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국립산림과학원의 젊은 박사들하고 세미나하기로 했다.

10대들에 대한 연구를 2년째 진행 중이다. 이게 어느 정도 방향이 잡혔고, 농업 경제학 하면서 진도를 좀 많이 나갔다.

'요즘 20대', 이거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기는 한데, 나는 올해, 내년, 10대 연구에 집중하려고 한다.

예전에 생태요괴전하고 생태 페다고지, 10대들과 환경교육에 관해서 책을 쓴 적이 있다. 아무도 관심 없는 분야에서 아무도 관심 없이, 나름 이 동네에서는 바이블처럼 자리를 잡았다. 좀 지난 일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가끔 10대 연구를 하느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있다. 10대에 관한 책, 벌써 두 권이나 썼다. 앞으로 세 권 더 쓸 계획이다.

'살아있는 것의 경제학'은 숲 생태학 가지고 썼던 책이다. 숲에 대해서도 이미 책 한 권 쓴 적이.. (그때 에디터가 지금 당인리 출판사 대표가 되었다.)

젊은 박사들하고 가끔 같이 세미나를 한다. (여성정책연구원하고는 같이 하기로 해놓고, 내가 정신이 없어서 계속 미루는 중.)

10대의 환경 교육에 대해서 내가 했던 고민을 어느 정도 수준으로 얘기할지, 오전에 잠시 생각을 좀 정리를 해보는 중이다.

나는 본능적으로 사람들이 많이 몰리거나 인기가 있는 연구는 피한다. 아무도 신경쓰지 않고, 아무도 생각해보지 않은 조합으로 연구하는 걸 좋아한다.

그럼 진짜로 혼자 산책할 수 있는 오솔길이 나온다.

선구자 같은, 그런 달달한 것이 아니다.

인기 있는 분야에서 남들하고 어깨 싸움하면서 연구하는 걸 끔찍하게 싫어해서 그런다.

나이 50이 넘었는데, 젊은 박사들이 뭔가 같이 고민해보자고 찾아주는 연구자로 버티고 있다는 것..

그건 작은 긍지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나의 10대 연구는 슬슬 클라이막스로 달려가는 중이다. 내년 말에 화려하게 꽃 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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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후배, 김종철 술 사주고 왔다.

죽도록, 밤새도록 술 마시고 싶었지만, 애 봐야하는 아빠가 그럴 수는 없고.

노회찬 죽고..

내 인생관도 바뀌었다.

노회찬 시절의 친구들, 틈만 나면 밥도 사고, 술도 사고. 전화도 건다. 하소연도 들어주고, 심통도 들어주고, 뭐라고 하면, 미안미안, 내가 잘 못했다, 사과도 하고.

우리는 좋은 세상 만든다고 폼만 잡았지, 서로 잘 못 챙겼다.

요즘 나한테 30분씩 전화통 붙잡고 힘들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술먹고 울다가 생각나서 문자 보낸다고 하는 사람들도있다. 그리고 밑도끝도 없이 섭섭하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괜찮다.

우리의 운동이 어려워서 그렇다.

종철이랑 같이 술 먹고 같이 운동하던 우리들의 친구들이, 너무 많이 죽었다. 그 시절, 그렇게 많은 친구들이 그렇게 일찍 죽을 줄 몰랐다.

나는 아직 괜찮다. 살 좀 찐 거 말고는 내 자리에서 잘 버틴다. 먹고 살만하다.

틈 나는대로, 맛 있는 거 같이 먹고, 시간 나는 대로 좋은 술도 같이 먹고, 여유 되는대로 수다도 떨고..

좋은 세상 만든다고 했는데, 우리는 다 너무 힘들었다. 그리고 너무 많이 죽었다.. 이렇게 친구들이 많이 죽을 줄, 나는 30대에 미처 몰랐다. 그 시절, 우리는 미처 몰랐다.

집에 돌아왔더니, 간만에 좋은 술 마셔서 고마웠다고 문자가 와있었다.

나도 즐거웠다고 문자 보냈다.

