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더 웨스트>, 하요, 제목이 길기도 하다, 하여간 이런 영화 봤다. 순전히 얼마 전부터 집중적으로 듣던 엔리오 모리코네 음악 때문에 봤다. 어렸을 때 tv에서 죽어라고 해주던 거라서 여기저기 끊어서 보기는 했는데, 전편을 다 본 건 처음이다. 

본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엑소시스트 2>를 몇 년 전에 봤다. 음악이 기똥찼다. ‘리건의 테마’만으로도 충분히 즐기면서 볼 수 있었다. 메뚜기라는 모티브를 사실 이 영화에서 얻었다. 결국 쓸 데게 없게 되었지만 말이다. 이것도 엔니오 모리코네 음악이다. 사실 엑소시스트는 3편을 먼저 봤는데, 너무너무 재밌었다. 20대에 3편을 보고, 30대에 1편을 보고, 50대에 2편을 보았다. <엑소시스트> 3편은 그렇게 내 인생 영화가 되었다. 파리에서 극장에서만 세 번을 봤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 이것도 제목 더럽게 기네 – 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더 웨스트> 사이의 공통점은 사소하게, 음악이 둘 다 엔니오 모리코네라는 점. 굳이 공통점을 찾자면, 둘 다 대표적인 마초 영화. 하나는 멋지게 총 쏘고 뒤돌아서 사라지는 마초, 다른 하나는 그 마초들이 삶 뒤의 어둡고 쓸쓸하고 혹은 추접한 면을 드러낸. 

음악이 너무 궁금해서 결국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더 웨스트>를 봤는데, ‘쓸 데 없이 고스펙’이라는 단어가 생각이 났다. 아니 여자가 기차 역에서 내려 누군가를 찾는 이 장면에서 이 음악이 쓰였단 말이야? 마카로니 웨스턴이라고 사람들이 얕잡아 봤지만, 그 마카로니에는 엔니오 모리코네가 있었다. <역마차>에서 <하이눈>까지, 정통 서부영화에서 사용된 음악들을 전부 오징어 만들어버렸던. 50년 정도 시간이 흘렀는데, 서부영화는 이제 사라지고 아무도 기억 못하는 영화가 되었지만, 엔니오 모리코네의 음악은 그것들보다 더 길게 남은. 요요마가 엔니오 모리코네 시리즈 앨범을 냈다. 어지간한 소프라노나 테너들이 소프트 버전 앨범 내면 엔니오 모리코네 노래 한두 개는 꼭 집어넣게 된다. 

배역이 엄청나게 화려하다. 헨리 폰다. 사실 헨리 폰다 악역으로 나온 건 처음 봤다. 나이 먹은 헨리 폰다의 연기 엄청 좋아했다. 그리고 사나이 중의 사나이로 찰스 브론슨이 나온다. 어린 시절 화장품 광고로만 봤지, 정작 영화에서 본 건 몇 개 없다. 

마초 영화이기는 한데, 처음 보는 여배우를 중심으로 얘기가 진행된다. 프로필을 찾아보니까 튀니지 출신이다. 영화에서는 어마무시하게 아우라 넘친다. 결국 한 여인과 그녀 주변을 맴도는 네 남자의 얘기다. 결혼식날 살해당한 남편까지. 

어리버리하게 돈이 많다는 남자한테 속다시피해서 결혼을 한 여자가 남편이 죽고 나서, ‘벌떡’, 그야말로 대지에서 주인이 솟아오르듯이 땅의 주인으로 홀로 서는 얘기다. 모티브로만 따지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 같다. 다만 여성의 출신 계급에서 차이가 날 뿐. 

악인이 둘 나오는데, 둘 다 여성을 중심으로 그 잔인하고 강한 내면 속에 담긴 ‘고달픔’ 같은 것을 보여주는 데, 이게 영화의 잔재미기이기는 하다. 그리고 그래서 마초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마초들의 마음 속의 아픔과 갈등, 그래 이건 사나이들의 얘기지! 

