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의 정부, 시민의 경제, 초고 끝내다

 

아이가 태어나는 날, 새벽까지 붙잡고 있던 원고가 시민의 경제였다. 뒷부분을 마무리하지 못해서 고생고생 했었는데, 오늘에야 마무리를 지었다.

 

책을 쓰다 보면, 논리만 가지고 쓰기는 어렵고, 감정을 사용하게 된다. 인간이라는 게 원래 감정의 존재 아닌가? 내 경우는 감정을 잘 타는 편은 아니다. 그게 생각대로 감정이 잡히는 것도 아니고, 늘상 반복되는 작업 속에서 그렇게 감정을 만들어낼 수도 없고.

 

이게 좀 웃기는 얘기이기는 한데, 가끔 나는 글을 쓰다가 운다. 칼럼 쓸 때 울었던 것은, 한겨레에 헌법의 눈물이라는 거 쓸 때 가장 많이 울었고. 책 쓰다가도 가끔 운다. , 매번 우는 것은 아니고. 팔리는 것과 내가 우는 것 사이에는 아무런 연관관계도 없다.

 

시민의 정부, 시민의 경제라는 제목은 비교적 작업 초기에 정했던 제목 중의 하나였는데, 마지막 순간에 이 제목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에필로그에서 제목이 이렇게 된 사연에 대해서 설명하다가 파티 초대장에 관한 얘기를 하다가, 괜히 눈물이 나서 엄청 울었다.

 

그냥 좀 운 게 아니라 정말 꺼이꺼이 울었다. 그렇게 소리내면서 운 건 정말 오랜만인 듯 싶다. 시민들이 파티에서 스스로 빛나는 별 같이 되어야 한다는 얘기가 그렇게 울만한 얘기도 아닌데, 어쨌든 나는 엄청 울었다.

 

그냥 울고 싶었나 보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지난 몇 달 동안 너무 힘들었는지도 모른다.

 

힘들 때 누구한테 힘들다고 말하기도 힘든 게 요즘의 내 사정이다. 고양이 붙잡고 힘들다고 말할 순 없쟎아.

 

1, 2부로 나누어서 1부는 경향신문에 연재했던 것, 2부는 총선 끝나고 나서 새로 내 생각 정리한 것, 그렇게 했는데, 새로 쓴 원고는 A4 50장 약간 넘는다.

 

글쎄책을 쓸 때 그 때 하고 싶은 얘기를 다 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시기상 안 맞기도 하고, 전체 구조상 뒤로 미루어야 하기도 하고, 그래서 모든 얘기를 다 했다는 느낌이 드는 경우는 별로 없다. 연작물을 할 때에는 요런 애로사항이 좀 있다.

 

이번에는, 정말로 하고 싶은 얘기는 다 한 것 같다. 분량이 문제가 아니라, 정말 결론이 무엇이었느냐, 그 얘기를 끝까지 가느냐 마느냐, 그런 차이라고나 할까.

 

어쨌든 얘기는 다 털어놓았고, 내가 더 알고 있는 얘기는 이제 없다 싶었다. 처음 출판사랑 얘기를 시작한지 4년만에 나오는 거고, 중간에 경향신문 연재도 1년이나 했고, 그리고도 또 최근의 내 심경에 관한 얘기까지 다 털어놓았으니, 이제 더 할 얘기도 없다.

 

책 마지막 열 줄 남겨놓고 그야말로 대성통곡이 터져나오는데, 정말 신나게 울었다. 고양이가 뭔 일이래, 그렇게 지켜보고 있고.

 

이 책에서는 쓰거나 읽으면서 울 대목이 있을 게 없고, 그런 마음으로 쓴 것도 아니었는데, 마지막 한 대목 쓰면서 눈물이 펑펑나서. 진짜 뭔 일인가 싶었다.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울었던 대목을 부제로 옮겨놓았다.

 

증오로 시작해서 증오로 책을 끝내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을 했는데, 결국 눈물을 질질 짜면서 마무리하게 되었다. 기쁨이나 경쾌함, 그런 마음을 내심 기대했던 건데, 그냥 서럽다요렇게 된 꼴이다.

 

연초에 시나리오로 시작했던 작업이 결국 소설로 넘어가게 되어서 소설 작업 진행하는 게 하나 있다. 처음 생각은 조금만 손을 볼 생각이었는데, 결국 클라이맥스 한 장면만 남기고, 주인공들 마저도 다 바뀌어버렸다. 에라 모르겠다, 난 그냥 오락 소설로 간다내 주제에 경제 소설은 무슨

 

하여간 그렇게 바뀐 얘기를 가지고 앞부분을 좀 썼는데, 그래서 계약까지는 하기로 했고. 그냥 김영사에서 내기로 했다.

 

기획은 요것도 엄청 멋지다. 관료들 문제를 순서대로 모피아, 교육 마피아, 토건족, 이렇게 다루어볼 생각인데,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어렵다.

 

꿈은 같은 얘기를 만들어보는 건데, 그야말로 내 주제에 무슨.

 

지금 작업은 돈을 어떻게 형상화할 것인가, 그런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돈을 어떻게 보여주지? 그런 고민이 스토리 전개보다 더 큰 고민이다.

 

연초에 처음 작업 시작할 때에는 소설까지 염두에 둔 건 아니고, 시나리오 트리트먼트 수준 정도는 해본다는 그런 소박한 출발이었다. 근데 이게 일이 커지면서 드라마로 만들겠다는 얘기가 먼저 나오고, 오매 나는 책임 못지겠네. 고런 황당무게 에피소드의 연속이었다.

 

여름이 되면서 좀 차분하게 앉아서 얘기를 재구성하고, 떼어낼 건 떼어낸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이게 항공모함이 두 척이 뜨고, 뭐 그런 얘기가 되어버렸다.

 

나는 늘 항공모함을 띄우는 그런 판타지를 가지고 있기는 했다.

 

돈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그런 얘기를 정말로 좀 형상화해서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오랫동안 있었다.

 

하여간 실컷 울고 났더니, 내가 뭘 하고 있었는지, 그것도 까먹었다. 마흔 넘어서는 오늘 제일 크게 운 것 같다.

 

해야 되서 하는 일이 있고, 정말로 하고 싶은 것이 있다. 사회과학 책에는 일종의 의무감 같은 게 있었다. 물론 쓰고 싶었던 주제들이기는 하지만, 이게 정말로 내가 하고 싶은 거냐고 하면, 그걸 하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나?

 

소설도 정말로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이런 얘기를 해야만 할 것 같은, 그런 의무감도 조금은 있다.

 

소설 마지막 습작 했던 게, 96년으로 기억난다. 처음 강사 시절, 그러니까 YS 시절이었는데, 그 때는 재밌어서 소설을 썼었다. 정말 재밌어서 하는 건 줄 알고 있었는데, 갑자기 취직을 하게 되니까 내가 쓰던 얘기들은 갑자기 까먹어버렸다. , 자신을 잠시 속일 수는 있어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는 거라는 걸 그 때 알았다.

 

지금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작업은 동화책을 쓰는 거다. 이건 의무감 때문이 아니라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거.