니가 맞니, 내가 맞니, 우리는 30대에 죽도록 싸웠다. 틈만 나면 삐지고, 심통 냈다. 그걸 우리는 사상이라고 불렀다.

개뿔이다..

죽지만 않으면, 그깟 무슨무슨 위스키, 그게 무슨 상관이랴.

다시는 단 한 명도 나의 친구들을 노회찬처럼 보내고 싶지 않다.

좀 놀고, 좀 마시고, 좀 택도 없는 소리 좀 하면 어떠냐. 살아있어야 친구고, 살아서 웃어야 친구지.

나는 친구들 비위 맞춰주고, 농담하고, 맛있는 거 사주면서 여생을 보내도 좋다.

살아있을 때 잘 하자, 노회찬에게 배웠다..

그리고 가능하면, 살아서 영광도 보고, 빛도 보자.

세상이 먼저가 아니다. 삶의 즐거움이 먼저다.

명랑할 수 있으면 더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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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인리 충격으로, 당장 여름에 발간 계획이던 농업경제학이 내년으로 넘어갔다.

이번에 1쇄 겨우겨우 털면서, 온갖 궁상을 다 떨었던.

책 내기가 무서워졌다.

농업경제학은 마무리만 지으면 끝나는 거라서 내기는 낼텐데..

내년으로 미루어놓은 도서관 경제학 등 아직 쓰지 않았고, 판매가 불투명한 책들은 킬.. 직전이다.

선인세 받은 게 약간 있기는 한데, 그건 돌려주면 되는 거고.

계약된 책들의 일부를 죽일지, 그냥 갈지, 요 며칠 내로 결정하려고 한다.

당인리처럼 궁상 떨면서 굽신굽신거리고, 멸시당하면서 책 쓸 거면..

그렇게 살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문득.

50권을 생각하고 책을 쓰는 중인데, 40권에서 마감하는 방법을 오전 내내 고민했다.

40권이면, 세 권 남았다.

이제 그만 세우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점심 먹었다. 그만하면 오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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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부터 책 새로 나오면 페북과 블로그, 독자 몇 분과 차 한 잔 마시는 티타임을 했습니다.

소란스러운 모임은 아니라서 보통 열 분에서 스무 분 사이 오셨습니다.

작년에 책 나오고 처음으로 한 권도 책이 나오지 않아서, 이번에는 사이가 좀 길었기는 하지만요.

환경운동연합 카페에서도 좀 했고, 여건이 되는 경우는 출판사 회의실에서도 종종 했습니다.

이번에는 코로나 국면이라, 좁은 데서 하기는 좀 곤란한데..

환경재단에서 방을 빌려주셔서 이번에는 환경재단 레이첼카슨홀에서 합니다.

이사오기 전, 이 방에서 시민 대상으로 한 사회과학 입문 특강을 몇 주간 진행해서 '나와 너의 사회과학'이라는 책으로 나온 적이 있기도 한, 좀 인연이 있는 방입니다.

출판사에서 마실 건 준비해주실..

5월 30(토요일) 오후 3시

서울특별시 중구 서소문로 106 동화빌딩 3F

특별히 따로 등록하거나 그럴 절차는 없지만, 댓글로 준비해주시는 분들이 규모를 알면 조금 도움이 되시기는 할 것 같네요.

그럼 토요일날 뵙겠습니다.

 

http://www.greenfund.org/m15.php?fbclid=IwAR3htekiCJEVxnA6HQy6riUhDjGEtXBuFILRLQNyuLH5cmYcuJEj3hDCyLk

 

환경재단

 

greenfund.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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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이라, 시사인의 김은남 기자네 집에 애들이랑 다 놀러가서 밥 먹고 왔다. 결혼하기 전에도 그 집에서 술 마시고 자고 오기도 하던, 정말 식구처럼 지내는 집이다. 그렇게 알고 지낸 게 20년 가까이 되니까, 애들끼리도 잘 알고.

그 집 둘째 아드님이 중2에서 이제 중3으로 넘어간.. 농업경제학 등 10대 연구에서 중요한 모델이기도 하고. 내 주변의 중학생 아드님, 따님들, 일단 총동원.

