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 한 쪽에 딸기 한 종류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막상 본 건 오늘이 처음이다.

 

아마 흔히 뱀딸기라고 부르는, 그런 것 같다.

 

별 것도 아닌 일이지만, 사람이 어디 큰 일, 별 일, 그런 걸 보면서 흥분하거나 기뻐하거나 혹은 분노하거나 그러던가? 사람은 원래 작은 것들에 놀라고, 호들갑을 떠는 그런 존재이다.

 

산다는 게 과연 무엇일까?

 

이렇게 질문하면 너무 무지막지하게 큰 질문처럼 느껴진다.

 

이걸 바꾸어서, 아파트에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렇게 물어보면?

 

아파트에서는 도저히 살 수 없다고, 나와 아내가 이사를 나온지도 어느덧 4년이 되어간다.

 

생각보다 나도 아파트 같이 생긴 형식의 집에 오래 살았다.

 

어느덧 정서적으로 도저히 그걸 받아들일 수 없는 순간이 왔다. 그래서 아파트에서 나왔다.

 

그리고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

 

한동안 잘 몰랐는데, 살아가는 방식이 좀 바뀐 것 같다.

 

생각하는 방식도...

 

 

진짜로는 정말 작은 딸기인데, 접사용 매크로 렌즈로 찍었다. 접사를 즐기는 편은 아닌데, 그냥 들이대는 수밖에.

 

요즘 나는 'FTA 한 스푼'이라는 제목으로, FTA에 관한 책, 거의 최종 클라이막스를 정리하는 중이다. 스케일만큼은 정말 크다. 책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나의 의식 속에서는 한국을 들었다 놨다...

 

그러나 그런 게 다가 아니다.

 

소소한 행복, 사소한 즐거움, 그리고 계산되지 않은 우연, 그런 것들로 삶의 빈 구석들을 즐겁게 만들지 않으면, 남들 다 아는 얘기를 혼자만 모르는 그런 이상한 상황에 빠지게 되는 경우가 많다.

 

 

 

까치 얘기만 하면 적개심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있다.

 

이유야 충분히 있는데, 남들이 미워한다고 자기도 미워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건 이해가 좀 안 가기는 한다.

 

우리 집에 오는 까치는, 고양이 밥을 뺏어먹는다. 물론 지가 먹어봐야 얼마나 먹겠냐...

 

현관문을 나가는데, 후다닥 까치가 도망가서 옆 집 처마에 앉았다.

 

내가 어디론가 가버리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모양새다.

 

하루를 잘게 토막내면,

 

그 토막 중에 얘기치 않은 가벼운 즐거움들이 자리잡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즐거움은, 사실은 마음 속에 있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을 가끔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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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즐거운 일을 찾기가 쉽지 않다.

 

명박 시대라는 좀 이상한 시대를 지내고, 게다가 총선 결과가 나온 이후에, 세상은 좀 더 빡빡한 방향으로 정말 빠르게 변하는 중이다.

 

시대와 같이 호흡을 하려고 생각을 한 다음부터, 즐거운 일들보다는 애잔한 일들이 더 많아졌다.

 

민주노동당 당원을 꽤 긴 세월 동안 했었다. 분당 사태로 가기 전에는 당 간부 비슷한 것도 했었다.

 

분당할 때 탈당하고, 그 후에는 입당을 하지 않았다. 지난 총선 때, 녹색당에 당원으로 가입을 했다.

 

여전히 통합진보당의 많은 사람들이 나의 동료들이고, 또한 친구들이다.

 

생각하면 애잔한데, 지금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별 다른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새로 공안정국이 펼쳐지는 걸, 그냥 지켜보는 중이다.

 

그렇다고 그냥 무기력하게 있는 것도 영 아니다 싶어서, 나름대로는 즐거운 생각도 하고, 마음도 편하게 가질려고 하는 중이다.

