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인 인터뷰로 갈지

 

그냥 간단한 인터뷰 방송 만들어본다고 시작한 게 일이 좀 커졌다. 어쨌든 경제 휴머니즘을 기치로 내걸고 7 1일부터 첫방송을 내보내기 시작하는데, 생각보다 자유롭고 내 운신의 폭도 넓은 편이다. 좀 더 래디컬한 얘기들을 담아도 좋을 듯 싶고.

 

인터뷰라는 게 어쨌든 시청자들이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는 게 기본이기는 한데, 이렇게 했던 인터뷰 방송들이 그간 성과가 그렇게 높지는 않았다. 조금 더 새로운 주제와 현장을 발굴하면서 가도 좋지 않을까그런 욕심도 조금씩 들기 시작했다.

 

하여간 어디에도 없던 방송, 그런 걸 만들겠다는 욕심만은 유효하다.

 

그렇다고 채널 여건상, 물량 투입을 엄청나게 하기는 어려워서, 소규모 제작진으로 가니까, 긴 시간 리뷰를 하면서 아이템을 찾고, 그걸 다시 다듬는 작업을 하기는 좀 곤란하다. 첫 방 나가기 2주 전에 미리 촬영을 시작해서, 그날 그날 찍어서 바로 내보내야 하는 상황보다는 좀 여유가 있다는 게 위로일까?

 

어쨌든 당분간은 크게 다루지 않은 숨은 이슈와 숨은 인물들을 찾아보는 데 조금 신경 쓰려고 한다.

 

그리고 해석’… 어디에서도 하지 않은 새로운 해석을 해보려고 한다.

 

방송에 나오고 싶은 사람이나 아니면 꼭 다루었으면 하는 얘기들 혹은 방송 후기들을 다룰 수 있는 게시판 같은 게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sbs cnbc가 워낙 열악한 편이라서, 그렇게 게시판 열 공간이 없다.

 

다움 카페라도 열어볼까 생각했는데, 이걸 관리해줄 사람도 없어서그야말로 이 블로그에 댓글 다는 것 외에는 별 방법이 없다.

 

하여간 기왕에 시작했는데, 경제를 보는 좀 다른 시각들을 한 번 정리해보고 싶다. 같은 아이템이라도 시선을 바꾸고, 해석을 달리하면 어떤 얘기가 되는지. 그런 욕심은 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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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CNBC 보도자료

 

SBS CNBC 홍보담당 :  김혜림  | 02-6938-1619  |  hrk@sbs.co.kr

 

[우석훈의 사람이사는 경제, 71일 첫방송]

 

 

 

 

 

 

 

 

 

▲독수리 다방 손영득 사장편 (진제공: SBS CNBC)

 

[세상 어디에도 없던 휴머니즘 경제 대담 프로그램]

 

구두가 아닌 운동화를 신고

만년필이 아닌 카메라를 들고

책상이 아닌 현장을 누비며

경제학자 우석훈이 직접 발굴해낸

사람냄새 나는 경제이야기들~

 

절망의 시대를 사는 20대의 이야기를 다룬 책,

88만원 세대」로 우리 시대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선사했던

자칭 C급 경제학자 우석훈이 이번에는 휴머니즘 경제에 눈을 돌렸다.

치열한 경쟁속에 각박해져만 가는 현대사회에 새로운 화두를 제시하는 인물!

사람이 사람을 살리는 경제 현장을 찾아, 우석훈 박사만의 독특한 시선과

솔직 담백한 화법으로 풀어내는 황금같은 30!

 

세상 어디에도 없던 경제대담 프로그램,

「우석훈의 사람이 사는 경제」가  7 1일 첫 방송된다.

 

 

 

▲자칭C급 경제학자 우석훈의 눈과 입담으로 풀어낸 휴머니즘 경제대담(진제공: SBS CNBC)

 

 프로그램 :  SBS CNBC 우석훈의 사람이 사는 경제

  방송시간 :  ~금 매일 오전 10 (30분 방송)

  진 행    :  우석훈 박사 (경제학자)

  방송내용 :

- 땅콩집 건축가, 이현욱 소장

책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휴머니즘 경제학을 전해줄 첫 번째 만남은 바로, 아파트 중심의 현대 주거문화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땅콩집’ 건축가 이현욱 소장!

2011년 땅콩집 1호를 지은후, 그야말로 폭발적 관심과 집짓기 열풍이 불어왔는데... 우석훈 박사가 이현욱 소장을 직접 만나 어디서도 공개하지 않았던 땅콩집 열풍 그후의 이야기들을

들어보고,,,,가치있는 주거공간과 행복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

 

 

 

    땅콩집 건축가 이현욱 소장 편 (진제공: SBS CNBC)

 

- 신촌명소 독수리 다방을 부활시킨 2대 사장, 손영득

7,80년대 청춘의 낭만과 고민을 함께한 신촌 최대의 만남의 장소 독수리다방,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 시대가 도래하면서 2005년 폐업할 수 밖에 없었는데...

