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쓰는 게 내가 하는 일이 되었다. 물론 작년에는 책이 아예 안 나오기도 했다. 

어느 집이나 그렇지만, 우리 집에서도 크고 작은 일들이 끊임없이 생겨난다. 재작년 겨울,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지신 후, 6개월 정도 병원에 계시다가 돌아가셨다. 그리고 연이어 막내 동생이 쓰러졌었다. 그런 건 큰 일이다. 

지난 가을에도 둘째는 병원에 입원을 했다. 그런 건 작은 일이다. 그리고 또 큰 일이 생기기도 하고. 

어머님 생신이셨는데, 움직일 형편이 안 되어서 그냥 간장게장 선물 보내고 넘어갔다. 원래는 멍게장을 보내드리고 싶었는데, 평소에 드시던 음식이 아니라서 어떨지 몰라서 그냥 안전하게. 

나에게는 꽤 긴 기간 동안 별 특별한 일도 벌어지지 않고, 그냥 아무 일도 없이 지내는 중이다. 평탄하다면 평탄하게, 무료하다면 무료하게 지내는 중이다. 

책을 쓰는 게 좋은 선택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오랫동안 책을 내고 싶었던 것은 맞다. 그게 정말로 하고 싶었던 일인지, 그건 여전히 잘 모르겠다. 

아마 영광을 구하는 스타일이거나, 뭔가 좀 화끈한 걸 원하는 성격 혹은 남들 앞에 서기를 좋아하는 편이었다면 이렇게 사는 게 좀 답답했을지도 모른다. 오랫동안 학생들을 가르치기는 했는데, 이제 그렇게 학교에 왔다갔다 하기에는 나도 좀 나이가 많다. 그리고 애들 보면서 하려니까, 시간 관리가 안 되기도 하고. 누군가를 가리친다는 건 이제 포기했다. 그리고 나니까 특별히 답답할 건 없는 것 같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는 책을 쓰고 싶어서 책을 낸 건 아니고, 할 얘기가 있어서 책을 썼던 것 같다. 책을 쓰기 위해서 엄청나게 그때부터 준비를 하거나 그런 적은 별로 없다. 이미 알고 있고, 언젠가 얘기하기로 생각하고 있던 게 차례가 되면 그걸 쓰는 스타일이다. 통계나 자료를 확인하는 것 말고, 이제부터 책을 읽으면서 생각을 정리해야 한다면.. 그런 책은 쓰지 않는다. 아니 못 쓰는 거다. 이미 관련된 경험이나 하고 싶은 얘기가 차서 한 권이라는 분량 안에 어떻게 담아야 할지, 설계와 압축 같은 게 문제일 때 출간 목록에 올린다. 궁금하거나 알고 싶다, 그런 정도의 상태에서는 책까지 쓰는 건 무리다. 

내년이나 후년 어디쯤에서 50권이 될 것 같다. 아마 그 정도면 내가 알고 있는 게 바닥이 나지 않을까 싶다. 그후에는 뭐하면서 살지, 아직 생각해둔 게 없다. 그런 것까지 미리 생각할 여유는 별로 없었다. 

욕심이 별로 없는 편이다. 아주 어려서부터도 그랬고, 그후로도 그랬던 것 같다. 지금도 그렇다. 뭐 특별하게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되고 싶은 것도 없다. 그런 성격이 책 쓰는 데에는 잘 맞는 것 같다. 특히 지금처럼 책이 어려울 때에는 말이다. 

그래도 책을 쓰면서 지금까지 짧은 몇 번의 기간을 제외하면, 세 끼 밥 먹고 사는 데 불편하지 않았고, 크게 곤란을 느낀 적도 없다. 엄청나게 성공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정재가 영화 <오 브라더스>에서 말했던 것처럼 “제 마음대로 살겠습니다”, 그런 스타일로 살았던 것 같다. 