 

그러나 마음을 먹는 게, 그렇게 '짠', 나는 슬프지 않아, 나는 힘들지 않아, 그렇게 생각만으로 되는 것이던가.

 

하여간 마음이 편치는 않은데, 고양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고양이들은 늘 편하냐, 그러면 그런 건 아니다. 그들에게도 삶은 고통의 바다인 듯, 그 안에도 어려움과 갈등 그리고 분노가 있다.

 

고양이들이 삶은 사람에 비하면 아주 짧다.

 

그래서 고양이들을 보면서, 행복은 불안한 균형, 이런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된다.

 

 

겨우내 야옹구는 마루 쪽으로는 오려고도 하지 않다가, 벌써 초여름 날씨가 계속되는 이즈음에나 마루 쇼파에 자리를 잡았다.

 

얘는 벌써 4살이다.

 

지난 겨울, 정말 구름 다리 넘어가는 걸, 가까스로 살려서 데려왔다.

 

수술한 자리에 실밥이 몇 가닥, 한참 동안이나 녹지 않고 남아있더니 지난 달에나 겨우 다 녹았다.

 

고양이의 기억력이 6개월 정도라고 하는데, 이제 수술했던 기억은 얼추 잊어버린 것 같다.

 

5달 되었을 때, 길고양이를 입양해서 데리고 온 건데, 그 때는 크면 이렇게 예뻐질지 아무도 몰랐던 것 같다.

 

2년 전까지는 길거리 골목에서, 어쩌면 얘랑 같은 배에서 나온 듯한 고양이 한 마리가 가끔 보이고는 했었다. 이제는 보이지 않는다...

 

 

 

사람이라는 게 늘 같은 생각만 하고, 한결같은 모습을 하면서, 그렇게 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삶은 복잡다난한 것이다.

 

늘 한결 같고, 같은 모습을 보이면, 미쳤거나, 미쳐가는 중이거나, 아니면 남을 미치게 하거나. 그러지 않을까?

 

야옹구를 보면서,

 

과연 내가 보여주고 싶거나, 찾고 싶은 게 무엇인가, 그런 생각을 가끔 하게 된다.

 

길냥이 한 마리를 피사체로, 연출없이 그냥 삶 속에서 본 모습을 이끌어내려고 해보는 중이다.

 

삶의 아름다움, 그건 과연 뭘까, 그런 질문을 던져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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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사진이었다.

 

사진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상황이 특별해서.

 

엄마 고양이는 만삭으로 알고 있다. 이미 두 번의 겨울을 났고, 길고양이 평균의 수명이라면, 아마 이번 겨울을 나기가 어렵거나.

 

2012년 5월, 여러가지로 기억에 남을 것 같은 시간이다.

 

총선은 그야말로 사람들이 맨붕이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참담했고, 그 여파 역시 참담했다.

 

꽤 오랫동안 민주노동당 당원이었는데, 분당할 때 탈당해서 아직 다시 당원 가입을 안 했다.

 

녹색당에 당원 가입을 했는데, 당원으로서 활동을 하지는 않을 생각이다.

 

통합진보당 사태는 점점 더 점입가경이다. 검찰 압수수색이 들어가는데, 이거야 영.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하더니, 올해는 5월이 잔인한 달이다.

 

나에게도 많은 변화가 있다.

 

그래봐야 정말로 개인적인 것들이지만, 생각보다 많은 변화가 있다.

 

지금의 마당은 별로 손을 안댄 것 같지만, 그래도 이만큼이라도 유지할려면, 손톱에 온통 흙이 빠질 새가 없도록 잡초도 뽑아주고, 이것저것 손이 많이 간다.

 

여섯 마리 정도의 고양이가 마당을 근거지로 살아가는데, 어느 정도로 내가 이들의 삶에 개입하는 게 좋을까, 그것도 이것저것 생각할 질문 중의 하나이다.

 

대학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해볼려고 했던 연구가, 고래 연구였다.

