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쓰는 책들은 코로나 이전에 준비했던 것들이다. 둘째가 아팠고, 나도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 많아서, 이래저래 계속 뒤로 밀려왔었다. 도서관 경제학이나 젠더 경제학은, 우와, 거의 20년 밀려온 것 같다. 젠더 경제학을 써보라는 얘기를 들은 것은, <88만원 세대> 보다 더 먼저다. 몇 번 시도를 했는데, 이래저래 계속 밀렸다. 

지금 가진 일정으로는 내년 여름까지 밀린 책들을 다 쓰고 나면, 이승만 얘기, 김대중 얘기, 요렇게 할 생각이다. 이승만 얘기는 얼개가 어느 정도 되어 있는데, 부산 지역에 대한 조사가 계속 미루어지는 상황이다. 부산에 몇 달 체류하면서 준비할 생각인데, 내가 없으면 둘째가 큰 일이니, 아직은 꼼짝할 수가 없다. 노태우도 한 번 다루고 싶은 마음은 있었는데, 주변을 살펴보니 역부족이다. 

김대중 얘기는 아직 얼개가 없다. 권노갑은 만났고, 적당한 때 한화갑도 만날 생각이다. 얘기를 어떻게 끌어갈지는 잘 모르겠지만, IMF로 시작해서 임기 끝나는 순간, 그렇게 대통령이었던 시기로 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김영삼 정부 때는 현대에 있었는데, 김대중 정부 때는 정부에서 일했었다. 총리실에도 있었고.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 시절의 청와대를 아주 잘 알고 있는 것까지는 아니고. 

청와대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몇 번 있었다. 처음 갈 기회가 생겼을 때가 김대중 정부 초기였다. 싫다고 했다. 글쎄..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았다. 그 뒤에도 매번 싫다고 했다. 내가 약간, 아니 심하게 삐딱선 인생이다. 다들 그렇게 하라고 하면, 하기 싫다는 생각이 든다. 하기 싫은 일은 안 했다. 하기 싫은 일을 하라고 하면 직장을 옮겼고,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말라고 할 때는 아예 직장을 그만뒀다. 

최근에 잡 오퍼가 몇 번 있었다. 하나는 국내에서, 하나는 해외에서, 매우 매력적인 제안이기는 했다. 그래도 이미 잡아놓은 일정들이 있어서, 내가 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지금 밀린 일들을 처리하기 위해서 학교도 그만두고, 방송도 그만뒀는데.. 뭔 일을 또하겠나 싶다. 

돌아보면 책 쓰면서 산 게 20년 가까이 되니, 그야말로 감사한 인생이다. 세 끼 밥 먹고 사는데 크게 불편하지 않았으니, 진짜로 감사하다. 

지금 잡힌 일정대로 글 쓴 뒤에는 뭘 할지 아직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 죽을 때까지 책만 쓰면서 살고 싶지는 않고. 적당한 때에 적당히 내려놓을 생각이다. 

나중에 뭐 할지,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보지는 않았는데.. 최근에 바다에 대한 책을 한 권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바다라고 해도 전세계 바다는 아니고, 주로 한국 연안에서 북태평양까지의 일이다. 배와 바다 그리고 물고기에 대한 얘기들. 

박사 논문 쓰면서 ‘지속가능한 어업’에 대한 미분 방정식 풀면서, 우와, 돌아버리겠네, 그런 생각이 들었었다. 논리적으로는 그렇게 어려운 얘기는 아닌데, 그걸 미방으로 풀어야하니, 조금 더 깊게 들어갔더니, 시스템 다이나믹스 모델링을 해야 해서. 진짜 울면서 문제들 풀었던 기억이. 그냥 컴으로 풀면 되는데, 그 시절에는 아직 인터넷도 없고, 심지어 이메일도 안 쓰던 시절이었다. 연습용으로 써볼 시스템 다이나믹스 프로그램 같은 것은 아직 없던. 힘들기는 더럽게 힘들었는데, 그래도 바다에 대한 얘기라서 참 매력적이라는 생각은 들었었다. 

