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 카메라 쓰던 시절, 세검정 옛날 내 방. 여기서 책 10권 넘게 쓴 것 같다.. 아이 태어나기 전.) 

 

나한테 왜 계속 책을 쓰느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다. 이게 제일 대답하기 애매한 질문이다. 수없이 많은 답변을 해봤는데, 아마도 가장 진실된 답변은 그냥 책 쓰는 게 좋아서”, 이런 것 같다. 이걸로 먹고 살아야 한다는 헝그리 정신이 가장 표준 답변이기는 한데, 나는 그런 헝그리 정신을 가졌던 적이 한 번도 없다. 책만 그런 것도 아니다. 나는 내가 하는 거의 대부분의 일을 대충대충 한다. “이거 아니면 나는 죽는다”, 그런 생각 자체가 싫다. 그리고 너무 몰입해서 정작 중요한 것은 놓치는 그런 바보 같은 일도 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대충대충, 건성건성, 되거나 말거나, 그런 자세로 살아간다. 그런 내가 책에서 만큼은? 에이, 그럴 리가 있나. 그렇게 목숨 걸고 책을 쓰면, 3권에서 4권 사이, 자살하고 싶은 순간을 한 번쯤은 맞게 된다. 책 쓰는 게 뭐라고, 자살 충동을 느끼고, 우울증 가고, 집안 식구들 달달 볶고.. 그건 아니다. 권장생 선생이 그러시지 않았나, 인생은 소풍 같은 것이라고. 인생의 소풍인데, 책이 목숨 걸? 그런 건 아니다. 그러면 2~3년 하다가 극도의 회의감에 빠져서 결국 가보지 않은 길을 내려놓게 된다. 대충, 살살, 그게 10년 이상 책을 쓰는 첫 번째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책에 관한 책>10년 넘게 책을 쓰면서 생겨난 약간의 노하우에 관한 책이다. 굼뱅이도 기는 재주가 있다고, 많이 쓰다보니까 요령 같은 것도 생기고, 패턴 같은 것도 생겼다. 그리고 저자로서 가져야 할 마음 가짐 같은 것도 조금은 알게 되었다. 소설가가 되는 것과 교양이나 사회과학 분야의 책을 쓰는 것은 좀 다르다. 소설 작법이나 시나리오 작법 같은 것은 꽤 나온 책이 많은데, 교양 분야는 아직 생각해본 사람이 없다.

 

예를 들어보자. ‘필자라는 표현을 쓸까 말까? 나는 라고 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요런 문장을 본격 책에서 처음 쓴 사람이 나다. 신문에도 나는 라고 쓴다. 요즘은 필자라는 일본식 표현을 쓰는 사람이 많이 줄었지만, 내가 데뷔하던 시절, ‘라고 쓰는 것은 매우 어색한 일이었다. 주로 비평하는 문학 쪽 선생님들이 나를 보면서 요즘 것들, 기본이 안 되어서”, 아주 혀를 끌끌 찼다. 대놓고 뭐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거는 영어구요, 불어는 on, 전혀 다른 방식으로 주어 처리를 합니다”, 내가 싸가지 맞기는 맞다. 환갑 가까운 초절정 유명 평론가들에게도 불어 문장으로 되치기를 했다. 영어의 피동형과 우리 말의 주어에 관한 얘기다. 왜 건방지게 라고 하느냐고 아주 지랄들을 하셨다. 그래서 근대 이후에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해진 글에 관한 얘기로 뭐라고 되받아줬다. 물론 누구나 다 아는 에밀 졸라의 <J’accuse>에 관한 얘기다. 나는 고발한다, 누가 고발하죠? Je, 에밀 졸라가 는 이라고 했다. 에밀 졸라가 그 사건은 고발되었다, 이렇게 말하지 않았다. 시일야방성대곡, ‘오등은이라고 시작된다. ‘를 왜 쓰느냐, 무슨 소리예요? 선생님은 지금 영어 얘기하시는 거예요, 우리는 우리 말로 글 쓰는 사람들이구요. 불어, 독어, 다 그렇게 안 해요. Je, ich.. 베토벤이 ich liebe dich라고 했지요, 사랑하게 되었다라고 안 했어요. 뭔 소리예요? 나도 참 성질 지랄맞다. 하여간 그 사건으로 데뷔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할아버지들한테 개싸기지로 단디 찍혔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 책에서 내가혹은 나는으로 시작하는 문장들은 그렇게 스타일이 되었다.

 

내 책은 일반적인 책에 비하면 파격 투성이다. 물론 나는 더 파격으로 가고 싶은데, 아직도 가슴이 좀 쫄려서, 더 과감하고 더 과격하게 못 간다.

 

독자가 읽을 수 없으면, 그건 쓰나마나, 독자에게 감정이 안 생기면 그것도 쓰나마나. 내가 책을 쓰는 기준은 토요일 밤에 시작해서 일요일 아침에 한 숨에 읽을 수 있는 것, 그게 아니면 안 쓴다. 물론 일부러 거꾸로 간 경우도 없지 않지만, .. 그 책은 망했다. 결국 12권으로 기획된 경제 대장정 시리즈가 그 실패로 서게 되었다. 언젠가 해보고 싶은 코멘터리 북도, 바이바이.

 

그렇게 꾸역꾸역 오다 보니 36권을 썼다. 감정, 밀도, 흐름, 시퀀스, 꺾기, 이런 내가 사용하는 기법들이 있다. 그렇지만 그런 기능 보다 100배는 중요한 게 일관성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삶이라는 게 그렇게 일관된 것이 아니지 않은가? 내 삶도 책을 쓰기 시작할 때에는 엉망진창이었다. 논리는 일관성을 가질 수 있지만, 삶이 일관성이 없으면 그 논리도 상황 논리에 빠진다. 그 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안 그럴 수가 없다. 몇 년 하고 좌판 걷을 거면 몰라도, 10년이 넘어가면 논리적 일관성만으로는 일관성을 유지할 수가 없다.