 

정말로 아이들이 읽어서 재미도 있고 도움도 될만한 그런 동화책을 쓰고 싶다.

 

어린이용 경제책, 경제동화, 경제만화 심지어는 아동용 경제 다큐까지, 제안이 엄청나게 많이 오기는 했는데미쳤나, 내가 어린이용 경제 책을 쓰게.

 

어린이들이 경제에 대해서 알 필요가 뭐가 있나, 그게 내 기본적인 생각이다. 그 시기에 경제를 채워 넣으면 커서 악인이 되거나, 지독할 정도로 메마른 사람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돈에 대해서 어려서부터 알면 좋을 것이라는 건 부모의 욕심이고, 자기 투영과 같은 것이다. 그 마음은 알겠지만, 정말로 자녀를 위해서라면 돈이 아니라 다른 것에 대한 꿈이나 즐거움을 채우는 것이 나을 것이다.

 

돈 밖에 모르는 인간이 성공하면 어떻게 되는지, 이명박 보면서 충분히 느끼지 않았나?

 

어쨌든 이런 저런 생각들이 모여서 동화책을 써보고 싶다는 동기가 되었다.

 

영화는아직 잘 모르겠다.

 

워낙 실험해볼 여지가 적은 분야라서, 내가 잘 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고, 내가 정말로 기획자로서 의미 있는 작품을 만들 수 있는지도 아직은 잘 모르겠다.

 

어쨌든 경제학자로서의 삶이나 생각이 한 번에 털어지는 게 아니라서, 결국은 이렇게 조금씩 털어내는 중이고, 빈 공간에 그 전에 해보지 않던 일들이 들어와서 차는 중이다.

 

사실 난 살면서 뭐가 되고 싶다거나 뭐가 하고 싶다는 그런 강렬한 종류의 욕망은 가져본 적이 없다. 어렸을 때도 그랬는데, 커서도 별로 그런 게 생겨나지는 않았다.

 

한참 기후변화협약 협상 다닐 때에는 서브스타 의장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적은 있었다. 평생을 쫓아다니면 결국 나이 먹어서 한 번쯤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자리이기는 했다. EGTT 멤버가 되면서, 사무국에서는 정말로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러나 더 높은 자리에는 더 많은 대가가 따르는 법.

 

만약 그 자리 유지한다고 계속 버티고 있고, 그냥 눌러앉자, 이렇게 했다면 나라고 별 수 있겠나, 이명박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 뭐라도 바둥거리면서 했었겠지.

 

이명박 외국 순방길에 모 박사께서 옆에 서 있는 걸 보고, , 그냥 있었으면 내가 저 자리에 서 있겠겠구나, 그런 생각에 식은 땀이 잠시 흐른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깨끗하게 잘 털고 나왔다는 생각이 강하다.

 

사람의 행동을 구성하는 것은, 욕망만은 아니다. 자기한테 그 행위가 설명이 되어야 하는데, 그 설명이 잘 안되면 이제 욕망과 보람이 그 안에서 충돌하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 충돌은, 결국은 암이 된다. 장수무강에 지장 있다.

 

나는 얘기 만드는 일이 재미있다.

 

경제학이 재미가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뭔가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더 강했고, 그 의무감이 무게가 점점 더 버티기가 싫어졌다. 의무감으로 평생 살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그 의무감을 명박에 대한 증오로 대체하면서 지난 몇 년간 살아온 것 같다. 짧은 시간 동안 증오를 극대화하면서 살 수는 있지만, 평생 증오하면서 살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그 마지막 증오가 빠져나가는 순간이, 시민의 경제 탈고하면서 터졌던 것 같다. 증오가 큰 에너지일 것 같지만, 그 상태를 버티는 게 제 정신은 아니다.

 

앞으로의 일은 나도 모른다. 어쨌든 내가 생각했던 즐거운 미래에 대한 얘기는 이 책에 탈탈 털어 넣었다. 정말 서럽게 울었다.

 

왜 눈물이 났는지, 왜 그렇게 서러웠던 건지,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 예기치 않게, 나도 신나게 울었다.

 

가끔 이런 순간을 좀 멋있게 표현하면 매듭을 짓는 순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내가 뭘 하는 사람인지, 뭘 하고 싶은지, 뭘 그만두고 뭘 더해야 하는지, 그런 생각을 해보는 순간이 가끔은 온다. 마음 먹고 생각하자고 그렇게 생각이 나는 건 아니고.

 

증오 위에 세울 수 있는 성은 없다

 

정말로 그런 것 같다.

 

Posted by retired
,

 

 

 

태풍 지나가는 날

 

1. 

태풍이 지나가는 날, 온 국민은 잠시 하나가 된다. 이 거대한 바람 앞에서, 인간은 잠시지만 대체적으로 평등해진다.

 

그리고 높은 건물에 살든, 낮은 건물에 살든, 대체적으로 약간씩 거대한 바람이 주는 공포 앞에 서게 된다.

 

지진도 가난을 차별한다는 연구들은 이제 유명해졌고, 사실 데이터 작업을 해보면 태풍도 누구에게나 공평하지는 않을 것이다. 중남미에 지진이 생기면, 더 가난한 사람들의 집들이 무너지고, 빈민가가 치명적 타격을 입는다.

 

오래된 주택의 창문은 문을 열면, 창틀째로 날아갈 듯이 흔들린다. 창문을 못 열고 있다. 덥다고 불평할까 하다가도 더운 게 문제가 아닌 사람이 많을 듯하여.

 

한국이 과장되었든, 아니든, 태풍의 영향권을 통과하는 동안에도 야옹구는 아무 생각 없이 디비지게 잠만 자고 있다. 참 얼마나 평온한 존재인가.

 

 

 

(얘는 가끔 잘 때 보면 얼굴이 웃는 얼굴이다.)

 

 2.

 

민주당 경선이 지나가는 중이다.

 

누굴 찍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머리 수라도 하나 보태줄까 싶어서 선거인단에 신청을 했는데, 그냥 투표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투표는 꼬박꼬박 한 편이고, 피곤하게 신청한 다음에 안 한 적은 없었는데, 이번 경선에는 그냥 투표하지 말까 한다.

 

식자우환이라고 했나? 그래, 환이 많다.

 

나중에 통합후보 결정되면, 대선 때에 투표는 할 생각이다. 뭐, 싫든 좋든, 그 때는 찍을 거지만, 찍는다고 꼭 지지하는 것도 아니쟎아?

 

자기 편 지지 안할 거면 닥치고 투표나 하라는 얘기에 꼬박꼬박 대꾸하기도 피곤한 일이고, 왜 너는 얘 안 좋아해, 왜 너는 얘 지지 안해, 그런 말을 듣고 있는 것도 피곤한 일이다.

 

좋으면 니가 충분히 좋아해주면 되쟎아.

 

마음이 안 가는데, 어떻게 해.

 

논리적으로도 이해 못하겠고, 감성도 안 가는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박근혜 쪽에 줄을 댄다. 기절초풍, 많은 사람들이 줄을 댄다.

