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삼촌, 굽은 나무가 선산지킨다고 하더니, 정말로 강하다...)

 

하룻밤 사이에 고양이 다섯 마리가 한꺼번에 고양이별로 떠나갔다.

 

아직 11월 중순밖에 안되었는데, 때이른 한파가 찾아왔다. 이번에 태어난 아기들, 아직 이름도 못 붙여주었는데, 한꺼번에 떠났다. 봄에 태어난 네 마리 중, 두 마리가 살아남았는데, 목둘레를 감은 흰털로 인기를 독차지하던 생협도 이번 추위를 못 이겼다.

 

영화사 고양이 둘은, 아마도 인근 아파트촌에서 도둑고양이 퇴치한다고 놓은 쥐약을 먹은 것 같다. 천만이는 그날 바로 고양이별로 갔다. 대박이는 며칠을 죽어라고 버티더니, 병원에 입원하면서 사투하다가 천만다행으로 살아 돌아왔다.

 

고양이들과의 삶은 늘 이렇게 이별을 눈 앞에 둔 안타까운 사랑과 같다.

 

 

(한꺼번에 자식을 넷이나 잃은 엄마 고양이, 표정이 애잔하다.)

 

몇 달 동안 정들면서 살아왔던 생협은 늘 그 녀석이 놀던 화단 한 구석에서 발견되었다. 혹시라도 영역 다툼 때문에 밀려난 거 아닌가, 그렇게 마음을 돌리려고 했는데, 결국 추위에 얼어죽은 시신으로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진 일인 듯 싶지만, 늘 자신들이 먹고 놀던 그 어디에선가 고양이들의 사체를 발견하고 처리할 때마다, 경건해진다. 태어난지 한 달도 안 되는 아기 고양이들은, 정말로 자는 듯이 누워 있었다.

 

삶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누군가를 돌본다는 것은, 그의 마지막 가는 길까지 같이 해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해마다 몇 마리의 고양이를 새로 만나고, 또 몇 마리의 고양이를 이렇게 내 손으로 떠나 보낸다.  

 

펫 로스라는 말이 있다. 반려동물들과 헤어짐은 그 자체로 심한 정신적 충격이기에 그런 말이 생긴 것이다. 물론 매번 떠나 보낼 때마다 가슴이 아프지만, 그냥 삶이라는 것은 그런 것 아니냐나는 그렇게 좀 신경을 무디게 하려고 한다. 물론 말은 그렇게 하지만, 정말로 마음이 무뎌지지는 않는다.

 

처음에 죽은 고양이 사체를 만질 때에는, 참 당혹스러웠다. 요즘은, 그래도 그 마지막 모습이라도 눈 속에 담아두려고 한다.

 

몸은 고양이별로 떠나고, 마음은 내 마음 속에 담아두려고 한다. 내 마음은 넓다. 내 마음 속에서라도 그 혼이 배불리 먹고, 신나게 뛰어놀 수 있으면 한다.

 

졸지에 자식 넷을 추위에 떠나 보낸 엄마 고양이의 모습이 애잔하다. 얼마나 끔찍하게 애지중지하던 녀석들인데, 그 마음이야 오죽하겠나.

 

간만에 살아남은 녀석들이 모여서, 어쨌든 사는 놈들은 또 살아야 하니까, 겨울을 준비하면서 몸에 살을 붙이기 시작한다.

 

지금 있는 아이들의 아빠인 검둥이가 간만에 집에 와서 개집 옆에 누워있는 걸 봤다. 녀석도 자식들이 고양이별로 떠난 걸 아나 보다. 어지간해서는 잘 보이지 않더니, 집에 왔다. 검둥이의 애인이면서, 바보 삼촌이 연애를 걸려고 했던 걸로 알고 있는 삼색 고양이 한 마리도 간만에 집에 와서 밥을 먹고 갔다. 살아남은 녀석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고양이별이여 영원하라!

 

그런 얘기가 하고 싶어졌다.

 

 

 

 

 

(내가 찍은 생협의 마지막 사진... 정말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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