 

생태경제학이라고 하지만, 막상 사람들이 상상하는 그런 생태 연구의 필드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울산의 고래 연구를 계기로, 좀 더 고래에 대해서 연구해볼 생각이 있었는데...

 

하여간 그렇게 연구해볼 만한 기회가 생기지는 않았다.

 

이런저런 이유로, 고양이들과 아주 많은 시간을 보낸다.

 

중학교 때 사진반을 했는데, 그 시절에는 사진을 아주 많이 찍었었다.

 

이유는 잘 기억나지 않는데,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사진을 찍다가 카메라를 내려놓았다.

 

대학 시절에는 단 한 장의 사진도 찍지 않았다. 유학시절에는 찍지도, 찍히지도...

 

고양이들과 지내면서 다시 카메라를 집어들게 되었다.

 

별 이유는 없고.

 

지금 사는 집은 전세다. 결국 다시 이사를 가게 되었는데, 지금과 같은 상태의 마당 조건이 되려면, 아마 꽤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이렇게 넓게 있기는 어렵고.

 

이렇게 여유롭게 엄마 고양이가 마당에서 두 번째 아이를 갖고, 그리고 산책하는 모습을, 아주 오랫동안 다시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사진 자체는 큰 의미는 없는데,

 

2012년 5월, 그리고 지금부터 생겨날 변화들, 이런 걸 생각해보면 좀 특별하게 느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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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맛골이라는 데가 있다. 서울 생활 했던 중년들에게는, 약간씩의 추억이 있는 거리일 것이다.

 

이명박, 오세훈의 서울시를 거치면서, 뭐... 결국 뤼미에르라는 빌딩 아래 켠의 작은 소품으로 전락한 작은 통로가 되었다.

 

종로로 이사온 다음에, 아내와 가장 자주 오는 건물이기도 하고, 제일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기도 하다.

 

아내가 활동가이던 시절, 주로 했던 일 중에 피맛골을 지키는 일도 있었다. 그러니까 아내와 나는 연애 시절에, 피맛골에서 술을 마신 게 아니라, 피맛골을 지키는 일을 같이 했었다.

 

참 지키고 싶었던 골목이고, 많은 사람들이 정성을 모으기도 했었는데...

 

조선 시대부터 내려온 이 골목 하나를 우리는 지킬 수가 없었고, 우리의 시대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던 시대였다.

 

어쩌면, 지난 10년, 지는 데 나는 너무 익숙해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뭔가 지키려고 했지만, 정말로 온전히 제 모습을 가지고 버틸 수 있게 하는 게 쉽지가 않았다.

 

지금도 피맛골을 보면, 여전히 가슴 한 구석이 아리다.

 

어떤 기억이 있을까?

 

한 때 금융경제연구소라는 작은 연구소에서 이종태, 홍기빈, 이런 사람들과 같이 복닥거리면서 지냈던 적이 있었다. 이종태, 이 양반과 처음 술을 마셨던 곳이 피맛골이었다. 마지막으로 피맛골에서 술을 마셨던 것은, 이곳이 헐리기로 확정된 후, 아마 공지영 선배와 고갈비를 먹었던 때가 아닌가 싶다.

 

동경에 갔을 때, 그 사람들 표현대로 '오줌 골목'이라는 곳에 가본 적이 있었다. 진짜 조그만 일본식 바에서 아주 색다른 기분을 느꼈던 적이 있었다.

 

도시가 나이를 먹으면서, 예전 것은 없어지고, 새로운 것이 생겨나기는 한다. 그렇지만 서울 한 가운데 있는 종로의 피맛골을 지키지 못했던 것, 그게 우리가 보냈던 2000년대이다. 이 골목에 들어올 때마다, 조선 시대의 애환이 기억나는 게 아니라, 여기에 요렇게 '피맛골'이라는 간판 하나 덜렁 남겨둔 우리의 개발 시대에 대한 생각이 더 많이 든다.