 

사실 이 와중에 줄을 댔다고 해서, 마치 친일파를 우리가 한 번도 정리한 적이 없는 역사를 가진 것처럼, 어용교수들을 정리한 적이 없는 이 나라에서 손해볼 건 아무 것도 없다. 그러니 너도나도 앞 다투어서 줄 대는.

 

태풍 지나가는 한 가운데, 고양이들 개집 안으로 먹을 거 밀어넣어 주고, 그래도 좀 잘 버텨보라고 육포도 꺼내놓아주면서, 이 얼마나 한가하고 평온한 태풍 보내기인가, 잠시 생각을 했다.

 

이 또한, 결국은 모두 지나가리라.

 

 

 

(이 태풍 와중에 NHK 인터뷰 시간이 정확하게 서울에 태풍이 통과한다는 3시에 잡혔다. 9월 8일 방송이래나, 더는 미루기가 어려워서 꾸역꾸역 영화사에 기어나갔다. 카메라 끈 붙잡고 놀아달라는 녀석을 보면서 나도 대략난감.)

 

 

 

Posted by retired
,

나한테만 의미 있는 사진 

 

 

 

 

며칠 동안 엄마 고양이가 보이지 않았다. 고양이가 보이지 않기 시작하면,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보게 된다. 마당에 그냥 사는 것 같지만, 녀석들이 집을 떠나야 할 이유나 사고가 날 가능성은 많다. 집에 사는 고양이들이 요즘은 10년 넘게 살지만, 길고양이들의 수명은 보통 2.5년에서 3년 정도 된다. 두 번의 겨울을 넘기면, 나름 길게 산 것이고, 세 번의 겨울을 넘기기는 쉽지가 않다는 게 통계다.

 

고양이들이 사라질 때에는 사람들이 구질구질하게 헤어짐에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과는 달리, 어느 날 갑자기 보이지 않는다. 올 봄에 아빠 고양이가 한참 멋진 폼을 가지고 있었는데, 녀석이 그렇게 어느 날 떠났다. 많은 고양이들이 그렇게 마음에 묻히고 떠나간다. 그게 싫으면 아예 돌보지 않으면 되지만, 그래도 기왕의 인연이라고 생각하고 마음을 주고, 또 그렇게 서로 관계를 가지게 된다.

 

엄마 고양이는 아기 낳은지 얼마 되지 않지만, 벌써 또 새끼를 가지고 있다. 고양이들이 너무 많으면, 엄마들이 자기가 살던 데를 아기들에게 두고 떠나기도 한다. 새끼도 낳기 전에 떠나는 것은 아직 못봤지만, 어쨌든 좁은 지역에 너무 많은 고양이가 있으면 종종 떠난다. 그러지 말라고 밥을 많이 주기는 하지만, 그건 내 생각일 뿐이고.

 

하여간 며칠 엄마 고양이가 보이지 않는 동안에 별의별 생각을 다 했다. 엄마 없이 바보 삼촌과 두 아기들만 밥을 먹는 게 며칠 째 되면서, 엄마 없는 삶에 대한 생각을 생각해보고. 길에서의 삶이라는 것은 그렇게 만나고, 또 그렇게 헤어지는 것과 같다.

 

그렇게 생각하고 영화사에 갔다가 집에 들어오는데, 역시 엄마 고양이가 없었다. 뒷뜰과 여기저기를 살펴보고 오늘도 없군, 그렇게 생각하면서 마당에 길게 난 잡초들을 자르는 일을 한참을 했다. 올 여름까지는 그래도 이렇게 덤불이 되도록 방치하지는 않았는데, 아기가 태어나고 정신 없는 한참이 지나가면서, 풀까지 뽑아줄 여유는 없었다. 마침 검둥이가 나무 밑에 있어서 빗자루로 한 번 쫓아내고녀석, 내가 쫓아내도 전혀 겁 먹지는 않는다. 두 팔이 다 떨릴 때까지 한참 풀을 자르고 그냥 집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담벼락 밑에 엄마 고양이가 편하게 쉬고 있었다. 몇 번이고 다시 보는데, 엄마 고양이 맞다.

 

얼마나 반가웠던지!

 

가슴을 누르고 있던 게 다 내려가는 듯 싶었다.

 

그 순간에 찍은 게 이 사진이다. 보통 쓰는 캐스퍼 보다는 한급 떨어지는 슈퍼줌을 가지고 있었는데, 슈퍼줌 200미리로.

 

무심한 듯 바라보는 엄마 고양이에게 애틋함을 느끼는 것은 나밖에 없는데, 사실 그런 내 감정은 잘 표현되지 않는다. 사람들에게는 별 의미가 없겠고, 나에게만 의미가 있는 사진이 되어버렸다.

 

살다 보면 크고 작은 애틋함들이 생긴다. 그게 반드시 사람에게만 느껴지는 감정은 아니다. 그런 감정을 가슴에 많이 담으면 더 행복해질까? 애틋함, 간절함 같은 것들이 인간적인 감정이고, 삶을 풍성하게 해주는 것은 분명하겠지만, 그게 더 행복하게 해주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다고 이 모든 것들이 통제 가능한 영역에 있을 때에만 편하다고 느낀다면, 그건 너무 삭막하다. 그렇게 모든 것을 통제 가능한 상황에 놓는다고 하더라도, 컴의 하드디스크 같은 게 한번에 날라가거나, 그렇게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은 발생하고야 만다.

 

익숙한 것들과 때때로 이별하고, 원치 않는 일들이 매 순간 생겨나는 것, 그게 삶이다.

 

삶은 배반과 통제불가능 그리고 가끔 만나게 되는 안도 그런 것들로 채워지는 것 아닌가?

 

그 속에서 무언가 기다리고 조그맣게라도 뭔가가 만들어보는 게 재밌지, 거대한 성을 세워놓고 그 안에서 군림하고 있을 때에만 평온을 느끼는 것, 그런 건 좀 아닌 듯 싶다. 손에나 가득 쥔 것, 그런 건 언젠가 결국 사라지게 된다.

 

나한테만 의미 있는 것, 그게 큰 돈이 들거나 크게 정성이 많이 드는 것은 아니다. 꿈을 크게 가지라고 하는 말,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영 이상하다. 마음을 주는 것들이 커지는 것, 그게 삶을 풍성하게 해주고 감성 넘치게 해주는 것 같다. 물론 감성으로 찬다고 해서, 매 순간 웃음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애절함이 그 한 가운데를 흐르고 있다.

 

 

(내가 지네 엄마를 못 찾아서 애타고 있는 사이, 바보 삼촌은 태연덕스럽게 아기들 데리고 밥 먹거나, 이렇게 풀 뜯어먹고 있다. 하긴, 지 입장에서는 엄마 멀쩡이 잘 있는데, 내가 왜 애태우고 있는지, 의아하기도 하겠다. 녀석의 천진하면서도 너털스러운 삶은, 나도 참 배우고 싶다.)

 

 

 

Posted by retired
,

 

 

(별 의미는 없는 사진이다. 태풍 몰려오기 전, 구름이 너무 예뻐서.)

