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지방 출장 갔던 아내가 저녁 시간에 맞춰 돌아오게 되었다. 뭐 준비한 게 따로 없어서 꽁치 통조림 넣고 꽁치찌게 끓였다. 우리 집 꽁치찌게는 두 캔을 넣어야 한다. 안 그러면 우리 집 어린이들끼리 싸움 난다. 

요령은 별 거 없고, 고추장은 딱 한 숫가락만. 좀 더 맵게 하고 싶은데, 매운 기분만 내야지, 진짜로 맵게 하면 어린이들 못 먹고. 그러면 간이 안 맞는데, 까나리 액젓 조금 넣어서 약간만 보충. 큰 애는 조금만 짜도 뭐라고 한다. 

어린이들은 코 박고 먹었다. 어제 아침에는 볶음밥을 해줬다. 볶음밥 뒤에 후식으로 파인애플 짤라줬는데, 큰 애가 왜 볶음밥에 파인애플 안 넣어줬냐고. 미안해, 아빠가 시간이 없어서. 

인생에 남을 진할 겨울방학이 이제 내일이면 끝난다. 둘째가 돌봄 교실 신청서를 까먹고 학교에 안 냈다. 게다가 봄방학이랑 겨울방학이 통합된 길고 긴 첫 겨울방학. 생전 그런 적이 없었는데. 요일이 다 헤갈릴 정도로 비몽사몽, 그렇게 지낸 것 같다. 

자식 학폭 문제로 검사 한 명이 피곤하게 되었다. 

아마 경찰들이 경찰청장에게 귀뜸을 해주지 않은 게 사건의 중요 포인트 아닐까 한다. “물어보셨어요?”, 아마 이랬을 것 같다. 검사들이 경찰들 보는 눈이, 진짜 불가촉 천민 보듯했던 것 같다. “지들이 무슨 수사를 한다고 그래.” 검사들의 특권 의식 같은 게 좀 쩐다. 

경찰을 천민 보듯이 했던 검사들이 국민들을 어떻게 볼까? 몇 해 전 교육부 국장이 “국민들은 개•돼지”라고 해서 난리가 난 적이 있었다. 사실 검사 눈에는 평범한 사람들이 그렇게 보이지 않았겠나 싶다. 물론 모든 검사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그야말로 특수한 일을 하던 사람에게는, 일반 국민들이 어떻게 보였겠나 싶다. 

욕하는 건 쉽다. 이제 자식교육이 관련된 거라서, 나도 우리 집 어린이들을 돌아보게 된다. 큰 애는 지난 가을에 태권도장에서 손가락욕을 해서 검은 띄를 뺏기고, 흰 띄 매고 다녔다. 큰 애는 태권도 그만하고 싶다고 했는데, 그래도 그렇게 해서라도 고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사실 돌아보면 태권도 관장을 나중에 은인이라고 생각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학원에서 누가 혼내겠나. 어린이들 가는 태권도장은 이래저래 애들 키우면서 고마운 시설이기는 했다. 코로나 한참 때 버스 운행도 쉬고, 사범들도 많이 그만두었다. 혹시라도 도움 될까, 두 어린이 학원비 몇 달치 미리 냈다. 특별한 건 아니고, 문 닫으면 나만 골통 먹으니까. 

내가 관찰한 것에 의하면 남자 아이들은 ‘성숙’이 좀 늦게 온다. 어쩌면 아예 안 올지도 모른다. 그래도 한참 키 크고, 덩치 커지기 시작하면, 힘 싸움하기 너무 좋아한다. 상어가 몸 길이로 자기들끼리 서열을 만든다고 하더니, 그게 딱 맞다. 둘째는 태어날 때부터 아팠고, 요즘도 1년에 한 번씩은 연례행사처럼 호흡기 질환으로 입원을 한다. 큰 애는 아픈 데가 없고, 키도 크다. 그렇다고 딱 모범생, 그런 건 아니다. 매너도 별로 없는 편이다. 그래서 맨날 혼난다. ‘상냥’, 그게 내가 큰 애한테 탑재시켜주고 싶은 개념이지만, 어렵다. 일단 주먹부터, 그런 스타일이다. 그래서 더 신경을 많이 쓴다. 

강남 근처에 살았던 적이 있다. 그때 가장 싫었던 것이 “남들도 다 이렇게 해”, 그런 얘기를 듣는 것이었다. 나는 좌파로 살아서 그런지, 딱 표적 한 명이 걸리면 그건 늘 나일 것인 형편이었다. 남들한테는 아무 문제도 아닌 것이 나에게는 문제다. 남들도 다 그렇게 하지만, 나는 곤란한, 그런 인생을 살았다. 욕 먹을 일 거의 안 하려고 하는데, 그랬더니 “감정 기복이 심하다”, “정서적으로 불안정하다”, 이런 얘기들이 따라 붙었다. 그래, 같이 술 처먹은 내가 죄다.. 그 시기를 지난 뒤로는 남들하고는 거의 밥도 안 먹는 삶을 살게 되었다. 술자리도 엄청 가린다. 나도 나를 지켜야 하니까. 그때 습관이 되어서 그런지, 무작위로 많은 사람들하고 술 마시는 자리는 거의 안 간다. 

“남들도 다 이렇게 해”, 이게 나한테는 힘든 일이었다. 나는 원칙대로 살고 싶었다. 그래서 결국에는 아이를 낳을 생각을 하면서 강남을 떠났다. 원칙은 지킨다고 해도 잘 지키기 어렵다. 세상에 부조리는 많다. 그렇지만 자식들에게는 조금은 더 원칙적인 삶이 몸에 배어 있는 인생을 살고 싶게 해주고 싶었다. 