나중에 그 얘기를 가지고 박사 논문을 쓴 사람과 동료가 될 기회가 있었다. 한동안 바다 얘기 정말 많이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에는 고래 연구를 했었고. 우럭, 가자미, 이런 것들의 생태계 모델링도 좀 들여다봤었다. 

얼핏 생각해보니까 준비하는 데 5년 정도는 걸릴 것 같다. 베트남, 태국, 말레이지아, 인도, 이런 데 상황도 좀 살펴봐야하고. 

이거 하겠다고 하면 연구비 대줄 해외 펀드도 좀 있는데, 둘째가 아직 사정이 만만치 않고. 또 나도 써야할 것이 있어서, 거창하게 벌렸다가는 나중에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냥 사정 되는대로 소박하게 시작해볼까 한다. 

바다에 대한 얘기를 한 번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게.. 세월호 때 <내릴 수 없는 배> 쓰면서 연안 여객에 대한 얘기들을 한 번 정리한 적이 있었다. 당연히 섬에 대한 얘기들도 했었고, 지금도 가끔 섬의 날 같은 때나 섬에 대한 컨퍼런스가 있을 때 기조발제 같은 거 해달라는 부탁이 온다. 너무 예전 자료들만 있어서 최근 자료들을 새로 볼 형편이 아니라서, 힘들다고 하기는 했다. 이런 게 정말 돈 안 되는 분야라서, 전체적으로 섬에 대한 얘기들이 정리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래도 우리나라의 바다 얘기들이 좀 정리가 되어야 하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키워드는 ‘지속가능한 바다’다. 사람들이 생각한 것보다 내가 바다 얘기를 오래 했다. 기업 전문가와 관변 학자에서, 사회적 얘기로 처음 기자회견 한 게 새만금 문제였다. 아내와 결혼하게 된 것도 새만금 싸움하면서였다. 제주도에 해군 기지 놓고 크루즈항 놓는다고 할 때, 크루즈항의 경제성 평가를 검토한 것도 내가 관여되었던 일이었다. 울산에 고래 박물관 만들 때에도 기조 발제를 내가 했었다. 몇 년 전, 사양산업이라고 조선업 그만둬야 한다는 논쟁이 있을 때, 지금 조선업 포기하면 다시는 조선 못 한다고,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는 입장에서 논쟁을 했었다. 내가 이겼고, 어쨌든 산업으로서의 조선업을 포기하지 않게 되었다. 

바다를 워낙 좋아했다. 지금도 바다에 갈 생각을 하면 가슴이 뛴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하여간 마음은 그렇다. 처음 노르망디 갔을 때, 에트르타 인근의 해변을 보면서, 나중에 죽을 때에는 여기에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사람들이 습기 때문에 백퍼 류마티즘 걸리거나, 날씨 때문에 우울증 걸린다고 다 말렸다. 고뢔? 

어쨌든 진짜 오랜만에 새로운 책을 준비하게 되었다. 5년 정도, 차분히 들여다보면서 바다에 대한 얘기들을 모아보고 정리해볼까 한다. 목표는 태평양 금어기 정도 된다. 태평양에 거의 물고기가 없이 텅비어 있다. 풍성한 바다, 거의 옛날 얘기고.. 우리나라 인근 바다? 태평양보다 더 심하게 아무 것도 없다. 배타고 7~8시간 걸려서 나가야 뭐라도 좀 있다. 

중고등학생이 상식선에서 읽을 수 있는 바다에 대한 책, 그런 게 일단 목표다. 

