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동료와 간만에 점심을 먹었다. 정치에는 전혀 관심이 없냐고 물어본다.

"재미가 없어서요."

전에는 보람이 있으면 재미가 없어도 참고 일을 했다. 뭐, 돈은 별로 생각 안 했다. 지금도 돈 생각은 크게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50이 되면서 나도 크게 변했다. 그 변화에 대한 얘기를 50대 에세이로 한 번 정리를 했다. 보람이고 나발이고, 이제 재미 없는 일은 하기 싫다.

물론 세상에 재미만 있는 일은 없다. 아무리 재밌는 일도 재미 없는 순간들을 좀 참기는 해야 한다. 그렇지만 대체로 재미 없고 잠시만 재미 있는 일을, 재밌는 거야, 그렇게 나를 속일 수는 없다. 잠깐만 재미 없는 일하고, 잠깐만 재밌는 일하고, 뭘 고르겠냐? 아무리 재밌는 것만 골라도, 가끔은 재미 없는 순간을 참아야 한다. 그렇지만 늘 재미 없다가 잠깐만 재밌는 거, 50도 넘은 내 삶을 그렇게 보내고 싶지는 않다. 돈도 별로 신경 안 쓰는데, 재미도 없으면 뭐하러 그걸 하겠나 싶다. 보람이고 나발이고.

사람마다 좋아하는 게 다르고, 원하는 게 다르다. 나는 남들 앞에 서는 게 싫고, 경쟁해서 이겨야 하는 것도 싫고, 누구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게 아주 딱 질색이다. 원래 그렇다. 많은 사람을 겪어보니까 나는 참 싫어하는 일을 좋아, 아니 아주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정치는 그런 사람들이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방송도 그렇다. 카메라 앞에 서고 마이크 잡는 걸 체질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방송은 그런 사람들이 하는 것 같다. 나는 싫은데 누군가 해야 한다니까, 억지로 참고 했다.

명박, 근혜, 그 시절은 너무 괴로웠다. 뭘 해도 힘들고, 뭘 해도 재미가 없었다. 그래서 나도 새로운 정권을 위해서 도울 만큼 도왔다. 지나간 일이다. 그리고 그런 황당한 시기는 사실 다시 안 오면 좋겠다. 다들 좀 이상하게 살았다.

좋은 세상은 뭘까? 글쎄, 그 정확한 모습은 나도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재밌는 거 하고 살 수 있는 구조가 구현된 사회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래도 자기 사는 데 별 문제 없다고 느끼는 사회 아닐까? 충성하는 사람들 줄 세우고, 그런 사람들이 뭔가 공을 세우고, 이건 좀 아니다 싶다. 즉.. 현재 한국의 모습은 아직은 가야할 길이 먼 사회이기는 한.

먼 곳에 있는 목표와 현실의 가치를 조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별로 없다. 그냥 애 보면서, 조금이라도 재미 있는 일 조금씩 하는 것, 이 외에 내가 더 할 수 있는 건 없다.

사람들은 재밌는 일의 가치를 종종 무시한다. 그렇지만 우리의 다음 단계의 출발점은 바로 여기가 아닐까 싶다. 근혜와 함께, 증오와 저주로 만들던 시대는 끝이 났다. 뭔가 사랑하고, 뭔가 즐겁고 그래서 뭔가 재밌는, 그렇게 뭔가 만드는 시대가 다음 단계일 것 같다. 욕만 하는 거, 덜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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