자식 키우기는 늘 어렵다. 난 좀 답답할 정도로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원칙을 지키면서 살려고 노력했다. 그래도 창피하고 지우고 싶은 일들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내가 지키려고 하는 건, 대단한 건 아니고 글로벌 스탠다드 정도다. “남들도 다 이렇게 해”, 그럴 때면 속으로는 “아니, 니들만 그렇게, 전세계에 이렇게 하는 사람들 거의 없어”, 그런 얘기를 해주고 싶었다. 

검사를 비롯해 특권층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 너무 오랫동안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살았던 것 같다. 한국은 점점 더 그런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사회로 바뀌고 있다. 일종의 선진국 현상이 아닐까 한다. 국민들은 선진국 국민으로 바뀌어 가는데, 특권층은 갈라파코스처럼 자신들만의 세계에서 세상 바뀌는 걸 모르는 것 같다. 

'아이들 메모'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간만에 야옹구..  (1) 2023.04.17
둘째는 한 고비 넘어가고..  (1) 2023.04.14
광어회 저녁..  (3) 2023.01.03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4) 2022.12.24
까다로운 고양이..  (3) 2022.12.07
Posted by retired
,

초등학생의 미적분 선행학습. 준비하던 글이 몇 개 있었는데, 그게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 이루어놓고 일단 이거부터 썼다. 우리는 대체적으로 너무 무감하다. tv에서 드라마 볼 때 잠시, 저거 문제지, 그러고 금방 잊어버린다. 

인권 얘기 맨날 하면서 정작 아동 인권에 대해서는 생각도 해보지 않았던 사람들을 몇 번 만난 적이 있었다. 언제까지 우리가 이러구 살아야 하나 싶다.. 

울산에 산 하나 산 게 중요한가, 미적분 푸는 초등학생 문제가 중한가, 그런 생각도 잠시 들었다. 그야말로 뭣이 중헌디!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302270300055

 

[우석훈의 경제수다방] 초등학생의 미적분 선행학습

천재는 33세 근처에 죽는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모차르트는 35세에 사망했고, 슈베르트는 ...

m.khan.co.kr

 

Posted by retired
,

소주 가격..

잠시 생각을 2023. 2. 26. 22:47

소주 가격을 목숨 걸고 낮춰야 한다고 자문하는 경제학자들 얘기를 들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소주가 꼭 이렇게 국력을 투입해서 낮추어야 하는 필수재화인가? 비싸지면 소비를 줄여야 하는 게 인플레이션에 임하는 기본 방식인데, 관세까지 움직여가면서 낮은 가격을 꼭 소주에 대해서 유지해야 하는가? 

그렇다고 소주가 국내 농산물과 엄청나게 관련되어서 관련 산업의 붕괴를 얘기할 그런 제조 공정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영유아들의 분유와 서민의 소주를 같은 위치에 놓고 정책을 설계하는 게 맞나 싶다. 소주 소비가 줄면, 부수적으로 성인병 관련 지출도 줄고, 건보 지출도 줄기는 할 것 같다. 

국가가 목숨 걸고 소주 가격을 지키는 게 맞나 싶다.

https://v.daum.net/v/20230226152400965?fbclid=IwAR29rYxqayThhaxjSEWPSuxml5-ljVtky-RAYJoM2JRklPWrCLfKAr7meo8 

 

“국밥에 소주 한잔도 못한다”...민심 들끓자 정부 실태조사

정부가 잇딴 원가 인상에 서민 술값 인상을 막기 위해 주류업계에 대한 실태조사에 나섰다. 26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기재부와 국세청은 주류업계가 원재료인 타피오카 가격 상승 등을 이유로

v.daum.net

 

'잠시 생각을'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공안 정국 거쳐 '공포 정국'으로  (7) 2023.05.10
노키즈 존..  (5) 2023.05.05
사의재 유감  (12) 2023.01.29
난방비에 대하여..  (8) 2023.01.25
유승민 건에 대한 단상..  (3) 2023.01.02
Posted by retired
,

검사들의 시대다. 

현대 시절 이계안에게 들은 얘기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게, 막 건국하고 가난하던 시절에 인재들이 주로 군대로 많이 가서 군에 사람들이 가장 많았을 것이라고. 

그렇게 군부 정권의 시대가 형성되었고, 꽤 길게 갔다. 

군인들의 뒤를 이었던 것은 변호사들의 시대가 아니었나 싶다. 공주님의 시대 앞뒤로 변호사들이 대통령이 되었다. 극우부터 극좌까지, 하여간 변호사들이 쫙 깔렸다. 

ceo들의 시대가 한 번쯤 올 것 같았는데, mb는 너무 못했다. mb는 바보는 아니다. 뭐가 돈 되는지 눈이 밝은 사람이었고, 돈이 정말 안 되는 것을 골라내는 데에는 탁월한 재주가 있던 것 같았다. 아마 그 옆에 있던 이재오가 조금만 더 아는 게 많아서, 한반도 대운하 같은 데 집착하지 않았더라면 ceo 정권은 좀 다르게 전개될 가능성도 있었을 것 같다. 결국 mb는 감옥 갔다. 

아마 mb가 좀 더 성과가 있었더라면 안철수에게도 흐름상 기회가 오지 않았을까 싶은데, mb가 개판치고 난 뒷끝이라 그에게는 기회가 오지 않았다. 아마도 오랫동안 ceo 출신에게는 대규모 기회가 오지는 않을 것 같다. mb가 남긴 상처가 오래 간다. 

운동권의 시대 혹은 활동가의 시대가 있었다고 할 수도 있고, 없었다고 할 수도 있다. 아마 문재인이 조금만 더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다면 역사의 흐름이 좀 달라질 수도 있었을 것 같다. 자세와 품격으로는 최고의 인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도 너무 법에 기대어서 통치하려고 했던 것 같다. 심성이 좋다는 것과 문제를 풀 수 있다는 것은 좀 다르다. 

