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돌아왔다...

 

이 사진은 작년에, 지금의 가족 고양이를 처음 찍은 사진이다.

물론 이 시절에도 마당 고양이들에게 밥을 주기는 했지만, 지금처럼 그렇게 열심히 주지는 안았다.

지난 장마, 이들 부부에게서 세 마리의 새끼가 태어났다.

가을에 정신이 좀 들어서 보니, 두 마리는 벌써 죽었고, 아들 고양이가 한 마리 남았다.

언제까지 같이 살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지난 겨울이라도 같이 나게 해주자고,

겨울나기를 같이 준비했다.

 

그리고 겨울이 지난 후, 아빠 고양이가 사라졌다.

전에도 가끔 안 보이던 적이 있지만, 이렇게 길게 안보인 적은 없었다.

겨울도 다 지났는데...

 

지난 가을, 아빠 고양이는 구청에 끌려가서 중성화 시술을 받고 왔다.

고양이의 중성화에 대해서, 내 생각은 좀 복잡하다.

어쨌든...

아빠 고양이는 이 가족에서 필요없는 존재가 되었다.

그래서 먹이가 부족하지 않게, 충분히 주었는데, 덕분에 이 가족은...

겨울을 지나면서 뚱띵이들이 되었다.

위 사진은, 돌아온 아빠의 첫 번째 사진이다.

여전히 가족이고, 여전히 친근하다.

누군가의 삶에 대해서, 내가 이렇게까지 신경을 바짝 세우면서 기다려본 적이 있었던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될 정도이다.

아들 고양이.

녀석은 이 마당에서 태어났고, 이곳을 자신의 집이며, 우주라고 생각한다.

얼굴에 카레를 묻히고 다니는 녀석.

담으로 넘어가기 전, 잠시 엄마 고양이를 쳐다보는 아빠 고양이의 표정.

엄마는, 확실치는 않지만, 아기를 가지고 있는듯 싶다.

이 복잡미묘한 심경.

삶이란! 그런 생각이 잠시 들었다.

 

렌즈를 무턱대고 추가하지는 않으려고 했는데, 지금의 렌즈로는 도저히 무리라서 렌즈를 추가했다.

마침 다음 날, 아빠 고양이 혼자 쉬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녀석, 나름 멋진 삶을 살고 있다.

(이거 찍는다고, 나도 마당에서 구르면서 생쇼를 연출했었다.)

 

이것보다 더 부드럽게 졸고 있는 모습을 잡은 게 있었는데,

삥이 안 맞았다. 자동으로는 거의 촛점을 잡지 못해서, 대부분 수동으로 촛점을 잡는데...

나도 노안이 심해져서, 이게 고역이다.

안경 벗었다, 썼다, 아주 난리도 아니다.

내가 알기로는, 녀석은 이미 세 번이 겨울을 났다.

자연상태에서는, 자기 수명만큼 산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조는 모습에서 문득 내 모습을 투영해보기도 한다.

난 이 사진이 참 좋은데,

내 주변 사람들은 별로라고들 하신다.

녀석이 얼마나 더 살지, 내가 얼마나 더 녀석을 보고 있을지, 나도 잘 모른다.

고양이의 삶은, 사람보다 짧고, 길고양이의 수명은 더욱 짧다.

아빠 고양이, 녀석에게 생각보다 많은 것을 배운다.

부부 고양이는 가끔 본 적이 있는데, 이렇게 오랫동안 일가가 같이 지내는 것은, 나도 처음이다.

예전에 키우던 고양이들은,새끼를 낳고 나면 어미가 도망가고는 했다.

녀석의 남은 삶이 길지는 않을 것 같다.

나도 이사를 준비하는 중이라서, 이 집에서 영원히 살지는 못한다.

포획을 해서 데리고 가서, 새로운 집으로 같이 데리고 가는 방법이 있기는 한데,

그게 과연 옳은 것이냐, 그 철학적 질문에 나는 순순히 답을 내지는 못하겠다.

 

그거 그 때 생각할 일...

아빠가 돌아왔다,

지금은 그걸로 기쁘다.

이렇게 우리 집 마당 고양이의 겨울나기는 끝.

이제 봄이 돌아왔다.

장마가 가까워지면, 새로운 고양이들이 태어날 것이고, 이 가족에도 변화가 올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이 자연이 하는 일,

인간의 개입은 최소한인 것이 좋을 듯 싶다.

'남들은 모르지.. > 야옹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오는 날 고양이들...  (4) 2012.04.26
엄마한테 한 대 맞는 아들 고양이  (9) 2012.04.25
아빠 고양이  (6) 2012.04.01
형광등 밑의 야옹구  (5) 2012.03.31
나무 속의 아들 고양이  (6) 2012.03.28
Posted by retired
,

 

그가,

살아 돌아왔다...

긴 겨울 후.

'남들은 모르지.. > 야옹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엄마한테 한 대 맞는 아들 고양이  (9) 2012.04.25
아빠가 돌아왔다...  (9) 2012.04.02
형광등 밑의 야옹구  (5) 2012.03.31
나무 속의 아들 고양이  (6) 2012.03.28
야옹구, 한 때...  (6) 2012.03.25
Posted by retired
,

야옹구 사진 한 번 찍을려면 엄청 굽신굽신 거리면서...

