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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과학 글쓰기의 단계?

2018.06.19 12:22 | Posted by 우석훈 retired

이게 좋은 생각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자주 하는 생각은. 어려운 걸 어렵게 쓰는 게 1단계. 어려운 걸 쉽게 쓰는 게 2단계. 어려운 걸 재밌게 쓰는 게 3단계. 웃기든 울리든, 어려운 것을 가지고 감정을 만드는 게 4단계. 이런 것 같다. 2단계까지는 연습하면 되는 것 같은데, 그 뒤로는 이게 노력한다고 되는 일이 아닌 것 같다. 재미는 종류가 너무 많다. 그리고 다양하다. 게다가 감정은, 생각보다 보편적이지 않다. 순실이가 "이것은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이 때 나는 격렬하게 웃음보가 터졌다. 우리 아버지는 그 때 이 나라는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라고 나에게 말했다. 나는, 아버님 집에 가기 싫어졌다. 그리고 잠시 우울해졌다. 감정은 아주 복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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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민주주의, 문체에 관해서

2018.06.19 11:48 | Posted by 우석훈 retired

민주주의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왠지 사회학이나 정치학 느낌이 든다. 그리고 딱딱해진다. 어쩐지 내 일 아닌 것 같고. 그래도 중요한 얘기는 중요한 얘기다.

 

처음 이 주제를 접했을 때, 좀 주저한 것이 사실이다. 어딘가 올드하고, 이래야 한다하는 훈계조를 피하기가 어려울 것 같았다. 지사형 글쓰기, 이젠 좀 지겹다. 시대가 변하고, 트렌드도 변했다. 비분강개형, 사람들에게 무거움만 준다. , 그래도 효과가 있으면 의미가 있는데, 이젠 효과도 별로 없는 것 같다.

 

<88만원 세대> 초고 쓰고 그 김에 같이 쓴 책이 <조직의 재발견>이었다. 두 책은 같이 나갔다. 조직의 재발견은, 이론적으로 굉장히 어려운 책이다. 그래도 성과가 아주 없지는 않았다.

 

직장 민주주의는 조직의 재발견위에 세우는 책이다. 기업을 조직론으로 접근하는 것, 이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접근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렇게 13579로 가는, 좀 묵직한 방식이 과연 지금 이 시대에 직장 민주주의를 사람들에게 얘기하는 가장 적합한 방식일까, 이런 생각을 몇 달째 하는 중이다.

 

좀 더 파격적이고, 가끔은 웃을 수 있는, 그런 형태가 좋지 않을까 싶기도. 그런데 이렇게 하려면 힘이 많이 든다. 전체 구조는 물론이고, 문장도 많이 손을 보면서 해야 한다. 물론 효과만 있다면, 시간을 들이고, 공을 들이는 것은 아무 문제도 아니다. 나는시간이 많다.

 

좀 점잖게 않아서 이론적인 것을 짚어보고 싶은 독자와, 이런 얘기 한 번도 보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정보로, 세상에 이런 것도 있다, 이렇게 하는 게 좋을까? 아직도 갈등 중이다. 자고 일어나면 생각이 바뀐다

 

10년 전에는 읽으면서 눈물이 왈칵, 그런 게 나한테는 좋아 보였다. 요즘은, 대박 웃음은 아니더라도, 미소라도 좀 지으면서 읽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 우는 건, 나에게 좋아 보이지가 않는다. 이런 걸 고민하는 건, 세상이 변한 게 아니라 내가 변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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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보다 사람이 먼저니까요

2018.06.18 15:46 | Posted by 우석훈 retired

 

일곱 살 큰 애가 TV 광고에서 나오는 문구를 물어봤다.

 

아빠, 차보다 사람이 먼저니까요, 저게 무슨 말이야?”

 

, 차는 무조건 사람을 조심해야 한다는 말이야.

 

프랑스 살던 시절에 차와 사람이 나면 무조건 차의 잘못으로 간주한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우리는 운전사와 보행자 사이의 과실을 따진다. 그런데 프랑스는 차와 사람 사이의 사고로 문제를 인식한다. 운전자는, 금속으로 된 차에 의해서 보호되는 사람이고, 보행자는 아무 보호 없이 차와 충돌한 존재로 인식한다는 것을 그 때 처음 알았다. 같은 원칙으로, 차와 오토바이가 충돌하면 오토바이가 우선이다. 그건 프랑스 얘기가, 아직도 우리는 차와 사람이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운전자와 보행자 사이의 의사결정 문제로 이 문제를 본다. 공평한가? 뭐가 공평한가? 유전무죄의 연속일 뿐이다.