결정적으로 바다에 대한 책을 써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는.. 이재명 정부에서 해수부 부산 이전을 공약으로 내세우는 걸 봤을 때였다. 이 사람들이 부산은 좀 알지는 모르지만, 바다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이 좀 커지고 커져서, 아예 전면적으로 바다에 대한 얘기를 한 번은 해야겠다는 생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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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경에서 경제 살리기 일환으로 사람들에게 긴급 소비용 돈을 주게 된다. 코로나 때도 본 거라서 새삼일 것은 없다. 일본은 90년대 경기 후퇴로 거의 수시라고 할 정도로 소비 쿠폰 같이 많은 소 지원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종류의 정책은, 자신이 받을 수 있는가, 없는가, 그런 데 관심이 가게 된다. 건강보험 상위 10% 기준이라는 걸 보는 순간, 일단 나는 아니라고 바로. 집도 있고, 차도 두 대나 있고. 나도 소득이 꽤 많은 적도 있지만, 작년에는 번 게 아주 험블해서, 하위부터 따지는 게 더 빠를 수도 있기는 하지만. 건보 기준으로는 택도 없다. 얄짤 없이 상위 10%에 들어간다. 덩달아 우리 집 소년들도 해당사항 없다. 중요한 건 아니다. 

이번 추경에서 진짜로 내 눈을 끈 건, 빚 탕감이다. 7년 이상 연체한 4천만 원 이하의 소액채권에 대한 빚탕감이 있다. 7년 이상 그리고 개인파산 수준이라고 판단되면 전액 탕감이다. 상환 능력이 있다고 판단되면, 최대 80%까지 감면하고, 남은 돈은 향후 10년간 갚도록 한단다. 방법은 소액 채권을 정부가 채권사로부터 매입해서 소각한다. 배드뱅크 방식이다. 소액채권의 현 가치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가 사실 기술적 문제이기는 한다. 어차피 못 받을 불량채권을 배드뱅크가 액면가 그대로 사지는 않을 것이고. 90년대 남미 국가들이 파산했을 때 국가 채무를 이렇게 처리하면서 소위 정크 본드라는 단어가 유행했었다. 배드뱅크가 정크본드를 처리하는 방식과 같으니까, 생각처럼 액면가 그대로 정부가 그대로 지출하지는 않게 된다. 아울러 개인파산 수준이라는 것을 평가하기도 생각처럼 쉽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정부의 정부의 재정지원에 대해서 전부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어쨌든 박근혜 때에도 악성 채무에 대해서 정책이 있기는 했는데, 지금처럼 전면적인 빚 탕감은 처음 본 것 같다. 새삼스럽게 이 문제가 크게 보이는 것은, 일반적인 악성 부채보다 더 격렬한 논쟁이 농가 부채 탕감 때 있었기 때문이다. 그전에도 농어촌 부채 경감 조치는 간헐적으로 있었는데, 김대중 때 전면적인 농가 부채 탕감이 공약으로 나왔었다. IMF 이후로 아주 격렬한 논쟁이 있었다. 그때는 배드뱅크 방식이 아직 전세계적으로 많이 활성화되기 이전이다. 이 논쟁이면 어김없이 나오는 보수 쪽 주장이 모랄 해저드다. 그렇게 빚을 탕감해주면, 누가 성실하게 빚을 갚으려고 하겠는가. 다 그냥 기다리다 정치적 결정에 의해서 그냥 안 갚을 수 있으니, 평소에 누가 그런 행위를 하겠는가, 이런 얘기다. 그 연장선에서, 성실하게 빚을 갚은 사람은 억을해서 어떡해! 그냥 버텼으면 정부가 처리해줄텐데, 왜 미련하게 돈을 갚았나, 이렇게 생각하지 않겠나. 물론 이런 우려도 논리적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상황에 의해서 판단할 수밖에 없다. 사회 전체적으로 혹은 국민경제의 시각에서, 어느 쪽이 편익이 높은가에 의해서 판단하게 된다. 그냥 일상적이고 주기적인 부채 탕감은 곤란하다. 그렇지만 구조적 문제 등의 시스템적 결함에 의하여, 정상적인 경제가 위기를 맞았다고 판단될 때, 제한적으로 부채 탕감이 가능할 수 있다. 매번, 이때가 바로 그때냐, 아니면 과잉 정책이냐, 그런 논쟁을 하게 된다. 