내가 편안해야 어렵고 힘든 사람들의 사정이 마음에 들어온다. 편안해지면 더 위를 보고, 더 큰 성공을 바라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난 그러 스타일이 아니다. 내가 편안해지면 주변에 굶는 사람은 없는지, 내가 누리는 이 작은 편안함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생각으로 넘어가게 된다. 대체적으로 그렇게 살았다. 

내가 가장 형편 없는 사람으로 보는 집단은 자녀의 행복에 목숨을 건 부자들이다. 사람이 돈을 좀 벌면, 그 다음에 자녀가 평생 살 수 있는 것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그래서 거기까지 간 사람들을 좀 안다. 그 다음에는? 그 시점에는 보통 손주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 다음부터는 손주 먹고 사는 것까지 해놓는다고 또 죽어라고 산다. 그냥 옆에서 내가 지켜본 것은, 그때가 딱 이혼에 대한 위기가 오는 순간인 경우가 많다. 자식 생각, 손주 생각을 하면서 평생 열심히 산 것 밖에 없다고 하는데, 사는 건 그런 게 아니다. 그냥 돈을 쫓아 평생 달려온 거고, 정작 식구들은 거기에서 소외되었을 상황이 많다. 

아주 나이 먹은 사람들은 그래도 부인들이 그냥 버티고 참는 경우가 많았는데, 내 또래만 되어도 그런 부인은 별로 없다. 손자까지 생각하면서 죽어라고 살면, 딱 그때 이혼하게 된다. 그리고 그때가 되어서야 후회를 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아니 후회라도 하면 그래도 좀 해결할 방법이 있다. 후회도 안 하고, 분노에 휩싸이는 경우가 많았다. 배신감에 부들부들 떤다. 

자기가 살았던 인생을 객관적으로 돌아보기는 아주 어렵다. 특히 성공한 남자일수록 더욱 그런 것 같다. 아내랑 환갑 넘어서 해외 여행을 갈 수 있으면, 그것만 해도 일단은 선방한 인생 아닌가 싶다. 뒤늦게 이혼한 사람 중에 아내랑 해외여행 갔다가 결정적으로 이혼한 사례도 좀 봤다. 아내가 도저히 이렇게는 못 살겠다… 결심하게 된. 

나에게 책을 쓰는 것은 이제는 그냥 일상적인 일이다. 특별히 티내거나 그러지 않으려고 한다. 물론 지금도 책의 첫 문장을 시작할 때, 마무리를 준비할 때 혹은 중간에 중요하게 한 번 꺾고 들어가야 할 때, 신경이 곤두서기는 한다. 전에는 그럴 때면 술을 며칠씩 퍼마시고는 했었는데, 요즘은 그냥 식구들하고 짧게 여행을 간다. 번잡스러운 것도 싫고, 남들 불편하게 하는 것도 하고 싶지 않다. 

어쨌든 나는 지금 내가 하는 일이 나에게 아주 잘 맞는다고 생각한다. 요란스럽지 않고, 번접스럽지 않고, 그래도 사회에 뭔가 도움이 되기는 하고. 그리고 혹시라도 간절히 필요했던 사람에게는, 제대로 책이 배달될지는 모르지만, 상당히 도움이 될 수도 있고. 

책은 뭘 쓸지 그리고 어떻게 쓸지, 이렇게 두 가지 요소로 만들어진다. 그래도 내가 행복한 것은 뭘 쓸지를 가지고 고민한 적은 없었던 점 아닌가 싶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어떻게 쓸 것인지의 문제까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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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베이스 8

영화 이야기 2023. 5. 17. 00:08

<문 베이스 8>은 우연히 봤다. 8이 붙어 있어서 시즌 8인 줄 알고, 앞에 걸 찾으려고 한참 난리를 쳤다. 그런 게 아니라 23분짜리 에피소드 6개 짜리, 그야말로 소품이라는 건 나중에 알았다. 

보는 내내 웃겨서 죽는 줄 알았다. 하이 인텔리들의 블랙 코미디 원단 같은 얘기다. 

