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생 책 서문을 새로 썼다. 순서가 좀 뒤집히기는 했는데, 그 동안 죽음 에세이 초고를 쓰면서, 내가 많이 변했다. 생각도 많이 변했고, 앞으로의 삶에 대한 계획도 많이 변했다. 

중국어도 배우기로 했고, 일본어도 배우기로 했다. 20대 이후로는 어학은 거의 공부한 적이 없다. 독일어 조그만 더 제대로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했었는데, 여유가 나지 않는다는 핑계로 그냥 미루어 두었었다. 

프랑스에서 박사 과정 마무리하기 직전에 있었던 일이다. 암으로 죽어가던 전직 프랑스 외교관 집에 초대를 받아서, 하루 밤 자고 온 적이 있었다. 그때 이 양반이 자기 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게 외국어 공부한 것이라고 했다. 아프리카 언어 몇 개까지, 7개 국어를 아주 능통하게 했다. 자기도 경제학 공부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리고 문학도 하고 싶었다고 했다, 재주가 아주 많은 사람이었는데, 결국 말만 배우고 삶을 마무리하게 되었다고. 

내가 불어하는 거 보니까, 앞으로도 언어 몇 개는 더 배우려고 할텐데, 그렇게 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얘기를 해주었다. 말은 2~3개 하면 충분한데, 자기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게 너무 기분이 좋아서, 배우고 배우고 또 배웠다고 했다. 인생이 긴 줄 알았는데, 막상 죽는 순간이 되니까, 어학 공부하면서 인생을 낭비했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나도 그때 느낀 게 좀 있었다. 사실 그때 좀 찔렸다. 원래는 7개 정도 언어를 배울 생각이 있었다. 그때 안 배워두어서 후회했던 것은 포루투갈어.. 브라질 연구를 좀 할 기회가 있었는데, 읽기가 너무 힘들어서 결국 포기. 

그렇게 살았는데, 죽음 에세이를 쓰면서 중국어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번에 짧은 일본 여행을 하면서, 일본어도 배워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정적인 계기는, 내가 중국에 대해서 너무 모른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던.. 무식해도 이렇게까지 무식한 줄 몰랐다가, 크게 충격을 받았다. 내가 다른 사람 보다 잘 하는 것은 딱 한 가지다. 호기심이 많은 거였다. 사실 지금까지도 필요에 의해서 공부를 한 적은 거의 없고, 호기심이 생기면 그걸 찾아보면서 공부를 하게 된 거였다. 

아직 알고 싶고, 살펴보고 싶은 게 많이 있다는 것을 50대 중반에 알게 되었다. 중국 역사에 대해서도 더 알고 싶고, 일본에 대해서도 더 알고 싶어졌다. 중국 연수도 갈 생각이다. 

책이라는 게 그렇다. 책을 한 권 쓰고 나면, 인생이 변한다. 알고 모르는 것의 경계선에 있게 되고, 자신이 살아온 삶, 앞으로 살아갈 삶에 대해서 전체적으로 한 번을 다 뒤집어보게 된다. 그냥 아는 얘기 쓰면 될 것 같지만, 그렇게는 책이 되지가 않는다. 논리와 내용만 가지고 책이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감정이 들어가야 하고, 감정이 진짜로 생겨나기 위해서는 그 얘기가 가짜 얘기라서는 안 된다. 내가 배운 것은 그런 거다. 

죽음 에세이는 특별히 더 그런 게 많았다. 죽음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보다 보니까, 지금까지 알고 있던 것들이 부정확했거나, 임시 방편 같은 지식인 경우도 많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도 50대 중반이다. 그렇지만 한 턴 더 공부할 기회는 남아있는 것 같다. 별로 하는 일은 없는 시간을 지내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변화도 없는 것은 아니다. 30대 초반에 책을 쓰기로 마음을 먹은 이후로는 가장 큰 변화가 요즈음 있었다. 

습관대로 살다가, 습관처럼 나이를 먹고,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다. 그렇게 변한 내 생각을 저출생 책에 좀 반영을 하려고 한다. 어쨌든 뭔가 배우고 싶고, 뭔가 알고 싶다는 변화는 좋은 변화다. 나이 먹고 새로 뭔가 배우는 게 다 귀찮아지고, 하기 싫어질 수도 있다. 나는 아직 그런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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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88만원 세대> 시리즈 디자인할 때, 후반부에 있던 책 중의 하나가 “방송과 언론의 경제학”이었다. 이래저래 사정이 생겨서, 시리즈를 마무리하지 못하게 되었다. 마침 그 시기 즈음에 종편이 생겨났는데, 종편 얘기만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냥 묻었다. 