하여간 그렇게 놀던 중에 박원순 시장의 전화를 받았다. 오전에 당인리를 읽었는데, 본인이 요즘 주로 하고 있는 얘기랑 너무 똑같아서 일단 전화부터 하셨다는..

소설에서는 서울 시장은 몇 번 나오는데, 그 중에서 과거 장면의 서울 시장은 박원순이 모델인 것은 맞다.

그가 잘 하는 것도 있고, 못 하는 것도 있다. 물론 모든 인간이 그렇다. 그 중에서 에너지 쪽에서는 썩 잘 하는 측면이 있다. 약간 아쉬운 점도 있기는 하다. 좀 더 크게 그림을 그리고 했었으면..

그래서 실제로 당인리에서 서울 시장의 모티브는 박원순이기는 했다. 물론 현실의 박원순 보다는 조금 더 체계적이고, 장기적인 생각을 하는..

이게 소설이 될지 안 될지, 그런 고민을 하던 시절에 현실의 박원순을 보면서, 다른 건 몰라도 에너지 쪽에서는 박원순이 이런 걸 계획했다는 상상이.. 책으로 만들어보자는 모티브가 된 것은 사실이다.

당인리에서 중요한 기술적 설계는 시장과 구청장이 사태 이후 수습하면서 했던 일련의 액션 플랜이다. 그리고 이건 '로컬'이 하는 일이다. 나는 한국의 로컬이 지금보다는 좀 더 적극적이고 체계적으로 많은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여기에는 나의 소망 같은 것들도 좀 담겨있다. 이렇게 했으면 좋았을텐데..

만약 서울 시장이 박원순이 아니었더라면, 그리고 그가 서울 에너지공사를 만들지 않았더라면, 나는 좀 다른 방식의 얘기 전개를 생각했을 것 같다.

오세훈 시절의 서울시라면 이런 건 아예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말만 멋있게 하지, 속에는 좀 너무 이상한 게 들어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박원순이 시장되기를 누구보다도 바랬던 사람이다. 블로그만 하고 sns는 안 했었는데, 그가 시장 보궐선거에 나오면서 처음으로 sns를 했다.

당인리에는 적지 않은 모델들이 등장한다. 그 중에 구조를 형성하는 핵심 캐릭터가 서울 시장이다. 그가 이런 분산형 에너지에 관심이 없다면 순수 뻥이지만, 내가 아는 박원순이라면 이랬을 것 같다.. 나는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기는 한데..

막상 당인리 오전에 너무 재밌게 읽었다고 시장한테 전화를 받고 보니.. 기분이 묘했던 것도 사실이다.

당인리의 핵심 모티브는 서울 시장으로 상징되는 로컬과 중앙의 대립이다. 그리고 전력은 물론이고 에너지 전체에서도 이건 여전히 진행 중인 갈등이고 모순이다.

시장이 거듭거듭 고맙다고 하는데, 잠시 뭐라고 대답할지 답변을 잃었었다.

세상은 어쩌면 좋아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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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사람이 우는 얘기..

삶이라는 게 신나고 흥 나는 일로만 채워지나, 그렇지 않다. 늘 긴박하고, 종종 속상하고, 아주 자주 허무하다. 

책 때문에 아는 후배에게 연락을 했는데, 암 말기 진단이라고, 조용히 정리하는 중이라고 한다. 

한 때 거의 매일 보던 사이였는데, 마음이 덜컥 무거워졌다. 조만간 차라도 한 잔 하기로 했다. 

잠시 내 삶을 돌아본다. 

요즘 책이 자리를 못 잡아서 좀 속상한 시기이기는 한데, 그래도 마음을 편하게 갖고, 조금이라도 더 웃기로 마음을 먹었다. 

어제 영화 <럭키>를 다시 봤다. 코미디를 다시 생각해보게 된 계기가 된 영화였다. 그냥 마음 편하게 웃으면서 봤다. 김밥집에서 당근꽃 만드는 장면은 예전에도 재밌게 봤는데, 다시 봐도 재밌다. 