독수리 다방과 사라진 청년들의 문화공간 복원에 청춘을 건 청년이 있다.

2013년 독수리다방 다시 살리기에 인생을 건 금융맨 출신 손영득 사장의

사람냄새나는 경제 이야기를 우석훈 박사와 함께 들어본다.

 

- 역사체험 벤처 대표, 여대생 김송이

88 만원 세대의 저자 우석훈이 당찬 88만 세대를 만나다. 역사체험 벤처회사를 설립한 20대 여대생의 파란만장 벤처 사업기를 통해, 청년 창업의 살아있는 이야기를 담는다.

 

 

 

▲여대생 역사 벤처 창업 김송이 대표 편 (진제공: SBS CN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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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휴머니즘 촬영 시작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경제 채널에서 경제 방송을 하나 하게 되었다.

 

그리고 또한 우여곡절 끝에 경제 휴머니즘이라는, 내가 생각한 목표 하나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게 쉽지가 않다.

 

많은 돈을 들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기획 기간도 워낙 짧고, 기타 등등, 말로 하기 어려운 제약 조건이 많다.

 

경제 방송이라는 게 원래 경제적으로 하는 방송이라는 말이 있다.

 

그래도 잘해보고 싶다. 첫 번째 촬영은 연세대학교 앞에 최근 다시 문을 연 독수리다방으로 나가게 되었다.

 

 

할머니 잘 만난 어느 손자의 이야기, 게다가 아내는 약사라니그렇게 금수저에 관한 얘기가 아닐까, 걱정을 많이 하고 갔었다.

 

결론적으로, 경제학 전공자가 자신이 다니던 금융회사를 그만두고 자영업자 사장이 된 드롭아웃이야기

 

인간이 이렇게 맑은 모습을 가져도 되는가 싶게, 정말 고운 인간이다. 프랜차이즈 상권 네트워크 앞에서, 아마 태어나서 처음이다 쉽게 좌절 속에서 버티고 있는 중이다.

 

드롭아웃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살아오던 공간을 벗어나는 것이 얼마나 힘든가, 그런 얘기가 될 듯 싶다.

 

8년간 다니던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사직서를 내던 순간이 다시 떠올랐다.

 

 

 

 

제작 감독들의 난감한 표정. 나도 참 난감했다.

 

땡볕 아래에서, 결국 인터뷰를 두 번 진행했다. 수원성 아래에서, 날은 덥지, 내용은 잘 안 나오지, 게스트는 카메라에서 당황, 얼음 모드.

 

 

 

 

좀 더 잘 나온 사진이 있기는 하지만, 결국 나는 이 사진을 집어들었다.

 

27, 대학교 휴직 중, 대학생 벤처 아주누리의 대표, 그리고 역사학도.

 

, 어쩐지 안될 것 같은 상황 속에서 이렇게 밝게 웃을 수 있다니. 내가 27세에 저렇게 밝게 웃을 수 있었나, 아니 어른이 된 후 저렇게 밝은 웃음을 가져본 적이 있었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7 1일 아침 10, 첫방이 시작된다.

 

일단은 청년들 얘기로 두 회분을 준비하고, 어른들 얘기로 두 회분을 준비한다.

 

땅콩집 얘기와 성공한 사장 이야기가 어른들 얘기이다.

 

뭐가 첫 방이 될지는 아직 결정이 안되었다. 어쨌든 가장 풋풋하고 기운이 넘치는 인터뷰가 첫 방이 될 것이다.

 

경제 휴머니즘, 말은 던져놨는데, 솔직히 뭐가 경제 휴머니즘인지, 나도 잘 모르겠다.

 

몇 달간 스튜디오 촬영만 했었는데, 간만에 현장 촬영으로다음 주 수요일 촬영은 새벽 다섯 시 반부터 일정이 시작이다. 우와, 죽겠네.

 

꼭 해보고 싶은 주제들이 있는데, 이게 시청률이 좀 나와야 촬영 결정을 받을 수 있는 거라서. 아직은 여러 가지 면에서 궁핍하고, 옹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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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이팅!

 

동료들을 잃는 것, 그것만큼 마음 아픈 일도 별로 없을 듯싶다.

 

슬럼프나 위기라고 생각하기에는 내 주변 동료들이 요즘 다 힘들다. 미화 선배는, 이제 집 좀 정리가 되었으니 한 번 놀러 오라고 하시는데, 그 시간도 못 낸다. 그냥 마음 속으로 송구스럽기만. 1년 넘게 같이 방송을 했으니, 목소리만 들어도 심경 같은 게 전해진다.