한동안 잊고 있던 이 얘기가 다시 생각난 것은 kbs를 그만둔 이후의 최경영 유튜브에 가기 위해서 운전하고 가던 중이었다. 이제는 정말로 공중파와 유튜브 사이의 구분점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이런 변한 상황에 대해서 생각을 좀 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나도 생각이 정리된 것은 아니다. 한겨레 출판사에 계약을 해놓고 취소된 책이 하나 있는데, 내년 말쯤 이 주제를 다루면 어떨까, 그런 마음이다. 요즘은 아는 기자도 별로 없다. 그 동안 시간이 많이 지났고, 같이 작업했던 기자들이 때로는 은퇴하거나, 아주 나이가 많아졌다. 인터뷰도 새로 하고, 조사도 새로 하기는 해야 한다. 

전에 마지막으로 신문을 봤던 건 요미우리 영자판이었다. 처음에는 재밌게 봤었는데, 노안이 심해져서 신문 보기가 어려워졌다. 그래도 꽤 도움을 받아서, 아직 나오면 다시 볼 생각이다. 

한동안 신문을 안 보다가, 큰 애가 신문 보고 싶다고 해서 몇 달 전부터 다시 신문을 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요즘은 다시 신문을 안 본다. 신문 끊을까? 그래도 좋다고 했다. 잠시 생각을 해봤다. 제목이라도 보라고 했고, 둘째도 신문을 보라고 했다. 보겠다고 한다. 

그냥 혼자 생각을 해봤는데, 지금 어린이들은 신문을 대충 보는 것만으로도 그야말로 경쟁력이 생길 것 같았다. 얕은 속셈이다. 텍스트에 익숙해지는 것은, 미래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신문의 교육적 가치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다. 

언론이 강한 나라가 선진국이다. 어떻게 다음 세대에게도 언론이 존재하는 사회를 물려줄 것인가, 이제 그런 고민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종이 신문이 주는 매력이 있지만, 종이로는 오래 버티지 못할 것 같다. 결국은 지불의 문제가 되지 않을까 싶다. 

하여간 언론 문제를 본격적으로 돈의 관점에서 한 번 생각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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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에세이 쓰는 동안에 생활 패턴이 바뀌었다. 보통은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난다. 새벽 시간에 워낙 능률이 좋아서, 그렇게 한 것도 있지만, 그게 자연스러웠다.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다. 그렇게 새벽 시간을 쓰기 때문에 술 한 번 마시면 사실 타격이 컸다. 술 먹고는 글을 쓸 수가 없기 때문에, 그냥 하루치 일을 못하게 된다. 그래서 뭔가 기념할 날, 뭔가를 마무리한 날, 그런 날 주로 술을 마신다. 일하지 않아도 되는 날.

죽음 에세이를 쓰면서, 진짜로 죽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일부러 그렇게 한 것은 아닌데, 저녁 먹고 나서는 잠이 쏟아져 바로 잤다. 그리고 새벽에 일어났다. 몇 달을 그렇게 지냈다. 

예전 박사 논문 쓰던 시절에 그런 사이클로 몇 년을 살았던 적이 있다. 그때는 집에 오자마자 자기 시작해서, 새벽에 일어났다. 시간은 얼마 없고, 읽어야 할 것은 많고, 미방 등 수학 문제도 풀어야 했다. 절대 시간이 부족하니까, 극단적으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생활을 했다. 

그 후로는 그렇게 한 적이 없었는데, 죽음 에세이 쓰는 기간에 다시 그 시절의 생활 패턴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적지 않은 책을 썼는데, 그 동안에 생활 패턴이 바뀐 적은 없었다. 

죽음 에세이 초반 좀 지났을 때, 이 책의 셋업이 잘못 구성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톤도 너무 무겁고, 내가 겪은 얘기를 중심으로 셋업을 만들었는데.. 명사 에세이라는 책 분야가 있기는 한데, 나는 그런 명사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처음 에세이집을 냈을 때에는, 이런 방식으로 했었다. 그때는 내가 명사는 아니더라도, 그래도 그 언저리 어디엔가는 걸쳤던 것 같다. 그래서 그렇게 쓰는 게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지금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고, 그냥 어린이 둘 키우는 아빠일 뿐이다. 한동안 이렇게 살았고, 앞으로도 이렇게 살 것 같다. 이제는 더 이상 유명한 사람도 아니고, 사람들이 나의 일상에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생각도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 시절의 습관이 남아서, 죽음 에세이의 셋업이 되었다. 

