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마당에 검은 고양이가 나타난 것은 지난 가을이 끝날 무렵이었다.

일년에 몇 번, 마당을 차지하기 위한 고양이들의 쟁탈전이 벌어지고, 2년 전에 이 싸움에서 승리한 누렁이가 일가를 이루고 산다.

물론 그렇다고 이 가족들만 마당에 사는 건 아니다.

나는 늘 먹이를 주기 때문에, 나름대로는 친하게들 지낸다.

사건이 벌어진 것은, 일요일 오전, 검은 고양이가 마침 혼자 있던 아들 고양이를 밀쳐내기 위한 싸움을 걸었다.




늘 나를 보자마자 도망가던 검은 고양이에게 무슨 심경이 변화가 생겼는지, 혹은 무슨 마음을 먹었는지는 모른다.

어쨌든 다른 동네의 고양이들도 먹고 갈 수 있게 나는 먹이를 넉넉하게 주는 편이다.

오늘 처음으로 사진을 찍을 잠깐의 시간을 낼 정도로, 검은 고양이가 가깝게 왔다.

(물론 실제로는 300미리 정도 되는 줌을 썼으니까, 사진으로 보이는 것처럼 가깝게 있지는 않다.)


사진을 보고서야, 엄청 큰 상처가 생긴 줄 알았다.

삶이란...

치료를 해주고 싶지만, 그럴 방법은 없다.


오후에 나오는데, 가족 고양이와 검은 고양이들이 마당에서 같이 쉬고 있었다.

하여간 변화가 생기기는...

아빠 고양이는 보이지 않고, 엄마 고양이와 아들 고양이가.

상처가 안 스러워서 특식으로 주는 사료를 줬다.

팽팽한 분위기...

누렁이들은 사료는 양보해도, 캔까지 양보하지는 않을 모양새다.


짜리하게 경계하고 있는 게 엄마 고양이.

그냥 내 마음에는, 검은 고양이의 상처가 안되서 뭐라도 좀 주고 싶었던 거지만.

그거야 내 생각이고.


사진으로 보니, 검은 고양이의, 생긴지 얼마 되지 않아보이는, 맨살이 그대로 드러난 상처가 더 안스러워 보인다.

상처난 고양이는 물론이고, 꼬리 잘린 고양이 등, 동네에서 숱하게 보기는 하지만.

어쩐지 내가 거두어 먹이는 고양이의 아픔이, 남의 일 같지는 않다.



남 먹는 거 보지 말라고...

그래도 이 녀석들이, 혈연이 아닌 다른 고양이가 이렇게 가깝게 오도록 하는 건 처음 보았다.

며칠 이렇게 실낭이를 하다가, 그냥 식구처럼 살게 될 듯 싶다.



엄마는 벌써 다 먹었고, 아들이 남은 걸 핥는 중이다.

검은 고양이, 뭔가 냄새에 이끌렸는지, 나도 좀 줘...

해보지만 소용없다.



엄마 고양이가 아들이 남은 걸 다 먹을 때까지, 검은 고양이를 견제한다.

이 집 아빠 고양이는, 2달 전 구청에 끌려가서 중성화 수술을 하고 왔다.

그렇지만 여전히 동네 짱이라, 카리스마 만빵이다.


식사 끝...

물론 사료가 충분히 있어서, 검은 고양이도 굶거나 그럴 상황은 아니다.

그렇지만 상처가 너무 안되어서 따로 뜯어준 특식은, 구경도 못했다.


어쨌든 어제와 같은 전투 분위기는 아니고,

옆에까지 오도록... 사실은 많이 친해진 거고, 많이 익숙해진 것.

싸우면서 정든다는.


이 고양이 가족들이 언제까지 갈지는 모른다.

봄이 오면 또 새로운 짝들을 찾기 시작할 거고, 엄마들이 아기를 가지게 되면,

가족 구성에 전혀 새로운 변화들이 온다.


안방에 사는 야옹구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마당 고양이들.

carrying capacity, 수용능력이라는 생태학에서 사용하는 아주 딱딱한 개념 같은 것을 떠올리고 싶지는 않다.

삶...

이 단어가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내일은 동물병원 가서, 검은 고양이 뭐 먹는 약이라도 없나, 좀 알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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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좋아질까?

 

학자로서 살아가는 삶은 올해를 마지막으로 하겠다고 결심한 건 꽤 오래 된다.

 

마흔 살에 은퇴하겠다는, 스무 살 때부터 나하고 했던 약속이 있다. 돌아보면 내 삶은 미친 놈처럼 과로와 과로의 연속이었는데, 그만둘 시간이 정해져서 과로 인생을 살았던 측면이 있다.

 

그러나 더 큰 이유는, 정부나 외부 지원 없이, 학자 혼자서 해볼 수 있는 것은 거의 다 해봤고, 이보다 일을 키우기 위해서는 팀 작업이 필요한데, 그건 지금으로서는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다. 모델링 작업이나 장기 시뮬레이션 같은 걸 더 해보고 싶은데, 이런 것도 혼자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를 넘는다.

 

이래저래, 더 할 수 있는 건 없다. 했던 거 또 하고, 한 얘기 또 하고, 뭐 그런 방법이 없지는 않지만, 그렇게 시간을 끌고 싶지는 않고.

 

방송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데, 누군가 나가야 하지 않느냐는 얘기를 듣고, 그 동안 TV도 참 많이 나갔다. 이제 그건 나꼽살로 어느 정도는 내가 기여할 만큼은 한 거라는 생각이 들고, 올해까지 주어진 시간 동안에 열심히 하는 걸로.

 

아주 우연한 기회에, 예정에 없이 갑작스럽게 영화사 직원이 되었고, 요즘은 시나리오부터 영화에 대해서 새롭게 배우는 중이다. 나름, 안 해보던 일이라서 재미있다.

 

혼자서 학자로 살아간다는 것, 이게 좀 고달픈 일이다. 어떻게 보면, 나도 버틸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지 좀 되는 것 같은데, 그냥 억지로 즐거운 상상을 하고, 웃으면서 참고 버텼던 것 같다.

 

올해까지가 그 한계점이라고 생각한다.

 

더 큰 문제는, 연구소 같은 데 대해서 생각하면 머리가 빡빡하고, 대학 근처만 생각해도 머리가 욱신욱신. 어떻게 생각하면, 지금까지 거의 쉬지 못하고 너무 오랫동안 초긴장 상태에서 살아온 것도 그렇고. 무엇보다 연구소나 대학에는 더 이상 비밀스러운 것도 없어서, 신비감이나 기대감 자체가 사라져버렸다는 게 문제일 수도 있다. 어쨌든 그런 일은, 이제 때려죽인다고 해도 못하겠다.

