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되었다. 아무 속도 모르는 열 살 큰 애는 어머니가 잠깐 마루 쇼파에 나오시자 넙죽 절을 했다. 그냥 웃었다. 원래 우리 집은 신정을 쇠기는 했다. 너무 많이 주는 것도 좀 그래서 내가 지갑에서 2만 원을 꺼내서 세뱃돈으로 주었다. 

어머니는 억지로 죽을 조금 드시기는 했는데, 표정은 영 안 좋으시다. 한 해가 이렇게 시작한다. 

오전에는 글은 쓰지 않고, 전체적으로 구조를 잡는 일을 했다. 원래 연말에 끝내려고 했던 일인데, 어머니 모셔오고, 뭐 그러다 보니까 해가 넘어갔다. 난 뭐 한다고 티 내는 일은 딱 질색이다. 하는 듯 안 하는 듯, 그렇게 하는 게 좋다. 

작업실을 구할까, 그런 생각을 해보기도 했었는데, 굳이 뭐 그런 게 필요할까 싶다. 내가 그림을 그리는 것도 아니고, 무슨 조각 작업 같은 것을 하는 것도 아니라서, 그냥 책상만 있으면 된다. 아이들이 조금씩 크면서 작업실 생각을 전혀 안 한 것은 아니지만,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그럴 돈도 없고. 고양이가 주로 쓰던 서재에 아내가 안 쓰는 책상 갖다 놓고, 그냥 거기서 이것저것 한다. 지난 여름에는 몇십 년째 굴러다니는 앰프와 스피커들을 갖다 놓아서 요즘은 훨씬 낫다. 

구두쇠처럼 돈을 전혀 안 쓰는 삶을 사는 건 아니지만, 차에 쓰는 돈이 그렇게 아까웠다. 프라이드 웨건을 오래 탔었고, 지금은 아내 명의로 되어 있는 모닝을 탄다. 어차피 소모품인 차에 돈을 쓰는 게 예전부터 그렇게 아까웠다. 책이나 CD 혹은 DVD 같은 데에는 아낌 없이 돈을 썼다. 작업실도 차랑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 데나 엉덩이 붙일 수 있으면 그만이지, 따로 뭔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잘 안 했다. 

가끔은 나도 카페에 노트북 가지고 가서 글을 쓰던 적이 있었고, 책 마무리한다고 정말로 모텔에 가서 며칠 자판만 두드리다가 온 적도 있었다. 카페 가서 글을 쓴 책들이 대부분 망했다. 쫄딱 망했다. 폼 잡다가 망했다고 곱게 생각하기로 했다. 

얼마 전부터 에드가 알랜 포우의 소설이 당기기 시작했다. 중학교 때 많이 봤었는데, 그런 그로테스크하면서도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얘기들이 갑자기 보고 싶어졌다. <어셔가의 몰락>이 특히 기억이 많이 났다. 문 한 번 열고 들어가면 볼 수 있는 내면의 모습들, 그런 생각을 요즘 종종 한다. 

어제는 처칠에 관한 영화인 <다키스트 아워>를 봤다. 예전에 건성건성 봐서, 마음 먹고 집중해서 본 건데, 겁나게 재밌었다. 비슷한 시기를 다룬 조지 6세의 <킹스 스피치>를 아주 재밌게 봤었다. 일종의 친위 쿠데타에 관한 영화인데, 총이나 건달들은 하나도 나오지 않고도 처칠이 자신의 권력을 안정적으로 만드는 과정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영화 다 보고 났더니, 개리 올드만이 나온다. 어, 개리 올드만은 누구였어? 아내가 한심하게 바라본다. 그 연기 잘 한다고 한 그 처칠 아니야? 이런! 

한 시간에 한 번씩 어머니를 보는데, 대부분 주무시고, 잠시 우리 식사 때 아내가 억지로 죽이라도 조금 드시게 한다. 힘겹다. 점점 어머니도 아버지랑 하는 얘기가 같아진다. 뇌 종양이 커진 아버지는 “그냥 내버려둬”, 이런 얘기만 계속 하셨다. 어머니도 “그냥 둬”, 그런 얘기가 하는 대화의 거의 대부분이다. 후기 프로이드가 반복과 죽음의 본능에 대해서 얘기한 게 기억이 난다. 

오후에는 큰 애 데리고 백화점에 가서 돼지갈비를 사왔다. 친구들이 괴롭힐 때 때리지 않고 참으면 맛있는 거 사준다고 약속을 했었다. 며칠 전에는 잘 참다가 결국 때렸다고 한다. 초등학교 3학년 남자 애들의 세계는 거칠다. 이번에는 참았다고 맛있는 거 사달라고 한다. 어머니가 계셔서 식당에 갈 형편은 아니고, 백화점 가서 돼지갈비랑 순대랑, 그렇게 먹고 싶다고 하는 거 사들고 왔다. 