 

생각해보면, 지난 15년, 생태든 문화든, 나는 무엇인가 지키고 보전하기 위해서 젊은 시절을 불태웠던 것 같다. 현장에서 그 싸움을 접고, 은퇴를 생각하는 순간, 나는 중년이 되어 있었다.

 

그 시간 동안, 한국의 보수는 도대체 무엇을 했나, 그런 생각이 잠시 든다.

 

뭐든 부수고, 뭐든 밀고, 뭐든 엎어버리고, 그 와중에 떡고물 챙기고, 부패하고...

 

보수는 무엇인가 지키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아닌가 한다. 도대체 한국의 보수는, 뭘 지키고 보존하겠다는 것인가, 피맛골에 나무로 걸어놓은 명찰을 보면서...

 

저게 한국의 보수가 스스로의 가슴에 달아놓은 명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막 해가 지기 시작한 순간,

 

피맛골에 불이 켜지기 시작한다.

 

조선 시대, 아니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선술을 찾아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을 시간,

 

을씨년스러운 싸구려 보도블록의 차가움이 골목을 스산하게 스쳐간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가,

 

이 골목은 그런 질문을 계속 던지고 있다.

 

시민운동이 피맛골에 해놓은 것은, 저 '피맛골 명찰 하나였던 것 아닌가?

 

명박이 우리에게 남겨놓은 상처, 그게 바로 이 골목에 서 있다.

 

완전히 망해버린 영화 '공포 택시'에 나오는 유령들이 모여서 술 한잔씩 하는 골목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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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날, 옹기종기 모인 고양이들,

참 이것저것 생각 많이 하게 해준다.

 

워낙 비가 어두운 날인데다, 우산들고 쭈그리고 앉아서 사진 찍기가 참...

 

이래저래, 요 몇 장 찍어보는데, 렌즈가 세 개나 동원되었다.

 

위의 사진은 50미리 단렌즈, 풀프레임으로 환산하면 75미리 짜리.

 

아들 고양이 표정도 매력적이고, 혹독하게 상처투성이가 되어 겨울을 났던 검은 고양이도 편안하게 나왔던.

 

컴 바탕화면에 깔아놓게 되었다.

 

 

 

 

요건 캐스퍼가 이런 어두운 날, 삼각대 없이 도저히 셔터 속도를 확보할 수 없어서 들고 나온 18200.

 

뭐, 그냥 무난하기는 하지만, 별 특징없이.

 

옆 집 바라보는 아들 고양이 시선이 재밌어서.

 

 

요건 캐스퍼로 찍은 엄마 고양이.

 

우산 들고 찍었더니, 무지하게 흔들려서 결국 포기.

 

햐, 엄마 고양이 엄청 예쁘게 나올 수 있었던 건데, 망쳤다.

 

 

 

 

세 마리가 쪼르르 비를 피하고 있는 장면.

 

우산 들고 촛점 맞추려다 보니, 생쇼도 이런 생쇼도 없었다.

 

50미리 렌즈 들고 고양이들 앞에 가까이 가서 얼쩡 거렸더니, 검정 고양이가, 아 놔, 더러워서...

 

그냥 비 맞으면서 밖으로 나와 버렸다.

 

미안하다, 미안해, 그리고 나도 사진은 포기했다.

 

이 녀석이, 은근 성질 있다.

 

한동안 여기저기 상처 투성이였고, 눈두덩이도 심하다 싶게 부풀어 올랐는데, 이제 거의 나은 듯 싶다.

 

이마에는 아직 상처가 보이기는 하는데, 걱정할 정도는 아니다 싶다.

 

그래도 얘가 한 밤 중에 산책 나가면, 반갑다고 옆으로 졸졸졸 쫓아다니기도 한다.

 

골목길에서도 종종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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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습 삼아 동영상 찍다가, 웃기는 장면이 걸렸다.

