한다고 하면, 절대로 큰 일 난다고 그렇게 말하는 편이다.

 

내 삶은 고통이 많고, 외로움이 많은 삶이다. 남들이 내리지 않는 선택을 할 때마다 가혹한 대가가 뒤따른다. 나는 매번 그냥 감내하겠다고 하면서 살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음마저 편한 것은 아니다. 세 끼 밥이 입에 들어간다고 해서, 고통스러웠던 순간까지도 잊혀지는 건 아니다.

 

엄마 고양이와 새끼 고양이가 같이 앉아서 물을 마시는 걸 보면서, 그런 고통에 대해서 회상하거나 기억하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겠나, 그런 생각이 잠시 들었다. 고양이들에게 주는 물통에는 벌레들이 늘 빠져 죽어있다. 마침 오늘 플라스틱 물통을 깨끗하게 씻고 새로 물을 주었는데, 엄마 고양이와 새끼 고양이가 바로 물을 마시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행복을 잡으려고 하면, 그게 잡아지는 것이 아니다. 행복은 흘려 보내고, 순간을 흘려 보내고, 기억도 흘려 보내고. 집착, 그건 사랑도 아니고, 아무 것도 아니다. 10대 자녀들 교육에 목을 매면서 사교육으로, 특목고로, 그리고 그것이 행복을 만드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는 부모들에게 저 장면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건 사랑도 아니고 뭣도 아니고, 아무 것도 아니다.

 

고양이와 사람은 다르지 않은가?

 

큰 눈으로 보면, 잠시 머물러 있다 가는 생명이라는 점에서 다를 것 아무 것도 없다. 인간이나 고양이나 다 포유류, 열심히 젖을 만들어 새끼를 키우는 그런 같은 분류에 속하는 동물이다.

 

가을이 깊어간다. 내가 이들을 다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늘 지켜줄 수 없다. 그들에게는 그들 사이의 법칙이 있고, 그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이 있다. 내가 먹이를 구해준다고 해서, 내 고양이가 아니다. 자식도 마찬가지이다. 아니. 자신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행복은 언제나 순간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이 우리가 만질 수 있는 아름다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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