그래도 1월 1일인데, 이렇게 아무 것도 안 하고 있는 건 좀 그래서, 방의 스피커 배치를 좀 바꾸었다. 그래봐야 위에 있던 거 밑으로 내리고 그런 거지만, 요번에는 벽 한 구석에서 놀고 있던 스피커 스탠드를 다시 투입했다. 그래봐야 그게 그거지만, 그래도 뭐라고 하면 기분이 또 잠시 새로워진다. 

아내가 어머니가 집에 와 계셔서 좋은 점이 뭐가 있냐고 물어봤다. 

“내일은 화곡동에 안 가도 되잖아.”

식사를 안 하고 계시니까 요 며칠 매일 본가에 갔다. 두 번 간 날도 있다. 어머니가 집에 계시면, 당장 어디 뛰어가야 할 걱정을 하지 않는 것은 편한 일이다. 그래도 마음도 편한 건 아니다. 아버지가 얼마나 사실지, 계획한 대로 병원을 한 번 더 옮겨야 하는 건지, 아니면 그냥 이대로 있는 게 나은지, 아직 마음의 결정을 못 내렸다. 어머니는 노년을 어떻게 보내셔야 하는지, 이것도 마음이 복잡하다. 팬데믹이 아니었다면 조금 더 편하게 기술적인 결론을 내렸을지도 모르지만, 지금과 같은 시기에는 뭐든 더 복잡해진다. 

1월 1일, 매년 오는 1월 1일이다. 다를 게 별로 없지만, 올해는 조금 다르다. 내년 1월 1일에 아버지는 아마 세상에 계시지 않을 것 같다. 병원에서는 3~4달 얘기를 했는데, 그새 벌써 한 달이 넘어갔다. 그것도 젊은 사람까지 계산한 평균치라고 의사가 말해주었다. 어머니는 내년 1월 1일에도 살아계실까? 그럴 확률이 높기는 한데, 그거야말로 하기 나름이다. 

평소 같으면 식구들이 다 모여서 어딘가 식당에 가서 밥 먹고, 아버지가 계산하고 그랬을 날이다. 올해는 조금은 색다른 신년을 맞는다. 

어떻게 하다 보니까 수아드 마씨의 노래를 듣게 되었다. 알제리의 존 바에즈로 불리는 가수인데, 알제리 여성 인권에 대한 노래로 아주 유명했다. 이름만 대충 알았지, 실제로 앨범을 듣는 건 나도 처음이다. “Pour qui”라는 노래의 가사들이 가슴에 박힌다. 누구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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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를 억지로 집에 모시고 온 다음 날의 아침은 바빴다. 아내와 동네 병원에 어머니를 모시고 가서, 수액 주사를 위해 예진을 하는 걸로 시작하였다. 병원에서는 장염, 위염, 1주일채 약을 지어주었다. 

기왕 병원에 간 김에 나는 미루고 미루었던 3차 접종을 했다. 몇 주째, 정말 병원에 갈 시간이 없었다. 아버지 병실에 있거나, 아버지 병원을 알아보거나, 그리고는 어머니한테 가거나. 살짝 살짝 시간이 나면 나도 먹고 살기 위한 일을 하고. 

점심 때에는 출판사에 가서 오랫동안 같이 일했던 에디터가 내민 출판사를 옮기기 위한 계약서에 서명을 했다. 복잡한 일들이 겹쳐서, 아니 나도 나이를 먹어서 출판사를 좀 간소하게 하는 일들을 하는 중이다. 매번 에디터가 바뀌고, 또 새롭게 익숙해지는 일이 이제는 버겁다. 

집에 돌아오면서 같이 일하던 화가에게 새로운 작업에 대해서 설명하는 전화를 하라 하다가 잠시 주저했다. 그 사이 결혼해서 아이 엄마가 되었는데, 그래도 차라도 한 잔 하면서 설명할 일이지, 전화로 얘기하는 건 좀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년에는 미루고 미루어두었던 동화를 마무리하기로 했다. 좀 정신이 없더라도 같이 일할 화가와는 차 한 잔은 하면서 얘기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이 되기 전에 큰 애랑 시장 반찬가게에 나물 같은 반찬들 사러 갔는데, 어머니도 같이 가셨다. 잡채랑 전 같은 것을 샀고, 어머니는 쑥으로 만든 부침개를 집어 드셨다. 드실 수도 없기는 한데, 그냥 손이 가는 것 같은. 하나하나가 사실 거의 마지막 같은 일이다. 다행히 며칠 내로 몸이 회복되실 수도 있고, 아니면 이게 같이 반찬가게에 들린 마지막 일일 수도 있을 것 같고, 어렸을 때 화곡 시장에 늘 어머니를 따라다녔고, 무거운 짐 하나를 내가 들었었다. 그 시절 동태 머리 자르고 토막 내는 것을 정말로 유심히 지켜봤었다. 