 

캔을 따줬는데, 아들 고양이 혼자 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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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나 드라마를 보다가는 잘 우는데, 언제부터인가 세상 돌아가는 일로 우는 일이 줄었다. 가슴이 삭막해져서 그런지, 아니면 감성이 변한 건지, 하여간 잘 울지는 않게 되었다.

 

총선을 마치고 1시쯤엔가, 개표 방송을 보다가 정말로 서럽게 울었다.

 

뭐, 이유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그렇게 먹먹하게 잠이 들었고, 오전 늦게 일어나서 정신이 좀 들었더니.

 

몇 군데 전화를 하다가, 결국 김어준에게도 하게 되었다.

 

오후에 만났다.

 

용민이 얘기도 하고, 꼼수 운영할 얘기도 좀 듣고, 꼽사리 운영에 관한 얘기도 좀 나누고.

 

그 다음날 늦게, 정동영팀과 정말 늦게까지 수다를 떨었다.

 

초상집에 가서 화투치다보니, 누구 집 초상에 온 건지도 까먹었다는 얘기가 제일 기억에 남는다.

 

"내 탓이다, 내 탓이다", 그 생각이 많이 들었다.

 

 

 

 

국회의원이 되어서 빡빡하게 나올 김종훈 생각하면 머리 한 켠이 욱신욱신하다.

 

이번 총선은 내가 생각하거나 설정해놓았던 미래에 대한 생각이 많은 것을 변하게 하였다.

 

어쨌든, 좋거나 싫거나 내가 하기로 예정했던 일들은 대선까지는 그냥 하려고 한다.

 

토요일 밤, 잠시 나가서 DVD를 빌려오면서 그 옆의 패밀리 마트 사진을 한 장 찍어왔다.

 

지금 쓰는 소설에 사람들이 더 많은 에피소드를 넣기를 바랬던 공간이 바로 이 곳이다.

 

지금은 주인공이 가서 캔커피 하나 던져주고 오는 얘기로 잠시 나오는데,

 

여기를 예를 들면 비밀접선 장소나, 반전이 기획되는 곳처럼 다루면 좋겠다는 의견이 많았다.

 

아직은 특별한 생각은 없지만...

 

이렇게 사진이라도 보면 뭔가 좀 생각이 나올까 해서.

 

총선, 참으로 많은 것을 바꾸게 되었다.

 

어쩌면 바뀌지 않음으로 인해 우리의 미래가 바뀌게 된 것일지도.

 

 

대학에서 다음 학기 수업 안 하느냐고 연락이 왔다.

 

대선 때까지는, 일단은 수업하기는 어렵다고 답을 했다.

 

그 다음은?

 

내년에는 아직 아무 계획도 확정된 것이 없다. 올해까지 쓰기로 한 것들 중 혹시 해를 넘기면 그런 걸 잠시 마무리하는.

 

대학으로 다시 돌아가게 될까?

 

별로, 그럴 것 같지는 않다.

 

어쩌면 나는 너무 멀리 와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명박의 등장 이후, 우리 모두의 미래 역시 너무 먼 곳에 와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의 삶은,

 

아직 어둡다.

 

아직은 더 어두운 곳에서 혹은 더 깜깜한 곳에서, 헤매고 있어야 할 것 같다.

 

밤이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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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 급하게 정동영의 전화를 받고 대치동에 간 적이 있다.

보수신문 쪽의 여론조사 상으로 15%, 많은 경우는 18%까지 벌어진 순간이었다.

물론 그냥 가만 있을 수는 없어서, 몇 가지 의사결정과 대응 프로그램들을 만들었다.

그 중의 하나가, 우리끼리 '병풍 작전'이라고 불렀던,

"병풍 한 번 칩시다..."

어디서?

그야, 당연히 대치동 롯데 백화점 앞에서...

그렇게 해서 소위 병풍 작전이라는 것이 시작되었다.

