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kE 방송 후기 7. 프렌디편

 

아무래도 오늘 방송에서 내가 느낀 가장 큰 소감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 최광기!"가 아닐 수 없다. 전날 두 명의 키맨 중 한 명이 최광기인 걸 알았는데, 얼마나 반갑던지. 이 얘기를 쓸까 말까 잠시 고민을 했었는데, 방송 내용이야 보면 되는 거고, 화면으로 보이지 않는 것들을 좀 기록해보자는 게 원래의 내 의도 아니었던가. 그리하여, 방송사 고위층들이 보면 좀 안 좋아하실지도 모르겠지만, 그냥 쓰기로 마음을 먹었다. 방송에 익숙한 페미니스트 한 명이 아빠 얘기하는데 나오면 좋을 것 같다, 이게 섭외 의도였던 걸로 안다.

 

지난 대선 마지막 전날, 문재인 후보가 서울에서 부산까지, KTX를 타고 내려가면서 마지막 유세를 했는데, 어쩌다 보니 나도 엉겹결에 부산까지 내려갔다. 그 때 대구까지 나와 같이 내려가면서 사회를 봤던 사람이 바로 최광기였다. 그냥 쉽게 설명하면, 한국의 집회는 최광기가 사회를 보는 집회와 그렇지 않은 집회로 나뉜다고 하기도 했던 바로 그 최광기. KTX 옆 자리 앉아서 내려가다가 대구역 유세에서 그는 바로 서울로 올라갔다. 그 때 헤어지고 도통 술 한 잔 못하고 있다가 이렇게 방송에서 만난. 사는 게 과연 뭔가 싶다. 나는 그 후 100일 막 넘은 아기 돌보느라, 정말 정신없이 시간이 지나갔다. 우린 왜들 이러고 사나, 그런 생각이 잠시 들었다.

 

 

(방송 전 담소 중. MC, 슈퍼모델 김미우씨 그리고 최광기)

 

오늘의 주제는 프렌디, friend+daddy의 합성어이다. 그리하여 또 다른 키맨은 아빠 놀이학교의 권오진 교장 선생님, 징그러울 정도로 살갑게 사람을 대하신다. 지리산에서 너무 익숙하게 보았던 사람들의 느낌이 살짝 드는. 왠지 꽁지 머리를 하고 있어야 어울릴 듯 싶은. 흔한 마초와는 정반대의 캐릭터.

 

하여간 아빠들의 방송인데, 김학도씨는 아기 3, MC는 중학교 1학년, 나는 7개월 된 아기, 그렇게 아빠들이 아기 키우는 얘기를 중심으로 얘기하는 날이었다. 김학도씨는 대표적인 모범 아빠이다. 그야말로 아빠들의 토크인 셈이다.

 

 

권오진 아빠학교 교장 선생님이 해주신 말씀 중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하루에 잠시 통화를 하는 방식으로라도, 아이들과의 연 날리기 놀이를 계속 하라는 것이었다. 연줄은 가늘어도 좋지만 끊어지면 안 된다. 아무래도 아빠가 일정한 역할을 해주면 어린이들에게 좋은 거 아니겠나 싶다.

 

최광기가 한 얘기는 가슴을 뜨끔하게 했다. 똑 같은 일을 엄마가 하면 그 정도는 해야지, 그러다가 아빠가 하면, 우와! 이거 억울해서 살겠냐?

 

나도 아기 키우다 보니, 요즘 사는 게 벅차다. 국가가 특별히 더 해주는 게 없고, 엄마들은 이제 본격적으로 경제활동에 참여하다 보니, 친정 어머니가 하거나 남편이 하거나, 선택지는 아주 좁다. 아빠들이 육아에 참여하고, 조금 더 적극적으로 역할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래서 오늘의 색다른 시선의 제목은 궁극의 트렌드로 잡았다. 이건 한 번 왔다가 가는 단기 트렌드가 아니라 다시는 뒤로 가지 않을, 그야말로 궁극의 트렌드가 아니겠는가 싶다.

 

 

방송 중에는 너무 옆길로 빠지는 것 같아 얘기는 못했지만, 사실 두 가지 좀 씁쓸한 느낌이 들었다. 프렌디라고 얘기는 하지만, 실제로 아빠가 육아에서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사교육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직전까지라는 게, 현재 한국의 현황인 것 같다. 나는 아기를 사교육으로 보낼 생각은 없지만, 그거야 나나 그렇게 생각하는 거고, 그런 사람이 얼마나 될까? 왜곡된 지금의 사교육 열풍이 얼마나 갈까, 그리고 그 속에서 아빠의 역할은?

 

또 한 가지 씁슬한 것은, 김학도씨나 나나, 상대적으로 시간이 많은 사람들이다. 물론 바쁘기로 마음을 먹으면 나도 정신 사나울 정도로 바쁘게 돌아다닐 수도 있지만, 아기만 보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지금처럼 대부분의 시간을 아기 돌보는 데에 쓸 수 있을 정도로. 어느 아빤들 아기와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겠는가. 그야말로 저녁이 있는 삶을 너머 점심이 있는 삶에 관한 이야기이다. 쮜리히에 처음 방문했을 때, 공장에서 노동자들이 점심 시간에 대거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아빠들이 집에 가서 점심 먹으러많은 사람들이 집에서 점심 먹는 삶이 있다는 것을 그 때 처음보고 엄청 놀랐던 적이 있다.

 

지금 우리가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다.

 

 

 

Posted by retir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