거짓말 같은 사연이지만, 그 아줌마가 그 시장에서 동태 팔면서 애들 공부를 다 시켰다. 나중에 현대에 입사하게 되었을 때, 입사 절차로 보증인 몇 명이 필요했다. 어머니가 부탁해서, 어린 시절부터 보아왔던 그 생선가게 아줌마가 입사 서류에 보증인이 되어주셨다. 그 시절만 해도 회사에 들어갈 때 보증인 구하는 게 또 큰 일이었다. 
저녁 때에는 큰 애가 갑자기 짜장면을 먹고 싶다고 해서 칼국수면 사다가 짜장면 해먹었다. 칼국수면을 찬물에 적당히 헹구면 수타 짜장면과 가장 비슷한 맛이 된다. 졸지에 연말 저녁은 짜장면 만찬이 되었다. 

어머니는 속이 안 좋아서 결국 죽은 드시지 못했다. 나중에 감말랭이 조금하고 두유를 드셨다. 아직은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걷고 계시다. 

내 삶이 내 생각 중심으로 움직이지 않은 게 몇 년 된다. 애들 보고, 아버지 병수발 하다가, 요즘은 어머니까지. 그래도 아내가 요즘은 일하는 게 좀 자리를 잡아서, 보람이 아주 없지는 않다. 

어머니는 어제 잠을 좀 설쳤다고 8시에 잠자리에 누우셨다. 그 사이 나는 청소기를 한 번 돌렸고, 박스 쓰레기 등 쓰레기를 한 번 내놨다. 집안 일을 그렇게 많이 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것저것 하다 보면 시간이 금방 간다. 

오전에 작업하던 걸 다시 열어봤더니, 넘버링 8까지 가야 하는 제목 잡기에 4까지 해놓고 내려놓은 게 보인다. 하이고.. 이걸 마무리하는 게 원래 오늘 내가 할 일이었는데, 반만 하고 내년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어머니는 노년이 되면서 점점 더 고집이 강해지셨다. 모시기가 쉽지는 않다. 예전처럼 나도 고집을 불리지는 않고, 그냥 하시고 싶으신 대로 한다. 그렇지만 그냥 두라는 말은 그냥 듣기가 좀 그렇다. 김수영이 시 <공자의 생활난>에서 “그것이 작전과 같은 것이기에 어려웁다”라고 한 적이 있다. 삶이 그렇다. 나와 관련된 일은 그렇게 작전처럼 해도 어느 정도는 되지만, 식구와 관련된 일은 그렇게 되지가 않는다. 그냥 흐르는 대로 놔둘 뿐이다. 

어머니는 1주일 동안 우리 집에 오시기로 하셨는데, 사실 얼마나 계실지는 잘 모른다. 우리 집에도 아픔이 있고, 쉽게 처리하기 어려운 일들도 좀 있다. 그래서 많은 것들을 내가 생각하는 최적의 상태에 맞출 수가 없다. 

주변의 몇 사람이 나에게 효자라고 문자를 보냈는데, 그렇지는 않다. 그렇게 효자로 산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 없다. 그냥 어쩔 수 없으니까 해야 하는 최소한을 할 뿐이다. 그 최소한도 버겁다. 

다음 주 일정을 보니까 새로 준비해야 하는 특강이 두 개가 있고, 영화 시사회에 간다고 한 것도 있다. 돌아삐리.

바람 피우는 친구 얘기를 얼핏 들었다. 대단하네. 나는 그냥 나 먹고 살고, 애들 먹는 것 챙겨주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꽉 차고, 엄마, 아버지, 신경 쓰는 것만으로도 온 신경이 쓰는데. 얼마나 건강 관리를 잘 하고, 시간 관리를 잘 하기에 바람 필 여력이 있나 싶다. 

나에게 남은 마지막 여력을 가지고 나는 윈스턴 처칠에 관한 영화 <다키스트 아워>를 틀었다. 예전에 보기는 했는데, 건성건성 봐서 뭔 얘기인지 기억이 하나도 안 난다. 이게 이 해가 가기 전에 나에게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여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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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병원으로 가신 후, 어머니의 삶은 아주 어려워졌다. 특히 어머니가 치매 진단 받으신 이후로 두 분이 대체적으로 같이 지내셨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났는데, 아버지가 없이 어머니가 외출하기는 아주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어머니가 식사를 며칠째 못하고 계시다는 사실은 어저께 알았다. 바로 죽을 사들고 집에 갔다. 저녁 때 통화를 했는데, 안 드셨다. 

병원에 가는 것도 싫다고 하시고, 아무 데도 안 간다고 하시는 데, 방법이 없다. 이런저런 제도를 좀 살펴봤는데, 쓸 수 있는 제도가 별로 없다. 보건소에서 하던 왕진 프로그램 같은 게 있었는데, 코로나 이후로는 일단 스톱 상태다. 예전에는 주변에 친한 사회복지사들이 좀 있었는데, 몇 년 문걸어잠그고 살았더니, 그것도 잘 모르겠다. 게다가 어머니는 누군가 집에 오는 걸 끔찍하게 싫어하신다. 예전 치매로 누워계시던 시절에도 공공 프로그램의 도움을 좀 받으려고 했었는데, 결국 필요 없다고 오지 말라고 하신. 