 

차보다 사람이 먼저다라는 명제는 자연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누가 생각해도 사람이 존재론적으로 사람보다 먼저다. 그리고 이런 얘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된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우리에게는 사람보다 차가 먼저인 시대를 살았다. 그래서 이 자연적이고 보편적인 명제가 최소한 한국에서는 논리적인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패러독스를 형성하게 된다. 현실에서는 차가 사람보다 먼저다. 도로 위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산업적으로도 그렇고, 시장 논리로도 그렇다. 그리고 지금 우리나라에서 차가 가장 존중 받는 동네는 나름 중산층 거주지역이라고 생각하는 목동이다.

 

목동은 애매한 지역이다. 강남만큼 재건축을 밀기가 쉽지 않고, 그렇다고 송파구 일부에서 하는 것처럼 자기가 자기 돈 내고 집을 고치는 리모델링으로 갈만큼 아파트 사는 사람들이 다 넉넉하지도 않다. 그래서 목숨을 걸고 재건축으로 가야하는 동네다. 그런데 이 재건축 논리를 만들어내기가 쉽지가 않다. 그래서 이 사람들이 생각해낸 것이 차가 먼저다.”

 

90년대 지어진 아파트들은 충분한 주차 면적을 확보하지 못했다. 그래서 은마 등 강남 아파트들도 그렇지만 목동은 거의 전역이 주차장이 없다. 난리다. 주차 타워를 짓거나, 지하주차장을 좀 더 확보하면 된다. 그리고 거주지역의 주차장 정비라는 차원에서 구청이나 시에서 일정한 재정 지원을 해줄 명분도 충분히 있다. 단지 전체가 리모델링으로 가면 장기적 지구단위계획 같은 것을 통해서 주차 시설을 확보할 수는 있다. 그리고 이렇게 가는 게 합리적이다. 그렇지만 목동은 재개발을 원한다. 리모델링으로 자기 돈 내고 집 고치는 것으로 갈만큼 넉넉하지는 않다.

 

그래서 주차장이 없으니까, 재건축으로 가자”, 이 논리를 찾아냈다. 사람이 사는 데 편하든 불편하든, 주거지역이 쾌적하든 말든, 아무 상관도 없다. 차가 밤에 잠을 잘 공간, 주차장을 위해서 모든 것이 복무해야 한다는 것이 목동 아파트들이 지금 가려고 하는 방향이다. 서울시 공무원들? 물론 손 들어주려고 단단히 마음을 먹고 있다.

 

차보다 사람이 먼저니까요?”

 

아직은 유럽 등 선진국에서나 하는 얘기다. 이것이 1차 패러독스다. 그리고 이미 많은 사람들이 생각했겠지만, 차가 먼저던, 사람이 먼저든, 이 공익성 광고를 하는 주체는 자동차 보험을 하는 보험회사다. 차도, 사람도, 다 수단일 뿐이고, 궁극적으로는 돈이 먼저다. 간단한 명제지만, 2중적 패러독스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어떤 경우로 해석하든, 사람은 아무 것도 아니다.

 

이 명제의 패러독스가 해소되는 순간은, “사람이 차보다 먼저다”, 이런 상식적이고 보편적으로 옳은 명제를 위해서 누군가 돈을 대서 광고할 필요가 없어지는 순간이다. 오래 걸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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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달이 함께 하기를...

2018.06.18 13:36 | Posted by 우석훈 retired

책 사인은, 솔직히 별로 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쓰는 게 귀찮은 게 아니라, 워낙 사람들 사이에 묻혀 있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라. 동료들한테 책 줄 때는 절대로 사인 안 한다. 우리끼리 무슨 사인이냐고...

 

그래도 책 나오면 사인을 안 할 수는 없어서 그 앞에 쓰는 문구는는 신경 써서 만드는 편이다.