그걸 다 들어냈다. 죽을 때까지, 절대로 잊지 않으려고 한다. 나는 명사 아니고, 아무 것도 아니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삶에 끼어 있던 거품이 아직도 덜 빠진 것 같다. 사실 죽음이라는 주제가 그런 걸 깨닫게 해준 것 같다. 다루기 어려운 주제에 너무 설렁설렁 습관처럼 들어왔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책을 다시 읽고, 데이터도 다시 보기 시작했다. 나도 위기를 많이 겪었다. 책 쓰고 망한 적도 많지만, 그래도 위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었다. 근데 처음으로 위기라는 생각을 했다. 셋업을 잘못 설정했다는 생각은 처음 했다. 그리고 더 큰 건, 그게 문제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때 책을 그만 쓸까 하는 생각을, 데뷔하고 처음 했다. 

그래서 정말로 그만 두려고 했다. 남은 계약들이 몇 권 있지만, 그만하기로 하면, 계약금 다시 주면 되는 일이기는 하다. 행정적으로는 말이다. 아마 지금 내 통장이 넉넉한 상황이면, 그렇게 했을 것 같다. 셋업도 제대로 형성시킬 수 없는 상황이면, 책은 그만 쓰는 게 맞다. 

그냥 일정대로 책을 쓰기로 다시 생각한 것은, 며칠 후의 일이다. 그때 하고 있던 분석이 우울증과 치매였다. 이 분석들은 내 능력 이상으로 잘 되었다. 그리고 마침 그때 보고 있던 드라마가 <대명풍화>였다. 명에 대해서 내가 너무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충격적으로 절감했다. 모르는 게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많다. 좀 모르는 것과 생판 모르는 것은 좀 다르다. 명나라에 대해서 정말로 내가 너무 몰랐다. 명 초기에 순장이 있는 줄은 정말 몰랐다. 100일 정도 이 민족이 북경을 포위했다는 정도만 어렴풋이 알았는데, 처들어온 게 어떤 나라인지도 몰랐다. 북경 갔을 때, 자금성도 안 보고 왔다. 북경성 담벼락이 그렇게 높다는데, 그것도 안 보고 오다니! 

모르는 건 문제가 없다. 모르는 걸 알고도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는 게 문제다. 아직은 늦지 않았다는 생각을 했다. 중국어를 배우기로 마음을 먹었고, 북경도 가보기로 했다. 타이완도 가볼 생각이다. 익숙하지 않은 건 익숙해지면 되고, 모르는 건 공부하면 된다. 

그렇게 죽음 에세이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 그때쯤 저녁 무렵이면 잠이 쏟아져서 곯아떨어졌다. 일찍 잤으니까 일찍 깼다. 책을 쓰면서, 이렇게 긴장이 올라간 적이 없었다. 워낙 어려운 주제라서 그렇다. 그리고 내 꼴도 꼴이 아닌 상황이다. 그냥 이 모든 것을 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직은 어려운 거 분석할 때, 보람이 느껴진다. 그리고 뭔가 의미 있는 결과를 찾아내면 행복하기도 하다. 아직은 좀 더 배울 수 있는 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죽음 에세이 본문을 마쳤다. 날려버린 셋업에 들어간 내용 일부는 서문이라는 형식에 넣었다. 그렇게 새로 쓴 서문도 톤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아서, 날리고 새로 썼다. 새로 쓴 게 훨씬 낫다. 톤을 어느 정도는 정했다. 

어제까지는 쉬었고, 오늘부터 새로 죽음 에세이 고치기 시작한다. 어제는 일부러 술 때려 마시고 늦잠도 잤다. 다시 늦잠 자는 스타일로 가려고 한다. 저녁 때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스타일은 긴장감을 높이는 데에 좋기는 하다.

제일 큰 문제는 밤 10시에 하는 저녁 수영을 못 가는 일이다. 하이고. 무엇보다도 긴장도를 그렇게 높이면 일상 생활을 할 수가 없다. 집중해야 하는 순간이 있기는 하지만, 계속 그렇게 지내면 제 명에 못 산다. 텐션을 좀 떨어뜨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긴장도를 너무 높이면, 웃음이 나오기 어렵다. 명랑도 힘들다. 인상 쓰고 최선을 다 하는 것, 그건 내 스타일이 아니고, 그렇게까지 해서 성과를 만드는 건 별로다. 나는 그런 삶과 이별하기로 했다. 저녁에 자고 새벽에 일어나는 것, 그것도 내 스타일 아니다. 그렇게 계속 지내면, 없던 암도 새로 생길 것 같다.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다. 

이번에 느낀 게 많다. 지금도 살살 살지만, 앞으로는 좀 더 살살 살 생각이다. 그 대신 습관처럼 생각하고, 습관처럼 느끼고, 그렇게는 안 하려고 한다. 너무 열심히 살면, 모든 것이 패턴화 되고, 그 패턴 안에 들어가서 새로운 것을 못 찾고, 익숙한 방식으로만 열심히 하려고 한다. 그래봐야 힘만 들지, 좋을 게 아무 것도 없다. 

