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대한 단상'에 해당되는 글 316건

  1. 2022.12.20 내 인생의 노래 1 “Lovin’You” 1
  2. 2022.11.30 카톡 생일 알림..
  3. 2022.11.17 어느 광고.. 2
  4. 2022.11.08 몇 달만에 비틀즈..
  5. 2022.11.04 samba pa ti 1
  6. 2022.10.22 근조 정태인
  7. 2022.10.21 아디오스 정태인 10
  8. 2022.09.22 안녕, 이인표.. 1
  9. 2022.09.08 사랑이란.. 1
  10. 2022.09.06 사랑에 대하여..

살다 보면 많은 노래가 삶의 중요한 부분에 끼어들게 된다. 나도 참 많은 노래를 들었는데, 지금 와서 돌아보면 가장 중요한 노래가 문득 미니 리퍼튼의 “Lovin’You”였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듣던 많은 노래들은 LP를 샀거나 혹은 CD를 샀거나, 아니면 음원이라도 산 노래들이다. 많은 노래들은 LP를 사던 순간의 기억 같은 것과 같이 있다. 이 노래는 어떻게 듣게 된 건지, 어디서 난 건지, 그것도 모른다. 그렇지만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노래를 꼽으라면,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면, 이 노래였던 것 같다. 

2000년대에 차에서 쓰는 CD 플레이어처럼 생긴 MP3 플레이어가 잠시 출시된 적이 있었다. 그러면 차에서 180곡 내외를 들을 수 있다. 게다가 좋은 건, 시동을 꺼도 끝난 부분에서 시작할 수 있다. 여기서 음원을 뽑아서 카세트 테이프처럼 생긴 카트리지로 소리를 릴레이하는 방식이다. 그 시절만 해도 CD 플레이어가 달린 차는 거의 없었고, 대부분의 차가 카세트 테이프 플레이어를 달 수 있었다. 거기서 MP3를 들을 수 있다니, 거의 혁명 같은 일이었다. 이 MP3 플레이어는 온도에 약해서 잘 망가졌고, 아마 세 대를 샀던 기억이다. 플레이어 자체는 그렇게 비싸지 않았는데, 이것 때문에 차에 좋은 스피커를 달고, 앰프도 다 새 거로 바꾸게 되었다. 나중에는 차값보다 오디오 값이 더 비싸게 되었던. 

그렇게 차에 묻어온 MP3 중에 “러빙유”가 있었다. 요즘은 차에 가수와 곡명은 물론이고 앨범 레이블까지 다 뜬다. 그 시절에는 그딴 건 없었다. 물론 파일을 열어서 보면 알 수야 있겠지만, 그렇게까지 열심히 살지는 않았다. 영동 고속도로를 가면 대관령 구간을 넘어가야 한다. 그 구간에서 이 MP3 플레이어는 평균적으로 두 번 정도는 튀는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정지했다. 별 수 없던, 그런 시절이었다. 요즘은 핸펀에서 블루투스로 연결하니까 아무리 거친 구간이라도 튀고 말고, 그딴 건 없다. 

누군지도 모르고, 뭔 얘기인지도 모르고 그냥 들었는데, 나는 무슨 유명한 소프라노가 부른 건가, 그랬다. 나중에 보니까 미니 리페튼이라는 싱어송 라이터가 초창기에 자기 딸을 키우면서 만든 노래였다. 그딴 것도 다 몰랐다. 

2001년, 2002년, 그 시절 나는 겉으로는 화려하게 살고 있었는데, 정서 상태는 완전 개판이었다. 대통령은 김대중이었는데, 초장에 청와대 근무에 대해서 “싫어요”, 그러고 말았드랬다. 이유는 별 게 아니다. 7시에는 출근해야 한다는. 총 맞았어요, 그런 짓을 하게, 그러고 말았다. 대통령 만찬에 갈 기회가 지금까지 몇 번 있었는데, 그것도 다 안 갔다. 그것도 별 이유는 아니다. 그런 만찬 한 번 가서, 술도 한 잔 얻어마시고 오려면, 최소 다섯 시간을 금연을 해야 한다. 한 시간 전에는 오라고 그러고, 어딘지도 모르는 데서 대충 대기하라고 그러고, 그러다가 결국 담배를 피울 수 있게 되는 시간이 대충 따져보니까 다섯 시간 정도 된다. 미쳤어? 물론 엄청 중요한 일이라면 다섯 시간 아니라 열 시간도 참을 수 있는데, 그게 고작 밥 한 그릇 먹기 위해서라면.. 일 없슈, 그러고 말았다. 청와대 만찬이라는 게, 한 번 싫다고 하면 어지간하면 다시 권유하는 일은 없다. 그런 이유로 대통령 만찬에 안 갔다고 하면 사람들이 웃을텐데, 어쨌든 나는 평생을 그렇게 살았다. 

