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TN] 용산 두바이의 교훈은?

  

 

 

스위스의 수도는 베른이지만, 경제적으로 가장 융성한 도시는 쮜리히다. 스위스에서는 독일어권과 불어권의 경제적 특징이 약간씩 다르고, 정치 성향도 다르다. 극우파 정당의 중심 도시는 쮜리히인데, 정치적으로는 상당히 보수적인 도시다. 내가 스위스 모델 특히 쮜리히 모델에 대해서 오래 전부터 관심을 가졌던 것은, 한국이라는 나라가 상당히 보수적인 나라이기 때문이다. 노조가 힘을 쓰고, 시민들이 사회적 민주주의에 대해서 자긍심을 느끼는 스웨덴이 현실적으로는 한국의 모델이 되기 어렵다는 게 내 판단이다. 스위스는 여성들에게 참정권을 1970년에야 부여할 정도로, 진보나 급진적, 이런 것과는 좀 거리가 먼 나라이다. 한국도 그 정도는 해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이 정도 얘기를 하면 눈치 빠른 청취자는 이미 낌새를 차렸겠지만, 당연히 쮜리히는 저층 도시이다. 아인슈타인을 배출할 정도의 교육 도시이기도 하다.

 

노무현 중반기, 한국 경제는 한미 FTA를 통해서 국민경제 모델은 미국형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기이하게도 도시 모델 혹은 지역 모델은 두바이와 시드니를 향하고 있었다. 두 도시의 매력과는 별도로, 과연 선진국을 목표로 하는 한국에 이 모델들이 적합한가, 장점과 단점은 무엇인가, 그런 고민과 해석이 필요했었다. 그러나 마치 조감도 한 장으로 한반도 대운하와 4대강을 만들듯이 두바이라는 신화에 진보든 보수든, 한국의 주류 정치인들은 그냥 끌려 들어갔다. 서울과 인천 등 대도시의 행정을 맡고 있던 당시 한나라당이나, 정권을 가지고 있던 당시 열린우리당이나, 두바이 찬양에는 매일반이었다. 여기에 불을 지른 것은 용산-강남-한남으로 삼성 트라이앵글을 만들겠다던 삼성의 용산 두바이론이었다.

 

도대체 이런 대규모 개발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게 가능할 수 있는 사업인지, 최소한의 타당성 검토도 없이 정부, 서울시, 그리고 삼성 등 민간 개발업체들이 용산 두바이를 외치면서 이끌려 들어왔다.

 

공공기관인 코레일은 당시 무리한 KTX 공사로 경영상태가 좋지 않았고, KTX 여종업원 대량 구조조정 문제로, 한국 비정규직의 최초의 도화선 중 하나를 건드리고 있었다. 공기업이 자신의 업무와 상관없는 부동산 문제로 뛰어드는 것이 과연 옳은가, 그런 걸 검토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한전은 부동산 업무를 할 수 없도록 되어있는데, 토건의 한 가운데에서 수많은 부동산을 가진 공기업들도 토건에 직접 참여하려고 하는 분위기였다.

 

공수래 공수거라’, 이제 그 화려한 꿈은 깨어지고, 빚만 남겨놓은 채, 10년 이상 길게 갈 소송전만 남아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삼성이 제일 먼저 사태 파악하고 발을 살짝 뺄 때, 더 큰 규모의 손실이 오기 전에 정리할 기회가 한 번 있었다. 그러나 언제 공공부문에서 그런 발빠른 판단이 가능하던가?

 

용산 두바이의 신화가 무너지는 날, 우리는 과연 어떠한 교훈을 얻을 것인가? 두바이라는 이름의 신화가 2008년 깨어진 후에도 우리는 그 신화를 내려놓지 못하고 있었다. 김광수 경제연구소의 김광수가 이런 토건에 대한 긴급지원을 모르핀 주사라고 종종 부른다. 그렇다. 모르핀 주사만으로 연명하기에는 지금 상황이 너무 위중하다.

 

새만금에서 4대강까지, 송도에서 해운대까지, 신화로 쌓아 올린 거품의 왕국에서 우리가 살고 있다. 이런 것들 모두 지가 상승일반 분양이라는 특수한 조건 내에서만 가능했던 장치 위에 서 있다. 버티다 보면 기회가 오지 않겠는가, 그렇게 2008년부터 5년째 근근이 버티는 사업들이 태반이다.

 

돌아볼 것은 돌아보고, 청산할 것은 청산하기 위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용산에서 코레일과 SH 공사 그리고 국민연금 같은 곳이 짊어지게 될 3조원 이상으로 추정되는 돈이 다 어디서 나가겠는가? 중앙정부든 지방정부든, 결국은 국민들과 시민들이 짊어지는 몫이다.

 

, 다시금 쮜리히라는 도시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그들이라고 고층빌딩 높이는 기술을 몰랐겠는가? 그리고 그 정도 돈이 없었겠는가? 스웨덴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먼저 국민소득 6만불을 벌써 수 년 전에 통과한 나라들이다. 두바이의 신화, 도대체 우리가 왜 그런 걸 따라갔어야 했던가?

 

경제는 과학의 영역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영원한 신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조감도 한 장 들고 국민들을 잠시 속일 수는 있지만, 과학으로서의 경제를 속일 수는 없다.

 

Posted by reti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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