기본적으로는 루저들에 관한 얘기다. 물론 설정상 전혀 루저라고 할만한 사람들은 아닌데, 젊은 비행사들에게 밀려서 한쪽으로 내쳐진 사람들이 주인공이다. nasa의 약자를 모르는 나사 직원들, 뭐 그거야 그럴 수도 있을까, 그렇게 넘어가지지가 않았다. 전형적인 너드.. 

하여간 너무 웃어서 한번 더 보려고 한다. 

웃다가 영 씁슬한 마음이 드는 게, 이게 남의 얘기 같지가 않다. 

마지막 장면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나사는 당신들이 어떤 마음이고, 누구인지, 잘 알아! 그리고 당신들 인생은 어떨지 모르지만, 실험은 성공적으로 잘 진행되고 있다고, 아주 리얼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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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뉴스 오브 더 월드> 다 봤다. 이래저래 복잡한 일들이 있어서, 거의 일주일 동안 띄엄띄엄 봤던 것 같다. 

뒷부분을 오늘 마저 봤는데.. 클라이막스 장면에서 팔에 힘이 잔뜩 들어가고, 정말로 감정이 움직여서 울컥했다. 이런 감정은 정말 오랜만에 느껴본 것 같다. 그래, 이렇게 되는 게 맞는 거야! 

영화는 미국이 어떻게 미국이 되었는가, 그런 것에 관한 얘기인 것 같다. 황당한 이유로 총을 들고 설치던 시절, 게다가 북부에 대한 증오가 가득했던.. 그 시절에 뉴스가 어떤 역할을 했던가, 그런 게 배경이다. 

영화는 대체적으로 잔잔하다. 물론 총질이 난무하고, 사람도 죽고 죽이고 그렇지만, 그건 시대 상황의 설정일 뿐이다. 거의 인디 영화 스타일의 소규모이고, 전형적인 상업 영화와는 설정 자체가 다르다. 그렇다고 아주 황당하거나 보기 힘든 사건을 법정에서 기가 막힌 아이디어로 다루는, 그런 아이디어의 참신함으로 승부 보는 영화도 아니다. 

실화라고 하지만, 실화라서 감동적인 것은 아니다. 그 이면에는 삶을 대하는 진지함 같은 것이 짙게 배어있다. 우리 식으로 얘기하면 막걸리 냄새 풀풀 풍기는, 그런 오래된 좋은 기자의 삶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할까. 

아직도 내가 이런 잔잔한 얘기에 감정이 움직이고 감동할 수 있다는 사실에 약간 놀라기도 했다. 그게 고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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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에세이는 아버지 장례를 치루면서 나도 집중적으로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된 얘기를 다루려고 하는 책이다. 나도 죽음과 노화와 같은 문제에 대해서 좀 더 생각을 많이 해보게 되는 나이가 되었다. 

경제학자로서는 드문 기회인데, 지난 몇 년 동안 우울증과 자살에 관한 행정에 관여하게 되었다. 국립정신건강센터 자문을 하게 되면서, 꽤 많은 행정 절차에 관련되는 특별한 경험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 얘기들을 현실에서 좀 에세이 형식으로 풀어보려고 한다. 

여기에 최근에 새로 넣은 꼭지 하나가 초등학생 자살에 대한 주제다. 아이들 둘 키우다 보니까, 그런 얘기들을 좀 더 많이 접하게 된다. 초등학생 자살이 없는 건 아니다. 가장 최근에 다룬 주제가 투신 자살한 초등학생 얘기다. 그리고 본격적인 연구까지 다 살펴본 건 아닌데, 자살에 대한 생각을 초등학생들이 일반적으로 하는 건 꽤 어린 시절 부터다. “죽고 싶다”라고 표현되는데, 대체적으로 초등학교 2학년과 3학년이 되면 그런 생각을 하는 학생들이 생겨난다. 생각보다 이르다. 

그렇다고 초등학생이 알아서 정신상담 같은 창구를 두드리게 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이게 행정적으로 어렵다. 흔히 자살에서는 ‘고위험군’이라는 표현을 쓴다. 자살을 더 많이 하게 되는 특별한 집단이 있다는 의미는 아니고, 자살 시도 등 이미 밝혀진 과거의 경험에 의해서 행정적으로 접근할 수 있게 된 집단에 대한 의미다. 초등학생 자살 고위험군, 참 생소한 주제다. 