 

이재영 살아있을 때에 우리는 지는 법이 없습니다!”를 주로 썼고, 지금도 쓴다. 우리가 친구로서 지냈던 시간과 함께, 그 때 우리가 했던 즐거운 상상들에 대한 추억이다.

 

그리고 저자로서 꽤 영향을 많이 받은 사람이,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조지 루카스. “포스가 함께 하기를!”.

 

명랑이 함께 하기를!”, 요놈도 많이 썼다. 이 두 개가 제일 많이 쓴 거고, 책에 따라, 상황에 맞춰서 조금씩 다른 것들도 썼었다.

 

매운 인생, 달달하게 달달하게’, 50대 에세이집이 나오면서 사인 문구 하나를 추가했다. 완전히 새롭게 바꿀 생각도 있지만, 그게 쉽지는 않다.

 

명랑 대신, 달달함을 새로운 모토로

 

달달이 함께 하기를...”

 

내가 나한테 하는 얘기기도 하다. 나도 이제는 좀 달달하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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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고전세 2018.06.19 11:45 신고

    오늘 예스24에서 작가님 책 주문했습니다. 다 읽고 작가님과 얘기 나누고 싶네요. 개인적으로 티타임은 7월 7일이 좋을 것 같습니다.^^

    • 고맙습니다. 요번 티타임은, 이래저래 30일로 하게 될 것 같네요... 그 쪽이 사람들이 더 많은. 가을쯤 다음 책 나오고 한 번 더 할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책 나오면 늘 하던 독자 티타임, 요번에도 할까 합니다. 매운 인생, 달달하게 달달하게, 6월 30일이나 그 다음 주 토요일 오후 정도 생각하는데. 시간 어떠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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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과 탈토건...

2018.06.14 11:39 | Posted by 우석훈 retired
선거는 끝났다. 결과에 제일 관심있었던 것은, 사실 나는 강화군수였다. 여기가 참 희한한 동네다. 이렇게 저렇게 설명을 한다고 하는데, 지금까지 나온 설명들은 제한적이고, 별 신통치도 않다. 하여간 인천이 다 민주당인데도, 강화군은 요번에도. 그렇게 큰 샘플 변수는 아닌데, 지금까지는 강남갑 성향과 강화군 성향이 같다고 보면 어느 정도는 비슷했다. 이번은 그것도 아니다.

노무현 탄핵 이후 '공포의 백드래프트'라는 표현을 썼던 적이 있었다. 많은 초선들이 국회로 들어왔는데, 그 의회가 엄청나게 반동적이기도 했지만, 토건적이기도 했다. 그리고 원전 찬성 분위기도 되게 높았다. 그야말로 민주당 버전, 토건의 시대였다. 온갖 골프장이 난리가 났고, 하다하다 골프장 특구니 골프장 클러스터 같은 것들도 그 때 나왔다. 그 시절에 이대 근처는 미용실 특구로 한다는 얘기도. 두고두고 문제가 되는 많은 제도들이 그 시절에 많이 나왔다. 그리고 결국 뉴타운 돌풍으로 그 흐름이 끝났다. 비극적 사건이었다.

이번 지방선거 이후가, 자칫하면 그 시절의 백드래프트 비슷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원전 문제는 정책적으로 진도를 나간 건 별로 없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의 사회적 흐름은 생겼다. 그러나 토건의 문제는 좀 다르다. 이게 하나의 정치적 상식으로 자리잡은 적도 없고, 그렇게 논의된 적도 없다.

내가 모든 공사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공사를 위한, 공사만을 위한, 공사에 의한', 이런 공사주의 정도로 격상된 토건에 반대하는 것이다. 최소한 새로 구성되는 지방 정부 전체가 같이 논의할 수 있는 '탈토건위원회' 같은 게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중심으로 논의를 했다. 그리고 여성 인권을 비롯해서 최소한의 인권 논의는 자리를 잡은 것 같다. 에너지 문제도 마찬가지다. 각론으로, 실제 잘 하고 있느냐와는 별도로, 하나의 흐름이 구성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토건은 다르다. 최악의 상황은, '토건 포퓰리즘'으로 거대한 힘이 질주하는 것, 이건 폭망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제주가 아주 잘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원희룡이 가진 최소한의 힘이 상대적으로 그가 토건 포퓰리즘에 덜 적극적이었던 데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한국 민주주의는 토건으로 귀결했다. 모여서 결정해 보세요, 그러면 바로 공항이요, 골프장이요 그리고 ktx 역이요. 사람들의 마음을 모았는데, 그게 결론적으로 토건이 아닌 것, 이게 아직 우리가 넘지 못한 다음 허들이다.

