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방에 잔다고 들어가더니 금방 나왔다. 방에 파리가 있다고. 파리채랑 에프킬라 둘 다 들고 들어갔다. 1분 내, 커튼 위에 붙은 파리, 첫 스윙에 사살. 결혼하고 처음으로 아내가, 존경, respect, 라고 말한다. 내가 파리, 모기, 이런 건 원래 잘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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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산다는 게, 사실 재미 없는 일들의 연속이다. 그 안에서 뭐라도 재밌는 걸 만들기 위해서 몸부림을 치지만, 사실 잘 안 된다. 나도 안다. 그래도 그 밋밋한 속에 뭐라도 스토리를 만들기 위해서 이것저것 일정을 짜고, 또 그런다.

2016년은 정말 최악의 한 해였다. 그리고 그 해가 최악이 될지는 나도 알고 있었다. 안다고 별 방법이 있는 건 아니다. 아기는 아팠고, 그냥 그런대로 한 해를 버텼다. 그 해에는 나만 힘든 게 아니었다. 나의 많은 동료들도 같이 힘들었다. 그리고 몇 년을 계속 해맸다.

어렵다고 이상하게 벗어나려고 하면 진짜 개미지옥처럼 될 것 같았다. 방송을 끊고, 외부에 글 쓰는 것도 쉬었다. 최소한의 일만 하고, 그냥 버텼다.

여전히 힘든 것 같지만 최악은 작년에 지난 것 같다. 몇 년간 차 없이 버티다가 지난 가을에 차를 샀다. 올해도 힘든 건 마찬가지다. 그래도 2016년처럼 힘들지는 않다. 올해는 신문 칼럼을 다시 쓰기 시작했다.

책은 별로 안 팔렸지만, 내 인생에 가장 중요한 책을 꼽으라면 이제는 50대 에세이가 될 것 같기는 하다. 2016년부터 바닥을 지나면서 생각을 많이 정리했는데, 실제로 삶이 많은 정리가 되었다. 1차 세계대전에 나오는 진지전 같은 그런 삶을 살았다.

그러면서 결심을 하나 한 게 있다. 이제는 보람이고 나발이고, 재밌는 것만 하겠다는. 나도 50이 넘었다. 재미 없는 걸 하면서 남은 인생을 낭비하고 싶지는 않다. 재미 없는 건 애들 돌보는 것 하나만으로도 이미 충분하다.

2.
내년까지는 출간 일정이 다 차 있다. 뭐, 많이 써서 다 찬 게 아니라, 애들 학교 보내면서 하는 거라서 최소한만 일정을 잡아 놨다. 그래도 그 이상 하지는 못할 것 같다.

부산에 한 달 정도 가야 하는데, 도저히 부산 체류할 시간을 못 뽑고 있다. 뭔 수가 나겠지.

나도 대충은 아는 게, 내 인생의 클라이막스가 대충 그 때쯤일 거라는 사실이다. 저자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도 그 정도 시점이 클라이막스일 것 같다. 지금 준비하는 일들이 그 시간쯤이면 클라이막스로 갈 것 같다.

그리고는 지금도 살살 사는데, 더 살살 살 생각이다.

그래서 그 해에는 공포 얘기를 하나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10대들을 위한 생태경제학을 '생태요괴전'으로 쓸만큼, 내가 그런 얘기를 좋아한다. 2년 전에 준비하던 게 하나 있기는 했는데, 몇 가지 이유로 그건 좀 어렵고.

지금으로서는 정해놓은 건 딱 하나, 소재다. 아파트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뭘 어떻게 할지는 아직 2년이나 남았으니까 천천히 생각해보려고 한다. 나는 이런 얘기를 워낙 좋아한다. 생각만 해도 재밌다.

내 인생의 클라이막스에서 내가 제일 재밌게 생각하는 걸 해보려는, 굉장히 간단한 발상이다.

아마 귀신으로는 청와대 정책실장 했던 사람 중 한 명을 생각하고 있다. 착해 보이고, 어수룩해 보이고, 선해 보이는데.. 대가리가 좀 나쁘고, 감성이 보통 사람들의 감성과는 좀 다르다. 아파트를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명박은 좀 스타일이 다르다. 그도 아파트를 겁나 짓고 팔고 한 사람이지만, 아파트를 아름답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는 아파트에 안 산다. 아, 이제는 감옥에 산다. cell..

이런 얘기를 굉장히 무섭게, 요괴 버전으로 해보고 싶어졌다.

