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문

영화 이야기 2012. 6. 15. 13:16

 

Posted by retired
,

 

 

아들 고양이는 '바보 삼촌'이라는 새로운 별명을 가지게 되었다.

 

덩치는 엄마보다 더 큰데, 새로 아기 고양이들이 태어나게 되면서, 동생도 아니고 삼촌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가 되었다.

 

그래도 얘가 참 순박하다. 새끼 뻘인 동생들과 잘 지내고, 밥도 잘 양보한다. 틈틈히 핥아주기도 하고.

 

요즘은 형제들이 줄어서 그런 일이 잘 없지만, 어느 집에나 바보 삼촌에 대한 얘기들이 있었다.

 

얘가 딱 그 바보 삼촌의 이미지이다.

 

벌써 분가해서 자기 삶을 꾸렸을 나이인데, 여전히 엄마와 지내면서 새로운 동생들과 잘 지내는...

 

 

엄마 고양이는, 참 예쁘다. 그리고 지혜롭다.

 

어느 어미가 새끼를 키우면서 지혜롭지 않겠느냐마는, 고양이의 세계에서도 어쩔 수 없이 새끼를 버리고 도망가는 어미가 종종 있다.

 

집 마당이, 내가 개입해서 누군 살고, 누군 살지 말고, 그럴 수 있는 게 아니라서 자기들끼리 질서를 잡아나간다.

 

가두어놓고 키우는 게 아니라서, 갑자기 쎈 고양이들이 지금 사는 녀석들을 밀어내고 자기들이 터를 잡을 수도 있다.

 

처음에는 삼색 고양이 모녀가 살고 있었는데, 지금의 고양이들도 그렇게 먼저 있는 녀석들을 밀어내고 자리를 잡은 것이다.

 

시간과 여건이 허락하는 한, 지금의 엄마 고양이와 이 가족들을 오랫동안 보살피려고 한다.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새끼들이 이제 슬슬 움직이기 시작한다.

 

나도 아직 전부 모인 걸 보지는 못했는데, 지금까지 본 건 4마리이다.

 

작년에는 세 마리가 났다가, 결국 가을까지 버틴 건, 지금 바보 삼촌이라고 부르는 녀석 한 마리이다.

 

그때까지는 뜨문뜨문 먹이를 주다가, 먼저 떠난 두 마리가 너무 가슴 아파서, 겨울이라도 날 수 있게 해주자고 한 게 지금처럼 다시 대가족이 된 것이다.

 

 

멘붕이라고 부르는 삼색 고양이가 한 마리 더 있는데, 어제, 오늘은 보이지 않았다.

 

새끼 고양이들이 워낙 약해서, 잠시만 눈에 안 보이면 겁이 덜컥 나기도 한다.

 

엄마 고양이가 어련히 잘 알아서 챙기겠나 싶다가도, 새끼 때는 워낙 약하니까.

 

생각 같아서는 예방 접종도 다 맞춰주고, 그렇게 하고 싶은데, 괜히 잡는다고 지내는 걸 힘들 게 했다가 무슨 일이 벌어질지 잘 몰라서.

 

 

 

 

 

엄마 고양이와 아들 고양이.

 

이제는 아들 고양이 덩치가 더 크다. 별 의미는 없는 사진이지만, 뒷뜰에서 해질 무렵이라, 왠지 느낌이 있게 나왔다.

 

갑자기 내 생각이 났다.

 

나는 장남으로 살아왔고, 어머니와는 대체적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했었다.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아마도 내가 아는 한에서, 우리 집에서는 내가 처음으로 태어난 좌파였고, 그래서 난 늘 우리 집을 위태롭게 하는 존재로 인식되었다.

 

 

 

 

햐, 정말 귀엽다.

 

노란 고양이 두 마리는 이름을 붙여주었는데, 지금 같아서는 누가 누군지, 도저히 모르겠다.

 

알 듯 싶었는데, 막상 이렇게 보면 정말 모르겠다.

 

 

 

하여간 요렇게 발발거리고 돌아다니는 녀석이 현충일날 태어났다고 해서 현충이라고 부르는 그 녀석인 것 같기는 하다.

 

자기도 먹어야겠다고, 얼굴 들이민다.

 

똑같이 나온 녀석들이라도 발육 상태가 다 같은 건 아니다. 벌써 캔과 같은 습식 사료 정도는 먹는 녀석이 있고, 아직도 밖으로 잘 못 나오는 녀석도 있고.

 

 

진짜 열심히 먹는다.

 

어쩌면 녀석에게는 이건 생존이 걸린 문제일 수도 있다.

 

일요일 오후, 야옹구까지, 고양이 여섯 마리가 전부 자고 있었다. 오후에 잠시 외출을 했던 아내도 낮잠을 자고.

 

나 빼고는 이 집의 모든 존재들이 자고 있었다.