 

뒷방 늙은이의 사랑방

 

우리 시대의 싸움은 우리 시대에 끝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세상이라는 게 뭐, 언제 그렇게 생각한 대로 움직이겠나... 그저 우리는 최선을 다했다는 알리바이만 남기는 것. 그야말로 비겁한 변명일 뿐이기는 하다.

 

어쨌든 질 수 없는 짐은 이제 좀 내려놓기로 마음을 먹으면서, 별 의미 없는 비판이나 욕질은 그만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자연인으로 돌아오면, 내가 누군가에게 뭐라고 할 일이 뭐가 있겠나. 어차피 알던 사람들도 아니고, 또 볼 사람들도 아닌데.

 

뭐 별로 정리할 게 거창하게 남아있는 것도 없지만, 어쨌든 요즘은 내가 내려놓을 수 있는 것들 것 계속해서 내려놓는 중이다. 나꼽살 방송이 좀 더 남아있기는 하지만 그것도 기본 기획과 아이템 선정 같은 것들은 대부분 선대인 소장에게 넘겼다. 계약되어 있는 남은 책들이 조금 있지만, 그거야 뒷전으로 물러나서 조용히 원고 작업하고, 조용히 출간하면 되는 거고.

 

수업 정리는 작년에 이미 했고, 경제학과나 사회학과에서 새로 더 수업을 개설하거나 그럴 계획은 없다. 그냥 해보는 말이라고 생각하지만, 학교에 가는 것에 대한 얘기가 주변에 있기는 하다. 내가 내 스스로가 좋은 선생이 될 자신이 없기 때문에, 그냥 되었다고 아뢰오

 

작년 말부터 준비를 좀 해서, 이제 영화기획자로 주로 보내는 시간이 많이 바뀌었고, 첫 번째로 영화기획자로 참여하는 영화가 투자단계는 넘어가서 캐스팅 단계로 가 있다. 물론 엄청나게 내 영향이 많이 들어간 영화는 아니지만, 아직은 내가 손 볼 구석이 좀 있는 것 같다.

 

, 이렇게 하면서 대단히 큰 돈을 벌지는 못하겠지만, 그냥 하고 싶은 책이나 읽고, 보고 싶은 영화나 보면서, 큰 돈 쓰지 않고 이럭저럭 살아가려고 한다.

 

남은 게 블로그 같은 그냥 수다나 떨던 공간을 어떻게 할 거냐, 뭐 그런 건데.

 

원래도 별 의미는 없던 건데, 그냥 뒷방 늙은이의 사랑방 같은 게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좀 했다.

 

그래서 엄청난 얘기들을 할 생각은 없고, 소소한 얘기들이나 살다보면 느껴지는 작은 얘기들, 그런 걸 사람들과 나누고, 그냥 수다들이나 좀 떨 수 있는.

 

우리 사회가, 긴장도가 너무 높다. 그래서 어떤 공간이든 열리면 금방 날 선 공방장이 되어버린다. 때때로 그런 일들도 필요하다고 생각되지만, 사람이 어떻게 늘 그렇게 날이 선 상태로 살 수가 있나

 

너무 그렇게 들이대기만 하면, 결국에는 자신이 무너지게 된다.

 

사람은 그렇게 강한 존재가 아니고, 또 생각보다 다면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한동안 이걸 어떻게 할까 고민을 해봤는데, 엄청나게 힘이 드는 것도 아니고, 또 별 다른 욕심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그냥 뒷방 늙은이의 사랑방 같은 걸로 두기로 했다.

 

Posted by retired
,

야옹구는 노동의 신성함을 좀 배워야 한다

 

 

 

개는 집 지키는 일을 하고, 고양이는 쥐 잡는 일을 한다. 예전부터 군영에서 주로 길렀고, 페르시아 인근에 있던 고양이들이 근대에 대항해가 시작되면서 항구를 중심으로 급격히 퍼져나간 걸로 알고 있다. 배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식량을 쥐들이 다 먹어버리면 곤란할테니.

 

우리 집에 야옹구가 오게 된 계기도 쥐 때문이다. 동물이라면 질색하고, 게다가 고양이라면 도대체 왜 그런 걸 기르냐고 하던 아내가 고양이 없으면 안된다고 하던 첫 사건도 쥐 때문에 벌어진 것이다.

 

야옹구가 집에 온 다음에도 가끔 쥐가 출몰한다. 지난 겨울에는 북악산 산쥐로 판명된 녀석이 싱크대 밑에 자리를 잡고 계속해서 플라스틱 하수관을 쏠아대는 바람에 두 번이나 관을 갈고, 결국 세스코가 출동해서 며칠만에 산쥐를 잡았다.

 

우와, 이렇게 큰 쥐가 있다니...

 

천정 사이로 지나가거나 싱크대 관 밑으로 지나가는 쥐를 고양이가 어쩌지는 못한다. 마당 바깥에도 고양이들이 득실득실거리고 있지만, 잠시라도 빈팀이 생기면 쥐들이 들어오는 걸 어쩌지는 못하는 것 같다. 그래도 이사온 첫 해에 비하면 쥐들이 출현 빈도가 확실히 줄어들기는 했다.

 

야옹구 쇼파에서 뒹굴뒹굴, 놀고 있는 걸 보면, 문득...

 

너도 노동의 신성함에 대해서 좀 배워야 한다,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고양이는 16시간 정도는 자고, 깨어있는 시간 중에서 2시간 정도는 몸단장 하는데 쓴다고 들었다.

 

야옹구도 자고 있거나, 몸단장 하거나, 남아있는 빈 시간은 놀아달라고 매달린다. 마당에 있는 고양이들은 내가 밥을 주니까 그래도 좀 편하게 지내는 편이지만, 그 바깥에 있는 고양이들은 살아가는 게 신기할 정도이다. 집에 올라오는 언덕 밑에 회색 암컷이 한 마리가 보였다. 녀석은 우리 집 마당에서도 몇 번 본 적이 있다. 한 번은 마당 고양이들이 웅얼거리며 신경전을 펼치고 있어서 보니까 뒷마당 쪽에 그 회색 고양이가 밥 좀 먹자고 버티고 있었다.

 

그 녀석의 애인도, 우리 집 마당에 사는 검둥이다. 참 녀석, 생긴 건 별 시덥지 않은데, 올해만 벌써 녀석의 자식이 8마리이다. 우리 집 마당의 강북과 생협의 아버지도 그 녀석이다. 애기들 아빠라서 어지간하면 잘 해주려고 하는데, 바보 삼촌과 워낙 싸워서 요즘은 보는대로 쫓아내는 중이다. 그 회색 암컷 사이에서 또 4마리의 아기가 태어났는데, 걔들이 요즘 골목을 가득 메우고 있다. 뭐 먹고 사나, 가끔 걱정을 한다. 마당에 있는 녀석들 사료통에 요즘 살벌하게 많이 부어주고 가는데, 몇 시간 있다 와보면 정말로 다 먹고 비어있다. 배 고픈 회색 고양이의 아기들이 먹고 갔으면 하는 생각을 가끔 한다.