3.
더 장기로 붙잡고 있는 주제가 하나 있다. '촌놈들의 제국주의'의 후속판 같은 것인데, 엄두가 안 나서 미루어만 두고 있는.

이걸 조금 더 쉽게 해서 일본에서 문고판으로 내보자는 제안이 몇 년 전에 있었다. 지나간 책을 붙잡고 있기에는 써야할 것들이 밀려서 아주 뒤로 미루어둔 것이다.

무슨 재단 같은 데에서 이름 좀 올려달라고 몇 달 전부터 엄청 졸라댄다. 책을 내기 시작하면서 외부 프로젝트는 안 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하여간 그렇기는 한데..

일본과 중국 연구를 하는데 꽤 많은 돈을 대준다는 것 같다. 그러면 더 뒤로 미루어두었던 애기를 좀 앞으로 당겨서?

그런 이유도 있지만, 역시 내 인생의 클라이막스에 가장 중요한 책을 쓰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약간의 실용적인 이유도. 돈을 진짜로 받는 건 아직 결정은 안 했다. 그래도 내 연구를 하는데, 돈 받고 하는 건 좀 존심 상한다.

어쨌든 그런 것과는 상관 없이, 내 인생의 마지막 책 정도로 생각했던 걸 좀 당겨서 후년에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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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수다방

낸글 2019. 7. 8. 21:22

경향신문에 쓰는 글은 '경제수다방'이라는 타이틀을 달기로 했다. 이제 와서 굳이 각을 잡는 것도 그렇고, 뭐 엄청나게 심각한 얘기를 할 생각도 없고. 신문 칼럼이, 기본은 6개월 정도인 걸로 알고 있다. 조금 더 연장하기도 하는데, 그렇게 길게 쓰지는 않는다. 가볍게 생각하고, 일상에서 닥치는 대로 좀 털어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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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부터 애들 태권도장 다니면서 '태권도를 배우는 목적'을 외우고 다니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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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다니던 회사를 그만둘지 고민하던 친구와 잠시 차 한 잔 했다. 지금까지는 그래도 좀 더 버텨보라고 했었다. 얼마 전에 기관장이 좀 대가리 나쁜 사람이 왔다. 방법 없다. 나도 잘 아는 사람이다. 대가리가 좀 나쁜데, 본인은 자기 대가리 나쁜지 전혀 모른다.

"내가 지내보니까, 인생에 남는 건 돈하고 기술 밖에 없는 것 같다, 야."

"그래, 근데 내가 모아둔 돈이 없쟎아?"

"그러게, 대부분 그렇지, 뭐."

50이 넘으면 돌아나오기 힘든 막다른 골목으로 가고 있다는 느낌을 종종 받는다.

"얼마 전에 생각해보니까, 내가 사지 멀쩡하게 움직일 수 있는 시간도 얼마 안 남은 것 같아."

친구가 말했다. 그렇겠지.. 한 때 우리 또래에서 글을 제일 잘 쓰고, 가장 스마트하다는 평을 받았던 친구다. 인생 후반부가 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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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동료와 간만에 점심을 먹었다. 정치에는 전혀 관심이 없냐고 물어본다.

"재미가 없어서요."

전에는 보람이 있으면 재미가 없어도 참고 일을 했다. 뭐, 돈은 별로 생각 안 했다. 지금도 돈 생각은 크게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50이 되면서 나도 크게 변했다. 그 변화에 대한 얘기를 50대 에세이로 한 번 정리를 했다. 보람이고 나발이고, 이제 재미 없는 일은 하기 싫다.

물론 세상에 재미만 있는 일은 없다. 아무리 재밌는 일도 재미 없는 순간들을 좀 참기는 해야 한다. 그렇지만 대체로 재미 없고 잠시만 재미 있는 일을, 재밌는 거야, 그렇게 나를 속일 수는 없다. 잠깐만 재미 없는 일하고, 잠깐만 재밌는 일하고, 뭘 고르겠냐? 아무리 재밌는 것만 골라도, 가끔은 재미 없는 순간을 참아야 한다. 그렇지만 늘 재미 없다가 잠깐만 재밌는 거, 50도 넘은 내 삶을 그렇게 보내고 싶지는 않다. 돈도 별로 신경 안 쓰는데, 재미도 없으면 뭐하러 그걸 하겠나 싶다. 보람이고 나발이고.