 

평온이라는 단어를 잠시 떠올렸다.

 

모든 평온은 일시적인 것인지도 모른다. 삶이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헤쳐나가야 할 난관의 연속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잠시의 평온과 잠시의 행복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살면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그런 걸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우린 너무 많은 걸 부여잡으려고 한다.

 

그냥 흘러가게 내버려두는 것, 그런 잠시의 평온에 대해서 좀 생각을 해봤다.

 

 

 

 

 

 

Posted by retired
,

 

 

어제 새끼 한 마리를 더 봤다.

 

결국 오늘은 얘네들 보통 지내는 광에 가서 확인을 해봤는데,

 

최종적으로 세 마리.

 

 

 

아, 이거 고민 생겼다.

 

삼색 고양이는 멘붕, 한 마리는 현충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세 번째 고양이는 강북이라고 부를까 하는데...

 

뭐, 완전 똑같아서 구분할 방법이 없다.

 

여러 사진 같다놓고 한참 판독을 했는데, 좀 더 시간이 지나면 모르겠는데, 지금으로서는...

 

하여간 귀엽기는 엄청 귀엽다.

 

'남들은 모르지.. > 야옹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랑 고양이들  (3) 2013.06.18
이제는 어느덧 적응한...  (14) 2013.05.23
아들 고양이 몸 단장 중  (1) 2012.05.27
쇼퍄 야옹구  (8) 2012.05.24
2012년 5월, 엄마 고양이  (3) 2012.05.22
Posted by retired
,

퇴행이 아닌 선택

 

퇴행(regression)이라는 단어가 있다. 나이를 뒤로 먹는다는 말로 표현할까? 하여간 무엇인가 도저히 어쩔 수 없는 것을 만났을 때, 이런 퇴행을 겪게 될 수 있다.

 

총선은 아마 많은 사람에게 충격이었을 것이다. 나에게도 그렇다. 견디기 힘들었고, 미래에 대한 예상 자체가 고통스러웠다.

 

총선의 결과를 보고 제일 먼저 한 게, 대선 때까지 술을 끊기로 한 것이다. 맨 정신에 이 일들을 보는 게 힘들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맨 정신이 아닌 상황에서 이 일들을 겪는 건 더 싫었다.

 

어떤 사람들은 멘붕이라는 표현을 쓴다. 이 말을 제일 적극적으로 쓴 사람은 김용민이었다. 그는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좋든 싫든, 나 역시 그와 가장 가까이에서 그가 겪던 상황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을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었다.

 

나쁜 일은 그렇게 간단히 끝나지는 않는다. 이정희에서 이석기에 이르기까지, 진짜 기막힌 타이밍이다. 누가 그렇게 일부러 시간을 맞춘다고 해도 쉽지 않을 정도로

 

그냥 버티고 갈 때까지 갈 거라는 예상이야 누구나 할 수 있던 거였고, 역시 또 일은 그냥 그렇게 갔고,

 

금융 위기에 대해서 퍼펙트 스톰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거야말로 퍼펙트 스톰 아닌가 싶다.

 

솔직히, 아무 것도 안 하고 싶다. 아무 말도 안하고 싶고, 아무도 안 만나고 싶고, 다 귀찮다이게 솔직한 심경이다.

 

뭐라도 분석을 하고, 데이터표라도 들여다 보고 있으면 뭐하나,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인간이라는 게, 원래 그렇게 강한 존재가 아니니, 여기까지야 어쩔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한 발만 더 나가면, 그때부터는 퇴행이다.

 

그 선이 애매하기는 한데, 멘붕을 거쳐 원상태 혹은 다른 또 어떤 상태로 진화하는 방식이 있고, 그냥 퇴행으로 가는 방식이 또 하나 있을 법 싶다.

 

이게 참 애매하다. ‘승화(sublimation)’라고 부르는 것과 퇴행이라고 부르는 것이, 정확한 경계가 있을까? 이런 답답함을 예술과 같은 창작이나 창조적 힘으로 전환시키는 것은 승화라고 부르는데, 그것과 퇴행 사이의 경계가 좀 애매하기는 하다.

 

하긴, 이 모든 것들의 기준이 되는 궁극의 답이라는 게 존재할 리가 없으니 말이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는 그 궁극의 답은

 

42라고 했다.

 

42? 알 게 뭐냐. 영문 소설명의 글자수를 다 더하면 42개가 된다는 얘기가 있지만, 그런 건 아닌 듯싶고.

 

어쨌든 현실에서 도망쳐 회피하고 싶은 일탈의 경계선이 어딘가, 그런 질문이 문득 들었다.

 

이 모든 게 김제남 손에 달려있다는데, 이거야 참.

 

김제남 마지막으로 본 게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아예 사람을 몰라야지, 너무 뻔하게 아는 김제남의 손에 달려 있다니, 그 사실을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힘들다.

