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에세이는 가벼운 미셀러니와 좀 더 무거운 에세이로 나뉜다는 게 고전적 구분이다. 나는 이렇게 좀 더 무거운 에세이를 써보고 싶었다. 몽테뉴의 <수상록>, 이 해골 복잡하게 만드는 이 책이 원래 제목이 에세이다. essais라는 말의 원래 의미는 시도다. 해보지 않은 글의 시도를 한다는 의미 정도인데, 기존의 글의 형식으로는 담아낼 수 없던 것을 담기 위한 새로운 시도를 한다는 의미다. 

처음 냈던 에세이는 <1인분 인생>이다. 40대를 지나면서 40대를 소재로 쓴 글들인데, 그게 어느 정도 반응이 있었다. 그래서 에세이라는 것을 쓸 수 있게 되었다. 가장 최근에 쓴 좌파 에세이까지, 에세이는 몇 번 썼는데, 그 중에는 괜찮게 간 것도 있고, 헤맨 것도 있다. <아날로그 사랑법>은 포토 에세이였는데, 결국 에디터가 회사를 그만두게 될 정도로, 별 거 없이 헤맸다. 그렇지만 내 인생은 많이 바뀌었다. 고양이들과 지내던 시절의 얘기를 정리한 건데, 내 삶에는 큰 영향을 남겼다. 그 책 준비하는 과정에서 내가 가졌던 감성들이 변했고, 결국 두 아이의 아빠가 되었다. 지금도 그 책을 보고 인생이 좀 변했다고 소위 독자 팬레터 같은 게 가장 많이 왔던 책이다. 

에세이는 1년에 한 권씩 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다. 나는 워낙 글을 많이 쓴다. 블로그나 페이스북에 공개하는 글도 있고, 전혀 공개하지 않고 그야말로 비망록 같이 나에게만 남는 글도 있다. 어차피 많이 쓴다. 그래서 좀 주제를 정해서 그렇게 글을 쓰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물론 매년 내는 건 무리다. 그렇게까지 치밀하게 살지는 않는다. 

2.
누군가의 삶을 보면서 그 사람의 더 많은 것을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가장 최근의 기억으로는 <바퀴 달린 집>의 성동일이다. 시즌 2까지는 몇 번을 봤고, 시즌 3는 아직 초반밖에 보지 않았다. 게스트들이 오면 보통의 경우는 나이 많은 사람들이 캠핑카에 있고 나이 어린 순으로 바깥에 나가서 텐트를 칠 것 같은데, 성동일의 경우는 반대였다. 그게 아주 인상적이었다. 성동일의 삶과 요즘의 모습을 좀 더 자세히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에 불어보니까, 성동일하고 아주 친한 사람이 걸리지는 않았다. 그래서 아주 장기 계획으로.. 지금 당장 만날 건 아닌 것 같고. 성동일이 만약 에세이집을 내면 아마 나는 1착으로 보게 될 것 같기는 하다. 예전에는 그가 되게 보수적이라고 생각해서, 그냥 좀 그랬다. 

나이를 처먹고 나니까, 보수니 진보니, 그렇게 걸치고 있는 옷들은 이제 잘 보이지 않게 된다. 일종의 언어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영어를 쓰든, 일어를 쓰든 혹은 또 다른 말을 하든, 그게 뭐가 중요하겠나. 그 사람이 살아가는 삶이 더 중요하지. 

나는 20대 후반, 30대 초반, 정말로 질풍노도 같은 삶을 살았다. 30대 중반이 되어서 책을 쓰기 시작했다. 그 뒤로도 몇 개의 사건이 더 있었지만, 그야말로 그 또한 지나가리라… 

최근 두 번에 걸쳐서 삶을 아주 단촐하게 만들었다. 2016년에 아이들 보기로 하면서 대부분의 사회 생활과 방송 같은 것들을 정리했다. 2019년에 내 주변도 아주 단촐해졌다. 2019년에는 되는 일이 하나도 없기도 했거니와, 인생일대의 위기이자, 대전환점 같은 것이 되었다. 그 뒤로는 작업을 위해서 인터뷰를 하는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내가 먼저 만나자고 하는 일이 없게 되었다. 하다 못해 출판사 가서 에디터 만나는 일도 거의 안 하게 되었다. 집으로 찾아오는 사람들 아니면 이제 거의 만나지 않는다. 그것도 어지간하면 피한다. 극한의 미니멀리즘과 비슷하다. 

