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kE 방송후기 8. 내 남자의 자동차

 

평균적으로, 나는 하루에 두 권 밑으로 독서량을 떨어뜨리지는 않는다. 96년에 처음 직장이라는 데를 나가게 되었는데, 이 때 내 상사가 나중에 현대자동차 CEO가 된 이계안 전무였다. 아니, 이 양반이 무지막지하게 책을 읽어대는 거라, 하루에 2권 밑으로 읽었다가는 이계안한테도 밀리겠다는, 정말 무서운 생각이 들어 죽어라고 책을 읽었다. 아무 책이나 읽고, 정 안되면 만화책이라도 읽었다. 그러나 아기 태어나고는 진짜 1주일에 두 권 읽기도 벅차다. , 내가 살면서 이렇게 책을 안 읽은 적이 있었나, 무서운 생각이 들 정도다. 읽고 싶은 책이 그러니까 더 머리에서 떠오르지만, 책 집어 들기가 너무 어렵다.

 

신동헌의 <그 남자의 자동차>는 나보다 아기가 엄청나게 좋아했다. 책 날개도 알록달록하고, 책도 빨간 색이라서, “햐아!’ 탄성을 지르면서 아기가 결국 책 날개를 뺏어갔다. 잠시만 한눈을 팔면 손에 들고 꾸기던 책 날개를 순식간에 입에 넣기에, 아기의 공격을 피하면서 책을 읽기가 너무 어려웠다. 순간 <그 아이의 자동차>라는 제목이 생각이 났다.

 

 

 

책은 상당히 재미있고, 귀담아 들을 얘기도 많았다. 단점이라면, 뒷부분으로 가면서 책을 마감하는 순간, 꼰대틱한, 이래라 저래라, 요런 투로 급변초반의 발칙함이 끝까지 이어졌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약간의 아쉬움이 들었다.

 

 

(오늘의 키맨, 장진택과 낸시 랭)

 

슈퍼카에 대한 얘기, 약간은 허무할 수밖에 없다. 내 차도 아니고, 니 차도 아니고, 그냥 서로 구경하거나 잠깐 몰아본 경험으로 얘기하는 게, 약간은 덧없다. 그렇지만 그걸 타고 몰고, 랩타임까지 재면서 하는 방송도 허무한 것은 마찬가지이다. 그 빈 공간을 자동차에 대한 다양한 얘기로 채우려고 한 셈인데, 잘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원래 대본에는 20대의 운전면허 감소 등 사회적으로 민감한 얘기들도 있었는데, 시간관계상 생략. 늘 생략된 것은 아쉬운 법이다.

 

낸시 랭과는 몇 년 전인가, 박경철 방송에서 만난 적이 있었다. 그 때 참 좋은 기억을 가졌었는데, 시간은 쏜 살과 같이 달리는 법!

 

나는 이 팀에 합류한지 얼마 안되지만, 그래도 조금씩 손발이 맞기 시작한 것 같기는 한다. 아마 오늘부터 초연출이 더 투입되다는 것 같다. 500번대 채널에서 이런 시도를 하고 있다는 게, 그저 신기할 뿐이다.

 

샤넬 가방 중에서 유일하게 내가 이름을 기억하는 게 2.55이다. 55 2월에 만들어져서 그 이름을 가지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당시에 여성들의 의상으로는 차를 운전하기는커녕,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고 차를 타기도 어려운 시절이었다. 샤넬은 과감하게 그들에게 바지를 입히고, 코르셋을 벗을 수 있게 옷을 디자인했다. 지방시는 그 코르셋을 다시 입혔다. 그래서 샤넬 정신과 지방시 정신은 정반대에 있을 듯 싶다. 샤넬백 2.55는 처음으로 어깨 끈을 달고 나온 가방이다. 여성들이 손을 쓸 수 있는 자유를 주게 된. 물론 요즘 팔리는 2.55 600만원 정도 하는데, 이게 혼수 품목으로 들어가게 되면서, 가격 결정이 아주 복잡해졌다.

 

우연하게 유사한 숫자를 가진 205, 이건 뿌조 자동차의 이름이다. 요즘은 아마 208까지 나왔을 것이다. 자동차 역사에서 T형 포드 다음으로 중요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이 차는 83년에 등장하면서 세컨 카 혁명을 이끌었다. 작고, 날씬하고, 주차하기 편하고, 잔 고장 없고이 때 여성들이 공간의 자유를 얻었다.

 

샤넬 2.55와 뿌조 205, 명품이 예술로 승화되는 과정에 그냥 기술만 있는 게 아니라 시대 정신이 그 뒤에 깔려 있는 것 아닌가? BMW, 아우디, 메르세데스-벤츠, 모두 나름대로의 정신을 가지고 있다.

 

갑자기, 나는 무슨 정신을 가지고 오늘 하루를 보내고 있는가, 그런 시껍한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Posted by retir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