어쨌든 추경과 함께 전면적인 부채 탕감이 진행되는 것을 보며.. 이재명 정부가 정치의 효능을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었다. 김대중이 농어촌 부채 탕감을 대선 공약으로 걸면서도 결국 못했던 일이다. 글쎄. 악성 부채에 시달리던 사람들이 얼마나 이재명에게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악성 채무자와 사회경제적 분포도는 알 수가 없지만, 대체적으로 저소득이거나 경제적 약자일수록 한국에서는 보수적일 가능성이 높으니까, 실제로는 49%보다 더 적게 이재명에게 투표했을 가능성이 높다. 

투표를 했든 하지 않았든, 적지 않은 사람들의 경제적 삶이 부채 탕감으로 바뀌게 된다. 지금 한국은 거시 경제가 저성장을 넘어, 마이너스 국면으로 넘어가는 순간이다. 일본식 표현으로, 한 명 한 명의 경제적 ‘활력’을 높이는 게 매우 중요한 순간이다. 이런 상황이 아니라면 이런 전면적 부채 탕감이 이루어지기 어려웠을 것이다. 사실 이런 건 윤석열 때도 그냥 하면 되는 것인기는 한데, 그런 상상도 해보지는 못했을 것 같다. 

부채 탕감에 대한 논쟁이 어떻게 갈지 좀 더 기켜볼 생각이다. 생각보다 별로 반대는 없을 것 같다. affordable, 감수할 수 있느냐 아니냐가 논쟁이지, 하느냐 마느냐가 논쟁일 시대 상황은 아니다. 

예전 2012년 문재인 후보 시절 “의료비 100만원” 공약에 대해서 100점 만점에 100점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는 그렇게 생각할 정책은 아직 없었다. 실제로 문재인이 대통령이 된 후에는 그렇게 하지 못하고, 문재인 케어로 다소 후퇴했었다. 

이재명의 전면적 부채 탕감 역시 100점 만점에 100점인 정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건 누군가를 기분 나쁘게 할 수는 있어도, 누군가에게 경제적 피해를 주지는 않는다. 최소한 경제적으로는 아무도 손해보지 않는 정책이다. 누군가에게 경제적 손해를 미치지 않고서는 다른 누군가의 효용을 높일 수 없는 상태를 파레토 최적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경제적 손해 없이 또 다른 사람의 경제적 효융을 높일 수 있는 것은 파레토 개선이다. 아주 드물게 파레토 개선이 생겨나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그걸 못한 건, 정치가 실패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지금과 같은 전면적 부채 탕감이 농어민 부채 문제에도 적용될 수 있을지는 좀 더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다. 농민들이 갖고 있는 부채의 성격과 규모가 일반적인 생활 부채와는 좀 다르다. 부작용이 좀 다르게 작용할 수 있다. 

하여간.. 이재명의 이번 추경을 보면서, 특히 부채 탕감에 대한 정책을 보면서, 한국은 일본의 90년대와는 다른 경제적 전개가 가능할 수 있다는 생각을 처음 해보았다. 정치의 효능이라고 한다면, 일본 정치가 가지고 있는 그 무기력감과는 우리는 좀 다르게 움직일 수 있으므로. 

농가부채 문제는 나도 농업경제학을 앞두고, 머리가 평소에 지끈지끈해지게 하는 문제다. 피해가기 어려운 질문이다. 전면적 부채 탕감을 놓고, 나에게도 생각할 여지가 좀 더 많아졌다.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수협 등 어민 문제에 대해서도 잠시 고민을 하게 되었다. 최근에 고민하는 양식업의 문제와 태평양에 대한 장기적 관점까지 (얼마 전 태평양 관리에 대해서 일종의 잡오퍼가 있었는데, 싫다고 했다. 월급 받고 사는 삶으로 돌아가기에는 둘째가 아직 많이 아프다.) 좀 더 시간을 갖고, 바다와 태평양에 대한 책을 써보면 좋겠다. 배에 대한 책은 세월호 때 <내릴 수 없는 배>를 쓴 적이 있다. 그때 연안여객을 분석하면서, 섬의 교통 상황에 대해서 이런저런 생각들을 했었는데.. 요즘도 가끔 섬의 날 비슷한 섬에 대한 행사가 있으면, 기조 발제를 해달라는 부탁이 오기도 한다. 내 실력으로는 택도 없지만, 섬이나 바다 같은 문제는 보는 사람이 워낙 없으니. 그래서 바다에 대한 책을 한 번 준비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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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중..

