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인리는 이래저래 만드는 과정이 좀 고통스럽기는 했다. 진짜 뼈골을 갈아넣는 느낌이었다. 초고 돌렸더니 어렵다고 아우성이었다. 다 뒤집어엎고, 어지간한 에피소드들은 다 날렸다.

지진 현장에 도착한 공무원들 에피소드는 마지막까지 날리기가 아까웠다. 그렇지만 이 사람들이 소위 missing person이 되어버리는.. 끝까지 남아있을 사람들 아니면 중간에 다 날리고.. 어려운 얘기도 다 날리고.

메가, 기가까지는 사람들이 봐줬는데, 여기에 테라 나온 다음에는.. 이건 또 뭐여? 결국 내용과 상관 없이 사람들 피곤하게 만드는 단위 같은 것들도 다 빼고, 퍼센트만 남겨놓았다.

모피아 때에도 계약 관련된 것은 출판사에 일임을 했었는데, 이번에도 그렇게 한다. 잘 알지도 모르면서 콩 내라 감 내라, 영 내 스타일 아니다.

현재로서는 웹튠은 계약 마무리 단계인가 보다.

거의 10년도 더 된 일이기는 한데, 나중에 아주 유명해진 만화가들이 같이 작업을 하자고 했던 적이 있었다. 너무 바쁜 시기이기도 하고, 또 건강도 아주 어려운 때라서.. 그 사람들이 지금은 어마무시하게 유명해진.

하여간 기왕에 해보게 된 거, 웹튠도 몇 개 더 하기로 했다. 만들기로 한 얘기들이 몇 개 더 있다.

모피아 때에는 드라마 판권이 먼저 팔렸는데, 근혜 시대가 되면서 결국 편성은 되지 않았다.

영화 판권은 아직 모르겠다. 연락 오는 데가 좀 있기는 하다는데, 조금 시간을 가지고 결정하기로 했다. 영화는 한다고 해도 갈 길이 멀다. 코로나 국면에서 상황도 안 좋고. 시간을 가지고 좀 생각해보면서 결정하잔다.. 그러시라고 했다.

50권 중에 소설 두 권이 들어가 있다. 2~3권 더 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동화책도 한두 권 들어갈 거였는데, 애들 보면서 동화책 읽어주는 틈틈히 동화까지 준비하는 게, 무리데쓰.. 그 사이 아이들도 이미 커서, 동화의 세계는 패스. 제목도 정하고, 얘기 구상도 다 끝났는데, 내려놓는 게 좀 아쉽기는 하지만. 인생이란 원래 아쉬운 것들의 연장이다.

책으로 치면 블록버스터급으로 돈이 많이 들어가는 것들이 좀 있다. 도서관 경제학은 필라델피아를 갔다와야 하고, 국내 조사도 많다. 이래저래 뭔가 연이 안 맞기도 하고, 충분하게 돈을 쓸 수 있는 상황이 오기 전까지는 일단 보류.

이승만도 완전 블록버스터급으로 돈 많이 들어간다. 시간도 시간이지만, 돈도 엄청 들어간다. 부산 체류 기간을 잡아놔야 하는데, 어마무시하게 돈 들어갈 거다. 돈도 돈이지만 당장 내가 없으면 애들 등하교가 문제다. 대안이 별로 없다. 이것도 일단 좀 뒤로 미루고.

블록버스터급 책은 책 그 자체로는 계산이 안 나오고, 내 돈도 좀 박아야 한다. 책에 돈 많이 들어간다고 해서 더 사줄 것도 아니고. 나도 이제 덩치가 커져서, 꼭 돈 되거나 팔릴 만한 거나, 그런 기준으로 책을 쓰지는 않는다. 그리고 가급적이면 돈은 안 되지만 돈은 많이 들어갈 거, 그런 것들을 더 많이 다루려고 한다. 나도 그런 걸 안 하면 누가 어려운 문제를 다루겠나 싶다.

민간 연구소 연구원장 제안이 왔었다. 돈도 많이 주고, 하고 싶은 거 할 수 있게, 편안하게 해주겠다고 하는데.. 싫다고 했다. 지금도 충분히 편안하고, 하고 싶은 거 충분히 하고 있다. 내가 엄청난 것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사회의 최전선에서 문제를 드러나게 하고, 대안을 찾아보는 것, 그렇게 살면 충분하다.

