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성장’, 쓰기 시작하다
소설 ‘모피아’ 원고가 내 손에서 떠나간 게 지난 9월이었나, 그랬다. 그 사이에 아이가 집에 오고, 대선이 끝나고, 고양이들 이사가 끝나고… 하여간 여덟 달 만에 다시 책을 쓰기 시작한다. 그 중간에 잠깐 잠깐의 작업은 했지만, 길게 앉아서 책 작업은 하지 못했다. 아기 돌보면서 뭔가 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8월이면 아내가 복직을 한다. 원래는 그냥 내가 앉아서 아기를 보는 게 계획이었는데, 아침방송을 하게 되면서, 뭐… 이것저것 찾아보는데, 영 마땅치가 않다. 어쨌든 그건 그 때 가서, 고민하고… 하여간 시간은 계속 없는데, 잠깐 여유가 생긴 틈을 타서 밀린 일들을 좀 처리하려고 한다.
처음의 생각으로는, ‘시민의 경제’에 대한 얘기를 한 번 정리하고, 그 다음에는 좌파 경제를 한 번 정리하려고 했었다. 시민의 경제는 작년에 나갔고… 그러나 그 다음 얘기는 정리할 기회가 생기지 않았다.
오래 전에 조희연 선생 부탁으로, 대학생들이 읽을 수 있는 경제학 책 하나를 쓰기로 했는데, 이게 영 시점도 마땅치 않고, 무엇보다도 세울 지지대가 어정쩡해서, 몇 번이나 책 완성단계까지 갔다가 못 낸 게 있다. 뭐, 그냥 몇 페이지 더 채워놓고, 마감 땡, 이러면 되는 상황까지 몇 번 갔는데, 영 논리가 한 바퀴 돌지를 않는 거라.
‘88만원 세대’ 때도 그랬고, 하여간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책은, 기획도 어렵고, 마감도 어렵다. 실무에서 생각해보면, 한국에서 농부들 다음으로 책을 안 읽는 사람들이 대학생이니, 어떻게 맞춰도 구성이 어렵다. 물론 그냥 자기계발서 비슷한 것은 이 집단도 책을 읽기는 하는데, 그렇지 않은 건… 영 구성하기가 어렵다.
하여간 4번 정도 책을 썼다가 다 털고 새로 쓰는 작업이, 이 책은 몇 번씩 진행 중이다. 마지막 버전으로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와 ‘따뜻한 성장’을 놓고 끝까지 고민을 하다가, 지난 주에 결국 ‘따뜻한 성장’ 쪽을 택했다.
모피브야 너무 뻔한 것 아니겠는가. 그렇다. 박근혜 용어다. 그냥 그 사람들이 거의 음가 없이 사용하는 용어이다. 이미지도 불투명하지만, 내용은 더더군다나 없다.
그걸, 내 식으로, 경제학에서 알아야 할 기본적인 내용들을 담는 틀로 사용하려고 한다.
꼭 대학생들만을 염두에 두는 건 아니다. 나도 어깨에 힘 빼고 쓸 것이지만, 정말로 경제학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처음 한국 경제라는 문제에 들어왔을 때, 앞에는 무슨 얘기가 있었고, 뭐가 과연 짚어봐야 하는 것인가, 그런 데 좀 도움을 받을 수 있게 짚어볼 생각이다.
지난 대선 끝나고 나도 작은 걸 결심한 게 있다.
할 거면 하고, 말 거면 만다…
대충 모양내기와 폼새로 하는 건, 아예 하지 않고, 하던 거라도 그냥 때우는 거면 세운다… 그리고 기왕 할 거면, 정말로 최선을 다 해서 한다…
‘따뜻한 성장’이라는 제목을 집어 들면서, 그 생각이 들었다.
박근혜의 ‘따뜻한 성장’이 선의라면, 어떤 게 제대로 되는 상황이고, 뭘 짚어봐야 하는 것인가, 그런 생각을 해보려고 한다.
어차피 안 할 거잖아, 마음은 그렇다.
그러나 그런 얘기는 나 말고라도 정치평론가 등 할 사람은 수없이 많다. 박근혜를 믿느냐? 물론 안 믿지. 그렇지만 내용 자체와 믿음 혹은 신뢰와 같은 얘기를 뒤섞지는 않으려고 한다.
그렇게 해보고, 작업에서 별 성과가 없으면? 그럼 그 때 다시 갈아엎어도 늦지 않는다.
과연 우리의 경제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한국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이 질문을 나도 진지하게 던져보려고 한다.
아마 처음이자 마지막일 듯싶은데, 청자는 대학교 1학년, 국문과, 여학생, 그렇게 잡았다. 내 책에는 청자가 있는 경우가 있고, 없는 경우도 있는데, 대부분은 있다. 그리고 청자가 있는 경우, 실제 대상이 있는 경우가 많았다. 고2 혹은 고3 여학생인 경우도 있었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가상의 청자이다. 내가 알던 그 또래의 여학생들은 이미 나이가 많아져서, 대학을 졸업하거나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몇 주 전에 대학교 1학년, 새내기들을 잠시 본 적이 있기는 하지만, 그렇게 잠깐 봐서는 무슨 생각 하는지, 무슨 속사정이 있는지, 알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가상의 청자를 설정하면, 글을 써내려갈 때 좀 도움이 된다.
원래 부탁 받은 건, 운동권 후배들의 입문서 같은 걸로 해달라는 거였는데, 뭐, 그닥…
서로 가슴이 터져나갈 것 같은 답답함을 가지고 책을 쓸 이유도 없고, 그렇게 읽을 이유도 없다.
하여간 여덟 달 만에 책 작업 다시 시작한다. 대선 끝나고 다시는 책 작업을 안하고 싶었는데, 또 시간이 되니, 다시 시작을 하게 된다.
'낸책, 낼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짧은 히로시마 여행 (1) | 2013.05.24 |
---|---|
동물들의 따뜻한 성장, 새로운 출발 (0) | 2013.05.04 |
'아날로그 사랑법' 출간 후기 (2) | 2013.04.25 |
박근혜 시대를 사는 법 (1) | 2013.04.22 |
글의 다음 주제는? (4) | 2013.04.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