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대학교 상담실에서 조그맣게 특강 부탁이 하나 왔다. 학교 상담실에 오는 학생들에게 해주는 방학 프로그램 같은 건데, 경제 생활에 대해서 얘기를 해줄 수 있느냐고 정말 조심스럽게 부탁이 왔다. 

보통 때 같으면 어렵다고 할 일인데, 이번에는 좀 고민을 시작했다. 

내년 후반기에 10대를 위한 경제학을 준비하고 있는 게 있다. 미래 전망과 경제 생활에 대한 얘기를 하려고 하는데, 이전에 쓰던 책들과는 약간 결이 다르다. <불황 10년>의 흐름을 이어가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원래는 거시경제에 대한 책을 한 권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걸 아예 10대 버전으로 바꾸고, 거시 보다는 진짜 마이크로의 마이크로 같은 얘기들을.. 피케티의 사회주의에 관한 책에 추천사를 달면서, 자산 문제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다가.. 

원래 일정에는 없던 일인데, 내년에는 학생들하고 청년에 관한 책을 한 권 해볼까 하는 생각이 있다.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가 벌써 10년도 더 되었다. 학생들하고 실험적인 일을 많이 하던 시절이었다. 아이들 태어나기 전이라서 그런 것도 가능했던. 그 시절의 비교적 후반부에 합류했던 친구 증의 한 명이 이제는 국회의원이 된 장혜영이다. 세상 일이라는 건 진짜 모른다. 

나도 최근의 대학생들하고 작업을 한 번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래저래 행정적으로도 그런 게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성결대학교에서 벌써 세 학기째 수업을 하는 중이다. 시작하자마자 계속 코로나 기간이라서 새롭게 해본 게 아무 것도 없다. 내년에는 그래도 좀 모일 수도 있고, 이것저것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그래도 세 학기째 하니까 이제 약간 익숙해지기도 했고, 어떻게 하면 될 건지 약간 느낌이 오기도 했다. 나도 이제는 애정이 좀 생겼다. 시간이라는 게 그렇다. 

최근에 청년 얘기들을 조금 살펴봤는데, 가장 큰 특징이라면, 애정이 없다는 거 아닌가 싶었다. 사회과학에서 대상을 연구할 때 너무 감정을 이입하는 것은 좀 그렇기는 한데, 그래도 애정이 아예 없으면 그 연구를 끌어가기가 그렇다. 의무감만으로 하는 연구는 너무 매말랐고, 정의감으로만 하면 끝까지 끌고 가기가 어렵다. 학위 받고 초반에 어버니즘의 연장선에서 도시빈민 연구를 좀 시도했는데, 그게 너무 의무감만으로 하려고 하다 보니까.. 내가 지쳐서 결국 손을 놓은 적이 있다. 그렇게는 오래 하기가 어렵다. 

청년을 너무 표로만 보거나, 아니면 화난 눈으로 보거나.. 보수 쪽에서 나오는 청년 얘기도 그렇고, 민주당 계열에서 나오는 청년 얘기도 그렇고, 애정이 너무 없다. 청년들이 쓴 것도 좀 읽어봤는데, 정치에 대한 환멸과 실망이 너무 커서 그런지, “너네들 다 나빠”, 이런 증오 가득한 얘기가 좀 많은 것 같다. 

애정은 연구의 기본인데, 학문이 너무 분화되다 보니까, 이런 기본에 관한 것들을 다들 잠시 깜빡깜빡 하는 것 같다. 서민이 기생충 한참 연구할 때, 기생충을 사랑한다는 얘기를 여러 번 했었다. 예전에 방송할 때 서민이 박사 과정 준비하던 연구실에서 촬영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그 실험실에 열심히 연구했던 예전 학샣들 사진이 몇 개 붙어있었는데, 거기에 서민 사진도 있었다. 요즘처럼 서민이 유명해지기 이전의 일이다. 물어보니까 진짜 열심히 하던 선배라는 전설이 있다는.. 그가 “기생충을 사랑한다”고 하는 말이 어떤 건지, 그때 약간 느낌이 왔었다. 

애정이 다는 아니다. 그렇지만 애정을 가지고 사물을 들여다보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사이에는 온도감은 물론 결과에도 좀 차이가 나는 것 같다. 

청년을 너무 기계적으로 표로만 보고 분석을 하면, 그야말로 아나토미 방식으로 보게 되는데.. 생물학 처음 공부할 때, vivant, 살아있는 것의 속성에 대해서, 생명현상의 실체에 대해서는 우리가 아직도 잘 모른다고 얘기했던 게 아주 인상적이었다. 해부학적으로 모든 것을 밝힌다고 해도 생명현상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그렇게 알 수 있는 게 아니지 않은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 특강 부탁 하나 온 것에 대해서 한다고 할지, 어렵다고 할지, 계속 생각 중이다. 아버지가 암이라는 것은 지난 주 금요일날 알게 되었다. 아직 암 진단서도 나오지 않은 상태다. 아버지는 계속 집에 가시겠다고 하시는데, 아마 집에 가시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언제 뭔 일이 벌어질지 몰라서, 나도 일정 잡기가 아주 어렵다. 내가 병원에 가야 해서, 장모님이 요즘 아주 고생이시다. 

고양이 돌보기 시작해서, 그 뒤로 아이들 태어나고, 이제 아버지, 내 시간을 내가 결정하지 못한 게 그럭저럭 10년 가까이 된다. 많은 여성들은 이렇게 살아가고 있지 않았나 싶다. 

간단한 강연 하나 한다, 어렵다 결정하는 것도 쉽지 않다. 날은 추운데, 비가 내린다. 오후에는 은행연합회에서 강연하기로 한 게 있다. 아주 오래된 친구가 거기에서 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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