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인리'에 정성진이라는 이름의 여성이 나온다.
그 원형이 김성욱 박사다. 맨 처음 잡았던 인물 정도가 아니다. 이걸 쓰게 된 첫 사건이 바로 그의 사건이기도 했다.
천하의 김성욱이 서울에너지공사에 취업 원서를 냈다가 떨어지는 일이 벌어진다. 마침 당시 서울에너지공사 사장도 잘 아는 사람이다. 이건 또 뭔 사건이지? 공교롭게도 내가 에너지관리공단 팀장 시절, 내가 뽑았던 직원이 거기에서 일하고 있었다. 나도 잘 몰랐었다.
이 사건을 보면서 김성욱을 주인공으로 얘기를 만들면 재밌겠다고 생각했다. 이현주와 강선아는 그 뒤에 설계된 인물들이다.
그렇게 해서 첫 번째 요약본이 만들어졌다. 그 때까지는 김성욱이 김성욱이었다.
그런데 막상 초고 작업으로 들어가려고 하니까, 20대 실무 여성 캐릭터가 하나 더 필요하게 되었다. 여성 셋인데, 여기에 하나가 더 들어오니까 여성 라인들이 넘친다.
그래서 김성욱은 성격은 물론이고, 운명도 변하게 된다. 거기에 맞추다 보니까 그 주변 인물들도 전부 변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이름을 정성진으로 바꾸었다.
하여.. 본인에게는 매우 송구하게, 인물 설정과 관계도 완전히 바뀌고, 심지어는 엔딩도 바뀐.
모니터링 과정에서 가장 많은 애환이 있던 캐릭터이기도 하다. 너무 모든 것을 다 가졌다고, 특히 주부들의 원성이 자자했다. 약간 밉상 캐릭터가 되었다.
그 뒤에도 크게 세 번 정도 변화가 생겼다.
하여간 바로 그 인물의 원형이 김성욱이었다. 그가 어떻게 이걸 읽었는지, 여전히 조마조마.
그의 서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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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이 돌아가신 '덕분에'
아주 집중해서 우석훈 박사님의 신간 #당인리 를 다 읽었다. 금새 다 읽힌다. 반나절만에 책 한 권을 끝낸 건 참 오랜만이다.
내용도 재미있지만, 내가 몸담은 분야의 어딘가 이야기이기도 해서 읽는 내내 마치 소설 속의 어딘가에 내가 끼어있는 것 같다는 묘한 몰입감을 느꼈다.
내용을 대략적으로 정리하자면 천재지변에 의해 우리나라 전력망이 돌아가시는데, 서울시 에너지 자립 관련 프로젝트로 미리 준비된 시스템을 통해 이걸 해결해간다는 이야기이다. 전력과 이의 배분은 기술과 과학과 시스템이 움직이지만 결정은 정치가 하고 결과도 정치가 갖는다는 것을 아주 노골적으로 잘 보여준다. 종종 소설 전개로는 비약이라 느낄만큼 부조리한 결정과 전개가 나타나지만 현실이 별다르지 않고, 때로는 더 부조리해서 씁쓸하지만 수긍할 수 밖에 없는 장면도 꽤 많다. 아마 9.15 정전 사태로 유탄을 맞았던 사람들은 이 소설을 눈물로 읽게 될 것이다.
경기도 에너지 정책에 관여하는 입장에서 이런 저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많이 스쳐지나갔고, '우리 각자는 모두 준비되어있나? 준비해야할 것 같은데?' 를 끝없이 떠올렸다. 그리고 정치와 에너지는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이.
분산형 전원에 대한 고민도 깊어졌다. 재생에너지, 석탄화력, LNG의 역할, 원전 의존, 지방자치와 지역의 생존, 공조와 협력... 앞으로 지방자치의 강화와 중앙정부의 통제력, 안전망과 효율성, 모듈화 등의 논의(또는 갈등)가 점차 깊어질 시점에서 좋은 시뮬레이션이 되었다. 예전에 가상발전소 보고서 쓸 때만 하더라도 그 기동이 다소 막연했는데 소설을 통해 오히려 공부를 많이 했다. ㅎㅎ
효율에 대해 가장 관심갖는 인간이지만, 재난에 대비한 모듈화와 재고 비축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계속 주시하고 있고, 그 중요성은 천재지변을 해결할 때 가장 빛나고, 비효율적이지만 우직하게 그걸 지켜온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가장 중요한 요소임도 소설을 통해 다시 깨닫게 된다.
아. 그리고 개인적으로 생각나는 몇 분이 꽤 있었다. 소설이 더욱 현실같았던 이유.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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