민주당 밖에 적은 당분간 없다. 그 힘을 모아서 크고 작은 지방 토건으로 갈 것인가, 정말로 사람에 돈을 쓰고, 문화에 돈을 들이고, 복지 인프라로 갈 것인가? 민주당의 적은 민주당 내부에 있다. 아직까지 탈토건의 기치를 건 민주당 세력은 없었다.

이번은 그 허들을 넘어설 차례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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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트와 김정은이 공동합의문에 선언한 날

2018.06.12 15:11 | Posted by 우석훈 retired

아마 많은 한국인의 기대 수명이 오늘 좀 늘어났을 것 같다. 스트레스가 줄어도 기대수명이 늘고, 기쁜 감정을 느껴도 기대수명이 늘어날 것 같다. 지난 주부터 나는 술 마시는 횟수를 확 줄였다. 별로 열 받는 게 없다. 오랫동안 한국인의 삶에 상수처럼 있던 북한 위협이 확 줄어든 날. 그래도 역시 많은 사람들은 이런 날 술 한 잔 안할 수 없다고, 또 엄청 마실 것이다 (결국은 기대 수명의 균형을 맞추고야 마는, 무지막지한 5할 본능.) 내가 아는 영화감독은 오늘 오전에 TV 본다고 출근도 안 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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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흥부전 감상기

2018.06.12 11:07 | Posted by 우석훈 retired

 

1.

사극은 어렵다. 위아래 편차가 너무 크다. 적당히 영점 맞추기가 어렵다. 잘 된 영화와 잘 안 된 영화 사이의 격차가, 하늘과 땅 차이다. 거기다 돈은 많이 든다. 적당히 작게, 이런 게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그걸 감안하고 봐주느냐, 그런 건 또 아니다.

 

영화 <흥부>는 여러 가지로 사람들에게 아쉬움을 주었던 영화다. 매우 김주혁에게는 이게 유작이 되었다. 이래저래 쉽게 말하기가 어렵다.

 

원래의 얘기와는 상관없지만 글이 중요한 모티브로 등장하게 된 영화로 <대장 김창수>를 생각할 수 있다. 이게 김구 얘기인 것은 마지막 엔딩에서나 사람들이 알게 된다. 그리고 그걸 끌어가는 큰 얘기는 인천 감옥에서 김구가 수감자들에게 한글과 한문 등 글을 가르치는 과정이다.

 

영화 <흥부>는 기본적으로는 작가에 대한 영화다. 여의도에만도 수만 명의 이무기가 있다고 하는 드라마 작가로 치환하고 보면 좀 더 편할 것 같다. 1류와 2류 사이에서 고민하는 많은 드라마 작가들이 무슨 고민을 하고 있고, 뭘 꿈으로 생각하고, 그들의 세계관이 어떤 것인지. 영화 각본을 맡은 백미경 자신의 삶이 상당 부분 영화에 투영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가끔 각본의 세계관이 영화의 중심을 구성하게 되는 영화들이 있다. 형식적으로나 본질적으로나, <흥부>도 그런 영화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

흥부 얘기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게 만들어지는 과정을 상상해본 사람 역시 없을 것 같다. 글을 쓰는 작가, 흥부에 관한 영화다.

 

그리고 시대상은 헌종, 조선조 후기의 최고 인기스타 효명세자의 아들이다. 효명은 그냥 아우라로만 나올 줄 알았는데, 후반부의 마당놀이 장면에서 탈을 쓰고 소환된다. 아 효명… (나도 효명세자에 대한 책을 쓰는 게 영원한 로망이다.)

 

그리고 수렴청정을 하는 대비, 어 누구지? , 깜딱야, 김완선이다. “피에로는 나를 보고 웃지”, 사실 이 영화에서 가장 크게 웃을 부분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갑작스러운 김완선의 등장에 , 이건 영화지”, 그런 느낌을 받았다. 역시 망한 영화인데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에서 선조로 김창완 아저씨가 나온 적이 있다. 그 때는 너무 자연스러워서 영화 끝날 때까지도 잔상만 남지, 김창완인 줄 몰랐다.