사람마다 좋아하는 게 다르고, 원하는 게 다르다. 나는 남들 앞에 서는 게 싫고, 경쟁해서 이겨야 하는 것도 싫고, 누구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게 아주 딱 질색이다. 원래 그렇다. 많은 사람을 겪어보니까 나는 참 싫어하는 일을 좋아, 아니 아주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정치는 그런 사람들이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방송도 그렇다. 카메라 앞에 서고 마이크 잡는 걸 체질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방송은 그런 사람들이 하는 것 같다. 나는 싫은데 누군가 해야 한다니까, 억지로 참고 했다.

명박, 근혜, 그 시절은 너무 괴로웠다. 뭘 해도 힘들고, 뭘 해도 재미가 없었다. 그래서 나도 새로운 정권을 위해서 도울 만큼 도왔다. 지나간 일이다. 그리고 그런 황당한 시기는 사실 다시 안 오면 좋겠다. 다들 좀 이상하게 살았다.

좋은 세상은 뭘까? 글쎄, 그 정확한 모습은 나도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재밌는 거 하고 살 수 있는 구조가 구현된 사회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래도 자기 사는 데 별 문제 없다고 느끼는 사회 아닐까? 충성하는 사람들 줄 세우고, 그런 사람들이 뭔가 공을 세우고, 이건 좀 아니다 싶다. 즉.. 현재 한국의 모습은 아직은 가야할 길이 먼 사회이기는 한.

먼 곳에 있는 목표와 현실의 가치를 조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별로 없다. 그냥 애 보면서, 조금이라도 재미 있는 일 조금씩 하는 것, 이 외에 내가 더 할 수 있는 건 없다.

사람들은 재밌는 일의 가치를 종종 무시한다. 그렇지만 우리의 다음 단계의 출발점은 바로 여기가 아닐까 싶다. 근혜와 함께, 증오와 저주로 만들던 시대는 끝이 났다. 뭔가 사랑하고, 뭔가 즐겁고 그래서 뭔가 재밌는, 그렇게 뭔가 만드는 시대가 다음 단계일 것 같다. 욕만 하는 거, 덜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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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시론..

낸글 2019. 7. 3.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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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부터 밀린 작은 글들 네 개를 연타로 썼다. 원고료 받고 써주는 글도 있고, 그냥 아는 후배 도와주느라고 쓴 글도 있고. 뭐, 이번에 쓴 글 원고료 다 모으면 애들 태권도 도장 한 달치 정도 되는 것 같다. 이거야 원.

올해 처음으로 섬의 날 기념일이 생긴다는 것 같다. 총선 공약에 도서 지역의 연안여객 공영제를 억지로 밀어넣은 기억이 나는데.. 이게 대선 공약까지 살아서 가고, 뭐 아직 죽은 의제는 아닌가 보다.

학술행사를 한다고 어떻게든 발표를 좀 해달라는데, 딱 애들 방학 때다. 여객선 공영제 문제 본지 너무 오래 되기도 하고, 시간도 어렵다. 나도 며칠만 좀 들여다볼 수 있으면 자료 업데이트 해서 해주고 싶은데, 물리적으로도 그렇고 도저히 무리다.

세월호와 관련한 '내릴 수 없는 배'에서 연안 여객 현황과 공영제 문제를 좀 정리했었는데, 아마도 자료로는 그 정도가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전부인 것 같다. 돌고 돌아, 결국 나한테 부탁이 오는데.. 안타깝기는 하지만, 나도 여력이 없다. 나도 한참 배에 대해서 연구하던 시절이 있었고, 해양연구원이 서울 근처에 있던 시절, 친한 연구원들 통해서 이리저리 좀 줏어듣기도 하고.

그 바람에 오세훈이 서울에 크루즈 들여온다고 할 때, 웃기지 마라.. 결국 선봉에 서게 되었다. 양화대교가 지금 저 꼬라지가 되는데, 나도 아주 관계가 없지는 않은. 크루즈 산업에 대한 보고서도 좀 쓰고 싶고, 특히 공영제 필요한 예산 계산 같은 것도 다시 해주고 싶기는 한데.. 애 보는 아빠가 하기에는 좀 벅차다.

나는 돈 안되는 연구도 좀 하고, 돈 안되는 글도 쓴다. 요즘은 그런 사람이 거의 없는 것 같다. 골프장 경제성 평가도 내가 해놓은 게 거의 마지막인 것 같고.

그냥 혼자 생각해보면, 돈 안되는 연구를 하는 사람이 많은 나라가 선진국이다. 관심 있거나 궁금하면 그냥 하면 되는데, 미래에 대한 불안 그리고 성공에 대한 강박증 같은 게 학자들의 호기심을 다 죽이는 것 같다. 옆에서 보면 정부에서 과제 주는 데에 쪼르르, 나래비를 서 있고, 조금만 그런 게 아니거나 공무원이 싫어할 얘기 같으면 근처에도 안 가려고 한다.