조금 더 설렁설렁 살도록 노력해야겠다. 지금부터 죽음 에세이, 고치기 시작한다. 조금 더 웃을 수 있는 공간을 많이 만드는 게 목적이다. 날려버린 셋업도 다시 구성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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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에세이 본문은 끝냈고, 서문까지 달았다. 우와, 죽다 살았다. 

이게 이렇게 어려운 일인지, 시작하기 전에는 진짜 몰랐다. 글이라는 게 뭔지, 진짜로 이번에 많이 느낀 거 같다. 죽음이라는 주제가, 더럽게 어렵다. 사람들이 보고 싶어하지 않는 주제다. 보고 싶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엄청나게 피하고 외면하고 싶어하는 주제다. 그냥 접을까, 몇 번 생각이 들었다. 

죽음을 다루는 것은 생각보다 에너지와 감정 소모가 많은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게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죽음과 관련되면 사소한 일이 아닌 게 된다. 아무렇지도 않은 죽음이라는 것은 없다. 죽음은 허투루 다룰 수가 없고, 숫자 속에 숨겨진 일들이 자꾸 보이게 된다. 사연 없는 죽음이 어디 있고, 아픔 없는 죽음이 어디 있겠나. 그때마다 나도 살아온 삶들을 돌아보게 된다. 젠장. 나는 왜 그런 개떡 같은 결정을 하였던가, 그런 생각들이 결국 들고야 만다. 나는 왜 그렇게 했을까? 

내 삶을 돌아보면, 늘 이기고, 잘 한 기억만 있을까? 나에게도 수 없는 이불킥의 기억들이 있다. 그걸 되새기면, 감정이 많이 소모된다. 하이고, 나는 왜 그렇게 살았을까? 수없이 많은 지점을 되새기게 된다. 그걸 버티고, 또 다음으로 넘어간다. 

생각해봤다. 나는 이렇게 봤다와 나는 이렇게 살았다, 이건 관찰에 대한 감정적 무게 자체가 다르다. 그렇다고 내가 뭐 대단하게 모범적으로 살아온 것도 아니고. 한 칸 한 칸이, 글로는 드러나지 않는 무게감을 지고 걸어가는 길 같다. 

하여간 그렇게 일단 서문까지 달아서 본문은 끝냈다. 책 쓰면서 이렇게 어려웠던 적은 처음인 것 같다. 앞부분의 셋업에 해당하는 얘기들은 일단 다 날렸다. 나에게는 중요한 얘기라고 생각했는데, 읽는 사람에게도 그럴지는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은 감정을 만드는 데 실패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앞부분은 날리고, 그 얘기는 그냥 서문에 넣었다. 

오늘은 쉬고, 내일부터 본문 고치기 시작할 거다. 셋업을 날려서, 결국은 대수술이 필요하다. 책 쓰면서 이렇게 고심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냥 간단하게 생각하면.. 능력부족이다. 

톤 조정도 좀 하려고 한다. 죽음이라는 무게에 너무 밀리지 않으려고 노력은 했는데, 여전히 톤이 좀 무겁다. 좀 더 명랑하게 바꾸어 보려고 한다. 보는 사람들이 그래도 좀 맘을 편하게 하고 읽을 수 있기 위해서, 쓸 수 있는 장치들은 다 써보려고 한다. 

죽음을 밝게 얘기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좀 웃기게 얘기하려는 시도는 해보고 싶다. 멋적은 농담이 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아무 농담도 없는 것 보다는 나을 것 같다. 

이번에 죽음 에세이를 쓰면서 참 많은 생각을 했다. 어떻게 늙어갈 것인가, 그런 삶에 대한 생각도 했고, 책에 대한 생각도 많이 했다. 글에 대한 생각도. 

주제가 이번처럼 어려우면, 너무 고생스러운 대신에, 보람은 있다. 재미도 있으면 좋겠지만, 그런 건 아니고, 보람 정도 느껴지는 게 정확한 표현인 것 같다. 

그리고 크게 배운 게 하나 있다. 과정이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정을 좀 더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이런 걸 미리 계획하거나 설계하기는 힘들다. 나도 미리 다 알고 쓰는 게 아니라, 분석해보면서 하나씩 찾아내는 거라서, 이런 걸 과정을 미리 만들 수는 없다. 그래도 좀 즐기는 마음을 가지려고 하고 싶다. 

내일부터는 이제 다시 고치기 시작한다. 좀 즐거운 마음으로 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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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생 책은 오전에 마지막으로 손을 봐서 보냈다. 이제 초고가 마무리되었다. 작년 1월에 준비를 시작한 건데, 늦어도 올 여름에는 끝낼 줄 알았다. 결국은 둘째가 병원에 입원하고, 어느 정도 회복될 때까지 마무리짓지 못했다. 사는 게 늘 그렇다. 