지금까지 정동영 선거사무실에서 벌어진 토크쇼에 온 사람들 중, 시간 되는 대로,

일단 한 번 해봅시다...

얼마나 큰 병풍을 만들 수 있을지,

그런 의도였다.

 

병풍 중에 잠깐 나와서 한 컷.

마침, 너무 친한 사람들 중심으로... 일부로 이렇게 사진을 찍은 건 아니다.

유종일, 위기의 사나이.

선대인, 쟤는 또 왜 저 중에 들어가 있나.

신언직, 맨날 갈구기만 하다가, 이번에 정말로, 제가 선배 대접 해드리겠습니다, 하게 된 양반.

그리고 강남훈.

이제 와서 하는 얘기지만, 결정적으로, 학부 시절 강남훈 선생의 책을 읽고 나서, 베낭 매고 프랑스로 떠나게 되었었다.

나는 강남훈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병풍 중간.

강남의 장애인 운동 단체에서 나와서 말씀하시는데,

아, 진짜, 잠깐 눈물 나올 나올 뻔 했었다.

새누리당은, 도대체 자기네 절대 점령 지역에서, 왜 이렇게 문제를 풀 노력을 안했던거냐.

힘이라면, 가장 큰 힘을 가진 집단인데 말이다.

선대인 잠깐.

야하, 오늘도, 참 말 길다.

쟤가 그래도,

심성은 참 고운 애다.

 

중간에 갑자기 '써니' 율동이 나와서,

아, 깜딱야...

정동영, 정말로 춤을 췄다.

바로 앞에서 18미리 각도로 잡았는데, 생각보다 잘 추었다.

 정동영,

'써니' 춤 추다가 자기도 모르게 황홀경에.

보통 인간은 아니다.

진짜로, 춤의 박자를,

느낀다...

강남훈 선생.

내가 수 년간 찍은 사진 중에, 가장 많은 사람이 강남훈 선생이다.

정말이다,

난 그처럼 되고 싶어서 유학을 갔고, 공부를 했다.

20대에 내가 기대한 것처럼,

강남훈 선생은 그렇게 엄청난 학자가 되지는 못했다.

그러나,

내가 그처럼 되고 싶어서 공부했다는 게,

부끄럽지는 않은 사람이다.

그와, 특히 많은 집회에 나갔다.

 

오른쪽 기둥 뒤에 타코 집이 하나 있다.

내가 강남 살던 시절, 한 달에 한 두번씩 일부러 가던 타코집이었다.

여기는...

내가 30대를 보냈던 거리이기도 하다.

이 거리에서 이런 상황을 연출할 수 있었다는 것,

난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대선후보급,

누구든 강남을에 나오면 난 최선을 다해서 도와주겠다고,

신문에 냈다.

우여곡절 끝에, 정동영이 왔다.

나도 지금,

명박 시대를 넘어서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중이다.

결과는 모른다.

어쨌든 나도 최선을 다하는 중이다.

명박 시대, 내가 가진 걸 다 꺼낼 수밖에 없게 만든다.

다시는 이런 시대를 맞이하고 싶지 않다.

슬프지 않기 위해서,

나도 춤춘다, 덩더쿵 덩덩.

 

참, 정동영의 입을 통해서 새로운 사실 하나를 알았다. 한홍구 교수가 유진오 박사 손자라는 사실을.

한경구, 한홍구, 형제와 다 같이 일을 했었는데, 미처 몰랐었다.

대한민국 헌법의 기초는 유진오 박사가 만들었다...

(제대로 나온 한홍구 교수 사진이 없다, 제기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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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거 픽쳐스에 출근을 시작한지, 어느덧 4달이 되어간다.

물론 월급도 없고, 아무 것도 없다.

영화사가 원래 그렇다.

촬영 들어가기 전, 영화 기획단계에서는 아무 것도 없다.

물론 나는 안해보던 일이니까, 배우는 것은 많다.

