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좌파 에세이 초고를 열어서 넘버링을 하나 높였다. 버전 11. 부제를 ‘슬기로운 좌파 생활’로 최종 결정하면서, 거기 맞춰 조금씩 손을 볼 생각이다. 이 부제는 원래 출판사 대표가 제목으로 밀었던 건데. 결국 제목은 ‘좌파 상실의 시대’로 결정이 되었고. 

부제가 막판까지 참 여러 개가 있었다. 원래는 10대용 좌파 교양서 같은 책을 생각했었는데, 현실적 벽에 부딪혀, 좀 더 어른스러운 내용으로 가기로 했고. 그게 반영된 제목이 ‘좌파 상실의 시대’다. 한 때 우리도 좌파 전성기를 꿈꿨던 시대가 있었다. 

버전 11 작업이 끝나면, 진짜로 원고는 손을 떠나고, 여기에서 아쉬웠던 10대들에 대한 얘기는 내년 말 정도로 생각하는 10대 경제학으로 넘길 생각이다. 좌파 에세이에서 인공지능 얘기는 좀 했는데, 유전공학 얘기를 비롯한 미래 경제에 대한 얘기는 10대 경제학으로 넘길 생각이다. 

지금 좀 장기 작업으로 해보고 싶은 건 가칭 ‘전세계의 극우파’, 요런 얘기들이다. 스웨덴 얘기는 좌파 에세이에서 조금 다루었는데, 스위스랑 프랑스 얘기는 좀 더 폭넓게 해보고 싶다. 스위스 경제라는 주제로 스위스만 따로 떼어서 책을 한 권 준비할지, 아니면 극우파로 묶어서 좀 더 여러 나라를 다룰지, 아직은 모색 중이다. 

좌파 에세이를 준비하면서, 이래저래 내 삶에 대해서도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특히 과학기술에 관한 책들을 많이 읽었는데, 주로 IT 계통의 엔지니어들이 많이 쓰는 leftist라는 단어는 나도 잘 모르던 얘기들이었다. 그냥 번역해서 좌파라고 하면 원래의 의미가 전혀 전달이 안 되어서 나는 ‘레프티스트’라고 썼다. copy left 운동을 하는 좌파, 그런 정도의 의미로 볼 수 있다. 

겨울에는 인공지능 공대 교과서도 보고, 분자생물학 교과서도 좀 볼 생각이다. 가볍게 개요만 봐서는 사실 나중에 좀 응용하기가 어렵다. 듬성듬성 보더라도 역시 교과서를 한 번 봐야, 그 위에 뭐가 쌓일 것 같다. 교과서 안 보고 대충대충 이해했다고 넘어가면, 그때는 편한데, 나중에 결국 후회하게 된다. 

이런 책들을 보면서 내가 어떤 것들을 좋아하는지, 비로소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는 그렇게 딱히 머리가 좋거나, 남들보다 엄청난 정의감을 가지고 있거나, 그런 스타일은 아니었다. 그냥 약간의 차이가 있다면, 호기심이 좀 더 많은 편이었던 것 같다. 도서관에 들어가면 원래 보기로 한 책을 읽는 경우가 별로 없고, 그냥 이것저것 막 아무 거나 빌려서 쌓아놓고 막 넘기는 스타일이었다. 그냥 차분히 앉아서 궁금한 거 찾아보는 거, 이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스타일의 삶이다. 

앞으로는 그렇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생각하면 문재인 정권 동안에 내가 잃어버린 것은 호기심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저것 눈치 보느라고, 그냥 크게 티 나는 일 안 하고, 조용히 지내다 보니까, 호기심도 그냥 같이 쉬고 있었던 것 같다. 사실 지난 몇 년 동안 새로 배우거나 새롭게 시도한 게 없다. 애들 태어나고 나서 치워두었던 진공관 앰프랑 CD 플레이어 다시 꺼내서 설치한 게 내가 새롭게 한 거의 유일한 일이다. 사실 그건 새로 한 건 아니다. 결혼하기 전에 내가 만들었던 시스템을 그냥 다시 손질해서 재가동한 것이다. 어떻게 보면 문재인 정권에서 내가 새롭게 한 일은 거의 없고, 예전에 이미 했던 생각들을 다시 정리하거나 정돈한 것 밖에 없다. 창고에서 뭔가 꺼내서 수선하는 일 외에는 한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은 인생을 이렇게 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재미가 없어서 그렇다. 그렇다고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서 뭔가 삐가번쩍한 일을 도모하는 것, 이런 것도 내 스타일 아니다. 난 좀 더 호기심 많고, 모르는 것들을 살펴보는 걸 좋아한다. 원래 그렇게 태어난 것 같다. 