그렇게 짧았던 운동권의 시대는 끝났다. 그 시대가 이어지지 않는 것은, 청년들과 이 흐름이 극상을 형성하면서 그렇게 된 것 아닌가 싶다. 논리적인 것은 몰라도 감정과 문화 면에서 극과 극이 되었다. 20대에게 매력을 주지 못하는 집단이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통치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바야흐로, 검사들의 시대가 되었다. 이래저래 여러가지 회의에 몇 년 동안 계속해서 가고 있는데, 최근 몇 년처럼 검사와 경찰들을 자문회의 같은 데에서 많이 만난 적이 없다. 어색하다. 그래도 지금은 그들의 시대다. 

군사 정권과 검사 정권은 여러모로 비슷한 점이 많은 것 같다. 하여간 통치의 출발은 처넣는 것으로부터. 경제로 보면, 이렇게 힘으로 통치하는 집단이 한국에서 결국에는 매달리는 것이 수출이다. 군사 정권도 그랬고, 검사 정권도 그렇게 한다. 

수출은 많은 것들이 모여서 생겨나는 경제의 최종단의 모습이다. 그걸 위해서 경재를 운영하는 게 아니라, 경제를 운영하다 보니까 수출이 늘고, 그렇게 되는 거다. 일종의 수출 페티시즘 같은 건데.. 말단 수치만 보다 보면 "그래, 결국은 수출이야", 이런 결론을 내리기 쉽다. 정서적이고 감정적인 경제 인식이다. 

검사들이 수출 관련 회의를 만들어내는 건, 너무 익숙하다. 박정희는 물론 노태우 때까지 연말이면 수출 밀어내기 같은 걸로 연간 실적관리를 했다. 수출을 잘 하려면 뭘 해야 하나? 짧게 보면 단가 후려치기다. 

단가를 낮추는 단기적 처방은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지금 검사 정권이 하는 것처럼 노동자들을 목을 잡고 쥐어짜는 방식이다. 더 일하고 덜 받아가. 또 하나는 생필품 가격 안정화처럼 일상 비용을 줄여주는 방식이다. 인플레이션 관리에 실패한 게 검사들이라, 이건 언감생심이다. 하려고는 하는데, 워낙 복잡한 메카니즘이라서 개념 탑재가 좀 어려운 것 같다. 결국 임금을 깎거나 노동 시간을 늘이거나, 둘 중의 하나다. 아마 두 개 다 할 것 같다. 

이런 검사들의 정권이 얼마나 갈까, 그리고 검사들의 자리를 대체할 다음 집단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들이 남았다. 

아직 남아있는 미개발 집단은? 모피아들은 스스로 정치화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그냥 옆에서 부수적 권력으로도 만족했다. 일반 공무원들은? 글쎄다. 아직까지 공무원 출신으로 대중들이 납득할 만한 정치 지평이 만들어지지는 않았다. 

한국 사람들은 국회의원 싫어하는 것만큼 무의도식 한다고 공무원 싫어한다. 뿌리 깊은 혐오 같은 게 있다. 

한 가지는 알 것 같다. 검사 정권이 그렇게 오래 가지는 못할 것 같다는. 너무 거칠고, 너무 직선적이다. 대화가 많고, 과정이 긴 21세기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검사들은 말이 짧다. 몇 달 동안 지켜본 걸로는 상명하복이 하나의 특징이라면, 또 다른 특징은 이면계약이 아닐까 싶다. 하는 말과 실제로 하는 일이 다르다. 아마도 통치자와의 이면계약 같은 게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보면 상황이 딱딱 맞아들어간다. 

이런 통치의 한계는, 대중들이 집단적으로 똑똑해지면 말과 행동의 차이가 점점 더 거칠게 드러난다는 점 아닐까 싶다. 

짧고 거친 어투, 이걸 자꾸 검사들이 신세대의 특징이라고 하는데, 그냥 어느 날 갑자기 자기가 하던 일이 아닌 분야로 오게 된 검사들의 특징인 것 같다. 신세대라서 그런 게 아니라 검사라서 그런 것. 

오래 가지는 못할 것 같다.

'책에 대한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간만에 홍대..  (0) 2023.04.10
아버지 1주기..  (4) 2023.04.10
일본 유신회..  (0) 2023.02.24
기분학  (4) 2023.02.23
경제 휴머니즘..  (9) 2023.02.12
Posted by retired
,

일본유신회는, 이름만 들어도 '애비'였다. 그냥 그런 극우파 정당 있나보다, 그러고 말았다. 설명을 몇 번 들었는데도 일본의 집권 구조가 너무 복잡해서 듣고도 맨날 까먹었다. 일본 민주당 이름이 없어진 이후로는 정말 너무 어려워졌다. 당 이름하고 주요 정책이 잘 연결이 안 된다. 외우는 수밖에 없는데, 외워도 맨날 까먹는다. 거기에 유신회까지, 도저히 무리라는 생각을 몇 번. 

저출산 대책으로 일본유신회에서 대학교까지 무상으로 하자는 얘기가 나온 걸 보고, 정말로 깜놀. 

늘상 하는 얘기지만,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대학국유화하고 사실상 무상으로 전환한 게 좌파들이 했던 게 아니다. 주장은 할 수 있지만, 그걸 실제로 할 힘은 없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68 이후, 정권 유지가 어려워지니까 보수들이 나서서 그렇게 했다. 교육부 장관이 대학 총장들을 불렀댄다.

총장님들, 우리가 다 죽게 생겼습니다. 이 정도는 해주셔야겠다는.. 

그 과정에서 아주 유명해진 얘기가 수영장에 간 교육부 장관이라는 에피소드라고 들었다. 학생들이 학교 수영장에서 농성하고 있었는데, 결국 밀려서 수영장에 빠졌다고 한다. 나도 전설처럼 수업 시간에 들은 얘기다. 