돈 내고 배우라고 해도 돈 낼만큼, 많이 배운다.

이준익, 정말 배울 게 많은 사람이다.

그냥 하는 말은 아니다.

이준익은 최근 고전 중이다.

은퇴를 선언하고, 계속 쉬는 중이다.

그의 복귀작을 준비하고, 장기 계획도 세우고, 그런 게 우리가 하는 일이다.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본 걸로는, 그는 지금 슬럼프에 빠져 있고, 우리 모두 슬럼프를 겪는 중이다.

연패 중인 팀은 점수를 리드하고 있어도 불안하고, 에러가 한 번이라도 생기면...

분위기 확 가라앉고, 결국 진다.

LG가 이런 게임이 아주 많다.

지금 우리가, 딱 그렇다.

4달 동안 지켜본 바로는, 당분간 금방 영화촬영에 들어가기가 어려울 듯 싶다.

지난 달까지만 해도, 나도 빨리 들어가야 한다는 입장이었는데, 요 며칠 사이에 생각이 좀 바뀌었다.

기왕 쉬는 김에, 장기계획도 좀 세우고,

정말 무엇을 할 것인가, 그런 것을 탑재해서,

'이준익 2기'라는 새로운 것을 열 정도로 해야 한다...

고 생각이 바뀌었다.

물론 이게, 타이거 픽쳐스에 속한 사람들에게는, 고통을 더욱 크게 만든다.

빚내서 살고 있는 사람들... 영화라는 데가 현재로서는 그렇다.

이준익 2기라는 건 뭘까?

이건 며칠 전부터 내가 가지게 된 새로운 질문이다.

다른 얘기? 다른 철학? 다른 시선?

이제 사극은 그만하고 현대극?

몇 가지 질문들을 던져보면서, 이준익이라는 상품을 어떻게 파는 게 좋을지,

이건 경제학자인 내 입장으로서 해보는 질문이다.

이런 질문 앞에서는, 나는 전공으로 돌아와, 일종의 프로모터 같은 방식으로 생각을 한다.

좋은 건지, 아닌 건지 모르겠지만, 나는 자꾸 체계화시키고 프레임을 짜는 걸 좋아한다.

가끔은 있지도 않은 걸 가지고 자꾸 뭘 설계하려고 해서 문제이기도 하지만...

이건 내 개인적인 특성이기는 한데,

난 내가 맨 앞에 혼자 서 있는 걸 싫어하고, 누군가가 앞에 있고, 그걸 도울 때가 더 편하다.

나꼽살에서도, 선대인을 앞에 내세우고, 나는 보조 역할을 하려고 하는 게,

내가 원래 그렇게 살아왔다.

하여간 지금 이준익이라는 상품이 내 손에 있다.

이걸 어떻게 팔아야 하나, 그런 질문들을 요즘 던져본다.

얼마 전에 자빠진 오토바이 얘기, 그걸 다시 한 번 원점에서 재검토를 해보려고 한다.

지금 이준익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오토바이이다.

오토바이와 생태, 그걸 연결하는 작업을 한 번 해보려고 한다.

오토바이는 이준익이 무의식 속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건,

생태는 이준익이 한 번도 얘기해보지 않은 것.

아내가 임신 중이 아니라면 벌써 같이 지리산에 내려가서, 오토바이 시인 이원규와 많은 얘기들을 나누었을 것 같은데, 지금 나는 그렇게 움직일 수 있는 형편이 아니다.

하여간 나도...

새로운 질문 앞에 간만에 서보게 되었다.

짜릿한 경험이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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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을, 벽 앞에 선 느낌

 

은마, 미도, 이런 곳이 내 삶과 멀지는 않다.

보수신문 기자들이 하도 나보러 강남좌파라고 그래서, 종로로 이사온 게 3년 전이다.

경향신문 연재 중에, 강남을에 대권 주자 중의 한 명이 나가면 그래도 해볼만할 거라고 쓴 적이 있다.