 

결국 저자가 되는 것은 책을 완성시키는 과정이 아니라, 저자를 완성시키는 과정이다. 그게 제일 어렵다.

 

그래서 책은 연예인이나 배우와는 다르다. 책은, 연기하는 것이 아니다. 연구하는 사람, 서술하는 사람, 그 삶이 그대로 책에 투영된다. 연기와도 다르지만, 보고서와도 다르다. 보고서는 기능적이다. 누가 쓰느냐고 별로 안 중요하고, 기능과 결론만 중요하다. 책은 다르다. 그리고 그 인생이 거짓 인생이면, 책도 거짓이다. 책을 둘러싼 저자와 독자와의 메타 텍스트는 그렇게 형성된다. 거짓말을 한 번 할 수는 있지만, 10년 넘게 하기는 어렵다.

 

굼뱅이도 기는 재주가 있다, 이런 얘기를 두 번 하고 싶다. 책에 관한 것 한 번, 영화에 관한 것 한 번, 막상 해보니까 이렇더라.. 영화는 한 10년 후쯤, 그 때쯤 하면 어떨까 싶다. 나도 지식과 경험이 좀 더 쌓이고..

 

책은?

 

기능적으로는 지금 바로 써도 된다. 앞으로 내가 14권의 책을 더 쓰면 50권이 된다. 그 동안에 변화는 오겠지만, 기술이나 기량이 점프하듯이 늘지는 않을 것 같다.

 

내가 체득하고 이해한 기술만 가지고도 많은 사람들이 책 쓰는 시간을 1/3 이하로 줄여줄 자신이 있다. 일반인도 자신이 살아온 삶을 가지고 어느 정도 이상 수준의 책을 쓸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을 것 같다. 기능에 관한 교과서라는 게, 원래 그런 거다.

 

내가 남자 애들 둘 보면서도 올해 책 3권을 냈다. 내년도 3권이다. 이렇게 하는 건, 엄청나게 내가 아는 게 많거나, 머리가 거의 천재급, 절대 이런 건 아니다. 기능으로 처리할 수 있는 건 기능으로 처리하고, 좀 더 감정적인 것이나 섬세한 데에 많은 시간을 들이기 때문이다. ‘굼뱅이의 기는 재주에 관한 책이 의미가 없거나, 뭔가 더 많이 알아야 하는 건 아니다.

 

그런데.. 지금은 못 쓴다. 요즘 내 책이 엄청나게 잘 팔리거나 그렇지는 않다. 책 시장이 힘들어서 그런 것도 있고, 내 인기가 바닥을 달리는 이유도 있고. 좀 복합적이다. 나도 그 상황은 안다. 그래도 꾸준히 하다 보면 티핑 포인트가 오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인생이 원래 좀 그렇다. 참고 기다리면 된다.

 

책에 관한 책을 지금 낼 수는 없다. 지 책도 못 파는데, 누구한테 책이 이러쿵 저러쿵, 지랄하네,그런 헛소리 취급 당하기 딱 좋다. 그래서 티핑 포인트가 올 때까지 참고 기다리는 중이다. 이번 직장 민주주의 책에서 그런 티핑 포인트가 올까 싶었는데, 아직은 아니다. 1~2년 내에 오기는 할 것 같다.

 

그 티핑 포인트를 넘기면 쓰고 싶은 책이 또 하나 있다. 몇 년 전에 일본에서 제안이 왔던 책인데, <촌놈들의 제국주의> 일본판.. 그냥 하면 되는 일인데, ‘책에 관한 책처럼, 이것도 티핑 포인트 이후에 내야 의미가 있을 것 같아서 쟁여놓고 있다.

 

삶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누군가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인생에도 사이클이 있다. 책에도 사이클이 있다. 어려울 때는 고개 숙이고, 힘들 때는 버티고, 잘 나갈 때에는? 그 때도 고개 숙여야 한다. 그래야 멀리 간다.

 

나는 별 욕심은 없다. 내 인생을 돌아보면서 내가 간절히 원하는 것 두 개를 생각해보니까, 국민 경제가 IMF급으로 망하지 않는 것 그리고 살아서 전쟁 나지 않는 것, 이 두 개다. 나는 그렇지 않은 세상을 위해서 성실히 는 아니고 살살’ – 살아갈 뿐이다.

 

돌아보면, 내가 많은 사람에게 감사하고 또 감사해야 하는 건, 내 삶 그 자체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서 있기 때문이다.

 

초창기에 장정일 선배가 그런 얘기를 했다. “10년간 꾸준히 책을 쓰면, 부자는 아니더라도 밥은 먹고 살게 될 거다..” 실제 지내보니까 그렇다. 10년이 넘도록, 밥 먹고 걸 걱정하지는 않았다. , 워낙 쓰는 돈이 적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도움 덕분인지, 그야말로 뼈저리게 느껴질 정도다.

 

마치 장정일 선배가 나에게 도움을 주었듯이, 나도 다음에 올 사람에게 작은 참고자료는 남기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책은 개똥이라고 생각하는 순실이 시대도 지났고, 책이 뭐여, 아직도 책 보는 사람 있나, 이러고 있는 시대를 지나고 있다. 그들에게 책이 얼마나 화려하고 아름다운 것인가, 보여주고 싶다. 책 한 권 남기는 게 평생 소원인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그게 한국의 힘이고, 저력이다. 나는 그 길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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