 

매일 아침마다 몇 시간씩 얼굴 보면서 방송했던 김학도 등 동료들이 떠난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것, 이것도 참 못할 짓이다. 개편이 워낙 예정에 없던 것들이라, 다들 섭섭함이 더 컸다. 요즘도 김학도와 가끔 통화한다. 그는 경제방송을 정말로 해보고 싶었다. 언젠가 같이 할 수 있는 뭔가를 한 번 만들어보자고아침 방송이라는 게, 이상하게 삶 그 자체와도 같은 성격이 있는 듯싶다.

 

Take 후속 방송은 우석훈의 사람이 사는 경제로 타이틀이 잡혔다. 기본으로는 인터뷰 방송이고, 여기에 다큐 형식을 가미해서.

 

하여간 사람과 사건이 있는 곳은 어디든지 간다, 그리고 그 속의 경제적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그 정도.

 

스튜디오 방송에서 야외 방송으로 바뀌면서, 품도 많이 들고, 시간도 많이 들고, 그렇게 좀 바뀌었다.

 

주당 2편씩 만들고, 화목이 본방, 나머지는 재방.

 

50명 가량이 붙어서 하던 팀에서 10명 정도로 팀이 단촐해졌다. 급하게 기획 작업이 진행되다 보니, 아직 팀회식도 한 번 못했다.

 

어쨌든 카메라를 쥐었으니, 우리들의 오랜 동료, 심상정, 노회찬, 이런 양반들 만나러 가야할텐데, 그렇게 정치적인 색채가 강한 아이템은 일단 방송 틀 잡히고 안정된 다음에

 

어떻게 내용이 나올지는 나도 잘 모르겠는데, 일단 나는 경제 휴머니즘을 내걸었다. 화려하게는 내가 원래 화려하지 않으니 그건 좀 어렵지만,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경제 얘기를 해보겠다, 그 정도 다짐은 있다.

 

7월에 첫 방이 나가는데, 제작은 이번 주부터, 그러니까 내일부터 첫 촬영이 시작이다. 2주분을 먼저 만들어놓고 그렇게 시작하는 계획인데, 아이템에 한 회 분 여유가 있어서, 한국일보 문제를 다루어볼까, 그런 고민하는 중이다.

 

파업현장이나 아픔이 있는 곳에도 힘 닿는 데까지는 가보려고 한다. 세상에 경제가 개입되지 않은 문제가 얼마나 있겠나?

 

인터뷰 작업이라는 게, 어떻게 보면 나는 늘 하는 작업이다. ‘88만원 세대준비하면서도 인터뷰 상당히 많이 했었다. 요즘도 경향신문 기사 쓰면서 좋든 싫든, 1주일에 2~3회씩 인터뷰를 한다. 그렇게 책 작업하면서 하는 인터뷰를 좀 더 공개적으로 하는 것, 그렇게 편하게 생각하려고 한다.

 

방송 개편하면서 새로 생기는 방송이라, 마음이 이래저래 편하지가 않았다.

 

인터뷰 방송한다고 하니까 제일 좋아한 건, 선대인이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선대인이 좀 웃기는 편이다. 자기가 나가고 싶단다

 

푸하하, 예상치 못한 답변에 간만에 크게 웃었다.

 

그러세요

 

양평에 있다는 선대인 집에는 아직 한 번도 못 가봤다. 핑계 대고 선대인 경제연구소 한 번 가볼 수 있겠다.

 

어쨌든 유명한 사람이나 성공한 사람 그리고 행복한 사람만 만날 생각은 아니다. 지금 한참 고민 중인 사람, 위기의 인간, 그리고 내 맘을 짠하게 만드는 청년들, 그런 사람들의 모습을 좀 더 부각시키고 싶다는 게 약간의 욕심이다.

 

재밌는 방송에 대한 자신은 없다. 그렇지만 어디에도 없는 방송은 만들어볼 수 있을 듯싶다.

 

지난 번 방송에 코너로 있던 색다른 시선이 아예 덩치가 커진 것, 제작진들은 그렇게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 내 생각과 많이 다르지는 않다.

 

요즘 되는 일도 별로 없고, 딱히 하고 싶은 일도 별로 없다. 내 주변 사람들이 다 힘들어하거나 잠적 중 혹은 전번 바꾸고 진짜로 행방불명, 이러고 있는 와중에 나 혼자 힘을 내는 게, 가능치도 않고, 편치도 않다.

 

그래도 내일, 새로운 방송의 첫 촬영이 시작된다.