결국 나쁜 넘들은 다 죽고, 밑도 끝도 없이 강하고 지혜로운 남자로 설정된 찰스 브론슨은 떠난다. 그리고 새로 생긴 기차역 일대에서 타운을 이끌어나갈 여주인으로 남을 여성이 홀로 서는 모습이 마지막 장면이다. 

여기에 미국 자본주의의 초기 모습이다, 그렇게까지 오버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풍푸 파이터>에도 처음 미국이 철도 만들던 시절의 얘기가 배경인데, 거기에 있던 노동자들은 중국인이었는데, 여기에서는 미국인이라는 정도가 차이. 

모티브만 놓고 보면 영화 <실미도>와 크게 다르지는 않은 것 같다. 거기에는 빛바랜 흑백 사진에 얼핏 나오는 어머니의 모습이 그 막장 마초들이 살아가는 동기처럼 설정되어 있다. 애인이자 엄마를 생각나게 하는 여인 그리고 그 아련한 기억을 연결시키는 것은 커피. 중간에 커피 한 잔 끓이는 장면이 나오는데, 여자가 불 피우다 실패하고, 다시 남자가 세심하게 불쏘시개를 쌓아서 한 번에 불 피우는 장면 등 몇 분을 커피 끓이는 데에 할애한다. 중간에 여자가 원두를 꺼내는 대신 식칼을 꺼내려고 하다가 포기하는 장면. 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커피 마시면서 자신에 대해 설명하는 장면, 영화 그것도 서부 영화에서 이렇게 길게 커피 하나로 길게 가는 걸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이탈리나오! 마카로니가 아니라 이탈리안 커피라고 하는 게 더 맞았을 것 같은. 

영화는 사라지고 커피만 남은 대표적인 영화가 <블랙 호크 다운>이 아닐까 싶다. 전투 중의 짧은 휴식에 원두 갈고 커피 내리는 장면이 아주 길게 그것도 몇 번이나 나온다. ‘커피병’이라는 새로운 군 보직이 생겨났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 

마초 영화, 커피 영화 외에도 하모니카가 자주 등장하는, 하모니카 영화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엔니오 모리코네 음악이 아니었다면 확 짜증이 날 수도 있지만, 선율 자체가 너무 고급졌다. 

21세기, 이런 마초 영화는 다시 나오지는 않을 것 같다. 부동산 영화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알박기’ 영화이기도 하다. 사막 지대에서 증기 기관차가 운행하기에 필요한 물이 있는 곳을 미리 점 찍어 역사 부지 일대의 땅을 샀던 어느 알박기 명인의 비극 그리고 그 땅을 둘러싼 난투극, 얘기는 그렇게 구성되어 있다. <1번가의 기적>에서는 임창정 같은 깡패를 보내 도장 찍으라고 협박하고 괴롭히고 그러는데. 여기는 서부극이라 그냥 총 쏴서 죽이고 만다. 

영화가 예쁘면 그림엽서 보는 것 같다는 얘기를 한다. 유사한 느낌인데, 이건 LP판 듣는 느낌이다. 사나이들의 짧은 대사 그리고 귀를 뚫는듯한 짧은 총소리 이어서 엔니오 모리코네의 다음 트랙 노래. 음악 때문에 주기적으로 보고 또 보는 영화는 <매리 포핀스> 정도였는데, 아마 이것도 나이 먹으면서 해마다 한두 번은 계속 볼 것 같다. 영화 음악을 제일 재밌게 드는 방법은 결국 원래 화면과 같이 보는 거 아닌가 싶다. 

음악은 화면에 잘 녹아드는 편은 아니다. 영화 품질에 비하면 몇 배는 될 듯한 고품질의 음악과 가벼운 오케스트라. 다시 50년이 지나면 영화는 완전히 사라지겠지만, 음악은 그 뒤에도 남을 것 같다. 엔니오 모리코네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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