 

이래저래, 내가 학자로서 사회적으로 뭔가 할 수 있는 건 올해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한다. 더 이상은 나도 못 버티고, 또 같은 형식으로는 더 나올 얘기도 없을 것 같다.

 

삶이라는 게, 의미와 보람만으로 살 수는 없고, 흥미나 재미가 없으면 정말로 자신의 혼을 담기가 어렵다. 간단하게 말하면, 학자로서의 삶이 더 이상 흥미가 없고, 어떤 이유로든, 더 이상 그렇게 살고 싶지가 않다.

 

경향신문 연재 기준으로 하면, 이제 3번의 칼럼이 남아있다. 사회적으로 하던 일 중에서, 칼럼이 제일 먼저 끝난다. 아마 꼽사리가 가장 마지막까지 진행될 거고, 경제 대장정을 다 마무리하게 될 때까지는 당분간 책은 계속 쓰게 될 거고.

 

어쨌든 그러다 보니 가장 마지막으로 나에게 남은 질문이, 과연 명박 시대가 끝나고 나면 세상이 좋아질까, 그 질문이다.

 

안타깝지만, 지금 상황대로라면 별로 좋아지지 않는다, 이게 내 잠정적 결론이다. 물론 내가 모든 걸 생각할 수는 없으니, 언제라도 돌발 변수가 존재할 수는 있지만, 현재까지로서는 영 아니올시다에 가깝다.

 

그렇지만 어쩌겠냐, 내가 어쩔 수 없는 범위 바깥의 일인데 말이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그 다음은 나도 모른다, 그럴 수밖에 없다.

 

다음 시대의 일은, 또 다음 시대의 사람이 등장해서 더 많이 분석하고, 더 적극적으로 해결해주기를 바랄 수밖에.

 

세상은 늘 그렇게 흘러간다. 안타깝다고 붙잡고 있는다고 해봐야, 더 문제를 잘 풀 수 있을 거라는 보장도 없고, 괜히 그러다가 정말 노욕이 생겨나게 된다. 처음 출발할 때 생각해보면, 이미 아주 멀리 와 있다. 더 가겠다고 붙잡고 있는 것, 그건 내가 살아온 방식과는 다르고.

 

한국 경제를 주제로 12권의 책을 마치고 나면, 정말 더 할 것도 없고, 더는 아는 것도 없는 상황이 될 것 같다. 그리고도 세상이 안 좋아진다면? 어쩌겠냐, 거기까지가 내 능력치의 전부일텐데.

 

어쨌든 시리즈에 남은 책 몇 권 그리고 번외편으로 준비된 기타 등 정리하고 나면, 경제학자로서 더 이상 책을 쓰거나 그런 일은 안 할 것 같다. 그야말로 익숙한 것들과의 결별이다.

 

어떻게 보면, 진작에 그만두었어야 할 일들이었는데, 명박 시대라는 이상한 시대를 만나 마지막으로 남은 힘들을 쥐어짜면서 몇 년을 더 버틴 거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우리들의 시대가 해피엔딩으로 끝나기를 바라고, 지금도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러나 그걸 끝까지 지키겠다고 할 수 있는 능력치 이상으로 바둥거리면, 정말 사람 추해지는 건 순식간이다. 별로 그러고 싶지는 않다.

 

어떻게 보면, 한국 사회에서 나도 주체할 수 없는 과분한 영광을 누린 셈이다. 이제 그걸 다음 사람들에게 넘겨주고 싶다.

 

권력이나 힘이나, 영광이나, 너무 쥐고 있으려고만 하면 결국에는 추해진다.

 

나는 그렇게 안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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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들만으로 구성되지 않은 조직

 

에너지관리공단 시절, 한참 많은 때에는 여성 과장을 두 명이나 데리고 있었고, 직원도 여성, 그래서 남성은 나를 제외하면 1~2명만 있던 때가 많았다.

 

별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 나는 특채로 나중에 입사한 경우라서, 사람들이 다 꺼렸던 여성 과장이나 여직원들이 내가 있던 팀에 집중배치된. 내가 여성들과 같이 일을 하는 법을 처음으로 배운 건, 그 시절이었다.

 

프랑스의 경우는 그렇지 않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경제학과에서 여성들을 보기가 어렵고, 아주 금방, 남성만으로 구성된 임시조직들이 만들어진다.

 

책을 낼 때는, 나의 파트너들은 대부분 여성들이다. 새로 작업하게 된 에디터 일부들을 제외하면, 오래 작업한 친구들은 대부분 아줌마이고, 아기 엄마이기도 하다.

 

지금도 중요한 경제와 관련된 회의에 가면, 여성들이 없거나, 아니면 정말 하위직으로만 참가하는 그런 경우가 많다.

 

한전 등 발전회사에서 여자 과장들이 생겨난게 얼마 되지 않는다.

 

나는 꼽사리다를 처음 시작할 때, 여성 멤버가 있는 편이 좋으냐, 아니냐, 이런 걸로 김어준 등과 좀 고민을 한 적이 있다. 이것도 선택의 문제이기는 한데, 여성이 없는 편이 좀 더 편하고 장점이 많을 거라는 게 김어준의 생각이었다.

 

일리 있는 생각이기는 한데, 길게 보면 나는 여성이 있는 편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이유는, 별 특별한 게 아니라 남성들만으로 구성된 조직 보다는 양쪽 성이 다 참여하는 편이 좋을 거라고 생각했던, 아주 단순한 이유였다.

 

그게 다른 진행자보다는 나랑 선대인이 김미화 누님 쪽을 더 선호했던 이유이기도 하고.

 

이게 좋았던 건지 아닌지는, 시간이 조금 더 지나봐야 알겠지만, 어쨌든 남성들만으로 구성된 조직을 자꾸 흔들려는 게, 수 년째 내가 가졌던 자세이다.

 

아무래도 자꾸만 이질성을 만들어내는 게 더 좋을 것 같다는너무 균일한 그룹이나 동질적인 사람들끼리만 모이면, 남들 다 아는 것을 자기들만 모르는 바보 현상, 혹은 임금님 귀는 당나귀귀현상이 벌어지게 된다고 생각한다.

 

나도 아직은 이유는 정확히 모르지만, 어쨌든 남성만으로 구성된 조직에는 문제가 좀 생길 것이라는 나름대로의 믿음 같은 게 있다. 가능하면 그렇게 내가 움직이는 공간을 구성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타이거 픽쳐스라는 곳은, 요즘 두 달째 내가 출근하고 있는 곳을 가장 간단히 설명하면, 이준익 감독이 영화를 만드는 곳이다.

