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는 민주주의 예외 지역이 아니다"
너무 익숙해서, 다른 말로 길들여져서 생각하지 못했다. 회사와 민주주의가 이렇게 어색한 조합이라는 것을. 돌아보니 한국에서 회사만큼 민주주의의 언어와 원칙이 통하지 않는 곳이 있나 싶다. 숫자로 압박하는 이익 앞에서, 경력을 앞세우는 조직문화 앞에서, 발끈 했다가도 뭐가 바뀔까 싶어서, 입을 열다가도 나만 다치지 싶어서, 물 흐르는 듯 지내온 시간이 너무나 많지 않았던가.

경제학자 우석훈은 한국사회의 절실한 과제로 ‘직장 민주주의’를 꼽는다. 사회 구성 원리로서의 민주주의와 일상의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음에도 현실이 원칙대로 움직이지 않는 까닭, 그렇게 효율과 수익을 강조하며 다른 가치를 뒤로 미루면서까지 달려온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 모두 ‘직장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일을 하는 이들에게 또는 일을 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직장은 삶의 중요한 축이다. 그곳에서 민주주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보다 짧은 시간을 머무르며 적은 영향을 받는 곳에서는 말할 것도 없지 않겠는가. 직장 민주주의는 직장 내 민주주의뿐 아니라 기업과 기업 사이의 민주주의, 나아가 기업과 국가, 결국에는 시민과 국가 전체의 민주주의와도 영향을 주고받을 게 분명하다. 직장 민주주의는 민주주의의 끝이 아니라 오늘날 민주주의의 새로운 출발점이라 하겠다.
- 사회과학 MD 박태근 (2018.12.04)

 

직장 민주주의 책이 알라딘 대문에 걸렸다. 사실 책 나오면 신문 서평 나올 때 말고는 잘 들여다보지 않는다. 나도 강철심장은 아니라서, 그냥 안 보는 게 정답이라는 생각이..

'88만원 세대' 나왔을 때는 서평도 거의 없었고, 주목받은 서점도 별로 없었다.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한동안 잊고 지냈다. 출판사가 작아서 무슨 마케팅 할 형편도 아니었고. 몇 달 후에 보니까 한 달에 만 권 넘게 나간다고.. 강연은 몇 번 했지만, 중간에 어떤 일이 벌어진 건지, 사실 잘 모른다. 실제로 '촌놈들의 제국주의' 준비하느라고, 나는 정신이 없었다.

직장 민주주의 책은, 서평 나오는 그 주까지만 좀 챙겨보고 살펴보지 않으려고 책 나오기 전부터 마음을 먹었다.

두 가지는 알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전후로 내 삶의 시대가 바뀔 것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그거야 내가 그렇게 마음을 먹으면 되는 거니까. 한국 사회도 이 책 전후로 나뉠 것이다. 직장 민주주의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첫 번째 책이라는 것에 나도 놀랐다. 내 앞에도 없었지만, 당분간도 비슷한 책이 나오지는 않을 것 같다. 이런 작업을 하는 사람이.. 없다.

우리는 너무 큰 얘기만 하거나, 너무 작은 얘기만 하면서 살아가는 것 같다. 직장은 너무 큰 얘기도 아니지만, 아주 작은 얘기도 아니다. 이런 얘기들이, 한국에서는 텅 비어 있다. 뭐가 되게 많은 것 같지만, 사실은 여기저기 텅텅 빈 나라가 한국이다.

어쨌든 간만에 서점 사이트 들여다보다, 정규제가 책을 낸 걸 알게 되었다. 책 목차 보니까, 정규제 목소리 들리는 것처럼 토 나오게 잡아놨다. 유튜브에서 정규재가 그렇게 인기가 높다는데, 책은 뭐 그닥, 인기 수준으로 팔리는 건 아닌 듯 싶다. 이게 태극기의 특징인가? 하긴, 태극기들이 책도 열심히 읽었으면 우리가 벌써 스위스 정도는 간단하게 따라잡았겠지.