내 삶에 웃음을 더 채우고, 잠깐 통화하더라도 더 밝고 즐겁게 얘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즐겁지 않은데, 어떻게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해줄 수 있겠나 싶다. 

태어난 것 자체가 즐거운 일이다. 

이 생각, 어렵다. 그래도 돌아보면 그런 느낌이 들 수 있도록, 그렇게 살아야 할 것 같다. 

내가 다루는 주제나 소제나, 다 슬프고 어려운 얘기들이다. 가난한 사람들, 어려운 사람들, 난 그런 주제만 다루었다. 

그렇지만 내가 그 내용에 마음이 넘어가면, 온통 눈물 바다를 만들기는 커녕, 온통 하품 바다를 만들게 된다. 그건 곤란하다. 

며칠 전에 정부 연구원 원장들하고 밥 먹는 자리가 있었다. 그 중의 한 명이 예전 팟캐스트 시절 나꼽살을 자기 전에 종종 들었다고 한다. 잠은 참 잘 오더라고.. 웃기는 했는데, 된장. 재우려고 했던 방송은 아닌데. 

난 더 많이 웃고, 더 많은 유쾌함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슬픈 사람이 우는 얘기, 이 시대는 싫어한다. 

전또깡 시절, 슬픈 사람이 우는 것이 정의였다. 지금은 그런 게 아예 안 먹힌다. 슬퍼서 우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그 사람이 부패하고 못되었다.. 이 얘기에는 이 시대가 열망한다. 어쩔 수가 없다. 그런 시대를 우리가 살고 있다. 

별 수 없다. 더 많이 웃고, 더 명랑하게 하루하루를 사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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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인리'에 정성진이라는 이름의 여성이 나온다. 

그 원형이 김성욱 박사다. 맨 처음 잡았던 인물 정도가 아니다. 이걸 쓰게 된 첫 사건이 바로 그의 사건이기도 했다. 

천하의 김성욱이 서울에너지공사에 취업 원서를 냈다가 떨어지는 일이 벌어진다. 마침 당시 서울에너지공사 사장도 잘 아는 사람이다. 이건 또 뭔 사건이지? 공교롭게도 내가 에너지관리공단 팀장 시절, 내가 뽑았던 직원이 거기에서 일하고 있었다. 나도 잘 몰랐었다. 

이 사건을 보면서 김성욱을 주인공으로 얘기를 만들면 재밌겠다고 생각했다. 이현주와 강선아는 그 뒤에 설계된 인물들이다. 

그렇게 해서 첫 번째 요약본이 만들어졌다. 그 때까지는 김성욱이 김성욱이었다. 

그런데 막상 초고 작업으로 들어가려고 하니까, 20대 실무 여성 캐릭터가 하나 더 필요하게 되었다. 여성 셋인데, 여기에 하나가 더 들어오니까 여성 라인들이 넘친다. 

그래서 김성욱은 성격은 물론이고, 운명도 변하게 된다. 거기에 맞추다 보니까 그 주변 인물들도 전부 변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이름을 정성진으로 바꾸었다. 

하여.. 본인에게는 매우 송구하게, 인물 설정과 관계도 완전히 바뀌고, 심지어는 엔딩도 바뀐. 

모니터링 과정에서 가장 많은 애환이 있던 캐릭터이기도 하다. 너무 모든 것을 다 가졌다고, 특히 주부들의 원성이 자자했다. 약간 밉상 캐릭터가 되었다. 

그 뒤에도 크게 세 번 정도 변화가 생겼다. 

하여간 바로 그 인물의 원형이 김성욱이었다. 그가 어떻게 이걸 읽었는지, 여전히 조마조마.

그의 서평이다..

_________________

노트북이 돌아가신 '덕분에'
아주 집중해서 우석훈 박사님의 신간 #당인리 를 다 읽었다. 금새 다 읽힌다. 반나절만에 책 한 권을 끝낸 건 참 오랜만이다.
내용도 재미있지만, 내가 몸담은 분야의 어딘가 이야기이기도 해서 읽는 내내 마치 소설 속의 어딘가에 내가 끼어있는 것 같다는 묘한 몰입감을 느꼈다.

