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오후에 회의 한 군데 가기로 약속한 게 있는데, 큰 애가 아직도 방학 중이다. 엉겁결에 대답을 했는데, 방학 중인 걸 생각을 못했다. 아내는 바쁘다. 

오늘 오후에는 내일 가기 어렵다고 전화를 해줘야 하는데, 입이 잘 안 떨어진다. 

몇 년 전부터, 약속을 하기가 싫어졌다. 해봐야 잘 지키지도 못한다. 코로나 이후로 특히 더 그렇게 되었다. 자꾸 몇 달 후 약속을 하자고 하는데, 하나마나다. 나도 내 일정을 모르는 게, 나 아니면 아내가 시간을 내야 하는데, 아내도 먹고 사느라고 코가 석자다. 

돈을 아내보다 내가 더 잘 벌 것 같으니까 아내가 일을 그만두고 내가 움직이는 게 맞다고 하는 사람들도 가끔 있는데.. 내 인생은 2016년, 애들 보기로 마음을 먹으면서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진작에 결정을 했다. 더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더 되고 싶은 것도 없다. 그냥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소소한 일들 조금 하고, 내 주변의 몇 사람들 도와주면서 남은 인생, 잔잔하게 살아갈 뿐이다. 

코로나만이 문제가 아니라, 내 주변의 에디터들 중에서 지금 제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올해 대부분 그만두거나 자리를 옮기거나. 책들이 다 붕 떠 있다. 모르겠다.. 예전 같으면 뭔가 행정행위 같은 걸 하면서 제 자리를 찾으려고 노력을 했겠지만, 요즘은 나도 모르겠다, 그냥 방치한다. 지금 내가 부지런하게 움직인다고 해결될 종류의 일은 아니다.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에서 취업에 따른 차별에 대한 자문을 좀 해달라고 한다. 회사별 임금 차이에 관한 문제인데.. 골 아픈 얘기다. 방향은 그 방향이 맞는데, 임금 격차를 너무나 자신이 생산성과 결부시켜서 생각하는 문화적 풍토가 강해서, 임금에 대한 조정이 얘기하기가 쉽지 않다. 머리 한 쪽이 지끈지끈하다. 

별로 소득이 생기는 일은 아닌데, 결정적인 힌트를 달라고 하는 자문 요청이 너무 많다. 누가 물어보면 아는 만큼 성심성의껏 답 해주는 게 예전부터 몸에 배어서 그런지, 하여간 전화 오부지게 많이 온다. 그리고 한 번 전화하면 잘 안 끊는다. 이제 와서 뭘 어쩌겠냐. 이렇게 살다 죽는 거지, 그렇게 생각하고 만다. 

그냥 남은 인생, 화 내지 않고, 양아치처럼 살지 않아서 최소한의 우아함을 지키면 좋겠다는 정도의 생각. 

그래도 돌아보면 내 삶에 대해서 늘 감사하게 된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하루 세 끼 먹고 사는데 특별히 고통을 느끼지 않고 편안하게 산 인생이다. 굳이 힘든 걸 얘기하자면, 이 코로나 주말에 갑자기 세탁기가 망가져서, 새로 주문한 세탁기는 한참 걸려서나 온다고 하고.. 코인 세탁방에 온 식구가 출동해야 하는, 그런 쪼잔한 일들이 생겨났다는. 

2020년 여름, 코로나 2단계 거리두기가 전국으로 확대되었다. 그냥 버티는 시간이지만, 이 시간들이 누군가에게는 ‘강요된 단절’로 인하여 기가 막힌 생각의 전환이 생겨날 수도 있다. 좋게 생각하면, 창조의 시간.. 그런 사람들이 더욱 많아지기를 기대할 뿐이다. 기술경제학에 spill-over effect라는 용어가 있다. 누군가 잘 해서, 나도 좀 얻어먹고, 그걸 그렇게 표현한다. 이제 나의 맹활약 대신, 누군가의 맹활약을 기다리는 나이가 되었다. 

'남들은 모르지.. > 소소한 패러독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금 여기서 행복하면 안 돼?  (0) 2020.10.30
오늘도 감사한다..  (1) 2020.08.26
내일의 나..  (0) 2020.06.10
주류의 교체..  (1) 2020.06.10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0) 2020.06.01
Posted by retir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