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쓰는 책들은 코로나 이전에 준비했던 것들이다. 둘째가 아팠고, 나도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 많아서, 이래저래 계속 뒤로 밀려왔었다. 도서관 경제학이나 젠더 경제학은, 우와, 거의 20년 밀려온 것 같다. 젠더 경제학을 써보라는 얘기를 들은 것은, <88만원 세대> 보다 더 먼저다. 몇 번 시도를 했는데, 이래저래 계속 밀렸다.
지금 가진 일정으로는 내년 여름까지 밀린 책들을 다 쓰고 나면, 이승만 얘기, 김대중 얘기, 요렇게 할 생각이다. 이승만 얘기는 얼개가 어느 정도 되어 있는데, 부산 지역에 대한 조사가 계속 미루어지는 상황이다. 부산에 몇 달 체류하면서 준비할 생각인데, 내가 없으면 둘째가 큰 일이니, 아직은 꼼짝할 수가 없다. 노태우도 한 번 다루고 싶은 마음은 있었는데, 주변을 살펴보니 역부족이다.
김대중 얘기는 아직 얼개가 없다. 권노갑은 만났고, 적당한 때 한화갑도 만날 생각이다. 얘기를 어떻게 끌어갈지는 잘 모르겠지만, IMF로 시작해서 임기 끝나는 순간, 그렇게 대통령이었던 시기로 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김영삼 정부 때는 현대에 있었는데, 김대중 정부 때는 정부에서 일했었다. 총리실에도 있었고.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 시절의 청와대를 아주 잘 알고 있는 것까지는 아니고.
청와대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몇 번 있었다. 처음 갈 기회가 생겼을 때가 김대중 정부 초기였다. 싫다고 했다. 글쎄..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았다. 그 뒤에도 매번 싫다고 했다. 내가 약간, 아니 심하게 삐딱선 인생이다. 다들 그렇게 하라고 하면, 하기 싫다는 생각이 든다. 하기 싫은 일은 안 했다. 하기 싫은 일을 하라고 하면 직장을 옮겼고,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말라고 할 때는 아예 직장을 그만뒀다.
최근에 잡 오퍼가 몇 번 있었다. 하나는 국내에서, 하나는 해외에서, 매우 매력적인 제안이기는 했다. 그래도 이미 잡아놓은 일정들이 있어서, 내가 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지금 밀린 일들을 처리하기 위해서 학교도 그만두고, 방송도 그만뒀는데.. 뭔 일을 또하겠나 싶다.
돌아보면 책 쓰면서 산 게 20년 가까이 되니, 그야말로 감사한 인생이다. 세 끼 밥 먹고 사는데 크게 불편하지 않았으니, 진짜로 감사하다.
지금 잡힌 일정대로 글 쓴 뒤에는 뭘 할지 아직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 죽을 때까지 책만 쓰면서 살고 싶지는 않고. 적당한 때에 적당히 내려놓을 생각이다.
나중에 뭐 할지,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보지는 않았는데.. 최근에 바다에 대한 책을 한 권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바다라고 해도 전세계 바다는 아니고, 주로 한국 연안에서 북태평양까지의 일이다. 배와 바다 그리고 물고기에 대한 얘기들.
박사 논문 쓰면서 ‘지속가능한 어업’에 대한 미분 방정식 풀면서, 우와, 돌아버리겠네, 그런 생각이 들었었다. 논리적으로는 그렇게 어려운 얘기는 아닌데, 그걸 미방으로 풀어야하니, 조금 더 깊게 들어갔더니, 시스템 다이나믹스 모델링을 해야 해서. 진짜 울면서 문제들 풀었던 기억이. 그냥 컴으로 풀면 되는데, 그 시절에는 아직 인터넷도 없고, 심지어 이메일도 안 쓰던 시절이었다. 연습용으로 써볼 시스템 다이나믹스 프로그램 같은 것은 아직 없던. 힘들기는 더럽게 힘들었는데, 그래도 바다에 대한 얘기라서 참 매력적이라는 생각은 들었었다.