내용을 대략적으로 정리하자면 천재지변에 의해 우리나라 전력망이 돌아가시는데, 서울시 에너지 자립 관련 프로젝트로 미리 준비된 시스템을 통해 이걸 해결해간다는 이야기이다. 전력과 이의 배분은 기술과 과학과 시스템이 움직이지만 결정은 정치가 하고 결과도 정치가 갖는다는 것을 아주 노골적으로 잘 보여준다. 종종 소설 전개로는 비약이라 느낄만큼 부조리한 결정과 전개가 나타나지만 현실이 별다르지 않고, 때로는 더 부조리해서 씁쓸하지만 수긍할 수 밖에 없는 장면도 꽤 많다. 아마 9.15 정전 사태로 유탄을 맞았던 사람들은 이 소설을 눈물로 읽게 될 것이다.

경기도 에너지 정책에 관여하는 입장에서 이런 저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많이 스쳐지나갔고, '우리 각자는 모두 준비되어있나? 준비해야할 것 같은데?' 를 끝없이 떠올렸다. 그리고 정치와 에너지는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이.

분산형 전원에 대한 고민도 깊어졌다. 재생에너지, 석탄화력, LNG의 역할, 원전 의존, 지방자치와 지역의 생존, 공조와 협력... 앞으로 지방자치의 강화와 중앙정부의 통제력, 안전망과 효율성, 모듈화 등의 논의(또는 갈등)가 점차 깊어질 시점에서 좋은 시뮬레이션이 되었다. 예전에 가상발전소 보고서 쓸 때만 하더라도 그 기동이 다소 막연했는데 소설을 통해 오히려 공부를 많이 했다. ㅎㅎ

효율에 대해 가장 관심갖는 인간이지만, 재난에 대비한 모듈화와 재고 비축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계속 주시하고 있고, 그 중요성은 천재지변을 해결할 때 가장 빛나고, 비효율적이지만 우직하게 그걸 지켜온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가장 중요한 요소임도 소설을 통해 다시 깨닫게 된다.

아. 그리고 개인적으로 생각나는 몇 분이 꽤 있었다. 소설이 더욱 현실같았던 이유.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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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인리: 대정전 이후]

시간을 다투는 중요한 프로젝트의 성과를 내야 하는 상황이라서 글쓰기를 포함한 다른 일의 비중을 줄이고 있다. 그래도 오가며 틈틈이 책을 읽는다.

최근에는 재주 많은 생태 경제학자 우석훈이 새로 펴낸 소설 『당인리』(해피북스투유 펴냄)를 읽었다. 솔직히 말하면, 저자와의 인연 때문에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급한 일을 미뤄두고 읽을 정도로 몰입감이 있었다. 덩달아 배운 것도 많았고, 생각도 많아졌다.

*

제목 ‘당인리’가 뜬금없다면 평소 ‘에너지’나 ‘부동산’에는 관심이 없는 분이다. 서울시 마포구 당인리 발전소는 국내 최초의 화력 발전소다. 이곳에 한강과 맞닿은 시민 공원이 예정되면서 덩달아 주변 부동산 시세가 들썩였다. 그러고 나서, 뜻밖에도 지상의 발전소가 해체된 대신에 지하에 서울시 전력 수요의 20% 정도를 해결할 수 있는 LNG 발전소가 들어섰다.

이 소설의 주요 무대는 바로 당인리의 지하 LNG 발전소다. 한국 문학사에서 한국전력공사 자회사(중부발전) 직원이 주요 등장인물을 맡았던 적은 아마 처음이지 싶다. 하지만 한국전력공사에서 이 책을 단체 구매할 가능성은 아주 낮다. 왜냐하면, 대정전(전계통 정전)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

전라남도 나주에 상당한 규모의 지진이 발생한다. 나주 한국전력공사와 전력거래소가 쑥대밭이 되면서, 전력거래소의 전국 전력망을 통제하는 시스템(EMS)이 파괴된다. 애초 대정전이 발생하면, 전력거래소가 EMS를 통해서 복구를 주도한다. 그런데 바로 그 중앙이 부재한 상황이 된 것이다.