문재인 대통령 되기 전에 둘이서 소주 한 잔 마신 적이 있다. 그 전에 가끔 그가 나에게 뭘 해주면 되겠느냐고 할 때마다 나중에 여유 되면 소주나 한 잔 사주세요, 그랬드랬다. 그리고 정말로 소주 한 잔 샀다. 나는 그걸로 그에게 받을 건 다 받았다고 생각한다. 

2000년부터의 몇 년간, 나는 정체성의 불편함이 극도에 달하던 시절이고, 뭘 하고 살지 심하게 방황하던 시절이었다. 흔히 말하던 보수들의 세계에 너무 깊이 들어가 있었고, 이제는 어떤 식으로든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것을 나도 느끼던 시절이다. 하다못해, 내가 상공회의소의 주포였었다. 상의의 중요한 발표들을 토론회에서 내가 하던 시절이었다. 전경련에서 술 마실 때면 뭐 해주면 여기서 일할 수 있겠냐, 그런 거 물어보기도 했다. 웃기만 했었다. 

개인적인 삶도 개판이었다. 일요일 오후마다 어머니가 집에 오셔서 결혼하라고 아주 난리를 치셨다. 몇 달 그러고 버티다가, 도저히 못 살겠다 싶어서, 토요일 밤 12시면 여행을 떠났다. 그 시간에 떠나면 밤새 전국 어디든지 갈 수 있다. 강진 같은 데도 갈 수 있다. 진도 평택항도 그때 처음 갔었고, 사람 없을 만한 여행지들은 그 시절 대부분 가봤다. 그렇게 밤새 운전하고 가서 아침에 아직 아무도 오지 않을 때 아침을 사 먹었다. 적당히 여기저기 보고, 저녁까지 대충 먹고 해 떨어지면 집에 들어왔다. 

그 직전까지는 토요일이 근무일이었다. 가가 싫어도 토요일날 죽어라고 출근해서 좀 버티다가 돌아오던 시절이었다. 집에 오면 술 때려 마시고 놀고 싶은데, 다음 날 어머니가 오시니까 좀 자는 둥 마는 둥 하다가 밤 12시에 운전하고 나가는 삶, 그렇게 살았다. 술은 일요일 밤에 마셨다. 

시간은 얼마 없고, 도저히 힘들어서 술은 마셔야겠고… 그때 주로 마시던 술이 보드카와 포카리스웨트를 혼합한 소위 “뿅가리스웻”, 정말 TV 틀어놓고 이거 마시면 달달하던 입맛이 어느 덧 사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약 느낌이 어떤 건지 직감할 수 있는 상태가 된다. 

그 불안하던 정서에서 “러빙유”가 흘러나오면,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들었다. 마음이 정말 편해졌고, 좀 더 달달한 인생을 살고 싶다는 느낌이 강렬혀졌었다. 

물론 그때는 스피커가 좀 도움을 줬다. 프라이드 웨건을 타고 있었는데, 자료집 실던 뒷부분의 한쪽에다 인클로져가 어마무시하게 큰 우퍼를 달았었다. 원래 자료집이나 책 같은 거 실으려고 웨건을 샀던 거였는데, 결국은 그 자리의 일부를 스피커가 차지했다. 일반 승용차에도 이런 스피커를 다는 경우도 있기는 하다는데, 뒷자리를 전부 가려서 운전할 때 위험하다. 나 말고 그런 스피커를 달고 있는 차는 아주 오래 전 문정동에서 지프 랭글러에서 한 번 본 적 있다. 나 말고도 미친 넘이 또 한 명 있군, 그렇게 웃고 넘어갔다. 

새벽에 대관령 넘어갈 때 미니 리페턴의 “러빙유”가 나오면, 정말 삶을 재밌게 살고 싶고, 뭔가 잘 해 보고 싶고, 그런 생각이 가득해진다. 그런 기억이 워낙 강해서 그런지, 나중에 신혼여행도 강릉으로 갔다. 사람들은 뭐라고들 했는데, 그때 아내에게는 나중에 길게 간다고 했었다. 결국 취리히에 한 달, 파리에 한 달, 그렇게 따로 여행을 갔다. 나는 약속한 건 지키는 편이다. 