카메라를 아주 싫어한다.

간만에, 그래도 자연스러운, 그리고 눈뜨고 있는 사진이 하나 걸렸다.

 

'남들은 모르지.. > 야옹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빠가 돌아왔다...  (9) 2012.04.02
아빠 고양이  (6) 2012.04.01
나무 속의 아들 고양이  (6) 2012.03.28
야옹구, 한 때...  (6) 2012.03.25
행복, 어느 봄날  (2) 2012.03.18
Posted by retired
,

내년에는 영화나 같이 만듭시다

 

타이거 픽쳐스는 생각해보면 참 재밌는 데다. 영화를 만드는 데가 맞기는 한데, 영화 전공한 사람은 한 명도 없다.

 

현재의 오대표나 주력 시나리오 작가들은 아예 공대 출신들이다. 조연출 중의 한 명이 영화관련 학과를 들어가기는 했었는데, 아예 때려치고 일찌감치 현장으로 나온 경우이고.

 

흔하디 흔한 시나리오 작법이니 영화 학원이니 그런 데도 한 번 가본 사람이 없다. 그야말로 현장파, 아직까지 전통적인 충무로 방식으로 일하는 몇 안 남은 곳 중의 하나로 알고 있다.

 

, 특별히 현장이라고 할 것 같지는 싶지만하여간 현장에서 영화를 익힌 사람들.

 

어떻게 보면 막무가내고, 어떻게 보면 정말 재미파’. 영화를 재미있게 하자는 의미도 되고, 재미로 영화를 한다는 의미도 되고. 그런 게 막 섞여있다.

 

뭐 그러면 영화를 같이 많이 볼 것 같은데, 그러지는 않고. 티져는 많이 본다. 누군가 좀 진지하게 앉아서 영화 좀 볼려고 하면 설령 그게 조철현 대표라도 그냥 노가리나 불면서 놀자고 하기 일쑤다. 우린 한 번도 진지하게 앉아서 같이 영화를 본 적이 없다. 유일하게 같이 영화 보는 건, 시사회할 때.

 

지난 수 년간, 난 다음 출간 일정들이 잡혀 있고는 했는데, 더 이상 추가적인 계획을 세우지도 않고, 일정을 잡고 있지는 않다. 물론 밀린 것들이 있어서, 과연 이것들을 올해 다 끝낼 수 있을까 싶지만하여간 늦어도 내년 초까지는 다 정리할 수 있을 듯 싶다. 그 다음 계획은없다.

 

학자로서 살아온 삶을 정리하면서, 올해는 내가 했던 일, 내가 하던 일, 그런 것들을 하나씩 정리해나가는 중이다. 그리고 새로 얹는 일은, 거의 없다, 학문과 관련된 것은.

 

지난 몇 달 동안, 정말 무수히 많은 영화가 우리 테이블 위에 올라왔다 또 내려갔다.

 

다음 주부터 조대표가 예전부터 귀에 못이 닳도록 얘기하던 코미디 살인 사건시나리오 작업에 들어가고, 손상준 조감독이 킬러들의 사생활의 각색 작업을 시작한다.

 

이렇게 수 없는 작업들을 지난 몇 달 동안 했는데, 아직 당장 들어갈 스타트 작품을 아직도 못 잡았다. 그래서 슬럼프이기는 하다.

 

나도 모피아 얘기로 시작하는, 공무원 3부작을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계속해서 써보기도 하고, 엎어서 다시 시작해보기도 하고, 그러는 중이다.

 

타이거 픽쳐스는, 다른 영화사에 비하면 작가들이 많은 곳이기는 하다. 이준익 감독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직접 시나리오 작업을 하고, 최종적으로는 한 테이블에서 공동작업하는 그런

 

아직 스타팅 작품을 잡아서 한 테이블에서 같이 작업하는 단계까지 가지를 못했다. 그래서 여전히 공전 중.

 

이 와중에 나는 여전히 원고 작업 중이고, 몇 년째 붙잡고 있는 원고들이나 펼쳐놓은 일들을 하나씩 정리해가는 중이다.

 

한 달 동안 테이블 위에 올려만 놓고 손을 못대던 것으로, 지난 달 경향신문에서 연재를 끝낸 시민운동 몇 어찌라는, 50편짜리 연재 칼럼이 하나 있다.

 

제목은 시민의 정부컨셉으로 갈까 하는데, 시민의 정부 + 시민의 경제라는 의미 정도로제목 작업은 아직 못했다.

 

출판사랑 상의를 해봤는데, 아무래도 뒤부분에 보충 설명을 다는 후반작업은 총선 이후로.

 

총선과 대선 과정에서 내가 생각하는 다음 정부에 대한 희망사항을 이 책에 담으려고 한다.

 

아마 6월에나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대선이 끝나면,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일본어 공부를 할 겸, 겸사겸사 히로시마에 몇 달 가 있을까 했었다. 사람들 만나기도 싫고, 뭐 별로 하고 싶은 일도 없고. 학자로서 살았던 삶을 정리하면서, 아무 것도 안하는 시간을 일단 좀 가질려고 했었는데

 

아이의 출산예정일이 끼면서, 곤란하게 되었다.