책 한 권이 떠나고 나면, 그 전에 뭐하고 있었는지, 기억이 희미하다. 책이라는 게, 생활인 보다는 미친 놈에 좀 가까워진다. 집중하고 있으면, 다른 생각을 하기가 쉽지 않다. 감정을 만드는 일이 가장 어렵다. 감정이 과해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아무 감정이 없으면, 글이 너무 밋밋해진다. 책이 끝나면, 그걸 털어내기가 쉽지 않다. 오늘 저녁은 출판사랑 술 마시기로 했다. 원고 터는 날이면 늘상 하던 일이다. 요즘은 술 때려 마시는 일이 별로 없기는 한데, 그래도 원고 마무리 짓는 날은 술 때려마신다. 아직은 다른 털어내는 방식을 모른다. 지난 여름에 식구들하고 해외여행을 갔다왔었다. 그 때쯤이면 원고가 끝날 거라고 생각하고 일정을 잡았는데, 택도 없었다. 괜히 마무리 짓지 못한 글만 생각하느라, 마음만 더 무거웠다. 

며칠 좀 쉬고 앞에만 좀 쓰다가 미루어 두었던 죽음 에세이를 마저 쓸 생각이다. 다른 제목을 생각했던 게 있었는데, 요즘 하고 싶은 제목은 ‘인생에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는 제목이다. 이게 죽음과 뭔 상관이 있겠나 싶지만, 사실 이게 요즘 내가 가장 많이 쓰는 말이기는 하다. 누군가 전화해서 어떻게 지내냐고 하면, 뭔가 길게 설명하기가 어려우니까 내 인생에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얘기한다. 통장 잔고가 좀 달랑달랑하기는 하고, 내년 봄까지는 보리고개를 넘겨야 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큰 걱정 없고, 크게 하고 싶은 것도 없고, 우리 집 어린이들 때문에 거의 강제적으로 일상적인 삶을 살고 있다. 루틴이라는 게 크게 의미가 없는 삶이었는데, 요즘은 루틴이 많이 생겼다. 뭔가 규칙적이라야 루틴도 생기고 그러는데, 요즘 내가 그렇게 산다. 크게 골치 썩는 일 없고, 간절하게 소망하는 것도 없다. 그러다 보니까 담담하게 죽음에 관한 주제들도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죽음 에세이를 마치고 나면, 도서관 경제학을 쓰려고 한다. 책에 대한 얘기들 그리고 시설로서의 도서관이 아니라 관계로서의 도서관의 역사 같은 얘기들을 좀 더 해보려고 한다. 내년 봄에 할 일이다. 어쩌다 보니까, 도서관을 적으로 생각하는 정권을 만났다. 자기가 책 안 읽는 거야 상관이 없는데, 다른 사람들이 책 보는 것도 싫어하고, 무엇보다도 어린이들이 책 읽는 것을 아주 싫어하는 것 같다. 해방 이후 한국의 좌우가 모두 합의했던, “도서관은 중요한 거다”, 이게 깨질 줄은 미처 몰랐다. 보통 정치인들이 책 읽는 형편이 되지 않더라도, 책은 읽는 척한다. 보수 쪽 사람들에게 건네들은 얘기로는, 박근혜도 책을 읽는다는 거였다. 예전에 책 한 권만 읽은 사람이 제일 무섭다고 하더니, 딱 그런 경우다. 살다 살다 이런 이상한 정치 지도자는 전두환 이후로는 처음 봤다. 

어린이들 보는 처지에, 이것저것 복잡하게 욕심 내봐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할 수 있는 걸 조금씩 할 뿐이다. 별로 하는 것도 없는데, 이상하게 바쁘다. 연말이면 망년회 몇 개는 어떻게든 하려고 하는데, 올해는 망년회도 안 할 생각이다. 내가 그럴 형편이 아니다. 연말에 어린이들 데리고 해외 여행 갈 계획이 있었는데, 둘째가 언제 응급실 가야할지 모르는 상황이라, 그것도 힘들게 되었다. 강릉 한 번, 울산 한 번, 그렇게 짧은 여행을 하려고 한다. 

마음 속 기분으로는 아직 여름인 것 같은데, 벌써 영하로 내려가는 겨울이 되었다. 시간 가는 것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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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 말..

낸책, 낼책 2023. 11. 15. 07:25

어제 kbs를 막 그만둔 최경영과 간만에 통화를 했다. 나도 모르고 있었는데, 핸펀에 ‘최경영 뉴스타파’라고 적혀 있었다. 그가 전에 kbs를 그만두고 뉴스타파에서 일하던 시절에 종종 만났었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서, 그가 다시 kbs를 떠나는 시간이 또 왔다. 역사는 돌고 도는 거라고 했던가?