 

이후로는 장면 장면 넘어갈 때 개연성들이 좀 안 맞는다. 정치적 라이벌인 김씨가 사약을 받게 되는 장면은 딱 컷트 두 개로 처리된다. 물론 그 전에 눈치챌 정황들이 아주 없지는 않은데, 갑자기 , 이 배신자 새끼”, 요 대사 하나를 남기고 사약 마시는 장면으로 넘어간다. 팽팽할 수도 있던 라이벌 구도의 형성이 무너지고 난 뒤에 영화는 다시 긴장을 끌어올리지는 못한 것 같다.

 

나중에 <심청전>의 저자로 설정된 천우희가 독박 옴팡 뒤집어쓰고 그냥 죽음을 맞는 것도 조금은 어색하다. 뭐야, 여자라서 저렇게 수동적으로 스승 사랑을 하라는 거야? <곡성>에서 소름 이빠이 오르게 했던 천우희가 갑자기 1차원적 인간으로 내려온 느낌이다.

 

원래 마당극이 이렇게 점프가 많잖아? 그럴 수도 있기는 한데, 원래 마당극의 인물들보다도 더 평면적인 인물들의 연속이다.

 

3.

결국 영화가 달려간 곳은 백성이다. 그리고 그 백성들은 임금에게 충성을 다짐하고 조가네의 역모를 막아낸다

 

이게 근본적인 딜레마이기도 하다. 너무 외국 것만 좋은 거시여, 그런 것도 좀 문제가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마리 앙뚜와네뜨에게 달려가고 도망가려는 루이 16세를 막아서서, 결국에는 단두대에 올리는 그 기세등등한 프랑스 여인들의 얘기와는 좀 거리가 멀다. 굳이 이렇게 기능적으로만 작동할 백성 얘기를 보자고 앞에서부터 머리에 스팀을 올렸나, 생각하면 좀 뒤가 허무하다. 그게 백성 패러다임이 가지고 있는 구조적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는 왕과 귀족 그리고 외세인 일본의 한계를 넘어선 동학의 어린이개념은 더 모던하다. <흥부>에서 보여준 백성은 좀 올드하다. 왕이 나쁜 게 아니라, 조가나 김가에 휘둘리지 말고 제대로 좀 하라고 말이여옴머머머, 이거 뭔 말이여?

 

현실과 이런 백성들의 인식이 아주 다르다고 하기는 어렵다. 비운의 세자인 효명세자가 끊임없이 이 시대에 소명되는 것과 같은 이해다. 고종 역시 서류상으로는 효명의 핏줄. 효명이 왕이 되었더라면, 이 아쉬움을 떨쳐내는 것과 백성에 대한 끊임없는 호명이 올드해 보이는 것이 어느 정도는 같은 맥락일 것이다. <흥부>는 구조적으로 요 틀에 갇혔다. 그래서 익숙하고 때로는 진부해보이기도 하는, 흔히 하는 조선 말기의 역사 그대로다.

 

그래도 새로운 시도의 여지가 없지는 않다. 효명에서 철종에 이르는 기간을 우리는 맨날 비극의 역사라고만 하는데, 음악 등 예술의 눈으로 보면 가장 멋지게 예술이 피어난 기간이기도 하다. 왕실을 틀어쥔 세도가들 얘기만 이 시대에 있던 것 아닌 듯싶다. 그래서 이 시기에 집중한 얘기들이 좀 더 나왔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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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책을 시작하기 위한 준비

2018.06.10 23:03 | Posted by 우석훈 retired

 

 1.

보통 새 책을 쓰기 시작할 때 부담을 느끼거나 긴장하는 일은 거의 없다. 첫 파일을 만들 때, 그냥 여느 일상과 똑 같은 기분으로 그렇게 시작한다. 이번에는 좀 다르다. 이게, 뭔가 엄청 단단한 벽 앞에 서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책을 시작할 때면 블로그 같은 데에 얘기를 시작하고, 사람들 반응을 좀 살핀다. 물론 그런 반응이 꼭 유의미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상관 관계가 있다. 직장 민주주의의 경우는, 진짜 벽 앞에 서 있는 것 같다. 아니면 바닥을 모르는 심연. 구멍 밑의 깊이를 살피기 위해서 돌을 던져봤는데, 바닥에 닫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느낌? , 이건 뭐지? 아무도 듣고 싶어하지 않는 old-fashioned love song… 요 느낌이다. 출간 기준으로도 나도 벌써 13년차다. 이런 식의 터엉, 요런 느낌은 처음이다. 반응의 감도는 알겠는데, 이유는 잘 모르겠다.

