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와 장마를 보내기

 

 

 

아기를 낳고 나서, 엄마 고양이가 아프다.

 

바이러스성 감염이라고 하는데, 눈도 진물렀고, 마른 기침 같은 걸 한다.

 

병원에서 튜브에 담긴 페이스트 형태의 약을 사다가 먹이는데, 이게 먹이기가 쉽지 않다.

 

캔에 섞어서 주는데, 엄마 고양이가 잘 먹지를 않으니까 바보 삼촌이 다 먹어버린다.

 

약을 많이 주기도 어렵고, 식욕도 별로 없고, 그래서 병수발이 보통 일이 아니었다.

 

며칠 전부터, 밤에 엄마 혼자 있을 때면, 그 앞에다 캔을 몰래 밀어넣어주기도 하고.

 

하여간 계속 먹였더니, 어제부터는 아이 낳고서 처음으로 자기가 캔을 먹기 시작했다.

 

바보 삼촌을 밀어내고, 먹기 시작했다.

 

오늘 본 건, 상황은 나도 잘 모르지만, 어쨌든 밥 먹다가 바보 삼촌이 엄마 고양이한테 한 대 맞았다.

 

힘이야 이제 바보 삼촌이 더 쎄겠지만, 그래도 고양이 사이들의 한 방은, 순전히 기싸움이다.

 

바보 삼촌 정도야, 아직도 한 방에...

 

얼마 전에 본 비디오에서, 고양이의 이 한 방에 악어도 꼼짝 못하는 걸 봤다.

 

열 받은 악어가, 친구 악어를 한 마리 더 데리고 왔는데, 걔도 한 방.

 

"너 바보야? 친구가 가잔다고, 그냥 졸졸 따라 다니게?"

 

 

 

작년까지는 비가 오면 가끔 비가 들이치지 않는 현관문 앞에 놔주기도 했는데, 지난 겨울에 개집을 새로 들인 후, 그 안에 넣어둔다. 그러면 자기들이 알아서 먹는다.

 

오후에 나갔는데, 아픈 다음에 처음으로, 엄마 고양이가 현관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저씨, 오늘은 밥 안 주나?"

 

마침 바보 삼촌이 없길래, 얼른 캔을 뜯어줬는데...

 

먹을 거만 생기면 기가 막히게 쫓아오는 바보 삼촌.

 

비오는 날, 고양이들이 그냥 피만 피하면서 쭈그리고 있지는 않는다.

 

아기 고양이들에게는 얼마 전부터 아기용 사료를 물에 불려서 조금씩 주기 시작했다.

 

지네들이 먹는지, 어른 고양이들이 먹는지, 그건 잘 모르겠지만 하여간 그 통은 늘 비어있다.

 

풀밭에서 비오는 날, 새끼 고양이들이 뛰어다니는 모습, 그건 우리가 늘 상상하던 실낙원과 같았다.

 

 

 

 

아직 엄마 고양이는 재채기를 조금씩 한다. 병원에 물어봤는데, 천식은 아닌 것 같고.

 

출산 이후에 뭔가 더 먹기 시작해서 기운을 차리면 괜찮아지지 않을까, 그냥 그렇게 밝게 생각한다.

 

엄마 고양이를 보면서,

 

내면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요즘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중이다.

 

아주 솔직하게, 내면이 아름다운, 그런 걸 진짜로 느껴본 건, 이 엄마 고양이에게 처음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과연 아름답다는 게 뭘까,

 

그런 것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중이다.

 

우리는 살면서,

 

삶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에 대해서, 너무 둔감해진 것이 아닌가 싶다.

 

나도 그렇게 아름다움에 관한 감각이 둔탁해졌거나 혼탁해졌거나...

 

요즘 그걸 다시 이 녀석에게서 배우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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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모두 엄마가 있었다!

 

1.

눈으로 보는 것과 글로 전달하는 것 사이에는 분명히 차이가 있다.

 

엄마 고양이가 새끼 고양이를 핥아주기 시작한다.

새끼 고양이가 기분이 좋아져서 장난을 치기 시작한다.

또 다른 새끼 고양이가 왔다.

두 마리의 새끼 고양이가 엄마 고양이의 젖을 먹기 시작했다.

 

만약에 지문으로 처리한다면, 이렇게 네 줄에서 다섯 줄 안팎의 짧은 문장이 될 것이다. 이렇게 드라이하고 삭막하지 않게, 묘사를 한다면 호들갑스러운 몇 페이지 분량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글과 그림 사이에 차이가 있는 것처럼, 사진과 영상 사이에도 차이가 있다.

 

막 태어난지 한 달이 조금 넘은 새끼 고양이들이 비가 그친 후, 마당에서 엄마 고양이가 목욕을 시켜주고, 젖을 물리는 과정을, 사진으로 찍을지, 일단 동영상으로 찍어서 편집을 할지, 잠시 고민을 했었다. 나는 사진 쪽을 선택했다.

 

그리고 나서 나중에 네 컷 정도의 사진으로 처리하는 편이, 더 감동적으로 이 장면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 판단이 맞았던 것인지, 그건 잘 모르겠다. 감동이라는 것은, 복합적인 것이니 말이다.

 

2.

어느 방송국에서 어머니에 대한 방송을 만들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작년부터 어머니가 편찮으시다. 난 별로 보여줄 일상이 없을 뿐더러, 내 주변의 식구들도 마찬가지이다. 어쨌든 연락이 온 거니까, 일단 얘기는 전해드렸다.

 

요즘은 많이 아파서, 나중에 그럴 기회가 있으면 하시겠단다.

 

어쨌든 나에 관한 건 아니니까, 일단은 그렇게 방송국에는 전달을 하려고 한다.

 

어머니종종 생각하게 되는 주제이기는 하다. 내게는, 그렇게 편한 주제는 아니다.

 

난 이 집안에서 처음 태어난 좌파이고, 다른 어느 친척과도 다른 삶을 살고 있다.

 

3.

엄마 고양이가 아기 고양이를 돌보는 모습은, 가끔 눈시울을 뜨겁게 한다. 꼭 나의 어린 시절을 생각하게 되어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진실이라고 할까, 가감 없이 삶이라는 것이, 마치 우주가 잠시 정지된 것처럼, 그렇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뭔가 굳이 말을 덧붙이거나, 부연하는 설명들을 달 필요가 없을 듯한.