집에 오거나 집 근처에서 만나는 거의 식구급으로 친한 사람들 몇 명이 있다. 그들이 힘들 때나, 내가 힘들 때나, 술이나 같이 마시면서 그 시간을 지내고 버텼던 사람들이다. 

가끔 외국에 갔었는데, 팬데믹 이후로 그것도 좀 어렵게 되었다. 내 삶이라는 것은 정말 기본적인 루틴의 연속이다. 큰 사건이라고 해봐야, 20년 가까이 한 쪽 구석에서 먼지만 뒤집어 쓰고 죽어가던 앰프나 스피커를 지난 여름에 수리하고 손질해서 살려낸 일, 뭐 그 정도다. 애들이 한 해 한 해 나이를 먹어가는 것을 제외하면 내 주변에서는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 

질풍노도의 시기는 내 인생에서는 지나갔다. 약간의 변화가 있다면, 해금에 관한 책을 쓰기로 한 것, 그래서 코로나가 좀 편해지면 연주자들을 만나볼 계획이 생겼다는 것, 그런 정도다. 원래도 해금에 관한 책은 지영희 평전처럼 애초의 계획에 있었다. 여러 사건이 생겨서 그 책은 쓰기가 어렵게 되었는데, 그 자리에 젊은 연주자들의 얘기로 다시 한 번 시도해볼까, 그런 정도의 변화다. 

음악하는 사람들을 안 보게 된 건 10년 좀 넘는 것 같다. <문화로 먹고 살기> 준비하던 시절에는 붕가붕가 레코드 사장 등 그 시절의 연주회나 뮤지컬 기획자들을 좀 만났었다. 그때만 해도 뮤지컬 정말 초창기였다. 드라마 피디들도 꽤 만났다. 그때만 해도 내가 힘이 넘쳤다. 

3.
지금의 내 삶은 아주 편안한 삶은 아니지만, 변화가 적은 삶인 것은 맞는 것 같다. 한 해에 새로 만나는 사람은 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고, 특별히 생겨나는 일은 거의 없다. 새로운 변화라고 해봐야 예전에 해놓은 일들이 이제 뭔가 성과가 되어서 돌아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최근에 내린 결정 중에 가장 큰 거를 꼽자면, 진짜 별 거 아니다. 내년 대선에는 심상정에게 투표하기로 했다. 별 이유는 없다. 오랫동안 그야말로 우정으로 지냈던 심상정의 마지막 대선에서 그에게 표 하나 주는 게 별 사건도 아니고, 아무 것도 아니다. 그게 거의 기억할만한 유일한 사건일 정도로, 내 주변에서는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 물론 애들 학교에서 확진자가 나와서 하루 종일 애들을 봐야 한다거나, 그런 일들이 나에게는 큰 일이지만, 그건 누구나 겪는 거고. 

경제인류학자인 마샬 살린스가 <석기 시대 경제학>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want not, lack not이라는 얘기를 세계적으로 유행시킨 적이 있다. 다른 건 몰라도, 내 삶은 그런 살린스의 얘기에 조금은 더 가까워진 것 같다. 뭐 크게 바라는 게 없으니까, 크게 결핍한 것도 없다. 내가 사는 사회가 조금은 더 나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아직도 하지만, 그래도 내가 크게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사실도 역시 받아들이게 된다. 그래도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으니까, 조물닥 조물닥, 여전히 뭔가 작게 새로운 시도를 하기는 한다. 그래봐야 대부분 찻잔 속의 태풍이다. 내가 만든 것들은 찻잔 밖으로 벗어나는 일이 별로 없다. 그래도 “이건 태풍의 눈이야, 그래서 조용한 거야”, 그런 마음으로 또 매일 뭔가를 조물닥 조물닥. 

그런 마음으로 매번 에세이집 준비를 한다. 잘 산 인생인지는 모르겠지만, 남들과 좀 다르게 산 것 같기는 하다. 차관 안 한다고 돌아서면서, 좀 많이 다르게 된 것 같기는 하다. 그 결정으로 인생 어려워진 사람들이 좀 있다. 늘 미안하게 생각하면서 살아간다. 그걸로도 사실 안 된다. 그 중에 한 사람은 벌써 저세상 사람이 되었다.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은 아니다. 그냥 마음 속의 무게로 담아 놓고 세상을 살아간다. 