아내랑 집에 두 번을 가서 결국 집으로 모시고 오는데 성공했다. 시껍했다. 기술적으로는 일단 119 도움을 받아서 병원에 가는 게 맞는데, 집에서 꼼짝도 안 하시겠다고 그냥 누워만 계시는데.. 

그냥 내가 생각한 것은, 아버지 돌아가시기 전에 어머니가 먼저 돌아가시는 건 안 된다는.. 어제 어머니 얼굴색 보면, 그렇게 아무 것도 안 드시고는 며칠 못 버티실 것 같다는. 

하여간 겨우겨우 모시고 오면서 한시름 놓았다. “일단 1주일만”, 그렇게 단서를 달아서 겨우겨우. 

아버지 병수발을 막냇동생하고 나하고 둘이 나누어서 했었는데, 한 달 가량 되니까 그야말로 두 집이 다 난가가 되다시피. 아버지한테 매달려 있으니까 어머니까지 손이 갈 형편이 안 된다. 

우여곡절 끝에 집에 모셔오는 건 성공을 했고, 저녁에는 아내가 끓인 잣죽 한 그릇 드셨다. 내일은 동네 병원에라도 가서 긴급 치료를 좀 받고, 위염 좀 가라 앉으면 끓인 밥으로 넘어가볼까 싶은. 

생이라는 것이 육신에 얼마나 간당간당 붙어 있는 것인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잠시 눈 돌리면 떠나갈 수 있는 불안한 균형이 바로 삶이 아니겠나 싶다. 

다섯 살 때 외할머니가 돌아가실 뻔한 적이 있었다. 그때 외할머니가 나 학교 들어가는 것은 꼭 보고 싶다고 그러셨던 게 기억 난다. 그 다음에는 나 대학 가는 것까지는 보고 싶다고 하셨다. 나중에 내가 학위 받고 현대 다니던 시절에 돌아가셨다. 그때 조모의 경우는 휴가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 시절에 외할머니가 왜 나 초등학교 들어가는 것은 보고 싶으시다고 말했는지, 이제는 좀 알 것 같다. 살아야 할 이유를 끝없이 찾지 못하면 삶은 의미가 사라져버린다. 

며칠은 어머니가 집에 계실 거다. 시껍한 순간을 또 한 번 넘겼다. 

내가 다섯 살 때 이사간 집에서 부모님은 아직도 사신다. 초인종이니 이런 건 이미 다 망가졌고, 막냇동생이 가지고 있는 비상용 열쇠를 복사할 방법이 없을 것 같아서, 열쇠집 불러서 대문 자물쇠부터 새로 만들려고 했었다. 막내 동생이 열쇠집 몇 군데를 돌아서 20세기에 만들어진 진귀한 열쇠를 결국 복사해왔다. 걔도 사소한 일로 땀 뻘뻘 흘린. 

아버지 집에 열쇠 주러 잠깐 온 동생은 방송 준비해야 한다고 한다. 걔도 두 달 전부터 고생이 말이 아니다. 원래는 안식년인데, 코로나 때문에 한국에 있다가 요즘 엄청 고생하는 중인. 

어머니는 손자들 노는 거 보고, 잠시 즐거우셨고, 죽 한 그릇을 다 드셨다. 밥 먹고 사는 게 이렇게 큰 일인가, 잠시 그런 생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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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작가의 처우와 삶에 대한 얘기는 몇 년 전부터 계속된 얘기지만, 특별히 개선된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다. 마이크와 마이크를 들고 있는 사람에 대한 얘기와 같은 구조다. 전에 미국에서 방송 길드들이 연합해서 총파업하면서 'pencil down, channel down'이란 구호를 내건 걸 인상 깊게 본 적이 없다. mb 때 방송 개혁 한다고 하면서 놀고 먹는 pd들이 작가들이 하는 일도 하면 된다면서, 작가들 다 없애자고 하는 얼척 없는 걸 정책이라고 추진한 적도 있었다..
방송 작가 문제, 생각보다 오래 간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798536&PAGE_CD=N0002&CMPT_CD=M0117&fbclid=IwAR0h-zNBVF9jCCdiPN179uw8W9w87v2e0eEEs7_lWA2N4QFElxGNCXbYdJc 

 

방송작가가 더는 '불쌍해지지 않기로' 결심한 이유

[서평] 이은혜 작가의 책 '쓰지 못한 단 하나의 오프닝'

www.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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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 에세이는 '슬기로운 좌파 생활'로 최종 제목이 결정되었다. 초기에 제기된 제목이었는데, 나는 좀 묻어가는 것 같아서 반대했었다. 중간에 작업 가설로 쓰던 제목이 10개가 넘었는데, 나중에 나도 받아들였다. 좌파 얘기가 한국에서는 워낙 맥락이 없는 상황이고, 워낙 생경해해서, 그래도 뭐라도 좀 친숙한 것을 출발점으로 삼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의견들이 강했다. 