Mb는 통치 스타일이 좀 거칠었다. 그래도 회유할 사람은 회유하고, 만날 사람은 만나고, 그렇게는 했던 것 같은데. 윤석열도 거친 것 같다. 찌르고, 베고, 밀어내고. 온통 피투성이다. 살살 하는 법이 없다. 온 세상이 다 보도록 한다. 

한 때 돈과 말에 대한 책을 생각한 적이 있었다. 화폐론에 대한 얘기를 정리해보려고 했던 건데, 시기를 놓쳤다. 그 시절에는 달러 음모론이 시중에 가득 차 있었다. 미국이 달러를 자기 맘대로 하고, 그게 다 음모이고.. 화폐는 뭐냐, 그게 어떻게 작동하느냐, 그런 얘기를 차분하게 하기에는 시기가 좀 안 맞았다. 나도 사는 게 너무 힘들었다. 애들 태어나고, 이것저것 정신이 없었다. 돈 파킨틴, 이런 아무도 안 보는 사람들 얘기를 차분히 정리하기에는 너무 벅찼다. 

윤석열은 힘만 생각하지, 돈에 대해서는 너무 모르는 것 같다. 보통은 보수 정권이 들어서면, 돈 가진 사람과 공무원들이 그쪽으로 몰려간다. 공무원들도 싫어하고, 돈도 싫어하는 보수 정권은 처음 본 것 같다. 돈이 직관적으로 윤석열을 안 좋아하는 것 같다. 돈은 보수적이다. 그렇지만 피 보는 걸 싫어하기도 한다. 자기가 피 보는 건 더욱 싫어한다. 

윤석열의 시대에 번영은 오지 않을 것 같다. 과학자들도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대부분 보수적 성향이다. 정치 얘기는 안 좋아한다면서도, 은근히 mb와의 친근을 과시하거나, 박근혜가 되면 나라가 안정될 거라는 얘기를 하고는 했다. 그런 과학자들이 연구개발비 삭감으로 제대로 되통수 맞았다. 왜 그렇게 했는지는, 미스터리다. 꿈에 뭘 이상한 걸 봤나? 

세상에 흐름이라는 게 있다. 사냥개들이 피 뿌리면서 설처대면, 그 시대가 끝나간다는 걸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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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낸책, 낼책 2023. 10. 20. 09:14

환전기 최근에는 가을에 맞는 환절기가 우리 집에는 아주 힘들다. 올해는 둘째가 입원을 하지는 않았지만, 지난 몇 년간 가을이면 폐렴이나 천식으로 입원을 했었다. 

오늘은 둘째가 몸이 힘들다고 집에서 쉬고 싶다고 한다. 며칠 전부터 계속 몸이 안 좋다고 했었다. 편도선이 안 좋은 것 같다고 하는데, 열은 없다. 

집에서 오늘은 학교 쉬라고 했다. 오전에 병원에 데려갈 생각이다. 

저출생 책은 오늘부터 원고 고치기 시작한다. 1장 앞부분의 시작이 너무 편안해서, 서문을 따로 안 달 생각이었다. 

요 며칠 동안 일본 드라마 <콰르텟>을 봤다. 현악 사중주단에 대한 얘기인데, 생각보다 미묘했다. 음악 얘기라는 게, 열심히 했어요, 잘 됐어요, 그런 게 대부분이다. 그 얘기를 극적으로 만들다보면, 그 중간에 시련과 고난을 어마무시하게 많이 넣는다. 콰르텟은 좀 그런 거랑 스토리 구조가 아예 다르다. 엔딩에 나오는 곡이 너무 멋져서, 도대체 누가 이렇게 노래를 잘 불러, 했다. 제1 바이올린으로 나왔던 배우가 부른 노래인데, 일본판 겨울왕국을 불렀다. 엄마나야.. 배우 겸 가수다. 

이런 생각을 하다가, 저출생 책 서문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음악을 가지고 할 얘기가 있을 것 같았다. 3류가 꿈을 버리지 않으면 4류라는 문장이 나온다. 그런 몇 개의 문장이 계속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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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생 책은 오늘 초고를 마쳤다. 제목은 <모두의 문제는 아무의 문제도 아니다>, 그렇게 처음의 제목 그대로 갈까 싶다. 좀 줄이거나 변형하는 것도 생각해봤는데, 내 실력으로는 바꾸지를 못하겠다. 부제는 조금 더 고민해볼 생각이다. 노동희소라는 개념을 어떻게든 넣을지 역시 좀 더 고민을 해보려고 한다. 