 

내 뒤에 같이 움직이는 사람이 열 명이다. 편하게 생각하면, 그들과 그들 가족의 삶이 나한테 달려 있는 셈이다.

 

어떻게든, 힘을 내야하지 않겠나?

 

, 파이팅!

 

그리고 명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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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 고양이들

 

비 오는 밤, 맘이 편치 않아 잠시 길가 산책을 나섰다.

 

집 담벼락에 노란 고양이들이 줄줄이 걸어가는 게 보였다

 

우리 집 마당에 사는 노랑이들

 

이 모든 어려움을 겪어내고 자기들끼리 산책을 즐기는 녀석들을 보면서,

 

브라보, 내 삶의 큰 기쁨이구나, 녀석들

 

몇 달만에 혈관이 터지듯, 기쁨이 터졌다

 

녀석들의 삶이 잠시의 해피 엔딩이듯, 나도 작은 해피엔딩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 오는 날, 고양이들을 보면서 잠시 행복했다

 

왜 나는 사람에게는 행복을 못 주는가,

 

, 어쩔 수 없지 않느냐, 그런 약간의 패배감도 맛보았다.

 

그러나 모든 걸 지는 것 보다는, 이 편이 낫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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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명랑

 

하여간, 하는 일마다 안 되는 시기가 있다. 요즘 내가 그렇다.

 

되는 일은 하나도 없고, 나를 안다고 하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내가 그들을 위해서 해줄 수 있는 일도 별로 없다.

 

동료들을 지켜줄 수 없다는 것, 그게 내가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괴로움이다.

 

운동권으로 살아온, 그야말로 전형적인 80년대 인생으로서, 서로를 지켜줄 수 없다는 과거를 환기하는 것이, 이 나이에도 여전히 힘들다.

 

500번대 채널에서 집중분석 take라는, 그야말로 아무도 보지 않을 듯 싶은 방송을 같이 만든 것은 3월 중순부터이다. 연초부터 시작한 방송인데, 나는 좀 뒤늦게 결합했다. 믿거나 말거나, 하여간 처음부터 내가 하는 역할이 있던 그런 방송이라고 하는데그야말로 믿거나 말거나이다.

 

나름대로 정도 들고, 동료들에 믿음도 생겨나게 될 순간, 방송 개편이 되면서 문을 닫게 되었다. 1년 정도는 하지 않을까, 그렇게들 50여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나름대로 정성으로 붙어 앉아서 만들었던 방송이다.

 

100회부터는 새로운 전기를 맞을까, 그렇게들 생각했는데, 현실은… 100회 기념으로 문을 닫게 되었다.

 

이 정도 구조면 누구나 생각할 수 있듯이, 기분 참 더러울 구조이다.

 

, 살다 보면 이런 일 한 두 번 겪는 것은 기본이니까, 그야말로 아무 것도 아닌 일인데

 

그 방송을 작게 쪼갠 방송 중에 하나를 내가 맡게 된다는 걸 알게 된 후에

 

뭐 데쓰까

 

이거 뭐지?

 

업친데 덮친 격으로, 몇 년째 같이 일하던 에디터가 최근 책의 판매 부진으로 출판사를 옮기게 되는 일이 벌어졌다

 

, 내가 잠시 헤매고 있는 동안, 내 주변에서는 그야말로 난리 뽀가리가 나고 있던 거라.

 

지난 주말, 아주 약식으로 동료의 환송회를 해주었다가, 늦게 들어왔다고 아내한테, 정말 더럽도록 심하게 깨졌다.

 

그날 따라 아기는 아주 사람 염장하게 한 난리 친 날이었다. 아기 기분 돋는 날, 정말 사람 기분 돋게 만든다

 

아내한테 엄청 터지고, 그냥 또 그렇게 하루를 보냈다.

 

니가 애기 아빠야?

 

, 사실, 할 말은 없다.

 

사는 게 뭐, 그런 거지.

 

하여간 더 나아갈 수도, 그렇다고 되돌아갈 수도 없는 그런 그런 몇 주를 지냈다.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살았던 45년 인생, 지거나 이길 수는 있어도, 이렇게 진 것도 아니고 이긴 것도 아니고, 그냥 덤덤하게 버틴 것은정말 내 기억에는 없는 일이었다.

 

명랑을 모토로 살았던 내가, 아주 깊은 상처를 받았다.

 

이거, 인상 쓰면 지는 거고, 웃으면 위선이고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는, 그래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몇 주를 보냈다.

 

그 동안에 글이라도 잘 써지면, 그래, 나는 또 내가 할 일이 있어, 그러겠는데

 

이 심정에 글이 써지겠는가? 그리고 설령 혹시 써진다고 하더라도 그게 내 글이겠는가?