 

조철현 대표가, 내년 초에, 같이 영화나 만들자고

 

, 그것도 재밌을 듯 싶지만, 글쎄

 

내년 일은 나도 모르겠다. 일단 아기나 열심히 키우고.

 

'남들은 모르지.. > 명랑이 함께 하기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위기의 남자  (8) 2012.04.07
강남을, 벽 앞에 선 느낌  (9) 2012.04.05
오랜만에 홍기빈 박사...  (6) 2012.03.27
인간의 언어  (4) 2012.03.17
영화 <초한지> 혹은 번쾌의 눈물  (4) 2012.03.15
Posted by retired
,

 

봄이 온다.

엄마 고양이가 진짜 예뻐졌다. 멀리서 보는 하는 거라서 확인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아마도 아기를 가진 것 같다. 배가, 범상치가 않다.

아빠 고양이는, 벌써 열흘째 보이지 않는다.

몇 년째 많은 고양이들과 지내고, 또 헤어져 보내고.

그냥 자연의 섭리라고 생각한다.

 

아들 고양이가 나무 밑으로 들어갔다.

작은 덤불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보니까 더 귀여워 보인다.

지난 겨울을 같이 나면서, 이 녀석, 이제 진짜 환하게 피어올랐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 정말로 귀엽다.

첫 겨울을 버텨낸 새끼 고양이, 이제는 지 어미보다도 더 큰, 다 큰 고양이가 되었지만...

아직도 앳된 티가 가시지 않는다.

도저히 카메라가 포커스를 맞추지 못해서, 난감한 상황에서 수동으로 촛점을 잡았는데...

뭐, 순간 나도 조금씩 움직여야 하니까 고약한 작업 환경이기는 하다.

정확히 맞췄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열어보니, 오... 낙엽에 가서 맞아버렸다.

고양이 사진이 어려운 건, 일단 찍을 수 있는 순간이 순식간이고, 이것저것 만지고 할 자시고가 없다.

장비의 도움을 최대한 빌리는 수밖에 없는데, 뭐...

그건 내가 해볼 수 없는 거고.

고양이 사진에서 해볼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어이, 이 쪽 좀 돌아보시지, 포즈를 요청해보는 것.

진짜, 마음으로 찍고 마음으로 보는 수밖에 없다.

 

지금의 엄마 고양이와 아빠 고양이가, 처음부터 지금처럼 나한테 밥을 얻어먹은 것은 아니다. 너무 자주주면 자연에서 살아갈 수 없을 듯하여... 가끔 주었다.

이 녀석은, 장마에 태어난 세 마리 중 한 마리가 남고 난 다음부터, 정말 매일 밥을 주었다.

엄마랑 아빠가 다른 데 놀러가도, 얘는 늘 마당을 지킨다.

내가 잘 하는 건지, 가끔 물어보게도 된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다는, 그런 느낌을 받는다.

'남들은 모르지.. > 야옹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빠 고양이  (6) 2012.04.01
형광등 밑의 야옹구  (5) 2012.03.31
야옹구, 한 때...  (6) 2012.03.25
행복, 어느 봄날  (2) 2012.03.18
야옹구 사진 몇 장...  (2) 2012.03.15
Posted by retired
,
이정전 선생의 '시장은 정의로운가' 책이 새로 나와서, 오마이뉴스에서 진행하는 대담회에 갔다 왔다.

간만에 홍기빈 박사를 만났다. 홍기빈, 이종태, 이렇게 전부 금융경제연구소라는 좁은 공간에서 복닥복닥거리던 시절이 있었다.

홍기빈은, 나와 동갑이다. 그냥 수 년째, 친구로 지내고 그렇게 같이 늙어간다.

이론적 싱크로율은, 90% 이상일 것 같다.

fta 책 쓸 때, 홍기빈이 출판사를 좀 소개시켜 달라고 해서 소개해준 적이 있다. 처음에 fta 책 낸 사람들이, 거의 비슷할 때 출간을 해서, 지금도 잘 알고 지낸다.

홍기빈을 처음 만난 건, 황우석 박사 때였다. pd 수첩 사태가 한참이던 시절, 유학생이던 홍기빈과 그 때 처음 보았다.

준비하던 fta 책의 최종 정리에 들어가면서, 홍기빈에게... 한미 fta에 대한 심경을 좀 물어봤다.

다들, 포기한 거 아니냐...

포기라...

그 말을 들으면서 괜히 마음이 무거워진 것은 사실이다.

홍기빈과 나는, 수 년째 등을 맞대고 같이 버텨온 사이이다. 그도 지친다면... 뭐, 그게 현실이 아닌가 싶다.

홍기빈이나 나나, 금융경제연구소 시절에 대한 약간의 노스탈지아를 가지고 있다. 그 때 모르던 거 공부 많이 했었다, 덕분에.

홍기빈 박사나 송기호 변호사나... 생각해보면 내 삶은 참 행복한 것 같다.

늘 등을 기대고 고민을 같이 얘기할 수 있는 동료들이 있었다.

그 힘으로 지금까지 버틴가 아닌가 싶기도 하고.

김용민 뒷자리에 들어올 사람에 대한 고민을 조금씩 해보는 중이다.

미안하지만, 홍기빈, 미화 누님이 안된다고 했다.

경제학자 두 분 모시는 것도 힘들어주겠는데, 세 분을 모시라...