50권이 될지, 그보다 조금 모자랄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하기로 한 것들 잘 마무리하다 보면 나의 50대도 지나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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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 경제학, 본문의 마지막 글 쓰기 시작했다. 에필로그에 해당하는 편지 네 통이 남아있어서 이걸로 다 끝나는 건 아닌데, 어쨌든 다음 주 초까지는 일단 본문 초고는 끝낼 수 있을 같다.

농업 경제학 쓰기 시작하기 전에 청와대 농업 관련된 사람들과 농특위 위원장, 전직 농촌경제연구원장 등 행정과 관련된 사람들은 한 번씩 만났었다. 그 사이에 벌써 농특위 위원장인 박진도 선생은 사퇴했고.. 세상이라는 게 뭔지.

이렇게 초고 끝내도 한참은 더 넣었다 뺐다, 손을 봐야 한다. 그리고도 코로나 피해서 내년 초에나 출간된다. 안 그래도 인기 없는 주제인데, 코로나 맞설 방법이 없다고 출판사에서 판단하는 것 같다.

7월부터는 강연 등 아무 일정 안 잡는다고 딱 마음을 먹자마자 연세의료원 노조에서 직장 민주주의 강연 부탁한다고.. 며칠 전 노조에서 직접 찾아온 적이 있었다. 아이고, 마음 약해져서.. 대기업 강연 몇 군데 안 한다고 퉁치고 난 길이었는데. 사람들은 노조 욕 죽어라고 한다. 그런데 노조 없으면? 그나마라도 만드느라고 수십 년간 많은 사람들의 청춘이 날라갔다. 나라도 돕고 살아야지..

직장 민주주의 책 작업할 때에 특히 간호사들 도움을 많이 받았다. 신세진 거 갚는다고 생각하고. 항공사 승무원 인터뷰는 권수정 의원하고 했는데, 아직 소주도 한 잔 못 사드렸다.

보는 사람에게는 고작 책 한 권이겠지만, 그거 한 권을 위해서 보통은 수십 명 어떨 때에는 수백 명을 만난다. 별로 만나고 싶지 않은 대기업 간부들도 만난다. 직장 민주주의 때에는 삼성 간부들도 만났다. 햐.. 청와대 정책실장 되기 전의 김상조, 아니 상조 형한테 소개 받았었는데. 세상 일이라는 게 진짜 모른다.

어쨌든 농업 경제학도 이제 거의 마무리 단계다. 예전에 비하면 책 파는 게 너무너무 힘들어졌지만, 그래도 책만 써서 밥 먹고 살 수 있는 상황에 오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겠나. 쭈그리고 앉아서 사는 데도 먹고 사는 데 큰 걱정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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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걱정 없는 날이 하루라도 있겠냐만은, 일단 오늘은 걱정이 없다.

뭘 발제할 것도 밀렸고, 쓸 것도 밀렸고, 이래저래 해야 할 게 주루르 밀려있겠지만..

그건 내일의 나가 맹활약해서 해결해줄 거고, 아니면 모레의 나.. 그도 아니면 위대하신 주님이 또 다른 해결 방법을.

오늘의 나는 애들 올 때까지 몇 십분 남은 시간이나마, 그냥 나를 위해서 잠시 뒹굴뒹굴, 놀 거다.

내일의 나가 오늘의 나보다 부지런하고 유능하고, 또 심통내는 법이 없다는 게, 하늘에서 내가 부여받은 거의 유일한 행운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보니, "내일의 나"라는 제목으로 에세이집을 해보면 어떨까 싶은, 오늘의 나 같은 개수작 발상이.. 결국 쓰는 건 내일의 나가 할 거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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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로 살아가면, 말수가 줄어들게 된다. 가만히 있는 게, 이것저것 의견을 내서 사람들 경악하게 만드는 것 보다는.

같이 회사 다녔던 사람들 중에서도 내가 진짜로 가졌던 생각을 어느 정도 아는 경우는 드물다.