 

당연하다 싶게, 글도 안 써지고, 이렇게 쓰고 버리고, 저렇게 쓰고 버리고.

 

그 동안에 되는 일이 뭐가 있었겠는가? 그리고 써 질 글이 뭐가 있었겠는가?

 

나는 최선을 다한다고 했더라도, 그게 무슨 최선이었겠는가? 그야말로 민폐 아니면 다행이지

 

하여간 그리그리하여, 내가 하던 거의 대부분의 것들을, 가장 가까운 시간에 내려놓기로 하였다. , 내가 그렇게 즐겁지 않은데, 억지로 뭔가 한다고 해서, 내가 누군가를 즐겁게 해줄 수 있을까? 그리고 그게 맞는 방향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게 탈탈 털고, 그만둘 것은 그만두고, 내려놓을 것은 내려놓고

 

이게 지난 몇 주 동안 내가 한 일이다. 뭔가 찾고 만들고, 시도하기 위해서 시간을 쓴 게 아니라, 내가 하던 일을 하지 않기 위해서 엄청 노력하는

 

그래, 참 열심히 살았다!

 

그래도 재미없고 신나지 않는 것을 억지로 하면서, 어떻게 명랑이라는 말을 할 수 있을 것인가?

 

, 어쨌든 이래도 의미가 있고, 저래도 의미가 있고, 이건 이래서 중요하고, 저건 저래서 중요하고

 

썰레발

 

을 풀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거..이다. 그렇게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서도 명랑할 수 있을까. 그게 내가 지난 몇 달 동안 부딪힌 고민과 질문이다.

 

하여간 이렇게 계속 고민을 하다가, 오늘 오후에 스쳐가듯이 잠시 결심을 했다.

 

어쨌거나 명랑

 

원래도 나는 명랑이 모토였는데, 지금 갑자기 인상 쓰고, 뭔가 힘들어한다고 해서, 그게 더 좋을 이유도 없을 뿐더러

 

무엇보다도, 나는 명랑하고자 할 때, 내 삶이 제일 재밌었었다.

 

그게 남들에게도 명랑이거나 재밌었었는가, 그건 모르겠다.

 

하지만 어쨌거나 명랑, 그거 외에 이 삶이 의미 있게 살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겠는가?

 

나는 잘 모르겠다.

 

그렇게 마음을 먹은 후로, 같이 일하던 동료작가들에게 술 한 잔 사겠다고 전화를 했다.

 

술이 뭐 중요하겠는가, 그냥 마음이 함께라는 얘기 한 마디라도, 이 정도의 결심을 하고 나서야 겨우 할 수 있었던 것을.

 

새로 시작하는 방송, 목요일 날 첫 녹화가 시작된다.

 

take라는 이름으로, 보는 사람은 없어도 자랑스럽게 얘기했던 방송 대신, 하는지 안하는지, 정작 진행자인 내가 말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모르겠다

 

어쨌거나 명랑,

 

다시 한 번 명랑을 모토로 세우려고 한다.

 

웃어야지, 어쩌겠냐.

 

아주 예전에, 내가 힘들었을 때 했던 생각이다.

 

전쟁은 이길 수 없어도, 전투는 이길 수 있지 않느냐

 

아주 작은 전투 한 번도 이기지 못한 사람이, 명랑을 모토로 작은 전투라도 의미 있게 만들어보고 싶어졌다.

 

지는 건 괜찮다. 그러나 정말 무의미하게 밀리고, 그 사이에서 웃음마저도 잃는 건 너무 싫다.

 

그리하여, 별 볼 일 없는 삶을 마이너 리그에서 보낼지라도,

어쨌거나 명랑!

 

그리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게 내가 생각한 어쨌거나 명랑의 의미이다.

 

나의 동료들과 이 작은 결심을 나눌 수 없는 것은, 여전히 마음 아프다.

 

그러나 이 정도로라도 내가 마음을 먹어야, 그들과 다시 일을 할 수 있는 순간이 생기지 않겠는가.

 

그리하여, 나는 다시 한 번 명랑, 어쨌거나 명랑.

 

 

지난 대선을 코 앞에 두고 영안실의 고혼이 된 이재영이 늘 말했었다.

 

나는 지는 법이 없어…”

 

그 이재영의 웃음을 다시 보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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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반게리온 Q를 보고 나서

 

아기 때문에 요즘 영화를 거의 못 본다. 가끔씩 밤에 케이블에서 해주는 영화를 짧게 보는 것이 전부일 정도. 그렇다고 책을 많이 읽느냐, 아기가 달려들기를 피하면서 잠시 읽는 정도. 하루에 한 권 읽기도 정신 없다.