일본유신회에서 아예 대학까지 무상으로 하자는 주장을 보면서, 자본주의의 중대한 전환기에 벌어졌던 사건들 생각이 머리 속에서 주루룩 나왔다. 

일본은 좀 시간이 걸리기는 하지만, 해법이라고 제시되는 의견이 나오면 하기는 한다. 인구부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는 '1억총활약상'이라는 골 때리는 이름의 부처가 생겼을 때, 그게 뭘 하겠냐고 했지만, 출생률 하락을 멈추고 다시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린이청도 만들었다. 

우리는 '한국 모델'이라고 말은 하지만, 중요한 변화는 결국 외국에서 뭔가 해야 생겨나는 건 아직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산을 팔거니 말거니, 그런 여당 유력 대표의 "내 맘대로 할 거야", 이런 뉴스 보다가 일본유신회의 '대학까지 무상', 그런 얘기 들으면 보수의 스펙트럼이 넓어도 너무 넓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japan/1081014.html?_fr=mt2 

 

일 출산율, 한국보다 낫지만…고등학교까지 아동수당론 ‘탄력’

지난해 신생아수 80만선 처음 무너질듯기시다 “벼랑끝, 다른 차원 대책 필요”

www.hani.co.kr

 

'책에 대한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버지 1주기..  (4) 2023.04.10
검사들의 시대..  (6) 2023.02.25
기분학  (4) 2023.02.23
경제 휴머니즘..  (9) 2023.02.12
좀 더 단순한..  (5) 2023.02.06
Posted by retired
,

기분학

책에 대한 단상 2023. 2. 23. 14:48

글로는 쓴 적이 없는데, 말로는 '기분학'이라는 용어를 가끔 쓴다. 기분은 그런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이런 얘기를 설명할 때 쓴다. 부동산과 관련해서 강남과 관련된 많은 얘기들은 기분학인 경우가 많다. 기분은 그런데, 실제로는 그렇게 움직이지 않는 경우. 남녀 문제에 대해서도 기분학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이 많다. 경제적으로 보면 여성의 힘이 남성을 추월했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런 게 대표적으로 기분학이다. 기분은 그런데, 그런 수치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 

천아람 인터뷰를 몇 개 챙겨봤는데, 그가 젠더에 대해서 하는 얘기들은 대체적으로 기분학에 해당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대착오적"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그가 인식하는 이 시대가 적어도 젠더 문제에 대해서는 기분학이 아닐까 싶다. 

안철수가 얘기하는 과학도 상당 부분은 기분학과 가깝다는 생각이. 과학방역 얘기할 때, 그의 과학은 그야말로 통치 집단의 기분에 따라, 그때그때 상황 논리에 더 가까운 것 같아 보였다. 

https://www.khan.co.kr/national/gender/article/202302230550011

 

[‘27년 꼴찌’ 성별임금격차] 여성이 평생 못넘는 벽 ‘28~30세 남성’

여성이 생애 가장 높게 달성할 수 있는 평균임금은 남성이 28~30세에 받는 평균임금의 문턱을 ...

m.khan.co.kr

 

'책에 대한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검사들의 시대..  (6) 2023.02.25
일본 유신회..  (0) 2023.02.24
경제 휴머니즘..  (9) 2023.02.12
좀 더 단순한..  (5) 2023.02.06
겨울 방학이 절반쯤 지날 무렵..  (3) 2023.02.01
Posted by retired
,

경제 휴머니즘이라는 표현은 mb 때 kbs 사람들하고 경제방송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처음 생각했던 개념이다. 물론 나는 휴머니즘이라는 단어를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다. 동물권은 물론이고 바위와 산 혹은 갯벌의 존재권에 대해서 생각하던 시절이다. 인간을 중심에 놓고 생각하는 것은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절에 경제 휴머니즘에 대한 생각을 한 것은, 상황이 너무 안 좋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런 얘기를 같이 하던 사람들이 mb 시절 결국은 뿔뿔이 흩어지고, 나는 kbs 사장에게 단디 찍혀서 방송에 나올 수 없게 되었다. 그냥 흐지부지해졌다. 

오랫동안 경제 휴머니즘은 딱히 손을 보지 않고, 가끔 라디오에서 내가 생각하는 경제에 대해서 설명할 때 잠깐씩만 얘기하고는 했다. 휴머니즘은 올드한 용어다. 21세기에 이 용어가 과연 사람들의 마음을 잠시하도 담을 수 있을지, 그런 걸 잘 모르겠다. 경제와 휴머니즘은 결합시켜볼 수 있는 용어이기는 한데, 말 자체가 그렇게 매력적이지는 않다. 

이 올드한 용어를 다시 고민하기 시작한 것은, 결정적으로 법원의 50억 무죄 판결을 본 이후다. 800 원을 횡령했다는 이유로 버스 운전사의 해고를 합당하다고 했던 법원이 50억 원에 대해서는 뇌물이 아니라고 했다. 물론 검사나 판사나, 다 할 말이 있을 것이다. 제대로 된 범죄 입증이 안 되었고, 증거는 불충분해서 다르게 판결을 내릴 수 없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게 과연 인간으로서 할만한 합당한 일인가? 법조계 바깥의 시선으로 보면,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난 것이다. 

오세훈이 이태원 참사에 대한 추도관을 녹사평역 지하 4층에 설치하라고 했다. 그리고 공개된 자리로 나오는 것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반대했고, 그냥 공권력 동원해서 끌어낸다고 했다. 이유야 이해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이런 건 휴머니즘에 반하는 행정이다. 자식과 친지가 죽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야박하게 할 수  있을까? 정치만 있고, 휴머니즘은 없다. 