 

혹시 핸펀에 김제남 총장 전화번호가 있나, 검색해봤더니, 이런 된장김종남 총장 전번이 나온다. 김제남, 김종남, , 내가 이런 ㄱㅈㄴ, 요런 이름의 머리글자를 가지신 분들과 같이 일을 했었구나요런 쓸 데 없는 생각을 하는 것도 일탈인가 싶다.

 

하여간 기막힌 타이밍으로, 모든 일은 기똥차게 꼬였다. 이젠 멘붕을 넘엉서, 일탈의 경계가 어딘가, 그런 걸 고민할 수밖에 없는.

 

Posted by retired
,

 

현충일, 드디어 새로 태어난 새끼들을 만나게 되었다.

 

난 가장이라는 생각 자체를 별로 해본 적도 없고, 그런 식으로는 생각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가 밥을 하거나 밥을 주어야 하는 존재들은 계속해서 늘어간다.

 

이미 새끼들이 태어났을 거라고는 생각을 했는데, 굳이 찾아나서지는 않았다. 그러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엄마 고양이가 갑자기 바짝 말라서 나타난 걸 본 건 며칠 전이다.

 

그렇다고 찾아 나서지 않은 것은... 내가 본다고 해서, 더 도와줄 수 있는 것도 없고, 오히려 불편하게 할 뿐이다.

 

작년에 태어난 녀석들은 장마철 내내 마루 앞의 화단에서 울어댔었다.

 

지금 아들 고양이라고 부르는 녀석이 혼자 가을까지 살아남았다.

 

 

 

 

이 녀석에게는 현충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현중일날 처음 봐서 그렇다. 생일이 현충일인 셈이다.

 

어쨌든 첫 외출이었을 것 같다.

 

부랴부랴 뛰어가서 캔을 뜯어주었는데, 다 큰 녀석들이 먼저 먹어버리고 녀석에게는 찌그러기가 차례가 갔다.

 

우유를 갖다 줘야 하나, 뭘 줘야 하나 잠시 고민하는 사이,

 

캔에 낼름 달려둘어, 캔을 엎어버렸다.

 

그리고는...

 

이제 겨우 눈을 뜨고, 엄마 젖도 아직 다 떼지 않았을텐데.

 

 

누가 따로 가르켜주지 않아도 알아서 잘 먹는다.

 

자세히 확인해보지는 않았는데 - 사실 확인할 길도 별로 없지만 - 수컷이 아닐까 싶다.

 

아마 아빠는, 역시 마당에서 살고 있는, 내가 검둥이라고 부르는 녀석일 거다.

 

얘가 수컷이 아니면, 아주 계산 복잡해진다.

 

 

 

현충, 그 이름은 복합적이고, 중의적이다.

 

막상 그렇게 부르기로 하고 나니, 이미지와도 나름 어울리는 것 같다.

 

 

그리고 두 번째 녀석.

 

얘는 삼색 고양이, 볼 거 없이 암컷이다.

 

사람들이 멘붕을 호소하는 시기에 태어났다는 의미에서, 멘붕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3년 전인가, 이 마당에서 삼색 고양이 모녀가 잠시 살았던 적이 있었다.

 

 

 

 

이것저것 생각할 틈도 없이, 얘는 그냥 성묘용 사료를 먹기 시작한다.

 

아빠가 한 덩치 하는 범상치 않은 녀석이었는데, 역시 강하다...

 

그리고 엄청 귀엽다.

 

 

이 가족의 족보가 좀 복잡하기는 한데...

 

어쨌든 엄마와 삼남매라고 해야 하나?

 

이제는 엄마보다 덩치가 더 커진 아들 고양이. 벌써 분가해서 나가는 게 일반적이기는 한데, 어쨌든 이렇게 한 가족이 되었다.

 

이사가는 날이 정확하게 정해지지는 않았는데, 가을이 끝나갈 때나 겨울이 시작될 때, 이사를 가게 된다.

 

몇 마리가 되든, 그 때까지 같이 사는 녀석들을 데리고 가려고 한다.

 

그 때까지는 지네들 살고 싶은 대로 살게 내버려두고.

 

중성화 수술에 대해서는 좀 복잡한 생각이 있는데, 어쨌든 이 경우에는 별로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중성화수술을 시켜주고, 퇴원하면서 이사갈 집으로 데리고 가기로 했다.

 

이사가는 집은 지금 집에서 2킬로미터 약간 안되는 거리이지만, 고양이들이 알아서 찾아올 수 있는 거리는 아니고.

 

 

 

 

 

멘붕이라고 부르기로 한 새끼 고양이, 진짜 귀엽다.

 

두 마리 다 예방접종도 시켜주면 좋겠는데, 그건 별로 방법이 없다.

 

광견병도 문제겠지만, 철마다 고양이들 사이에서 유행병이 돌기도 한다. 예방주사 외에는 약이 없는 경우도 꽤 있는 걸로 안다.