몇 달 아니, 몇 년간 고민이 많았는데, 결국 사직서를 내는 걸로 그 시절을 마무리했다. 정부에서는 좀 참고 넘어가면 해외 파견 자리를 챙겨준다고 했었는데, 고맙지만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다시 시민운동으로 돌아와서 활동을 시작했고, 그때부터 책 쓰는 준비를 시작해서, 2005년에 첫 책이 나오게 되었다. 

그 시절을 생각해보면, 결국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노래는 즐겨 듣던 락도 아니고, 재즈나 칼라스 같은 성악곡도 아니었던 것 같다. 누군지도 잘 모르고, 뭐 하자는 노래인지도 모르고 그냥 어떻게 생긴 건지도 모르면서 들었던 미니 리퍼튼의 “러빙 유”가 내 인생에 가장 중요한 노래가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그에 마야라는 이름의 딸에 대한 노래였다는 것은 아주 나중에 알았다. 어쩐지, 그 노래를 들으면서 생기는 감정이 더 좋은 연애를 하고 싶다거나, 누군가를 강렬히 사랑한다, 그런 느낌이라기 보다는 좀 더 편안하고 그런 삶에 대한 생각이 더 많이 들었다. 그게 어린 딸에 대한 노래였던 거, 난 정말 꿈에도 몰랐다. 그렇지만 그런 정서가 생겨난 것은 진짜다. 

살다 보면, 삶의 카르푸르, 사거리 같은 곳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 순간 같은 게 있다. 나에게는 2001년의 복잡한 상황이 그랬던 것 같다. 그리고 문득, 그 안에서 괜히 희망 혹은 위로 같은 것을 느끼게 되는 계기가 있을 수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림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시가 될 수도 있다. 나에게는 도대체 왜 나에게 온 것인지, 유래도 정확히 모르는 노래 한 곡이 그 역할을 했다. 

미니 레퍼튼 “러빙유” 싱글이 나온게 1974년인데, 그녀는 암으로 5년 후에 사망하게 된다. 짧은 삶을 살다가 갔다. 아무도 모르겠지만, 그녀의 삶은 30대 초반의 내 삶을 좀 더 밝고 건전한 방향으로 구원하는 역할을 했다. 

내 인생의 노래를 고르라면 아무래도 Lynyrd Skynyrd의 “Free Bird”가 될 거라는 생각을 오랫동안 했었는데, 막상 50대 중반에 다시 돌아보니, 그야말로 이유도 모르고 들었던 “러빙유”였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평소 같으면 이런 노래 간지러워서 어떻게 듣드냐고 했었을지도 모르지만, 삶이 이래저래 엉망진창이던 순간, 헤비메탈과 국악 사이에 끼어 있던 노래 한 곡이 내 삶의 경로를 바꾸게 된 것 같다. 

사실 “러빙유”는 차에서만 들었고, 집에서는 거의 들은 적이 없다. 언젠가는 CD 한 장 살 생각이다. 

결국 회사는 그만두었고, 결혼은 했는데, 아이가 태어난 것은 결혼하고 9년만의 일이었다. 연달아 둘째가 태어나서 아이 둘을 키우는 아빠가 되었다. 아들을 키워서 그런지, “러빙유”, 그런 감정이 드는 일은 거의 없다. 이 아이들이 날 좀 그만 괴롭히면 좋겠다는 생각만 많이 들었다. 




 

https://youtu.be/kE0pwJ5PMD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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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톡은 안 쓰다가 몇 년 전에 택시 잡기가 너무 어려워져서 카카오택시 쓰면서 결국 가입하게 되었다. 뭐가 엄청나게 온다. (그렇지만 결국은 카카오택시도 잡기가 어려워져서, 카톡만 남은.)

카톡에서 생일을 알려준다. 제일 처음 생일이라고 뜬 사람이 이제는 떠나버린 정태인 선배였다. 늘 마음이 짠해서, 생일 선물로 커피 쿠폰 보냈다. 그 전에는 종종 술도 받아드리고 했었는데, 살아서 내가 사드린 마지막 선물이 바로 그 카톡 커피 쿠폰이 되었다. 그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좋은 거 사드릴 걸, 오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모든 사람에게 생일 선물을 하는 건 아니고, 나도 매일 카톡을 들여다보는 건 아니고.. 그래도 눈에 띄면 그냥 넘어가지는 않고, 1~2만 원 선에서 뭐라도 보내려고는 한다. 가끔 들여다 보는데, 딱 생일이라고 나오면 이것도 인연이겠지, 그렇게 선물을 보내기 시작한 게 몇 년 된다. 그래봐야 한달에 한두 번, 자주는 아니다. 