 

물론 이 집단은 처음부터 남성으로만 구성된 집단은 아니었다. 영화사 아침의 대표, 정승혜 대표가 이 집단을 이끄는 삼두마차의 한 축이었다. 전설적인 인물인데, 불행히도 나는 뵐 기회가 없었고, 암으로 딱 내 나이 때 돌아가셨다.

 

어쨌든 그 이후로, 일부 스탭들을 제외하면, 남성만으로 구성된 집단처럼 되었다.

 

이곳은 2년째, 위기를 겪고 있고, 특히 조연출 등 스탭들을 감독으로 데뷔시키지를 못해서, 진짜 어려움에 빠져 있다.

 

상황이 그러다 보니, 진짜 오래된 식구들만 사무실에 나오는데, 사실상 남자만으로 구성된 조직처럼 되어있다.

 

이준익 감독과 여성 출연자에 대해서는, 좀 재밌는 얘기들이 많다.

 

아직 나도 답은 모른다. 이건 상황에 따라서 다르고, 맥락에 따라서 다르니까, 경제학에서 얘기하듯이 최적화의 논리를 드러낼 건 아닌 듯 싶다.

 

어쨌든 남성만으로 이루어진 조직, 이것도 연구 대상은 연구 대상이다.

 

그렇다고 그걸 연구하기 위해서, 남성만으로 이루어진 조직을 찾아다니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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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과 얘기

 

양식과 내용의 호응, 이건 오래된 질문이기는 하다. 음악이든 미술이든, 기본적으로는 얘기를 한다는 것은 같은 건데. 양식이 바뀌면 과연 그 얘기도 바뀔 것인가, 그런 질문이 있다.

 

새로운 양식이 생기면 새롭게 하고 싶은 얘기가 생기는 것인지, 아니면 양식이 바뀌어도 여전히 같은 얘기를 하게 되는 것인지. 좀 투박하지만 양식에 대한 질문이란 건 그런 거다.

 

언어에 대한 질문과도 같다. 분명히 습득할 수 있는 새로운 언어가 생기면, 새로운 정보가 생기고, 새로운 지평이 생기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그게 어디까지의 범위에 해당될까?

 

언어와 관련해서는, 20대 초반의 잊을 수 없는 경험이 있다.

 

프랑스에서 7개 국어를 하는, 아주 오래된 외교관을 알게 된 적이 있었다. 출신은 귀족이었고, 젊었을 때에는 영화를 한다고 집안 돈을 좀 가져다 썼고, 결국 나중에 정신차려서 외교관이 된. 물론 그건 공식적으로 들은 얘기고, 본인은 영화 때문에 돈을 많이 쓴 건 아니고, 경마를 돈을 많이 썼다는

 

하여간 당시 나도 어학에 관심이 많아서, 불어를 한참 익숙하게 하기 위해서 고민하던 중이었고, 라틴어도 배우고 싶었고, 희랍어도 배우고 싶어하는 그런….

 

그 양반 얘기는, 자신은 7개 국어를 하지만 경제에 대해서는 막 박사과정에 들어온 나보다도 모른다는 거

 

불어와 영어, 이미 충분히 어학적 능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자기처럼 언어에 시간을 많이 쓰다가 환갑이 다 되어서 후회하지 말고, 경제에 대해서 혹은 세상에 대해서 더 많이 알려고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어쨌든 나는 그 조언을 따랐고, 그 후에 독일어를 조금 더 공부했을 뿐, 어학에 대해서는 별로 시간을 쓰지는 않았다.

 

후회도 있다. 지금이라도 일본어를 더 배우고 싶은데, 핑계이기는 하겠지만, 이젠 새로운 언어를 배울 시간을 잘 내기도 어렵고, 그만한 공간을 내기도 쉽지가 않다.

 

지금에 와서 이런 얘기를 다시 생각하는 건

 

, 그냥 텍스트라고 하지만, 이 안에도 주제나 포맷에 따라서 묘한 스타일의 차이가 있고, 거기에 얹을 수 있는 내용이, 일종의 상호결정처럼 작동한다는 것.

 

대체적으로 책을 쓰는 것에 대해서 고민을 하기 시작한지 10년쯤 되는 것 같은데, 당시 나는 보고서에 익숙해져 있어서 보고서체나 논문체가 아닌 다른 종류의 글을 아예 쓸 수가 없었다.

 

게다가 당시 막 인터넷 게시판이라는 게 활성화되기 시작했는데, 도대체 이 새로운 양식에서는 어떻게 글을 써야할지, 전혀 감을 못잡고 있었다.

 

어쨌든 책을 쓰려고 마음을 먹으면서 내가 했던 건, 몇 년에 걸쳐서 매일 글쓰기를 했던 것과, 그냥 놀이 살아서 보던 영화들을 진짜 진지하게, 마치 교과서를 공부하듯이 보기 시작했던 것이다.

 

누구나 기본에 해당하는, 100번쯤은 보았을 교과서가 있고, 나에게는 경제학이 그랬다.

 

100번쯤 볼 영화라면, 많은 사람들은 고전에 해당하거나 외국의 명작들을 집어들었을 테지만, 내가 처음 집어든 한국 영화는 짝패’, 그 다음에 달마야 놀자와 같은 한국 영화였다.

 

어쨌든 그게 영화에 대한 이해를 높여주었을지는 여전히 회의적이지만, 대중들과 얘기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그 과정에서 좀 많이 배웠던 것 같다.

 

그 후에 두 종류의 글쓰기에 대해서 익숙해지려고 노력했던 편인데, 하나가 사회과학이라는 형태로 테제들을 정리해내는 것, 또 다른 한 가지가 원고지 10장 내외의 칼럼으로 글 쓰기.

 

이걸로 먹고 살 수 없다고 얘기했던 사람들이 많기는 했는데, 그리고 10년쯤 지나보니, 어쨌든 이것저것 모아서 하루에 세 끼 먹고 사는 데는 별 문제는 없다. 물론 나야 워낙 소비가 적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젠 이 두 개의 양식을 내려놓으려고 한다. 물론 그렇게 결심한 것은 좀 오래되기는 했는데, 이제 그 순간이 점점 눈 앞으로 오고 있는.

 

칼럼이란 것은, 아주 짧기는 한데, 최고로 날이 선 양식이다. 원고지 10장으로 세상을 바꾼다

 

세상을 바꾸기는 어렵지만, 누군가는 아주 곤란하게 만들어줄 수는 있고, 그게 칼럼이 가지고 있는 힘이다.

 

무술로 따지면, 극도로 제약된 짧은 순간에 공격과 수비를 마감해야 하고, 그렇게 전투를 끝내야 하는 글이다.

 

물론 더 짧게 하려면 트위트의 몇 줄로도 세상이 조금 바뀌기는 하지만, 트위터의 단문들은 아직 양식으로 자리를 잡지는 못한 것 같다.