나도 많은 결정을 내리고, 많은 사물에 대해서 좋음과 싫음, 그런 감정을 갖게 된다. 그런 걸 되도록이면 유쾌하고 경쾌하게 하려고 하고, 조금은 더 중층적이며 다면적으로 생각하려고 한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는 결정을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내리는 것은 아니다. 인생에는 많은 가치가 있다. 그리고 나도 내가 옳다고 믿는 가치가 의미 있게 만들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한다. 그런 과정이 의미가 있다는 생각을 나도 하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과정은 의미가 없고, 결과만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과정이 의미가 있는 대표적인 것이 삶이다. 우리 모두는 죽는다. 결과는 같다. 뭘 많이 남겨놓고 죽든, 아무 것도 없이 간소하게 죽든, 죽는 것은 같다. 결과만 보면 삶은 다 똑같이 결국은 태어나고 죽고, 딱 두 장면만 남는다. 삶은 과정이다. 죽는 것은 동일하지만, 그 죽음으로 가는 과정이 삶이다. 결국 결과가 중요하다는 것은, 삶의 진실과는 아주 거리가 먼 판단 아니겠나 싶다. 삶 자체가 과정이다. 과정의 의미가 없으면 삶은 아무 의미도 없게 된다. 

4.
좌파 에세이는 이제 마무리를 했고, 다음 번 에세이의 주제는 죽음으로 정했다. 최근 자살과 우울증, 이런 얘기를 많이 다루었다. <어느 중산층의 죽음>, 이 정도로 가제를 정했다. 원래는 책에 관한 에세이가 그 자리에 있었는데, 책이 워낙 인기도 없고, 나는 더더욱 인기가 없어서.. 죽음에 대한 얘기가 그 자리를 대신 채웠다. 책 얘기는 몇 년 더 있다가 하기로 했다. 소나기는 피해가라고 했다고. 별 수가 없다. 

삶에 대해서 조금은 밝고, 그렇지만 너무 가볍지 않은 시선으로 이것저것 살펴보는 일들을 조금씩 한다. 그렇게 해서 좋아진 게 있다면? 내 삶은 확실히 편안해졌고, 더 밝아졌다. 풍요로운지는 잘 모르겠지만, 풍성하기는 하다. 냉장고에 먹을 게 꽉 차 있기는 하다. 그래도 버리는 것 없이, 아이들이 죽어라고 먹어댄다. 삶이 한 순간이 이렇게 지나간다. 

그냥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고, 또 너무 힘들지 않게 살아가려고 하는 정도인에, 생각할 게 의외로 많다. 태어나고 어른이 될 때까지는 정말 판단 없이 그냥 살아가게 된다. 그리고 내 생각이 생겨난 뒤로는 이것저것 내 판단을 내리려고 하지만, 그게 쉽지는 않다. 습관이 만들어놓은 것, 관습이 만들어놓은 것, 내가 판단하지 않은 채 따라왔던 것들이 이제 점점 더 불편해진다. 이상한 짓을 하더라도 이유는 좀 알고 하고 싶다는 작은 생각에, 이것저것 결국 따져보게 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중에 결국 변명을 하게 된다. 

어쩌면 나는 변명해야 하는 게 그렇게 싫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죽는 것보다도 그게 더 싫었던 것 같다. 그래서 뭔가 판단을 하거나 결정을 할 때 많은 시간을 들렸던 것인지도 모른다. 부모나 선생님의 삶이 아니라 내 삶을 살고 싶었다. 지금은 내 삶인가? 아직도 잘 모른다. 그래도 내가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삶에는 조금은 더 가까워진 것 같다. 

다른 사람은 뭔가 한다는 게 큰 결정이고 삶을 바꾸게 되는데, 나는 뭔가 하지 않는 게 큰 결정인 인생이 되어버렸다. 생활인은 원래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 나는 생활인에 더 가까워졌다. 

이제 나에게 큰 얘기는 없다. 그래도 작은 얘기들이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좌파로 남은 인생을 살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도 큰 얘기가 아니다. 하거나 말거나, 그런 얘기다. 그렇지만 그게 같이 나눌 의미가 없는 얘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한국 사회에서 좌파가 의미 없는 존재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주변의 것들을 조금씩 생각하고, 하나씩 판단을 늘려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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