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인리는 어제 3쇄 들어갔다고 합니다.

오 예!

재쇄 찍고 국 끓여먹는 줄 알고 잔뜩 쫄았는데.. 며칠 사이에 천 부 이상 나간.

다 여러분들이 도와주신 은덕인 줄 알고, 틈 나는 대로 정화수 물 떠넣고 고맙다는 절이라도 올리면서 살아가겠습니다.

코로나 국면에서 다들 힘든데, 책이 특히 더 어렵습니다. 전체적으로는 아동 도서 매출이 많이 늘어서 별 차이가 안 보이지만, 신간 특히 새로 데뷔하는 저자들이 많이 어려워합니다.

좋은 저자가 등장하지 않으면, 책이 볼 게 없다고 독자들이 더욱 외면하게 됩니다. 빈곤의 악순환입니다.

저는 첫 책 낼 때부터 과도하게 많은 분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사회과학에 처음 등장한 전업 작가라는 과도한 칭송도 시작하자마자 받았구요.

궁상도 떨만큼 떨었지만, 지금 새로 시작하려는 저자들은 저 보다 훨씬 어려운 조건에게, 어떻게 서점 매대에라도 한 번 서보면 여한이 없겠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쨌든 저도 힘 닿는데로 더 많은 저자와 작가들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보기 위해서 노력하겠습니다.

파리에 6년 반을 살았습니다. 놀랐던 게, 파리 시민들이 생각보다 책을 많이 읽습니다. 문제작이 나왔다고 하면 연금 받는 할머니들이 카페에 앉아서 새 책 읽는 것을 삶의 큰 즐거움이자 긍지로 생각하고 살아가는 걸 보면서..

우리도 이런 시대가 오면 좋겠다는 소망 같은 것을 가졌던 적이 있었습니다.

선진국은 그런 나라라고 생각하고 국민소득 만 달러 시대를 꿈에 부풀어 살아왔는데.. 막상 3만 달러가 되고 보니까, 우리는 좀 그와는 다른 미래에 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주변에 좋은 책을 쓰라고 하는 사람은 아주 적고, 지금이라도 높은 자리나 실속 있는 한직에 가라는 삶의 지혜를 알려주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고마운 말들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당인리 3쇄를 맞아..

저도 일쇄라도 털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데뷔 시절의 기억으로 다시 돌아가 봅니다.

얼마 전 환경재단의 도움으로 넓은 방에 아주 뜨문뜨문 앉아서 독자들과 티타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조금 전에 아주 큰 대기업에서 직원 행사에 특강 해달라는 메일을 받았습니다. 뭐, 돈 아주 많이 준다고 하더군요.

당인리 3쇄 찍었다는 출판사 전화 받고, 특강에 가기 어렵다는 메일을 보냈습니다.

저는 작고 의미 있는 독자모임에 가기를 즐겨하고, 크고 폼 나고 - 돈도 많이 주는 - 자리에 가기를 즐겨하는 사람으로 제 여생을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독자들의 '한푼두푼'으로 빠듯하지만 의미 있는 삶을 명랑하게 꾸려가고 싶은 게 제 소망이지, 스타 저자로 폼 잡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삶이 제 소망은 아닙니다.

시간 나는 대로 한국의 어렵고 힘들고, 조명받기 어려운 삶들을 찾아서 구조를 드러내고, 개선을 시도하는 그런 경제학자로 남은 삶을 살고 싶습니다.

힘 있는 자리에서 크고 강력한 대책으로, 그런 것도 많이 해봤습니다. 그렇지만 세상은 그렇게 좋아지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작게 그러나 의미있게 의견을 나누고, 그런 한걸음 한걸음이 모여서 세상이 한 걸음이라도 나아가게 된다는 게 제가 배운 한국의 가장 희망스러운 모습입니다.

이번 기회를 빌어, 다시 한 번 거듭 감사드립니다.

한국에서 가장 춥고, 가장 어두운 자리, 그곳에 만년필과 노트 하나 들고 돌아다니는 50대 아저씨의 모습, 그게 제가 꿈에도 그리는 저의 모습입니다.

(그 만년필이 꼭 스타워즈 만년필일 필요는 없지만, 저는 여전히 사고 싶은.)

'남들은 모르지.. > 당인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당인리와 시민 독서 모임..  (0) 2020.06.25
당인리 웹튠과 기타 등등..  (2) 2020.06.19
당인리 충격, 인생을 돌아보는 중인..  (0) 2020.05.26
당인리 독자 티타임..  (3) 2020.05.25
어떤 전화..  (0) 2020.05.24
Posted by retir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