몇 년째 나는 긴축경제를 꾸려가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알고 지내는 사람 몇 명한테 생일선물 보내는 것도 힘들 정도는 아니다. 일부러 찾아서 하지는 못해도 카톡에서 누군가 생일이라고 알려주면 그냥 선물을 하는 것은.. 내가 나이를 처먹어서 그렇다. 친한 친구들이 이미 여럿 떠났고, 같이 일하던 사람들도 많이 떠났다. 거의 비슷하게 살았던 나도, 언제 죽어도 안 이상하다. 생각해보면 사람들에게 베푼 게 별로 없다. 그냥 늘 도움만 받고, 늘 고맙기만 하면서 살았다. 조금이라도 갚고 떠나는 게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을 몇 년 전부터 조금씩 하기 시작한 것 같다. 

간만에 아는 사람이 생일이라고 떠서 정말 약소한 선물 하나 하면서, 이걸 처음 시작한 게 정태인 선배 생일이었다는 생각이 갑자기 났다. 아직도 정태인 선배 없는 세상에 산다는 게 잘 실감이 안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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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가 떴는데, 색깔이 예쁜 스피커라고 생각하고 눌러봤더니 ㅠㅠ. 연필깎이다. 빨간색 스피커인줄 알고 확 눈이 갔드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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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만에 비틀즈를 틀었다. 별 이유는 없고, 클래식 기타로 편곡한 비틀즈 연주를 며칠 계속 듣다보니, 원래 노래가 듣고 싶어져서. 생각해보면 내가 날 위해서 하는 유일한 일이 음악 듣는 것밖에 없다. 좀 더 편한 마음으로 음악을 좀 더 듣기로 했다. 

오늘 막내 동생하고 통화했다. 짧게 통화했는데, 며칠 전에 사경을 헤매다가 깨어났고, 어제 중환자실에서 집중 치료실로 옮겼다. 아버지 병실에서 무리했던 후유증이다. 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 수술도 하기 힘들다고 그럴 때에는 좀 난감했다. 

몇 주 전에 병가 내고 좀 쉬라고 그랬는데, 그딴 거 없다고 들은 척도 안 했드랬다. 먹고 사는 게 뭔지. 

갑자기 회의를 해야 한다고 연락이 두 군 데서 왔는데, 사정상 나는 어렵다고 그랬다. 두 개 다 취소 되고, 다시 날자를 잡는다고 한다. 적당히 좀 하지.. 

큰 애는 손가락 욕을 해서 태권도장 관장님에게 크게 혼났고, 아직 반성문 쓰는 중이다. 둘째는 결국 비만 클리닉에 갔다. 다음 번 병원은 내가 데리러 가기로 했고. 다음 주에 합병증 검사를 하기로 했는데, 운동 많이 하는 것 외에는 다른 건 없는 것 같다. 

이것저것 생각하다 보니, 비틀즈 앨범 한 장이 다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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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ba pa ti

책에 대한 단상 2022. 11. 4. 03:12

산타나는 지난 10년 동안 들은 적이 없는 것 같다. 애 키우면서 산타나 들을 형편은 아니다. 저녁 때 어머니랑 잠시 통화하고 나서, 하이고.. 막내 동생은 병원에서 의식은 돌아오기는 했는데, 아직 자발 호흡은 못하고, 말은 못 한단다. 어머니에게 그 소식을 알려드렸다. 위급한 상황은 넘어갔고, 이제 중환자실에 있어서 한시름은 놓았다고. 어머니랑 같이 사는 바로 밑의 동생은 막내 쓰러졌다는 얘기 듣고 아프다고 누워서 아까 잠깐 일어났다가 다시 누워 있다고 한다. 

지난 주말에는 아내가 응급실에 갔다왔고.. 다음 주에는 둘째 병원에 검사가 있어서.. 이래저래 올해는 병원에서 사는 것 같다. 