내는 몬한다, 니들끼리 해라...

그러셨다.

다음 주 금요일, 홍박 연구소에서 작은 행사가 있다고 놀러오라는데...

오건호 박사 등 보고 싶은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는 자리이기는 한데, 그렇게 나가서 술 먹고 들어왔다가는 아내한테 정말 쫓겨난다.

내가 요즘, 이러구 산다.
Posted by retired
,


딱 작년 요맘 때 찍은 야옹구 사진이다.

엄청 후진... 까지는 아닌, 후지 똑딱이로 찍었던 사진이다.

날만 좋으면, 똑딱이도 사진 엄청 잘 나온다.

요즘은 그냥 소니 쓰는데, 후지 색감이 가끔 그립기도 하다.

이 사진은, '1인분 인생'에 흑백으로 실린 적이 있다.



마침 참새가 지나가는 걸, 정말 호기심 어린 눈으로 보는 표정.

고양이의 저런 성격이 나는 참 좋다.

호기심이 사라지면, 그 빈 공간을 탐욕이 매우게 되는 걸까?


 



지난 겨울, 자궁축농증으로, 진짜 구름다리 넘어가는 걸 겨우겨우 살려서 데리고 왔다.

그 때 생각하면 지금도 시껍...

죽기 직전까지도 아픈 티를 전혀 안내서, 정말 죽어가는 줄 몰랐다.


아파서 누워있는데, 문득 사진 속 표정을 보면서 생각해보니, 처음 키웠던 고양이가 현관 문 앞에서 죽어가던 순간이 생각이 났다.

이렇게 누워서 자면,그렇게 그냥 일어나지 않는, 그런 고양이의 죽음이 갑자기 생각나서...

안 가겠다고 난리치는 걸, 억지로 캐리어에 쑤셔넣고 동물 병원으로 뛰어갔다.

백혈구 수치가 1/3로 떨어져 있어서, 정말 이 잠이 마지막 잠이 될 뻔 했었다.

이틀만에, 살아났고, 수술은 무사히 끝났다.

수술 끝나고 병원에 가서 날 보자마자, 야옹구도 안심하는 표정.

그리고는...

다음날 병원에서 오줌 쌌다.

의사 선생님이,

"얘, 이제 데려가셔도 됩니다, 다 나았어요."

병원에서 바로 쫓겨났다.

그 다음 날 주사 맞춘다고 한 번 더 병원에 데리고 가는데,

내 차 안에서 발버둥을 치다가 캐리어 안에서 오줌을 쌌다.

정말 사력을 다해서 발버둥 치는...

"또 배쨀려구?"



그리고는 깔때기 고양이가 되었다.

식구로 같이 살아간다는 것,

가족이라는 것..

한 번쯤 깊게 생각해볼 기회가 되었다.

 


(아오, 급하게 바로 셔터를 눌렀더니... 삥이 물먹는 하마에 가서 맞아버렸다, 할 말 없다, 야옹구. 너의 이 회복 첫 날에, 딱 한 번 들었던 카메라가 내놓은 사진들이 다 이 모양들이다.)

'남들은 모르지.. > 야옹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형광등 밑의 야옹구  (5) 2012.03.31
나무 속의 아들 고양이  (6) 2012.03.28
행복, 어느 봄날  (2) 2012.03.18
야옹구 사진 몇 장...  (2) 2012.03.15
1년 전의 부부 고양이  (1) 2012.02.27
Posted by retired
,

봄이라고 하기에는 아직은 좀 춥지만, 어쨌든 이 추위를 밀어내면서 새싹들이 조금씩 피어오르고 있다.

어느 날 하오, 집 밖을 나가는데 휴식을 취하고 있는 엄마 고양이와 아들 고양이가 눈에 들어왔다.

아빠 고양이는, 일주일째 보이지 않는다.

등을 돌리고 있는 건 엄마 고양이이다.


아직 확실하지는 않지만,

엄마 고양이는 자태와 모양새가, 어쩌면 새끼를 배고 있는 건지도...

하여간 느낌이 그렇다.

확실하지는 않다.


누군가 평온한 모습을 보면, 자신도 평온해지는 게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우리 집 마당에 이렇게 저렇게 다섯 마리쯤의 고양이들이 살고 있다.

세 마리는 가족이고, 나머지는 그냥 군식구.

이렇게 또 모질도록 추운 지난 겨울을 났다.

 


검은 고양이가 얼마 전에 머리에 큰 상처가 난 후,

한동안 보이지 않아서 좀 걱정을 했었다.

워낙 떡대 좋고 기세 좋은 녀석이라, 잘 이겨냈겠지... 싶었는데, 하여간 보이지 않아서, 좀 걱정을.

며칠 전에 밤에 산책을 나갔다가 녀석과 딱 마주쳤다.

얼핏 보기에는 상처도 거의 다 나은 것 같고, 건강이 이상해보이지는 않았다.

한시름 놓았다.


아들 고양이,

오늘 따라 밥 먹는 것보다 간만에 나온 따스한 햇살을 즐기느라, 정신이 없다.


뒹굴다가 나와 눈이 딱 마주쳤다.

최근에 낸 에세이집에는 겨울을 나기 전 아들 고양이의 모습이 작은 사진으로 들어가 있다.