좀 더 감각적이고 감성적인 글들로 책의 스타일이 이동하는 와중에, 나는 혼자 거꾸로 가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책이다. 요즘 누가 좌파 얘기를 해? 내가.. 


제발 이런 얘기 좀 쓰지 말라고 그러는 사람들도 있었다. 싫어요.. 난 이 얘기 하고 싶어요. 
살면서 '좌파'라는 단어가 제목에 들어간 책 한 권을 남기고 싶었다. 그리고 그 시기는, 바로 지금.. 
언젠가 극우 청년들과 부딪히는 순간이 올 거라고 '88만원 세대' 쓸 때부터 생각을 했었다. 아마 그게 지금일 것 같다. 

좌파 얘기 하면서 젠더 얘기를 워낙 많이 해서, '젠더 경제학'은 일정상 1년 뒤로 넉넉하게 밀어놨었다. 기왕 그 얘기 하는 김에, 이어서 하면 좋을 것 같다는 의견들이 많아서.. 


여러 책의 일정 조정들을 하면서, 젠더 경제학은 내년 봄에 작업을 하기로. 이제 인터뷰도 좀 하고, 사람들도 만나고, 그렇게 할 생각이다. 


좀 중장기로 유럽의 극우파에 대한 책도 한 권 쓸 생각이다. 스위스와 프랑스의 극우파들 계보 정리도 좀 하고.. 이건 내가 궁금해서. 


청년 극우의 시대, 좌파라는 얘기가 어떤 의미를 가질지, 그런 질문들을 해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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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가난하면 자유를 모른다.. 이렇게 얘기하는 사람들을 본 적이 있기는 한데, 그런 종류의 인간 중에서는 윤석열이 가장 높은 자리까지 간 것 같다. 다른 사람이 이런 얘기 했으면 "선민 의식 쩐다"고 뭐라고 한 마디 해줬을 것 같은데, 윤석열에게는 전혀 입력이 안 될 것 같아서 뭐라고 한 마디 하기도 싫다. 흑묘백묘 생각 난다. 문재인만 잡으면 되지, 꼭 고양이 색깔이 중요하냐..

https://news.v.daum.net/v/20211223112403114

 

[출발]여론전문가"윤석열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 발언, 지지율에 타격"

YTN라디오(FM 94.5) [황보선의 출발 새아침] □ 방송일시 : 2021년 12월 23일 (목요일) □ 진행 : 황보선 앵커 □ 출연자 : 이강윤 KSOI 소장,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

news.v.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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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에세이는 가벼운 미셀러니와 좀 더 무거운 에세이로 나뉜다는 게 고전적 구분이다. 나는 이렇게 좀 더 무거운 에세이를 써보고 싶었다. 몽테뉴의 <수상록>, 이 해골 복잡하게 만드는 이 책이 원래 제목이 에세이다. essais라는 말의 원래 의미는 시도다. 해보지 않은 글의 시도를 한다는 의미 정도인데, 기존의 글의 형식으로는 담아낼 수 없던 것을 담기 위한 새로운 시도를 한다는 의미다. 

처음 냈던 에세이는 <1인분 인생>이다. 40대를 지나면서 40대를 소재로 쓴 글들인데, 그게 어느 정도 반응이 있었다. 그래서 에세이라는 것을 쓸 수 있게 되었다. 가장 최근에 쓴 좌파 에세이까지, 에세이는 몇 번 썼는데, 그 중에는 괜찮게 간 것도 있고, 헤맨 것도 있다. <아날로그 사랑법>은 포토 에세이였는데, 결국 에디터가 회사를 그만두게 될 정도로, 별 거 없이 헤맸다. 그렇지만 내 인생은 많이 바뀌었다. 고양이들과 지내던 시절의 얘기를 정리한 건데, 내 삶에는 큰 영향을 남겼다. 그 책 준비하는 과정에서 내가 가졌던 감성들이 변했고, 결국 두 아이의 아빠가 되었다. 지금도 그 책을 보고 인생이 좀 변했다고 소위 독자 팬레터 같은 게 가장 많이 왔던 책이다. 

에세이는 1년에 한 권씩 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다. 나는 워낙 글을 많이 쓴다. 블로그나 페이스북에 공개하는 글도 있고, 전혀 공개하지 않고 그야말로 비망록 같이 나에게만 남는 글도 있다. 어차피 많이 쓴다. 그래서 좀 주제를 정해서 그렇게 글을 쓰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물론 매년 내는 건 무리다. 그렇게까지 치밀하게 살지는 않는다. 