20대에는 산타나 정말 좋아했다. 카를로스 산타나, 이름만 들어도 그냥 좋았다. 유학 중에 너무 돈이 없을 때가 있어서, 가지고 있던 cd랑 비디오들 중고로 판 적이 있었다. 정말 팔기 싫었던 게 산타나 공연 실황 비디오였는데, 그게 그래도 꽤 괜찮은 가격을 받았던 기억이 얼핏. 그렇게 좀 버티다가, 방학 때에는 식당에서 서빙 알바도 하고 그랬다. 그때는 몰랐는데, 그 시절에 알바했던 경험이 사실 인생에 큰 도움이 되기는 했다. 

간만에 산타나 음악을 듣는데, samba pa ti, 아련하게 듣는데, 갑자기 눈물이 왈칵. 

Super natural 나온 뒤에 산타나는 세계적으로 훨씬 더 유명한 사람이 되었는데, 비디오 테이프 판 뒤로는 이상하게 산타나 음악을 많이 듣지는 않았다. 가끔 듣기는 했는데, 그냥 수많은 음악 중에 하나처럼 잠시 들었을 뿐이다. 

내가 살고 싶던 삶이 산타나 같은 삶이었다는 생각이 문득. 그래서 눈물이 잠시 났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 시절 생각하면 나도 참 먼 곳으로 왔다. 정말 너무 먼 곳으로 왔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맑스나 레닌을 인생의 모델로 생각한 적은 없었던 것 같고.. 굳이 인생의 모델이라면, 산타나와 이브 몽땅을 훨씬 더 감성적으로 좋아했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땀 뻘뻘 흘리면서 얌전하게 눈 감고 음악을 음미하면서 연주하는 산타나의 모습이 너무 좋았었다. 도대체 삼바 파티라는 그 열정적인 상황에서 이 침착한 정열이란 뭘까 싶었다. 오랜만에 samba pa ti 들으면서,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잠시 그런 생각을. 

 

https://youtu.be/pqJXVvKb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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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인 선배가 결국 떠났다. 하이고, 그간 일도 참 많았다. 

술도 많이 마셨고, 담배도.. 그 시기에 나는 술을 좀 줄이려고 하던 시기였고, 태인이 형은 술 말고는 달리 재미를 못 찾던 시기기는 했다. 태인이형이 술을 좀 줄인다고 하던 시기에는 와인을 주로 마시려고 했었는데, 그 시절만 해도 와인바에는 절대 안 가던. 나 대신에 이재영하고 둘이 와인바에 갔었다는데, 둘 다 이제 떠나간 사람이 되었다. 

한동안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유종일 선배는 암을 한 번 호되게 겪고, 그 뒤로는 아주 살살. 이재영은 벌써 떠났고, 너무 많은 일을 같이 했고, 너무 많은 것이 엉킨 삶을 살았는데, 정태인 선배의 시대가 끝나고, 이제는 정말 한 시대가 넘어간다는 생각을 지우기가.. 

태인이형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날, 그 날도 여의도에서 둘이서 같이 낯술 마시고 있었다. 아버지 얘기도 참 많이 들었는데. 

한 때 많은 사람들이 방배동 근처로 이사가는 게 유행이었다. 조국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그 근처 일대에 살았다. 나한테도 같이 가자고 하는 사람들이 좀 있었는데.. 안 그래도 강남 좌파라는 소리 듣는데, 별로 그렇게는 안 가고 싶다고 했었드랬다. 그리고 나는 강북으로 이사를 했다. 그 뒤로는 술 좀 덜 마실까 했는데, 뭐 크게 차이는 없이 한동안 계속. 

칼 폴라니 연구소 만들 때 같이 하자고 했었는데, 나도 살아야겠다, 한 방에 어렵다고 했다. 그리고 스트레스 너무 많이 받을 거라서, 형도 그거 하지 마시라.. 그랬다. 너무 스트레스 많이 받고 잘 안 될 것 같은데, 그런 데 힘을 쓰는 것도 그렇고. 박원순 너무 믿지 말라는 얘기도 했던 기억이다. 전폭적인 연구 지원, 그런 건 아마 없을 거다.. 하이고, 이 사람도 벌써 떠났네. 그 뒤로도 기회 닿을 때마다 연구소에서 적당히 물러나고 본인 삶도 좀 챙기시라고, 그런 얘기를 했던 기억이다. 연구소 앞에 카페가 있을만한데 없다고, 카페를 꼭 내고 싶다는 얼척 없는 소리만. 

태인이형 쓰러지기 직전에 저녁 때 술 약속이 있었다. 까먹고 있었다고 나중에 연락이 왔다. 그리고는 며칠 후에 쓰러지신 것 같다. 좀 지나지 않아 우리 아버지가 쓰러지셔서, 나도 아버지 상 치루고 이것저것 정리하느라 정신이 없게 된. 

