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실..

책에 대한 단상 2023. 1. 10. 10:08

작업실을 따로 안 만든 제일 큰 이유는 돈 때문이다. 책 인세라는 게 뻔해서, 구조적으로 옆으로 새는 돈들을 줄여야 장기적으로 편안해진다. 나라고 사고 싶은 게 없지는 않은데, 아직 그럴 형편이 아니다. 20년 넘은 앰프와 스피커를 아직도 껴안고 있는 건, 그게 더 좋아서가 아니라 그럴 형편이 아니라서 그렇다. 비싼 만년필을 써보고 싶은 생각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럴 때면 그냥 새 잉크를 사서 기분 전환을 하고 만다. 잉크가 아무리 비싸봐야. 

이제 작업실을 만들기를 포기한 것은 애들 봐야하는 상황에서, 작업실이나 이런 거 생각할 처지가 아니라서 그렇다. 아무리 집 가까운 데 구한다고 하더라도, 왔다갔다, 번거롭다. 둘째는 버스는 타는데, 차 많이 다니는 길을 가기에는 아직은 좀 무리다. 

책 마무리할 때면 나도 집중해서 긴 시간이 필요하기는 하다. 전에는 카페에 가서 써보기도 하고, 지방에 며칠 가서 마무리하고 오기도 했다. 그렇게 한 책이 공교롭게도 다 망했다. 꼭 그래서 망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망하는 게 확실한 길을 일부러 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림을 그려서 엄청난 공간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자료를 두기 위해서 방대한 공간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책도 많이 버렸고, 이제는 수없이 책을 사고, 또 그만큼 뭉텅이로 버리는 데에도 익숙해졌다. 현실에 맞추는 수밖에 없다. 그래도 여전히 매주 몇권씩은 책을 산다. 그나마 책이 있으면 상당히 해피한 경우다. 

아침에 둘째는 학교에서 하는 주산 교실에 갔다. 가는 건 아내가 출근하면서 데리고 갔고, 10시 반에 데리고 와야 한다. 시간이 잠시 나는데, 나도 사람이라.. 짧게 짧게 남는 시간에 집중이 쉽지 않다. 목요일에는 둘째 병원에 데리고 가야 한다. 그 와중에 회의 나와달라는 넘들은 또 왜 이리 많은지. 

메일에 자동으로 "집필 중"이라고 답 메일이 가도록 하고, 전화 치운 사람들 심정이 이해가 된다. 그렇다고 우리 집 어린이들 전화를 안 받을 수는 없고. 

어린이들 방학 때에는 늘 이렇게 고롭다. 이게 작업실을 구한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다. 아니, 삶에는 해결이라는 게 없을지도 모른다. 그냥 아직 오지 않은 다음 문제를 기다리면서 잠시 마음의 평온을 누리는 것일 뿐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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