 

에바 얘기를 처음 보기 시작한 건, 서른 살쯤이었던 것 같다. 나는 살기가 힘들었고, 뭘 해야할지도 잘 몰랐고, 그렇다고 하고 싶은 것도 없었다.

 

대체적으로 나는 하고 싶은 것이 별로 없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그 때는 특히 더 하고 싶은 게 없었다. 게다가 그 전에는 안 그랬던 것 같은데, 30대 초반이 지나면서 대인기피증이 아주 심해졌다.

 

다른 우울증은 그 이후로 많이 없어지고, 이젠 왜 그랬는지도 별로 생각이 나지도 않을 정도이다. 그렇지만 대인기피증은 여전한 것 같다. 여전히 혼자 있는 게 편하고, 혼자 생각하는 게 좋다.

 

아마 일본 80년대와 90년대를 살았던 사람들 중에는 나와 비슷하게, 꽉 짜여진 사회 속에서 그렇게 별로 재미를 느끼지 못하면서, 좀 더 다른 공간과 시간을 상상했던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헐리우드의 작법을 따라 편하게 만들어진 4시퀀스 구조를 따라, 혹은 13579로 나가는 플롯을 따라 얘기를 만드는 방법은, 별로 그렇게 재밌게 느껴지지 않았다. 어쩌면 그렇게 많은 돈과 전문적 시스템을 통해서 뭔가 만들 가능성은 아예 없다는 현실적 절망이, 다른 방식의 얘기 전개에 더 매력을 느끼게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에바 시리즈에는 서로 다른 엔딩이 몇 가지가 있다. 도대체 이게 뭐냐, 그런 혹평을 받았던 극장판의, 그야말로 집단 심리상담 같던 그 엔딩도 좋았다. 나는 누구인가, 전혀 질문은 생략한 채로 지구 평화를 위해서 죽어라고 날아다녔던 아톰에서 수많은 자이언트 로봇들의 얘기, 그런 데에는 존재의 질문은 생략되어 있었다. 사랑과 욕망 혹은 의무감, 그런 것들이 사람을 움직이는 데에 충분했다.

 

에바에서 던져진 그 질문이 좋았다. 에바 초호기를 타면서 느끼게 되는 신지의 불안과 공포, 도대체 동기는 무엇인가, 그렇게 계속 던져지는 질문이 좋았었다.

 

극장편에는 조금 다른 결론들이 있었고, 더 전격적이며 더 현실적인 엔딩들이 있었다. 그런 것들 것 나름대로는 좋았다. 도대체 왜 그렇게 수많은 다른 엔딩들이 필요할 것인가, 이해할 수는 있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일관되게 얘기를 이해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열린 결론들로 계속해서 끌어나가는 수 많은 다른 엔딩이 고통스러울 수도 있을 것 같다.

 

에반게리온 Q는 앞에 나온 서, 파와는 달리 그 후의 얘기를 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TV판이 처음 공개된 후, 처음으로 서드 임팩트 이후의 얘기를 한 것이다. 그 이후로 14년이 흘렀는데, 그냥 구경만 하던 내 삶도 그새 15년이나 흘러갔다. 그 사이에 나에게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 나도 질문을 해보지 않을 수 없다.

 

신지가 14년 동안 잠들어있으면서 아무 것도 변하지 않은 것처럼 나도 과연 그런 것일까? 아니면 정말로 뭔가 본질적인 변화가 생겼는가?

 

글쎄, 그런 복잡한 건 잘 모르겠다. 그 때나 지금이나,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여전히 잘 모르겠고, 뭔가 꼭 하고 싶다는 욕망 같은 것도 여전히 없는 듯 싶다. 만약 차이가 있다면, 그 때는 민중들을 위해서 뭔가 해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것은 좀 있었던 듯 싶은데, 아주 솔직히, 요즘은 그런 의무감도 잘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때도 아침에 일어나면 뭘 해야할지 잘 몰랐는데, 요즘도 잘 모른다는 것. 해야할 일들의 리스트는 있지만, 그걸 꼭 오늘 해야 하는지, 아니면 지금 해야 하는지, 그런 것도 잘 모르겠다는 게 여전히 같은 듯싶다.

 

사는 집은 좀 바뀌기는 했는데, 어쨌든 그 때도 집이 있었고, 지금도 집이 있었고당시는 내 방에서 편하게 담배를 피웠는데, 지금은 그럴 수 없다는 것, 억지로 찾으면 그 정도 차이가 아닐까 싶다.

 

그럼 도대체 지난 15년 동안, 도대체 난 뭐를 한 거야? 신지처럼 잠자고 있었던 거야?

