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병원으로 가신 후, 어머니의 삶은 아주 어려워졌다. 특히 어머니가 치매 진단 받으신 이후로 두 분이 대체적으로 같이 지내셨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났는데, 아버지가 없이 어머니가 외출하기는 아주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어머니가 식사를 며칠째 못하고 계시다는 사실은 어저께 알았다. 바로 죽을 사들고 집에 갔다. 저녁 때 통화를 했는데, 안 드셨다. 

병원에 가는 것도 싫다고 하시고, 아무 데도 안 간다고 하시는 데, 방법이 없다. 이런저런 제도를 좀 살펴봤는데, 쓸 수 있는 제도가 별로 없다. 보건소에서 하던 왕진 프로그램 같은 게 있었는데, 코로나 이후로는 일단 스톱 상태다. 예전에는 주변에 친한 사회복지사들이 좀 있었는데, 몇 년 문걸어잠그고 살았더니, 그것도 잘 모르겠다. 게다가 어머니는 누군가 집에 오는 걸 끔찍하게 싫어하신다. 예전 치매로 누워계시던 시절에도 공공 프로그램의 도움을 좀 받으려고 했었는데, 결국 필요 없다고 오지 말라고 하신. 

아내랑 집에 두 번을 가서 결국 집으로 모시고 오는데 성공했다. 시껍했다. 기술적으로는 일단 119 도움을 받아서 병원에 가는 게 맞는데, 집에서 꼼짝도 안 하시겠다고 그냥 누워만 계시는데.. 

그냥 내가 생각한 것은, 아버지 돌아가시기 전에 어머니가 먼저 돌아가시는 건 안 된다는.. 어제 어머니 얼굴색 보면, 그렇게 아무 것도 안 드시고는 며칠 못 버티실 것 같다는. 

하여간 겨우겨우 모시고 오면서 한시름 놓았다. “일단 1주일만”, 그렇게 단서를 달아서 겨우겨우. 

아버지 병수발을 막냇동생하고 나하고 둘이 나누어서 했었는데, 한 달 가량 되니까 그야말로 두 집이 다 난가가 되다시피. 아버지한테 매달려 있으니까 어머니까지 손이 갈 형편이 안 된다. 

우여곡절 끝에 집에 모셔오는 건 성공을 했고, 저녁에는 아내가 끓인 잣죽 한 그릇 드셨다. 내일은 동네 병원에라도 가서 긴급 치료를 좀 받고, 위염 좀 가라 앉으면 끓인 밥으로 넘어가볼까 싶은. 

생이라는 것이 육신에 얼마나 간당간당 붙어 있는 것인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잠시 눈 돌리면 떠나갈 수 있는 불안한 균형이 바로 삶이 아니겠나 싶다. 

다섯 살 때 외할머니가 돌아가실 뻔한 적이 있었다. 그때 외할머니가 나 학교 들어가는 것은 꼭 보고 싶다고 그러셨던 게 기억 난다. 그 다음에는 나 대학 가는 것까지는 보고 싶다고 하셨다. 나중에 내가 학위 받고 현대 다니던 시절에 돌아가셨다. 그때 조모의 경우는 휴가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 시절에 외할머니가 왜 나 초등학교 들어가는 것은 보고 싶으시다고 말했는지, 이제는 좀 알 것 같다. 살아야 할 이유를 끝없이 찾지 못하면 삶은 의미가 사라져버린다. 

며칠은 어머니가 집에 계실 거다. 시껍한 순간을 또 한 번 넘겼다. 

내가 다섯 살 때 이사간 집에서 부모님은 아직도 사신다. 초인종이니 이런 건 이미 다 망가졌고, 막냇동생이 가지고 있는 비상용 열쇠를 복사할 방법이 없을 것 같아서, 열쇠집 불러서 대문 자물쇠부터 새로 만들려고 했었다. 막내 동생이 열쇠집 몇 군데를 돌아서 20세기에 만들어진 진귀한 열쇠를 결국 복사해왔다. 걔도 사소한 일로 땀 뻘뻘 흘린. 

아버지 집에 열쇠 주러 잠깐 온 동생은 방송 준비해야 한다고 한다. 걔도 두 달 전부터 고생이 말이 아니다. 원래는 안식년인데, 코로나 때문에 한국에 있다가 요즘 엄청 고생하는 중인. 

어머니는 손자들 노는 거 보고, 잠시 즐거우셨고, 죽 한 그릇을 다 드셨다. 밥 먹고 사는 게 이렇게 큰 일인가, 잠시 그런 생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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