 

고전적이고 오래되었지만, 아직도 유효한 양식은 칼럼이다. 물론 모두에게 칼럼을 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는 않지만, 누구나 칼럼이라는 형식의 글을 쓸 수는 있다.

 

칼럼은 날카로운 칼이고, 이미 쏘아버린 활과 같다.

 

칼럼의 장점은, 잘 벼려서 짧게 끊어치면 책 몇 권으로도 하지 못한 일을 순간적으로 바꿀 수 있는 효율성이다.

 

단점은, 누군가에게 상처를 내면서, 자신에게도 상처가 남는다는 점.

 

몇 년 동안 참 많은 싸움을 했는데, 칼이라는 것이 늘 그렇듯이, 칼을 잘 쓰는 사람에게도 상처가 남는다.

 

책은 칼럼보다는 숨이 길다. , 그거야 당연하고.

 

2년 전부터, 한국 출판계에는 묘한 흐름이 생겼다.

 

책이 선시장이고, 책을 따라서 방송과 기타 사회 현상들이 생겨나는 일들이 한국에도 있었던 것 같다. 근데 그게 좀 변했다. 이게 임시적이고 잠정적인 건지는, 아직 확실치는 않지만, 책이 어느덧 후시장 같은 게 되었다.

 

사건이 먼저 생기고, 책이 뒤따라 가거나, 뒤이어 팔리는 것.

 

섬유시장으로 치면, 파리의 프리미어 비지옹, 밀라노의 후시장, 그런 구조가 떠오른다. 규모의 문제가 아니라, 파리 시장에서 밀라노 시장으로 책이 움직이는 작동방식이 묘하게 바뀐 것.

 

어쨌든 사회과학이든, 칼럼이든, 하고자 하는 얘기는 같다. 다만 스타일이 다르고, 숨보가 다르고, 사회적으로 움직이는 공간의 균열 방식이 좀 다르고.

 

최근에 새롭게 시도해보는 게 에세이인데, 이건 길이는 칼럼하고 같거나 조금 더 길거나 가끔은 더 짧기도 하고 -, 이건 칼럼과는 목표도 다르고 작동방식도 다르다.

 

활로 비유해보자. 사회과학 책이나 칼럼이 머리를 겨냥한다면, 에세이는 가슴을 겨냥한다고나 할까? 읽는 사람과 공감하는 공간이 다르고, 울림을 만들어내는 방식이 다르다.

 

물론 잘 만들어진 책이나 칼럼이나 에세이나, 더 상윗단계로 올라가면 차이가 있을 게 없을 듯하지만, 거기는 아직 내가 못 가본 단계이고.

 

어쨌든 이런 게 좋든 싫든, 텍스트라는 틀 내에서 움직이는 것들이고.

 

나는 꼽사리다의 경우는, 기본적으로는 텍스트의 연장이기는 하지만, 여기에는 연출이라는 게 들어간다. 물론 텍스트에도 설정 같은 게 들어가기는 하지만, 흔히 컨셉으로 들어간 연출이라는 요소가 들어간다.

 

물론 애초에 누군가 기도하거나 계획한 연출은 아니다. 그럴만한 스탭도 없고, 그렇게까지 새밀하게 준비하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단순한 텍스트의 연속인 것만은 아닌, 의도되었든 의도하지 않았든, 연출이라는 요소가 더 들어간다.

 

일단 방송이 자리를 잡으면 출연진을 바꾸기가 어려운 게, 이미 생겨난 화학적 결합을 새롭게 대체하기가 쉽지가 않아서 그렇다. 물리적인 변화와 화학적 변화의 차이라고 하면 가장 적합할 것 같다. 나꼽살의 경우도, 지금에 와서는 편집 김용민부터, 출연진의 어떤 요소도 바꾸기가 쉽지가 않다.

 

이건 단순히 무료로 봉상할 사람이 더 없다거나, 그만큼 정부 눈치 안보고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또 없다거나, 그것과는 좀 다른 얘기이다. 재밌든 재미없든, 이미 생겨난 화학적 결합은, 예상은 할 수 있지만, 기도되지는 않은 것이다.

 

여기까지가 이미 내가 해보았거나, 익숙해진 양식들이고

 

영화가 만들어지는 방식은, 책이나 칼럼과는 전혀 작동 방식이 다르다. 물론 그 출발점은 시나리오라는 텍스트라는 점에서는 같지만, 이건 우리가 익숙한 글과는 또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는 텍스트이다.

 

우리가 언제 처음으로 책을 읽었을까? 그림 책까지 치면, 보통 4~5살 처음으로 책을 한 권을 읽게 되지 않았을까 싶다.

 

영화계에서는 시나리오를 이라고 부른다.

 

물론 이 을 읽어본 사람은, 아주 드물다. 영화와 관련한 전공을 했거나, 지망생들까지가 을 읽었을 거의 전부가 아닐까 싶다. 일반인들이 시나리오를 읽게 될 일은 아주 적을 것 같다.

 

요즘 내가 만나보게 된 새로운 질문은, 사회과학 혹은 칼럼과 같은 양식에서 시나리오로 양식이 바뀌면, 하고 싶은 얘기가 바뀌거나 아니면 아예 다른 종류의 얘기를 하게 되는가, 아니면 양식이라는 것은 그저 내용을 반영하는 수단에 불과한 것인가, 그런 기본적인 질문이다.

 

제일 쉽게 얘기할 수 있는 것은, 예산의 범위이다.

 

영화의 예산이 5억인 경우, 15억인 경우, 30억인 경우, 70억인 경우, 100억인 경우, 무대를 다루는 방식이나 셋트의 설정 그리고 얘기를 전개하는 공간이 다르게 된다. 동원되는 가장 큰 신의 형식도 차이.

 

진짜로 현장을 보여줄 것이냐, 아니면 그걸 중계하는 방식 혹은 누군가의 입을 빌어 나중에 얘기하도록 할 것인가?

 

큰 전쟁이 벌어지는 걸 그냥 보여줄 수도 있고, “, 전쟁 났다가 끝났대”, 이렇게 짧게 대사 처리를 할 수도 있다.

 

물론 이런 예산차이는 본질적이면서도, 어떻게 보면 하고자 하는 얘기의 크기에 비하면 아무 일도 아니다.

 

영화 <짝패>에서, 서울 본사의 얘기는 얘기로만 존재하지, 실제 형상화되어서 나타나지는 않는다. 그건 예산 문제라기 보다는, 그 영화에서 잡았던 프레임과 스케일의 문제이다. 돈과는 상관없다. 감독은 악 너머의 악이 존재한다는 은유만으로 서울이 존재하기를 바랬다.