윤석열 시대에 가장 결여된 것을 하나만 지적하자면 경제 휴머니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법이 앞서고, 그 법은 강자들의 법이다. 그걸 정의라는 이름으로 말할 수 있다. 롤즈식 최소 기준으로 보면 윤석열 행정은 많은 경우 정의와는 아주 거리가 멀다. 절차도 약하다. 공론장, 이런 것은 있는 흉내만 내고, 진정한 토론은 없다. 공감은 더더군다나 없다. 

툭하면 ‘빨갱이’라고 그런다. 아주 거친 방식으로 이념이 다시 복귀하는 중이다. 빨갱이라는 말에는 “죽여도 좋다”는 의미가 뒤에 숨어 있다. 세상에 그냥 죽어도 좋은 사람은 없다. 그런 게 휴머니즘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라 구하다 죽은 것도 아니지 않느냐”, 그렇게 말할 수는 있지만, 자식이 죽은 부모에게 휴머니즘이라는 생각으로는 하기가 어려운 일이다. 대결을 하고 공격을 하더라도 우리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선이 있다면, 그 선이 바로 휴머니즘이다. 

인간의 도리 같은 복잡하고 종합적인 건 사실 나는 잘 모른다. 그렇지만 경제가 어떤 모습으로 가야 최소한의 경제 휴머니즘일지, 그런 건 좀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윤석열 시대에 가장 결여된 것은 경제 휴머니즘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좀 더 해보려고 한다. 법이 경제를 만들어주지 않는다. 법이 말하는 정의와 경제적 정의는 아주 거리가 멀다. 각자 자신의 정의를 주장한다. 물론 그럴 수 있다. 그래도 최소한의 경제 휴머니즘 정도는 공유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책에 대한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본 유신회..  (0) 2023.02.24
기분학  (4) 2023.02.23
좀 더 단순한..  (5) 2023.02.06
겨울 방학이 절반쯤 지날 무렵..  (3) 2023.02.01
신년 인사..  (3) 2023.01.22
Posted by retired
,

대체적으로 일정을 마음 속으로 잡으면 거기 잘 맞췄던 편이다. 몇 년 전부터 일정을 잘 못 맞추기 시작했다. 지난 연말부터는 집중 자체가 잘 안 된다. 연말에는 우리 집 어린이들 방학이 시작되었다. 어린이들의 방학은 직장인의 휴가와는 다른 것 같다. 휴가 시작할 때와 끝날 때, 뭐가 많이 변하지는 않는다. 그저 휴가는 늘 짧기만 하고, 끝나갈 때면 아쉽기만 하다. 

어린이들의 방학은 좀 다르다. 열 살, 열두 살, 방학 동안 몸무게도 변하고, 키도 변한다. 심지어는 선호하는 책은 물론, 보던 만화의 종류도 바뀐다. 큰 애는 그렇게나 좋아하던 포켓몬을 끊었다. 끊었다기 보다는 시시해진 건데. 포켓몬 만화만 안 보는 게 아니라, 그 동안 모았던 포켓몬 카드를 앨범째 동생에게 주었다. 달라고 했더니 “그래”, 그리고 그냥 줬다. 그만큼 다른 것이 더 재밌어진 거. 몇 년째 하던 레고 대신 며칠 전부터 건담 조립을 시작했다. 직장인에게는 며칠 사이에 이런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는다. 스트레스 덜 받는 방학 때 어린이들은 부쩍 키가 큰다. 그리고 키가 크는 만큼 취향도 변하고, 관심도 변한다. 

처음에 애들 키우기 시작하면서 할아버지들이 “애 보는 게 그렇게 어려워?”, 그런 얘기를 종종 했었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잘 못 알아들었다. 그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까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애를 본다”는 걸 정말로 지켜보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는 할아버지들이 적지 않았다. 똥 기저귀를 한 번도 갈아보지 않고 한세상 떠나는 남자들이 꽤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아이들이 어린이가 되면서 기저귀가 필요 없게 될 때 얼마나 일상에 큰 변화가 오는지, 그 기쁨을 알려주고 싶은데, 알아 처먹는 할아버지들이 별로 없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우리 아버지가 똥 기저귀를 한 번도 갈아보지 않은 채 세상을 떠나셨다. 

어린이들 방학 때면 내가 죽어난다. 이제는 기저귀 가는 나이도 아니지만, 집에 있다 나갔다, 하루 종일 둘이 서로 다른 스케쥴로 왔다갔다 하고, 그런 데 맞추다 보면 한두 시간 여유가 나도 뭔가 하기가 어렵다. 그냥 문득 내가 한심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손톱이 길면 자판을 치기가 어렵다. 그래서 손톱을 깎는다. 그리고 다시 손톱이 자란다. 그리고 다시 손톱을 깎는다. 그리고 다시 손톱 깎아야 하는 순간이 왔는데, 컴퓨터에 작업하던 페이지가 거의 그대로인 걸 보면.. 후아.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나, 그런 생각이 절로 든다. 

좌절, 절망, 그런 생각들이 지나가지만, 그래도 그렇게 마음이 슬퍼지면, 하루하루가 더 슬퍼진다. 이럴 때면 ‘명랑’이라는 단어가 좀 도움을 준다. 삶은 이기고 지는 게 다가 아니다. 얼마나 재밌게 살고,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는 마음을 잃지 않는지, 그런 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기고 또 이기면 즐거울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삶은 과정일 뿐이고, 궁극적으로 도달하고 싶은 곳이라는 건 없다. 삶에 무슨 목표가 있겠느냐? 

그냥 과정을 즐기려고 한다. 물론 어린이들의 방학을 즐기기는 어렵지만, 한없이 일정이 늘어지는 것과, 그때마다 나머지 일정을 조정하게 되는 과정, 그런 매일매일의 좌절도 그냥 즐기려고 한다. 