 

, 저런 게 삶이구나

 

하나의 존재가 있기 위해서, 저렇게 많은 수고와 노력이.

 

그걸 보는 그 자체가 내게는 감동적이다.

 

가끔 생각해보면, 내가 아무리 아기 고양이들을 돌봐준다고 해도, 자기 엄마가 돌봐주는 것만 하겠나, 그런 생각이 든다.

 

4.

우리는 모두, 어떤 식으로든, 극진한 돌봄을 받으면서 지금 이 자리에 이게 된 존재가 아니던가.

 

아직 젖을 떼지 못한 아기 고양이들이 엄마 옆에서 얼마나 평온하고 행복해보이는지, 문득 잃어버린 실락원처럼, 저런 순간이 우리에게도 있었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모든 고양이가 다 이렇지는 않다.

 

지금의 엄마 고양이는, 내가 봤던 많은 암컷 고양이들 중에서도 특히 새끼들을 열심히 돌보는 편이다. 녀석의 손을 떠나 고양이별로 간 아기 고양이만, 내가 본 게 4마리이다. 자기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순간을 녀석도 겪는다.

 

얼마 전에 딱딱하게 굳은 아기 고양이 시체를 내 손으로 치웠던 적이 있다. 그 순간에도 녀석은 남은 녀석들에게 젖을 먹이고 있었다. 무감각한 표정이지만, 그 속이 무감각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감동을 누군가에게 전달하기는 쉽지 않다.

 

여러 가지 방식으로, 나도 내가 느꼈던 감동이나 생각들을 전달하려고 해보는데, 여전히 익숙하지 않고, 여전히 어렵다.

 

어쨌든 우리 모두, 삶에 한 번쯤은, 이런 아기 고양이들처럼, 지극하게 돌봄을 받던 시절이 있던 존재들이다.

 

지금 얼마나 받든, 지금 어떤 위치에 있든, 지금 어떤 허드렛일을 하더라도, 엄마들이 극진으로 돌보던, 그런 고귀한 존재들이었다.

 

그리고 그런 사랑 위에서, 지금의 이 비루한 삶이라도 생겨난 것이 아니던가.

 

지금이 비루하고, 힘들다고 느껴지는 사람들에게, 엄마가 돌보아주고 있는 이 아기 고양이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졌다.

 

우린 모두 한 때, 극진한 존재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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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새로 배우는 것들 3

 

2) 스타워즈와 조지 루카스

 

<스타워즈>를 내가 몇 번쯤 봤을까? 겁나게 많이 봤는데, 아직 100번은 안된 것 같다.

 

어렸을 때 본 것은 깊이 생각을 안 해 본 거라, 그냥 본 거고. 마음 먹고 열심히 봤던 건, 노무현 후반 부, 한참 한미 fta 추진하던 그런 시절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 때도 메이킹 필름이나 코멘터리 같은 것까지, 나름 챙겨서 본 적이 있다. 모든 영화를 다 그렇게 보는 건 아니지만, 일단 보는 영화는 가능하면 100번은 채워서 보려고 하고, 또 관련 자료들도 같이 보려고 하는 편이다. 100번 보면 아냐? 물론 그렇게 봐도 모르는 건 여전히 잘 모른다.

 

<스타워즈>를 다시 보기 시작한 것은, <인디애나 존스>를 다시 보고, 코멘터리와 메이킹까지 다시 보기 시작한 후의 일이니까, 아마 2달 전부터의 일인 것 같다. 지금은 엎어진 영화이지만 이준익 감독이 자청비시나리오 작업을 한참 할 때, 그걸 좀 더 입체적으로 이해해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 오래된 블록버스터들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캐스트 어웨이> 같은 걸 그 즈음에 다시 보기도 했다.

 

하여간 그 다음부터 거의 두 달째, 계속해서 <스타워즈>만 보는 중이다. Dvd 버전으로 보고, 블루레이 버전을 사서 보고, 그 안에 있는 크고 작은 자료들까지 탈탈 털어서 계속 보는 중이다. 아직은 노트를 하면서 보고 있지는 않은데, 곧 지나면 메모 작업도 해보려고 한다. 7월 초에, 블루레이 사가 버전이 재발매된다. 물론 이것도 나오면 사서 보려고 한다.

 

한국 영화 중에서 100번 채워서 본 영화들이 몇 개 있다. <짝패>가 그랬고, <달마야 놀자> <화산벌> 그리고 <오 브라더스> 같은 걸 그렇게 보았다.

 

원래 내가 무슨 재능이 있거나, 기가 막히게 머리가 좋거나, 아니면 느낌이 있거나, 그런 스타일이 전혀 아니라서, 공부할 때부터 그냥 좀 무식하게 보고 또 보고, 그렇게 많이 했다. 불편하기는 하지만, 나같이 별 재능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게 제일 낫다.

 

몇 년 전에 조지 로메로와 조지 루카스를 비교하는 작업을 했던 적이 있었다. <생태 요괴전>을 한참 구상하던 시절이었는데, 두 사람을 한참 비교한 다음, 나는 조지 로메로 쪽을 선택했었다. 물론 일본 여행 이후, 나중에 요괴로 모티브가 바뀌기는 했지만, 이 책의 첫 모티브는 조지 로메로에게서 나왔다. 솔직히 말하면, 조지 루카스는 그 당시 나에게 아무 느낌도 주지 않았다.

 

하여간 그건 옛날 일이고, 요즘은 <스타워즈>만 보고 또 본다. 정확히 말하면, 그 시절의 자료들을 이렇게 보고, 저렇게 보고, 그러는 있는 중이다.

 

내가 뭔가를 진짜로 배우고 있다는 생각은, 두 번 받아보았다. 대학원 시절과 박사 과정 초기, 앙드레 니꼴라이에게 배울 때 그런 느낌을 받았던 적이 있다. 현대에 다니던 시절이나 에너지관리공단에 있을 때, 뭔가 배운다기 보다는 살아남기 위해서 적응하는 거라는 생각을 더 많이 했던 것 같다.

