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휴식겸, 죽음 에세이 첫 번째 글을 쓰려고 하는데.. 하이고, 첫 번째 문장이 안 잡힌다. 사실 수정 작업이 더 힘들다. 뭔가 고쳐야 하면, 지금까지는 해놓은 거 다 버리고 새로 시작했다. 사회과학의 경우는, 해 놓은 거를 살리는 것보다는 새 틀에서 새로 설계하고, 새로 만드는 게 몇 배는 더 빠르다. 아깝지 않나? 아까운 것은 새로 쓰면서 새 틀 안에 어차피 녹아들어가게 된다. 살아오지 않는 내용은, 어차피 필요 없던 내용일 가능성이 높다. 쓴 글을 다시 돌아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어차피 머리 속에 있는 거면, 어떻게든 반영된다. 

에세이의 경우는 좀 다르다. 한 번에 쓰는 게 오히려 안 좋다. 그때그때 쓴 글들을 모으는 경우가 더 나을 수가 있고, 시간의 변화와 상황의 변화가 분절적으로 들어가는 게 더 낫다. 연속된 하나의 글이 아니라, 독립된 글들의 모음이라서 그렇다. 

잘 안 하던 일이기는 한데, 이번에는 수정 작업을 하기로 했다. 사회과학 책을 연속해서 쓰면, 지난 번 작업의 잔상이 남아서, 뭔가 이어지는 느낌이 든다. 나는 이 느낌을 안 좋아한다. 전혀 다른, 완전 새로운 것이 되기를 희망한다. 그래서 문체도 조금씩 새로운 실험을 하고, 스타일도 바꿔보고 그런다. 

최근에 변화가 좀 있다. 도서관 책부터 서문을 없앴다. 내가 책 쓰는 스타일상, 대가리가 좀 크다. 앞에 부드럽게 이것저것 깔며서 시작하는 편인데, 그러다보니까 핵심적인 내용이 조금 뒷쪽에 나온다. 안 그래도 대가리가 큰데, 서문까지 붙으면 대가리 쪽이 너무 비대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서문을 없앴다. 서문에 해당할 얘기를 리딩 느낌의 앞쪽 글에 짧게 써도 된다.

서문을 없앤 또 다른 이유는.. 어쩐지 서문 자체가 권위적으로 보이게 만든다. 현실적으로 나는 아무 권위가 없고, 권위를 가진 것처럼 보일 이유도 없다는. 정말 별 볼 일 없는 인간인데, 서문을 쓰면 아무리 조심하려고 해도 어깨에 힘들어간다. 현실적으로 내 처지에 그런 힘 들어간 글을 쓸 이유가 전혀 없고, 그게 좋은 일도 아니다. 후기도 가능하면 어깨에 힘 빼고 쓰려고 한다. 이미 한 얘기를 더 강조해서 쓰는 경우가 몇 번 있었다. 이런 일도 안 하려고 한다. 

어쨌든 있지도 않은 권위는 최대한 내려놓고, 조금이라도 읽기에 편하게 만드는 게 요즘 내가 글을 쓰면서 신경 쓰는 점이다. 아이들 키우면서 내가 뭐가 변했을까? 변하긴 변했다. 정체성도 바뀌고, 태도도 바뀌었다. 그런 변화가 최대한 글의 스타일 속에 녹아들어가게 하려고 한다. 

나이 먹으면서 점점 더 권위적으로 바뀌는 많은 남자들의 자연스러운 변화, 나는 이 자연스러움이 너무 치떨리게 싫었다. 진짜로 싫었다.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다. 그런 생각들이 내가 쓰는 책의 형식에도 조금은 반영되기를 원했다. 그러다 보니까 결국 서문을 버리게 되었다. 형식이라도 뭐를 바꿔야 실제로 내용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싶은. 

그렇게 마음을 먹고, 전격적으로 쓰는 첫 번째 글이 이번 죽음 에세이의 맨 앞에 나올 첫 번째 글이다. 생각만 그렇고.. 실제로는 한 문장도 못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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