그냥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문재인 정권에서 내가 결정한 것은 딱 두 개다. 사실 뭐가 먼저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공직은 안 한다는 거, 그리고 남은 인생은 좌파로 살아가겠다는 거, 요거 딱 두 개다. 두 개 다 많은 사람들이 반대한 결정이기는 한데, 그게 가장 내 마음이 편하다. 지금까지 날 위해서 살아오지도 못 했고, 날 위해서 뭘 한 적도 거의 없다. 그냥 아주 조금은, 나를 위해서 살기로 했다. 

뭐 대단한 건 아니다. 오랫동안 껴안고 살았던 와트퍼피 복각 스피커는 베란다에 방치되어 있었더니 한 쪽 트위터가 삭았다. 나에게 언젠가 여유가 생기면 하고 싶은 일은, 결혼할 때 샀던 이 복각 와트퍼피에 자리를 잡고 살아가는 삶이었다. 10년 넘게, 힘들거나 어려울 때나, 그 생각만 하면서 살았다. 고칠까 말까, 지난 여름 내내 그 생각만 했는데, 결국 친구가 자기가 고쳐서 쓰겠다고 해서, 그렇게 주기로 했다. 와트퍼피 살리는 일이 내 인생에서 빠지고 나니까, 정말로 뭐가 목표가 되어야 할지, 아무 생각 안 나는 그런 시간이 흘렀다. 

지금은 아니지만, 시간이 좀 지나서 사는 게 좀 더 넉넉해지면 지금 쓰는 것보다는 좀 더 모던한 소리를 내주는 스피커 두 조를 사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좀 괜찮은 앰프도 하나 사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마음을 먹고 나서야 한결 편안해지는 걸 느꼈다. 그리고 제일 처음 집어든 책이 인공지능에 관한 책이었다. 인공지능 책 보면서 자율주행 관련된 책도 좀 보고, 기왕 읽는 김에 분자생물학에 관한 책들도 좀 읽었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조금은 느낌이 오는 것 같다. 

공직을 할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엄청나게 앞으로 나서서 이거 하자, 저거 하자, 그렇게 할 생각도 없다. 그렇다고 뒷짐 지고 앉아서 논평하는 스타일로 살아갈 생각은 더더욱 없다. 논평이 나쁘거나 의미가 없는 건 아니다. 그것도 굉장히 중요한 일이기는 한데, 나는 뭔가 만들어내는 형태의 삶이 훨씬 더 보람 있고, 재밌다. 그건 아주 오래 전에 내 삶에 대해서 내가 내린 선택이다. 

아주 오랫동안 미루어 두었던 이승만 얘기도 내년에는 시작하는 계기를 만들어보려고 한다. <당인리> 하던 중간에 생겨난 얘기인데, 부산 중심으로 펼쳐질 얘기다. 딱 준비하려고 하는데, 바로 코로나 터지면서 부산에 제대로 가 볼 수가 없었다. 그냥 나의 로망이다. 이승민 얘기하다 보면 그의 정적이었던 조봉암도 나올 공간이 있을 것 같다. 조봉암 얘기는 지금 사람들이 보는 것과는 좀 다른 각도에서 나도 살펴보고 싶다. 

나머지는 대체적으로 내릴 결정들은 요 며칠 동안 거의 다 내렸는데, 아직도 마음을 못 먹은 것은 이번 대선에서 누구에게 투표할지, 이건 아직 결정을 못 했다. 그냥 이재명 찍을지, 아니면 그래도 살아온 시간의 정을 생각해서 심상정 찍을지, 이 결정이 쉽지 않다. 이게 논리만으로는 설명되지가 않고, 정서적인 것도 많은 것 같다. 아직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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