목포의 김대중 기념관 근처에서 섬의 날 행사가 열린다는데, 학술행사에 도저히 못 간다고 답하고 나서 마음이 무거웠다. 그럼 누구한테 부탁할까요? 글쎄요.. 예전에는 남 박사가 그런 거 좀 관심 가지고 있었는데, 요즘에도 보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어쨌든 아무도 관심 안 가질 거를 계속 하다보면, 비록 작은 분야지만 우리나라 최초, 우리나라의 최고 분석, 그런 별 영광스럽지는 않아도 의미는 있는 타이틀을 가지게 된다. 그것도 소소한 즐거움이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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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에 8월부터 글을 쓰기로 했다.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고 해서, 그냥 그렇게 하자고 했다. 둘째 병원에 입원하던 시절에는 칼럼이고 뭐고,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지금도 부담스러운 것은 마찬가지인데, 하자는데 굳이 싫다고까지 할 건 아니라서.

방송과 글이 있으면 대부분의 사람은 방송을 택할 것 같은데, 나는 글을 택하는 편이다. 특히 요즘은 더 그렇다. 둘째 입원하면서 삶을 다시 한 번 돌아봤는데, 그 때 방송은 접기로 했다. 남 앞에 서는 걸 별로 안 좋아하기도 하고, 방송은 신경이 너무 많이 쓰인다. 얼굴 알려지는 것도 불편하기도 하고.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취향이 다른 것 같다. 나는 혼자 있는 걸 더 좋아하고, 누가 날 모르는 게 더 좋다.

방송에 나가서 인기를 만들어야 책을 팔 수 있다고 많은 사람들이 조언해줬다. 그렇게 할 거면.. 책을 안 쓰고 만다. 사람들이 기가 차 했고, 세상 물정 모르고, 요즘의 트렌드를 모른다고 했다. 그거 그렇게 잘 알았으면, 원래 다니던 데 그냥 얌전히 붙어 있다가 본부장도 하고, 에 또.. 그렇게 한평생 잘 처묵고 살았을 거다.

둘째가 아프면서 내 삶에는 전체적인 구조조정이 한 번 있었다. 50대 에세이 쓰면서 정말 정리 많이 했다. 우선순위도 바뀌고. 나는 좀 더 솔직하고, 단순하고, 그리고 덜 인기 있는 방식으로 살기로 했다. 그게 오래 가는 방식이기도 하고, 더 튼튼한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책 낼 때마다 독자 티타임을 만들기로 했다. 뭐, 많은 사람들이 오는 건 아니지만, 나도 좀 얘기를 듣고.

세상을 위해서 많은 기여를 할 수도 없고, 그렇게 할 생각도 없다. 그렇지만 애들 보면서도 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은 좀 있을 수 있다. 나는 그거를 하면 된다. 못하면? 뭐, 할 수 없고.

60년대 후반부터 시작해서 경제 인류학 같은 데에서 want not. lack not이라는 표현이 유행한 적이 있다. 나는 그 말이 좋았다. 그래서 화폐 경제학 가지고 박사 논문 쓰려고 준비하다, 결국 논문 과정 1년 뒤로 미루고 그 얘기로 박사 논문 썼다. 원래 가치론 공부하려고 유학간 건데, 이래저래 유학 간 이유가 바뀌게 되었다.

요즘 내 생각이 그렇다. 개인이 want not, 이건 별 의미가 없다. wishiful thinking이든 want not이든, 미국식으로 분류하면 self help.. 소위 미국식 자기계발인데, 스스로 자기를 돕는다는 selp help, 좀 처절하다. 국가나 공동체는 못 믿어..

뭐, 한국은 그보다 더 한 상태이기는 하다. 가족 말고는 암 것도 못 믿어.

그래서 한국은 문명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무지막지 하게 많은 것을 원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나는 이게 좀 불편했다. 대충 하면 안 돼?

"난 딱히 원하는 게 없다"고 몇 년 전부터 말하기 시작했다. 주변에서 실성한 사람 보는 것처럼 하거나, 뭔가 거짓말을 한다고 느끼는 것 같았다. 제발 어디가서 그런 얘기 좀 하지 말라고 부탁하는 사람도 많았다. 굳이 재수 없게 보이기 싫어서 그냥 입을 다물었는데..

want not은 내 전기 박사 논문(프랑스 학제가 좀 독특하다)과 후기 박사 논문 두 개를 관통하는 주제다. 한 때 세계적인 콜로키움들의 주제이기도 하고, 철학 책들도 이 얘기를 많이 다루었고.