 

1주일째 습작 겸 시나리오 작업을 해보는 중인데, 양식과 내용이라는 첫 번째 딜레마에 부딪혔다.

 

과연 같은 얘기를 하는 것인데, 다만 그 양식만이 바뀐 것일까, 아니면 양식이 바뀌었으면 당연히 하고 싶은 얘기도 바뀌어야 하는 것일까?

 

지금 내가 쓰는 시나리오가 대대적 보완을 거쳐 결국 촬영에 들어갈지, 아니면 수없이 구상되었다가 사라지는 그런 얘기 중의 하나일 뿐인지, 그건 아직은 잘 모른다.

 

어쨌든 이 새로운 양식 앞에서, 양식과 얘기라는 아주 고전적 테마가 잠시 생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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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에 익숙해지기

 

시간강사를 첫 취직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현대에서 운영하던 연구소에 들어간 걸 첫 취직이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그 때부터 연구소와 관련된 일 아니면 대학과 관련된 일, 하여간 평생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그런 일들을 하면서 살았다.

 

하긴들인 시간만 가지고 생각한다면, 어른이 된 후로는 술만 마시면서 살았다고 해야 하는 게 정확할지도.

 

어쨌든 이번 총선에는 따로 관여하지 않을 결심을 하고 나서, 소속 기관으로 사용하고 있던 2.1 연구소와 관련된 일들을 좀 급하게 정리할 필요가 생겼다. 정치가, 좀 멀리서 보면 화려하고 근사할지는 모르지만, 너무 가까이에서 보면, 견디기가 좀 힘들다.

 

아마 사람마다 체질이 좀 다를 것 같은데, 나는 그렇게 화려하면서도 배신이 난무하는 현장이 기질적으로 그렇게 맞지는 않는 것 같다.

 

그렇다고 하기도 싫은 연구에 이름을 올려놓고 싶지도 않았고, 이젠 시간 강사를 다시 할 열정도 없고, 그럴 체력도 안 된다. 물론 내 나이에 여전히 시간강사 재밌게 잘 하는 양반들이 있기는 한데, 그 정도 힘은 나에게는 없고.

 

그래서 결국 타이거 픽처스라는 영화사에 이름을 걸고, 실제로 출근을 시작했다.

 

, 생기는 건 없지만, 삶이라는 게

 

뭔가 배우는 게 있어야 그 힘으로 또 무지막지하게 남아있는 시간이라는 빈 공간을 채우는 것 아닌가? 보람과 돈만으로 그걸 채우기는 쉽지 않다.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그렇게 영화사 근무라는 게 시작되었다.

 

두 달 조금 안되었는데, 무엇보다 재미는 있다.

 

타이거 픽처스는 <평양성>의 참패 이후, 2년째 놀고 있는 중이다. 원래 내가 딱 좋아하는 분위기가, 처음에 시작해서 어려울 때, 혹은 위기에 빠져 있는 집단그들과 동료로서 문제를 풀어나가는 상황, 이게 내가 제일 선호하는 상황이기는 하다.

 

어쨌든 현재로서는 제일 어려운 게, 시나리오라는 형식의 글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근데 이게, 생각보다 쉽지가 않다.

 

글이라면 여러 가지 종류의 글에 나도 꽤 익숙해있는 편이기는 한데, 시나리오가 좀 글 치고는 까다로운 편이다.

 

저녁 때, 간만에 정좌하고 앉아서 <사냥개>라는, 요즘 우리가 총력을 다해서 데뷔를 시키려고 하는, 손상준이라는 젊은 조연출의 시나리오를 읽었다. 시나리오 상태로 읽으면서 영화가 되었을 때를 상상하는 게, 이것도 일종의 반복훈련 같은 거라서 아직 나에게는 그게 제일 힘들다.

 

그래도 계속 보다 보니, 조금 늘기는 한다

 

굼뱅이도 기는 재주가 있다고

 

계속하면서 조금씩 익숙해지는 건, 그래도 내가 좀 할 수 있는 영역이다.

 

하여간 어영부영, 두 달이 지나갔다.

 

어쨌든 올해 봄이 되면, 어떤 영화든 촬영이 시작될 것 같고, 상주하지는 못하더라도 현장에도 가볼 생각이다.

 

이제 내 나이도 40대 중반인데, 초짜 입장에서 뭔가 시작하는 게 그렇게 편하지는 않은 나이이다.

 

영화 관련 학과면 학부 1~2학년 때 많이 해봤을 일을 이 나이에 하면서, 그래도 뭔가 익숙지 않던 일을 새로 시작하는 게 재밌기는 하다.

 

2월말이면, 연재 중인 경향신문 칼럼도 끝이 난다.

 

그걸 마지막으로, 오랫동안 해왔던 칼럼 작업도 이제 접으려고 한다.

 

그렇게 정리하고 나면, 시사와 관련된 일은 나꼽살 하나가 남는다.

 

, 이것도 선대인과 호흡을 잘 맞추면서 대체할 사람이 있으면 넘기고 싶기는 하지만아마 돈 안 받고 그만큼 시간을 내고, 게다가 정부 혹은 학계와 관련된 일은 완벽하게 막히는보상은 없고, 고통만 존재하는 이 일을 또 하겠다고 할 경제학자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아직 마무리 짓지 못한 경제 대장정의 길이 아직 좀 남아있다. 어떻게든 이걸 끝내기는 할 생각인데, 기본적으로 나에게는 절대 시간이 부족하다.

 

영화를 직접 만들 날이 내 인생에 올 거라고는 정말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연출을 하지는 않더라도 스탭으로 일하게 되는 순간이 갑자기 오게 되었다.

 

하여간 삶이라는 게, 무슨 계획을 세운다고 꼭 그렇게 살게 되는 것도 아니다.

 

어쨌든 조금씩 시나리오라는 글의 형태에 익숙해지는 중이다.

 

경제대장정 시리즈의 9권이 문화경제학이었다. 나는 이 시리즈가 우리 경제의 미래를 바꾸기를 정말로 바랬는데, 그런 일이 벌어지게 될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이 시리즈 시작하고 한 번도 이걸 끝내지 못할 거라거나 혹은 의미가 뭐가 있겠나, 그런 회의를 가져본 적이 없다.

 

힘들어도 누군가는 해야 할 거라고 생각을 했고, 당장 세상을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12권을 다 만들어내고 나면, 그래도 의미는 있을 거라고 생각을 했었다. 솔직히, 내가 무의미한 일들을 하고 있다는 생각은 지난 수 년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이번에 민주통합당 대표로 한명숙이 되는 걸 보면서

 

정말 아무 일도 하고 싶지가 않다. 글도 쓰기 싫고, 칼럼 같은 것은 더더군다나 쓰기 싫고, 방송 출연, 인터뷰, 다 싫다.

