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 책 한 권, 내년에

 

원래 경제 대장정 시리즈의 8권이 원자력을 비롯한 에너지 얘기에 할당되어 있었다. 그런데 생태경제학 시리즈로 5권에서 8권까지를 잡아놓고 있었다.

 

그런데 생태경제학 시리즈가 워낙 매 권 힘만 엄청나게 들어가고, 성과는 없는지라

 

나도 강철이 아니라, 7권에서 일단 포기하고 9권을 먼저 냈다. 문화경제학 9권까지 내고, 에라 모르겠다, 그리고 쉬는 중이다.

 

8권을 살려보려고 노력을 좀 했는데, 아주 감성적으로, 포토 에세이로 바꿔볼까 하는 생각도 했다. 워낙 딱딱한 기술적인 얘기들이 많을 거라서, 좀 부드럽게 바꿔보면 어떨까 싶어서

 

테스트 삼아서 포토 에세이도 한 권 내봤는데, 역시나 실패.

 

경제 대장정 시리즈는 이래저래 헤매는 중이다. 10권은 농업 경제학, 그야말로 거의 안 팔릴 걸 감안하고 나의 양심이라는 이유만으로 내야 하는 상황이고.

 

11권은 과학과 기술의 경제학, 박근혜가 창조경제 얘기하면서 완전 김빠져서 에라 모르겠다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는 분야이기는 한데, 된장과학자들이 박근혜한테 그렇게 열심히 줄 댈 줄은 몰랐다. 빈정 팍 상해서, 안 해!

 

12권은 언론과 정당의 경제학, 그야말로 니미종편 출범하고 언론 환경은 이래저래 개판이 되어서, 그야말로 며느리도 몰라. 게다가 방송은, 내가 방송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나 뼈저리기 경험한 이후방송 얘기는 다루기도 싫고, 보기도 싫다.

 

내가 싫다는 밖에.

 

하여간 이러다 보니, 경제 대장정 시리즈는 어디 처박혔는지 나도 잘 모르겠고, 어떻게 해야할지도 모르겠다이 상태로 올해를 맞았다.

 

사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 마당에 무슨 희망이 있다고 죽어라고 머리 박고 고민하겠냐, 게다가 사전 연구비로 내 돈 엄청 써가면서

 

그래도 가을이 되면서, 내년 계획을 새로 절절하게 짜다보니, 일단 시작한 거는 어떻게든 마감을 지어야 좋지 않을까 싶어.

 

시리즈의 10권이 농업경제학이다. 어떻게 보면 나의 양심이다. 사람들이 이름 좀 알만한 경제학자 중에서 농업 얘기하는 사람은 이제 아무도 없다.

 

내 출발점이 농업은 아니다. 그러나 내 양심이 향하는 마지막 종착지는 농업이다. 여전히 그러하다.

 

그리하여 은퇴하기 전에, 농업 얘기는 어떻게든 좀 정리를 해보자, 이렇게 해서 생각을 시작했드랬다.

 

최근에 농업 환경이 많이 바뀌었다. 처음에 이 구상을 시작했을 때보다도 더 안 좋아졌다. 우리나라만 그런 것도 아니다. 그래도 비교적 모범이라고 할만한 프랑스도 독일도 농업 정책은 요즘은 개판 5분 전이다.

 

이렇게 하면 된다, 뭐 그런 게 없다.

 

그래도 나의 양심이니까, 내기는 할 것인데이걸 후년 작업으로 잡았다. 뭔가 새로운 흐름이 내년 상하반기에 나오지 않을까, 그런 가냘픈 희망으로.

 

개별 국가 정책은 개판이지만, EU 통합 정책이 아마 내년에는 좀 더 모습을 보일 듯 싶다.

 

그리고 미국의 변화도, 지켜볼 만하다. 미셀 오바마가 백악관에 텃밭을 시작했다. 푸드 스탬프의 후속 프로그램도 좀 지켜볼 만하고, 일본에서의 청년농업직불금 관련 조치들도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어차피 내 평생에 농업경제학 책은 딱 한 번 낼 것인데, 상황이 안 좋은 상황에서 그냥 내가 아는 것만 정리해서, 이렇게 끝내고 싶지는 않다.

 

좀 더 기다렸다가 10권 내면서 그냥 시리즈 쫑 탁 내는 것에 대해서 요즘 고민하는 중이다.

 

그렇게 8권은 건너뛰고 10권에서 시리즈를 끝낼까 고민하던 차에

 

며칠 전 저녁 밥 먹다가 밀양 얘기를 보면서, 그냥 사람 죽어도 그만이라고 하는 상황이 눈에 들어왔다.

 

에너지 책은, 간단히 말하면 1쇄 털기가 아주 고욕인 책이다. 거기다 원자력에 반대하는 책, 힘은 힘대로 들고 성과는 없는.