 

 

엄마에게 달려가는 현충과 멘붕,

 

진짜 눈물 날 듯하게 감동적이었다.

 

삶이라는 것이 얼마나 귀중한 것이고, 다 소중한 것인가, 그런 생각을 어찌 안할 수 있겠는가?

 

 

새끼 고양이들이 마당에서 쉬고 있다.

 

쉽게 보기 어려운 장면이고, 또 쉽게 포착하기도 어려운 장면이다.

 

녀석들이 삶의 주인이 되어서 신나게 뛰어다니는 시간이 오래지 않아 올 것이다.

 

고양이들의 시간은 사람보다 짧다. 압축해서 시간을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을...

 

그래서 또 떠나보낼 때의 아픔도 있다.

 

처음 키웠던 엄마 고양이 생각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두 번의 새끼를 낫고, 겨울이 다 끝나가던 어느 날, 쥐약을 먹고 현관 앞에 쓰러졌다.

 

그 때는 정말 많이 울었었다.

 

내가 집을 나왔던 것이 거의 그즈음이었다.

 

 

 

삼색 고양이는, 엄청 귀엽다. 그리고 놀랍도록 씩씩하다.

 

나에게도 이렇게 어렸던 시절이 있었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녀석을 보자마자 멘붕이라는 이름이 떠오른 것은, 도움이 될지 안될지 모르지만, 지금 멘붕을 호소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보낼 수 있는 작은 위로라는 생각이 들어서.

 

고양이는 금방 자란다. 가을이면 벌써 새끼 티를 벗고, 겨울이면 적어도 겉모습으로는 성묘와 구분하기가 어려워진다.

 

 

 

어쩌면 아직 만나지 못한 새끼 고양이가 한 마리쯤 더 있을지도 모른다. 아직 걸어다니기 어려울 정도로...

 

엄마와 두 마리의 아기 고양이,

 

이 사진은 좀 공을 들여서 찍었다. 이런 모습을 살면서 몇 번이나 만나게 되겠는가.

 

막상 '명박 시대'를 제목으로 포토 에세이를 준비한다고 한 다음부터, 모티브를 찾지 못해서 몇 달 동안 좀 애먹고 있었다.

 

아내는 8월이 출산 예정이다.

 

아직까지는 출근을 하는 중이고, 바깥에서 식사를 잘 못해서 매일은 못하지만, 거의 매일 저녁을 준비하는 중이다.

 

원래 계획으로는, 요 맘때쯤 어떻게든 부탁을 해서 원자력 발전소 내부의 사진들도 좀 찍고, 화력 발전소의 발전기들도 좀 찍고, 그럴 예정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꼼짝을 하기가 어렵다.

 

낮에 움직여서 아파트 재건축 현장 같은 데라도 좀 찍을 수는 있는데, fta 책 등, 그야말로 나도 일정에 쫓겨서 그렇게 하기도 어렵다.

 

작년까지는 출장도 많이 다니고, 특히 거의 매주 지방의 현장에 갈 일이 있었는데, 딱 포토 에세이를 준비하려고 하는 올해는...

 

뭐, 삶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삶이 매일매일 이렇게 축하할 일로 가득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너무 오랫동안 우리는 뭔가 증오하거나 저주하거나, 미워하면서 그렇게 시대를 인식했는지도 모른다.

 

지칠 법도 하다.

 

오늘은 하루 종일, 새로운 탄생에 대해서 축하를 하면서, 미래를 기원하면서 보낼 수 있었다.

 

 

Posted by retired
,

 

 

애기똥풀이 한참 피어있다. 노란색이 워낙 많아서, 안하던 짓을 해보았다.

 

삶이라는 것은, 그냥 아름답거나, 그냥 추한 것만은 아니다. 모든 것은 복합적이고, 다면적이다.

 

그 속에서 한 가지 속성을 드러내는 일, 그게 학자들이 주로 하는 일이다.

 

요즘 송도 신도시와 새로 분양되는 보금자리 주택에 대한 생각을 좀 많이 하는 편이다.

 

아파트 분양할 때, 이것저것 사기치는 얘기들을 업자들이 많이 한다.

 

그 최고의 결정판, 어떻게 보면 한국판 디버블링의 클라이막스에 송도 신도시가 있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나는 해운대가 그 클라이막스가 될 거라는 생각을 계속 했었는데, 송도에서 벌어지는 사기극에 비하면 해운대는 아무 것도 아니다.

 

일단 10년만 참고 견디면, 송도가 분당도 되고, 일산도 된다는데...

 

요코하마에 가보지 않았다면, 뭐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요코하마의 크고 작은 신도시를 채우기 위해서 요코하마가 했던 눈물나는 노력들.