고심 중이던 정동영이 그 글을 보고, 결국 강남을로 출마했다.

 

이래저래, 강남을과 인연을 맺게 되었고, 결국 나는 정동영을 사지로 몰아넣은 사람이 되었다.

지지율 차이가 10% 너머로 벌어지게 되면서, 좀 도와달라는 전화를 받고, 부랴부랴 다시 대치동으로 갔다.  

 

신호를 기다리면서 잠시, 은마 아파트.

작년에 은마 아파트를 소제로 한 <모래>라는 다큐를 추천한 적이 있다. DMZ 영화제에서 수상을 했다, 지긋지긋한 은마의 얘기.

나꼽살 초반기, 거의 유일한 유행어가 선대인이 얘기한 '언마' 아파트, 그게 바로 이 은마이다.

 

처음부터 부실 아파트였던 은마, 여기에 강남의 욕망이 녹아있다.

지금 한참 논쟁 중인 개포 재개발단지도 보통 아니지만, 상징성만으로는 한국의 아파트 중에 은마만한 곳이 없다.

사진에 보이는 은마 종합상가, 강남 살던 시절, 가끔 밑반찬 사러 아내와 오던 곳이기도 하다.

여기 떡집이 아주 유명하다.

재건축되면 사라질 곳.

은마아파트 바로 길 건너 편에 정동영 선거 사무실이 있다.

강남에서 가치 논쟁을 한다...

어쩌면 우리는 불가능한 꿈을 꾸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정동영이 나보러 강남을에 출마하면 어떠냐고 했다.

이 아저씨가,

농담 하시나.

나도 입생 로랑 양복을 입고 다니던 시절이 있기는 했다.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는 싶지 않다.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을 달고 다니던 시절.

강남은 나에게 그런 기억이다.

사람들 눈을 의식해야 하고,

내가 빨갱이라는 사실을 조금이라도 숨겨야 하고.

 

회의를 끝내고 선거사무실에서 나오자,

바로 눈앞에 띄는 미도.

아름다운 도시,

강남개발의 신화를 달고 있는 아파트 이름.

너무나도 익숙했던 그 욕망의 한 가운데, 다시 서게 되었다.

수서에서 다리 하나 건너면, 그곳이 내가 오랬동안 살던 곳이었다.

그 시절, 참 자주 지나다니던 곳.

교보문고에 가기 위해서 늘 이 길을 지나다니고는 했다.

 

 

정동영 선거 사무실에서 문을 나서자마자,

오른 쪽으로 눈을 돌리면...

요즘은 타팰이라고 부르는, 타워 팰리스가 서 있다.

이곳 팬트하우스에 분양을 받은 사람을 알고 있다.

지금도 사는 지는 모르겠지만, 한 때는 나와 동료였다.

지난 가을에 낸 책에, 인터뷰를 했던 어떤 사나이가 아직도 이곳에 살고 있다.

문득, 벽 앞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어제 본 정동영...

일주일이면, 이 사나이의 정치적 운명이 갈린다.

강남을,

압구정 현대아파트를 축으로 하는 강남갑과는 또 다른 기기묘묘한 욕망의 사거리.

대한민국 2000년대 욕망의 축이라면,

단연 이곳이다.

대치동을 축으로 하는 학원의 거리,

은마아파트로 대변되는 재건축의 거리,

이게 지금 이 사나이를 가운데 놓고 한바탕,

가치의 용광로 속으로.

 

나는 거대한 벽 하나를 보고 온 듯한 느낌.

불과 몇 년 전까지, 내가 살던 곳이다.

그 한 가운데에서 절대로 나오지 않는 사람들과,

이게 세상의 진짜 모습이 아니라고 말하려고 하는 사람들,

대치동 사거리에서

벽과 벽이 맞부딪히는 중이다.

처음으로 진지하게,

하버마스가 말했던,

소통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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