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부터 둘째가 어린이용 카시트의 어깨 걸이가 아프다고, 고정을 못 시키게 한다. 둘째는 어렸을 때 많이 아파서 키가 그렇게 빨리 크지는 않았다.. 지금 쓰는 것도 부스터용이라서, 아주 어린 애들 쓰는 카시트에서 한 번 넘어온 것이기는 한데.
시간이 흐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카시트 두 개 놓고 있던 시절이 불과 1년 전인데, 그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날 정도다. 당시 벤츠 b 클래스 뒷자리에 아이들 쓰는 부스터가 내장되어 있다고, 그걸로 차를 바꾸면 좀 편해질 거라고 권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잠시 고민을 했었는데..
솔직히 말하면.. 벤츠 탄다는 얘기 듣고 싶지가 않았다. 뭐, 그럴 정도로 넉넉하지도 않고.
뒤돌아 생각해보면, 애들 기저귀 둘 다 하고 있을 때, 그 때가 제일 힘들었던 것 같다. 기저귀 끝나고 나면, 아이들 둘과 셋이서 남자 화장실에서.. 어쩌면 인생에 딱 한 때 있을 진풍경이라는 생각도. 애들 다 크면, 언제 화장실 변기 앞에서 같이 서 있을 때가 있을까 싶다.
태권도를 4시 시간대로 바꿨더니, 이제 좀 더 일찍 오기는 하는데, 정말 집 근처까지 데려다 준다. 큰 애가 열쇠만 주면 혼자 집에 올 수 있다고 한다. 문득.. 눈물 날 뻔 했다. 동생 데리고 오게한다는데.
물론 나는 그 나이에 열쇠 들고 혼자 학교 갔다 오기는 했지만.. 그 시절에는 다 그랬다. 그렇기는 하지만, 동생들이 있어서 집에는 식모가 있던 시절이다.
애들 지켜보고 있으면, 역사 같이 무거운 건 잘 모르지만,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잘 느껴진다.
지나간 아픈 일 보다는, 아직 해보지 않은 재밌는 일에 대해서 상상하는 시간을 더 늘리고 싶다. "너, 왜 그랬니", 그렇게 남을 힐난하는 시간을 줄이고, "이런 거 재밌지 않겠니?", 이런 얘기하는 시간을 더 늘이고 싶다.
큰 애 개학 첫 등교날, 교과서 가방이 어마무시하게 무거웠다. 게다가 둘째 어린이집에서는 오늘 현장학습 가는 날, 어린이 합창 보러 간단다. 맞춰 가야하는 시간이 있는 날. 아내는 큰 맘 먹고 걸어서 큰 애 학교까지 데려다 주려고 했지만.. 아침에 어찌어찌 하다보니 늦어져서, 결국 전부 데려다 주는 셔틀을 한 번 운행.
겨울방학까지 이와 비슷한 패턴으로 살게 되고, 겨울방학이 되면 잠시.. 죽어난다.
책을 쓸 때, 그 배경이 되는 지역을 몇 번이고 방문하고, 간 데 또 가고, 또 가고 그러면서 느낌을 잡아간다. 그냥 텍스트만 가지고 있으면, 감정이 만들어지지가 않는다.
10대에 대한 책 두 권을 준비하면서, 작년, 올해, 어지간한 고등학교 강연 요청은 다 간 게.. 그래도 좀 옆에서 보고, 질문도 받고, 질문도 해 보고, 그러면 나중에 감정에 좀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원래는 올 겨울방학은 부산에 한 달 정도 큰 애 데리고 가서 지내려고 했다. 그런데 여름방학 지내보니까, 이게 택도 없는 얘기다. 나 혼자 큰 애 데리고 부산에서? 우와. 택도 없다.
최근에 김해 등 부산 근처에서 오는 부탁이면, 어지간하면 다 가려고 하는 게.. 몰아서 가기 어려우면 토막토막, 작게라도 가보려고. 부산에서 살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집중적으로 가면 점점 더 공간이 눈에 돌아온다.
"니 책은 누가 사주는지 아냐?"
어떤 고매하신 분께서, 요렇게 댓글을 다셨다. 잠시 댓글을 보다가, 순간 깨달음이 왔다.
나중에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 지금까지 누가 사라고 책 쓴 적은 없다.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마음이 움직인 것에 대해서 생각을 정리한 것이다. 좀 더 많은 사람이 보면 좋겠다는, 당연한 그런 작은 희망 정도가 있지만..
생각해보니까, 팔리기 위해서 책 쓴 적이 없다는..
앞으로도 그럴려고 한다. 언젠가는 나도 팔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팔리기 좋은 책을 쓸 날이 올지도 모르겠지만.
아마 그 날이 오면, 책 쓰는 일은 작파할 것 같다. 약간의 존심이다. 의미가 있어서 쓰는 거지, 팔기 위해서 쓰는 거라면, 책 쓸 필요 없다.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그 정도 자세는 앞으로도 지킬 것 같다.
하여간 올해부터 내년까지, 부산 근처에 가능하면 자주 가려고 한다.
김필 등이 부른 '굳세어라 금순아'를 들으면서. 난 잘 이해하기 어려운 감성이라는 생각이 듣기는 했다. 그래도 수십 번 들었다.
부산 보수들의 감성을 좀 이해해보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서울 보수는 좀 알 것 같다. 서울 빽구두 아저씨들에 대한 기억 같은 게 좀 있다. 그렇지만 부산의 보수들은, 정말로 잘 모르겠다.
초등학교 1학년인 큰 애 초등학교 여름방학이 내일이면 끝난다. 고로.. 비상 상황으로 버티던 여름방학이 드디어 끝난다는. 우와. 초등학교 1학년이면 교사나 공무원인 엄마들이 육아휴직 한다는 얘기를 듣기는 했는데, 막상 여름방학 겪어보니 이게 진짜 보통 일이 아닌.