 

노동의 신성함, 이런 얘기를 나는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그보다는 폴 라파그, 맑스 사위였던 그의 '게으름의 권리'에 대해서 더 눈길이 많이 간다. 한국에서는 그런 통계를 별로 쓰지 않지만, 프랑스에서는 휴가 일자 같은 통계를 종종 쓴다.

 

지난 프랑스 대선 때, 좌파전선에서 내놓은 공약집에도 프랑스 노동자의 바캉스의 감소 같은 게 부의 양극화의 지표 같은 걸로 언급되어 있었다. 우리가 얘기하는 휴일과는 좀 개념이 다르다. 말 그래도, 몇 퍼센트의 노동자가 바캉스를 떠나느냐, 이걸 가지고 격차 사회에 대한 얘기를 하는 걸 보면... 이건 분명히 한국이나 일본과는 좀 다른 문화적 전통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흔히 중산층이라고 얘기하는 남자들이 얼마나 벌까? 몇 번 계산해봤는데, 생활비로 꼭 필요한 돈들 제하고 정말로 가처분 소득만 가지고 계산해보면 3억에서 4억 정도가 나온다. 내가 기준으로 삼았던 게, 공기업 같은 데 부장에서 처장까지로 정년을 하는 걸 기준으로 했었으니까, 다른 업종에서는 조금 차이가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정년의 차이라는 게 있어서 결국은 3억에서 4억 정도의 돈을 버는 거라고 볼 수 있을 거다.

 

여기에 3억원 정도의 아파트 한 채 정도를 샀다는 걸 계산에 넣었는데, 아파트 환산 지수로 해보면...

 

많은 사람들이 가고 싶어하는 공기업이나 대기업에서 죽어라고 평생 일하면 소형 아파트 한 채 그리고 그만큼의 현금, 그 정도를 손에 가지게 된다. 물론 그 중간에 룸살롱에 자기 돈으로 갔거나, 애인이 있었다면, 이것저것 다 빠지고 마이너스 인생이다. 골프도 자기 돈으로 쳤다면, 거기에서 돈이 빠지는 거다. 자기 돈으로 안했다면? 그 순간부터는 부패의 댓가이다.

 

쇼파에서 빈둥빈둥거리고 있는 야옹구를 보면서 문득 노동의 신성함에 대한 생각이 잠시 들었다.

 

이런 계산도 옛날식 계산이다. 그 삶도 그렇게 아름다워보이지 않는데, 그 자리에도 목숨 걸고 가야하는 게 또 청춘의 모습 아닌가.

 

예전에 사람의 소득, 사람의 삶, 이런 것들을 한참 재밌게 계산해보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나서 내가 한 결정이, 포도주를 마시지 않기로 한 것, 넥타이를 매지 않기로 한 것, 그런 소소한 것들이었다.

 

어지간한 사람이 평생 마실만한 포도주보다 더 많이 이미 20대에 마셨다. 보르도와 꼬뜨뒤론느를 주로 마셨는데, 정말로 왠만한 사람들이 평생 마실만한 보르도를 나는 20대에 이미 마셨다.

 

럭셔리 산업이 포도주 다음으로 준비하고 있는 남자들을 위한 사치품이 꼬냑이다. 이렇게 준비한 길 대로 따라가다보면, 3억이라는 가처분 소득에서 줄줄줄 새어나가고 남는 게 없다.

 

남들도 다 하는데...

 

요 단어가 바로 사람들의 가처분 소득을 노리는 마케팅이 하는 얘기다.

 

남들도 다 하는 것은, 하루에 세 끼는 먹어야 한다는 사실 외에는 없다.

 

 

'남들은 모르지.. > 명랑이 함께 하기를!'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태풍 지나가는 날  (4) 2012.08.28
나한테만 의미 있는 사진  (5) 2012.08.27
야옹구의 애정결핍  (9) 2012.08.22
엄마 앞의 생협  (4) 2012.08.21
강북과 생협의 서열 다툼  (3) 2012.08.21
Posted by retired
,

 

 

며칠 만에 집에서 좀 쉰다. 내일은 아내와 아기가 병원에서 퇴원하는 날이다.

 

정신 하나도 없다. 고생은 아내가 혼자 했는데, 나는 덩달아 그냥 밤 새운다고, 나도 체중이 줄었다. 이거야 원

 

야옹구가 집에 온 다음에 가장 길게 내깔려둔 셈인데, 드디어 잔뜩 골이 났다.

 

급하게 밀린 글 좀 쓸려고 앉았는데, 드디어 방문을 박박 긁기 시작했다. 수 없다. 한참 놀아주는 수밖에.

 

원래는 카메라를 아주 싫어하는데, 오늘은 카메라 끈을 다 붙잡고 놀았다. 낮에 쓰던 16미리 끼워놓은 틈에, 그냥 그걸로. 16미리로 찍으려면 정말로 가까이 가야 하는데, 야옹구는 카메라를 엄청 싫어한다. 그래도 오늘은 놀려니, 그냥 참고 카메라 끈이나 붙잡고 논다.

 

생각해보면, 우린 모두 조금씩 애정결핍인지도 모른다. 말이 좋아 공동체지, 사실 공동체의 느낌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대부분 아니냐? 나도 맨날 공동체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정작 나는 혼자 있는 게 제일 편하고, 아무도 안 보고 싶다.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는 모습은 아주 잠깐만 보게 되고, 대부분의 경우 우리 눈에 띄는 것은 인간이 인간을 증오하는 모습이다. 증오만큼 단기적으로 신나는 일이 또 있겠는가?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나면 증오만큼 허전한 것도 없다. 증오 위에 무엇인가를 세우기가 쉽지 않다.

 

우린 조금씩 애정결핍이고, 가끔은 자기 정체성에 혼동을 일으키게 된다. 과도한 동일시의 짜릿한 기분에 빠지기도 하고.

 

야옹구는 자신에게 애정 표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그걸 실천한다. 내 나이쯤 되는 남자들은, 이제 자신이 애정결핍이라는 사실 자체도 잊어버렸다. 그리하여 끊임없이 주변으로부터 그 존경과 힘을 인정받으려고 하지만, 이거 사실 서로 피곤한 일이다.

 

예전에 들은 얘기 중에, 구축함이 지나가면 상어들이 자기 크기를 대어보기 위해서 줄을 선다는 얘기가 기억이 난다. 아니 딱 보면 군함이 자기보다 크다는 걸 몰라, 그걸 꼭 대봐야 해? 그게 한국의 남자들이 아닌가 싶다. 메갈로매니아, 일종의 남근 크기에 의한 증후군이라 해야 할까.

 

그걸 내려놓으면, 이젠 또 자기가 발가벗은 것처럼 불편하고, 그래서 주변 사람들을 더 달달 볶게 된다.

 

놀자고 보채는 야옹구를 보면서, 그냥 솔직하게, 같이 놀자라고 얘기하지 못하는 내 주변 사람들 얼굴이 살짝 지나갔다. , 나라고 크게 다르겠나 싶고, 얼마나 내가 모범적으로 살았겠나, 그런 생각도 슬쩍 들고.