책에 대한 단상 2025. 5. 31. 16:01

10대를 위한 경제학은 앞부분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다고 생각을 했는데, 결국 다 갈아엎기로 했다. 제목은 ‘빵과 복권’으로 가는데, 이건 안 바뀐다. 부제를 ‘경제 밸런스’로 잡고, 이 개념을 중심으로 정리를 해나가던 중이었다. 

요즘 고등학교에서 강연 부탁이 오면, 되도록이면 가는 방향으로 하고 있다. 몇 년 전에 한 외고에서 강연한 적이 있었다. 그 뒤로는 둘째가 연거푸 입원하는 바람에 오랫동안 강연을 안 했다. 

그렇게 안 하려고 하지만, 책을 쓰다 보면 정말 머리로만 쓰는 경우가 있다. 나중에 후회하게 된다. 이 책 준비하면서, 오랫동안 안 하던 강연을 다시 하기로 했다. 아주 작은 희망이기는 한데, 모든 도서관과 모든 고등학교에 가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런데 막상 고등학교에서 이 내용을 강연을 하려고 하면? 

지금 준비한 건, 내 얘기로 먼저 시작하는 건데.. 그렇게 시작해서 정말로 10대들의 관심을 끌 자신이 전혀. <88만원 세대> 때에는 그 책이 워낙 유명해져서, 고등학생들도 어지간히 내용들을 알고 있어서, 강연하기가 좀 나았다. 이제는 시간이 많이 지났고, 나는 그냥 아무 것도 아닌 아저씨고, 내 얘기 관심 있을 게 전혀 없다. 나는 원래 좀 재수 없는 스타일이다. 워낙 재수 없는 인생을 살았다. 고생을 전혀 안 한 건 아니지만, 그 얘기 해봐야, 재수 없다는 소리나 듣는다. 그게 고생이라고? 아픈 둘째 키우면서 고생을 좀 하기는 하지만, 10대들 특히 남학생들에게 그런 얘기는 통하는 게 전혀.. 

그래서 경제 밸런스니, 그런 개념 가득한 얘기들은 집어치우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게 다 머리로만 생각을 하려고 해서 발생한 부작용이다. 10대한테 밸런스를 잡는 게 중요하다, 이게 통할 거라고 생각한 내 대가리도 참. 당장 우리 집 중학생한테 그런 얘기해봐야, 씨알도 안 먹힌다. 

최근에 내가 했던 얘기 중에서 고등학생들한테 어느 정도 반응을 이끌어낸 질문은 “살면서 존중 받아본 적이 있습니까?”, 요거였다. 존중이라는 단어는 평소에 자주 쓰지는 않지만, 결정적인 얘기를 할 때에 몇 번 사용해본 적이 있는 단어다. 한국 특히 한국 엘리트 남성들에게 잘 없는 개념이기도 하다. 나도 원래 이런 거 잘 몰랐는데, 살다보니까 어쩔 수 없이 생겨난 것 같다. 존경은 못해도, 존중은 해라, 이것들아,, 요런 식으로 사용한다. 

최근에 생겨난 변화인데, 가급적이면 국회는 잘 안 가려고 한다. 물론 말만 그렇고, 어쩔 수 없이 요즘도 종종 간다. 토론회 발제 같은 거 하면 국회의원의 힘이 느껴지고, 기왕 그럴 거면 차관이랑 얘기 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고. 또 뭐, 어차피 그렇게 숏컷을 찾다보면, 장관을 만나거나 대통령을 만나면 더 빠르지 않겠어? 이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다. 몇 년 전에 크게 깨달은 적이 있다. 그런 짓은 안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국회 토론회장 가는 대신, 도서관과 고등학교에 더 많이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게 더 의미가 있고, 더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이 잠시. 높은 데서 스포트라이트 받고 그러는 거는 예전에 많이 해봤다. 뭐, 사실 별 거 없다. 더 높은 데, 더 멋진 데, 그런 거 찾으면서 나이를 먹고, 늙어가고 싶지는 않다. 