 

지금은 한국무역협회의 부회장이 된 오영호 차관하고 일하던 시절에는, 진짜로 뭔가 배운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존경하지 않으면, 뭔가 배우기가 쉽지 않다.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공무원 중에서 내가 진짜로 존경했던 것은 오영호 차관이었다. 물론 그와 나는 살아갈 길이 다르고, 하고 싶은 일도 달랐지만, 오랫동안 주변 사람들은 내가 오영호 작품이라는 얘기를 많이 했었다.

 

공직을 그만둘 때, 진짜로 나를 만류했던 건 한 사람이었는데, 당연히 오영호 차관이었다. 뭔가 몇 가지를 해준다고 했던 것 같은데, 어차피 내 삶은 그게 아니라서, 그냥 그만두었다. 그러나 그에게, 진짜로 많이 배운 건 사실이다.

 

뭔가 배우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 일이, 그렇게 자주 있는 일은 아닌데,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을 해보면, 뭔가 정말로 배운다는 생각을 아주 오랜만에 받게 되었다.

 

<스타워즈> DVD든 블루레이든, 누구나 볼 수 있는 영화이고, 또 누구나 본 영화이다. 게다가 무수히 많은 매니아들이 있는 영화이다. 나도 한참 시스가 어떻고, 포스가 어떻고, 그러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지만 나이를 먹고 다시 보면서, 그 때와는 전혀 달랐고, 예전에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방식으로, 새롭게 이 현실을 보게 되었다.

 

한동안 이 일을 하려고 한다. 한 달 정도는, 일단 dvd부터 자세히 보고대부분 원서라서 돈이 좀 깨지기는 하겠지만, 논문 쓸 때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참고문헌과 논문들을 챙겨서 보고. 그리고 나서 조지 루카스 인터뷰를 짧게라도 해보려고 한다.

 

원래의 인터뷰는, 지브리 스튜디오에서 하려고 몇 년째 조금씩 준비하던 게 있었는데, 그걸 이걸로 바꾸었다.

 

연락은? 내가 요즘 한국에서 외국 영화를 가장 많이 수입하던 사나이들, 그리고 어쨌든 천만 관객을 불러모았던 사람들과 같이 작업하는 중 아닌가?

 

조연출 한 사람이 웃기는 얘기를 하기는 했다. 핸펀을 막 뒤지더니, “조철현 바로 위에 조지형이 있었는데, 전호 번호가 없어졌네요…” 하하하.

 

아직 뭘 어떻게 하고, 뭘 얼마나 더 배워야 할지는, 나도 잘 모른다. 그러나 뭔가 엄청나게 배우고, 내가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하던 조지 루카스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찾아가면서, 간만에 배우는 즐거움을 느끼는 중이다.

 

뭔가 배우고 있다는 생각이 주는 가슴설래임, 이게 도대체 얼마 만인가, 그런 생각에 <스타워즈>를 보고 또 보고, 그러고 있다. 누구나 보았고, 누구나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소재를 다시 뒤집어서 2012년이라는 공간에 맞게 해석해보는 것, 이게 참 재밌다.

 

오랫동안, 경제학이든, 생태학이든, 일반인은 접하기 어렵거나 평생 한 번 들어보지도 못할 얘기들을 가지고 공부를 했었다. 장 밥티스트 세이나 튀르고의 책 혹은 존 스튜어트 밀의 경제학 책 같은 건, 정말로 경제학자들도 잘 안 보는, 그런 몇 사람만 보는 책이었다. 난 이런 종류의 공부에 너무 오랫동안 익숙해있었다. <스타워즈>와 조지 루카스에 대해서 공부하는 건, 그것과는 정반대이다. 누구나 보았고, 대부분의 사람이 한 두시간 정도는 얘기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는 소재이다.

 

간만에 뭔가 배운다는 즐거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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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이 시작하는 날

 

 

 

사람이란 원래 사랑하지 않고 살아가기가 어려운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하여간 별로 거창한 이유는 가지지 않고, 그냥 내 주변에 나타난 고양이들을 돌보기 시작한지 몇 년 된다.

 

아기 고양이들이 태어난 건, 한 달 조금 넘는 걸로 알고 있는데, 내가 보기 시작한 건 아직 한 달이 안 된다.

 

6월은 내내 가뭄이었고, 4대강과 관련된 아주 이상한 논쟁을 하면서 한 달이 가버렸다. 6월의 마지막 날에는 서울에도 비가 왔다.

 

비가 그치고 날이 좀 개기 시작하자, 고양이들이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아기 고양이들은 아직은 날 엄청 무서워한다.

 

앞에 있는 녀석이 강북, 뒤쪽에 있는 녀석이 생협, 이렇게 두 마리가 살아남았다.

 

 

간만에 네 마리가 모두 모인 가족 사진과 같이 되었다.

 

그 사이 아들 고양이는, 바보 삼촌이라는 새로운 별명을 가지게 되었다.

 

엄밀하게 따지면 큰 형에 해당하지만, 나이를 먹어도 그냥 집에 남아있는, 예전에는 어느 집에나 있었을 법한 그런 바보 삼촌 분위기라서.

 

출산을 하고 나서, 엄마 고양이는 요즘 좀 아프다.

 

처음에는 눈에서 심상치 않은 눈물이 나서 병원에 가서 물어봤더니, 몸이 허약해져서 생기는 바이러스형 질환이라고 한다.

 

튜브처럼 생긴 약을 먹이는데, 이걸 먹이는 것도 큰 고역이다. 캔 같은 데 타서 주는데, 바보 삼촌이 눈치도 없이 다 먹어버린다.

 

사실, 가족 사진처럼 생긴 사진을 몇 번 찍기는 했는데, 그 때마다 한 마리씩 아기 고양이가 고양이 별로 떠났다.

 

짧게 보았던 녀석들이지만, 가슴 속에 깊은 그리움을 남겨놓았다.

 

얼마나 신경을 썼던지, 고양이들이 꿈에 나왔었다.

 

헤어짐은, 아무리 반복되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삶에 대해서 배워가는 것, 아무리 배운다고 해도 그걸 알 수가 있겠나 싶다.