뭐, 엄청난 사건은 아니지만, 하여간 아들 고양이가 메인으로 찍힌 사진이 책에 들어간...

 


대박, 고양이 아들 고양이 하품하는 모습이 제대로 잡혔다.

고양이 하품 하는 모습이, 워낙 포착하기도 어렵고, 빛이 조금만 어두우면 그냥 흔들려서 나오기가 일쑤다.

엉겹결에 카메라 켜자마자 찍은 거라, 이것저것 조정할 틈도 없이, 어제 썼던 ISO 800값에 그냥 맞추어져 있어서...

사진은 맘에 들지는 않는데, 역시 우연히 잡은 하품하는 모습이 흔들리지 않고 제대로 잡혔다.


글쎄...

나는 연출하거나 그런 사진을 좋아하지는 않아서, 그냥 눈에 보이는 대로, 그 상황대로 찍는 편이라... 너무 날 것을 찍는 경향이 있기는 하다.

마지막에 잡힌 아들 고양이의 표정을 보면서...

나는 순간, "행복이란!", 그런 문장이 머리를 스치고 갔다.

조금 더 가까이가서 클로즈업을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럴 필요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행복, 그것은 약간 멀리에 있을 때,

자기가 알아서 오는 것이다.

더 들어가서 자세히 보려고 하거나, 손에 쥐려고 할 때,

그것은 포말과 같이 날아가는 것.

그건 누가 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가져다 줄 수 있는 것도 아닐 성 싶다.


어쨌든 봄,

행복이 잠시 피어오르는 것을 본 것 같다.

'남들은 모르지.. > 야옹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무 속의 아들 고양이  (6) 2012.03.28
야옹구, 한 때...  (6) 2012.03.25
야옹구 사진 몇 장...  (2) 2012.03.15
1년 전의 부부 고양이  (1) 2012.02.27
하오의 연정  (3) 2012.02.26
Posted by retired
,

인간의 언어

 

신경민이 민통당 대변인이 되었고, 지역에 출마도 하였다. 신경민, 좋아하느냐고 하면, 당연한 거고. 얼마 전, 어느 패션지에서 같이 대담도 하였다.

 

YTN 라디오를 듣다가, 누가 이렇게 말을 못하나 그리고 이렇게 심할 정도로 운동권 사투리를 쓰나, 싶어서 집중해서 들어보니, 오매나야, 신경민이다.

 

운동권 사투리 중에 대표적인 게, ‘부분’, 심지어는 부분체라고도 불리는. 이 부분, 저 부분, 그런 부분, 엄청 찾는 말이 운동권 사투리 중의 하나이다.

 

한명숙 부분, 세종시 부분, 그런 부분, 강정 마을 부분,” 푸하하, 듣다가 엄청 웃었다.

 

대담할 때에는, 운동권 사투리가 있다는 생각은 못 했고, 좀 말하는 투가 격식을 차리려다 보니, 약간 딱딱하다는 정도의 느낌을 받았었다.

 

평생 말로 먹고 산 신경민이 엄청 부분 찾으면서 버벅거리고 있었더니, ytn의 앵커도 같이 부분 찾고, 그야말로 부분의 대향연이었다. 상대방이 헤매면, 자신도 같이 헤매게 되는 경우가 많다.

 

선대인이, 엄청 말 길다. 선대인 앞에 있다 보면, 나도 덩달아 말이 길어져서, 전국민 재울까봐, 좀 신경을 쓰는 편이다.

 

글도 어렵지만, 말도 참 어렵다. 언어학을 부전공처럼 공부하고 싶은 생각이 있던 시절도 있었는데, 먹고 사는 걱정하다 보니, 세상살이가 팍팍해서. 한국에서 언어 현상에 대해서 가장 관심 있고 주의 깊게 보는 사람은, 고종석이 아닐까 싶다. ‘말들의 풍경’,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책이었다.  

말이라는 게 참 묘하다.

 

프랑스어도 직설법을 잘 안 쓰고, 은유와 풍자 이런 걸 많이 쓴다. 일본 사람 말하는 거, 특히 대학에서 토론하는 거 보다 보면 숨 넘어간다.

 

선생님 말씀이 전적으로 옳고, 정말 감동했습니다, , 이런 썰레발을 몇 분이나 푼 다음에,

 

저는, 아주 약간, 조금은 다른 느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본 학생이 스승에게 이렇게 얘기했다면, 정말 아주 강력한 반대의 표시일 것이다. 아주 조금 다른 느낌이라면, 아예 얘기를 하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언어와 위계, 이런 것도 분석해보면 정말 재미있는 언어 현상일 듯 싶다.

 

한국에서의 좌파와 우파의 언어습관, 이런 것도 언어학적으로 분석해보면 정말 재밌을 듯 싶다. 50대의 성공한 부장 혹은 이사 정도 되는 사람들에게 흔히 관찰되는, 남을 싹 무시하고 자기 얘기만 하면서 문득 기분 좋아지는.