하고 싶은 말, 시시콜콜이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드물다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50이 넘어서 문득 돌아보니까, 이게 대부분의 한국 남자들이 다 이렇게 살아가는 것 같다. 아주 주책 맞게 맹활약만 계속 얘기하는 성공한 일부 빼고.

나를 기억하는 사람 중에는 아주 수다스럽고 말이 많은 사람이라고 기억하는 사람들도 있고, 매우 과묵하고 거의 입을 열지 않는 사람이라고 기억하는 사람들도 많고.

보수로 살아간 남자들 중에는 아주 수다스러운 사람들이 종종 있다. 때로 대구 아저씨들이 매우 수다스럽던, 특히 술 마시러 가면.

돌이켜 보니까, 전라도 출신 친구들도 다 같이 모일 때에는 말수가 적었던 것 같다. 한국은 오랫동안 지역 차별이 체질화된 사회였다.

서울에 온 경상도 아저씨들이 목소리 높일 때, 목소리 낮추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다.

시대가 변한다.

DJ 시절에는 홍어회를 먹는 경우가 많았고, 매생이국을 전라도를 고향으로 둔 실장이랑 밥 먹으면서 처음 먹어봤다.

노무현 때에는 특별히 유행한 음식이 별로 잘 기억나지 않는다. 여전히 청와대 인근의 홍어회집에 가면 청와대에 파견 온 높은 아저씨들과 옆 테이블에서 만나고는 했다. 부산 음식이 유행할 게 별로 없다. 여전히 부산 최고의 음식은 회다. 음식에 소금 좀 덜 넣었으면.. 정부랑 상관이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 시절에 새로 팍 퍼진 음식이 보리굴비였던 것 다. 일본식 녹차물에 밥 말어먹던 게, 그 시절에 엄청 유행했다.

명박 때에는 하여간 과매기들 어마무시하게 먹어댔다. 그냥 많이 먹는 정도가 아니라 슈퍼에도 가을이면 쌓아놓고 팔았다. 생각만 해도 코끝에 비린 맛이 돈다. 이젠 과매기 안 먹고 싶다. 명박 때 기억이 너무 많이 난다.

근혜 때에는 한정식 전성시대였던 것 같다. 하여간 죽어라고들 한정식 먹던. 한식 세계화한다고 난리치던 시절, 모였다 하면 돈이 있든 없든, 한정식집이었다.

특별한 음식은 주류의 형성과 함께 움직인다. 문재인 시절, 무슨 음식으로 이 시기가 기억될까?

주류의 교체라고 하는데, 어투와 음식, 이런 것들이 확실히 문화적으로 시대가 변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 같다.

대체적으로 나는 좌파를 선택하면서 비주류로 살게 되었고, 행위자 보다는 관찰자의 삶을 살게 된 것 같다.

앞으로도 나의 '맹활약'을 얘기하기 보다는 남의 맹활약을 들어주는 삶을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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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 경제학에는 절마다 짧게 클래식 음악에 관한 얘기를 넣는 중이다. 마지막 장에는 3개의 국악을 넣을 예정이다.

그 첫 번째로 지영희의 해금 산조를 넣었다. 짧지만 내 인생을 가장 잘 설명하는 음악이다. 내가 누구인가.. 나는 지영희를 평생 좋아했던 사람이다. 그의 이민도 사랑한 사람이다.

'격조'라는 제목으로 지영희 평전을 쓸 생각을 한 적이 있었는데, 박근혜 시절, 누군가를 추천하면 딱 지영희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젠장. 아직 당대표도 되기 전, 문재인이 도와달라고 해서, 진짜 황당한 일도 어마무시하게 하게 되었다. 그래서 결국 지영희 평전을 쓰지 못했다. 인생이라는 게, 한치 앞을 내다 볼 수가 없다. 당대표 문재인 돕다가 지영희 평전을 못 쓰게 되었다고, 진짜 삶이란 비겁한 변명 투성이다.

지영희, 성금연 부부는 내가 아는 한국의 부부 중 가장 멋진 부부다.

나이 먹으면 국악방송에서 국악 소개하면서 노년을 보내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끔 한 적이 있었다. 요즘은 음악 잘 몰라서, 택도 없는.