시간으로는 한 달이지만, 한 달 전 상황이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어마무시한 일이었다. 애들 둘 다 기저귀 하고 있을 때 이후로, 이렇게 힘든 일은 간만에.
어떻게 돌아보면 지난 한 달간은 개인적으로도 격동의 기간이었던 것 같다. 주변에 별의별 일이 다 생겼고. 평소 같으면 여러 사람 만나고, 술도 마시고, 상의도 하고 그랬을 것 같은데. 아침에 큰 애 돌봄교실 데리고 가고, 둘째 어린이집 가고, 태권도장 보내고, 수영장 데리고 가고, 저녁 때 데리고 오고. 가끔은 아내 출장 갈 때 애들 밥 해 먹이고. 뭐, 방법이 없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이적이 오래된 노래 하나를 다시 불렀었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야말로 지나간 것에 관한 얘기일 뿐이다.
시민단체에서 뭔가 좀 하면 좋겠다는 얘기들이 있었는데, 그 때마다 대답하게 되는 답변이..
"내 코가 석자라서."
진짜 내 코가 석자다. 방학 특강으로 큰 애 수영장 가는 걸 부러워하는 둘째에게, 겨울에는 같이 데리고 간다고 약속했다. 겨울부터는 둘째도 수영장 갈 나이가 되는 것 같다.
아직도 3년 반을 이러고 살아야 한다. 그 동안에 내 인생에도 많은 변화가 올 것 같다. 변화라는 게, 별 게 아닌 듯 싶다. 다른 사람들이 어디론가 달려가고 있는데, 그냥 이 자리에 있는 게, 그것도 변화라면 변화다.
아주 좋아하는 얘기 중의 하나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레드 퀸 의 딜레마다. 그 나라에서는 죽어라고 달려야 제 자리에 서 있게 되는.
아이 보는 게 그런 거랑 비슷하다. 죽어라고 하는데, 그래봐야 제 자리다. 제 자리에 그냥 가만히 있는 것도 엄청 열심히 해야 한다. 안 그러면, 아이가 다치거나 상처 받거나, 혹은 누군가를 물어서 결국 학교에 사과하러 가게 되는. 그냥 매일매일의 평범한 일상을 위해서도 뭔가를 죽어라고 해야 하는.
내가 제 자리에서라도 버티기를 위해서 죽어라고 삽질 하는 동안에, 주변에서는 승진하고, 어딘가 높은 데로 가고, 또 그런 높은 데로 못 갔다고 성질 내고 술 처먹고.. 워낙 자주 보게 되다보니까, 그런 게 인생이라는 생각이 저절로 드는.
어쨌든 제 자리에 가만히 있기 위해서 죽어라고 뛰었던 큰 애 여름방학이 오늘로 끝이다. 그 시간을 어떻게 버텼는지, 아득하다..
다이나믹 코리아라고 하지만, 진짜 한국의 변화는 그 속도를 가늠하기 어렵다. 김상곤 교육 부총리가 입시 제도 문제 손 보다가, 결국 정치 인생을 내려놓게 되었다. 경기 교육감으로 한 시대를 만들었던 사람이지만, 그도 이 흐름을 이겨내지는 못했다.
지금 우리는 김상곤이 특별히 은퇴 선언 같은 것도 해보지 못하고 막후로 내려가게 된 바로 그 자리에 서 있는 것 같다. 그 흐름은 점점 더 거세진다.
집안 일은 잘 몰라요, 이런 아빠의 시대가 끝나간다. 잘 몰랐던 게 맞을 수도 있지만, 자녀 교육의 문제가 이제는 국정 과제 1번이 되어버렸다. 정권의 '인싸'들은 사법 개혁이 국정 과제 1번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람들은 그런 건 잘 모르겠고, 자녀 교육과 취업 과정의 투명성이 국정 과제 1번이라고 생각하는 시대를 살아간다.
그것은 개인의 문제 아니냐..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바닥부터 기었던 정치인 김상곤도 넘어서지 못한 거대한 흐름이다. 사법 개혁이 중요하냐, 교육 개혁이 중요하냐, 아마 많은 사람들은 교육 개혁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할 것 같다.
조국,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 한 평생 산다는 게 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냥 세 끼 밥 먹고 사는데 불편한 거 없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산다. 애들은 그냥 집에서 가까운 국공립 그냥 보내고. 그나마도 국공립 어린이집 가느라고, 큰 애는 몇 년이나 기다렸던. 문득 나만 이러고 사나 싶기도 하고.
조국은 조국 인생 사는 거고, 나는 내 인생 사는 거고. 이렇게 생각한지 몇 년 된다. 각자의 인생관이 있는 거고, 각자의 도덕이 있는 거고. 내 생각을 누군가에게 강요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렇지만 고대 학생들이 딸 입학과 관련해서 집회를 시작하고.. 학교에서는 부정 입학이 있으면 입학 취소하겠다고 하고.
개인의 인생관과 도덕관으로 간주하기에는 이미 사회적 현상이 되어버렸다. 어쩔 거냐? 엘리트들의 그런 인생관과 도덕관을 이 사회가 싫다는데.
공직의 기준이 점점 더 높아지는 것.. 누군가에게는 불편할지 몰라도, 사회는 그렇게 가는 게 맞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아주 억울하겠지만, 속도전이나 전격전으로 그냥 버티고 가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린 것 같다.
그럼 누가 사법 개혁을 할 것이냐?
그건, 다음 문제 아닌가 싶다. 우리나라에 그렇게 괜찮은 검사나 변호사가 없을까? 법대가 몇 개고, 로스쿨이 몇 개인데, 그 중에 진짜 괜찮은 사람이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