 

정말로 이상적이고 도덕적인 사람이 있다고 치자. 그런 사람은 십중팔구, 재미가 없고, 가슴을 끓게 하는 파토스가 없다. 사람이란 보통 그런 존재이다. 우리는 조금씩 부족하기 때문에, 좀 부족한 사람을 지지할 때 속이 편해진다.

 

명박의 진짜 힘이 그거 아니겠는가? 저런 인간도 대통령 하는데, 하물며 우리 같이 살짝 맛탱이 간 사람들의 작은 허물 정도야

 

아주 환상적이고, 이상적이며 또한 기가 막히게 대중의 파토스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있다 치자. 그럼 되겠는가? 케네디가 그래서 죽은 거 아니겠나. 정말로 그런 기가 막힌 존재가 나타나면 총으로 빵.

 

그렇지 않았다면, 세계 각국의 나라들은 벌써 요순 시대가 되었을 거다. 우린 조금씩 흠결이 있고, 조금씩 모나거나, 살짝 뒤틀어져 있거나.

 

이도 저도 아니면 애정결핍.

 

, 가을 장마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폭우가 며칠 째 계속 내린다. 야옹구와 나 사이에는 애정결핍을 둘러싼 작은 신경전이 계속 벌어지고 있다.

 

놀아줄거야, 안 놀아줄거야, 오늘 담판을 짓자!

 

 

Posted by retired
,

 

 

 

폭우 한 가운데 잠시 비가 그치면, 마당 고양이들 밥 주느라고 바쁘다. 어제는 엄마 고양이가 없는 틈을 타서 강북이 생협에게 밥 먹으면서 펀치 몇 방을 날렸다. 오늘은 엄마 고양이가 나왔다. 생협은 잽싸게 엄마 옆에 자리 잡고 같이 먹는다.

 

이게 질서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여간 어제의 분풀이인지, 오늘 따라 생협이 맛있게 밥을 먹는다. 생협이 강북을 야리는 눈매가 예사롭지가 않다. 지루하게 지켜보던 강북이 드디어 하품을 터뜨린다.

 

웃지 않을 수 없다.

 

웃을 일이 요즘 있겠나 싶지만, 간만에 크게 한 번 웃었다. 고양이들의 하품은 웃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이 하품 보고도 웃음 나지 않으면, 병원에 가서 감정에 대한 치료를 받는 것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어차피 한 번 사는 삶, 그렇게 심각하게 살 필요가 뭐가 있겠나, 그런 생각이 요즘 문득문득 들기 시작한다.

 

요즘 아메리카노에 대한 때 아닌 논쟁을 보면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유시민이 우리를 즐겁게 해주었다.

 

어차피 한 번 사는 것, 이 정도의 즐거움도 가지지 못하면 되겠느냐, 그런 얘기를 하였다.

 

딴에는 맞는 말이다.

 

움베르트 에코가 아메리카노에 대해서 한 얘기를 잠시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아메리카 커피 중에는 위에서 말한 것말고도 구정물 커피가 있다. 대개 썩은 보리와 시체의 뼈, 매독 환자를 위한 병원의 쓰레기장에서 찾아낸 커피콩 몇 알을 섞어 만든 듯한 이 커피는 개숫물에 담갔다 꺼낸 발 냄새 같은 그 특유의 향으로 금방 식별할 수 있다. 이 구정물 커피는 감옥과 소년원뿐만 아니라, 열차의 침대 차량이나 일급 호텔 등에서도 마실 수 있다."

 

(에코, '세상의 바보 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호텔이나 침대차의 그 고약한 커피포트를 사용하는 방법 중)

 

에코는 아메리카노에게 거침없이 구정물 커피 혹은 시체 썩은 물 같은 표현을 썼다. 에스프레소를 만들어낸 이탈리아에서 아메리카노라는 의미는 맛 없는 커피라는 말과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프랑스에서는 cafe long 혹은 cafe allonge 정도의 표현을 쓰는데, 에스프레소에 뜨거운 물을 약간 섞어 연하게 했다 혹은 양이 많다, 그런 의미이다. 물론 아메리카노처럼 그렇게 물을 많이 넣지는 않는다.

 

하여간 아메리카노라는 표현과 관련되서 가장 재밌게 본 것은, 이것이야말로 반미의 상징 아니냐는 반어법.

 

아메리카 + No!

 

이보다 더 적극적인 반미 표현이 있을 수 있겠느냐는, 누가 제일 먼저 한 것인지 아직도 기원이 알쏭달쏭한 이 해석은, 너무나 진지하게 흘러서 도저히 폭소를 터뜨리지 않을 수 없는 팽팽한 긴장감이 아예 폭발하기 전에 살짝 먼저 김을 빼는, 그런 기가 막힌 바람 빼기 효과를 준다.

 

멋진 만찬을 먹기 전에 고급 초콜렛을 누군가 주면, 얼마나 억울한다. 안 먹을 수도 없고, 먹고 나면 멋진 만찬의 폭발적 기쁨이 반으로 줄어버리고.

 

웃어야지, 어쩌겠는가.

 

 

 

 

'남들은 모르지.. > 명랑이 함께 하기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야옹구는 노동의 신성함을 좀 배워야 한다  (3) 2012.08.27
야옹구의 애정결핍  (9) 2012.08.22
강북과 생협의 서열 다툼  (3) 2012.08.21
외로운 야옹구  (15) 2012.08.19
아기  (54) 2012.08.18
Posted by retired
,

강북과 생협의 서열 다툼

 

 

 

 

아기가 태어난 날, 엄마 고양이가 보이지 않았다. 고양이는 완전한 야생동물이라서 정말로 꾀병 같은 건 없다. 아프다 싶으면 그냥 쓰러지는 게 다반사라, 마음이 편치가 않았다.

 

내내 마음 한 켠에 무거움이 있었는데, 오늘 나오는 길에 보니까 폭우가 내리는 중 엄마 고양이가 나무 한 켠에서 비를 피하고 있었다.

 

정을 주고, 돌본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그런 생각들을 더 해보게 된다.

 

늘 생각나는 중학교 때 단짝 친구 중에, 광복이라는 녀석이 있었다.

 

할아버지가 독립투사로 알고 있고, 그래서 할아버지가 조국의 광복을 기원하며 그렇게 이름을 붙여주었다고 들었다. 다른 초등학교나 중학교 친구들은 대학에 들어간 이후에 다시 만나게 되거나, 이래저래 다시 보게 되었는데, 여전히 연락이 안되는 친구 중의 한 명이다.

대학에 갔을까?

 

광복이라는 이름을 가졌던 친구의 삶이, 돌아보면 또 생각나고, 돌아보면 또 생각난다.

 

 

 

 

어쨌든 이 땅은 친일파들의 나라 아닌가? 친일파들이 반공을 국시로 내세우며, 친미파가 되었고, 그들은 결국 잘 먹고 잘 살게 되었던 나라이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서 독립운동했던 사람들의 후손은 어렵게 되었고, 돈으로 많은 것의 서열이 만들어지는 이 나라에서 결국 어렵게 되었다. 그 한편으로, 70~80년대에 땅투기하거나 재개발로 난데없는 갑부가 된 졸부들이 어느덧 '메인 스트림'이라고 부르면서 떵떵거리며 살게 된 나라 아닌가?