어느덧 민주주의라는 단어도 구시대의, 올드한 언어가 되었다. 그래도 그냥 썼다. 다른 단어가 별로. 나도 이제 올드하고, 아날로그틱하고, 트렌디하지 않다는 사실을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냥 트렌드만 쫓아가면, 갑질이 만연한 사회에서 계속 살게 된다. 작업하다 보니, 갑질이 트렌드고, 민주주의는 올드한 것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트렌드를 버렸다. 다른 방법이 없었다.. 누가 요즘 책을 봐? 내가 본다. 뭐하려고 책을 쓰는데? 좋아서. 그런 선문답의 계절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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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에 실렸던 사진이다. 지금까지 나온 기사 중에서 이 사진이 나를 가장 가슴 아프게 했던 것 같다. 둘째는 폐렴으로 다시 입원할지 말지 그러고 있는 동안에 나는 이러고 있었다. 결국 이 사진을 보면서, 이렇게 사는 건 좀 아닌 것 같다는 마음을 먹었다.

전에는 강연할 때 노래도 불렀었는데, 그 이후로는 기타 내려놓았다. 요즘 동물원 노래 조금씩 다시 연습해보는 중이다. 둘째 입원하던 시절에 생긴 정신적 충격이 너무 커서 그런지, 감정은 잘 생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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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 웹툰 작가들하고 티타임을 가졌다. 협동조합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몇 시간, 내가 생각하는 전체적인 문화 경제에 대한 얘기들과 분야별 특성 같은 얘기들을 나누었다. 그리고 웹툰의 특이성에 대한 얘기들도. 나도 공부가 많이 되었다. 내년 6월쯤 본격적으로 시작한다는 것 같다. 나도 힘 닿는 데까지는 도와준다고 했다. 어차피 특별히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문화로 먹고살기>는 내 책 중에서는 어쨌든 세상을 가장 많이 바꾼 책일 것 같다. 스포츠 분야를 제외하면, 생각보다 내가 그렸던 그림이 현실에서 구현된 것들이 많다. 물론 아직은, 택도 없다. 이 책이 가장 보람이 있는 책까지는 아닌데, 업데이트 버전에 대한 요구가 가장 많은 책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가장 많은 돈을 벌어다 준 책이기도 하고.

 

한국에서 문화와 지식의 공통점, 만든 넘은 배골골, 뒤지게 생겼고, 거간꾼들이 돈을 다 챙겨가는. 해도해도 좀 너무하다 싶게.

 

하여간 몇 년만에 다시 웹툰 작가들과 만나게 생겼다. 애니메이션 팀과도 안 본지 꽤 되는데, 봄 도면 좀 다시 움직일 생각이고.

 

생태적 문제의 경제적 대안은 지식경제와 문화경제다.. 이게 내가 가진 근본적인 시각이다. 그런데 지식이든 문화든, 진짜 형편 무인지경이다. 심지어 웹툰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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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가 보내준 사진. 초창기 때에는 서점에 내 책이 이러고 있으면 마냥 뿌듯하기만 했는데, 이것도 10년이 넘어가니까 그렇게 그냥 좋은 기분만 드는 것은 아니다. 책을 쓰는 것은 권투나 격투기처럼 순위 경쟁을 하거나, 더 많이 팔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그런 마음으로 하면, 지쳐서 못 한다. 

저렇게 서 보지 못해도 의미 있는 책을 내는 게 이제는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나이가 되었다. 많은 책들이 신간 코너에 누워 보지도 못하고, 뒷쪽에서 빳빳이 서 있다가 결국은 창고로 떠나간다. 이젠 그런 아픔이 더 많이 보인다. 

책이 크게 전시되어 있으면 막 기분 좋은 거, 얼라 때는 나도 그랬다. 이제는 전체가 보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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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회사 회식이라서 늦게 온다. 둘째는 레고 가지고 광선검이라고 덤비고, 큰 애는 빗 들고 광선톱이라고 한다. "형아, 살살해." 사방에서 비명 소리가 난무한다. 쓰러진 둘째가 일어나면서 "아빠, 광선검 싸움 해." 밥도 먹이고 후식도 먹였는데, 평화는 없다. 매일 저녁 우리 집은 시체 난무하는 전쟁터가 된다. 딸을 낳았어야 했다. 되돌릴 방법은 없다. 아이고, 귀야, 귀 아파 죽겠다. 큰 애 빗에 찍힌 손목도 아프고..

