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12권 목표로 경제 대장정 시리즈 진행하던 적이 있었다. 1권이 <88만원 세대>였다. 결국 <문화경제학>을 끝으로, 시리지는 종료했다. 화려하게 끝난 것은 아니다. 이것저것,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일단은 정지시킨.

 

문화경제학 다음이 농업경제학이었다. 서 있던 그 상태에서 몇 년간 공전을 했다. 그 시절, 책 시장이 사실상 붕괴하다시피 했다. 그리고 나는 <불황 10> 내면서 돌파구를 좀 찾았는데, .. 지지율 13.5% 찍던 민주당에서 도와 달라고.. 그 시절, 문재인은 당대표도 아직 아니었고, 다음 출구를 찾지 못하던 시절.

 

돌고 돌아, 이제는 농업 얘기를 해도 되는 시기가 왔다. 안 팔려도 되지만, 안 팔릴 것을 알면서도 책을 준비하는 것은 마음의 부담이 너무 크다. 예전 한국 독립 영화에서 유행했던 말이다.

 

괜찮아요, 어차피 안 될 거니까.” (요 대사는 유승환 감독이 <짝패>에서 써먹었다.)

 

젠더경제학은 더 부담스럽다. 2000년대 초반, 여성경제학회 생길 때, 주도했던 양반들이 친한 사람들이었다. 나도 공부 좀 하게 젠더 경제학 책 좀 써 달라고 했더니, 나보러 쓰란다. 된장. 그리고 가끔, 왜 안 써, 요렇게 물어보는 사람이 최미희 박사. 누님 중의 누님이다.

 

남자가 쓰기에는 좀 애매한 구석이 있기는 한데, 그래서 더 쓰라고 난리들을 친다. 매도 니가 맞아야, 이런 된장! 일베 전성시대에 이 무슨 더러븐 꼴이람.

 

여성가족부에서 장관 자문하는 뭔가가 생기는 모양인데, 나도 좀 해달라고. 우왕, 조한혜정 선생 등 할머니들 잔뜩 모시고, 한동안 사부작사부작.

 

기왕 젠더 얘기 하는 김에, 책도 이 기회에 정리하는 게 좋겠다, 요런 대구빡을 굴렸다. , 딱히 팔릴 것 같지는 않지만, 지금 우리가 하는 젠더 얘기가 한국에서는 최전선이다. 나는 그렇게 최전선에 있는 게 좋다.

 

그렇게 정리를 하고 났더니, 2019년은 농업과 젠더, 그렇게 두 축으로 정리가 되었다.

 

오매나야. 그래도 뭐 좀 말랑말랑하거나, 혹시라도 좀 팔릴 걸 기대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 보통 이 정도면, 망했다! 요런 평가 받기 딱 좋은. 사양산업과 혐오산업, 그냥 경제 용어로 하면 그런 분야다. 일부러 이렇게 가기도 어렵다. 게다가 엄청난 무관심 지역.

 

원래는 애 키우고 애들한테 돈 들어가는 아빠는 이렇게 하면 안 된다. 만약 후배가 나한테 이런 일정으로 작업한다고 와서 물어보면, “, 미쳤냐? 골드 바 좀 사 놓은 거 있냐?”, 이렇게 대답할 것 같다.

 

괜찮다. 내년부터는 부인께서 우리 집 생활비 만큼은 벌어 오신다. 당분간 차 바꾸는 것 같이 목돈 들어갈 일도 없다. 그리고 내가 받는 인세도, 평균 내면 그럭저럭 대충 생활비 만큼은 된다. 호사하거나 쾌적하지는 않아도, 뭐 꾸역꾸역, 가끔 애들 데리고 여행 다니는데 크게 불편하지 않다.

 

농업은, 딱 중3에 맞추기로 했다. 그것도 책 많이 읽고 머리 잘 돌아가는 중3말고, 게임 하느라고 정신 없는 남학생이 정말 어쩌다 어쩌다 강요에 의해서 책을 한 권 읽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는 시선으로. 나 중3 때는 겨울방학 내내 이불 뒤집어쓰고 무협지만 읽었다. 와룡생의 <군협지> 같은 거, 그 시절에 읽었다. 게임은? 하고는 싶은데, 동네 오락실에 가기에는 가진 돈이 너무 없어서 어쩌다 한두 판, 잘 할 택이 없는.