몇 주 동안 책 마무리하느라고 홀린 사람처럼 지냈다. 하던 대로 하면 될 것 같은데, 결국에는 뒷부분을 정리할 때에는 탈탈 털어넣게 된다. 실력 부족이다. 쥐어짜는 시간을 좀 보내게 된다. 처음에 계획한 대로만 채워넣어서는 너무 밋밋해서 읽을 수가 없다. 이럴 때면 머리가 조금만 더 좋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많다. 조금 생각을 하기 위해서는 너무 시간을 많이 써야 하고, 지우고 또 지우고.. 특히 이번에는 아주 조금만 더 머리가 좋았으면, 그런 아쉬움이 아주 많이 들었다. 

여름 오기 전에 끝낼 줄 알았던 책이 가을 시작할 때까지 왔다. 어린이 둘 키우는데,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그래도 올해 둘째는 여름 시작하면서 병원 응급실에 가기는 했는데, 입원은 하지 않고 넘어갔다. 병원이 파업 중이라서, 다른 병원으로 가야 하는데. 응급실에서 긴급 조치만 하고 집에 왔는데, 다행히도 그렇게 넘어갔다. 가을 시작하면서 감기도 한 번 앓았는데, 그래도 큰 일 없이 버텼다. 덕분에 많이 늦어졌지만, 그래도 책은 끝낼 수 있게 되었다. 

이번에 책 내는 출판사는 아주 작다. 그리고 재정도 어렵다. 마케팅이고 뭐고, 없다. 원래도 그렇게 살았다. 사회괴학에는 마케팅이고, 그딴 거 없다. 요즘은 책이 좋으면 팔리고, 아니면 말고, 그렇게 가볍게 마음을 먹고 지낸다. 책은 지가 팔리는 거지, 그 외에 다른 변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제목도 정확하게 그리고 정직하게 붙이려고 한다. 

며칠 좀 쉬고, 통계 빼먹은 것도 채워넣고, 전체적으로 한 번 더 봐야 한다. 그렇다고 마냥 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1월에 내는 게 계획이다. 내용은 겹치는 것들 정리하는 정도라서, 크게 손 볼 게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죽음 에세이가 가을과 겨울에 하기로 된 순서다. 이거는 쓰면서도 재밌을 것 같다. 나도 나이를 처먹으면서 죽음에 대한 생각을 이래저래 더 많이 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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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 책은 이제 맨 뒤의 두 꼭지를 남겨놓고 있다. 봄에 끝낼 줄 알았는데, 집에 크고 작은 사건사고가 계속 있었다. 많이 늦어졌다. 이래저래 여러가지 일정들이 꼬였다. 하긴. 내 인생이 언제 꼬여 있지 않은 적이 있었나 싶다. 그냥 이렇게 버티면서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그래도 웃음을 잃었던 적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아마 두 꼭지 마저 끝내고 나면 잠시 홀가분할 것 같다. 

도서관 경제학과 죽음 에세이는 순서를 바꾸기로 했다. 도서관 경제학도 아주 늦어진 책이기는 한데, 기왕 하는 거 조금 더 공을 들이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 책의 앞부분은 원래는 필라델피아에서 쓸 생각이었다. 그런데 일정을 잡으려고 할 때 코로나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다시 일정을 잡지 못했다. 꼭 그래야 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다 하고 싶었다. 

겨울에서 봄 사이, 일정이 적당한 때를 잡아서 필라델피아에 가기로 했다. 돈이 좀 들기는 하고, 책으로 그 돈을 빼기는 쉽지 않지만.. 지금까지도 책 작업할 때 연구비를 아낌없이 털어 넣었었다. 이제 와서 본전 생각하는 건, 왠지 나답지 않아서.. 그냥 돈을 좀 쓰기로 했다. 이래저래 순서를 좀 바꾸어야 할 이유가 생겼다. 

책이 과연 이 시대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사실 책을 쓰는 게 내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일이다. 책은 혼자서는 아무 것도 못하고, 읽는 사람이 있어야 조그만 변화라도 시작할 수 있다. 그래도 새로운 생각을 만드는 데에는 아직은 책이 가장 유용한 수단인 것 같다. 

계단식 변화는 곤충들의 성장, 즉 탈피하는 동물들의 성장을 묘사할 때 많이 쓰는 용어다. 공룡은 직선 방향으로 성장하는데, 곤충들은 그렇지 않다. 내 경우에는 생각도 그런 것 같다. 조금씩 느는 게 아니라, 책을 한 권 정리할 때마다 커지는 것 같다. 워낙 집중적으로 하나의 일들을 계속해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걸 괴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기는 한데, 내 경우에는 그렇게 괴롭지는 않다. 그렇다고 너무 즐거워서 자주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살면서 겪는 다른 종류의 어려움보다 더 힘들거나 괴롭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기왕에 하는 거라면, 좀 즐기려고 생각을 한다. 하루하루를 지워버리고 싶은 시간의 연속으로 이해하고, 삶의 일부를 피해가는 과정으로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게 생각하면 20년 동안 책을 쓰면서 살지는 못한다. 그냥 내 삶의 일부일 뿐이다. 