 

우리는 욕심이 너무 많고, 그걸 내려놓기가 싶지 않다.

 

그 욕심들이 모두 모여서, 우리는 명박 시대라는 아주 이상한 시대를 만나게 된 것이 아닌가,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자기가 하지 않은 것으로부터 보상받으려는 것, 그런 게 분양이라는, 한국에만 있는 제도와 전세 끼고 집 사기’, 이런 것과 만나면서 그야말로 누구도 통제할 수 없는 그런 괴물이 되어버린 것 아닌가 싶다.

 

손에 쥐고자 하는 게 너무 많았고, 남들도 다 이렇게 한다는, 맞어, 그렇게 하는 게 진짜야, 이런 악마의 목소리 같은 유혹이 너무 많았다.

 

영화나 출판 혹은 드라마 같이, 큰 돈도 움직이고, 장기 계획을 세워야 하는 곳에서는 벌써 박근혜 시대를 상정하고 작업을 시작했다. 그걸 뭐라고 하기도 어렵다.

 

나는,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상반기가 지나가면서, 내 주변에서는 내년 계획을 세우는 일이 부산하다.

 

나는, 내년 계획을 세우지 않기로 했다.

 

그냥 주어진 시간을 충실히 살고, 반골학자가 한 명 있었던 걸로, 내가 이 시대에 할 수 있었던 것을 그냥 마음 속에 추억으로 간직하고자

 

명박 시대만으로도 충분히 고통스러웠고, 이 시대를 고양이들과 아웅다웅하면서 겨우겨우 버텨낸다.

 

만약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올해 다 할 생각이다.

 

근혜 시대, 그걸 상상하고 싶지도 않고, 그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 머리를 굴리는 것도 싫다.

 

바보 삼촌이, 참 아무 생각 없이, 정말로 명랑하게 살아간다.

 

녀석들에게 배우는 게, 생각보다 많다, 명박 시대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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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새로 배우는 것들 2

 

호기심 같은 말이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증오나 사랑 혹은 희망과 같은 단어들과는 전혀 계열이 다른 용어이다. 굳이 표현하자면 디오니소스 계열이라고나 할까. 그렇다고 광기나 광란과 같은, 그렇게 격정적 에너지와는 조금은 더 다른 분야의 말이 있다.

 

한동안 트렌드로 사용되던 희망이라는 단어와 호기심은 또 다른 종류의 개념인 듯싶다.

 

예를 들어, 일본어를 새로 배운다고 해보자. 일본어를 배워두면 뭐에 쓸 것 같아서 배우는 경우와, 그냥 일본어가 재밌을 것 같아서 배우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재밌다는 것과는 조금은 다른 것일텐데, 호기심 때문에 뭔가 배운다

 

아마 영어로 얘기하면, 느낌 팍팍 올지도 모르겠다. 필요나 쓸모도 아니고, 재미도 아니고, 그냥 호기심 때문에 영어 공부를 하는 경우가 있을까? 아마 있다면, 호기심 대마왕 정도 될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뭔가 배우려고 할 때, 그 동기가 지나치게 불순하거나 직접적인 경우가 많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나쁘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내가 책을 읽을 때 재미있어서 읽었는가? 나한테 곰곰 생각해보면, 호기심은 아니고, 재미는 더더군다나 아니고, 그야말로 죽지 않기 위해서 봤다, 이게 아주 솔직한 얘기일 것이다.

 

어쨌든 박사를 마칠 때까지, 나도 무수히 많은 시험과 구술시험 혹은 갖은 방법의 테스트를 통과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암기력이 정말 나쁜 편이라서, 아주 많은 독서를 하고, 그 독서량으로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 그렇게 고결한 입장이나 순수한 호기심 같은 걸로 독서를 한 건 아니다. 가끔 나의 진정한 독서는 만화 밖에 없었다고 생각하는 게, 필요나 생존과 같은 목적과 관련되지 않고, 정말로 내가 순수하게 즐긴 적은 만화 밖에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정말로 호기심 때문에 무언가 새로 배우게 된 게 도대체 언제인가, 기억도 잘 나지 않을 정도이다.

 

어쨌든, 이제 경제학은 내려놓고 학자로서의 삶을 접겠다고 생각을 한지는 꽤 되는데, 그렇게 마감으로 정해놓은 시간이 점점 가까워지면서 생각지도 않았던 존재에게 무엇인가를 배우기 시작했다.

 

1) 고양이와 아이들

 

고양이를 돌보기 시작한 게, 아마 고3때부터였나? 너무 오래 되어서 잘 기억도 안 나는데, 그때부터 대학 시절, 집을 나오기 직전까지. 그렇다고 그 때 뭘 배웠던 것 같지는 않다.

 

3년 전부터 고양이와의 삶이 다시 시작되었는데, 요즘은 내가 생각하는 게 아무 것도 없어서 그런지, 고양이들로부터 이것저것 은근히 많이 배운다.

 

그렇다고 무슨 실용적인 이유는 아니다. 그냥 주어진 삶을 사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렇게 내 앞에 나타난 녀석들과 운명적인 삶을 같이 살아가는데, 그 과정에서 생각지도 못하게 배우는 것들이 좀 있는 듯 싶다.

 

고양이들은 꾀병이 없다고 들었는데, 정말로 그렇다.

 

야옹구가 아픈 것처럼 보였을 때는 일요일 오후였고, 월요일 오후에 심상치 않다 싶어서 바로 다음날 오후에 들쳐엎고 병원에 갔는데백혈구 수치가 너무 낮아서 정말로 고양이별로 바로 보낼 뻔 했었다. 시껍했었다. 6개월 이상 상당히 아팠을텐데, 정말 그렇게 아픈지 까마득하게 몰랐다.

 

최근에 새끼 고양이들 두 마리가 또 떠나갔다. 아픈 줄 알았거나 급하다고 생각을 했으면, 무슨 수를 내더라도 냈을텐데, 나도 그렇게 섬세하지는 못했다. 요즘은 출산을 마치고 난 엄마 고양이가 바이러스 감염으로, 재채기를 하기 시작했다. 완치는 어렵고, 면역력을 길러줘서 버티게 하는 수밖에 없다는데, 정말 티 안내고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살아간다.