 

젠더는 20~30대 여성에 맞추기로 했다. <솔로 계급의 경제학> 하면서 그 또래의 문제에 대해서는 한 번 들여다 본 적이 있다. 너무 출산에 맞추지 않고, 솔로로 남을지 아니면 혹시라도 불같은 사랑을 하게 될지, 그 갈림길에 서 있는 표준적 여성을 모델로 할까, 생각 중이다. 너무 엄마 얘기만 하는 건, 좀 그렇다.

 

기왕 가기로 한 거, 최대한 명랑하고 즐겁게 해보려고 한다. 톤도 가능하면 확 깨게. 내가 이 나이 먹어서 눈치 볼 게 뭐가 있겠나. 게다가 별로 팔리지도 않을 거. 최대한 실험적으로 가서, 명랑학을 내가 정립시키고야 말리라, 굳은 결심을.

 

 

(인간 조철현, 이 인간이 농업 연구 같이 하게 된다. 전문가 인터뷰도 같이 하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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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정책연구원, 젊은 연구원들하고 차 한 잔 마시기로 했다. 책은 겁나게 안 팔렸지만, 육아 에세이 가지고 같이 얘기했으면 한단다. 그래도 이게 정권 바뀌어서 좋아진 것. 야당 시절에는 혹시라도 나랑 만났다고 무슨 해꼬지를 당할지 몰라서, 정말 친한 경우 아니면 만나지도 못했다. 문재인 대표 시절, 우리 도와주다가 민간 연구원의 박사 한 명은 정말 짤릴 뻔했다. 그걸 좀 도와줘야 하는데, 방법이 없어서.. 결국 새누리당 국회의원 도움을 받았다. 된장. 야당 시절, 다들 몸사리느라 결국 집권 여당의 도움도 받은. 내가 사방으로 돌아다니면서 정말 손이 발이 되게 빌었었다. (그 때 도와줬던 사람들 좀 챙겨줘야 하는데, 내가 이 꼴이라.. 한국은행 출신 한 명은 결국 시골에 집 짓고 낙향. 가슴이 무너지는.)

언제나 내 주변에는 쥬니어 박사들이 많았고, 그들과 기쁨과 슬픔을 늘 함께 했었다. 지난 2년간, 애들 보느라 새로 만나는 사람은 거의 없이, 그냥 버텼던.

이젠 둘째 폐렴도 끝났고, 나도 한시름 덜었다. 실무진들과 차도 좀 마시고, 수다도 떨고. 농업 관련된 연구소들은 다 나주로 내려가서, 지나면서 차 한 잔 하기가 힘들다 (원장이 절친급인데 ㅠㅠ..) 연구소, 원장이나 부원장들이 친한 사람들이 많다. 그렇지만 사실 그런 대가리들은 실제로 연구할 때 아무 도움 안 된다 (행정들 하시느라, 얼마나 바쁘신지.. 그나저나 공무원들은 원장들 그렇게 앉아놓고, 진짜 시녀처럼 무려먹으신다.)

연구도 그렇고, 공부도 그렇고, 그냥 바닥에서 박박 기는게 결국은 가장 효율적이다. 시간과 품이 들지만, 그만큼 배우는 게 많다.

내 인생도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것 같다. 난 그냥 영원한 실무자로 바닥에서 살아갈까 싶다. 보람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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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오는 날

아이들 메모 2018. 12. 13. 10:26

 

눈 왔다. 눈 오면 애들 어린이집 가는 것도 큰 일이 된다. 큰 애는 좀 있으면 학교 들어간다. 방학 때 어떻게 해야할지, 벌써부터 떨고 있다. 애들 기저귀 뗀 후, 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잠시의 평온을 즐겨야 하는 건가 싶다. 오후에는 인터뷰가 있다. 나도 커피 한 잔 마시고 쉬는. 책 안 팔릴 때 저자가 느끼는 중압감도 보통은 아니지만, 그것도 몇 년 하니까 이제는 곧잘 버틴다. 그래도 눈 오는 날이라서 마음만은 푸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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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에 메리 셀리 이야기, 개봉한다. 어떻게든 시간 내서 볼려고. 그녀의 어머니는 울스턴크래프트. 프랑스 대혁명이 가장 반항적인 사상가이자, 최초의 공식적인 여성 권리를 주장한..