 

엄마 고양이가 잠시 보이지 않는 동안, 마당 고양이들에게 캔을 뜯어 주었다. 바보 삼촌은 아기들과 서열 다툼을 하지는 않는다. 얘가 바보 같아 보여도, 마음이 참 넓고, 이것저것 나누어주는데 박색하지는 않다.

 

바보 삼촌이 다 먹고 떠나간 다음, 생협도 먹겠다고 나섰다가, 강북한테 몇 대 맞았다.

 

고양이과 동물들이 후려치는 힘이 만만치 않다. 싸울 때 주로 쓰는 무기가 그야말로 펀치인데, 생협이 강북에게 펀치 몇 방을 제대로 맞았다.

 

지켜보는 나야, 그냥 마음이 아플 뿐이다.

 

자기들 사이의 질서이고, 그들 세계의 일이라, 개입할 수도 없고, 개입할 방법도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싸움이 커지지 않도록, 그리고 힘이 없어도 충분히 먹을 수 있게 넉넉하게 주는 방법 밖에 없다.

 

 

 

 

워낙 큰 캔을 뜯어줘서, 생협에게도 차례가 갔다.

 

(얘들 밥 먹이는 게 큰 일인게, 내가 지켜보고 있지 않으면 검둥이가 와서 나머지를 다 먹어치운다. 검둥이는 새로 회색빛 애인이 생겼는데, 거기도 아주 귀여운 새끼 고양이가 3마리 달려 있다. 그 검둥이의 회색빛 애인과 엄마고양이, 그리고 바보 삼촌이 며칠 전에 한바탕 신경전을 벌인 적이 있다.)

 

고양이들의 갈등을 보면서, 한국에서 어느덧 무시할 수 없는 지배층으로 성장해버린 졸부들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

 

졸부라는 말은 어느새 쓰지 않는다. 스노비즘이라는 19세기 유럽에서 주로 쓰던 말이 귀족들의 꼴불견을 사회적으로 견제하기 위한 단어였던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에게는 졸부라는 말이 스노비즘과 유사한 기능을 했다.

 

이제는 그 졸부라는 말을 거의 쓰지 않는다. 졸지에 부자가 된지 20년 가량 지나버렸으니, 어느새 '졸'은 아닌 게 되어버렸고, 무엇보다도 국가 지배장치와 문화적 전파 장치들을 이들이 장악했다. 스스로 졸부라는 말을 쓰겠는가? 그리고 졸부라고 견제하고 싶은 사람들은 너무 힘이 없어져버렸다.

 

그들을 우리 사회는 '루저'라고 부른다.

 

"너네 졸부쟎아", 이 말을 꺼내기에도 힘이 부칠 정도로, 한국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정서적을 취약하고, 문화적으로도 빈약해졌다.

 

부자나 특권층이 생겨나는 것을 막기는 어렵다. 프랑스 대혁명 때, 혁명의 지도자들과 민중들은 서로를 Citoyen, 시민이라고 불렀다.

 

대격동기,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시기에 이름에 붙는 존칭을 없앤다. 꼭 무슨 법칙이 있지 않더라도, 이런 호칭은 변화의 시기에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Camarade, 동지 혹은 동무라는 의미로 번역되는 말은 사회주의 태동기에 서로를 불렀던 말이다. 내가 보았던 가장 눈물나는 Camarade라는 호칭은, 프랑스의 베트남 반전 집회에 대한 필름에서 보았다. 대중들 앞에 샤르트르가 섰는데, 정말로 복부에서 피눈물과 함께 터져나오는 목소리로,

 

"꺄마라드..."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정말로 눈물 날 뻔했다.

 

21세기로 넘어오면서, 한국은 존칭이 완화되는 방향이 아니라, 오히려 존칭을 더 강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여갔다. 요즘은 만년필, 자동차 엔진은 물론이고, 화장품, 립스틱, 하다못해 주사에도 존칭을 붙인다.

 

자신을 낮추지 않으면 큰 일 날 것 같은, 이 고통스러운 사회 분위기, 우리는 더욱 더 강한 억압으로, 사람이 사물에게도 고개를 숙이게 만들고 있다.

 

그야말로, 이런 니미럴...

 

한동안 현대 백화점식 존칭이라고, 표준 어법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가진 사람의 횡포가 더 심해지니까, 어쩔 수 없이 자신을 낮출 수밖에 없다. 아니면... 바로 죽는 거 아닌가? 언제든지 해고 시킬 수 있고, 재계약에 대한 권한을 가진 사람의 완장질이 극에 달하니까, 자연스럽게 부자들 자동차, 벤츠나 폭스바겐 혹은 토요타에 머리를 숙이게 된다.

 

이게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니다.

 

BMW 가진 놈이 무서운 거지, BMW가 무서울 게 뭐가 있냐? 그래도 고개를 숙이지 않으면, 어디에서 날아올 칼을 맞고 죽을지 모르는데, 사람은 물론이고, 그 사람의 모든 것에 벌벌 떨어야 하는 시기, 그게 우리가 사는 2012년 아닌가?

 

대통령에게 '님'을 잘 붙이지 않고, 정말로 대통령을 직접 만나야 하는 사람은 각하라는 별도의 호칭을 썼다.

 

없는 사람이 더 몸을 낮추게 되면서, 언제부터인가 대통령에게도, 꼭 님자를 붙이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도대체 넌 뭐야?

 

죽고잡냐?

 

요런 기이한 흐름이 생겨났다.

 

그런 기기묘묘한 사회적 서열이 주는 공포가 한국 사회를 뒤덮고 있고, 그 공포는 더욱 강해진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강북에게 밀려서 기다리고 있던 생협에게도 먹을 차례가 갔다.

 

그러나 이건 우리집 마당에서나 벌어지는 일이다, 우리 모두 알고 있는 건,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개뿔, 아무 것도 없고, 그렇게 내내 기다리던 우리의 청춘에게 사랑과 출산이라는 것은, 너무너무 먼 나라의 일이 되어버렸다는 걸 모두 알고 있지 않나?

 

선진국이 되면, 먹고 사는 것에 대한 1차적 공포로부터 국민들이 최소한 정신적으로 해방된다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의 경우는, 오히려 그 공포가 더욱 더 깊어져서, 고객은 왕이다, 그러나 진짜 왕은 구매력에 의해서 따로 결정된다는 것을 우리 모두 알고 있지 않나? 우리에게는 공포가 더 강해졌고, 삶에 대한 팍팍함이 극한치로 가고 있는 중이다.

 

명박과 4년을 보내면서, 이젠 립스틱이나 핸드백은 물론이고, "주사바늘이 굵으세요", 주사바늘에게도 존칭을 붙이지 않으면 안되는 시기가 되었다.

 

주.사.바.늘.이.굵.으.세.요.

 

내재화된 공포, 이 사회에서 기다림은 더 이상 미덕이 아니다.

 

그 공포 통치를 5년간 더 하겠다는 사람들, 그들의 두목 근혜 공주가 오늘 대단한 포부를 밝혔다.