 

강연은, 지금 이 기분으로 정말로 대중들 앞에서 얼굴을 보고 하고 싶은 얘기가 없다. 보나마나, 짜증이나 내고, 화나 내고 있을 것 같아서, 나오지 않는 웃음을 억지로 짓는 건

 

나도 그런 스타일이 아니라서

 

아니나 다를까, 총선 때까지는 어떻게든 시간을 끌고 가면서 버틸 듯하던 외환은행 문제도, 한명숙 대표 취임하고 바로 금융위 통과되어 버렸다.

 

나머지 일들도 마찬가지일 것 같고, 그건 정권이 바뀌어도 더하면 더하지, 덜할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지금은 아무 일도 하고 싶지 않고, 아무 글도 쓰고 싶지 않다.

 

그 허탈감의 빈 공간을, 한 번도 이렇게 진지하게 해보지 않았던 시나리오 검토 등의 일들을 하고, 알게 된지 한 달 조금 넘는 젊은 조연출들의 데뷔를 돕기 위해서, 나름대로는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쥐어짜면서 시간을 보낸다.

 

몇 달째 바깥에서 저녁 식사를 하는 일은 거의 없이, 해 떨어지기 전에 일찍일찍 집에 들어오는데, 오늘은 투자사와의 저녁 모임에도 가서 자리를 지키고 늦게까지 앉아있었다.

 

세상을 구할 수는 없더라도, 몇 명을 도울 수는 있겠지

 

어떻게 보면 소소한 일일지 몰라도, 또 데뷔를 준비하는 연출자들에게는 생이 걸린 일이기도 하고….

 

그건 또 하나의 우주를 탄생시키는 것과 같은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보람은 있다.

 

경제학을 전공한 것을, 늘 보람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왔는데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취임을 보면서, 노무현 시대에도 느끼지 못했던 무기력감이

 

도대체 지난 10년 동안, 내가 뭘 위해서 살았나, 그런 무기력감과 함께, 내가 지켜오려고 하던 가치가 밑바닥에서부터 붕괴한 느낌이

 

어차피 올해를 마지막으로, 경제학자로 살아온 나의 삶은 접을 생각이었지만, 그 마지막이 그래도 희망은 있다”, 그런 출발점은 보고 싶었다.

 

영화사에 한달 반 정도 출근하면서, 일본 어느 스튜디오에서 선물로 보내준 일본 소주 한 병을 선물로 받아왔다. 한 달반만에, 처음으로 뭐라도 얻어걸린 것

 

돈 생각하면 할 수 있는 일은 아닌데, 어차피 사회과학 책이든, 신문 칼럼이든, 아니면 나꼽살이든, 내가 하는 일들의 대부분은 처음부터 돈 생각하면 할 수 있는 일들이 아니다.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 45살을 살면서, 한 번도 내가 진짜 해보고 싶은 일은 해보지도 못했던 것 같다.

 

사명감 비슷한 걸로 살아온 건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걸 나는 보람이라고 불렀던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노무현 때에도, 기다리면 세상이 좋아질 거라고 생각했고, 명박 시대에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한명숙 대표되는 걸 보면서, 2003년 이후 처음으로, 기다려도 세상은 좋아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12권으로 예정된 농업경제학 등, 경제 대장정 시리즈를 마친다고 해서 도대체 뭐가 좋아질까, 그런 생각을 이 시리즈 시작하고 처음으로 하기 시작했다.

 

영화와 관련해서는, 아직 별 계획도 업고, 미리 생각해둔 방향도 없다.

 

어쨌든 영화사에 출근하면서 올해 한 해, 이것저것 눈동냥으로라도 배우고, 촬영 현장에 가고 하다보면, 굼뱅이도 기는 재주가 있다고, 조금 이해는 하게 될 것 같다.

 

찍어보고 싶은 다큐가 좀 있기는 한데, 아직은 어떻게 손을 대야할지 잘 모르겠고.

 

어쨌든 일단은 시나리오에 좀 더 익숙해져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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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박 시대, 이젠 나도 힘이 빠진다

 

명박 시대 5년차, 그 동안 무슨 정신으로 살았는지, 나도 깜박깜박한다.

 

노무현 때부터 치면 10, 무슨 힘으로 버티면서 여기까지 왔는지, 진짜 까마득하다.

 

요즘은 단 하나도 새로 일정을 얹기 어려울 정도로, 그야말로 꽉 차 있다.

 

힘이 빠진 건지, 나이를 먹은 건지

 

수업 부탁이 오기는 왔는데, 마흔 살 중반에 시간강사라, 이젠 도저히 못하겠다. 그것도 열정이 있어야 하는 일인데, 이젠 그만한 열정이 남아있지가 않다.

 

나꼽살은, 생각보다 힘이 많이 드는 방송이다. 안 해보던 얘기들을 만들어내는 것도 어렵고, 매번 방송 주제를 정하고, 이것저것 틀 잡는 게, 공중파 방송 보다 훨씬 힘이 많이 든다. 경제 얘기만 가지고 여기까지 왔으면, 진짜 많이 온 거다.

 

올해만 하고 전부 내려놓는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그래도 한 해를 어떻게든 버텨낼 힘을 내는 거지, 내년에도 뭔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당장 오늘 해야 할 일도 하기 싫어진다.

 

수업도 접고, 강연도 접고, 몇 년째 그래도 나름 즐기면서 계속하던 TV의 다큐나 시사방송 기획 같이 하던 일들도 접었다. 잡지 인터뷰 부탁들도 접고.

 

물리적으로 시간이 없기도 하지만, 뭔가 생각을 더 얹을 공간이 없다는 게 더 크다.

 

뭐가 이렇게 힘이 빠지게 하는 것일까?

 

정권은 바뀔지 모르지만, 세상이 별로 좋아지지 않을 것 같다는 불안감이, 더 이상 힘을 내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그 맨 밑바닥에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예전에, ‘방전이라는 표현들을 쓰던데, 요즘 그 말이 나에게도 딱 맞는 것 같다.

 

기쁠 일은 별로 없고, 실망할 일은 잔뜩이고, 기다릴 일은 별로 없고, 기다리지 않아도 생겨나는 좋지 않은 징후들은 잔뜩이고.

 

관성 같은 것일까? 중오도 관성이 된다, 참 무서운 말이다.

 

10년을 버텼으면, 그래도 꽤 오래 안 지치고 버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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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의 어느 여름이라고 기억된다.

이제 막 서른이 되었고, 직급은 되게 높아져서 공공기관의 3급 부장이던 어느 여름.