다른 자살 이슈에 대해서는 나도 좀 다루어 본 적이 있기는 한데, 초등학생 자살은 나도 살펴봐야 하는 주제다. 그렇지만 아무도 안 볼 것 같다. 물론 관련된 논문들은 좀 있을텐데, 보통 사람들 특히 보통의 학부모가 논문까지 살펴보게 되지는 않을 것 같고. 

여러 가지 의미로 아주 유명한 사람의 자녀가 작년에 자살과 관련된 얘기로 힘든 시기를 겪었다. 이 문제는 잘 해결되어서, 지금은 아주 정상적인 상태가 되었다. 물론 부모들이 노력을 많이 했다. 특히 아빠가 많이 변했다. 부부는 이혼 절차에 돌입하기 직전이었는데, 자녀의 자살 문제 앞에서 꽤 많은 노력이 생겨났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엄마 문제보다 아빠의 문제로 자녀가 자살하는 경우가 많다. 아니 거의 대부분의 문제가 그렇기는 하다. 초등학생은 물론이고 청소년 심지어는 성인의 자살도 많은 경우 근본적인 동기는 아버지로부터 나온다. 초등학생의 경우는 더 많을 것 같다. 자녀가 자살을 하면 부모에게 생긴 상처는 평생 지워지지 않는다. 그렇기는 한데, 아버지 중에서 노력하는 경우가 그렇게 많지가 않다. 

아주 비극적인 얘기지만, 아버지로부터 문제가 생겨난 자녀의 자살은 형제나 자매들에게도 발생할 확률이 높아진다. 

죽음 에세이에서 초등학생 자살에 관한 절은 아버지들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를 담을 생각이다. 그리고 약간의 행정적 절차에 대한 개선. 청소년 자살은 이미 마음 속에 응어리 진 상태라서 풀기가 쉽지 않다. 그렇지만 초등학생 자살은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렇게 얘기했을 때, 전문가들은 어렵다고들 했다. 스스로 개선하려고 하는 아빠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래도 그게 그렇게 풀기 어려운 문제일까? 내가 던져보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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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아내가 지방 출장이다. 둘째 데리고 병원 갔다 오면서 반찬가게에서 저녁 먹을 거 이것저것 샀다. 둘째 때문에 큰 애가 요즘 계속 양보 중이라서, 이번 주에 피자 따로 시켜준다고 약속했었다. 큰 애는 피자 좋아하고, 둘째는 피자 안 먹고. 애로사항이다. 그냥 주는 대로 처먹어! 그렇게 하고는 싶은데, 둘 다 워낙 어려운 시간들을 보내는 중이라, 피자 시켜준다고 약속한 대로. 통장에서 돈이 술술 새나간다. (나는 피자에 파스타 하나 보태서, 그걸로 저녁을.) 어린이들 둘 데리고 있으면, 먹는 게 제일 큰 행사고, 의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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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조금 지나면 환갑이다. 환갑이 지나면 어떻게 살지는 아직 생각해둔 것이 없다. 어디에서 지내게 될지도 모른다. 어쨌든 ‘88만원 세대’ 스면서 시작한 경제 대장정이라고 불렀던 일련의 출간들은 환갑 전에 마무리하려고 한다. 50권째 책은 예전에 정해둔 게 있다. 윤석열이 ‘가짜 평화’라고 불렀던 바로 그 평화에 대한 얘기를 하려고 한다. 그리고 나면 아직 별 계획이 없다. 

아마 시민단체에 소소한 봉사활동 같은 거 하면서 노년을 마무리하는 삶을 살게 되지 않을까 싶다. 한 평생 아주 노곤하고 피곤한 삶을 살았다. 2005년에 첫 책을 내고, 대부분의 시간을 정말 사회 최전선에서 살았다. 한때는 격렬했고, 한때는 덜 격렬했고, 그런 차이만 있는 것 같다. 