 

야생의 생명체들이 보통 그렇다고 들었다.

 

꾀병 없이 버틸만큼 버티고, 쓰러질 때에는 가볍게.

 

그걸 보면서 정말 오래 전에 읽었던 ‘Seize the day’라는 소설이 생각났다. 카르페 디엠! 삶을 만끼하라!

 

어쩌면 우리는 걱정이 너무 많다. 살아있는 마지막 순간까지 삶을 만끽하라!

 

오랫동안 잊고 있던 얘기였는데, 고양이들의 삶을 보면서 그런 걸 배웠다.

 

잘 먹고, 튼튼하고 오래 살고그게 그렇게 중요한 가치일까, 그런 생각을.

 

영혼 없는 표정’, 이런 건 좀 아니다 싶다는 것을, 고양이들의 짧지만 강렬한 삶 속에서 조금 배운 듯 싶다.

 

이 얘기들을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요즘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왜 아이들이냐고? 고양이를 제일 좋아하는 게 아이들이기도 하고, 또한 고양이가 제일 좋아하는 게 아이들이기도 하니까.

 

하여간 이런 생각을 하면서, 간만에 뭔가 배우는 중이다. 고양이들이 나의 스승이다.

 

2) 조지 루카스와 스타워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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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마음이 무겁다. 가볍게 마음을 먹으려고 해도, 세상이 이 모양이니, 이게 마음이 가볍게 되나?

 

이것저것 고민하고 있는 나를, 야옹구가 딱하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다.

 

그냥 자...

 

여기, 편해.

 

그렇다.

 

Seize the day...

 

(대학교 들어가서 두 번째로 집은 영어 소설이었는데, 결국 끝까지 다 못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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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새로 배우는 것들 1

 

20살 안팎의 나이였던 것 같다. 그 때는 ‘inspiration’이라는 단어를 참 좋아했다. 그 때는 뜻이나 알면서 좋아했던 건지도 잘 모르겠다. 하여간 영감이나 혹은 충동, 그렇게 갑자기 떠오르는 이미지, 그 정도 뜻으로 이해했던 것 같다.

 

아마 경제학에 대해서 내가 가장 많은 영감을 가졌던 것이, 아마 박사과정 2년차에서 3년차 시절이 아니었나 싶다. 그 때는 작은 노트를 가지고 다니면서 나중에 쓰고 싶은 책의 리스트를 적는 게 중요한 취미생활이었다. 인터넷은 내가 학위를 받은 즈음에나 사용되기 시작하였고, 고퍼도 거의 학위 마칠 때쯤이었고, 대학에서 이메일 계정이라는 것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도 거의 학위가 끝나갈 무렵이었다. 노트북은 가지고 있었는데, 그렇다고 맨날 컴퓨터만 붙잡고 있을 수도 없었고,

 

혼자 다니는 시간이 거의 대부분이니, 카페에서 잠시 커피 한 잔 마시고 쉴 때 뭔가 할 일이 필요하다. 그 때 앞으로 쓰고 싶은 책의 제목을 쓰거나 고치거나, 찢어버리거나, 하여간 그게 혼자서 카페에서 놀 때 가장 편하게 할 수 있는 놀이였다. 작은 수첩과 펜 하나만 충분히 커피 두 잔 정도는 심심하지 않게 마실 수 있다. 그 때 수첩은 벌써 잊어버렸는데, 그 시절에 내가 쓰고 싶던 책과 지금의 책은, 일부분을 제외하면 아주 다르지는 않다. 그렇지만 그게 바로 지금의 책이 된 것은 아니고

 

한 번쯤 더, 정말로 내가 뭘 하고 싶고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지 많은 생각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가 초록정치연대 정책실장을 하던 시절이다. 지금 쓰는 경제학 책들의 원형은 대부분 그 시절의 노트 같은 데에서 나왔다. 그 시절에 끄적거려 놓은 것과 전혀 상관없는 책이, 없는 것 같다. 하던 생각이 전개되지 않고 죽는 법은 있어도, 해보지도 않은 생각이 글로 나와서 책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내가, 참 게으르다. 몇 년째, 그 시절에 했던 생각을 정리하고, 또 정리하는 그런 일만 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그 중간에, 그야말로 틈틈이 새로 배우는 것들이 아주 없지는 않지만, 기본적으로 수 년째 나의 일상은 정리하는 일 밖에 없다.

 

지금 10권째에서 서 있는 경제 대장정이나, 한참 중간을 넘어 파이널로 피치를 올리고 있는 나꼽살이나, 내가 여기에서 경제학에 대해서 뭔가 배우는 것은 아니다. 이미 알고 있거나 생각했던 것을 포맷을 바꾸거나, 전달하는 방식 혹은 요소들의 앞뒤 연결 고리만 바꾸는 일이다.

 

사실 내가 모르는 것을, 남한테 설명할 수가 있겠나? 그건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고 내가 부지런하게 취재를 다니는, 뭐 그런 인간은 절대 아니고.

 

아는 건 아는 거고, 모르는 거는 모르는 거다이게 내 인생 철칙 중의 하나이다. 잘못 알고 있는 건 있을 수 있다. 이건 모르는 거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중간, 그건 모르는 것이다. 그리고 아는 것 중에도, 모르는 것이 있다.

 

영감이라고 하는 단어를 쓰거나, 모티브라는, 동기의 의미를 가지고 있거나이런 게 분노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물론 분노가 사람을 움직이기는 하지만, 그 분노는 오래 갈 수가 없다. 하루 종일 화낼 수도 없고, 몇 년째 화만 내고 있을 수도 없다. 사람은 그런 존재가 아니다.

 

공부든, 작업이든, 분노로 시작한 것은 오래 못가는 듯 싶다.

 

분노가 해소되는 일은 거의 없다. 분노를 출발하게 만든 그 사건이, 사람이 살아가는 한에서는 해소되는 경우가 거의 없는, 그런 구조적인 일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MB라는 틀이 기본적으로 이런 딜레마 안에 들어가 있다. 이 인간이 좀 황당한 인간이기는 하지만, 정말로 인간 하나 이상하다고 해서 이런 일이 벌어진 건 아니다. 그래서 아무리 그를 미원한다고 해도, 그 구조를 바꾸기는 어렵다. 게다가 어차피 대선이라는 게, 지나간 대통령을 뽑는 게 아니라 다음 사람이 나오는 구조쟎아? 박근혜도 미워하자! 말이 쉽지, 그 미움의 감정이 그렇게 이 사람에서 저 사람으로, 한 두번 건너가면 그 강도가 약해지게 된다.