책 쓸 때 가장 큰 건, 역시 보람이다. 안 해 본 생각을 하고, 안 해 본 방안을 생각하는 일은 보람있는 일이기는 하다. 그건 사회과학이라는 장르가 갖는 장점일 수도 있다. 사회과학의 경우는 자신을 위해서 쓰지는 않는다. 결국은 사회 속에 있고, 사회적인 일이다. 

그래도 그런 얘기를 너무 무겁게 하지 않고, 너무 각 잡고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어차피 다 사람이 살아가는 일이고, 사람이 살아가는 얘기일 뿐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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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에세이는 아버지 장례를 치루면서 나도 집중적으로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된 얘기를 다루려고 하는 책이다. 나도 죽음과 노화와 같은 문제에 대해서 좀 더 생각을 많이 해보게 되는 나이가 되었다. 

경제학자로서는 드문 기회인데, 지난 몇 년 동안 우울증과 자살에 관한 행정에 관여하게 되었다. 국립정신건강센터 자문을 하게 되면서, 꽤 많은 행정 절차에 관련되는 특별한 경험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 얘기들을 현실에서 좀 에세이 형식으로 풀어보려고 한다. 

여기에 최근에 새로 넣은 꼭지 하나가 초등학생 자살에 대한 주제다. 아이들 둘 키우다 보니까, 그런 얘기들을 좀 더 많이 접하게 된다. 초등학생 자살이 없는 건 아니다. 가장 최근에 다룬 주제가 투신 자살한 초등학생 얘기다. 그리고 본격적인 연구까지 다 살펴본 건 아닌데, 자살에 대한 생각을 초등학생들이 일반적으로 하는 건 꽤 어린 시절 부터다. “죽고 싶다”라고 표현되는데, 대체적으로 초등학교 2학년과 3학년이 되면 그런 생각을 하는 학생들이 생겨난다. 생각보다 이르다. 

그렇다고 초등학생이 알아서 정신상담 같은 창구를 두드리게 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이게 행정적으로 어렵다. 흔히 자살에서는 ‘고위험군’이라는 표현을 쓴다. 자살을 더 많이 하게 되는 특별한 집단이 있다는 의미는 아니고, 자살 시도 등 이미 밝혀진 과거의 경험에 의해서 행정적으로 접근할 수 있게 된 집단에 대한 의미다. 초등학생 자살 고위험군, 참 생소한 주제다. 

다른 자살 이슈에 대해서는 나도 좀 다루어 본 적이 있기는 한데, 초등학생 자살은 나도 살펴봐야 하는 주제다. 그렇지만 아무도 안 볼 것 같다. 물론 관련된 논문들은 좀 있을텐데, 보통 사람들 특히 보통의 학부모가 논문까지 살펴보게 되지는 않을 것 같고. 

여러 가지 의미로 아주 유명한 사람의 자녀가 작년에 자살과 관련된 얘기로 힘든 시기를 겪었다. 이 문제는 잘 해결되어서, 지금은 아주 정상적인 상태가 되었다. 물론 부모들이 노력을 많이 했다. 특히 아빠가 많이 변했다. 부부는 이혼 절차에 돌입하기 직전이었는데, 자녀의 자살 문제 앞에서 꽤 많은 노력이 생겨났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엄마 문제보다 아빠의 문제로 자녀가 자살하는 경우가 많다. 아니 거의 대부분의 문제가 그렇기는 하다. 초등학생은 물론이고 청소년 심지어는 성인의 자살도 많은 경우 근본적인 동기는 아버지로부터 나온다. 초등학생의 경우는 더 많을 것 같다. 자녀가 자살을 하면 부모에게 생긴 상처는 평생 지워지지 않는다. 그렇기는 한데, 아버지 중에서 노력하는 경우가 그렇게 많지가 않다. 

아주 비극적인 얘기지만, 아버지로부터 문제가 생겨난 자녀의 자살은 형제나 자매들에게도 발생할 확률이 높아진다. 

죽음 에세이에서 초등학생 자살에 관한 절은 아버지들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를 담을 생각이다. 그리고 약간의 행정적 절차에 대한 개선. 청소년 자살은 이미 마음 속에 응어리 진 상태라서 풀기가 쉽지 않다. 그렇지만 초등학생 자살은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렇게 얘기했을 때, 전문가들은 어렵다고들 했다. 스스로 개선하려고 하는 아빠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래도 그게 그렇게 풀기 어려운 문제일까? 내가 던져보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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