나에게는 이 메리 셀리 이야기가, 저자로서의 데뷔에 가장 영향을 많이 미친 이야기였다. 과학과 공포에 관한 이야기, 그 19세기가 좋았다. 그래서 19세기 연구를 했고, 그걸 연구했던 이탈리아의 63그룹의 책들을 읽게 되었고. (그 얘기를 '샌드위치론은 허구다' 서문에 썼는데, 너무 난해한 서문이라고 결국 개정판 낼 때 삭제..)

나는 과학의 정신에 뿌리를 두고 생각을 하려 했고, 그 정서적 출발점이 메리 셀리였다. 여성의 권리와 과학 그리고 공포, 그런 게 저자로서의 내 감정을 이끌고 나가는 포인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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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출간 일정

 

2019년 출간 일정이 어느 정도는 정리가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돌발 변수가 생겼다. 직장 민주주의 책이 잘 안 나간다. 물론 책이 잘 안 나간다고 해서 특별히 호들갑을 떨거나 그러지는 않는다. 그냥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하고, 다음 책 준비 진도 나간다.

 

직장 민주주의 경우는, 성격이 좀 다르다. 이건 될 때까지 싸우는 수밖에 없는 주제. 내가 원래 운동권 출신이다. 시민 운동하던 시절에도 전국을 몇 번이고 돌았다. 그래도 어디 집회 나가서 앉아 있고, 삭발하는 것보다는 바닥에서 사람들하고 얘기를 더 하는 게 훨씬 편하다.

 

그래서 강연을 좀 하기로 했다. 원래 계획에는 내년 봄에 꽃필 때가지는 나도 좀 쉬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차분한 시간을 가질 생각이었다. 3월에는 큰 애가 초등학교에 들어간다. 그즈음까지는 특별한 일정 없이, 그런 게 원래 계획이었다.

 

강연을 다시 시작하면서, 내년 일정을 전면적으로 재조정해야 할 이유가 생겼다. 도서관 얘기는 필라델피아에 갔다오면서 시작할 예정이었는데, 필라델피아 방문도 일단은 무기 연기. 그렇게 하면서 전면적으로 내년 일정을 재조정하게 되었다.

 

1)

당인리는 그냥 일정대로 간다. 큰 변화 없다.

 

2) 농업경제학

원래는 당인리 작업하면서 농업경제학도 같이 할 생각이었는데, 강연이 중간에 끼어들면서 그렇게 하기는 좀 어렵게 되었다. 그래서 순차적으로 연기.

 

3) 젠더 경제학

도서관 경제학은 필라델피아 갔다 온 다음으로 밀려서, 내년 출간은 좀 어렵게 되었다.

 

최근의 젊은 여성학자들이 젠더 경제학 작업에 도움을 좀 주거나 같이 참여하고 싶다는 얘기를 했다. 바로 시작하기에 가장 좋은 주제는 현재로서는 젠더 경제학이다.

 

결국 도서관 경제학을 후년으로 미루고, 젠더 경제학을 내년 겨울로 잡는, 그런 조정을 좀 했다. 젠더 경제학은 현재로서는 주로 통계 작업들이 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꼭 어딘가 출장을 가거나 인터뷰 작업을 엄청나게 해야 하는 건 아니다. 몸 보다는 머리가 힘들 작업..

 

그래서 작업 일정이 아닌 출간 일정만으로는 내년은 당인리, 농업경제학, 젠더경제학, 그렇게 세 권으로 라인업을 짰다. 애 둘 보면서 하기에, 사실 좀 벅차기는 하다.

 

젠더경제학은 작업실 지원 정도는 있을 수도 있는데, 내가 원래 그냥 아무 데서나 막 글을 쓰지, 따로 정색을 하고 작업장을 갖추는 스타일은 아니라서. 생각 중이다.

 

일단 이렇게 해놓고, 도서관 경제학 등 그 다음 작업은 내년 여름에 전체적으로 다시 한 번 판단을 하려고 한다. 이젠 애 보면서 뭔가 하는 거라서, 전처럼 일정에 무리하게 맞추고, 그렇게 할 수가 없다. 그리고 요즘은 책도 거의 안 나간다. 무리를 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방법 없다. 흐름 따라, 힘들면 쉬었다 가고.

 

농업경제학이나 젠더경제학이나, 다 인기 없는 분야고, 무플과 악플, 두 양 극단을 달리는 주제다. 아주 인기가 없거나, 돌멩이가 잔뜩 날아오거나. , 별 상관은 없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황량한 개활지를 나 혼자 걸어가는 일에 나는 아주 익숙하다.