 

(둘째가 만든 스타워즈 전투선. 저 안에 루크도 타고, 요다도 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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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평균적 가계 기준으로 월 생활비 400만원, 실제로 우리 집이 한 달에 그 정도 돈을 쓴다. 물론 아내가 극단적으로 돈 쓰는 것을 싫어하는 편이고, 나도 주머니에서 돈이 막 나가는 편은 아니다. 그 정도 내에서 틈틈이 외식도 하고, 거의 매달 짧더라도 여행을 떠난다. 일년에 두 번 정도는 해외 여행도 한다. 나도 한 달에 동료들 한두 번은 술 사준다. 400~500만 원 사이, 내가 맞추려고 하는 생활의 수준이다. 낮추려면 더 낮을 수도 있는데, 그러면 책값이나 DVD 비용 같은 것을 줄여야 한다. 그렇게까지 줄일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큰 애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었다. 이 앞에 있던 몇 가지 선택들은 그렇다 치고, 이제 진짜로 사립학교 보낼지, 그냥 동네 학교에 보낼지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왔다.

 

제일 큰 건 애들 등하교 문제다. 그런 거 아니면 고민을 시작할 일도 없다. 국공립 초등학교에는 등하교 버스가 없다. 사립은 버스가 온다. 출근하는 아내 입장에서는 고민이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지금은 어린이집 등하원을 내가 시키고 있는데, 언제까지 이러기도 힘들다고 아내는 생각한다. 나야, 어차피 특별히 하고 싶은 것도 없는데, 그냥 이렇게 살아도 별 상관 없다.

 

제도적 기원을 보면, 버스회사들 요즘은 마을버스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 이재정이 경기도 교육감 되자마자 초등학교에 스쿨버스를 투입하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마을버스들이 난리가 났다. 아이들 등하교 시간이 고객 줄면 망한다고.. 결국 없던 일로 되었다.

 

보통 초등학교 3학년 정도 되어야 아이들이 혼자서 버스 타고 등하교 할 수 있을 정도가 된다. 그 전에는? 이건 초등학교만 그런 것도 아니다. 사립유치원 등 사립자 들어가는 어린이집 같은 데에는 버스 운용을 다 한다. 그런데 국공립 그야말로 버블릭글자만 들어가면 옴팡, 부모가 뒤집어 써야 한다. 그리고 그것만 하는 직업이 활성화되어서, 등하교 전담 도우미.. 이거 왜 이래?

 

버스회사와 마을버스 로비의 벽을 공무원들이 못 넘어선 거다. 지금 사립 유치원 사태 보다는 훨씬 고치기 쉬운 일인데진짜로 진보 교육감이라고 하던 사람들, 뭐하고 계시는겨? 박근혜 정부 때에는 국토부의 협력이 어렵고, 지자체에서 반대한다고 했다. 지금은 김현미 아냐? (설마 현미 누님이 반대할라고..)

 

여기에 사립이 좋은 점은, 이건 진짜 관점의 차이이기는 한데, 엄마들 오라가라 하는 게 없다는. 요즘은 국공립도 많이 줄기는 했는데, 여전히 자기가 오던지, 사람을 사서 보내든지”, 이렇게 말하는 선생님이 불과 최근까지 목격된 바가 있다. 일하는 엄마 입장에서, 자녀의 우월한 교육은 차지하고, 최소한 이 두 가지의 실용적 목적 때문에 사립학교를 보낼지 말지, 고민을 하게 된다.

 

우리 집도 고민을 했다. 아내는 마지막 순간까지 고민했다. 나야 그냥 내가 애들 데리고 다니면 된다고 생각하니까, 이러거나 저러거나 별 생각이 없었는데, 아내는 끝까지 고민을 했다.

 

2.