2.
누군가의 삶을 보면서 그 사람의 더 많은 것을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가장 최근의 기억으로는 <바퀴 달린 집>의 성동일이다. 시즌 2까지는 몇 번을 봤고, 시즌 3는 아직 초반밖에 보지 않았다. 게스트들이 오면 보통의 경우는 나이 많은 사람들이 캠핑카에 있고 나이 어린 순으로 바깥에 나가서 텐트를 칠 것 같은데, 성동일의 경우는 반대였다. 그게 아주 인상적이었다. 성동일의 삶과 요즘의 모습을 좀 더 자세히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에 불어보니까, 성동일하고 아주 친한 사람이 걸리지는 않았다. 그래서 아주 장기 계획으로.. 지금 당장 만날 건 아닌 것 같고. 성동일이 만약 에세이집을 내면 아마 나는 1착으로 보게 될 것 같기는 하다. 예전에는 그가 되게 보수적이라고 생각해서, 그냥 좀 그랬다. 

나이를 처먹고 나니까, 보수니 진보니, 그렇게 걸치고 있는 옷들은 이제 잘 보이지 않게 된다. 일종의 언어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영어를 쓰든, 일어를 쓰든 혹은 또 다른 말을 하든, 그게 뭐가 중요하겠나. 그 사람이 살아가는 삶이 더 중요하지. 

나는 20대 후반, 30대 초반, 정말로 질풍노도 같은 삶을 살았다. 30대 중반이 되어서 책을 쓰기 시작했다. 그 뒤로도 몇 개의 사건이 더 있었지만, 그야말로 그 또한 지나가리라… 

최근 두 번에 걸쳐서 삶을 아주 단촐하게 만들었다. 2016년에 아이들 보기로 하면서 대부분의 사회 생활과 방송 같은 것들을 정리했다. 2019년에 내 주변도 아주 단촐해졌다. 2019년에는 되는 일이 하나도 없기도 했거니와, 인생일대의 위기이자, 대전환점 같은 것이 되었다. 그 뒤로는 작업을 위해서 인터뷰를 하는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내가 먼저 만나자고 하는 일이 없게 되었다. 하다 못해 출판사 가서 에디터 만나는 일도 거의 안 하게 되었다. 집으로 찾아오는 사람들 아니면 이제 거의 만나지 않는다. 그것도 어지간하면 피한다. 극한의 미니멀리즘과 비슷하다. 

집에 오거나 집 근처에서 만나는 거의 식구급으로 친한 사람들 몇 명이 있다. 그들이 힘들 때나, 내가 힘들 때나, 술이나 같이 마시면서 그 시간을 지내고 버텼던 사람들이다. 

가끔 외국에 갔었는데, 팬데믹 이후로 그것도 좀 어렵게 되었다. 내 삶이라는 것은 정말 기본적인 루틴의 연속이다. 큰 사건이라고 해봐야, 20년 가까이 한 쪽 구석에서 먼지만 뒤집어 쓰고 죽어가던 앰프나 스피커를 지난 여름에 수리하고 손질해서 살려낸 일, 뭐 그 정도다. 애들이 한 해 한 해 나이를 먹어가는 것을 제외하면 내 주변에서는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 

질풍노도의 시기는 내 인생에서는 지나갔다. 약간의 변화가 있다면, 해금에 관한 책을 쓰기로 한 것, 그래서 코로나가 좀 편해지면 연주자들을 만나볼 계획이 생겼다는 것, 그런 정도다. 원래도 해금에 관한 책은 지영희 평전처럼 애초의 계획에 있었다. 여러 사건이 생겨서 그 책은 쓰기가 어렵게 되었는데, 그 자리에 젊은 연주자들의 얘기로 다시 한 번 시도해볼까, 그런 정도의 변화다. 

음악하는 사람들을 안 보게 된 건 10년 좀 넘는 것 같다. <문화로 먹고 살기> 준비하던 시절에는 붕가붕가 레코드 사장 등 그 시절의 연주회나 뮤지컬 기획자들을 좀 만났었다. 그때만 해도 뮤지컬 정말 초창기였다. 드라마 피디들도 꽤 만났다. 그때만 해도 내가 힘이 넘쳤다. 

3.
지금의 내 삶은 아주 편안한 삶은 아니지만, 변화가 적은 삶인 것은 맞는 것 같다. 한 해에 새로 만나는 사람은 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고, 특별히 생겨나는 일은 거의 없다. 새로운 변화라고 해봐야 예전에 해놓은 일들이 이제 뭔가 성과가 되어서 돌아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최근에 내린 결정 중에 가장 큰 거를 꼽자면, 진짜 별 거 아니다. 내년 대선에는 심상정에게 투표하기로 했다. 별 이유는 없다. 오랫동안 그야말로 우정으로 지냈던 심상정의 마지막 대선에서 그에게 표 하나 주는 게 별 사건도 아니고, 아무 것도 아니다. 그게 거의 기억할만한 유일한 사건일 정도로, 내 주변에서는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 물론 애들 학교에서 확진자가 나와서 하루 종일 애들을 봐야 한다거나, 그런 일들이 나에게는 큰 일이지만, 그건 누구나 겪는 거고. 