 

다들 흉보지만, 누군가 흉본다는 걸 자신만 모른다. 언어 습관이라기 보다는, 그 자신의 삶의 습관이 고스란히 말에 묻어나는

 

위계가 아주 강력했던 시절, 몸에 밴 습관인데, 위계가 약해지는 시대가 왔다는 걸 자신만 모르는강용석한테 이런 언어 습관이 종종 보였다. 한나라당, 민주통합당, 사실 좀 쎄다는 국회의원들은 여야 가리지 않고 요런 식의 언어 패턴이 많이 보인다.

 

좌파들의 언어는, 이와는 조금 다른 패턴. 아주 날이 서 있어서, 일반인들은 단 5분도 그 앞에 마주 서 있기가 피곤한.

 

공격이 최선의 방어다, 먼저 선빵부터 날리고 기선제압하지 않으면, 애당초 쪽수로는 버틸 수가 없던 곳에서 오래 살면, 자연스럽게 이런 언어가 몸에 익게 된다. 한 때 당직자들이 우황청심환 먹지 않으면 도저히 열어볼 수가 없다고 했던 진보신당의 당게시판, 뭐 나름 재미는 있지만, 일반인들은 경기 일으키기 딱 좋다.

 

아마 나도 가만히 돌아다보면, 엄청 엘리트들이 쓰는 언어습관을 가지고 있었을 법하고, 왕재수 시절이 아주 길게 있었을 것 같다.

 

몇 년 전부터, 의도적으로 입을 잘 안 열고, 주로 듣는다. 들으면서 상대방의 삶이나 걸어온 인생 혹은 이 사람이 하고 싶어하는 것, 이런 걸 찾아내는 게 더 재미있다. 내가 말을 하는 건, 얘기하고 싶은 사람이 더 쉽게 자기 얘기를 할 수 있게 추임새를 넣어주는 정도?

 

그러니까 나는 애당초 방송에는 맞지 않는 언어습관을 가지게 되었고, 그래서 방송 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정권만 바뀌면, 다시는 사람들 앞에서 마이크를 들고 서지는 않으리, 그런 심경으로 요즘도 그냥그냥 버틴다.

 

성경은 태초에 말씀이 있었으니…”로 시작한다. 물론 여기에 대해서 태초에 행동이 있었으니…”, 요렇게 맑시스트들이 공격하던 시절도 있었다.

 

말이라는 게, 이게 아주 희한한 것이다. 개념도 복잡한 것이지만, 언어 패턴 그 자체가 생각보다 많은 것을 보여준다.

 

명박의 언어, 요건 어떨까? 불어를 써서 미안하지만, 데구떵토 나온다, 요런 뜻이다.

 

어쩌면 그렇게 말 한 마디 한 마디, 복장을 뒤집어놓는지, 그것도 참 신기할 정도로 말초신경을 꼭꼭 골라가며

 

해봐서 안다, 우리가 무심결에 자주 쓰는 이 말이, 아마도 정상적인 한국인의 언어 습관에서는 완전히 사라질 것 같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 라는 말을 정상적인 집단에서 해보라.

 

금방, 사방에서 미사일 날라오고, 다연장포 발사되고, 난리 날 것이다. 만약에 이 말을 했는데도 아무 반응이 없다면?

 

자신이 그 집단에서 심하게 왕따이거나 혹은 그 집단이 아주 이상하거나,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런 이상한 말을 쓰는 데도 아무런 반응이 없어?

 

명박이 자주 쓰는 언어들은, 아마 현대 한국어에서 영원히 봉인된 금기어처럼 되지 않을까 싶다. 그는 우리들의 무의식을 이미 형성하는 것 같다. 정말로 혐오스러운 것으로서 무의식 안에 들어가 버린 최초의 정치 지도자

 

강도는 약간 약하지만, 국회의원이나 장관 중에 본인은…” 이라는 말을 쓰는 사람들은 멸종했다. 그건 전또깡의 언어라서 그렇다.

 

아마 조금 지나면, “본 의원은…”, 그런 말도 사라질 것 같다.

 

저는…”, 그러면 될 것을, 본 의원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렇게 말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 궁극적으로 내가 가지고 싶은 언어는?

 

당연한 얘기겠지만, 사람들을 편하게 해주는 언어를 가지고 싶다.

 

내가 무슨 영광을 더 보고, 무슨 출세를 더 하겠다고, 다른 사람을 아프게 하고, 다치게 하는 언어를 가지고 싶겠나?

 

나를 더 낮추고, 누구든지 내 등 위에 올라타고 편안할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쉬고 앉을 수 있는 바위 같은 삶이 내가 영감이 되었을 때 구현하고 싶은 삶이다.

 

, 연구 한다고 되는 것은 아닐 듯 싶다.

 

그냥 결을 따지자면, 언제나 날이 서 있고, 긴장감을 100%로 높이는 손석희의 언어와는 정 반대의 방향? 손석희 앞에서는 누구나 긴장하게 된다. 그러나 내 앞에서는 누구도 긴장할 필요가 없는, 그런 삶을 살고 싶고, 그런 언어를 가지고 싶다.

 

평생 말로 먹고 살았던 신경민 앵커가 당 대변인이 되자마자, 엄청나게 부분을 찾으면서 헤매는 걸 보면서말이라는 게 뭔가, 잠시 생각해볼 기회가 되었다.

 

부디 그가, 자신에게 필요한 언어를 빠른 시일 내에 찾아낼 수 있기를 빈다.