사립학교에 다니는데, 방과후 프로그램까지 이것저것 부대비용들 넉넉하게 잡아보니까 월 150만 원 정도 한다는 것 같다. 영어유치원 한 달 비용이, 교제값과 등하교에 들어가는 추가적 시간까지 해보면 얼추 그 정도 된다. 그러니까 꽤 많은 집은 이미 지난 2년 동안 이 돈을 들였을 수도 있다. 어차피 드는 돈, 이미 각오했어!

 

간단한 산수를 해보았다. 간단하게 월 백만 원이라고 치면 6년간, 기계적으로 7,200만 원 나온다. 이자비용 감안하면 8천만 원, 이것도 최소 비용으로 잡은 것이다. 거기에 아이가 둘, 18.. 잠깐잠깐, 이건 돈이 너무 크다.

 

중학교 들어가기도 전에 아이들 둘 교육비로 18, 까딱하면 2, 이건 뭐야? 이걸 그냥 등하교가 몇 년 어렵다고 태워? 태워 버리기에는 돈이 너무 크다. 공교롭게도 열 살까지, 스무 살까지 증여세 없이 증여할 수 있는 돈과 거의 비슷하다. 이걸 그냥 등하교 좀 편하게 하자고 허공에 태우자고? 뭘 위해서 태우는데?

 

두 아이들 중학교 들어갈 때, 둘의 공동명의로 2억 가까운 돈을 마련해줄 수 있다면? 설령 걔들이 나 닮아서 뻑하면 학교 그만두고 싶어할 텐데, 그래도 조그만 가계라도 갖고 싶다면 그걸로 뭔가 되는 거 아녀?

 

이런 고민하고 있을 때 박용진이 사립유치원 문제를 터뜨렸다. 아내는 사립 초등학교는 사립유치원보다 더 무서운 존재일 거라고, 연방 뉴스 터지는 걸 보면서 사립학교는 접었다. 아내 성격상, 분명 비리를 보면 학교랑 싸우고 결국 전학가게 될 것 같단다. 어내는 사립학교 추첨 서류를 쓰는 대신, 회사에 내년 3월에 한 달간 육아휴직 쓰겠다고 통보했다. 초등학교 첫 달에는 방과후 학교가 없다.

 

교육을 전담하는 조희연은 대체 뭘하고, 박원순은 뭐하고 있는겨? 교통을 담당하는 김현미는 뭐하고 있는겨? 초등학교 저학년을 위한 통학버스 마련이 그렇게 힘든 일인가? 에쿠스, 그랜져, 이런 대빵용 관용차 몇 대만 모닝으로 바꿔도 그 정도 돈은 나올 거 아닌가벼?

 

말로 다 안 해서 그렇지, 김현미 삽질, 조희연 삽질, 기타 등등 장관들 삽질, 이거 보고 있으면 진짜로 속에서 열불 난다. 정말 이상한 것은 개인들이 최소 1억 원 이상 추가로 지불하게 되는 이상한 제도의 공벽이 너무 많다는 점. 이리저리 남들 하는 대로 하면 자녀당 2억이 뭐냐, 대학 졸업 때까지 5억이 넘게 들게 생겼다.

 

그만큼 쓰면서 병신 짓을 하던지, 아니면 그만큼 미안해 하던지..

 

난 맘 먹었다. 다음 번 교육감이랑 서울시장 선거에서 다 필요 없고, 초등학교 스쿨버스 공약 거는 넘 찍을 거다. 애 둘에 2억 원이 걸린 일이다. 쓰거나 말거나, 그게 취향과 소신에 따른 선택이 되는 게 맞지, 애들 등학교를 위해서 그걸 쓰는 게, 이게 좀.

 

3.

내가 도시민 월 평균 소득인 4천만 원에 평균적 가구의 생활비를 맞출 수 있도록 제도들이 정비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꼭 중산층만을 위한 기준은 아니다. <살아있는 것의 경제학>이라는 책에서 정리했던 생각이 있다.