경제인류학자인 마샬 살린스가 <석기 시대 경제학>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want not, lack not이라는 얘기를 세계적으로 유행시킨 적이 있다. 다른 건 몰라도, 내 삶은 그런 살린스의 얘기에 조금은 더 가까워진 것 같다. 뭐 크게 바라는 게 없으니까, 크게 결핍한 것도 없다. 내가 사는 사회가 조금은 더 나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아직도 하지만, 그래도 내가 크게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사실도 역시 받아들이게 된다. 그래도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으니까, 조물닥 조물닥, 여전히 뭔가 작게 새로운 시도를 하기는 한다. 그래봐야 대부분 찻잔 속의 태풍이다. 내가 만든 것들은 찻잔 밖으로 벗어나는 일이 별로 없다. 그래도 “이건 태풍의 눈이야, 그래서 조용한 거야”, 그런 마음으로 또 매일 뭔가를 조물닥 조물닥. 

그런 마음으로 매번 에세이집 준비를 한다. 잘 산 인생인지는 모르겠지만, 남들과 좀 다르게 산 것 같기는 하다. 차관 안 한다고 돌아서면서, 좀 많이 다르게 된 것 같기는 하다. 그 결정으로 인생 어려워진 사람들이 좀 있다. 늘 미안하게 생각하면서 살아간다. 그걸로도 사실 안 된다. 그 중에 한 사람은 벌써 저세상 사람이 되었다.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은 아니다. 그냥 마음 속의 무게로 담아 놓고 세상을 살아간다. 

나도 많은 결정을 내리고, 많은 사물에 대해서 좋음과 싫음, 그런 감정을 갖게 된다. 그런 걸 되도록이면 유쾌하고 경쾌하게 하려고 하고, 조금은 더 중층적이며 다면적으로 생각하려고 한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는 결정을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내리는 것은 아니다. 인생에는 많은 가치가 있다. 그리고 나도 내가 옳다고 믿는 가치가 의미 있게 만들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한다. 그런 과정이 의미가 있다는 생각을 나도 하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과정은 의미가 없고, 결과만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과정이 의미가 있는 대표적인 것이 삶이다. 우리 모두는 죽는다. 결과는 같다. 뭘 많이 남겨놓고 죽든, 아무 것도 없이 간소하게 죽든, 죽는 것은 같다. 결과만 보면 삶은 다 똑같이 결국은 태어나고 죽고, 딱 두 장면만 남는다. 삶은 과정이다. 죽는 것은 동일하지만, 그 죽음으로 가는 과정이 삶이다. 결국 결과가 중요하다는 것은, 삶의 진실과는 아주 거리가 먼 판단 아니겠나 싶다. 삶 자체가 과정이다. 과정의 의미가 없으면 삶은 아무 의미도 없게 된다. 

4.
좌파 에세이는 이제 마무리를 했고, 다음 번 에세이의 주제는 죽음으로 정했다. 최근 자살과 우울증, 이런 얘기를 많이 다루었다. <어느 중산층의 죽음>, 이 정도로 가제를 정했다. 원래는 책에 관한 에세이가 그 자리에 있었는데, 책이 워낙 인기도 없고, 나는 더더욱 인기가 없어서.. 죽음에 대한 얘기가 그 자리를 대신 채웠다. 책 얘기는 몇 년 더 있다가 하기로 했다. 소나기는 피해가라고 했다고. 별 수가 없다. 

삶에 대해서 조금은 밝고, 그렇지만 너무 가볍지 않은 시선으로 이것저것 살펴보는 일들을 조금씩 한다. 그렇게 해서 좋아진 게 있다면? 내 삶은 확실히 편안해졌고, 더 밝아졌다. 풍요로운지는 잘 모르겠지만, 풍성하기는 하다. 냉장고에 먹을 게 꽉 차 있기는 하다. 그래도 버리는 것 없이, 아이들이 죽어라고 먹어댄다. 삶이 한 순간이 이렇게 지나간다. 

그냥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고, 또 너무 힘들지 않게 살아가려고 하는 정도인에, 생각할 게 의외로 많다. 태어나고 어른이 될 때까지는 정말 판단 없이 그냥 살아가게 된다. 그리고 내 생각이 생겨난 뒤로는 이것저것 내 판단을 내리려고 하지만, 그게 쉽지는 않다. 습관이 만들어놓은 것, 관습이 만들어놓은 것, 내가 판단하지 않은 채 따라왔던 것들이 이제 점점 더 불편해진다. 이상한 짓을 하더라도 이유는 좀 알고 하고 싶다는 작은 생각에, 이것저것 결국 따져보게 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중에 결국 변명을 하게 된다. 

