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를 억지로 집에 모시고 온 다음 날의 아침은 바빴다. 아내와 동네 병원에 어머니를 모시고 가서, 수액 주사를 위해 예진을 하는 걸로 시작하였다. 병원에서는 장염, 위염, 1주일채 약을 지어주었다. 

기왕 병원에 간 김에 나는 미루고 미루었던 3차 접종을 했다. 몇 주째, 정말 병원에 갈 시간이 없었다. 아버지 병실에 있거나, 아버지 병원을 알아보거나, 그리고는 어머니한테 가거나. 살짝 살짝 시간이 나면 나도 먹고 살기 위한 일을 하고. 

점심 때에는 출판사에 가서 오랫동안 같이 일했던 에디터가 내민 출판사를 옮기기 위한 계약서에 서명을 했다. 복잡한 일들이 겹쳐서, 아니 나도 나이를 먹어서 출판사를 좀 간소하게 하는 일들을 하는 중이다. 매번 에디터가 바뀌고, 또 새롭게 익숙해지는 일이 이제는 버겁다. 

집에 돌아오면서 같이 일하던 화가에게 새로운 작업에 대해서 설명하는 전화를 하라 하다가 잠시 주저했다. 그 사이 결혼해서 아이 엄마가 되었는데, 그래도 차라도 한 잔 하면서 설명할 일이지, 전화로 얘기하는 건 좀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년에는 미루고 미루어두었던 동화를 마무리하기로 했다. 좀 정신이 없더라도 같이 일할 화가와는 차 한 잔은 하면서 얘기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이 되기 전에 큰 애랑 시장 반찬가게에 나물 같은 반찬들 사러 갔는데, 어머니도 같이 가셨다. 잡채랑 전 같은 것을 샀고, 어머니는 쑥으로 만든 부침개를 집어 드셨다. 드실 수도 없기는 한데, 그냥 손이 가는 것 같은. 하나하나가 사실 거의 마지막 같은 일이다. 다행히 며칠 내로 몸이 회복되실 수도 있고, 아니면 이게 같이 반찬가게에 들린 마지막 일일 수도 있을 것 같고, 어렸을 때 화곡 시장에 늘 어머니를 따라다녔고, 무거운 짐 하나를 내가 들었었다. 그 시절 동태 머리 자르고 토막 내는 것을 정말로 유심히 지켜봤었다. 

거짓말 같은 사연이지만, 그 아줌마가 그 시장에서 동태 팔면서 애들 공부를 다 시켰다. 나중에 현대에 입사하게 되었을 때, 입사 절차로 보증인 몇 명이 필요했다. 어머니가 부탁해서, 어린 시절부터 보아왔던 그 생선가게 아줌마가 입사 서류에 보증인이 되어주셨다. 그 시절만 해도 회사에 들어갈 때 보증인 구하는 게 또 큰 일이었다. 
저녁 때에는 큰 애가 갑자기 짜장면을 먹고 싶다고 해서 칼국수면 사다가 짜장면 해먹었다. 칼국수면을 찬물에 적당히 헹구면 수타 짜장면과 가장 비슷한 맛이 된다. 졸지에 연말 저녁은 짜장면 만찬이 되었다. 

어머니는 속이 안 좋아서 결국 죽은 드시지 못했다. 나중에 감말랭이 조금하고 두유를 드셨다. 아직은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걷고 계시다. 

내 삶이 내 생각 중심으로 움직이지 않은 게 몇 년 된다. 애들 보고, 아버지 병수발 하다가, 요즘은 어머니까지. 그래도 아내가 요즘은 일하는 게 좀 자리를 잡아서, 보람이 아주 없지는 않다. 

어머니는 어제 잠을 좀 설쳤다고 8시에 잠자리에 누우셨다. 그 사이 나는 청소기를 한 번 돌렸고, 박스 쓰레기 등 쓰레기를 한 번 내놨다. 집안 일을 그렇게 많이 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것저것 하다 보면 시간이 금방 간다. 

오전에 작업하던 걸 다시 열어봤더니, 넘버링 8까지 가야 하는 제목 잡기에 4까지 해놓고 내려놓은 게 보인다. 하이고.. 이걸 마무리하는 게 원래 오늘 내가 할 일이었는데, 반만 하고 내년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어머니는 노년이 되면서 점점 더 고집이 강해지셨다. 모시기가 쉽지는 않다. 예전처럼 나도 고집을 불리지는 않고, 그냥 하시고 싶으신 대로 한다. 그렇지만 그냥 두라는 말은 그냥 듣기가 좀 그렇다. 김수영이 시 <공자의 생활난>에서 “그것이 작전과 같은 것이기에 어려웁다”라고 한 적이 있다. 삶이 그렇다. 나와 관련된 일은 그렇게 작전처럼 해도 어느 정도는 되지만, 식구와 관련된 일은 그렇게 되지가 않는다. 그냥 흐르는 대로 놔둘 뿐이다. 

어머니는 1주일 동안 우리 집에 오시기로 하셨는데, 사실 얼마나 계실지는 잘 모른다. 우리 집에도 아픔이 있고, 쉽게 처리하기 어려운 일들도 좀 있다. 그래서 많은 것들을 내가 생각하는 최적의 상태에 맞출 수가 없다. 

주변의 몇 사람이 나에게 효자라고 문자를 보냈는데, 그렇지는 않다. 그렇게 효자로 산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 없다. 그냥 어쩔 수 없으니까 해야 하는 최소한을 할 뿐이다. 그 최소한도 버겁다. 

다음 주 일정을 보니까 새로 준비해야 하는 특강이 두 개가 있고, 영화 시사회에 간다고 한 것도 있다. 돌아삐리.

바람 피우는 친구 얘기를 얼핏 들었다. 대단하네. 나는 그냥 나 먹고 살고, 애들 먹는 것 챙겨주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꽉 차고, 엄마, 아버지, 신경 쓰는 것만으로도 온 신경이 쓰는데. 얼마나 건강 관리를 잘 하고, 시간 관리를 잘 하기에 바람 필 여력이 있나 싶다. 

나에게 남은 마지막 여력을 가지고 나는 윈스턴 처칠에 관한 영화 <다키스트 아워>를 틀었다. 예전에 보기는 했는데, 건성건성 봐서 뭔 얘기인지 기억이 하나도 안 난다. 이게 이 해가 가기 전에 나에게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여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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