보수 쪽 인간들 중에는 이렇게 일찍 죽는 사람을 별로 잘 못 봤다. 죽어라고 돈만 벌어야겠다고 더러운 일 치사한 일 피하지 않던 교수들 중에서 좀 일찍 암으로 죽은 사례들을 보기는 했지만, 그렇게까지 유명한 사람들이 아니라서. 참 많이들 죽었다. 

정치경제학으로 모인 사람들이 한 때 꽤 많았는데, 김수행 선생 떠나신 이후로는 태인이 형이 가장 유명하지 않았나 싶다. 그 시대도 이제 마지막인 것 같다. 

지난 몇 년간, 태인이 형이 하자고 한 것들을 나는 다 싫다고 했고, 형도 내가 하지 말라는 것만 했던 것 같다. 그 시대가 그렇게 끝나가는 중이었던 것 같다. 

문재인 당대표 시절에 정태인과 자리를 주선하려고 했었는데, 얼굴이 급 어두워져서 결국 추진하지 못했던 기억이.. 그 사람들 사이에 무슨 일이 오고 갔는지는 잘 모르겠고. 

마지막 통화하던 기억들은, 이젠 술 끊었다고 하면서 결국 전화 말미에는 나와서 낯술 마시자고. 애들 어린이집 다닐 때 하원하기 위해서는 낮에 시간이 있어도 술을 마실 수가 없다. 내가 술 마셔서 운전 못한다고 나자빠지면 우리 집은 비상 사태다. 좋게 좋게 생각하려고 한다. 그래도 그렇게 내가 낮술이라도 몇 번 못 마시게 해서, 그나마 이만큼이라도 사신 거 아니냐는. 

정태인과의 시대, 참 술 많이 마셨고, 낮술도 진짜 많이 마셨다. 애들 좀 크면, 그렇게 적당히 낮술 같이 마시면서 노년을 보내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태인이형은 노년이 되자마자 떠나가버렸다. 

민주노동당 시절에는 학위 마처 챙겨서 하라고 내가 달달 볶았었다. 생의 마지막에 결국 학위를 하기는 했는데, 그때는 내가 말렸었다. 건강도 메롱이고, 학위 꼭 안 받아도 되는데, 뭐하러 힘들 게 그런 걸 하냐고 말렸었다. 선배는 선배인데, 하여간 말은 더럽게 안 들어 처먹은.. 북한 연구 같이 하자고 해서 그때도 한칼에 싫어요, 했드랬다. 태인이형이 말을 안 들은 건지, 내가 안 들은 건지, 지금 와서는 그것도 좀 모호하다. 

아마 내가 전격적으로 아이를 보게 되지 않았다면 그후로도 오랫동안 나는 태인이형과 별 특별한 의미도 없는 얘기 하면서 낮술 마시면서 살았을 것 같은데, 인생이 그렇게 풀려나가지는 않았다. 

상가에는 내일 저녁 때 가보기로 했다. 토요일, 간만에 우리 집 어린이들 데리고 같이 갈 생각이다. 상가집에 어린이들 데리고는 잘 안 가는데, 그래도 내가 선배라고 부를 수 있는 거의 마지막 시대의 사람이 아닌가 싶은.

아디오스 정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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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맨 김학도와 한참 방송하던 시절, 같이 어울리던 친구 한 명이 이인표였다. 재주가 너무 아까운 친구였다. 책을 출간할 수 있게 주선을 했던 적도 있었다. 김학도랑 셋이 같이 술 마시러 다니던 시절, 그때만 해도 나는 아직 젊었었다.


암 치료 시작한다는 얘기를 몇 년 전에 들었고, 조만간 한 번 보자고 했는데..


오늘 부고장이 왔다. 


마음 속에 또 한 명의 친구를 묻는다. 이제 51세인데, 고생만 하다가 한 번도 제대로 피워보지 못하고.. 그 환한 미소가 아직도 눈에 선하기만 한데.

안녕, 이인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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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시절, 매주 나꼽살을 녹음하고, 아주 바쁘게 살았다. 좋은 세상은 무엇일까, 그런 고민을 많이 하던 시절이었다. 그때도 건강이 별로였는데, 그냥 이를 악물고, 이런 시대는 곤란하다는 생각으로 살았다. 