나이를 처먹으면, 자연스럽게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지게 된다. 내 경우도 그런 것 같다. 

고등학생 만나서 무슨 얘기 할 거냐, 그런 생각으로 10대들을 위한 경제학 책, 새롭게 재구성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논리적으로 경제 입문서 쓰는 거면, 한 달이면 다 쓴다. 그게 어려울 일은 하나도 없다. 그렇지만 얼굴 보면서 진심으로 하고 싶은 말이라고 생각하면, 얘기가 다르다. 게다가 얘기를 하거나, 듣거나, 그럴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선머슴 같은 고등학교 남학생이라면? 여기는 유머 코드도 안 통한다. 박경리의 <토지>가 뭔지 모른다고 하는데, 그 다음 얘기는 넘어갈 수가 없다. 이 정도는 아시겠죠, 그런 게 안 통한다. 갤럽 조사 결과 보여주다가, 트와이스, 이런 거 나오니까 열광적 반응이 나왔다. 하이고야.. 

다른 사람을 존중할 수 있는 사람을 만들어내는 경제, 그게 내가 생각하는 선진국이다. 이미지는 이렇다. 스위스 쮜리히에서 한적한 곳에서 길 찾다가.. 피어싱 잔뜩 한 스킨헤드 극우파 스타일 패션의 20대 커플에게 길을 물어본 적이 있다. 무서웠다. 그렇다고 내가 독일어로 길 물어볼 실력은 안되고. 근데 진짜 너무 친절하게 길을 알려줘서 감동받은 적이 있었다. 스위스는 어떻게 이런 청년들을 만들어냈는지, 그 뒤로 아주 오랫동안 고민을 하게 되었다. 그때 문고판으로 나온 스위스 전서 시리즈 20권 정도를 사서 가지고 왔던 기억이 난다. 도대체 이건 어떻게 된 나라일까?

그런 생각을 가지고 책을 써보려고 한다. 우리, 서로 존경은 못해도, 존중은 하는 삶을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똑똑한 한국 남자, 존경받을 줄만 알지, 존중할 줄은 모른다. 나는 내 두 아들들이 사람을 존중하면서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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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수 출마 선언문 읽었다. 다 이상한데, 그 중에 제일 이상한 건.. 

자기가 헌법 개정을 직접 하겠다는 거다. 예전 환경분야의 개헌 논의에 꽤 오랫동안 참여한 적이 있었다. 그것만이 아니라 요소요소, 고쳐야 할 곳이 많다. 대표적인 게 국민투표 관련 조항이다. 이미 주민투표가 다 도입되어 있는데, 정작 국가 차원의 정책에서는 대통령에게 국민투표 부의권을 독점적으로 부여하고 있어서 정책 국민투표가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 기타 등등.

이걸 그냥 자기가 알아서 하겠다니.. 87년 9차 개정헌법 시절에는 보수 정권이기는 했지만, 6월 항쟁의 결과로 비교적 공정하게 헌법 개정을 했다. 다들 87년 체계의 한계를 얘기하지만, 그만한 헌법을 또 만들기가 어려워서 한 글자도 못 고치고 지금까지 온 거다. 

길게 보면, 대통령의 통치는 잠깐이지만, 헌법은 그보다 더 크고 중요한 일이다. 이걸 자기에게 맡겨달라고 하는 한덕수. 