그렇게 평생을 살 수는 없고, 그럴 생각도 없다. 그냥 내가 누리면서 살았던 많은 것들을 다시 사회와 자연에 돌려주고 사는 삶, 그런 정도만 생각한다. 생태 문제로 박사 논문을 썼고, 그런 문제 의식으로 평생을 살았는데.. 아마 노년은 인권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살아가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아마 평생 그랬던 것처럼 시대의 어려운 사람들이나 힘든 일 옆에 서 있으려고는 할 것 같다. 나는 높은 곳, 영광스러운 곳을 보면서 살지는 않았다. 거품 없이 살고 싶었고, 허세 없이 살고 싶었다. 그리고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 아이들 둘 키우다 보니까. 문제가 없는 날은 하루도 없다. 정말로 머리 아프고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는 날 그리고 그보다 좀 덜 골치 아픈 게 있는 날, 그런 날들만 있다. 그 안에서 느끼는 게 행복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행복은 모든 일이 다 끝나고 오는 것은 아니다. 그런 행복은 없다. 그냥 판타지일 뿐이다. 뒹굴면서 잠시 만나는 게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작년에는 책을 못 냈다. 연초에 좌파 에세이가 나오기는 했는데, 그건 제작년에 썼던 책이 출간만 일정상 작년으로 넘어온 것이었고. 

아버지가 2년 전 겨울에 쓰러지시고, 몇 달 동안 병원에 누워 계시다가 돌아가셨다. 주로 주말에 병원에 몇 달간 있었고, 그게 끝나고 나서는 무리했던 막내 동생이 쓰러졌다. 진짜 한해에 두 번 상 치르게 될까봐 시껍했다. 다행히 막내 동생은 의식이 며칠만에 돌아왔다. 그리고 둘째가 병원에 입원했다. 그 와중에 씩씩하게 잘 버텨준 큰 애한테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집 어린이들에게 게임기 사준다고 약속한 것은 연초였다. 큰 애가 게임기 있는 친구 집에 놀러가고 싶어하고, 집에서는 틈만 나면 게임 유튜브 보다가 혼나고, 그런 게 이래저래 좀 안되었다 싶었다. 그러다가 둘째가 힘들어지고.. 결국 닌텐도 사줬다. 그게 행복을 줄까 싶지만, 우리 집 어린이들과 나 사이의 타협 같은 것 아니겠나 싶다. 

나는 주로 에디터들과 오랜 기간 호흡을 맞추면서 책을 준비하는 편이다.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다. 최근에 에디터들이 회사를 옮기면서 몇 권이 중간에 붕 뜨게 되었다. 나도 정신이 없고, 준비도 덜 되고, 그래서 그냥 시간만 지나가게 되었다. 최근에야 정리를 좀 했다. 

이제는 나도 나이를 먹었다. 예전에는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도 더 길었고, 움직이는 범위도 더 컸다. 이제는 그때처럼 술을 많이 마시지도 않고, 그렇게 새로운 사람들과 열정적으로 얘기하지도 않는다. 얻어걸리는 얘기도 줄어들었다. 그냥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필요한 얘기들을 정리할 뿐이다. 

저출생에 관한 책과 도서관 경제학은 순차적으로 붙여서 쓰는 중이다. 워낙 오랫동안 밀리기도 했고, 이제는 더 미루기도 그렇다. 

보통 진보와 보수가 모두 동의할 수 있는 일이 그렇게 많지는 않은데, 도서관이 거의 유일한 아이템이기도 하다. 그런데 윤석열 정권이 좀 묘한 게, 도서관 문 닫는 일에 열심이다. 도서관 만들기가 얼마나 힘든데, 그걸 그냥 문을 닫으려고 하나 싶다. 마포구에서 촉발된 논쟁인데, 생각보다는 본질적인 얘기인 것 같다. 도서관은 뭐고, 책은 뭐고, 그런 생각을 좀 정리해보려고 한다. 