 

맨날 벽에 사진을 걸어놓고 미워하자!

 

이거, 자기가 먼저 지친다. 누구도 그렇게 증오만 하면서 세상을 살아갈 수는 없다.

 

세상의 증오라는 것은, 많은 경우, 지쳐서 사라지거나, 증오의 에너지를 다 써버려서 결국은 잊혀지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은 세상을 살아가지 못한다.

 

나라고 싫은 사람이 왜 없겠나?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숫자만큼 나도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을 거고, 당연히. 그러나 사실 이제 잘 기억나지도 않는다.

 

예전에 헤어진 연인이 그렇게 미웠던 적이 있었는데, 하나씩 잊혀져 가다, 나중에는 아예 이름도 잊혀지게 된다. 그게 정상이다. 그걸 다 기억하면, 못 산다.

 

증오보다는 돈이 조금은 더 솔직하고, 에너지의 강도도 높다고 할 수 있을 듯 싶다.

 

증오가 사물에 대한 관계라면, 돈은 조금 더 보편적이고 밋밋한 것이다. ‘보편적 등가물’, 그야말로 돈이야말로 평등하면서도, 동시에 얕은 감정이다. 그 대신, 오래 간다. 등가물, 이 사람은 저 사람과 치환되지 않지만, 이 돈은 저 돈과 치환된다.

 

돈을 위해서이건 솔직한 거다. 돈 때문에, 이렇게 이유를 댈 때, 뭐라고 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돈이 갖는 에너지로서의 한계는, 돈이 주는 에너지는 다른 돈으로 치환된다는 점 아닐까 싶다. 이렇게 벌든, 저렇게 벌든, 돈만 벌리면 돈의 궁핍으로부터 생겨난 정신적 에너지는 소멸된다. 그래서 돈이 허무한 거다. 쥐어봐야, 사실 아무 것도 아니다.

 

물론 그 돈에 대한 욕구가 채워지지 않는 사람들도 종종 있는 듯 싶다. 예를 들면 명박. 요건 기본적으로는 악마인데, 따져보면 그 인간도 불쌍한 인간이다. 명박을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돈에 대한 욕구가 돈의 양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영화 <나자리노>에는 사탄이 늑대인간에게, 사실은 자기는 외롭고 힘들다고 고백하는 장면이 있다. 늑대인간이 사랑을 선택했기 때문에 언젠가 하나님 앞에 서게 될텐데, 그 때 자기가 힘들다고 애기를 좀 해달라고

 

악마도 잘 생각해보면, 불쌍한 구석이 있기는 할 듯 싶다. 물론 대부분의 우리는, 그런 걸 불쌍하게 생각할만큼 그렇게 속이 깊지 못하고, 또 삶이 팍팍해서, 그렇게까지 여유를 부리기가 쉽지는 않다.

 

그보다 상층의 동기는?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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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이 함께 하기를!

 

‘fta 한 스푼이 오늘 예약판매가 시작되었다. 아마, 오랫동안 시간이 지나도 이 순간을 잘 잊지 못할 것 같다. 앞으로도 몇 권 더 나올 게 있고, 책 작업은 당분간 계속 하기는 할 것이지만경제학자로서의 내 삶은, 이 책에 걸었다. 아니 모두 묻었다고 하는 게 맞는 표현일까?

 

열정이라

 

20대에는 열정과 분노가 아주 컸던 것 같고, 30대에도 열정만큼은 컸던 것 같다. 그 대신, 나는 꿈 같은 것은 가져본 적이 없던 것 같다. 하기로 한 건 열심히 한 편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꼭 나의 꿈인 것은 아니었다. 기후변화협약의 정부 대표로 협상에 나서던 시절, 열정적으로 하기는 했다. 그렇지만 그게 내 꿈이 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총리실 근무하던 시절에도 열정적으로 일을 했던 것 같기는 한데, 그게 내 꿈인가? 그런 꿈은 가져본 적이 없다.

 

작년 10월 후반에서 11월을 거치면서, 나는 사람들과 한미 fta라고 불리는 줄 앞에 서 있었다. 그냥 내 양심이 시키는 대로 했다. 원래는 한미 fta에 대한 책 계획이 없었는데, 그 줄 한 가운데에서 책 한 권을 쓰기로 마음을 먹었다.

 

상식적으로, 합리적으로는, 그 책은 쓰지 않는 편이 좋은 책이다. 그걸 내가 모르는 건 아니다. 짧게 보건, 길게 보건, 쓰지 않는 편이 낫다. 아직도 뭔가 해야 할 일이 있다고 생각하면 말이다.

 

이 시점에서, 정권이 바뀌든, 바뀌지 않든, 한미 fta에 경제학자로서 반대한다는 건, 한국에서는 아무 것도 안 하겠다는 말과 마찬가지이다.

 

냅둬요, 그냥 생긴 대로 살래요

 

어차피 많은 걸 포기하고 살고, 또 포기할려고 생각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걸 이 시점에서 이런 식으로 할 필요가 있느냐, 나에게 많은 사람들이 해준 얘기가 이런 거다.

 

세 번의 큰 사건이 있었다.

 

국회 날치기 사건이 있었고, 한미 fta 발효가 있었고, 에 또총선에서의 패배가 있었다.

 

그 사이에 사람들은 대부분 떠나갔고, 시간은 흘러갔다. 포지션을 잡는다고 할 때, 이게 아주 어렵게 되었다.

 

그 와중에, 책을 그만 내려놓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여러 번이 있었다. 일단 입장을 정하기가 어렵고, 그러다보니 어디에서 논쟁점을 잡아야 할지, 그런 기술적인 고민들이 있었다. 그리고 님 떠난 빈들에서, 그런 생각도 강했고. 이미 사람들은 다 떠났는데, 나 혼자 빈들에 앉아 이게 무슨 가지학대적인 고민이람, 그런 생각도 많이 들었다.