내란 동조 세력이라는 표현은 가급적 안 쓰려고 했다. 그런데 오늘 한덕수 출마 선언문 보고, 이거야말로 헌법 개정권을 자기한테 달라고 건데. 이게 내란의 완성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발상 자체가 흉악하다. 3년만 하는 대신, 헌법 전문을 직접 쓸 권한을 달라고 하는 게.. 난 좀 아니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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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에 서울신문에 글을 쓴다. 좀 고민을 했는데, 이번에는 7세 고시에 대해서 쓰기로 했다. 제 정신들이 아닌 것 맞는데, 그렇다고 마냥 욕만 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기는 하는데, 해법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어느 순간인가, 한국의 문제 해결 능력이 확 떨어졌다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 늙어가는 경제가 갖는 전형적인 특징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잠시. 

어떻게 보면 정치과잉이 만든 또 다른 부작용일 수도 있고, 후기 자본주의가 갖는 시스템 오류에 대한 얘기일 수도 있다. 한국만큼 문제 해결 능력이 떨어지는 또 다른 나라가 일본 아닌가 싶다. 일본은 정치과잉이 아니라 정치실종이 문제가 아닌가 싶다. 일본은 요즘 폭등하는 쌀값 문제에 전혀 대처를 못한다. 두 배로 올랐다는 얘기 들었던 게 몇 달 전인 것 같은데, 벌써 세 배 가까이 된다. 왜 올라? 아직 이유도 잘 모르는 것 같다. 초반에는 외국인 관광객 때문이라고 했다가, 이건 개뻥.. 나중에는 악덕 상인들의 사재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현실적으로 이것도 근거가 없다는 것 같다. 그럼 왜 올라? 모른다데쓰..

정치가 너무 많고 혹은 정치가 너무 적고, 그런 게 근본적인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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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쌀..

농업 경제학 2025. 3. 24. 22:44

 

태국 쌀 1등급. 지난 번 먹은 베트남 쌀은 맛이 좀 그랬는데, 쌀 자체의 문제라기 보다는 도정 기간과 보관 기간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맛이 없어도 너무 맛이 없었는데, 어렸을 때 정부미 먹을 때의 느낌과 비슷했다. 도정 기간 짧은 베트남 쌀을 따로 구할 방법은 없고, 일단 패스. 태국산 쌀은 일반 쌀과 자스민 향미, 두 종류를 먹어볼 생각이다. 태국산 일반 쌀은, 일단 아주 맛있었다. 쌀이 가진 맛이 나름 복합적으로, 그리하야.. 쌀 괜찮네, 소리가 절로 나올 것 같은. 이 정도면, 나는 이걸 일상적으로 먹으라고 해도, 별 문제 없을 것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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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고등학교에서 강연을 하기로 했다. 한동안 강연할 형편이 아니라서, 꽤 오래 안 했었다. 올해도 많이 할 수 있는 여건은 아니라서, 그냥 몇 개 정도만 하려고 한다. 고등학교 강연은 몇 년 전에 했던 기억이다. 

마침 10대와 청년을 위한 경제학 쓸 준비 중이다. 모티브도 잡았고, 부제도 어느 정도 잡았다. ‘비기너를 위한 경제 밸런스’ 정도의 방향으로 쓸 생각이다. 무조건 웃기려고 한다. 내가 본 책 중에서 가장 웃겼던 책은 “YS는 못말려”였다. 그걸 모델로 할 생각이다. 그동안 경제학자로 살아오면서 내가 들었던 유머는 다 때려넣을 생각이다. 술자리에서 구전으로 내려오는 얘기들이 있다. 요즘은 그런 농담은 잘 안 하는 것 같다. 

어쨌든 그렇게 준비되는 내용 가지고 두 시간짜리 고등학생용 강의를 한 번 만들어보려고 한다. 마침 관련된 내용 모으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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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가비 고수홍차. 지리산에서 선물 받은 홍차 중에 마지막 차. 중국 홍차. "200년 이상 오래된 고차수 나무 차잎 홍차"라고 적혀 있다. 일단 내가 먹어본 홍차 중에서는, 현재까지는 가장 고급 홍차. 혀에 닿는 순간, 아 비싼 거, 그런 느낌이 탁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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