 

책을 쓰기로 마음을 먹고, 책상에 앉기 시작한 게 2004년 여름이었다. 그 동안에 별의별 일이 다 벌어졌는데, 그 시절의 결심을 후회해본 적은 한 번도 없다. 많은 독자들과 그 기간의 기쁨과 슬픔, 좌절과 고통을 함께 했다. 명박이 시절, 근혜 시절, 순실이 사건도 다 함께 겪으면서 그야말로 찌질한 궁상의 시간을 같이 보냈다. 돌아보면 그래도 행복한 기억이다.

 

2년 전, 뭘 해야 할지도 잘 몰랐고, 둘째는 계속 폐렴으로 병원에 입원하고 있었다. 일정표 같은 것은 아무 것도 없었고, 아내는 인생의 가장 어두운 길을 걷고 있었다. 그 시절에 동료들이 있었고, 책이 있었다. 2018년이 끝나고, 오랜만에 나도 출간 일정이라는 것을 다시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나는 열심히 살지는 않는다. 그러나 명분 없는 일도 안 한다. 보람이 없을 것 같은 일은, 아예 시작하지도 않는다.

 

국가, 민족, 그런 어려운 얘기는 잘 모르겠다. 자기가 태어난 조국에서 자기 자식 교육시키는 게 싫다고 자식들 전부 외국 보내 놓고 자기가 애국자라고 하는데, 뭔지 잘 모르겠다. 틈만 나면 민족 얘기하는데, 미국이 자기 민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그 민족도 잘 모르겠다. 당을 위해서 최선을 다한다는데, 자신의 기회에 최선을 다하는 것인지, 그것도 잘 모르겠다.

 

나는 꼬질꼬질하고 남루하게 살지는 몰라도, 치사하게 살지는 않을 생각이다. 시민운동 팔고, 남의 성과물 팔아서 한 자리 하는, 그런 짓은 죽으면 죽었지, 하지 않을 생각이다.

 

그딴 짓 안 해도, 충분히 많이 웃을 수 있고, 명랑하게 살 수 있다.

 

마이크도 필요 없다. 큰 마이크, 더더군다나 필요 없다. 생각한 주제의 순서대로, 그냥 때가 되면 그 책 출간하면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일이다. 텍스트만으로도 충분히 명랑하게 그리고 보람지게 살 수 있다.

 

2018, 나는 이제야 온전히 웃음을 되찾았다.

 

물론 현실을 돌아보면 존심 상하고, 푸대접 받고, 약간씩 빈정 상하는 일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애가 아파서 병원에 수시로 입원하는 고민에 비하면, 그딴 건 고민 축에도 못 들어가는 일이다.

 

2019년 계획으로 나는 역시가 별 볼일 없이 보낸 2018년을 마무리한다.

 

May the 명랑 be with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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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ookbybook.co.kr/221417119667

 

(이 링크에서 신청하시면 됩니다.)

 

 

 

【강좌 내용】

하루 중 가장 긴 시간을 보내는 곳, 직장.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일하는 시간이 주어지지만,
누구에게는 행복하고 풍요로움으로 가득한 시간이 누구에게는 고통스럽고 견디기 어려운 시간이 되어버립니다.
개개인의 상황에 따른 차이도 있겠지만 우석훈 작가님은 조직문화 자체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합니다. 

"자신의 일을 좀 더 창의적이고 적극적으로 하는 사람, 그 사람들이 기존의 시선으로 보면 일종의 뮤턴트다. 그들은 시키지 않은 일을 하고, 심지어는 별로 권고하지 않거나 하지 말라는 일을 한다. 각자 자기 시대의 뮤턴트가 되기 위해서 움직이고, 그래서 성공하든 성공하지 않든 국가를 기반으로 한 복지라는 틀 안에서 먹고사는 데 크게 공포를 느끼지 않는 것, 그것이 북유럽 스타일의 핵심 요소다. 국가 차원에서 이렇게 뮤턴트를 허용하고 권장하는 것, 그것이 바로 복지다. 그리고 기업 차원에서는 그것이 바로 직장 민주주의다"

by <민주주의는 회사 문 앞에서 멈춘다> 중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물다고 할 만큼 특이한 대한민국식 '직장 갑질' 현상을 사회과학의 언어와 경제의 논리로 분석하고 대안을 논해보는 시간을 갖습니다:)