 

이미 끝난 걸 뭐하러 붙잡고 있냐, 대표적인 목소리가 이준익 감독이었다. ,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진취적이라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은, 이미 지나간 건 어쩔 수 없고, 다음 방어선에 대해서 생각해보자는 얘기를 주로 했다.

 

아 참, 내가 이렇게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으로 느껴진 건, 정말 대학 시절에 처음 경제학 책을 진지하게 보기 시작한 이후로 처음이었던 것 같다.

 

내가 내놓을 수 있는 건, 그 과정에서 거의 다 내놓은 것 같다.

 

삭발은 진짜 애교이고. ‘88만원 세대절판은 그 다음에 이어서 한 거고.

 

더 내려놓을 수 있는 게 있으면 더 내려놓으려고 했는데, 그 다음에는 내려놓을 게 없었다.

 

총선 끝나고, 사람들이 멘붕을 호소하는 그 시점에

 

나는 금주를 했고, 한미 fta에 대한 입장과 생각들을 다시 정리하기 시작했다.

 

결정적으로이석기 사건이 생겨났고.

 

그 와중에 한미 fta는 무슨그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무슨 의미가 있을지, 대선이 무슨 소용아람!

 

시대에 뒤떨어지는 아주 이상한 사람으로 보이는 걸 감내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게 좀 멋지게 표현하면 시대의 불쏘시개’…

 

원래는 모든 공포의 총합으로 시작했던 컨셉에서 ‘fta 한 스푼으로 바꾸게 된 건, 정말로 일반인들과 아주 길게 그리고 아주 오래, 많은 대화를 나누고 난 다음이다.

 

모든은 나는 못하겠고, ‘한 스푼은 하겠고.

 

그래서 한미 fta 논의에 나는 딱 한 스푼만큼 더 한다고 가볍게 마음을 먹은 다음에, 세워놓았던 원고를 다시 붙잡을 수 있었다.

 

불쏘시개로 그냥 활활 타오르는, 뭐 그 이상은 나는 못하겠고.

 

불쏘시개에 불을 붙인다고 그게 정말로 나무에 불이 붙을지, 그건 잘 모르는 거고. 불쏘시개는 그냥 불쏘시개 답게 확 타버리면 그만 아니겠남?

 

하여간 책 한 권이 발간되게 하는 것, 그 이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처음에는 총선을 생각하면서 대선과 총선 사이에 국회에서 할 수 있는 조치들을 디자인하면서 작업을 시작했는데

 

총선 이후로는, 대선 과정에서도 한미 fta는 필요 없는 논의가 되어버렸다. 그거야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거고.

 

그래도 자신의 삶을 위해서 그런 논의가 필요한 국민들이 많이 있다고 생각한다.

 

요기까지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고.

 

그 일을 위해서 내가, 정확히 말하면 내 주변 사람들이 치룬 대가는 크다. 원고를 마무리지을 때까지, 그 전의 모든 일정들을 다 세웠고, 원래 있던 계획들은, 개판이 되었다.

 

내 삶도 완전 개판이 되었고, 같이 작업하던 동료들의 삶도 덩달아 같이 엉망이 되어버렸다.

 

그 후에 이 상황을 수습하느라고 하는 만큼 하지만, 한 펀 개판이 되어버린 삶이, 최소한 일정이라도 원래대로 돌아오지는 못했다.

 

어쨌든 그렇게 난리굿을 치면서 만들어낸 책이 예약판매가 걸린 게 오늘이다.

 

원래 예약판매 같은 건 거의 안하는 편인데, 한미 fta 논의에서, 이것저것 가릴 게 뭐가 있겠나 싶어서 그냥 하자고 했다.

 

어쨌든 경제학자로서 시대의 맨 앞이 아니라, 시대의 맨 뒤에 서게 되는 기묘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남들보다 먼저 논의를 하는 게 아니라, 논의 다 끝난 뒤에 저 뒤에 서서,

 

, 아직 이 얘기는 안 해봤쟎아…”,

 

요런 상황에 되었다.

 

난 그걸 받아들였고,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했다. 맨 앞에 서는 것만이 학자로서 할 일이 아니라, 맨 뒤에 서는 것도

 

비겁한 변명입니다!

 

영화 <실미도>에 나오는, 이 영화에서 거의 유일하게 유행하게 된 대사가 생각난다.

 

맨 뒤에 서 보는 것도, 즐거운 경험이기는 하다. 아마 이 상태로 작은 불소시개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어떠랴.

 

이 시대에 경제학자로서 살았던 나는, 내가 꼭 해야 할 얘기를 했고, 그걸 두려워하지는 않았다는, 그야말로 내가 왜 살았는지, 그건 나한테 설명할 수는 있게 되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한 스푼은 정말로 나를 위한 제목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 많은 걸 바꾸려고 하면 아무 것도 못하게 된다. ‘한 스푼만큼은, 혼자서라도 할 수 있는 것아닌가 싶다.

 

한미 fta에 대해서 고민하면서, 나는 늘 눌려 있었고, 웃음을 갖기가 어려웠다. ‘한 스푼이라는 제목을 달고서야 비로소 유머와 명랑을 다시 찾을 수 있었다.

 

이 책과 함께, 내가 치룬 대가 중에 큰 건, 복지와 금융 등 많은 것을 같이 고민하던 동료들과 가은 자리에 앉을 수 없게 되었다는 점이다.

 

대부분, fta의 세계로 건너갔다.

 

나는 건너가는 대신, 그냥 여기서 늙어 죽으리라, 그렇게 선택을 했다.

 

몇 년 전부터 쓰던 구호인데, 지난 몇 달 동안 나를 지켜주었던 구호가 하나 있었다.

 

명랑이 함께 하기를!

 

아직 fta의 나라로 건너가지 않은 모두에게, 이 말을 드리고 싶다.

 

명랑이 함께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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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문>에 관한 짧은 메모

 

 

 

1.

용산 참사가 벌어지던 날은, 공교롭게도 동경에 있던 날이었다. 그 사건에 대한 얘기를 건네 들으면서, 정말로 놀랐다.