농업경제학에 정말 뼈골을 갈아넣는다. 지영희 해금 산조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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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 경제학 초고 거의 마무리 단계다. 당인리 나오고, 헤매고, 이래저래 농업 경제학 작업이 늦어졌다.

며칠 전부터 클라이막스 지점에서 슬슬 꺾기 들어가는데, 어제, 오늘, 감정적으로 제일 어려운 부분을 꺽고 들어가는 부분이다.

농가 마을의 전기 문제, 사회적 경제와 농업 그리고 농업 교육의 강화, 요렇게 한 절씩이 사실상 결론 부분이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헤어지는 마지막 편지 한 통씩 쓰는 편지에 음식과 요리 그리고 윤리적 소비 같은 것을 꾸겨 넣으면서 끝낼 생각이다.

오늘 쓴 것까지 하면 절 세 개와 편지 네 통, 이렇게 하면 일단 농업 경제학 초고는 끝난다. 다음 주에는 끝낼 예정이다.

이런 건 좀 등신 같은 짓인데, 어제 쓴 거는 말캉말캉하게 잘 된 것 같고.. 오늘 쓴 거는, 내 실력보다 훨씬 잘 나왔다. 내 삶의 간절함이 글에 묻어난..

역시 나는 팬시하고 팬시하고 매력적인 것 보다는 구질구질하고 끈쩍끈적, 이런 게 더 잘 어울린다.

궁상은 나의 힘!

돈 되는 거 찾아서 살면, 이 코로나 국면에 농업 경제학을 내가 쓰고 있겠나 싶다. 그렇지만 길게 보면, 이게 한국 자본주의가 살 길이라고 생각한다. 기본에 해당하는 것들을 펑크나지 않게, 망하더라도 조금이라도 늦게.

그래봐야 코로나 국면에서 농업 경제학 읽을 사람은 거의 없고, 그리하야 조금이라도 안전하게 내년 이후로 출간 일정을 밀어야 한다는 데에 나도 동의.

그렇다라도 나도 최선을 다 해서 내 뼈골을 농업 경제학에 갈아넣는 중이다. 초고 마치고도 길고 긴 작업이 기다리고 있다.

얼마 전부터 내 책의 원칙은..

그걸 쓰면서 즐겁거나 전율을 느꼈던 부분만 결국 남고, 기능적으로 전달을 하기 위해서 꾸역꾸역 쓴 부분은 나중에 다 날리는. 많이 쓰고, 조금 남기는 방식으로 책 작업을 한다.

마지막 순간까지 계속 구조와 내용의 전달에 대해서 고민한다.

그래서 감정만 남기고 압축하는 방식으로..

그렇게까지 안 해도 되었는데, 요즘 책의 위기다. 어지간히 해서는 쓰나마나한 상황이 되어버린.

그래서 진짜 뼈골을 갉아넣는다. 니가 죽나, 내가 죽나..

농업 경제학은 더 하다. 이걸 누가 보겠나, 그 넘을 수 없는 감정과의 1년 가까운 싸움 중이다.

오늘 처음으로, 이건 누구나 볼 수 있는 책이 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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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인리는 어제 3쇄 들어갔다고 합니다.

오 예!

재쇄 찍고 국 끓여먹는 줄 알고 잔뜩 쫄았는데.. 며칠 사이에 천 부 이상 나간.

다 여러분들이 도와주신 은덕인 줄 알고, 틈 나는 대로 정화수 물 떠넣고 고맙다는 절이라도 올리면서 살아가겠습니다.

코로나 국면에서 다들 힘든데, 책이 특히 더 어렵습니다. 전체적으로는 아동 도서 매출이 많이 늘어서 별 차이가 안 보이지만, 신간 특히 새로 데뷔하는 저자들이 많이 어려워합니다.

좋은 저자가 등장하지 않으면, 책이 볼 게 없다고 독자들이 더욱 외면하게 됩니다. 빈곤의 악순환입니다.

저는 첫 책 낼 때부터 과도하게 많은 분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사회과학에 처음 등장한 전업 작가라는 과도한 칭송도 시작하자마자 받았구요.

궁상도 떨만큼 떨었지만, 지금 새로 시작하려는 저자들은 저 보다 훨씬 어려운 조건에게, 어떻게 서점 매대에라도 한 번 서보면 여한이 없겠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쨌든 저도 힘 닿는데로 더 많은 저자와 작가들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보기 위해서 노력하겠습니다.