예전에는 이럴 때 카페에 노트북 가서 써보기도 하고, 어딘가 지방 같은 데 가서 마무리하고 온 적이 있기도 하다. 무슨 연관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한 책들이 대부분 망했다. 그래서 좋으나 싫으나, 그냥 어린이들하고 줄구장창 지지리 궁상을 떨면서 그냥 한다. 매일매일 인상 쓰면서 살 수는 없다. 그냥 그런가보다 하면서 또 웃고 지나간다. 

어저께 저출생에 관한 책 제목을 정했다. “모두의 문제는 아무의 문제도 아니다”. 이 생각을 한 건 좀 되는데, 이걸 자신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거의 없으니까, 그 책을 누가 보겠냐, 그런 딜레마에 당연히 빠지게 된다. 논리적인 충돌이고, 이럴 때에 아이러니라는 표현을 쓰면 좋을 것 같다. 그냥 담담하게, 가장 정직한 제목을 쓰기로 결국 마음을 먹었다. 아마 10년 전이면 이런 제목을 못 잡았을 것 같은데, 지금은 가능하다는 생각이 문득. 

과정이 즐겁기 위해서는 거짓이 없어야 한다. 이런 걸 좀 배웠다. 한 자락 깔고 기교를 부리거나, 멋을 내는 게, 그게 결국에는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짜로 즐겁다고 하는 게, 진짜로 즐거울 리가 있겠느냐? 다른 사람은 다 속여도 나는 못 속인다. 생각이 복잡할수록 더 간단한 원칙을 가지고 생각하지 않으면, 나중에 엉켜서 결국 하나마나한 생각의 연속일 뿐, 결코 미로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 같다. 그저 가급적이면 즐겁게 그리고 정직하게. 이제 50대 중반, 내가 삶을 대하는 원칙은 이제 아주 단순해졌다.  

'책에 대한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분학  (4) 2023.02.23
경제 휴머니즘..  (9) 2023.02.12
겨울 방학이 절반쯤 지날 무렵..  (3) 2023.02.01
신년 인사..  (3) 2023.01.22
작업실..  (1) 2023.01.10
Posted by retired
,

우리집 어린이들 방학이 아직 절반 밖에 안 지났다. 하이고. 정신이 혼미하다. 아내는 2월에 지방 출장이 두 번 있고, 다음 달에는 해외 출장이 있다. 여자가 일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요즘 새삼 지켜보는 중이다. 흔히 유리 천장이라고 쉽게 얘기하지만, 그 구간을 지나는 삶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그런 생각을 조금씩 해보게 되었다. 이게 다 자본주의라서 그렇다고 간단하게 말하기에는, 그 시스템이 제법 복잡한 것 같다. 

저녁에 나가는 모임이 있고, 아침에 나가는 모임이 있다. 보통은 저녁 때 나가다가, 좀 높은 위치가 되면 아침에도 나간다. 한 번은 외국 인사를 아침 모임에 강사로 부른 적이 있었다. 나중에 그가 물어봤다. 너네는 이렇게 사냐? 응. 왜 이러구 사냐? 그러게. 나도 싫은 데 어쩔 수가 없네. 너 미국 와라, 이게 사람 사는 게 아니다. 내가 초청해줄께. 괜찮아. 나도 조금만 하고 말거야. 

애들 보면서 고정적으로 만나는 걸 다 없앴다. 없앴다기 보다는 다른 방법이 없어서 그렇다. 감소소모라고 말한다면, 한국은 감정 소모가 아주 많은 스타일의 삶을 살아간다. 물론 외국에도 파티가 있기는 한데, 그건 아주 정형화되어서 특별히 형식에 대해서 고민할 필요는 별로 없는 것 같다. 

감정 소모라고 하지만, 사실 어른들하고 만나면서 감정을 소비하는 건 어린이들하고 지내는 것에 비하면 좀 덜 피곤한 것 같다. 어른들하고는 적당히 얘기하고, 적당히 숨겨도 별 일 없다. 어린이들은 새로운 우주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같아서 한 마디 한 마디가 다 미래의 삶에 영향을 준다. 참 웃기는 일이기는 한데, 그게 신경이 바짝 서기는 한다. 

중고등학생들에게 선물을 해야 할 일이 생기면 만년필 선물을 한다. 이거 고르기도 만만치 않다. 요즘은 특히 인생 첫 만년필일 가능성이 높다. 너무 고급스럽지 않고, 너무 고풍스럽지 않지만 기술적 완성도도 높은. 그리고도 예쁜. 얼마 전에 고등학교 올라가는 조카에게 만년필을 선물했는데, 역시 고르기가 만만치가 않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막내 이모부가 외국 갔다 오면서 대한항공에서 주는 쉐퍼 만년필을 선물한 적이 있다. 그 양반에게 만년필 선물을 두 번 받았다. 중학교 때에는 파카를 받은 적이 있다. 막내 이모는 폐암으로 오래 살지 못하셨다. 그리고 재혼을 하면서 보게 될 일이 별로 없지만, 그렇게 받은 두 자루의 만년필의 기억은 평생을 가게 되었다. 친가에서는 4년제 대학을 내가 처음 들어갔다. 아버지는 고졸, 어머니는 전문대 졸, 그나마 이 양반들이 집안에서는 나름 공부를 한 편인데, 공부와는 좀 거리가 있는 집안에서 자랐다. 만년필이 내 삶을 조금 바꾼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끔 해본다. 

어린이들 혹은 중고등학생들 만날 일이 있으면 그래서 아주 조심스럽다. 짧은 한 순간의 한 마디 한 마디가 그 작은 우주에서는 아주 큰 사건이 될 수 있다. 감정 소모라는 말을 쓰면, 꼭 먹고 살기 위해서 만나는 것 보다도 더 어린 사람들을 만날 때의 소모량이 더 많은 것인지도 모른다. 