 

2.

영화 보는 내내, 좀 괴로웠다. 당연한 것이고. 그리고 또 괴로웠다. 나라면 이 얘기를 어떻게 처리했을까, 어떻게 다루었을까, 그런 생각들이.

 

3.

죽어라고 보지 않겠다고 마음 먹은 사람들을 극장으로 인도할 방법은 별로 없다. 용산참사, 과연 우리는 누구와 싸우고 있는 것일까?

 

영화 내에, 이건 일종의 기준이 되어서, 이 정도로 해도 사람들은 별 반응이 없겠구나, 그런 인터뷰가 나온다. 사실 이게 이 영화의 주제일런지도 모르겠다.

 

너무 재밌는 것이 많기도 하고, 너무 충격적인 것이 많기도 하고, 또 너무 안 보고 싶은 것이 많기도 해서

 

사람들이 시선을 단 1분 붙잡고 있기도 힘들다.

 

4.

누군가는 만들었어야 할 영화이고, 과연 누군가 만들었다.

 

그게 시대의 미학이라는 생각을 잠시.

 

연출 기법이니, 플롯을 잡아가는 방식이나 등등필요 없다일단 그 영화를 만들어서 우리 앞에

 

5.

그래도 힘이 나지 않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걸 사람들한테 전달하기가 너무 어렵다는.

 

tv에서 다큐로 만들면 그만인 걸, 극장까지 가서 봐야 하나

 

요건 속 편한 얘기인데, 우린 지금 공중파가 막힌 시대를 살고 있다.

 

6.

큰 모티브는 두 가지로 보였다.

 

얘기치 않던 죽음, 그리고 사라진 진실.

 

죽음을 맨 처음에 보여주었다. 그리고 진실이 사라졌다는 건, 아마 극장에 있던 모두가 이미 알고 있던 것이었다.

 

이 두 개를 놓고, 긴장감을 만드는 연출이런 생각을 잠시 했었는데, 이것도 배부른 투정이다.

 

죽음 앞에 다른 진실이 뭐가 더 필요하겠나? 요즘 재밌는 영화들을 너무 많이 봐서, 내가 배가 부른 거다.

 

7.

한 번 더 볼 꺼냐? 아무래도 극장에서 한 번 더 볼 것 같지는 않고, DVD가 발매되면 살 것 같기는 하다. 분석하려면 정식으로 여러 번 충분히 보고 분석을 하고, 아니라면

 

이 억울한 죽음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묵념.

 

8.

국가의 폭력, 특히 이런 어처구니 없는 폭력은,

 

나나, 내 주변 사람에게나, 혹은 우리 모두에게나 생겨날 수 있다.

 

한 다리 건너 철거민 식구가 없는 국민은 없고, 무엇보다도

 

이 사건은 철거민들에게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가계를 운영하는 자영업자나 심지어 멀쩡한 회사를 다니다가 얘기치 않게 해고된 사람에게도, 혹은 이도저도 아니라도 누구에게나

 

우리는 일상적으로 국가의 폭력 앞에 노출되어 있다.

 

그걸 사람들에게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그런 질문이 생겼다.

 

이건, 어느 가난했던, 그래서 우리와는 아무 상관없어 보였던 그런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분석은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해보려고 하고, 일단 메모만 잊어버리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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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노현 에세이 <나비>

 

시간이 지날수록 좋아지는 사람이 있고, 시간이 지날수록 별 거 없다, 그렇게 되는 사람이 있다. 그거야 사람이 살아간단면 응당 그렇게 되기 마련이고. 일관되게 좋았거나, 일관되게 싫거나, 그런 경우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내게 곽노현의 경우는, 뭐 그런 사람 있겠지 정도로 생각되다가,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놀라게 되는 경우이다. 사람에 대해서 판단하기가 참 어렵다, 그런 걸 곽노현을 보면서 배웠다.

 

요즘 나는 눈이 너무 안 좋고 피곤해서, 책을 잘 못 본다. 보겠다가 붙잡고 펼쳐놓은 채로, 아직 끝내고 있지 못하는 책이 10권이 넘는다. 꼼꼼하게 보지는 못하더라도, 일단은 보고 넘어가는 습관에 비하면, 참 이례적으로

 

안 보이는 데는, 수가 없다.

 

곽노현 에세이집 <나비>, 그래도 참고 억지로 끝까지 다 읽었다.

 

티워터에 있던 글과 옥중서신의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고, 뒤쪽에는 재판에서 법정에 제출된 최후 진술서가 들어있다.

 

옥중서신은 최근에 정봉주의 옥중 서신을 읽은 적이 있다.

 

곽노현 때에는 간다 간다 그러면서 결국 못갔고, 정봉주 때에는몇 번 간다고 하다가 계속 사정이 생겨서 못가고, 결국 다음 주에 선대인과 이번에는 꼭 가자, 그렇게 해서 가기로 했다.

 

감옥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염두에 두고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어쨌든 감옥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생각하면서 읽으면, 옥주서신은 재밌는 편이다. 인간이 바뀌거나, 생각이 변하는 과정들도 재밌고, 상황에 적응하면서 조금씩 생각을 넓혀나가는 과정들이 재밌다.

 

트위터에 썼던 글들도 조금씩 은미하며서 읽으면 나름 읽을맛이 있을만한 글일텐데, 그렇게 보지는 못했다.

 

교육에 대한 단면보다는, 세상에 대한 생각의 단면을 읽는 것이, 트윗 쪽에서는 더 재밌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한국의 공무원에 대한 세 가지 얘기에 대한 구성을 몇 달 전부터 해보는 중이다. 그 중에 제일 머리 아픈 게, 소위 교육 마피아에 대한 얘기이다.

 

크게 보면, 새누리당에 덤빈 자 결국 감옥에 가리라, 이런 것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교육 마피아에 감히 균열을 내려고 하면, 이렇게 감옥에 가게 된다

 

그렇게 이 사건이 읽히기도 했다.

 

시대에 불화하였던 한 사나이의 내면의 얘기, 은근히 읽는 재미가 있는 책이었다.

 

(감옥에 대한 묘사, 그리고 적응과정, 그런 건 읽을 때마다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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