 

그런 뉴스들을 모아서 계속해서 추이를 보고, 가격 지표 같은 것을 찾아보고, 유사한 다른 나라의 도시들에 대해서 점검을 하고...

 

그리고 내 생각을 정한다. 그리고 다른 뉴스가 있으면 다시 업데이트 하고.

 

송도 얘기하는 사람들에게, 속으로 해주고 싶은 얘기가... 목동을 보라. 목동 아파트 가격 내려가는 것이, 그보다 열등지인 다른 모든 아파트들의 미래가 아니겠나 싶다.

 

동경에서 얼마 전부터 은행에서 그냥 살기면 하면 지원금을 주기 시작한다고 들었다.

 

스톡으로 은행에서 붙잡고 있는 집들은 사람이 안 살면 금방 황폐해진다. 달리 스톡을 처분할 길도 없고, 그렇다고 가까운 시간 내에 대대적인 정책이 나올 가능성도 없고.

 

결국 은행에서, 큰 돈은 아니더라도 그냥 살아주기만 해도 돈을 주는 순간이 오게 되었다. 동경에서 본 게 그런 거다.

 

송도, 정말 택도 없는 얘기이다. 평당 가격으로 비교해보든, 거리로 비교해보든, 성공했다고 치고 단지가 살만한 순간이 되는 시간을 놓고 봐도, 택도 없는 가격이다. 밑바닥을 쳤다고 업자들이 말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택도 없다.

 

그렇지만 다만 가격을 놓고 송도의 업자 마케팅이 한국 버블의 클라이막스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10년을 잊고 지내면..."

 

사람이 살아야 얼마나 살겠는가. 삶에서 10년은 그냥 처박아놓고 버릴 수 있는 시간이 아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고양이들을 본다.

 

엄마 고양이는 벌써 나와 두 번의 겨울을 같이 났다.

 

평균적 길고양이의 수명으로 치면, 아무리 내가 애지중지 키우더라도, 이번 겨울을 나기가 확률적으로 어렵다.

 

가을이 되면, 아들 고양이와 엄마 고양이, 중성화수술을 해주고, 새로 이사가는 집으로 데리고 갈까, 고민이 많다.

 

엄마 고양이는, 이번 여름과 이번 가을이, 어쩌면 살아서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일지도 모른다.

 

아파트 투기를 위해서 인생의 10년을 포기하라...

 

이 정도면 이제 업자들의 투기 충동질이 거의 막장까지 온 거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래서 테제 하나를 바꿨다.

 

한국의 디버블링은 해운대에서 시작한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아마 송도에서 시작하게 될 것 같다...

 

이런 계산을 막 하고 있다가 엄마 고양이를 보았다.

 

생명의 아름다움, 삶의 존귀함,

 

그런 얘기를 혹시라도 송도에 가서 10년을 참고 버티면 뭔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었다.

 

길고양이 한 마리라도 보살피다보면, 투기꾼들이 말하는 시간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배울 수 있을 듯 싶다.

 

 

고양이가 웃는다.

 

그 웃음은 나에게 평온을 준다.

 

송도의 10년, 그건 아무에게도 어떤 평온도 주지 못한다.

 

송도의 평당 1,200, 길고양이 한 마리 만큼의 가치도 없는 수치이다. 나는 그렇게 이해를 했다.

Posted by retired
,

 

 

잠자꽃이 드디어 꽃잎을 말아올렸다.

 

끛으로 치면 아무 것도 아니지만, 나는 감자꽃을 좋아한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괜히 몽환적인 느낌을 받는다.

 

감자에 조금이라도 더 영양분이 가라고, 감자꽃은 많은 경우 떼어낸다. 꽃이 열려야 뭔가 열리는 다른 과일들과는 다른 대접이다.

 

그래도 나는 좋아한다.

 

좋은 데 이유가 있겠나.

 

 

자주 달개비가 꽃잎을 벌리기 시작한다.

 

동글동글 말려 있는 꽃잎을 보며, 긴장감이 팽팽함을 느낀다.

 

사람으로 치면 18세? 19세?

 

마치 온 우주가 이 꽃잎이 펼쳐지기만을 지켜보고 있는 듯한 팽팽한 순간이다.

 

아름다움에 대한 생각을, 요즘 그 어느 때보다 많이 한다.

 

아름다움은 마음 속에 있는 것, 그런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보면, 아무 것도 아닌 멀대에 작은 몽울 하나 맺혀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참 예쁘다.

 

문득, 한국의 19세, 그런 생각이 잠시 들었다.

 

막 펼쳐지려는 꽃망울,

 

그 순간은 짧다.

Posted by retired
,

 

어제 몽우리가 맺히더니, 오늘 드디어 감자가 꽃을 피웠다. 올해는 봄에 정신이 없어서 감자를 아주 늦게 심었다. 이렇게 늦어도 뭐가 날까 싶었는데, 그래도 꽃이 났다.