가끔 재수 없다는 반응이 나올 걸 뻔히 알면서도 누군가에게 삶을 환기시켜 주기 위해서, 당신이 최대한 높이 올라와도 아주 어렸던 시절의 내 위치에 오기가 어려울 거다...

그런 얘기를 하는 순간이 있다. 그 때가 딱 고맘 때즘 언저리를 경계로 한다.

미친 척하고, 신촌 어디선가 하는 토요일날 밤새 세 편 틀어주는 극장에서 영화를 본 적이 있다.

그 때 약간씩 졸면서 본 영화가,

매트릭스 1편, 오스틴 파워 2편 그리고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

그 영화들이 내 인생에 그렇게 깊은 영향을 미치게 될지는 미처 몰랐지만, 하여간 이렇게 시대의 시리즈 영화들을 극장에서 밤새면서 보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그리고 곧 이어 해리포터 시리즈와 반지의 제왕 시리즈, 그리고 조금 늦게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가 시작하였다.

조금 늦게, 그러니까 내가 공직을 그만둔 다음에 국내 영화로 황산벌이 일종의 시리즈 영화로 시작하였다.

황산벌. 평양성, 여기까지는 어쨌든 나왔고, 내소성은 완전 오리무중.

99년을 기억하는 것은, 이 때가 내 삶에서 완전 최악, 그러니까 방향상실, 어이상실, 그냥 내가 왜 사는지 모르고 시간아 가라, 내는 모른다, 그러던 시절이라서 그렇다.

에너지관리공단에 부장으로 입사한지 약 반 년쯤 지났을 그럴 때였던 것 같은데, 뭐 그 상황에서 밤새도록 세 편 틀어주는 그런 극장에서 졸리운 걸 참으면서 영화를 볼 사람이 또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하여간,

그 때쯤 나는 20대 내내 탐닉하던 예술영화도 끊고, B급 영화로 줄겨보던 영화들을 옮기면서, 상업영화도 아니고 그렇다고 예술영화도 아닌, 그런 엉기적하던 영화들을 아주 좋아하고 분석하던 시절이었다.

C급 경제학자라는 별명은, 그보다는 조금 먼저 얻게 된 별명이었다.

하여간 내가 뭘 할지, 뭘 하고 싶은지 아무 것도 모르고, 그냥 헤매던 시절이었다.

해리포터 시리즈는 그즈음 시작했다.

극장에서 본 적도 있고, 못 본 적도 있는데, 어쨌든 꼬박꼬박 dd를 사면서 지내다보니 10년이 지났다. 

그 10년 동안 어린이이던 주인공들은 어른이 되었는데, 그 사이에 나에게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더 이상 아침이면 눈을 뜨고 출근해야 하는 상황이 아는 게 되었고,

그 사이에 결혼을 했다. 내년이면, 아마도 오랜 기다림 끝에 아이도 태어날 것 같다.

정치적인 신념은 크게 바뀐 건 없지만, 뒤에 숨어있기 보다 뭔가 앞에서 해야한다는 생각이 좀 변했다.

복장은 크게 바뀌었다.

그 시절에는 넥타이 매고 전형적인 슈트 차림이었는데,

요즘은 그냥 츄리닝 입고 다닌다.

옷에도 돈을 쓰면, 내 주변의 식구들이 편안하게 살기가 어려우니.. 그냥 추리닝 입고 다닌다.

원래도 보이는 것만으로 감사해야 할 눈, 이제는 노안이 심해져서 더 이상 엑셀이나 통계 작업은 하기가 어려워졌다.

책 보기도 힘들어졌고, 샤프를 더 이상 쓰지 않게 되었다. 샤프나 볼펜 혹은 수성펜 같은 것으로 써놓으면, 내가 읽지를 못한다.

도대체 이런 굵은 만년필을 누가 쓰나 싶은, 그런 거로 써야 겨우겨우 글씨를 읽는다.

소속도 바뀌었다.

나는 내가 뭘 차리는 건 절대로 하기 싫고...

정부기관 소속에서 영화사 소속으로,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이제 마지막으로 해리포터의 마지막 시리즈를 보았다.

문득, 지난 10년간이 싫든 좋든,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그들에게도 많은 변화가 있던 것처럼, 내게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안녕, 해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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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의 시간

 

한국의 시간은 정말 빠르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명박 4년차를 마치며, 격동의 시간으로 들어간다.

 

오늘은 종편이 시작하였다. 앞으로의 변화, 너무나 뻔해 보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또 어떤 돌발 변수가 생겨날지 모르니까.

 

한미 fta 날치기 이후로 한국의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지고, 정치 일정은 물론 사회적 흐름도 급격히 변하는 중이다.

 

1년 전에 나꼼수 같은 게 생길 줄이야 누가 예상했겠나. 선대인하고 앉아서 지하 녹음실에서 경제 얘기하고 있을 줄, 바로 내 일인데도 전혀 알지를 못했다.

 

힘이라는 게 워낙 작용과 반작용 같은 흐름이 있어서, 한쪽 힘이 강해지면 다른 힘도 같이 강해지기 마련이다.

 

어쨌든 명박 5년차, 많은 사람들이 예상하기는 했겠지만, 혼돈과 격동은 그 어떤 순간보다 더 클 듯 싶다.

 

살면서 가장 실망한 순간을 생각해보면, 87 12월이 그렇지 않았나 싶다. 그렇게 열렸던 대선에서 노태우가 당선되면서, 그 실망감이 보통이 아니었다. 진짜 아무 일도 하고 싶지 않았고, 그 충격이 굉장히 오래갔던 기억이 있다.

 

이번에는 과연 어떨까?

 

나는 이 공간에서 무얼하고, 어떻게 사태를 볼까, 그런 생각들을 좀 해보게 된다.

 

벌써 내년 계획을 이것저것 세워보게 되는데, 올해의 가장 큰 차이점은,

 

엉덩이 진득하게 붙이고 앉아있을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

 

바야흐로 격동의 시간으로 우리는 빨려 들어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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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사구팽 그리고 순교의 마음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가 가마솥에 들어간다, 그게 참 가슴 아리지만 세상의 이치 중의 하나이다. 토사구팽, 한신이 했던 얘기이다. 그게 싫었던 사람들은 그냥 산으로 들어갔다. 원래 그렇다.

 

<닥터 지바고>에 보면, 진짜 황당한 인간, 코마로프스키가 혁명 전에도 실력자이다가 혁명 후에도 여전히 실세인 장면이 나온다. 러시아 혁명 이후에도 설탕을 들고 오는 장면, 참 그 장면이 뇌리에서 지워지지가 않는다.