【이런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직장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계신 분들
직장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어떤 이유인지 원인을 찾지 못하는 분들
 대한민국 직장갑질 현상에 동의하는 분들
대한민국 직장갑질 현상에 반대하는 분들
▶ 풍요롭고 행복한 직장생활의 경험을 하고 있는 혹은 해본 적이 있는 분들
▶ 대한민국에서 직장인으로 사는 것에 대해 근본적인 논의를 하고 싶은 분들
▶ 우석훈 작가님 팬인 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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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사진 뒤적거리다 보니, 2011년에 노회찬 사진이 나왔다. 맙소사. 진행자는 이재영.흔들리기는 했지만 이재영 사진도 있다. 내가 몸처럼 사랑했던 두 친구였다. 그들은 벌써 떠나고 나만 남았다..)

 

1.

한 해가 간다. 어제는 아내가 요즘 내가 하는 일들의 흐름이 좋아 보인다고 했다. 저녁 때 아내가 회의에 갔다가 늦게 와서, 애들 데리고 내가 좀 고생한 날이기는 하다. 글쎄.. 요즘 내가 하는 일이 다 잘 되는 것은 아니다. 덜컹덜컹, 이리 박고, 저리 박고..

 

어쨌든 한 해가 지나면서 생각해보면, 그냥 꾸역꾸역 하기로 한 일을 빵꾸내지 않고 그냥 버티기에 정신 없던 시간들이었다. 가끔은 왜 이러고 사나 싶지만, 그래도 별로 방법은 없다. 애 둘 어린이집 보내고, 회사에서 정신 없는 아내 뒷바라지 하면서 버티는 중이다. 이 이상은 나도 잘 모르겠다.

 

뭔가 잘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아예 없다면, 그건 좀 뻥이다. 나도 사람인데, 뭘 좀 멋지게 해보고, 근사하게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왜 없겠는가? Mbc 쪽에서 경제방송 얘기가 잠시 나왔을 때에는 별로 안 흔들렸는데, 생각지도 않다가 sbs에서 라디오 진행에 대한 얘기 들었을 때는 좀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몇 초, 방법 없다. 어렵다고 했다.

 

1년 내내, 특히 상반기에는 뭐 해보겠냐, 어렵다, 그런 일들의 연속이었다. 그걸 버티고 참아내는 것도, 사실 감정적 에너지 소비가 많은 일이다. 물론 통장에 돈이 겁나게 많고, 아무 일도 안 해도 되면 좀 더 버티기가 쉬울텐데, 아직 그 정도는 아니다. 그냥 세 끼 밥 먹는데 불편하지 않을 정도.

 

50이 되면 난 뭘 할까? 모르겠다. 생각해 놓은 것도 없고, 생각해본 것도 없다. 그냥 에세이집 <매운 인생 달달하게 달달하게>를 쓰면서, 마음만 준비한 것 같다. 뭘 할지, 모르겠다. 둘째가 다섯 살이다. 최소 초등학교 3학년에 올라갈 정도까지는 본격’,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아직도 4~5년은 이렇게 살게 된다. , 길다.

 

2.

뭘 같이 하거나 뭘 해보라는 얘기는 엄청나게 온다. 장관 자문, 뭐 이런 것들은 그냥 한 칼에.. 쳤는데, 조한혜정 선생 같은 식구 같이 지내는 양반이 뭘 하자고 하면, 이건 또. 그래서 하나씩 둘씩, 정부의 작은 기구에 이름이 올라간다. 된장. 이거 아닌데. 억지로 겨우 시간을 만들었더니, 또 무슨 봉사를 해달라고. 내가 봉사할 처지가 아닌데. 이거 또 인생 옆구리 터지는 느낌인데.. 그래도 또 어떻게 꾸역꾸역.

 

젊은 박사들이 때때로 이런 책, 저런 책, 이런 연구, 저런 연구, 그렇게 얘기할 때면 잠시 삶이 행복하기도 하다. 그래도 내가 아주 인심 사납게 굴지는 않았나벼? 내 삶에 크게 도움되는 일은 아니지만, 어쨌든 성심성의껏, 내가 아는 만큼.