젠더 경제학 출간을 내년으로 미룬 이유 중의 하나가, 이건 인터뷰 작업이 좀 필요한데, 지금 같아서는 인터뷰는 개뿔.. 당장 꼭 만나야 하는 사람들도 못 만나고 있는데. 사실 인터뷰 작업을 안 하고 있는 건, 차 한 잔 마실 일정을 내기 어려운 것도 있지만, 그들이 겪게 된 어려움이나 고통을 듣고, 다시 그걸 구조화시켜서 정리할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문득 했다. 역시 감정을 소모해야 하는 일인데, 사실 엄두가 안 난다. 

40대 여성 직장인의 정신질환에 대한 수치 같은 것을 좀 확인해보려고 하다가.. 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런 생각이 잠시 들었다.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도 상담을 하는 비율이 꽤 된다. 그나마 병원에 가면 좀 낫다.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건, 숨 크게 쉬고, 마음 크게 먹어야 할 수 있는 일이다. 

간만에 김광석 앨범을 듣다보니, 정말 오랜만에 김민기 노래가 듣고 싶어졌다. 학교 앞에 재즈 오즈라고 하는 카페가 있었는데, 줄구장창 김민기 LP만 틀었다. 한 번은 수업 너무 들어가기 싫어서 땡땡이치고 커피 한 잔 마시면서 김민기 노래를 죽어라고 들었던 적이 있었다. 문득 그때가 생각이 났다. 대학교 2학년 때 생각해보면, 나도 참 멀리 왔다는 생각이 문득. 그때는 내가 이렇게 살고 있을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오전에는 골프 치고, 저녁에는 술 마시는 내 또래 친구들의 삶과는 나는 아주 먼 곳으로 온 것 같다. 젠더 경제학에서는 여성 경제인과 여성 금융인들에 대한 얘기가 한 파트 들어간다. 살다보니 내가 아는 여성들의 상당수가 이런 일 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아직 그런 감정 소모를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결국 내년으로 밀게 되었다. 

내년에는 젠더 경제학과 청년 경제학, 그렇게 두 개로 가게 될 것 같다. 청년 얘기는 몇 년 전 어느 대학 학생상담소의 부탁으로 결국 학교 상담실 문을 두드린 사람들에 대한 얘기가 계기가 되었다. 그것도 눈물 나는 얘기들이 많다. 마음이 너무 아파서, 기존에 있던 시리즈에 약간의 수정을 했다. 

성공하고 잘 나가는 사람들에 대한 얘기를 다루어본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내가 다루는 얘기들은 다들 어렵고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다. 대개는 자본주의 문제인데, 그 어두운 곳을 주로 살펴보게 된다. 

그래서 나는 더 행복하려고 하고, 더 편안하려고 한다. 그리고 가능하면 더 명랑하려고 한다. 내가 힘들면 다른 사람 힘든 게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내가 편안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 어려운 얘기를 감당하기가 어렵다. 

책으로 돈 버는 것으로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런 건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내가 이해하는 한 가지는, 할 얘기가 있어서 책을 쓰는 거지, 책을 쓰기 위해서 할 얘기를 찾는 건 내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 나는 할 얘기가 없어지면 이제 책을 그만 쓸 것 같다. 아직은 못다한 얘기가 좀 남아서 이러고 있다. 

책 쓰는 법에 대한 에세이를 한 번 쓸려고 했었는데, 그건 없앴다. 지금쯤 되면 책을 어떻게 쓰는지 좀 알 것 같았는데, 아직도 잘 모르겠다. 책 쓰는 것에 대해서 사람들이 쓴 것도 좀 봤고, 심지어는 동영상 강연도 좀 봤다. 나는 별로 공감은 안 갔다. 나는 저렇게는 못 할 것 같아.. 50권 가까이 썼는데, 책 쓰는 법은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래도 약속해놓은 게 있어서, 그건 죽음 에세이로 바꿨다. 책은 잘 모르겠지만, 나이 먹어가는 것, 죽음에 가까워지는 것, 그런 건 좀 할 얘기가 있을 것 같다. 

이번 정권이 가기 전에 이승만 책을 낼 생각이 아직도 있다. 진작에 하려고 그랬는데, 부산에서 2~3달 조사를 해야 한다. 딱 계획 짜고 있었는데, 바로 코로나 국면이었다. 애들 두고 움직이려면 조금은 더 커야 할 것 같고, 나의 재정상태도 지금보다는 조금은 더 안정되어야 한다. 하필이면 부산을 중심으로 잡아서, 애로사항이 많다. 그래도 그런 스케일 있는 얘기들도 좀 해보고 싶기는 하다. 다시 한 번 장기 계획으로 밀어 놓는다. 

한동안 출간 스케쥴이라는 게 거의 없이 그냥그냥 애들하고 버티면서 살았는데, 이제 내년 일정까지는 어느 정도는 정리되는 것 같다. 정말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것들만 하면서 살아갈 생각이다. 학교도 그만뒀고, 강연도 안 하고, 방송도 안 한다. 애들 보면서 이런 것까지 하는 건 무리데쓰.. 남들하고는 반대 방향으로 가는 것 같은데, 여력이 안 되어서 방법이 없다. 지금까지 보면 책 인세하고 생활비하고 대충 평균적으로는 딱 맞는 것 같다. 물론 평균이다. 안 맞는 해도 좀 있다. 스피커 살 여유까지는 없다. 20년 가까이 새 스피커나 앰프 없이, 그야말로 책 쓰기 전에 가지고 있던 장비들로 버틴 게.. 그럴 여유까지는 없어서 그렇다. 환갑까지 몇 년, 이렇게 지내는 데에 아무 문제 없다. 그저 바란다면, 우리 집 어린이들 방학이 빨리 좀 지나갔으면, 그런 소소한 소망이. 