그런 어느 날, 그때 살던 집 마당에 고양이들이 태어났고, 식구를 이루고 살기 시작했다. 결국 열 마리 넘는 고양이들을 돌보게 되었다. 고양이들은 계속 태어났고, 며칠이면 몇 마리는 또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그때마다 마음이 무거워지고, 또 새로운 고양이가 태어나고는 했다. 

시간은 MB 후반기로 향했고, 한반도 대운하는 4대강으로 모양을 바꾸어 한참 추진되던 그런 시점이었다. 그때 나를 가득 채운 감정이 증오라는 생각을 했다. 증오하고, 또 증오하고, 그렇게 과연 세상이 좋아질까, 그런 질문을 문득 했다. 조국 선배랑 일을 하기 시작한 것도 대략 그 시점 언제였던 것 같다. 

대선에서는 박근혜가 이겼다. 그때부터 몇 년간, 문재인과 아주 뜨거운 몇 년간을 보냈다.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정세균이 국회의장이 될 즈음부터 문재인이 대통령이 된 이후로 뭔가 해보라는 얘기가 많았는데,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그냥 애들 보면서 이제는 단촐하게 집에서 살던 고양이 한 마리만 남게 된 후, 더 이상 더 많은 고양이를 돌보지는 않게 되었다. 전세로 살던 이전 집은 마당이 아주 크고 넓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동네에 민원도 너무 많았었다. 

이재명과는 성남 시절부터 잘 알고 지내던 사이다. 그 시절에도 일을 같이 했었다. 경기도지사가 된 이후 초반에 곤란한 문제들에 그가 부딪혔을 때, 좀 도와달라고 연락이 왔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혼동스럽던 시절, 도와준 적이 있다. 아주 오래 전 일일 뿐이다. 

나의 40대는 뜨겁게 지나갔지만, 어떻게 보면 증오 속에서 지나간 것인지도 모르겠다. 

좌파 에세이를 쓰면서, 혼동스럽던 나의 삶도 한 번은 정리가 되었다. 한국에서 좌파에게 주어진 자리는 거의 없거나, 아주 희박하다. 그냥 그렇게, 밥이나 먹고 살다가 죽으면 되지 않을까, 그렇게 마음을 먹었다. 그래도 지키고 싶은 것, 도서관이나 지역 경제, 그런 얘기들을 조그맣게 해보려고 한다. 

내가 바라는 것은 다양성의 시대이고, 사람들이 조금은 더 소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시대다. 삼각형을 그려 놓고 그 꼭지점을 향해서 모두가 올라가려고 발버둥치는 사회, 그건 지옥과도 같다. 마름모꼴 사회가 쉽게 얘기하면 중산층이 많은 사회인데, 삼각형 사회보다는 이 사회가 긴장도가 조금 더 낮다. IMF 경제 위기를 경계로, 한국은 매우 빠르게 삼각형 사회로 전환되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그 전환 과정 속에서 온갖 기이한 현상들이 벌어진다. 

초기 자본주의는 철저한 피라미드 즉 삼각형 사회였는데, 자본주의가 변화하고 또 적응하면서 마름모꼴 사회를 만들었다. 한국 자본주의는 거기에서 한 발 더 나가서, 연령 구조에서 극단적인 역 마름모꼴 형태로 가는 중이다. 농가들이 먼저 만난 이 현상은 사회 전체로 퍼져나갔다. 

이 문제에 해법이 없을까? 기술적 해법이 없지는 않겠지만, 사회적으로 도달할 방법은 없어 보인다. 시스템의 의사 결정, 이건 어려운 일이다. 대중의 결정을 민주주의라고 부르기는 하는데, 이게 반드시 옵티멈으로 도달한다는 보장은 없고, 장기적으로 그게 꼭 효율적이라는 보장은 더더욱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수가 의사 결정을 독점으로 가는 방식으로 진화하지 않는 것은, 소수 독점에 의한 사회적 비용이 결국 더 크게 되기 때문이다. 

<솔로 계급의 경제학>을 쓰면서 다른 조건은 다 같고 내가 만약 지금 여대생이라면 어떠한 선택을 내릴 것인가, 그런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내가 지금 20세 여대생이라면 나도 결혼하지 않는 편을 선택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 적이 있다. 