 

쓰고 싶은 책이나 써 달라고 부탁하는 책들이 죽 늘어서 있다. 쓰는 거는 그냥 일정 맞춰서 쓰면 되는데, 잘 안 팔린다. 초창기에는 출판사에서 잘 안 내줘서 쓰고 싶은 걸 잘 못 썼는데, 이제 내가 안 팔리는 게 부담되어서 덜 쓴다. 방법 없다. 동료들은 이제 책은 그만 쓰고, 자기들하고 그냥 놀잔다. 그럴까? 솔깃한다. 그것도 좋네요..

 

그래, 36권이면 많이 썼다. 출판사에서 계약금 받은 게 천만 원 정도 되는 것 같다. 내년에는 이거 그냥 다 돌려주고, 그냥 놀까? 생각이 오락가락 한다. 요즘은 언제 돌려주고 그만 쓰게 될지 몰라서, 새로운 계약도 안 한다. 딱히 돈 필요한 것도 아니고.

 

3.

그래도 꾸역꾸역 진도를 나가는 건, 내가 만드는 것을 워낙 좋아해서 그런 것 같다. 안 하던 얘기를 만드는 걸 좋아하고, 새로운 이론을 만드는 걸 좋아하고. 딜타이 등 해석학을 그렇게 좋아하기는 했는데, 해석하는 것 보다는 만드는 게 더 좋고, 더 재밌다. 재주는 곰이 벌고 돈은 떼놈이.. 원래 세상이 좀 그렇기는 한데, 한국이 그게 아주 심하다. 알기는 아는데, 어려운 주제를 알아 먹을 수 있는 말로 설명틀을 만들고, 안 해본 얘기를 개척하고, 그런 게 재밌다. 그래서 그냥 꾸역꾸역.

 

애들 둘 데리고 숨어 턱턱 막히는 한 해를 보내면서 무슨 재주로 이 시간을 내가 버텼는지 잠시 생각해봤다. “내가 하면 다르다”, 이런 생각을 버린 게 제일 큰 것 같다. 예전에는 그런 생각을 나도 좀 했던 것 같다. 운이 좀 좋았던 것은 같은데, 그 운이 언제까지 나를 따라다닐 것 같지 않다. 어쩌면 내가 써야할 운은 나중에 아이 둘을 키우게 되는데, 이미 다 써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사실 내가 해도 별 수 없는 것은, 만고의 진리다. 그렇지만 자꾸 내가 하면 다르다”, 그런 말도 되지 않는 생각들을 억지로 하면서 견딜 수 없는 노동강도를 견디게 하는 사회에서 살았던 것 같다. 병신!

 

문득 그리고 생각이 났다. 되면 되고, 말면 말고. 이렇게 살아야겠다. 무슨 엄청난 것을 한다고, 그렇게 죽어라고 밤 새고, 여기저기 싸돌아다녔는지 모르겠다. 너무 빡빡하게 살았고, 너무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것을 하도록 설계한, 잘못된 삶을 살았다. 그게 인간의 삶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 많은 시간이 흐른 다음에야 알게 되었다.

 

내가 해도 다르지 않고, 어차피 똑 같은 결과가 나올 건데, 굳이 내가 할 이유는 없다. 그렇게 맘 편하게 먹고, 나는 조금 더 아이들하고 놀기나 하고, 남들 건들이지 않는 아주 한적한 곳에 있는 주제들을.

 

201812, 올해 나의 마음을 움직인 문장은 내가 해도 다르지 않다”, 이 문장이다. 나에게 돈을 가져다 주지는 않았지만, 마음을 평온하게 해주었다. 그리고 무지막지했을 수도 있을 스트레스들을 줄여주었다. 그리고 다시 명랑이라는 단어를 써도 이상하지 않은 삶을 살게 되었다.  

 

애 둘 보면서 하루하루 보내는 아빠, 아니 늙은 아빠가 무슨 엄청난 일을 하거나, 엄청난 책을 쓰거나, 엄청난 돈을 벌 것 같지는 않다. 그냥 하루하루 사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거의 전부다.

 

그러나 남들 하는 일은 안 한다. 내년에는 더더군다나 안 할 거다. “내가 하면 다르다”, 이딴 거 없다. 내가 해도, 남들하는 거랑 별 차이 없거나, 아니면 그만도 못할 확률이 높다.

 

그냥 남들 하는 건 안 한다, 그 정도의 생각으로 2019년을 맞으려고 한다. “나 아니면 못한다”,가 아니라 아무도 안 하는 것, 그런 거나 꾸역꾸역 일정에 너무 늦지 않게 하는 정도로 살려고 한다.