 

어쩌지? 방법 없다. 그냥 하는 수밖에.

 

2.

이 책 준비하기 시작하면서 줄넘기를 다시 시작했다. 전에는 책 쓰는 중에는 수영을 주로 했었다. 잘 하는 건 아니다. 그냥 다른 건 할 줄 몰라서. 수영장 안 간지 1년쯤 되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전에도 한동안 못 갔고. 저녁 시간에 가야 하는데, 애 보다 보면 슁하고 나가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그 시간이면 너무 힘들어서 이제는 규칙적으로 수영장 가기가 어렵다.

 

왜 줄넘기를 갑자기 시작했을까? 큰 애가 줄넘기를 막 배우려고 하면서 집에 줄넘기가 생겼다. 애들 것 뺏어서 줄넘기를.

 

설경구를 직접 만난 적은 없다. 그냥 건너 들은 얘기다. 힘들 때 죽어라고 줄넘기를 했다고 한다. 설경구에 대한 사람들의 판단은 격렬하다. 하여간 그가 힘든 시기를 겼었고, 아직도 겪고 있다고는 알고 있다. 그가 줄넘기를 하던 그 시절, 나는 그냥 술만 마셨다. 사실 나도 그 시절, 그만큼 삶의 어려움을 겪고 있었는데, 난 그냥 술만 마셨다.

 

설경구의 고난이 이제는 끝이 났을까? 아직은 잘 모른다. 영화 <불한당>에서의 연기는 꽤 산뜻했다. 그 시절에 그가 줄넘기를 하루에 만 개씩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 얘기를 들으면서도 그냥 술만 마셨다.

 

술 마시고 책 쓰는 사람도 있다고 알고 있다. 좋고 나쁘고는 아니고, 스타일 문제다. 나는 한 잔이라도 마시면 그 날 일은 마감이다. 사진도 안 찍는다. 그렇기는 한데, 책 쓸 때 술을 자주 마시기는 한다. 이유는 많은데, 하여간 평소보다 자주 마신다.

 

3.

다음 주부터는 직장 민주주의 책 쓰기 시작한다. 이번 책 쓰는 동안에는 줄넘기를 하기로 했다. 안 그러면 내가 못 버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술을 아예 안 마시겠다, 그러면 좋겠지만, 그런 건 좀 어려울 것 같고. 책과 관련해서 술을 마시지는 않기로.

 

이 정도면 내가 책과 관해서 가지고 있는 루틴을 거의 다 깨는 셈이다. 하고 싶어서 하는 건 아니다. 직장 민주주의라는 개념이, 그만큼 벽 앞에 서 있는 것처럼 나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그래도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이제 나는 더 이상 분노로 움직이지도 않고, 경제적 필요로 움직이지도 않는다. 그럼 절실함으로 움직이는가? 절실함, 그딴 것도 없다. 절실한 마음으로 내가 했던 것은, 사회적으로는 유의미했던 것 같기는 한데. 대체적으로 나에게는 아픔만 주었다. 나의 절실함은 나를 위한 절실함은 아니었던 것 같다.

 

재미가 있으면 딱 좋겠지만, 직장 민주주의는 재미와는 좀 거리가 먼 주제다. 특히 나에게는 이제 더욱 더 그렇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재미로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 같다.

 

명분은 있다. 이게 중요하다는, 그런 명분은 있다. 그러나 명분만으로 사람이 전력투구하게 되지는 않는다. 명분을 향해서 움직일 때, 자기도 모르게 몸이 좀 굼뜨게 된다. 움직이기는 하는데, 머리 꽁지가 서면서 피가 팍 몰리는, 그런 느낌까지 오게 되지는 않는다. 그게 명분의 한계다.

 

그럼 이번 책은 무슨 힘으로?

 

나는 줄넘기의 힘으로 하려고 한다.