 

최저임금 만 원이면 유휴수당까지 넣어서 환산하면 대략 월 208만원 정도 된다. 물론 그렇게 안 하겠다고 지금 정부도 이것빼고 저것빼고, 아주 생난리 중이기는 하다. 40시간 노동에 최저임금 만 원 받는 남녀가 만나서 가정을 꾸리면 416만 원이 된다. 최저임금 커플이 사랑을 하든, 같이 살든, 아니면 서로 지지고 볶거나, 그건 자기들이 알아서 할 일이고. 내가 하는 계산은 과연 그들이 아이를 낳고 살아갈 수 있느냐, 그 기준에 대한 계산만.

 

정상적인 혹은 중산층틱한 남녀가 월 400만원으로 살아갈 만한 나라를 만드는 것, 그것이 최저임금 커플들의 삶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주거부터 문화까지, 그 정도 수준에서 설계가 안 될 이유가 없다. 안되는 것은? 청와대에 돌대가리들이 자리 차고 앉아서 그렇다, 그렇게 밖에는 설명이 안 된다. 아니면 총리라도 좀 토건질 그만하고 머리 빠릿빠릿하게 돌아가는 사람을 앉히던가. 청와대는 돌대가리, 총리는 토건에만 용감하신 분, 에 또..

 

그러니 마을버스 업자들에게 막혀서 초등학교 스쿨버스 문제 하나도 해결 못하는, 토건의 나라, 업자의 나라, 이런 게 된 거 아니냐? 대형 학원이나 사교육 자본의 힘에 막혀서 못했다, 그러면 안타깝더라도 설명이나 되지. 마을버스 로비에 학교에 스쿨버스를 못 보낸다, 이게 말이 되는가?

 

최저임금 커플 416만 원, 아직은 미래의 수치다. 내가 이 정도를 정책 설계의 기본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문화 경제라는 또 다른 축 때문이기도 하다.

 

최저임금 우습게 보지만, 한국의 수많은 작가나 연구자, 화가 등 예술가, 최저임금 근처에도 못 간다. 뭔 일을 해야 최저임금이라도 받지, 괜히 쿠사리 당하고, 쫑코 맞고, 툭하면 성폭력성 언어폭력에 시달리는 사람들, 최저임금 한참 언더다. 요즘 책 안 팔린다고 작가들이 난리지만, 그래도 어른들 보는 책 쓰는 사람은 욕이라고 하지. 어린이책, 동화책 작가들은 산 입에 거미줄 치는 정도가 아니라 길고양이 사료까지 집어먹게 생겼다. 유학생 시절에 너무 배가 고파서 고양이용 사료를 사다가 먹고 나중에 정신적으로 심하게 흔들리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이게 지식과 문화의 현장에서 지금 한국 현실이다. 그들에게는 416만 원도 넘사벽, 크다.

 

4.

약간 심통성 정책을 제시하면서 세 번에 걸친 돈에 관한 얘기를 마무리하려고 한다.

 

한국의 평균 가정이 살아가는 데 월 평균 얼마가 필요할까? 400만 원에서 500만 원 사이로 계산될 것이다. 해마다 조금씩 올라가기는 하지만 하여간 도시민 가계평균 소득이 한국에서 그 정도다.

 

경제 관료는 국장급 이상, 나머지 관료는 1급 실장급 이상, 연봉을 전부 거기에 맞추면 어떻게 될까? 경제 부처 기준으로, 과장까지는 생활형 공무원, 그 이상은 정무급.. 3급부터는 자기들이 생각하는 한국 경제의 생활인에 대한 정상 임금을 정해서, 월급으로 그 돈을 받게 하자. 그러면 자기들이 편하려고 어떻게든 생활의 낭비 요소들을 줄일 거 아니냐? 다른 부처 공무원들도 1급이 되는 순간, ‘국민 정상임금을 받게.

 

그러면 5년 안에 한국은 월소득 4백으로 나는 매일매일 행복해서 죽겠네”, 이런 비명 소리가 튀어나오는 나라가 될 것이다. 실제로 많은 국가의 고위직 공무원들이, 그렇게 연봉이 높지가 않다. UN의 과장급 이상 고위직들, 뉴욕이나 런던 같은 데 가라고 하면 곡소리 난다. 에고에고, 이 돈으로 어떻게 사나..