원래는 도서관 경제학과 책에 대한 에세이 두 권으로 디자인을 했었다. 사회적 경제 준비하면서 같이 준비된 책이니까. 진짜 오래된 얘기다. 책에 관한 에세이는 안 쓰기로 했다. 내 책도 겨우겨우 팔면서 책이란 이런 거다, 이렇게 쓰면 도움이 된다, 그런 얘기할 처지가 아니다. 꽤 긴 시간 동안 여러 권의 책을 쓰면서 나도 일종의 작업 노하우나 루틴 같은 게 생겼다. 그런 얘기를 좀 차분하게 해볼까 했었는데, 내 문제도 제대로 못 푸는 형편이다. ‘바담 풍’ 하게 생겼다. 그래서 이 책은 없애기로 했고, 그 대신 최근에 많이 생각했던 죽음에 대한 에세이를 별도로 준비하기로 했다. 지난 몇 년간 국립정신건강센터 자문을 하면서, 우울증과 자살 특히 이런 문제의 행정적 절차에 꽤 깊이 관여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도 늙어가면서 생겨난 변화들이 좀 있다. 

많은 사람들이 노화를 부정한다. 아니 부정하려고 하는 것 같다. 한국에서는 경제적인 이유로 더 그렇다. 은퇴 준비가 안 된 경우가 태반이다. 그래서 좋든 싫든, 어떻게든 더 돈을 벌어야 한다. 그거야 어쩔 수 없는 경제적 상황이지만, 그렇다고 늙어가는 것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하면, 그건 성숙이 아니라 미성숙으로 가는 길이라고 가끔 생각을 했다. 

올 하반기에는 인권연대랑 같이 ‘경제와 인권’에 대한 강의를 하기로 했다. 대학교 한 학기 준비하는 것과 비슷한 정도가 될 것 같다. 아마 이건 좀 손을 보고 내년에 나가게 될 것 같다. 

내년에는 그 외에도 두 권이 더 있다. 올해 도서관 경제학 자리에 있다가 내년으로 넘어간 것이 젠더 경제학이다. 벌써 몇 년째 계속 뒤로 미루어지고 있는데, 내년 상반기에는 정리하려고 한다. 그리고 계약상 밀려 있는 마지막 책이 10대를 위한 경제학책이다. 이것도 사연이 좀 많다. 안 해 본 출판사인 북멘토랑 하기로 했다. 

이렇게 내년까지 가면 계약 해 놓고 아직 마무리 못한 책들이 다 끝난다. 중간에 시급한 책이 끼어들어 올 수는 있는데, 지금 상황으로서는 별로 그럴 것 같지는 않다. 아버지 상 등 이것저것 개인사가 많이 끼어들어서 뒤로 밀린 것들을 이제서야 정리할 일정을 짰다. 그냥 묵묵하게 그리고 아주 조용하게 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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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가 요즘 이래저래 어려운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어제 저녁 때는 호주산 우둔살이 싸서, 그걸로 육회 해주고, 남은 건 버터 구이 해줬다. 

오늘 아침에 학교 가는 둘째한테 뭐 먹고 싶은 게 있냐고 물어봤더니 한참 고민하다가 양고기라고 그랬다. 양고기 아니면 양갈비? 양갈비랜다. 양갈비 주문했다. 주말에는 양갈비 해주고, 다음 주에 육회 한 번 더 해주기로 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인생에서 내 경쟁력은 딱 두 가지인 것 같다. 내가 먹고 싶은 건 어지간한 건 그냥 해먹고 사는 삶. 내가 해먹으면 재료 듬뿍듬뿍, 식당에서의 아쉬움 같은 것을 그렇게 해소한다. 그리고 모닝 타고 다녀도 전혀 불편하지 않은 것. 차 살 돈으로 우리 집 어린이들 먹고 싶어하는 거 해준다. 

별로 경쟁력 없는 인생인데, 그래도 경쟁력 두 가지는 있다고 생각하고, 더워지기 시작하는 오후를 그냥 버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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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 1년을 맞아, 공무원들에게 쓸 데 없는 생각하면 전부 인사 조치하라고 했다. 그렇게 할 거라고 생각한다. 