 

좋은 세상이 오면 어려웠던 시절에 고통받던 사람들이, 가족들끼리도 회후하고 말년도 편하게 보내고, 그래야 할 것 같다. 그게 사람의 마음인데, 그것과 가장 비슷한 모습은 프랑스의 레지스탕스 얘기에서 좀 본 적이 있다. 소년 연락병이이었던 미테랑이 프랑스 최초의 좌파 대통령이 되었고, 그 시절에 나치와 싸웠던 사람들이 담배가게의 독점적 주인이 되었다.

 

우리에게는 그런 역사가 잘 없다. 녹두장군은 그냥 죽었고, 왜정 시대에 뭔가 한 사람들은 아주 어려워졌다.

 

중학교 시절에 단짝 친구 중에 광복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아주 잘 생겼고, 공부도 잘 했다. 외할아버지가 유명한 독립군이라서, 손자 이름을 광복이라고 하라고 그랬다는 거다.

 

다른 중학교 친구들은 대학 시절에 대부분 다시 만났는데, 끝까지 못 만난 친구가 바로 그 광복이였다. 대학에 못갔다는 얘기를 나중에 얼핏 건너 들었다.

 

유명한 독립군 영웅의 손자가 대학에 올 수 없었던 일, 그게 내 기억에 오랫동안 남았다.

 

중학교 때, 나는 약간 세상에 대해서 알았던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어떤 흐름에서 혹은 어떤 피에서 나온 사람인지, 그 때 처음 알아봤다.

 

그 시절에 내가 알아본 거로는, 친할아버지는 왜정 때 마포서 형사였다는 것 같다. 정말 가난하게 물려준 게 없던 양반인데, 그 시절에 내가 이해하기로는 하여간 친일파라고 나는 이해했다.

 

나는 외할머니가 키워주셨다. 외할아버지는 아주 예전에 돌아갔으닊 나한테 아무 기억도 없다. 어머니가 고등학생 시절에 돌아가신 외할아버지는, 사람들의 기억을 더듬어보면, 동아일보 데스크에 계셨던 기자였던 것 같다. 하여간 친척들의 기억을 중학교 때 내가 모아본 거로는, 그렇다. 


중학교 시절, 나의 선조들에 대한 얘기들을 이리저리 맞춰보니, 친가나 외가나, 영락없는 친일파 집안에서 내가 태어난 거다.

 

그래서 어머니한테 여쭤봤다.

 

우리 외할아버지가 친일파 맞지요?

 

어머니 대답은, 정말 엉뚱했다.

 

친일파가 아니라, 일본 사람들도 할아버지를 존경해서, 집에 와서 유상 유상, 그렇게 불렀다.

 

친일파 맞네

 

근데 왜 이렇게 집안은 가난해, 양가가 다 친일파 집안인데?

 

그게 중학교 2학년 때쯤, 내가 세상에 대해서 처음 생각해본 시절에 내린 결론이다.

 

양가 다 친일파이지만, 해방과 6.25를 거치면서 쫄딱 망한 집안.

 

하여간 내가 독립군 후손이거나, 아니면 그 시절에 뭔가 하려고 했던 집안 내력이 아니라는 것은, 너무도 명확해 보였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이 야릇한 아버지의 집안에서 4년제 대학을 처음 간 게 나였고, 여기서 나온 첫 번째 빨갱이이기도 하다. 내가 아는 한도에서 양가 통틀어서 여전히 조선일보를 안 보는 유일한 사람도 나이고, 명박에게 투표하지 않은 사람도 아마 어른들 중에서는 유일할 것 같다.

 

아마 내가 사실상 이 집안의 장남이고 장손이 아니었다면, 이 지독할 정도의 친일파 집안, 그리고 보수적인 집안에서 최소한도의 나를 지키지도 못했을 것 같다. 보수적인 집안이라서, 유달리 장남의 권한이 강하다.

 

하여간 이런 삶을 살다 보니, 왜정 시대, 그리고 그 후의 삶에 대해서는 좀 민감하게 되었다.

 

토사구팽, 그게 한국이 만든 전통이다.

 

힘들게 새 세상을 만들면 고생한 사람이 최소한의 대가를 받는 게 인지상정,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역사를 만들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는 여전히 나는 레닌이 만들고자 했던 민중들의 공화국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다. 현실 속에서는 실패하기는 했지만, 그런 꿈들을 꾸어본 적이 있기는 했다.

 

명박과 함께, 진짜 지난 4년간 아주 이상한 시대를 만났다.

 

그 이상함의 강도가 너무 깊어서, 그걸 물려야 한다는 사람들이 한국에 생겼다. 그것도 아주 많이 생겼다.

 

그렇다면 그 사람들이 행복해질 것인가?

 

근데, 그게 안 그럴 것 같다.

 

노무현 때 인수위원회 보면서, 이 정부는 망할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공직 생활을 그만둔 적이 있다.

 

박원순의 서울시를 보면서, 그 때보다 더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싸움을 1년은 더 해서, 정권을 바꾸어야 한다.

 

그 다음의 시기가 과연 우리가 바랬던 좋은 세상이 될 것이냐,

 

그런 고민과 함께 과연 지금 고통 받는 사람들이 그 시절에는 행복을 누릴 것인가?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친일파들이 살아남은 역사가, 지금 명박과 싸워서 정권을 바꿔도, 조금은 다른 식으로 계속 될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격차를 줄이는 정도.

 

그래서 요즘 갑자기 토사구팽이라는 생각을 떠올리게 되었다.

 

세상 좋게 만드는 것,

 

그것은 자신의 삶을 풍족하게 만들기 위함이 아니다.

 

Martyr, 문득 순교자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명박과의 싸움, 여전히 순교자가 되는 마음으로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숭고해서가 아니라, 돌아올 것들에 대한 이해를 끊기 위함이다.

 

토사구팽, 그것은 오래 전부터 세상의 진리와 같다. 인간이 그걸 바꾸기는 어렵다.

 

다만 우리는 순교자 같은 마음으로, 현세를 조금이라도 개선하기 위해서 노력할 뿐이다.

 

요즘 김어준을 옆에서 보면,

 

놀기 좋아하고 발랄한 것 좋아하는 그가,

 

문득 순교자 같은 생각을 본인이 하고 있지 않나, 그런 느낌을 받았다.

 

인간이 처리할 수 없는 일정을 살인적으로 강행하는 그를 보면서,

 

토사구팽이라는 단어, 그리고 martyr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대구 콘서트 이후 잠시 쓰러졌다는 그를 보면서, 이것저것 생각이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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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 <보라>의 GV 부탁을 받았는데,

요즘은 때려 죽여도 더 이상 뭔가 얹을 시간이 안 난다. 나도 꼭 보고 싶은 다큐인데, 보러 갈 시간이나 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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