물론 주요 시설은 이런 상황에 대비해 준비해 놓은 비상 발전기가 있다. 하지만 그런 비상 발전기가 버틸 수 있는 시간은 고작 몇 시간뿐이다. 한국전력공사와 전력거래소가 파괴되고, 청와대는 전국적인 소요 사태를 걱정하며 제주도로 도피한다. 몇 시간 안에 복구가 이뤄질 리 없다.

결국, 몇 시간 만에 전국은 지옥처럼 변한다. 대혼란은 신호 체계가 마비된 도로부터 시작된다. 자동차가 멈춰 선 도로가 마비되고, 공장도 멈춘다. 고층건물에서 불이 나도 전기가 없으니 펌프로 물을 퍼 올리지 못해 진압이 어렵다. 가장 안타까운 일은 병원에서 발생한다. 전기에 의존해 환자의 생명을 지켜주던 장치가 가동을 멈추면서 곳곳에서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는다.

이런 상황에서 중부발전과 서울에너지공사 직원 몇몇은 당인리 발전소로 서울의 전기를 되살릴 궁리를 시작한다. 그리고 부재한 나주 전력거래소의 전국 전력망 통제 시스템(EMS)을 당인리에서 되살려 서울뿐만 아니라 수도권 더 나아가 전국의 전력을 살릴 방법을 모색한다. 그들의 도전은 성공할까?

*

이 소설의 흥미로운 포인트는 여러 가지다. 한국의 전력 산업 안에 ‘원전파’와 ‘LNG파’가 있다는 이야기는 풍문으로 들었다. 이 둘은 에너지 시스템의 ‘중앙 집중’과 ‘지방 분산’의 대립으로 변주될 수도 있고, ‘에너지 기득권’과 ‘에너지 전환 세력’ 사이의 갈등으로 변주될 수도 있다. 이런 갈등의 틈바구니 안에 문재인 정부가 있다.

우석훈은 한국전력공사와 그 자회사를 몇 년간 아주 가까이서 들여다볼 기회가 있었다. (그 상황을 나도 알고 있다.) 그 기회를 그는 ‘참여 관찰’의 기회로 삼았던 모양이다. 그때 직접 보고 들은 이야기가 이 소설 곳곳에 녹아 있다. 한국의 ‘전기쟁이’들의 사는 모습을 엿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

이 책의 무대는 2020년대의 어느 시점이다. 문재인 정부 또 그 임기를 마무리하고 지금의 여권이 그대로 정권 재창출한 후의 이야기다. (그러니까 허구와 현실을 섞어서 말하자면, 문재인 정부 다음 정부에서 대정전이 일어난다.)

이 세상에서는 여전히 ‘86 세대’가 세상을 쥐락펴락하고 있다. 소설 속에서 은밀하게 뒷거래를 했던 청와대 산업 비서관과 과학기술 비서관의 모습, 대정전이 났을 때 시민의 안전 따위에는 관심 없는 모습 등은 우석훈이 자신과 같은 또래(86 세대)의 공적 책임감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86 세대 권력층이 특전사를 호출하고, 총질을 하고, 사람도 죽는다. 상징적이다.)

평소 에너지 산업의 여러 이해당사자와 교류가 많았던 사람이라면 어쩔 수 없이 소설 속 주인공 여럿과 현실의 특정인이 연결된다. 긍정적으로 묘사된 사람도 있고 부정적으로 묘사된 사람도 있다. (다행히 에너지 문제를 오랫동안 취재한 기자는 안 나온다. 고맙습니다.) 구경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재미있고, 당사자 입장에서는 기분이 좋을 수도 불편할 수도 있겠다.

*

<부산행>의 연상호 감독이 호평(“있을 법한 재난을 현실이 아닌 책으로 만났다는 안도감과 이것이 현실로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동시에 주는 소설이다.”)했으니 영화로 나올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 아닌 소설을 읽고서 인정하기로 했다.

우석훈은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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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인리' 광고, 시사인. 출판사가 작아서 매체 광고는 딱 한 번밖에 못 한다. 그것도 큰 맘 먹고. 시사인에 하자고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연대와 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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