나중에 그 얘기를 가지고 박사 논문을 쓴 사람과 동료가 될 기회가 있었다. 한동안 바다 얘기 정말 많이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에는 고래 연구를 했었고. 우럭, 가자미, 이런 것들의 생태계 모델링도 좀 들여다봤었다.
얼핏 생각해보니까 준비하는 데 5년 정도는 걸릴 것 같다. 베트남, 태국, 말레이지아, 인도, 이런 데 상황도 좀 살펴봐야하고.
이거 하겠다고 하면 연구비 대줄 해외 펀드도 좀 있는데, 둘째가 아직 사정이 만만치 않고. 또 나도 써야할 것이 있어서, 거창하게 벌렸다가는 나중에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냥 사정 되는대로 소박하게 시작해볼까 한다.
바다에 대한 얘기를 한 번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게.. 세월호 때 <내릴 수 없는 배> 쓰면서 연안 여객에 대한 얘기들을 한 번 정리한 적이 있었다. 당연히 섬에 대한 얘기들도 했었고, 지금도 가끔 섬의 날 같은 때나 섬에 대한 컨퍼런스가 있을 때 기조발제 같은 거 해달라는 부탁이 온다. 너무 예전 자료들만 있어서 최근 자료들을 새로 볼 형편이 아니라서, 힘들다고 하기는 했다. 이런 게 정말 돈 안 되는 분야라서, 전체적으로 섬에 대한 얘기들이 정리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래도 우리나라의 바다 얘기들이 좀 정리가 되어야 하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키워드는 ‘지속가능한 바다’다. 사람들이 생각한 것보다 내가 바다 얘기를 오래 했다. 기업 전문가와 관변 학자에서, 사회적 얘기로 처음 기자회견 한 게 새만금 문제였다. 아내와 결혼하게 된 것도 새만금 싸움하면서였다. 제주도에 해군 기지 놓고 크루즈항 놓는다고 할 때, 크루즈항의 경제성 평가를 검토한 것도 내가 관여되었던 일이었다. 울산에 고래 박물관 만들 때에도 기조 발제를 내가 했었다. 몇 년 전, 사양산업이라고 조선업 그만둬야 한다는 논쟁이 있을 때, 지금 조선업 포기하면 다시는 조선 못 한다고,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는 입장에서 논쟁을 했었다. 내가 이겼고, 어쨌든 산업으로서의 조선업을 포기하지 않게 되었다.
바다를 워낙 좋아했다. 지금도 바다에 갈 생각을 하면 가슴이 뛴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하여간 마음은 그렇다. 처음 노르망디 갔을 때, 에트르타 인근의 해변을 보면서, 나중에 죽을 때에는 여기에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사람들이 습기 때문에 백퍼 류마티즘 걸리거나, 날씨 때문에 우울증 걸린다고 다 말렸다. 고뢔?
어쨌든 진짜 오랜만에 새로운 책을 준비하게 되었다. 5년 정도, 차분히 들여다보면서 바다에 대한 얘기들을 모아보고 정리해볼까 한다. 목표는 태평양 금어기 정도 된다. 태평양에 거의 물고기가 없이 텅비어 있다. 풍성한 바다, 거의 옛날 얘기고.. 우리나라 인근 바다? 태평양보다 더 심하게 아무 것도 없다. 배타고 7~8시간 걸려서 나가야 뭐라도 좀 있다.
중고등학생이 상식선에서 읽을 수 있는 바다에 대한 책, 그런 게 일단 목표다.
결정적으로 바다에 대한 책을 써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는.. 이재명 정부에서 해수부 부산 이전을 공약으로 내세우는 걸 봤을 때였다. 이 사람들이 부산은 좀 알지는 모르지만, 바다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이 좀 커지고 커져서, 아예 전면적으로 바다에 대한 얘기를 한 번은 해야겠다는 생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