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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 집회에서 삼성을 옹호하는 발언이 꽤 나왔다. 삼성 망하면 나라 망한다, 그런 어조의 얘기들이다.

10년 전부터, 법조계에서 삼성에 대해서 우호적이었다. 그 때 유행했던 말이, "삼성만큼만 하라고 해", 그런 거였다.

어차피 기업들, 대충 구리고, 이리 털든 저리 털든, 문제 많다는 전제 하에서 성립된 말이다. 삼성도 문제 많지만, 그래도 상대적으로 삼성이 덜 문제 있는 거다, 그러니 대충 좀 넘어가자, 그런 뉘앙스의 말이다.

그 이후, 삼성처럼 했던 기업들, 문제가 아주 많아졌다. 삼성에 비교적 관대한 법조 분위기 속에서, 삼성은 스스로 문제를 풀 기회를 많이 놓친 것 같다.

이 사회는 어떤 이유로든, 오랫동안 삼성에 관대했다. 그리고 무서워했다.

태극기 집회에서 삼성에 우호적인 발언이 많이 나온다. 이게 삼성 입장에서 정말로 긍정적이고 유리한 일일까? 이런 질문을 해보게 되었다.

삼성 경영진 입장에서, 태극기 집회에서 사람들이 모여야 하는 이유 중의 하나로 이재용을 보호하자, 그렇게 보이는 게, 꼭 좋아보이기만 할까?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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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티타임...

분류없음 2017.02.17 17:33 Posted by reti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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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한 푼 벌면 내일 두 푼 나가고>, 


독자 페친 티타임 갖습니다.

원칙적으로는 1쇄본 사신 분들에게 차 한 잔 모시는 자리이기는 한데 (뭐, 적당히...)

26일 일요일 오후 2시이구요.


차 한 잔과 약간의 핑거푸드 준비합니다.


장소는, 경복궁역 근처, 환경운동연합 1층 카페입니다.


1시간 정도 생각하는데, 약간 늦어져도 무방하구요.

그럼, 그 날 뵙겠습니다.


- 석훈 올림


지도 -

http://kfem.or.kr/?page_id=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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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첫 발표 순간을 들으려고 버티다가, 너무 늦어져서 결국 잠이 들었다.

아이들 어린이집 데려다 주려고 일어나면서 이재용 구속 소식을 들었다. 내가 이재용하고 개인적으로 감정으로 가질 일은 없다. 다른 사람이 구속되었다고 해서 내가 괜히 기분이 좋거나 그럴 일도 아니다.

그렇지만, 나는 진짜로 기뻤다. 요즘 되는 일이 별로 없다. 그렇다고 사람들 자주 만나서 신나게 수다떨고 지내는 것도 아니다. 기다리고 버티는 것, 그렇게 살아간다. 이재용 구속, 진짜로 기뻤다.

1997년 12월의 IMF 경제위기는 부산에서 서울로 오는 비행기 타면서 들었다. 그 이후로, 단건으로 기분 좋은 경제 뉴스는 접한 적이 없다.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경제 뉴스들은 우울하거나, 별 의미 없는데 언론에서 난리치는 것들이다.

멀리 더 어렸을 때까지 기억을 돌려본다. 내가 경제 뉴스를 보고 진정으로 기뻐했던 적이 있었을까? 없었던 것 같다. 회사가 잘 되면 노동자들이 어려워지고, 집값이 올라가면 서민들은 힘들어진다. 경제가 그렇다. 밝음이 있으면 어둠의 댓가가 있다. 많은 경우, 제로섬 게임과 비슷해서, 일방적으로 기쁜 뉴스라는 게 생기기 어렵다.

이재용 구속은, 경제학자로서 정말로 처음 보는 생생한 기쁜 소식인 것 같다.

순실이 이후로 나라의 전환점이 잘 생기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 첫 전환점이 바로 이 구속이라고 생각한다.

기업이든 부자든, 적당히 '사바사바', 대충하고 넘어가고, 그 한계의 선을 그은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보통은 넘어가도, 이 정도는 안돼!

경제는 좋아질 것 같다. 패도적 재벌의 이상한 지배구조, 그런 것만 완화되어도 지금보다 경제는 탄력 받는다.

간만에, 기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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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균 평전 쓸까 싶은...

출간 이야기 2017.02.16 13:25 Posted by reti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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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정세균 국회의장하고 차 한 잔 마시고 왔다. 몇 년간, 거의 매일 보면서 지냈었다.