 

(이렇게 글을 써놓고 나니,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 언어습관, 이런 걸 형상화시킬 수 있는 사진은 도대체 뭘까? 무슨 형태의 사진을 찍으면, 언어라는 게 사진으로 표현이 될까? , 첫 질문부터 너무 어려운 걸 나한테 던졌다. 입 모습? 낙서? 포스터? 사진이라는 게 전달력이 참 우수한 장치이기는 한데, 언어 습관을 형상화시켯 보여주기에는와 놔, 죽겠네.)


Posted by retired
,

영화 <초한지> 혹은 번쾌의 눈물

 

나는 영화를 많이 보는 편이다. 물론 그렇다고 많은 종류를 보지는 않는다. 한 가지 영화를 100번씩 보는 걸로, 그걸로 유명해졌다. 참 웃기는 일이다.

 

공부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그렇게 영화를 본다. 교과서를 여러 번 보는 것과 다를 게 하나도 없다.

 

그리고 많이 운다. 나야 원래 눈물이 많으니, 내가 운 것은 아무 정보도 아니지만, 보고 또 봐도 눈물이 나는 건, 그건 정보가 좀 된다.

 

이준익 감독의 실패한 영화 중의 대표작, <즐거운 인생>, 거기에서 혁수가 공항에 있는 신부터 그 뒤에 몇 장면까지, 그건 보고 또 봐도 눈물이 난다. 물론 다른 사람들은 거기에서 그렇게 눈물을 흘리지는 않는다.

 

영화 <화차>에 대해서 얘기해보자.

 

변영주 감독이랑은 아주 친하고, 어쩌면 인생의 파트너 혹은 파트너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사이이다. 그러나 <화차>를 보고 울지는 않았다. 물론 울지 않았다고 재미없는 영화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어쩔지 모르지만, 나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영화 중의 하나가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이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도 울지 않았다. <반지의 제왕>, <매트릭스>, 좋아하고 dvd는 물론이고 블루레이까지 모으는 영화지만이 시리즈에서 단 한 번도 울지 않았다. 그러니까 내가 울었다는 것과 좋아하는 영화라는 것은, 아무 상관 관계도 없다.

 

, <레지던트 이블 4>, 극장에서 졸면서 하품하다가 울었다, 이거 아직도 안 끝나

 

하여간 그렇다.

 

별 시시껄렁한 영화 혹은 드라마에서도 울고, 어지간한 영화에서는 한 장면씩 울기도 하는데, 또 전혀 울지 않는 영화들도 있다. 좋은 영화, 나쁜 영화, 그 기준과 나의 울음은 아무 상관이 없다.

 

그래서 내가 울었다는 건, 아무 정보도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참 내드라마 <대물>에서 고현정의 너무 뻔한 연설에서도 울었고, 선덕여왕의 한 장면에서도 울었고, <커피 프린스>는 거의 매회 울었고

 

할 말 없을 정도다.

 

, 그런 내가 지난 몇 달 동안 그리고 나의 영화 역사상으로도 가장 많이 운 영화가 있으니, 바로 영화 <초한지-천하대전>이다.

 

영진위 통계로는 9 3, 10만도 못 든 영화이다.

 

보통 내가 있는 영화사에서 중요 영화가 나올 때, 관객수 내기를 하는데, 그 때 보통은 50, 좀 작으면 30만 단위로 내기를 건다. 10만 관객은, 내기 단위에도 들어가지 않는다. 한 마디로, 한국에서는 완전 실패한 영화이다. , 더 할 얘기가 없는,

 

이 정도면, 아주 졸작이거나, 아주 예술 영화이거나 혹은 독립 영화이거나.

 

물론 이 수준으로 망한 영화 중에 수작은, 구로자와의 <카케무샤>. 한일 문화교류를 시작하면서 첫 빠따로 들어온 영화가 공교롭게도 사무라이 영화, 그것도 임진왜란을 일으킨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통일전쟁과 관련된 것이었으니, 맙소사어쨌든 영화는 좋은 영화였다. (물론 이 영화에도 내가 우는 대목이 몇 장면 나온다.)

 

, 나의 영화의 울음에 대한 썰래발은 이 정도로 충분.

 

누구나 다 아는 항우, 바로 그 항우와 우미인이 나오는 이 영화를 dvd로 빌려서 보면서, 나는 정말 눈물이, 거짓말 안 보태고 닭똥방울 떨어지듯이 떨어졌고, 다섯 번쯤 다시 돌려보았는데, 볼 때마다 눈물 뚝뚝.

 

물론 이건 좀 특수한 상황이다. 영화 자체가 그렇게 대단했다는 건 아니고,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상황이랑 너무나 같아서

 

항우와 유방의 싸움이라는 초한지의 구조는 너무 간단하고, 몸만 있는 듯한 항우와 머리만 있는 듯한 범증이 한 편. 그리고 머리만 있는 장량, 몸만 있는 번쾌, 머리와 몸이 다 있지만 운이 없는 한신그리고 그 아무 것도 없지만 하늘의 뜻이 있는, 그리하여 결국 삼국지 유비의 선조가 되는 유방, 그들의 얘기이다. , 그들의 얘기와 각각의 사연들이야 너무 잘 알려진 것들이고.