 

총선 이후, 괴롭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고, 매일 같이 아무 것도 하기 싫다는 마음을 억지로 누르면서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살면서 별나게 즐거운 일이 뭐가 있을 게 있겠나. 이제는 어지간히 즐거운 일에도 별로 반응하지 않고, 또 왜만큼 실망스러운 일에도 크게 마음이 움직이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평상심을 잘 유지하느냐그런 건 아니고, 그냥 사람이 무뎌가는 중인 듯 싶다.

 

요즘은 박근혜 세상이다. Kbs 라디오를 자주 듣는데, 요즘 동구밭 과수원길, 뭐 이런 노래도 나오고, 목화밭도 나온다. 70년대 복고풍이라고 하기에는, 정말 복고스러운. 박근혜와 같이 살아갈 세상이 어떤 것인지 미리 보여주는 듯하기도 하다.

 

지난 6개월간은 정말 fta와 같이 살아왔고, 하루의 대부분을 fta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보냈다.

 

발효는 이미 했고, 한중 fta, 한일 fta, 연일 난리이다.

 

그 와중에 모든 일정을 뒤로 미루어놓고 fta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게, 이게 생각보다 어렵다.

 

그래도 누군가는 얘기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붙잡고는 있는데, 흥이 막 나서 신이 나는 그런 상황이 아닌 건 당연하지 않은가?

 

원래 꽃 사진도 잘 안 찍고, 접사도 별로 즐기는 편은 아니다. 올 봄에는, 꽃 사진을 아주 많이 찍었고, 안 하던 접사도 많이 했다.

 

작은 것에서라도 기쁨을 찾거나, 아름다움을 찾지 않으면, 지금 어떻게 버티면서 계속해서 조금씩이라도 앞으로 나갈 수 있겠나, 그런 거 아니었나 싶다.

 

마당에 감자꽃이 피는 날, ‘fta 한 스푼본문을 끝냈다. 잠시 머리 좀 돌리고, 에필로그를 마치고 나면 지난 겨울부터 끌어온 fta 책은 내 손을 떠나간다. 물론 뒤쪽에서 생각이 좀 바뀐 것들이 많아서, 앞 쪽 내용들에 튜닝을 좀 해야하기 때문에, 당장 원고 작업이 끝나는 건 아니다.

 

한참 진행 중인 사안에 대해서 책을 쓰는 것은, 변화하는 상황을 계속해서 보고, 출간된 시점에서의 상황 그리고 그 후의 6개월, 1년 후도 조금씩은 생각을 해야 하기 때문에, 특히 머리가 아프다.

 

Fta 같은 경우는, 급격하게 사회적 힘이 빠지고, 패배와 좌절감 그리고 그 후에 몰려오는 아른한 듯한 피곤함, 그런 것들 앞에 서 있어야 하는 것이 특별히 힘든 경우였다.

 

총선은, 졌다. 그리고 총선의 패배 이후로, 소위 해석투쟁이라고들 하는데, 중 정치인들은 한미 fta를 전면에 내걸었던 것을 패배 이유로 찾는 것 같다. 별로 그런 것 같아 보이지는 않지만... 지금 얘기를 한다고 해서, 뭐 특별하게 할 얘기가 있지도 않고, 서로 명예롭게 논쟁을 이끌어나갈 듯 싶지도 않아, 그냥 입 다물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는 통합진보당 사태가 생겼다.

 

정치적으로 여러 가지 의미가 있겠지만, 어쨌든 fta 싸움의 한 영역을 맡아주던 곳이, 그렇게 그냥 무너져 내려갔다. 그 사람들, 지금 fta 고민할 정신은 없을 거다.

 

가만히는 있지만, 참 힘들다.

 

그렇다고 엄청난 한 방이 있어서사실 그런 것도 아니다. 틀을 바꾸고, 프레임을 바꾸어서 다른 해석을 해볼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나라고 무슨 땡수가 있어서, 다들 기둘려봐, 그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별 수 없는 건, 나도 마찬가지이다.

 

그런 상황에서, 꾸역꾸역 참으면서, 하여간 일단 본문은 마쳤다. 재밌는 얘기도 꽤 들어갔고, 전혀 다른 시각도 좀 들어가 있지만결정적 한 방은, 없다. 하긴, 그런 게 이런 구조에서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노무현 컨센서스라는 말을 새로 만들었다.

 

마음이 편치는 않지만, 지금의 상황을 이해하기에는 제일 적절한 용어인 것 같아서, 며칠 고민을 하다가 그냥 썼다.

 

마지막 몇 페이지를 한달음에 썼는데, 감자꽃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해본 게 사실이다.

 

보통은 감자 꽃이 피게 두지는 않는다. 감자는 뿌리에서 열리는 거라서, 꽃이 피어간 말거나 상관도 없고, 씨감자도 그냥 감자에서 나온다. 괜히 영양이 꽃으로 가는 건 손해라서, 감자 꽃은 떼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꽃이 피어야 열매를 맺는 다른 작물과는 좀 다르다.