굳이 구분을 하자면, 검사들 동원했던 지난 1년간은 공안 국면이었고. 이제 그 힘을 바탕으로 범죄자 아닌 사람에게도 인사권을 기반으로 언제든지 칠 수 있다고 하는 지금부터는 공포 국면이 아닐까 한다. 골프장 가지 말라고 했던 적은 있어도, 이렇게 대놓고 공무원들에게 말 잘 들으라고 했던 대통령이 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https://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1091141.html?_fr=mt2 

 

30%대 지지율 위기감…인사권 무기 ‘공직사회 충성’ 압박

[윤 대통령 취임 1년] 윤 대통령 “과감하게 인사” 왜

ww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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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키즈 존..

잠시 생각을 2023. 5. 5. 02:05

용혜인 멋있다는 생각을 처음 했다. 

내가 세상에서 본 가장 황당한 혐오가 아동 혐오였다. 좀 이상했다.

한동안 연남동에 자주 갔었는데, 노키즈존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안 가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제주도 간 게, 국밥 집에서 우리 집 어린이들 받기가 좀 그렇다고 한 이후로.. 아직 제주도에 안 갔다. 그 사이 제주도에서 하는 행사가 아주 없지는 않았는데, 그냥 행사를 안 가고 말았다. 

노키즈 존에 대해서 저항할 수 있는 게, 현재로서는 그냥 안 가는 것 외에는 없었다.. 

 

https://www.hani.co.kr/arti/politics/assembly/1090582.html?fbclid=IwAR0jxI07SrKBsDW-q6T8diea0iXnfiShBviCOO_4BMSKJJ1Gk5MeSFPdYxo 

 

용혜인 “노키즈존 없애자”…두 살배기 아들과 국회 기자회견

“어린이 패스트트랙 제도도 추진”

ww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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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빌 액션..

영화 이야기 2023. 5. 4. 18:07

 

요즘 존 트라볼타가 나오는 영화 <시빌 액션>을 봤다. 시빌 액션은 시민 행동이라기 보다는 민사 소송의 의미가 더 강한 것 같다.  존 트라볼타도 인상적이었지만, 상대편 노회한 변호사가 존 트라볼타 갖고 놀면서 노련하게 자빠뜨리는 과정이 꽤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찾아보니까 로버트 듀발. 이게 누구야? 아이고, <지옥의 묵시록>에 나왔던 바로 그 중령이다. 

영화는 미국 매사추세츠 한 작은 마을에 생겨난 백혈병으로 사망한 자녀들의 부모가 대기업 공장을 상대로 민사 소송을 걸면서 시작한다. 세척 과정에서 아세톤과 톨루엔 등을 강에 흘려보냈고, 공장은 이걸 은폐했다. 여기에 필요한 지질 조사 등 조사 비용을 작은 로펌에서 부담하기가 어려워서, 결국 재판은 지고, 열성적인 변호사는 물론 그의 동료들까지 집 등 모든 것을 차압당하고 결국 파산하게 된다. 나중에 파산한 변호사가 파산 법정에 불려가는데, 개인 소유물은 작은 트랜지스터 라디오가 전부인 상태. 그리고 재판은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진다. 결정적 증거를 찾아서 항소하려고 하지만, 이미 망한 로펌은 그걸 감당하지 못한다. 뒷맛이 쓰다. 

결국은 미국 환경청(EPA)가 재판에 들어와서 증거 소각 등을 이유로 대기업 쪽에 섰던 변호사들 싹 다 발라버리고, 미국 최대의 환경정화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요런 뒷얘기다. 

용산에서 토양 정화 과정 없이 공원을 만들어서 “어린이들 오세요” 하는 걸 보면서 영화 <시빌 액션>이 생겨났다. 결국은 한국에서도 부모들이 길고 긴 소송을 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잠시. 영화와의 차이점은 미국은 환경청이 결국 소송에 나서서 대역전극을 이루게 되지만, 한국에서는 국토부와 환경부를 상대로 재판을 해야 한다는 게 차이점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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