 

그 때도 내가 지켜줄 수 없는 사람들 생각하면서 괴로웠다. 그리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좌파로 살다 보면, 동료들을 지킬 수 없는 순간들이 종종 오게 된다. 평생 초등학교 동창회부터 다 챙기면서 살아가는 사람들과는 좀 다르게. 같이 일하던 팀이 깨지고, 동료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그걸 무기력하게 보고 있어야 하는 순간들이 종종 온다.

 

그런 일을 다시는 겪지 않겠다고 몇 번이나 결심을 했지만, 시간과 공간을 달리하며 마지 데쟈뷰처럼 그런 일을 겪게 된다. 그러면 다시 무기력한 생각에 치를 떨면서, 다시 방안에 틀어박혀 아무도 만나지 않고 지내는

 

그러면 팍 그만두거나 팍 떠나버리면 될 거 아냐예전처럼 그냥 외국으로 나가버릴 만한 그런 힘도 용기도 없다는 데에 사태의 어려움이 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나이를 먹으면 늘어난 뱃살만큼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이 같이 많아진다. 좋게 해석하면 안정감이지만, , 의욕상실과 용기 감소, 그런 것 아니겠나 싶다.

 

하여간 이런 불안감 속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6월을 보냈다. , 6월이 다간 건 아니다. 이제 막 절반이 지났을 뿐이니

 

어쨌든 좋든 싫든, 이번 주부터는 새로운 방송의 촬영이 시작되고, 성과가 있든 없든,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움직여나가게 될 것이다.

 

에반게리온 파는 2편으로 나누어져, 이번에 본 것은 전편이다. 에바의 세계에서는 진작에 나온 줄 알았는데, 여전히 나는 그 안에서 나오지 않고 있는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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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한 유월 혹은 살아남은 자의 슬픔

 

브레히트의 <살아 남은 자의 슬픔>이라는 시집은 그 제목만으로도 천 년을 갈 듯 싶다.

 

닝기미, 살아 남아야 슬픔이라도 느끼지, 디진 자가 무슨 슬픔을 느끼겠나? 그 논리적 결론을 시의 제목이 딱 짚었다. 20대에도 이 얘기를 했고, 30대에도 이 얘기를 했는데, 40대에도 이 얘기를 하게 된다.

 

차이가 있다면, 20, 30대에는 정말로 시를 읽었고, 40대에는 이미 여러 번 읽었으니 읽었다 치고. 그러니 더 슬프다.

 

얼떨결에 아침 방송을 시작했는데, 지난 주로 막방을 했다. 이래저래 50명 가까운 사람들이 만들던 방송이었는데, 이제 거의 혼자 남아서 후속 방송을 준비하게 되었다. 뭐래? 그런 데도 남아 있어야 하나? 나머저 떠나면 그나마 남은 사람들 멘붕이다. 진짜, 뭐래..

 

이 와중에 대선 이후 처음 낸 에세이집은 출발이 아주 늦게 되었다. 아주 작은 출판사라, 그 잠시의 경영난을 버티지 못하고, 몇 년째 파트너로 일하던 에디터는 훨씬 큰 다른 출판사로 옮겨가게 되었다. 힘든 시대를 버티려면 그나마 입이라도 줄여야

 

이래저래 나와 파트너로 일하던 사람들이 줄줄이 짤리거나, 아니면 직을 옮기거나, 그것도 매일 한 명씩. 뭐래?

 

꼬질꼬질한 삶을 살게 될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런 요상한 방식으로 같이 일하는 파트너들이 한 명씩 사라지는 상황을 전격적으로 버티면서 지내야 할지는 나도 몰랐다. 그러면 같이 그만두면 될 거 아냐? !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그래서 더러운 자들의 기억이라는 것을 동의할 수밖에 없다.

 

하여간 되는 일은 아무 것도 없고, 그 사이에 내 주변 사람들은 속수 무책으로 무너지고.

 

오랫동안 명랑을 모토로 살아왔는데, 이게 요즘 흔들린다. 내 주변 사람들과 동료들이 하나씩 무너지는데, 나만 혼자 얼굴에 스마일! 이게 얼마나 잔인해보이겠는가?

 

이렇게 혼자 고민 중이었는데, 그 클라이막스는!

 

‘150만원 세대작업할 때 중요한 키맨으로 같이 작업하려고 했던 알바 연대의 대변인이

 

이번 주, 그러니까 오늘 아니면 내일쯤 차를 한 잔 마시기로. 그것도 벌써 2달 전부터 몇 번씩이나 얘기를 하면서도 내가 정신이 없어서 미루어두었던 자리였다. 아침 방송 끝났으니, 이번 주 커피 약속이라도 다시 잡을까, 막 전화기 뒤적거리고 있는 찰라.

 

세브란스 영안실 4.’

 

이렇게 문자가 날라온 거다. 뭐야?