'책에 대한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제 휴머니즘..  (9) 2023.02.12
좀 더 단순한..  (5) 2023.02.06
신년 인사..  (3) 2023.01.22
작업실..  (1) 2023.01.10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더 웨스트  (1) 2023.01.08
Posted by retired
,

사의재 유감

잠시 생각을 2023. 1. 29. 21:26

김부겸 인터뷰를 보다가 잠시 그가 고문을 맡은 사의재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스스로 진보라고 불렀던 운동권 일부의 부패와 낮은 도덕감이 청년들이 말하는 ‘공정’ 논의의 격발제가 되었다. 그게 과연 개선되었을까? 정권은 날려먹었지만, 별로 그런 것 같지는 않다. 한 때 민주당의 중추를 형성했던 운동권 엘리트들이 얼마나 세상의 흐름과 먼 곳에 있나, 사의재라는 단어를 보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사의재, 솔직히 나도 사의재 뜻이 뭔지 잘 몰랐다. 아주 예전에 그런 걸 읽은 기억은 있지만, 잊어버린지 오래인 단어다. 그냥 언뜻 떠오른 게, 연말이면 교수신문에서 나오는 교수들이 선정한 사자성어다. 10년 전에는 그런 게 나오면, 뭔가 정권에 대한 비판이라서 사람들이 좀 재밌게 생각한 것 같다. 요즘은 그게 무슨 뜻인지, 학생들은 별로 관심 없어 하는 것 같다. 관심 없는 정도가 아니라 재수 없어 한다. 시대가 변한 거다. 몇 년 전에 어떤 학생이 나한테 거기에 의견을 냈느냐고 물어봤다. 솔직히 매번 연말이면 연락이 오기는 하는데, 나는 그런 어려운 단어는 잘 몰라서 한 번도 의견을 낸 적은 없다. 그 얘기 그대로 했더니 “그러시냐”, 그렇게 넘어갔다. 등에 땀이 흘렀다. 만약 냈다고 했으면 “재수 없는 인사”로 그 학생의 인명 DB에 등록될 판이다. 

지금 20대~30대는 사자성어와 한문투에 대해서 “모른다”가 아니라 적대감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다. 물론 영어에 대해서는 놀랍도록 관대한데, 한자어에 대해서는 아주 싫어한다. 나도 꼭 필요할 때 아니면 가급적 사자성어를 잘 안 쓰려고 한다. 그게 효율적이라도 워낙 젊은 사람들이 싫어하니까 나도 자연스럽게 피하게 된다. 꼭 내가 너보다 많이 알아, 그렇게 일부러 보일 필요는 없다. 그런 변화가 좋은 건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다수의 사람들이 그렇게 싫다고 하는데 일부러 그걸 쓸 필요는 없다. 

사의재라는 단어가 제목이 된 건 이중으로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 뜻이 아무리 좋아도 아는 사람 거의 없는 한자를 제목으로 쓰는 건, 40대 이하의 한국 대중들하고 별로 대화하고 싶지 않다는 얘기가 된다. 정서적으로 싫다는데, 굳이 그런 걸 대중적 활동을 하면서 쓸 필요가 있나? 무슨무슨 어벤저스, 차라리 그랬다면 그냥 웃고 넘어갔을 것이다. 사의재라는 단어는 그런 의미로 드러나게 된다. 한국에서 그걸 알아먹을 사람이 얼마나 있겠나? “모르면 배워”, 이런 강압감이 정서적으로 느껴지는 단어를 왜 단체 이름으로 쓰나? 운동권 엘리트 티 내고 싶은 거 이상의 의미가 있을까 싶다. 

결국 사의재로 결정된 것도 문제지만, 그 과정이 아마도 더 문제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내부에 없었을 것 같다. 있었다면 그런 이름으로 결정되었을 가능성이 별로 없다. 너무 나이를 먹어서인지, 아니면 너무 높은 사람들끼리 만나게 되어서 그런 건지, 하여간 이제 대중과는 문화적으로 너무 먼 곳에 있는 사람들의 폐쇄적 공통체라는 느낌이 들었다. 

단어도 그렇지만, 뜻은 더 나쁘다. “맑은 생각과 엄숙한 용모, 과묵한 말씨, 신중한 태도”, 듣기만 해도 재수 없다고 생각할 의미다. 정약용 선생은 이걸 자기가 떠난 후에 원래의 집주인에게 지어준 이름이다. 자기가 그렇다는 게 아니다. 자기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다른 사람에게 부여한 것이다. 이걸 자기 이름으로 딱 붙이면, 정말로 재수 없어진다. 다른 사람에게 칭하는 걸 자신에게 칭하는 바보가 어디 있느냐? 제목도 이상하지만, 뜻은 더 이상하다. 

도대체 이 시대의 사람들하고 대화할 생각이 있는 집단인지, 아니면 자기들끼리 고상한 얘기를 하려는 집단인지, 제목만 보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나? 

지난 정권에서 이제는 나이 먹은 운동권 엘리트들이 부패했다고 많은 청년들이 느끼면서 정권이 날아간 것 아닌가? 상징의 세계에서 이 엘리트들이 정서적으로 그 패배에서 한 발도 걸어 나오지 못했다는 생각이 ‘사의재’라는 단어를 들으면서 생각이 났다. 

시대는 변했고, 또 변하고 있다. ‘사의재’ 같은 단체 제목을 쓰다가는 한 방에 훅 간다. 청년들에게 손가락질 받으면서 훅 간다. 


'잠시 생각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키즈 존..  (5) 2023.05.05
소주 가격..  (1) 2023.02.26
난방비에 대하여..  (8) 2023.01.25
유승민 건에 대한 단상..  (3) 2023.01.02
노동개혁을 전쟁 선언처럼 할 이유가..  (4) 2023.01.01
Posted by retir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