어쩌면 나는 변명해야 하는 게 그렇게 싫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죽는 것보다도 그게 더 싫었던 것 같다. 그래서 뭔가 판단을 하거나 결정을 할 때 많은 시간을 들렸던 것인지도 모른다. 부모나 선생님의 삶이 아니라 내 삶을 살고 싶었다. 지금은 내 삶인가? 아직도 잘 모른다. 그래도 내가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삶에는 조금은 더 가까워진 것 같다. 

다른 사람은 뭔가 한다는 게 큰 결정이고 삶을 바꾸게 되는데, 나는 뭔가 하지 않는 게 큰 결정인 인생이 되어버렸다. 생활인은 원래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 나는 생활인에 더 가까워졌다. 

이제 나에게 큰 얘기는 없다. 그래도 작은 얘기들이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좌파로 남은 인생을 살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도 큰 얘기가 아니다. 하거나 말거나, 그런 얘기다. 그렇지만 그게 같이 나눌 의미가 없는 얘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한국 사회에서 좌파가 의미 없는 존재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주변의 것들을 조금씩 생각하고, 하나씩 판단을 늘려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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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 에세이는 이제 거의 마지막 작업 중인가 보다. 제목에 수많은 버전들이 있있는데, 디자인 쪽에서 "나는 좌파다"를 강력하게 밀어서, 그렇게 결정이 된. 부제는 마지막 순간까지 좀 더 손을 본다고 하는 것 같다.
그냥 내 삶의 후반부는 좌파로 살아가려고 한다. 영광을 볼 일도 없고, 빛을 볼 일도 없는데, 빚이나 지지 않고 살아가면 그 이상 바랄 것도 없다. 갑자기 나는 벤츠를 타야겠어, 이런 미친 짓만 하지 않으면 빚질 일도 별로 없다. 8년 된 아내의 모닝을 타고 다니는데, 이렇게 살면 돈 들어갈 일이 정말 별로 없다. 강남 가면 엄청 눈치 주기는 하지만, 병원에 가면 모닝이 좀 대접 받는다. 주차하기 편하니까 아저씨들이 지상의 한쪽 구석에 대라고, 약간 편의를 봐준다. 이래저래 강남은 잘 안 가게 된다. 어차피 갈 일 없다.. (강남에서 회의 같은 게 생기면 열 번에 한 번 정도, 정말 피치 못할 경우에만 가게 된다. 그 피치 못 할 경우도 이제 점점 줄어든다..)
그냥 남은 인생은 손가락질 받거나 무시 당하는 좌파로 살아가려고 한다. 그렇게 살아야 죽을 때 마음이 편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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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때 참 책을 많이 읽었다. 중학교 2학년 겨울 방학 때 허리가 안 좋아서 집에 누워있던 시절이 잠시 있었는데, 그때 대만 무협지인 ‘군협지’를 읽었다. 서원평, 자의 소녀 그리고 그들을 도와주는 노화자, 주인공들 이름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자의 소녀의 아버지인 역천행이라는 이름도 아직 기억이 나는.. 

그게 너무 재밌어서, 세익스피어를 싹 다 읽고, 그냥 추운 방에서 이불 쓰고 뒤집어져서 그냥 책만 읽었다. 엄청나게 읽었다. 

그때부터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살벌하게 소설들을 읽었다. 한국 소설들은 아주 야한 얘기가 많았는데, 진짜로 재미있었다. 그 시절에만 해도 국한문 혼용체인데다가, 세로 쓰기로 된 책들이었다. 스탠드도 변변치 않아서, 원래도 안 좋은 눈이 그 시절에 아작이 났다. 

그때 막연하게 책 읽으면서 한 평생 살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문득 돌아보니 내가 그렇게 살고 있다. 

어떤 사람은 강연을 아주 좋아하기도 하고, 방송은 더더욱 좋아하기도 하는데.. 이건 성격차이다. 나는 그냥 쓰는 건 그런대로 좋아하는데, 남들 앞에 서는 건 정말 별로다. 애들하고 시간 보내다가 가끔 여유 되면 글 조금 쓰고, 이렇게 사는 지금이 그런대로 만족스러운 편이다. 

내년도 계획을 세우면서, 일정과 고정된 일들을 더 줄이기로 마음을 먹었다. 별 할 일도 없는데, 괜히 바쁜 요 몇 달 동안의 삶이 좀 아닌 것 같다 싶었다. 

코로나 정부 대응하는 걸로 봐서는, 내년 겨울에도 마스크 벗는다는 보장은 없을 것 같다. 미룰 수 있는 것들은 다시 더 미루면서. 미국도 갔다와야 하고, 일본도 갔다와야 하는데, 언제가 될지 모른다. 

이전에 쓰던 책은 이미 손을 떠나갔고, 다음 번 책은 아직 손에 잘 잡히지가 않아서 주저주저하며 사람들과 차 한 잔 하면서 며칠을 보내는 중이다. 문득 돌아보면 소소하게 글 쓰면서 지내는 삶도 아주 나쁘지는 않다. 중학교 때 얼핏얼핏 생각했던 그 모습에 훨씬 더 가까워져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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