 

대통령, 총리, 장관, 이런 높으신 분들 연봉도 월 400에 맞추면 좋은 것 같다. 그 대신 이 아저씨들은 명예가 있쟎아. 공무상 더 필요할 돈은 업무추진비 빠방하게 늘려주고. 다만 생활은 이 수준에 맞추어서. 국회의장 등 국회의원들 세비도 이 수준에 맞춰서.

 

경제학자로서, 가급적이면 나도 도시 가계생활비 평균치를 넘지 않는 선에서 생활을 꾸리려고 한다. 그래야 나도 다른 사람 앞에서 당당하다. 그리고 그렇게 살면서 애 키우다 보니까, 생활의 어려움이 좀 보이기 시작한다. 총리나 장관, 이런 똑똑하신 분들 눈에는 얼마나 잘 보이겠냐?

 

400만 원으로 행복한 나라, 그건 개인이 돈 더 벌어서 풀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풀어야 할 문제다. 그리고 실제로 1인당 국민소득 7만 달러, 8만 달러 가는 나라들이 다 그 정도 선에서 어느 정도 살 수 있게 시스템 설계가 되어 있다. 4백 대통령, 이거 못할겨? 이건 그냥 결정헤서 하면 되는 거다.

 

1편 http://retired.tistory.com/2297

 

2편 http://retired.tistory.com/2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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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자로서 내가 느낀 촛불에 대한 감성이 존재한다.. 그걸 정치적 욕망으로만 느낀 낀 사람들, 좀 거시기하다..) 

 

1.

둘째는 태어날 때 숨을 잘 못 쉬었다. 조선 시대 같았으면 아이와 산모가 다 위험했을 것 같다. 그리고 그 시절에 나는 그야말로 나는 박근혜랑 싸운다고 정신이 없었다. 실제로 박근혜가 아니라 순실이랑 싸우고 있다는 건 나중에 알았다. 이것저것 막는다고 나름 고심을 했는데, 남양주 종합촬영소가 매각되는 것은 막지 못했다. 부영건설에 팔렸다. 순실이가 영진위를 장악하고 해쳐 먹었다. 너무 소리소문 없이 성공한 작전이라, 나도 사후에 알았다. 원전 등 에너지 쪽도 순실이가 꽤 손을 뻗쳤다. (나중에 그 앞잡이로 소문난 양반이 나한테 전화해서, 자기는 억울하게 연류된 거라고 했다.)

 

시대는 어두워지는데, 내 삶이 더 먼저 어두워지고 있었다. 아내는 얼마 전에 차장으로 승진했었다. 결국 폐렴을 달고 사는 둘째 때문에 퇴사했다. 방법이 없어서 가사 도우미도 쓰기 시작했다. 그 때 보니까 우리 집이 한 달에 500만 원 정도를 평균적으로 쓰는 것 같았다. 물론 이것저것 더 줄일 수도 있지만, 병원비 등 늘어날 돈도 있으니까 평균 내면 그 정도일 거라고 생각한다. 자동차 사고 유지하는 돈까지 전부 합쳐서 계산하면 그 정도 된다 (많은 사람들은 생활비 계산할 때 승용차 구입비 등을 빼놓고 계산하는 경향이 있다.)

 

많이 쓸 때는 한 달에 500만원, 요즘은 400만원 정도 쓰는 것 같다. 이 정도 선이 도시가계 평균 소득과 얼추 비슷하다. 요 정도 삶이 국민소득 말고 소득 쪽으로 잡은 평균치 정도 된다. 말이 좋아서 한 달에 500이지, 이걸 연봉으로 환산하면 1억 원 정도 된다. 1억 원을 받아본 사람이 별로 없으니까 연봉 1억이면 대충 한 달에 천 만원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을 종종 보았다. 연봉 1억에 이것저것 떼고 평달이면 500만 원 조금 넘는다. 실소득 중심으로 계산을 하면 뭐가 많이 빠진다. 아파트 평수 계산할 때 실평수로 들어가면 전혀 다른 숫자가 나오는 것과 유사하다.