오늘부터 새로운 질문을 던져보기로 했다. 내가 지금 대학생이라면 나는 어떤 삶을 선택했을까? 성격과 조건은 다 똑같고, 사회적 조건만 바꾼 상황에서의 질문이다. 그 시절에도 짝사랑만 하고 연애는 거의 없었는데, 지금이라고 다를 것 같지는 않다. 대학교 3학년 때 서울민중연합, 서민련의 반상근 간사가 되면서 내 인생은 전혀 다른 곳으로 가게 되었다. 지금도 그런 선택을 할 것일 것? 쉽지 않은 질문이다. 그렇지만 아마도 <자본론>은 읽었을 것 같다. 20대 내내 책이라면 닥치는 대로 읽었으니까 아마 그건 나의 개성이 아닐까 싶다. 

이런 질문들을 던져보면서, 우리가 살아야 할 미래에 대해서 좀 생각을 해보려고 한다. 사랑, 여전히 미래에 대한 중요한 고민이다. 

아내랑 결혼하기로 마음을 먹은 건, 새만금 방조제에 올라가기 전에 삭발을 했을 때였다. 아마 지금 대학생이라도, 그렇게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위해서 과감히 움직이는 사람을 사랑하게 될 것 같기는 하다. 그리고 책은 여전히 많이 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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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은 지나갔고, 미세먼지 흔적도 없는 청명한 하늘이 나왔다. 

우리 집 어린이들은 날씨 좋은데 학교 안 간다고 느무느무 좋아한다. 나도 저 나이 때에는 홍수 때 비 더 와서 학교 안 가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래도 21세기 들어와서 한국이 좋아졌다고 느끼는 것은, 학교 급식이 아주 튼튼해졌다는 것 그리고 암 환자 치료가 너무 재앙이 되지 않는다는 것 정도 아닐까 싶다. 애들 점심 해주려면 학교 급식 수준은 가야 심통 안 낸다. 돼지 불고기 왕창 해줬다. 엄청 먹는다. 나도 저 나이 때 무지무지하게 먹었다. 그때는 공기가 지금보다 더 큰 고봉으로 먹었는데, 두 공기는 기본 먹었고, 반찬이 조금만 맛있으면 세 공기도 먹었다. 그래도 그때는 살이 안 쪘었다. ‘우갈비’가 별명이던 시절이 있었다. 

며칠 전부터 애들은 나랑 하루에 몇 번씩 칼싸움을 한다. “아빠, 밥 먹고 칼쌈 한 판?” 둘째가 요즘 칼싸움을 너무 좋아한다. 그러다 보니까 둘 다 실력이 좀 늘었다. 이제 애들하고 캐치볼 해주고 싶은데, 코로나 이후로 학교 운동장이 문을 닫아서 아직도 글러브로 공 잡는 걸 가르쳐주지 못했다. 

우리의 미래는 노동 시간이 더 줄어들고, 생산성이 높아지는 방향으로 가는 게 맞는 것 같다. ‘사랑의 노동’이라는 표현을 프로이트 책에서 본 적이 있다. 물론 20세기 감성에는 그 얘기가 잘 안 맞았다. 사랑하는 사람끼리 같이 일 할 수 있게 해주어야 인류가 멸망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코로나 이후로 ‘코디보스’라는 신조어가 나왔다. 격리 때문에 부부가 하루 종일 같이 있게 되니까 이혼이 늘게 되었다는 얘기다. 21세기 감성에는 맞을까? 통계로 알기는 어렵다. 사내 결혼이나 동업자 사이의 결혼, 이런 것을 알기는 어렵다. 의사들한테 의사와 간호사들의 결혼은 점점 줄었고, 의사들끼리의 결혼이 늘어났다는 얘기는 들은 적이 있다. 진짜 그런 지는 모른다. 

미동초등학교 5학년 9반 선생님과 10반 선생님이 결혼을 했는데, 그렇게 내가 태어났다. 부부끼리 한 학교에 있을 수가 없어서, 아버지와 어머니는 늘 다른 학교에 있었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중요한 법칙일까? 출산율이 지금처럼 줄어들면 사내 연애도 권장하고, 동종 업계끼리의 결혼도 더욱 권장되어야 하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잠시. 출산에 인센티브를 더 많이 줄 것이 아니라 연애에 인센티브를 더 주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이 잠시. 

‘사랑’이 기조인 그런 정부가 어쩌면 나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우리는 싸우는 것에 너무 많은 가치를 두었고, 잘 싸우는 것이 최고인 시대를 아직도 살고 있다. 윤석열, 이재명, 둘 다 잘 싸우는 사람들이다. 정치나 통치를 잘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싸움만은 정말 시대의 싸움꾼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원 펀치 있는 인간들이다. 이 시대가 지나고 서로 잘 사랑하게 만드는 사람들의 시대가 우리에게도 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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