 

몇 년 전에 기든스가 기후변화 관련된 책을 낸 적이 있다. 기든스, 그래 바로 그 제3의 길의 앤서니 기든스이다. 번역자는 홍욱희 선배, 이름 들으면 몰라도 그 때 그 사람, 그렇게 들으면 어지간히는 알만한 사람이다.

 

아주 오래 전 일이지만, 광화문 뒷골목의 중국집에서 탕수육에 빼갈을 정말로 맛있게 같이 먹었던 적이 있었다. 그날 옆에 같이 있었던 공무원 양반은 나중에 특허청장이 되었다. 숱한 논쟁과 치고박던 스토리 속에서도 그 양반과 그날 빼갈 마시면서 했던 얘기는 정말 좋았다.

 

이 양반이 한전 출신이다한전 그만두고 나와서 시민운동한 사람, 하여간 이름 하나만큼은 쟁쟁한 사람이다.

 

기든스의 책을 홍욱희가 번역했는데, 그래도 얄짤 없다이게 에너지 책의 한계치라고 보면 된다.

 

천하의 기든스가 써도 어렵다. 아마 움베르토 에코가 써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그건 나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원자력에 관해서, 내가 알고 있는 얘기들을 다 모아서 한 번은 정리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판매는 처음부터 포기하고

 

내가 에너지맨이었고, 에너지로 오랫동안 밥 먹고 살았고, 그걸로 살아왔던.

 

간단하게 책 구성을 생각해봤는데, 일단 책 한 권은 충분히 훌륭하게 만들 수 있다.

 

그리고 내가 왜 원자력에 반대하는지, 그리고 그 대안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최근 민간 전문가 위원회가 하나 열렸고, 위원장을 김창섭 박사가 했다.

 

오래 된 동료이고, 한 때 내 몸처럼 아꼈던, 정말 내 친형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그런 양반이다.

 

2004년도, 민주노동당 처음 원내 진출하는 그 총선 때, 탈핵이라는 말을 공식적으로 처음 썼고, 그 때 탈핵 프로그램을 디자인한 적이 있다.

 

10년 전 일인데, 김창섭 박사가 위원장으로 내린 기술적 결론이 그 시절에 내가 내린 결론과 같았다. 대가리 정상이면, 그 결론 외에는 없을 듯 싶다.

 

그 얘기를 10년만에 다시 꺼내볼까 싶다.

 

그 뒤에도 새로운 경험과 지식이 좀 얹힌 것들이 있다. 하다 보니 발전사 사외이사를 3년이나 했다. 발전소에서 무슨 고민을 하고, 뭘 하고 싶은지, 정말로 그 현장에서 몇 년을 보냈다.

 

그리그리하여

 

내년 상반기에는 간만에 에너지 관련 작업을 좀 해볼까 한다.

 

어떻게 보면 내 깊숙한 기억 속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은 일인지도 모른다.

 

공직을 그만둔다고 생각할 때, 원자력에 대한 내 입장이 일부 영향을 미친 것이 사실이다. 원자력을 반대하거나 아니면 반대한다고 입장을 표출하면, 에너지 분야에서는 고위직에 갈 수가 없다. 현실이 그렇다. 생각을 바꾸거나, 아니면 말을 하지 않는 지혜를 갖추거나.

 

당시 나는 3급 부장 말년차였고, 현장 팀장이었다. 슬슬 2급 부장 승진과 함께 초고속 처장 승진이 기다리던 때였다.

 

물론, 그 중간에 내가 원자력 찬성자로 입장을 바꾼다는 전제하에

 

몇 가지 그런 정황과 개인적인 학자로서의 판단을 종합해서, 나는 내가 하던 일을 그만두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몇 년간 나의 아내는 빈처가 되었다.

 

그 시절의 얘기들과 그 후에 내가 더 알게 된 것들을 모아서 한 번 구상해볼까, 그런 고민 중이다.

 

왜 우리에게 원자력이 대안이 아닌가, 그 어쩌면 너무 뻔한 얘기들을 한 번 정리해볼까 싶다.

 

, 돈도 안되고, 힘은 힘대로 들고무엇보다도 여태껏 살면서 나와 계속해서 동료로 지내고 있던 사람들과 등을 돌려야 한다는 사실도 선택을 쉽지 않게 만든다.

 

그렇지만 마음과 양심이 가는 대로

 

밀양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나도 잘 모르겠다.

 

박근혜 하는 걸로 봐서는, 몇 명 죽더라도 공권력이, 질서가, 이렇게 갈 거다.

 

나도 그냥, 양심이 가는 대로 하려고 한다.

 

한 때, 한국의 에너지 정책을 총괄하던 사람으로서, 그리고 그 공로로 장관 표창도 받았던 내가

 

이제는 좀 얘기를 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내년도 상반기에 책 한 권 작업할 시간을 배정하고 있다.

 

제목까지는 정해놓았다. 쎈 제목이다.

 

양심을 버리면, 결국 나이 먹어서 행복을 찾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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