 

사람이 사물에게 고개를 숙여야 하는 이 기막힌 시대,

 

죽어라고 국격을 외치지만, 이놈의 나라에서 가난한 사람의 인격, 서비스 해야 하는 사람의 인격에 대해서는 힘 있는 놈들이 전혀 생각하지 않는 듯 싶다.

 

인격, 사람은 누구나 동등하게 존경받고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

 

근대로 넘어오면서 스스로 변화를 만들어낸 나라에서 비록 허울 뿐인 이데올로기일지라도, 최소한 입에는 달고 다녔던 말이다.

 

재물의 평등은 아니더라도, 정신의 평등 혹은 영혼의 평등을 얘기하는 게 그렇게 어려울까?

 

벤담이 공리주의를 외칠 때, 모든 사람의 행복의 합이 사회적 행복이라고 말했다. 논란거리가 되지만, 한국 사회는 지금 벤담의 공리주의만도 못한, 야만의 시대를 지나고 있는 듯 싶다.

 

인간이 사물을 보고 두려움에 떨어야 하는 지금, 이건 우리가 가야할 길은 아닐 듯 싶다.

 

 

 

'남들은 모르지.. > 명랑이 함께 하기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야옹구의 애정결핍  (9) 2012.08.22
엄마 앞의 생협  (4) 2012.08.21
외로운 야옹구  (15) 2012.08.19
아기  (54) 2012.08.18
폭우가 내리던 날  (3) 2012.08.16
Posted by retired
,

 

 

둘째 동생이 태어나던 날은 잘 기억이 안난다. 언제부터 있었던 건지, 그냥 어린 동생하고 같이 놀아주던 것만 기억에 난다.

 

보행기에 탄 동생을 너무 쎄게 밀어서 보행기가 마루 끝으로 떨어져서 다쳤던 순간이 황망한 기억, 그런 것들이 어렴풋이 기억에 남아있다.

 

막내동생이 태어나던 날과 병원에 가서 처음 본 날은, 버스 번호까지 기억을 하고 있다. 둘째랑 막내랑 한 살 터울인데도, 그 사이에 기억에 많은 차이가 있나보다.

 

나흘을 내리 밤을 새다가 낮에 잠깐 와서 눈만 붙이고 갔더니, 야옹구가 오늘은 단단히 심통이 났다.

 

이것저것 설명을 해주는데, 알아듣는 듯하기도 하고, 잘 못 알아듣는 듯하기도 하고.

 

마당에 있는 고양이들은, 며칠치 밥을 미리 주고 갔는데, 동네 고양이들까지 다 불러들여서 자기들끼리 잔치를 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검둥이까지 와서, 마당 한 구석에 자리를 잡고. 바보 삼촌이랑 하도 싸워서, 보는 대로 쫓아내고는 했는데, 자기들끼리도 어정쩡한 질서가 좀 생겼나보다.

 

까치들까지 잔뜩 몰려와서.

 

뭐, 나 혼자서, 얘네들이 아기 태어난 것을 자기들끼리 축하해주고 있다고, 그렇게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아기는 오늘 처음으로 젖을 먹었다.

 

예전 같았으면 굉장히 위험할 상황이었다고는 하는데, 그나마 수술이 잘 끝나서.

 

세 시간마다 한 번 터울로 먹는다는데, 두 번째 젖은 시간보다 일찍 보채는 바람에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두 번째 젖 먹는 것까지 지켜보다가 새벽에 들어왔다.

 

아기가 태어나는 걸 계기로, 다시 술을 마시기로 마음을 먹었다.

 

남들은 아기 태어나면 금주를 한다는데, 난 술 마시기로 마음을 먹다니...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 그냥 맘 편하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며칠 전에 고은 선생 팔순 잔치에 다녀온 적이 있다.

 

진짜 그 양반 20년만에 본 건데, 느낌이 참 남달랐다.

 

20대에 난 고은이 참 암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고, 뭐 저런 사람이 다 있나 싶었다.

 

시간이 지나니, 그만한 삶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바뀐 건지, 그 양반이 바뀐 건지... 어쩌면 다 바뀐 건지도 모르고, 아니면 세상이 바뀐 건지도 모르겠다.

 

하여간 시간을 훌쩍 넘어, 반갑기도 했고, 대단해 보이기도 했다.

 

나도 나이를 먹으니까, 사랑방 같은 데 편하게 앉아서 객젖은 농담이나 하면서, 그렇게 지내는 게 더 편하지기 시작했다.

 

아주 오래 전에 들은 얘기인데,

 

이 이상한 별에 잘 못 추락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다른 행성에 태어나서 얼마나 불편하겠는가, 그게 마이너들이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라고 들었던 적이 있다.

 

새로운 변화를 직감하고, 외로운 모습을 보이는 야옹구를 보면서, 삶이 가지고 있는 영속성이라는 것에 대한 생각을 잠시 해보았다.

 

 

 

(이 세 사진의 공통점은, 우연하게도 50미리 렌즈로 찍은 사진이라는 것, 300미리와 16미리를 주로 쓰고, 그냥 스냅샷 찍을 때는 30미리를 쓰는데, 공교롭게 전부 50미리로 찍은 사진들이 이렇게 모였다. 아주 나이가 어리거나, 아주 나이가 많거나, 아예 사람이 아니거나...)

'남들은 모르지.. > 명랑이 함께 하기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엄마 앞의 생협  (4) 2012.08.21
강북과 생협의 서열 다툼  (3) 2012.08.21
아기  (54) 2012.08.18
폭우가 내리던 날  (3) 2012.08.16
젖 먹는 아기 고양이  (7) 2012.08.12
Posted by retired
,

 

 

 

 

참 어렵게, 어렵게 아기가 태어났다.

 

옛날 같았으면, 산모나 아기가 다 위험한 상황이었을텐데, 어쨌든 결론적으로 무사하게 태어났다.

 

아이는 어떻게 키울까, 그런 생각을 많이 해보지는 못했다. 그냥 평범하고, 소박하게, 그 이상 깊이 생각해보지는 않았다.

 

날 닮았으면, 열 살이 되자마자 학교 안 간다고 하면서 쌩 난리칠 거고, 결국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수업은 농땡이를 치고 말 거다.

 

원래는 아이가 태어날 때쯤이면, 농촌으로 이사 가고, 뭔가 세상의 복잡한 것을 알기 전까지는 그냥 농부로 살아갈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 여러 가지 복잡한 일들이 생겨서 그렇게 되지는 못했고.

 

하여간 워낙 힘들게 태어나고, 날 때 고생을 많이 해서, 그냥 아프지나 않았으면 좋겠다는 거 말고는 별 생각은 없다.

 

아기와의 첫 대면은 이렇게 지나갔다. 그저 무사하게 살아서 만난 것만으로도, 기뻐서 정신이 없었다.

 

'남들은 모르지.. > 명랑이 함께 하기를!'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강북과 생협의 서열 다툼  (3) 2012.08.21
외로운 야옹구  (15) 2012.08.19
폭우가 내리던 날  (3) 2012.08.16
젖 먹는 아기 고양이  (7) 2012.08.12
고양이들의 여름 나기  (8) 2012.08.07
Posted by retir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