파리에 6년 반을 살았습니다. 놀랐던 게, 파리 시민들이 생각보다 책을 많이 읽습니다. 문제작이 나왔다고 하면 연금 받는 할머니들이 카페에 앉아서 새 책 읽는 것을 삶의 큰 즐거움이자 긍지로 생각하고 살아가는 걸 보면서..

우리도 이런 시대가 오면 좋겠다는 소망 같은 것을 가졌던 적이 있었습니다.

선진국은 그런 나라라고 생각하고 국민소득 만 달러 시대를 꿈에 부풀어 살아왔는데.. 막상 3만 달러가 되고 보니까, 우리는 좀 그와는 다른 미래에 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주변에 좋은 책을 쓰라고 하는 사람은 아주 적고, 지금이라도 높은 자리나 실속 있는 한직에 가라는 삶의 지혜를 알려주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고마운 말들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당인리 3쇄를 맞아..

저도 일쇄라도 털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데뷔 시절의 기억으로 다시 돌아가 봅니다.

얼마 전 환경재단의 도움으로 넓은 방에 아주 뜨문뜨문 앉아서 독자들과 티타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조금 전에 아주 큰 대기업에서 직원 행사에 특강 해달라는 메일을 받았습니다. 뭐, 돈 아주 많이 준다고 하더군요.

당인리 3쇄 찍었다는 출판사 전화 받고, 특강에 가기 어렵다는 메일을 보냈습니다.

저는 작고 의미 있는 독자모임에 가기를 즐겨하고, 크고 폼 나고 - 돈도 많이 주는 - 자리에 가기를 즐겨하는 사람으로 제 여생을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독자들의 '한푼두푼'으로 빠듯하지만 의미 있는 삶을 명랑하게 꾸려가고 싶은 게 제 소망이지, 스타 저자로 폼 잡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삶이 제 소망은 아닙니다.

시간 나는 대로 한국의 어렵고 힘들고, 조명받기 어려운 삶들을 찾아서 구조를 드러내고, 개선을 시도하는 그런 경제학자로 남은 삶을 살고 싶습니다.

힘 있는 자리에서 크고 강력한 대책으로, 그런 것도 많이 해봤습니다. 그렇지만 세상은 그렇게 좋아지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작게 그러나 의미있게 의견을 나누고, 그런 한걸음 한걸음이 모여서 세상이 한 걸음이라도 나아가게 된다는 게 제가 배운 한국의 가장 희망스러운 모습입니다.

이번 기회를 빌어, 다시 한 번 거듭 감사드립니다.

한국에서 가장 춥고, 가장 어두운 자리, 그곳에 만년필과 노트 하나 들고 돌아다니는 50대 아저씨의 모습, 그게 제가 꿈에도 그리는 저의 모습입니다.

(그 만년필이 꼭 스타워즈 만년필일 필요는 없지만, 저는 여전히 사고 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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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이방원이 이런 시를 지었다고 하는데. 요즘 세상이 딱 이런 것 같다. 국운이 다 된 고려를 지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다고, 그렇게 버텼을까 싶다.

정몽주에게 저런 시를 읽던 이방원의 마음도 아프고, 잠시 후에 도끼로 맞아죽을 자신의 운명 정도는 아마도 알았을 정몽주의 마음도 아프고.

역사도 오래 지나고 나면 이 편도 저 편도 사실 다 무의미해지기 마련이다.

햐, 진짜 세상이라는 게 그렇게 진지한 것도 아니고, 그렇게 정답처럼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그런 생각이 든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난 왜 그렇게 편하게 생각을 하지 못할까, 이 나이를 처먹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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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다보니까 요즘은 일요일이 주로 칼럼 쓰는 날이 되었다. 신문 칼럼 하나, 서평 하나.

굼뱅이도 기는 재주가 있다고, 내 책은 잘 못 팔아도, 남의 책은 괜찮게 팔아주는.