 

설경구는 하루에 만 개를 했다고 한다. 된장난 해보니까 천 개도 못한다. 천 개는 커녕, 하도 간만에 하니까 500개도 할까 말까. 그게 나의 줄넘기의 힘이다. 그래도 그 힘으로 직장 민주주의라는 큰 벽을 한 번 올라가보려고 한다. 에게? 그래도 술의 힘이 아닌 게 어디냐. 잘 와닿지도 않는 당위와 명분의 힘 보다는 그게 나을 것 같다.

 

그래도 이 힘든 일을 하는데, 나한테 보상이 좀 있어야 할 것 아니냐? (하루에 줄넘기 천 개 하고 무슨 보상!!)

 

내가 제일 하기 싫은 게 강연이다. 이번 책 무사히 마무리하고 나면, 책 나오고 하는 강연을 제외한 나머지 강연은 이제 내 인생에서 포에버 굿바이. 장소, 주체, 이유여하를 불문하고, 이제 더 이상 강연은 안하는

 

그리하여 나는 하기 싫은 줄넘기를 나에게 강요하고, 그 대신 무사히 마무리하면 따로 부탁받아서 하는 강연은 다시는 안 하는 것으로 내 안의 거래를 마쳤다 (나도 뭔가 남는 게 있어야…)

 

이렇게 나는 새로운 책을 시작하기 위한 준비를 마치게 되었다.

 

나도 진짜 몸부림을 치는 중이다.

 

(간만에 애기똥풀 접사를 찍다 얻어걸린 벌. 조리개를 조금 더 조이고 싶었는데, 꿈지락거리면 벌은 그냥 날라가버린다. 그냥 사정 되는대로... 이 사진을 찍으면서 나는 다음 주부터 쓰기 시작할 새 책에 대한 걱정을 하고 있었다. 이 긴장된 상황에서도 걱정이 내려가지를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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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달의 '경제 민주주의에 관하여'

2018.06.10 17:16 | Posted by 우석훈 retired

 

로버트 달의 <경제 민주주의에 관하여>1981년 강연을 정리한 책이다. 레이건이 막 등장하고, 프랑스의 미테랑이 대통령 되는 그 즈음의 얘기다. 그 후로 흔히 신자유주의라고 불리는 돌풍이 불었고, 현실 사회주의도 붕괴했다. 그리고 21세기가 되었다. 이 케케묵은 책을 지금 와서 다시 읽을 필요가 있을까? 물론 읽어서 손해볼 책은 없다.

 

아주 솔직히 말하면, 나는 경제 민주주의라는 표현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다. 이게 좀, 모호하다. 많은 경우,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처럼 되는 경우가 많다. 한동안 다들 이 표현을 앞에 걸기는 했는데, 하고 싶은 얘기가 저마다 다르다. connotation이라고 부르는 문제가 좀 생긴다. 다들 이해하는 함의가 달라서 서로 얘기가 잘 안 된다. 그래서 꼭 필요한 경우 아니면 아주 제한적으로만 이 단어를 쓴다.

 

또 한 가지는 민주주의라는 개념 자체가 가지고 있는 한계 때문이기도 하다. 간단하게 목적과 수단에 대해서, 민주주의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수단과 목적이 뒤집히기도 한다. 어떤 상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민주주의이지만, 많은 경우 민주주의가 그 자체의 목적이 되기도 한다. 결핍으로부터 발생하는 수단과 목적의 도치 현상 같은 것

 

이런 여러가지 이유로 경제 민주주의라는 표현을 나는 잘 쓰지 않는다. 경제가 원래도 좀 애매한데, 가급적이면 애매한 표현들을 나는 좀 줄이고 싶어한다.

 

그렇기는 하지만 로버트 달의 경제 민주주의라는 오래된 표현을 다시 집어든 것은, 대한항공 조씨 일가 등의 희한한 행태로 기업 내부의 문제에 대해서 좀 다시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생겼기 때문이다. 이게, 좀 해도 너무하다 싶었다.

 

“1915년 연방대법원은 종업원이 노동조합에 가입하는 것을 금지한 계약을 불법으로 본 캔자스 주법을 위헌으로 판결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75페이지,

 

20세기 초반, 미국의 분위기도 좀 살벌했던 것 같다. 캔자스에서 노조가입 안된다고 하면 안되요, 이랬더니 바로 위헌 때려버린.