 

결국 그날 저녁, 만사 제끼고 영안실부터 달려갔다. 사인도 모르고, 그냥 늦게 집에 들어와서 TV 보다 새벽 3시에 부인이 살펴보니, 그냥, 이런 죽음도 있나 싶을 정도로, 그렇게 허무하게.

 

정말로 죽었어?

 

정말?

 

이런 법도 있나?

 

너무 놀라니까 눈물도 나지 않는다.

 

이재영이 죽은지 얼마나 되었다고하여간 세브란스 영안실 요즘 엄청 자주 가게 된다.

 

이런 억울한 죽음도 있더냐나이 서른 다섯에.

 

이 와중에 나꼽살 번외편 기획하고, 녹음하고, 또 왜 이건 이렇게 안 해주냐, 저건 저렇게 안 해주냐

 

다 됐다, 니들끼리 해, 이 말이 목천정을 뚫고 나오려는 것을 가까스로 참고, 집에 와서 혼자 소주 기울이고 앉아 있으려니, 이게 살아도 사는 게 아니다 싶다.

 

하여간 이렇게 잔인하게 6월이 시작되었다.

 

그 와중에 장모님은 급성위염, 어머님은 점점 치매 초기 증상, 뭐 삶이 이렇게 복잡해졌드냐.

 

이제 아홉 달 넘은 아들은 잠시도 봐주지 않고, 이것저것 부수어대고, 야옹구는 또 가만히 있어주시나, 연신 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웃음을 잃지 말자, 다시 한 번 마음을 가다듬어 먹는다. 그리고 잠시 후 벌어지는 또 다른 슬픈 사연에 급 마음 냉각.

 

5 31, 난지 캠프장에서 동료들과 죽어라고 술 마실 때만 해도 좋았지, 이제 이렇게 술 처먹고 아픈 기억들은 탈탈. 근데 왠 걸, 슬픈 사연은 왜 끊이지가 않는가!

 

그래도 죽어라고 즐거운 생각들을 하려고 하는 것은, 그게 살아남는 자의 슬픔이 가지고 있는 역동성 아니겠는가.

 

억지로라도 웃고, 또 웃을 구석을 찾아내지 않으면, 이 지긋지긋한 어둠이 결코 끝나지 않는다. 영원히 박근혜와 살 수는 없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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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히로시마로 여행을 간다.

 

몇 개의 테마가 있는데, 요번에는 세토 내해라는 테마가 하나 늘었다.

 

 

내해에 처음 온 건 아니지만, 쿠레 조선소가 내려다보이는 사진은 처음 찍었다.

 

쿠레, 전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했던 도시이다. 이제는 일본 조선의 몰락과 함께 죽어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의 지방 도시가 나중에 이렇게 될 듯 싶다.

 

 

 

토건 일본의 흔적. 진짜로 보면 정말로 을씨년스럽다.

 

 

 

쿠레 조선소 글자가 선명하다. 일본이 전쟁을 뒤집기 위해 마지막 카드로 만들었던 전함 야마토가 이곳에서 만들어졌다는 게, 정말 믿기기 어렵다.

 

 

 

말로만 듣던 결혼활동, 그 혼활을 실제 본 것은 처음이다.

 

대학원에서 혼활로 논문 쓰는 학생들 지도해본 적은 있지만, 막상 보니, 아 이런 게 혼활이군!

 

마침 '솔로 계급의 경제학'을 한참 준비하던 중이라, 더욱 더 느낌이.

 

 

마침 위안부 할머니 집회가 히로시마에 있어서 찌라씨 한 장.

 

 

 

간만에 와 본 원폭돔.

 

지진 진단으로 한참 공사 중이었다.

 

볼 때마다 많은 걸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몇 번이나 이곳을 왔지만, 폭심지라는 게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고 그냥 스쳐지나갔었었다.

 

요즘은 그라운드 제로라고 부르는, 원폭이 600미터 상공에서 폭발한 바로 그 지점.

 

원래는 이 옆의 T자형 다리 위에 떨어뜨릴려고 했었는데, 바람이 불어서 약간 옆으로.

 

 

 

그라운드 제로가 있는 곳은 이제는 병원 건물이 들어서 있다.

 

다음 여행은 오사카와 고베를 방문하기로.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요금씩 새로운 얘기들을 모아나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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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지에서 풀어주고, 처음으로 마당 고양이 세 마리가 다 모였다.

 

요즘 이것저것, 참 힘든 데, 녀석들은 나보다는 나은 삶을 보내는 듯 싶었다.

 

이럭저럭 새 집에 적응하는 걸 보면서, 새로운 정부에 적응 못하는 내 처지가 더 비참하고 남루하게 느껴지기도...

 

괜히 눈물이 왈칵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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