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녀석은 내가 검둥이라고 부르는 녀석이다. 지난 겨울에 큰 상처를 입었었다.

 

어쨌든 내가 알기로는 얘가 아기 고양이들의 아빠이다.

 

얘가 새끼 고양이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잘 모른다. 그렇지만, 최근에 부쩍 마당 어딘가에서 움크리고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자기 아기들이 태어난 것 정도는 알고 있는 눈치이다.

 

원래 아빠 고양이는, 엄마 고양이와 함께 아기들을 돌보면서 지냈다. 그러나 중성화 수술 이후로, 새로운 새끼들이 태어나서, 이제 근처에 자주 오지는 못한다.

 

가끔 발치로 보기는 한다.

 

 

검둥이는 배가 많이 고팠던 것 같다.

 

보통 내가 있으면 잠깐만 먹고 금방 도망가는데, 오늘은 꽤 길게, 눈치보면서도 많이 먹었다.

 

길고양이들의 삶은 애달프다.

 

 

 

잠시 후, 마당 고양이들이 나타났다.

 

엄마 고양이와 검둥이가 같이 있는 걸 본지 꽤 오래된다.

 

올 초, 혼자 있던 아들 고양이를 밀어내고 마당을 차지하기 위해서 검둥이가 싸움을 걸었던 적이 있었다.

 

아들 고양이가 한참 밀렸는데, 엄마 고양이가 나타나자, 정말 무섭도록 밀어붙여서...

 

금방 싸움은 종결.

 

그 때 엄마 고양이가 바위 위를 얼마나 빠르게 뛰어다니면서 전투를 하는지, 한 번 본 적이 있었다.

 

덩치는 검둥이가 훨씬 크지만, 싸움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이런!

 

바보 삼촌이 검둥이에게 회심의 일격을 날렸다.

 

요즘 아들 고양이는 아기 고양이들 준다고 뜯어놓은 특식들을 자기가 먼저 눈치도 없이 먹어버린다고 해서, 바보 삼촌이라는 별명을 가지게 되었다.

 

엄마 고양이는 얼마 전부터 눈이 진물르기 시작했다. 바이러스 질환이라고 해서, 사료에 약을 조금씩 넣어서 먹이기 시작한다.

 

안 아픈 고양이가 먹어도 상관은 없다는 약인데, 뭐, 바보 삼촌은 눈치 없이 낼름낼름 잘도 먹는다.

 

이런 바보 삼촌이, 검둥이에게 회심의 펀치를 한 방!

 

약하지만 분명한 메시지였다.

 

기분이, 어째 한 방 날릴 듯 싶두만.

 

너, 너무 많이 먹쟎아!

 

 

엄마 고양이가 있는 곳은, 새끼 고양이들이 쉬고 있는 뒤뜰로 가는 길목이다. 길목을 딱 지키고,

 

나름대로 녀석들은 진을 짜고 있다.

 

검둥이는 10분 정도 자리를 지키다가 떠났다.

 

 

한참 조용해진 다음에,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나왔다.

 

녀석은 영양 상태가 다른 두 마리에 비해서 안 좋다. 젖먹기 경쟁에서 밀린 건데, 그러다보니 일찍 자립심을 키우게 되었다.

 

얘는 엄마 젖을 맘껏 못 먹으니, 캔을 일찍 먹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이, 하루에 두 번씩 캔을 따주기 시작했다.

 

벌써, 한 마리는 떠나보냈다.

 

작년에는 별로 신경 쓰고 않고, 알아서 잘 하겠지...

 

하면서 장마를 보내고 나니까, 가을 무렵에는 결국 한 마리만 살아남았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살아남은 게, 지금의 바보 삼촌.

 

 

아이고, 이 녀석 물 마시는 것 좀 봐라.

 

물통이 높아서, 한 발을 짚고 올라간다.

 

나중에 다 크면 어떻게 될지는 몰라도, 내가 돌봐주는 동안만이라도 아프지 않고, 잘 자라기만을 바랄 뿐이다.

 

 

내가 아무리 잘 돌봐준다고 해도, 엄마만 하겠나.

 

엄마 옆을 지나는 녀석의 표정, 이 순간만큼은 자신만만하다.

 

 

오늘 한 건 해서 그런지, 바보 삼촌이 오늘따라 의기양양하다.

 

내가 밥값은 한다...

 

마당에서, 먹이를 덜 줄 수가 없는 게, 녀석들은 늘 배고프고, 부족하다.

 

대학 시절에 키웠던 엄마 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다. 아주 좋아했던 녀석인데...

 

새끼를 낳고 나서, 먹이를 늘려주는 걸 잘 몰랐다.

 

제일 강해보였던 새끼 고양이 한 마리를 데리고 어느 날 떠나버렸다.

 

먹이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면,

 

새끼들이 좀 더 자랐을 때, 엄마 고양이가 새끼들을 위해서 자기는 떠날 수도 있다.

 

그래서 부족하지 않게 주려고 하는데, 바보 삼촌이 낼름낼름 먹다가...

 

돼지가 되어버렸다.

 

어쨌든 오늘,

 

오 예, 바보 삼촌, 한 방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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