공직 생활할 때 제일 싫은 스타일이 누구 잘 되게는 못 해도, 남 망하게 하는 건 기가 막히게 잘 할 수 있다고 하는 양반들. 진짜 훼방은 기가 막히게 놓는 걸 보았다. 공무원들이 또 그런 건 기가 막히게 머리가 잘 돌아가, 정말 혀를 휘두를 정도였다. 더 기가 막힌 건, 누가 어디서 심술 부린 건지 전혀 알 수 없도록 쓰리쿠션, 포쿠션, 기똥찼다. 나는 그렇게 살지 말아야지, 결심을 했다.

누군가 도와준 적은 어마무시하게 많은 인생이기는 한데, 도와주고 고맙다는 소리라도 들어본 기억이 별로 없다. 한참 잘 나가는 사람들은 다 자기가 잘 나서 도와준 거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내 인생을 돌아보니, 아뿔싸, 나도 그렇게 정신 못차리던 시절이 있기도..

50이 넘으면서 가슴에 새긴 건, 지 혼자 잘 나서 되는 일은 세상에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그때는 몰랐는데, 나중에 지나보니까 여기서 저기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도와주면서 그 때 그 일들이 기가 막히게 풀렸던 것. 나도 그 나이에는 몰랐다.

이제 남은 내 인생은 씨앗을 뿌리는 마음으로 살려고 한다.

내가 추수할 일은 없다. 이런 것들이 자라고 열매를 맺을 때쯤이면 나는 이미 늙어서 아무 상관이 없을 것이다.

그래도 누군가 추수를 할 수 있게, 약간이라도 씨앗을 뿌리는 마음으로 살아가려고 한다.

나도 누군가 뿌려놓은 씨앗에서 열린 열매를 먹으면서 지금 살아가고 있는 거 아닌가 싶다. 지 날난 맛에 사는 거는, 50이 되면 내려놓는 게 맞을 것 같다. 50이 넘어서도 지가 잘 나서 잘 되는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등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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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라이팬 새거 사고, 냄비 새거 사면서 당연히 나도 주변의 친한 아줌마들과 상의한다. 그렇게 지내다보니 애들 엄마들하고 수다떠는 일이 많다. 

그러면서 알게 되었다. 

생각보다 많은 아이 엄마들이 애들 대학만 들어가면 이혼하기로 이미 결심하고 있다는 사실을.

예전에는 결혼하면 이혼한다고 하는 엄마들은 종종 봤는데, 아이들 결혼할 가망이 없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대학 입학으로 이혼 강행일 연령이 좀 내려갔다. 

나는 아내에게 이런 최후통첩을 받은 게, 둘째 태어난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의 일이다. 

자기는 이혼할려면 지금 해야 하니까, 적당히 지금처럼 계속 살려면 지금 얘기해라.. 

아내는 행정학 전공이다. 행정 처리는 칼이다. 

나는 쓸 데 없는 외부 활동을 다 접고, 아내에게 짤리지 않는 쪽을 선택했다. 

지금 아이 키우고, 회사 생활하고, 엄마들은 인내의 한계치다. 

그나마 불평이라도 하고, 뭐라도 도우라고 하는 건, 아직 이혼 날자와 집행 계획을 세우지 않은 것. 

얼마 전부터 잔소리도 줄고, 육아 가담에 대한 요청도 줄고, 설거지만 좀 하면 별 얘기 안 하는 것..

이건 좋은 신호가 아니라 D-day를 결정했다는 신호일 가능성이 높다. 

변수는.. 자녀가 한 번에 대학 가느냐, 재수를 하느냐, 아니면 아예 대학을 포기하게 되느냐, 그에 따른 시간의 결정 뿐.

아내가 자신에게 너그러워진다고 생각한다면, 짤릴 확률 100%다. 

인생 길다. 돈은 잠깐이고, 아내는 영원한 존재가 아니다. 

정신 차리고, 술 좀 적당히 처먹고, 돈 좀 살살 벌고, 회사일 대충 할 것.

아니면 어느 날 가정법원 통지서를 받아들고 인생이 무너진 것 같은 상황을 만나게 될 것이다. 

잘 해라. 

자신이 할 수 있는 것 보다 100배 더 한다고 생각해도 아내의 눈에는 차지 않는다. 

(졸혼, 그딴 거 없다, 파혼이 먼저다. 현실을 직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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