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에 8월부터 글을 쓰기로 했다.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고 해서, 그냥 그렇게 하자고 했다. 둘째 병원에 입원하던 시절에는 칼럼이고 뭐고,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지금도 부담스러운 것은 마찬가지인데, 하자는데 굳이 싫다고까지 할 건 아니라서.

방송과 글이 있으면 대부분의 사람은 방송을 택할 것 같은데, 나는 글을 택하는 편이다. 특히 요즘은 더 그렇다. 둘째 입원하면서 삶을 다시 한 번 돌아봤는데, 그 때 방송은 접기로 했다. 남 앞에 서는 걸 별로 안 좋아하기도 하고, 방송은 신경이 너무 많이 쓰인다. 얼굴 알려지는 것도 불편하기도 하고.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취향이 다른 것 같다. 나는 혼자 있는 걸 더 좋아하고, 누가 날 모르는 게 더 좋다.

방송에 나가서 인기를 만들어야 책을 팔 수 있다고 많은 사람들이 조언해줬다. 그렇게 할 거면.. 책을 안 쓰고 만다. 사람들이 기가 차 했고, 세상 물정 모르고, 요즘의 트렌드를 모른다고 했다. 그거 그렇게 잘 알았으면, 원래 다니던 데 그냥 얌전히 붙어 있다가 본부장도 하고, 에 또.. 그렇게 한평생 잘 처묵고 살았을 거다.

둘째가 아프면서 내 삶에는 전체적인 구조조정이 한 번 있었다. 50대 에세이 쓰면서 정말 정리 많이 했다. 우선순위도 바뀌고. 나는 좀 더 솔직하고, 단순하고, 그리고 덜 인기 있는 방식으로 살기로 했다. 그게 오래 가는 방식이기도 하고, 더 튼튼한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책 낼 때마다 독자 티타임을 만들기로 했다. 뭐, 많은 사람들이 오는 건 아니지만, 나도 좀 얘기를 듣고.

세상을 위해서 많은 기여를 할 수도 없고, 그렇게 할 생각도 없다. 그렇지만 애들 보면서도 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은 좀 있을 수 있다. 나는 그거를 하면 된다. 못하면? 뭐, 할 수 없고.

60년대 후반부터 시작해서 경제 인류학 같은 데에서 want not. lack not이라는 표현이 유행한 적이 있다. 나는 그 말이 좋았다. 그래서 화폐 경제학 가지고 박사 논문 쓰려고 준비하다, 결국 논문 과정 1년 뒤로 미루고 그 얘기로 박사 논문 썼다. 원래 가치론 공부하려고 유학간 건데, 이래저래 유학 간 이유가 바뀌게 되었다.

요즘 내 생각이 그렇다. 개인이 want not, 이건 별 의미가 없다. wishiful thinking이든 want not이든, 미국식으로 분류하면 self help.. 소위 미국식 자기계발인데, 스스로 자기를 돕는다는 selp help, 좀 처절하다. 국가나 공동체는 못 믿어..

뭐, 한국은 그보다 더 한 상태이기는 하다. 가족 말고는 암 것도 못 믿어.

그래서 한국은 문명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무지막지 하게 많은 것을 원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나는 이게 좀 불편했다. 대충 하면 안 돼?

"난 딱히 원하는 게 없다"고 몇 년 전부터 말하기 시작했다. 주변에서 실성한 사람 보는 것처럼 하거나, 뭔가 거짓말을 한다고 느끼는 것 같았다. 제발 어디가서 그런 얘기 좀 하지 말라고 부탁하는 사람도 많았다. 굳이 재수 없게 보이기 싫어서 그냥 입을 다물었는데..

want not은 내 전기 박사 논문(프랑스 학제가 좀 독특하다)과 후기 박사 논문 두 개를 관통하는 주제다. 한 때 세계적인 콜로키움들의 주제이기도 하고, 철학 책들도 이 얘기를 많이 다루었고.

"난 별로 원하는 게 없어", 생각보다 이거 족보 있는 얘기다. 이걸 사람들에게 얘기하면서 내가 알게 된 건.. 엄청난 욕망이 있거나 아니면 있어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이다. 뭐, 그 강박이라도 내려놓으면 삶을 살아가야 하는 강력한 에너지가 사라진다는 두려움에 떠는 것 같다.

사실 말만 그렇게 하고, 나도 그냥 대부분의 시간을 그냥 죽지 않기 위해서 바둥대면서 살았던 것 같다. 승진 욕심은 별로 없어도, 뭘 하려면 더 많은 권한이 필요하고.. 뒤돌아보면 그 얘기가 그 얘기다.

노회찬 책에 글 하나를 쓰면서, 정말 친구를 몇 명이나 마음 속에 묻는 건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 삶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의미 있는 삶이라는 게 뭔가?

하여간 이런 마음들을 좀 담아서 경향신문 칼럼 대문을 만들어야 하는데, 아직은 딱히 이거다 싶은 게 없다. 좀 재수 없지만, 원트낫래크낫 이렇게 써보고 싶기도 하고. 의미는 있지만, 글자 배열이 왕재수다.

'책에 대한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재밌는 거..  (0) 2019.07.05
소소한 즐거움  (0) 2019.07.02
원고 절제..  (0) 2019.07.01
무짜증 인생  (2) 2019.06.25
50권 끝나면..  (5) 2019.06.18
Posted by retir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