 

내가 감자 키워서 팔 것은 당연히 아니고, 오히려 씨알이 작은 씨감자가 찌개에 넣으면 더 맛있다. 껍질 안 벗기고 넣을 수 있는 작은 감자, 햇감자.

 

감자 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감자에게서

 

존재에 의미 같은 게 있겠나, 그냥 존재는 존재로서의 의미이다. 그리고 그 존재로서 아름다운 것이다.

 

별 의미는 없을지 몰라도, 감자 꽃에 대한 생각은, 문득 이 시기의 내 삶에 대한 생각과 비슷하게 만나는 점이 있는 것 같다.

 

시대, 참 어두운 시대를 살아간다. 한미 fta에 대해서 고민하는 내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이게 무슨 정치 절차를 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엄청난 사회적 절차를 새로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난 최선을 다했다, 그런 알리바이를 만들고 싶었던 것도 아니다.

 

왜 난 이 작업을 삭발도 하고, 금주도 하면서, 끝까지 끌고 왔을까? 딱히 대답하기가 어렵다.

 

감자 꽃에게, 넌 누구니, 그렇게 물어보고 싶지는 않다. 나도 나에게, 너무 힘들게 물어보고 싶지는 않았다.

 

본문의 마지막 절은, ‘통상 거버넌스라는 딱딱한 제목으로 끝난다. 외교부를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런 행정적인 질문인데, 통상교섭본부의 귀속에 관한 내용이다.

 

지난 겨울, 이해영 선생과 이 주제를 가지고 같이 토론회를 한 번 만들어보기로 국회에서 약속을 했었는데, 서로 정신이 없어서 그냥 넘어간 적이 있다. 그 얘기를 마지막 부분에 정리해 넣은 거다.

 

10년 전인가, 외교부에서 파견근무 요청이 온 적이 있었다. 지금 내가 문제삼고 있는, 바로 그 통상교섭본부이다. 당시는 아마 경제국이었나, 그렇게 기억난다.

 

그 때 나는 공직생활 아니 직장생활을 정리하려는 생각을 막 시작한 때라서, 별 이유도 대지 않고 그냥 싫다고 그랬던 적이 있었다.

 

정말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일인데, ‘fta 한 스푼을 마무리지으면서 갑자기 그 생각이 났다. 그 때 외교부로 갔었으면 내 삶은 어떻게 되었을까? 문득 그 생각이 들었다. 잘 모르겠다. 어떻게 되었을지.

 

 

 

 

 

 

(어제 꽃망울은 이렇게 생겼었다. 이게 하루만에 꽃잎을 피운 것이다.)

 

Posted by retired
,

 

 

 

 

'남들은 모르지.. > 야옹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제는 어느덧 적응한...  (14) 2013.05.23
최종적으로 세 마리...  (2) 2012.06.08
쇼퍄 야옹구  (8) 2012.05.24
2012년 5월, 엄마 고양이  (3) 2012.05.22
비오는 날 고양이들...  (4) 2012.04.26
Posted by retired
,

 

 

마당에 작년부터 풀 하나가 슬슬 머리를 밀고 자라기 시작하더니, 올해는 이 멀대 같은 녀석이 나름 군락을 이루었다.

 

그냥 뽑을까 하다가, 뭔지도 잘 모르고, 또 나름 맵시도 있어서 그냥 두었다.

 

달개비의 일종인, 자주 달개비라고 하는 것 같다.

 

어제부터 꽃을 피우기 시작했는데, 이게 은근히 장관이다.

 

 

fta는 고민거리이다. 사람들이 잊는 게 워낙 빠르니, 벌써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지워져가는 듯 싶다. 이렇게 금방 잊을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또 그렇게 잘 잊으니까, 그야말로 '암울한 근현대사'를 지나면서 - 요건 영화 <전우치>에 나온 대사이다 - 우리가 살아남은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하여간 이 문제를 붙잡고 고민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게 지난 연말부터이다. 국회에 통과를 시키겠다고 난리를 치면서 국회 날치기를 통과하면서, 그냥 있을 수는 없고, 나도 뭔가를 하기로 생각하면서...

 

그 이후로 내 삶은 개판이 되었고, 일정도 정신 없게 되었다. 올해는 대선의 해, 이것저것 부산하게 계획을 짜고 있었는데, 전부 엉망이 되었다.

 

물론 내 삶을 엉망으로 만드는, 중간에 끼어드는 일이 한 두개인 건 아니지만, 한미 fta의 경우는 좀 특별하다.

 

 

 

 

특별하게 사마귀를 찍으려고 했던 건 아닌데, 우연찮게 걸려들어서.