 

내 머리 속에 있는 수치는, 아이 둘 데리고 월 400만 원 정도면 충분히 많다는 정도다. 아이가 아프거나 뭔가 복잡한 일이 생겨서 돈이 더 들어가면 월 500만 원, 그리고 이게 3만 달러 시대의 한국의 도시의 평균적 가계가 실제로 사용하는 돈이기도 하고.

 

2.

국가를 설계하는 방식이 있다. 내가 설계한다면 한 달에 400만원 정도 버는 가정이면 풍요롭지는 않더라도 풍족하기는 하고, 넉넉하지는 않더라도 남한테 손 벌리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 실제 평균치도 이 정도가 평균치다. 그 나라의 평균치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니미, 이렇게는 못 살겠다”, 이렇게 입에서 욕 막 튀어나오면 그건 식민지 수준의 경제 행정이다. 유럽의 평균치 가정에 방문하면, 너무 화려하지는 않아도 이케아 가구 같은 것은 손가락질 당한다고 안 쓰는 정도는 된다. 전부는 아니더라도 앤티크 가구가 적당히 있고, 약간 폼 나는 바우 하우스 스타일의 모던 가구도 좀 있을 수 있다.

 

독일 사람들이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비율이 90%가 넘는다고 한다. 뻥이라고 하겠지만, 실제 저임금 노동자 비율을 보면 그렇게 현실과 다르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독일 노동자의 14% 내외가 저임금 노동자이기 때문에, 나머지 사람들은 중산층 혹은 그 이상이다. 벨기에는 이게 6%. 확률적으로 벨기에에 태어나면 94%의 국민이 중산층 혹은 그 이상이다. 혹시라도 이민 가야 할 일이 있다면 반드시 벨기에로..

 

적당히 벌면 왠만큼 행복한”, 이런 게 노르딕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린 죽도록 벌어도 존나게 불행한”, 아주 죽겠다는 단내가 입에서 턱턱 튀어나오는 구조다. 여기부터는 시스템 오류다. 자꾸 인간의 욕망혹은 이기심그런 얘기 하는데, 사람은 다 거기서 거기다. 한국 사람만 특별히 더 부동산에 욕망이 있거나, 명품 아니면 죽겠다. 특출나게 그럴 거라고 생각하는 사유 방식은 다 오류다 (이 얘기는 독일 사람들이 게을러서 못 산다고 하는 유럽식 편견에 대한 장하준 설명이 제일 멋지다.)

 

가구 평균소득 4~5천 사이에 시스템 설계가 맞추어 져야 한다. 그러면 국민의 90% 가까이가 행복의 나라로 갈 수 있다. 유럽의 많은 국가들이 그렇게 걸어갔다.

 

방법은 다양하다. 직접 임금과 사회적 임금으로 나누기도 한다. 평균적 가구의 월 지출비의 50% 정도가 사회적 임금인 곳이 유럽의 잘 사는 나라들이다. 다시 말하면 임대주택에 의한 간접적 월세 보조든, 교육비 보조든, 총 지출비의 절반 정도는 국가로부터 나온다. 그러면 월 400만 원을 벌어도 실제 소비는 800만 원 수준에서 이루어진다. 우리나라는? 직접 임금의 비율이 90% 가까이 된다. 나라가 해주는 거, “좃도 없다”, 이 말은 거짓말이 아니다.

 

쉽게 비유하면, 우리나라 소득의 절반 가까이가 황당한 사립 유치원 원장 목구녕으로 쑤셔 들어간 거다. 정상적이라면 안 써도 되었을 돈이다. 가난한 사람들의 돈이 전입신고 막고 있는 소소한 불법 집주인 입으로 처 들어간다.

 

내년부터는 아내가 대충 우리 집의 일상적 생활비인 400만 원 정도를 벌어오는 것 같다. 이게 우리 집 재무설계의 기본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여기에 생활을 맞추려고 한다. ?