 

책 전체는 기업의 소유권, 즉 이건 기업이 내 꺼니까 내 맘대로 할래요 하는 기업 우선주의와, 사회의 일반적인 정의에 대한 규율이 있다, 이 두 가지의 충돌에 관해서 다루고 있다. 그리고 뒷부분으로 가면서 자치기업(self-governing enterprise)의 가능성을 살펴보고 있다. 노동자들이 회사를 소유하거나 혹은 의사결정에 중요하게 참여할 수 있는가, 있다면 그 가능성은 어느 정도인가, 그런 얘기다. 요즘의 눈으로 보면 협동조합이나 종업원 지주제 정도의 논의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상당히 이론적이고, 개념적인 측면도 있다.

 

사회주의권과 자본주의권이 한참 경쟁하던 시절의 얘기니까, 기업이라는 것의 운영방식에 좀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은 이 책을 어떻게 읽을지 모르지만, 내가 경영학에 대한 내 입장에 대해서 한참 고민하던 시절이 생각나서, 나는 나름 감회를 가지고 읽었다.

 

프랑스에 갔더니, 하지 않아도 되는 고민을 괜히 내가 학부 시절에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제학이 좋아요, 경영학이 좋아요, 우린 이런 질문에 종종 부딪혔었다. 된장프랑스에는 경영학이 학부에 없쟎아! 대학원부터 시작된다. 별 필요도 없는 고민을

 

나는 조직론을 대학원에서 배우기 시작했다.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기업이라는 생산의 단위는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 안에서 어떻게 결정하는가? 실제로는 완전히 다를 것 같지만, 생산과 유통을 결정하는 조직론적 구성에서 많이 다를까? 원론적으로는 엄청나게 다르다고 배웠는데, 막상 기술적 결정을 하는 데에서 그렇게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로버트 달이 자치기업을 보는 눈이 그렇다. 그래서 후반부로 가면서 좀 더 익숙했던, 20대의 내가 많이 생각했던 질문들을 만나게 되었다. 뒷부분의 얘기는 우리 식으로 하면 협동조합의 운영원리에 관한 얘기들이다. 사회적 경제를 생각하면 좀 더 이해하기 쉬울 것이고.

 

가슴에 남는 구절들이 좀 있다.

 

왜냐하면, 공정이나 정의를 믿고 있기 때문에, 정치 질서는 공정한 데 반해 경제 질서는 지독히도 불공정하면 이것은 불행한 모순이기 때문이다.”

 

이게 요즘 우리 얘기랑 상당히 비슷했다. 정치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정치에만 많은 사람들이 눈을 돌리면 지독할 정도로 불공정한 지금의 경제 구조에 대해서 전혀 관심을 안 갖게 될 수도 있다. 유행하는 용어로는 격차 사회. 뜨끔했다.

 

촛불 이후의 민주주의라고 간판을 달아도 좋을 듯 싶다. 한 때 최장집 선생이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로 빅히트가 나온 적이 있다. 그 출발점으로, 옛날 애기 보듯이 속 편하게 읽으면 좋을 책일 것 같다 (토크빌 얘기가 전반에 길게 나오는데, 토크빌이 익숙치 않으면 대충 무시하고 넘어가고 읽는데 큰 지장은 없을 것 같다. 어쨌든 미국 민주주의에 관한 토크빌이 미국인들에게는 상당히 충격적이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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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솔길 2018.06.11 09:24 신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던 책을 사는 두 부류중에서 밑줄치고 읽기위해 사는 타입이시군요 다른 유형은 컬렉션을 위한.. 그래서 신규 저자의 진입 장벽이 높다고 하신 ㅠㅠ

  2. 고전세 2018.06.11 10:20 신고

    최근 노엄 촘스키의 <불평등의 이유>란 책을 읽었는데요. 미국 민주주의가 사실은 일반 대중응 위한 것이 아니라 가진자 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었다는 말이 생각나네요. 미국 제45대 대통령으로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되면서 그 정점에 달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고요. 미국을 따라가는 우리도 대중의 '정치'에 대한 관심은 높였지만, '경제' 문제는 머리가 아프기 때문에 외면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고요. 개별 기업에서의 민주화? 풀기 어려운 문제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