 

다행히 한국에는 아무도 안 하는 게 너무 많다. 직장 민주주의가 그랬다. 정말 이게 본격적인 분석으로는 첫 번째 책이라는 데에, 나도 놀랐다. 농업경제학이 그렇다. 아무도 안 한다. 앞으로도 아무도 안 할 것 같다. 큰 성공과 큰 명예 그리고 큰 돈을 마음 속에서 내려놓으면, 보람과 명랑, 두 가지는 내 삶에 꾹꾹 채워넣을 수 있을 것 같다.

 

남들 다 하는 것을 잘 잘 하기는 아주 어렵다. 경쟁에서 이기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남들 안 하는 것을 왠만큼 하는 것은 명랑하게 할 수 있다. 아주 잘 하면 좋겠지만, 그건 내가 능력이 안 된다. 그냥 왠만큼, 평타 정도, 진루타, 그 정도는 할 수 있다. 완벽하게 하면 좋겠지만, 명랑하게 하는 것, 그 정도는 나도 할 수 있다.

 

내가 해도 다르지 않다. 그래서 나는 남들 피하고 기피하는 것만 할 거다. 춥고, 어둡고, 꼬질꼬질한 데.. 다행히도 난 그런 데에서 뭔가 사부작사부작 하는 걸, 보람 있게 생각한다.

 

혹시 아나? 아주 다른 주제만으로 50권 넘기면, 그래도 역사 책에 한 줄 들어갈지도. 영광은 필요없고, 명랑은 필요하다. 그 출발점에, 내가 하면 다르다, 이런 생각을 쓰레기통에 처박는 찬란한 사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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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이 된 내 성격에 좋은 점이 있다. 패닉이 없고, 분노가 없다. 잠깐 택배 받는 사이, 애들 양 쪽으로 기저귀 떼고 마루에 똥 싼 것을 당황하지 않고 해결한 이후, 내 인생에 패닉은 없어졌다. 포기할 건 포기하고, 포기하지 않을 건 최대한 되게 하고. 그리고 분노하지 않는다. 분노의 힘으로 뭔가 일을 할 나이도 지났다. 내 안에 더 이상 분노도 없고.. 좋은 점을 좋게 생각하고 고마워하는 동안, 분노가 사라져버렸다. 물론 그렇다고 감정마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뒷끝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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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정부의 초대 경재수석 하셨던 김태동 선생과 간만에 점심 식사. 책도 한 권 받고, 나도 새 책 인사도 드릴겸. 소설 '모피아'의 첫 모티브가 그날, 왜 김태동이 경질되었는가, 여기에서부터 시작했었다. 역사의 미스테리다. 알아본 바, 아무도 모른다. 뭐, 알기냐 하겠지만, 얘기해주는 사람이 없다는 게 맞을지도. 

나도 나이를 먹는다. 더 이상 30대, 불같던 소장파도 아니고. 이제 50이 넘었다. 30대 때, 지금 생각해도 나는 탸협의 여지가 전혀 없던 불같은 성정이었다. 청와대 근무, 한 마디로 "싫어요" 했다. 지금은 배 나왔다. 이제는 다른 이유로, "싫어요, 내가 왜?". 불같은 성정은 사라졌고, 까칠함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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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아침에 일어나서 집 좀 같이 치우다가, 애들 베이 블레이드 사주기로 한 약속이라서 백화점 쇼핑. 그리고는 바로 호두까기 인형 발레 관람.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 생신이라 식사. 둘이 서로 장난감 가지고 노는 거 말리느라 한바탕, 그 와중에 큰 애는 새로 사 준 장난감 뜯다가 한 쪽 손톱 다침. 그리고 둘 데리고 목욕, 욕탕에서 서로 눕겠다고 티격태격. 그리고 나니 일요일 하루가 다 갔다. 이러니 술 처먹고 싶겠어, 안 처 먹고 싶겠어.. 소주 사러 나갔다올까 말까, 극심한 갈등 중.

내일은 아침에 신문사 인터뷰, 점심에는 원로 중의 원로께서 식사나 하자고 집 앞으로 오시겠다고. 내일도 한 시간 앉아있을까 말까 싶은. 이러니 머리 복잡해지면서 술 먹고 싶어져, 안 먹고 싶어져? 30분째 갈등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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