"난 별로 원하는 게 없어", 생각보다 이거 족보 있는 얘기다. 이걸 사람들에게 얘기하면서 내가 알게 된 건.. 엄청난 욕망이 있거나 아니면 있어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이다. 뭐, 그 강박이라도 내려놓으면 삶을 살아가야 하는 강력한 에너지가 사라진다는 두려움에 떠는 것 같다.

사실 말만 그렇게 하고, 나도 그냥 대부분의 시간을 그냥 죽지 않기 위해서 바둥대면서 살았던 것 같다. 승진 욕심은 별로 없어도, 뭘 하려면 더 많은 권한이 필요하고.. 뒤돌아보면 그 얘기가 그 얘기다.

노회찬 책에 글 하나를 쓰면서, 정말 친구를 몇 명이나 마음 속에 묻는 건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 삶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의미 있는 삶이라는 게 뭔가?

하여간 이런 마음들을 좀 담아서 경향신문 칼럼 대문을 만들어야 하는데, 아직은 딱히 이거다 싶은 게 없다. 좀 재수 없지만, 원트낫래크낫 이렇게 써보고 싶기도 하고. 의미는 있지만, 글자 배열이 왕재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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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원고가 너무 많이 들어온다. 나는 카피 라이터 같은 비싼 원고를 쓰는 사람이 아니라서, 어차피 나한테 오는 원고의 원고료는 살벌하게 박하다. 그래서 잘 안 쓰는데, 이렇게 알고 저렇게 알고, 모른 척하기가 좀 그런 원고들이 대부분이다.

그래도 너무 많다. 밀리지 않으려고 부지런히 털어내는 데도 와서 쌓이는 속도가 더 빠르다. 노회찬 책에 들어가는 원고, 안 써줄 수 없고. 386비판 책 해제, 안 써줄 수 없고. 경향신문에서 부탁하는 원고, 이것도 안 써줄 수 없고. 털어도 털어도 와서 쌓이는 속도가 더 빠르다.

물론 이런 글들 원고료가 좀 넉넉하면 편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쓸텐데, 전혀 그런 건 아니고. 속 마음으로는 내가 그냥 그 돈 드릴테니, 저한테 글 써달라고 하지 마세요 ㅠㅠ.

오늘부터 애들이 태권도장에 다니기 시작한다. 여름방학 때 큰 애를 데리고 있으려고 했는데, 그래도 깡자로 데리고 있는 건 너무 무리하다는 게 아내의 판단이다. 도장에서 차로 집근처까지 - 물론 그래도 꽤 멀다 - 오니까, 어린이집과 학교를 두 번씩 돌아다니는 부담은 좀 줄게 된다. 태권도 도장이 둘이 30만 원이다. 지금까지 구청에서 하는 발레 교실에 갔었는데, 거기는 한 달에 3만5천 원..

애 둘 태권도장 보내는 30만 원 근처에 가는 원고료는 없다. 내 노동의 가치가 태권도장 비용도 안 되나? 그런 생각하면 그냥 아무 것도 안 쓰고 싶다. 그래도 미안하다고 생각하는 데는 좀 낫다. 너 말고도 글 쓰고 싶다고 하는 사람 줄 섰어.. 이런 마음인 데가 더 많은 것 같다. 내참. 그럼 뭐하러 부탁은 했슈? 그런 말이 입 끝까지 나오려다가, 아참, 나는 약자지.

이번 주말을 보내면서, 머리도 더 숙이고 몸도 더 낮추고, 그렇게 살기로 크게 마음을 먹었다. 이것저것 속상한 일이 좀 생기기는 하는데, 짜증 낸다고 풀릴 일도 아니고, 뭐라고 한다고 나아질 것 같지도 않다. 그냥, 속 한 번 상할 때마다 머리를 더 한 번 숙이기로. 내가 잘 못했다, 내가 죽일 놈이다.. 그래, 내가 잘 못했네.

인상 쓰고, 성질 내봐야, 그래 나만 손해다.

확 열이 받으려고 하는 순간에 마음이 편해진 건, 예전에도 많이 얘기한 고장난 시계에 대한 비유다. 약간 틀리는 시계는, 사실 하루에 한 번도 맞는 일이 없다. 고장난 시계는, 하루에 한 번은 정확히 맞는다. 언제 맞는 줄 몰라서 그렇지.. 고장난 시계처럼 지내는 것,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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