 

접사에서 핀트 맞추기가 아주 어렵고, 또 내 눈도 기가 막히게 아무 것도 안 보이는 눈이라서... 뭐, 이렇게 하고 있는 걸 찍으려고 한 건 아닌데, 전부 삥이 나가서.

 

하여간 이렇게 소일하면서, 머리 속은 온통 fta 생각이다.

 

 

 

책 제목을 'fta 한 스푼'으로 정한 건 좀 된다. 의미야 어떻든, 나는 이 제목이 좋다.

 

이 제목이 나에게 특별히 좋았던 것은, 뭔가 엄청난 변화를 만들거나, 아니면 세상을 뒤집을 정도의 큰 얘기 혹은 지금까지 나온 모든 fta 얘기의 종합편, 이런 부담을 덜어준다는 점이다. 나는 그냥 '한 스푼'만 더 할 뿐, 그런 뉘앙스라서 어깨를 가볍게 해주었다.

 

원래의 제목은 '모든 공포의 총합'... 이 제목은 너무 부담스러워서, 사실 3번을 갈아엎고 다시 시작하게 되었던... 그렇게 해서는 책이 되기도 어렵고, 무엇보다 너무 보고서처럼 되어버려서, 읽기가 더 어렵게 된다. 또 그러다보면 쓰는 입장에서는 더 부담스러워지고.

 

지금 와서 돌아보면, 한 스푼으로 책 제목을 바꾸지 않았으면, 이 책은 결국 무게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중간에 엎어버렸을 가능성이 높다.

 

우여곡절 끝에, 이제는 책을 마무리해야 하는 시점에 왔다. 원래의 계획은, 최대한 빨리, 그러다가 총선 전에 못 냈고, 총선이 끝나자마자... 그런데 총선에서는 완전 박살났고.

 

삭발은 벌써 애저녁에 했고, 대선까지 금주를 하면서, 이런저런 힘을 모아서 겨우겨우 끝내는 책이 되었다.

 

시대와 맞서는 정도가 아니라, 그야말로 수레바퀴 앞에 서 있는 사마귀, 딱 그 형국이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그냥 돌아가는데, 학자 한 명이 할 수 있는 일이 생각보다 많지 않고, 그 크기도 생각보다 크지 않다.

 

그렇게 무게감에 눌리고 있었다.

 

 

이번 주말 여기에 부처님 오신 날까지 끼어서, 휴일.

 

하여간 초읽기에 몰려서, 마지막 결론을 내려야 하는 순간이다.

 

자주 달개비라는 꽃은, 꽃보다도 몽우리가 훨씬 예쁘다.

 

마당에서는 이게 거의 잡초급이라, 이사갈 때에도 얘를 데리고 갈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그러나 이렇게 예쁜 몽우리가 있다는 데에 참 놀랐다.

 

꽃잎이 만개하게 될 보라빛을 미리 보여주는데, 그 은근함과 신비로움이 보통 아니다.

 

물론 그냥 눈으로 보면, 별 거 아니다.

 

흔히 보는 멀대 같은 잡초에 약간의 몽울진 것, 그렇게 밖에는 안 보인다.

 

하여간 이런 생각을 하다가, 뭔가 내 머리를 빡 때리고 지나가는 생각이...

 

노무현 중후반에서 지금까지 한국을 지배하고 있는 일관된 생각.

 

당시의 청와대, 열린우리당 사람들, 고위직 관료들의 보편적 생각, 그게 이명박을 거쳐서 박근혜까지...

 

이 생각을 나중에 책상에 앉아서 차분히 정리를 해보니까,

 

그게 '노무현 컨센서스'이다. 90년대 워싱턴에서 월가까지, 합의된 적은 없지만 그 사람들이 보편적인 정서처럼 가지고 있는 생각을 '워싱턴 컨센서스'라고 부르는 것과... 작동 방식은 사실상 같다.

 

그래서 'fta 한 스푼'의 부제는 '노무현 컨센서스'로 하기로, 일단은 마음을 먹었다.

 

이 사건이 비극적인 것은,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글 중에 하나에서,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협상 내용을 재검토해보아야 한다고 썼던 점이다.

 

그게 워싱턴 컨센서스와는 차이점인 것 같다.

 

노무현은 빠진 노무현 컨센서스, 이게 참 비극적이다.

 

어쨌든 이렇게 최종 결론을 내리고, 앞에 써놓은 원고들에 대한 마지막 튜닝을 하기로 했다.

 

길고 길었던 작업이, 이제 마지막 고비를 넘었다.

 

 

'남들은 모르지.. > 명랑이 함께 하기를!'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감자꽃, 활짝 피다...  (2) 2012.05.30
감자꽃이 피다, fta 본문도 마무리...  (2) 2012.05.29
마루 앞의 뱀딸기  (2) 2012.05.25
피맛골  (9) 2012.04.28
총선이 끝나고  (19) 2012.04.15
Posted by retir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