 

영화는 처음부터 항우와 유방의 두 대빵은 좀 모자란 사람인듯, 애초부터 앵글 밖으로 빼버리고,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듯, 범증과 장량의 머리 싸움으로 각을 잡는다.

 

물론 이 각이면 한신이 좀 나와야 할 듯 싶지만, 한신은 영화 <해운대>에 잠깐 등장한 롯데의 이대호처럼, 소리만 시끄럽고 내면의 얘기는 아주 없는그런 대갈 장군처럼 나온다.

 

(한신을 너무너무 좋아했던 나로서는, 참 아쉽다, 그가 그렇게 소리나 꽥꽥 지르는 돼지처럼 나오다니…)

 

장기라는 걸 두면, 양 쪽의 왕에 나오는 초라는 글자와 한이라는 글자, 바로 그 전쟁에 대한 얘기이다.

 

영화는, 아마 보는 사람에 따라서 다르게 보여질 수도 있겠지만, 내가 본 영화 <초한지>는 통일을 끝내고 어떻게 유방이 그의 측근들을 쳐버릴 수밖에 없는가, 거기에 시선을 맞춘 영화이다. 그래서 이건, 전통적인 유방과 항우의 대결과도 좀 시선이 다르다.

 

(어쩌면 지금 중국의 상황에서, ‘토사구팽’, 어쩔 수 없지 않은가라는 상황이 좀 반영된 거 아닌가라는 약간의 추측을…)

 

이 영화의 하일라이트이자 결정적인 시퀀스는, 보통은 항우의 마지막에 맞추어져 있을 것 같지만, 그 전투가 끝나고 바로 한신과 장량을 잡는, 그렇게 연결된다.

 

이유는 없고, 설명도 안 해준다.

 

다만, 너무 강한 한신을 잡기 위해, 그가 있는 방을 포위하고 활을 날리는 궁사들만이 있을 뿐, 그리고 거기에 대항해서 뭐라도 해보는 한신의 모습.

 

장량은 더 초라하다. 밑도 끝도 없이, 그냥 말을 타고 도망가는 장량, 그리고 결국 활에 맡고 사막의 모래 밑으로 굴러 떨어지는 장량의 말

 

그리고 다음 장면에서 번쾌가 유방이 자고 있을 것이 뻔한, 왕실로 들어간다.

 

당근빠따, 쫄따구들이, 이제는 대장군이 된 번쾌를 막아선다.

 

근데

 

그 앞에 유방이 나선다.

 

내버려두어라

 

번쾌, 씨부린다.

 

, 번쾌, 좃도 아닌데, 니를 따라 나섰고, 블라블라, 하여간 한신, 장량, 다 니가 좃도 아닐 때 니랑 내랑 쟤들 좃도 아닐 때 이렇게 저렇게 꼬드겨 데블고 나온 얘들,

 

별 잘 못한 것도 없는데, 그리고 내가 걔들한테 하자고 했는데, 니가 이렇게 쳐죽여,

 

, 이제 내 필요 없지?

 

, 번쾌, 이제 필요 없는 존재이구나

 

요 시점에, 유방이 한 마디 할까 말까, 숨 죽이고 봤는데, 역사 속 우유부단의 대명사, 유방과 유비, 역시 한 마디 없고

 

번쾌는, 순간

 

그가 항우와 맞대서도 밀리지 않을 정도였던 그의 칼로 그의 목을 그어버린다

 

번쾌의 최후.

 

요 시퀀스가 다 합치면, 10분 조금 넘는데,

 

유방의 즉위식이 끝나자마자 바로 다음 장면에서 한신이 죽을 때부터 번쾌가 죽을 때까지, 나는 거의 파블로프의 개처럼, 그냥 울었고, 울고 울고 또 울었다.

 

몇 번을 돌려봐도, 울고 울고 또 울음이 났다

 

이건 미래 시점에 대한 감정이입이 아니라, 바로 그 날의 감정이입이라고나 할까?

 

한명숙이 민주통합당 당대표가 되고, YMCA의 이학영 대표가 최고의원에서 떨어지던 날

 

모르겠다

 

그 뒤의 시대가 좋아질지는하지만 죽어나갈 사람들의 모습들이 너무 분명해보였던 밤,

 

영화 <초한지>를 보면서 참 많이도 울었다. 그리고 더 울었던 건,

 

이러면 안된다, 최소한 영화 속에서는 한 마디 했던,

 

그런 번쾌도 우리에게는 없을 것이라는 걸.

 

그래서, 밤새도록 울고 또 울었었다.

 

이 얘기를 한참이나 지난 오늘 다시 회상하는 것은,

 보통은 통일을 하고 한신과 장량을 쳐내는데,

지금의 민주통합당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데이터상의 승부를 보고, 토사구팽을...


(영화 볼 때에는 없었던 일인데, 나중에 박선숙이 자신의 전략공천을 포기하면서, 번쾌가 아주 없지는 않구나, 그런 걸 보여주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선숙, 그가 번쾌이다.)

'남들은 모르지.. > 명랑이 함께 하기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랜만에 홍기빈 박사...  (6) 2012.03.27
인간의 언어  (4) 2012.03.17
명박 시대를 보내며  (12) 2012.03.15
화차의 경제학  (3) 2012.03.09
그냥 마음이 허해서...  (3) 2012.03.08
Posted by retir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