내가 살아가는 원칙이 그렇다. 누군가 굉장히 힘들 때 같이 지내고, 고생이 끝나면 떠난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았다. 앞으로도 그렇게 살려고 한다.

그가 오세훈을 큰 표 차이로 이기는 것을 보고, 나는 폐렴으로 입원해있는 둘째 아이에게 돌아왔다.

누군가를 돕고, 그걸로 뭔가 얻어걸리는, 그렇게 구질구질하게 살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는 내 마음이 너무 불편하다.

하여간 간만에 만나서, 나중에 국회의장 그만두면 내가 평전하나 쓰고 싶다고 말했다. 당근빠따, 그렇게 하자고 한다. 어차피 별로 할 일도 없을테니...

정세균과 평생을 같이 지낸 것은 아니지만, 평전만큼은 진짜로 재밌게 쓸 자신이 있다. 그의 삶만큼 드라마틱한 삶을 아직 보지는 못한 것 같다.

나도 좀 재밌고, 즐거운 거 하면서 살아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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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집회 이후로 사람들의 생각은 모르겠지만, 감성은 바뀔 것 같다. 어떻게 바뀔까? 나도 가설 형태로만 생각해보는 중이라서 정확히는 잘 모르겠다.

68 이후로 바뀐 감성들이 분명히 존재하기는 한다. 입생로랑도 68을 겪었다. 입생로랑도 그 때 프레타뽀르떼, 기성복 시장으로 나가고 싶어했다.

"저는 이미 새장 안에 갇혀버린 새였어요."

그는 오뜨꾸뛰르 매종에서 시작하였다. 첫 데뷔는 크리스찬 디오르의 급작스러운 사망으로 그를 승계한 수석 디자이너. 그 때 그의 나이가 21세였다. 알제리 전쟁에 파병될 때, 그는 이 '더러운 전쟁'에 참가하는 걸 거부한다. 그리고 매우 보수적인 크리스찬 디오르에서 해고된다. 그 위기 속에서 그는 자신의 매종을 열게 된다.

매종에서 시작, 매종에서 그의 디자인 인생은 마감된다. 68혁명은 그에게 기성복 디자이너가 되고 싶은 강렬한 욕망을 준 것 같다. 그러나 그는 매종 바깥으로 나가지 못했다. 매종이 아닌 다른 방식의 옷 만드는 법을 상상하지 못했다.

패션 역사상, 가장 파격적인 라인과 색상을 사용하면서 많은 사람에게 길을 열어준 입생로랑이 자신을 '새장 안에 갇힌 새'라고 하다니... 그게 68이 그에게 준 영감이었다.

그는 상속녀나 부자집 마담이 아닌, 스스로 성공한 직장 여성들이 자신의 옷을 입을 수 있기를 원했다. 그래서 가능하면 저렴하게 옷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물론 오뜨꾸튀르 매종이라서, 아주 싼 옷을 만들지는 못했다. 그래도 최대한 낮추려고 했다.

그게 68이 입생로랑에게 준 영향이라고 생각한다.

입생로랑의 표정이 가장 밝고 행복했던 것은, 미테랑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였다. 미테랑 정권이 열렸을 때, 그와 그의 파트너들의 표정은 진짜로 밝다. 이유없이 행복해했다. 68이후로 13년이 지났을 때의 일이다.

그리고 미테랑 정권이 끝나고, 입생로랑은 다시 어려워진다. 술을 점점 더 많이 마시고, 마약도 하게 된다.

그가 죽었을 때, 그의 장례식에 사르코지가 참석한다. 그의 장례식 필름을 보았는데, 많은 디자이너 등 그의 동료들이 완전 똥 씹은 표정이다. 입생로랑의 관이 사르코지가 온 걸 좋아할까? 아마 똥 씹은 기분일텐데...

무언가 참여하고 노력하고, 그 결과를 눈 앞에서 볼 때, 우리는 입생로랑도 생애에 느껴보지 못한 행복감을 느끼게 될 것 같다.

그 행복감이 만들어낼 변화가 과연 사회적으로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가?

(두 아이의 육아로부터 조금만 여유가 생기면 나도 입생로랑 평전 쓰고 싶다. 명박의 시절, 순실의 시대, 그 10년 동안 나도 '새장 속에 갇힌 새' 같은 느낌으로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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