 

내가 경제학 박사라서 그런다. 다른 건 몰라도 지출만큼은 국민들의 평균치 안에서 생활하고 싶다. 그래야 뭐가 불편하고, 뭐가 잘 못 되었는지 좀 보일 것 아니냐?

 

유럽의 선진 공업국가 정도면 월 400만 원의 소득이면 충분히 행복하다. 그 다음에 더 쓰는 것은 진짜로 개인의 취향 문제다. 우리나라에서 월 400만원 소득이면? 평균치 약간 아래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집집 마다 먹고 죽으려고 해도 돈이 없다”, 이런 일 벌어질 것이다.

 

이것보다 많이 버는 집 주부들의 상당수가 마트 캐쉬어로 일한다. 백퍼, 자녀 교육비 때문이다. 캐쉬어가 일이 좋다 나쁘다, 그런 얘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먹을 거 사고 나가려고 하는데, 캐쉬어가 내 책을 꺼내면서 사인 해달라고 그랬던 경험이 몇 번 있다. 범상치 않은 복잡한 심경을 느꼈다. 그렇지만 자녀 교육비 때문에 멀쩡한 고학력의 중산층 여성이 결국 캐쉬어로 나서게 되는 것, 이건 좀 시스템 오류다.

 

얼마나 있으면 행복할까? 상한선은 없다. 그렇지만 월 400만 원 소득이면 행복의 나라로 갈 기본 조건이 되어야 한다.

 

그게 내가 촛불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을 보면서 내린 잠정적 결론이다. 저 사람 한 명 한 명, 가계소득으로 월 400만원 이상은 받게 하고, 그 수입으로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야 그게 촛불의 나라다, 그 시절 경제학자로서 내가 했던 생각은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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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통장에 딱 5원이 있던 날이 있었다. 2년 전, 어느 황사 가득한 봄날이었다.) 

 

1.

내가 쓰기에는 통장에 너무 많아, 얼마가 있는지 신경도 안 쓰고 살던 시절이 나에게도 있었다.

 

시민운동한다고 가진 돈을 한 번 다 털어 넣었고 통장에 마지막 5만 원이 남는 순간을 경험해 본 적이 있다. 문재인 당대표 시절에 방법이 없어서, 또 돈을 한 번 털어 넣은 적이 있었다. 이번에는 5만원이 아니라, 바로 그 통장에 5원이 남아 있던.. 물론 그게 우리 집 돈의 전부는 아니었지만, 아내에게 할 말이 없게 된.

 

결국 아내가 돈 번다고 나섰고, 나는 그냥 애들이나 보게 된. 그리고 대충 2년 정도를 진짜 돈은 하나도 안 쓰고 그냥 버텼다. 물론 나만 돈을 안 썼다.

 

내가 너무 아무 것도 안 하고 집에만 처 박혀 있으니까, 올 가을에 아내가 차를 사줬다. 2천만 원. 차 없앤지 대충 2년만.

 

그래도 내가 독한 게, 돈 없으면 하고 싶어지는 방송이나 강연 같은 것에 손 벌리지 않고.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았다. 물론 강연을 아예 안 한 건 아닌데, 정말 최소한으로.

 

그래도 그 기간이 그렇게 고생스럽거나 한이 되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삶에 대해서 많이 배웠고, 인생에 대해서 정말 많은 생각을 했다. ‘매운 인생 달달하게 달달하게’, 이게 그 시절의 책이다. 나는 진짜로 많이 바뀌었고, 재밌는 생각도 많이 했다.

 

2.

오랫동안 법인 카드를 가지고 있었다. 지금도 하나 내놓으라고 하면 공식적으로 쓸 수도 있는 상황이기는 한데.. 그딴 건 필요 없다, 내 인생에서 떼어버렸다.

 

접대 같은 건 안 한다. 그렇지만 누군가에게 신세졌거나, 위로라고 해야 하는 경우, 술은 산다. 그리고 어지간하면 내 돈으로 산다. 그리고 아내에게 빙신 짓 하고 다닌다고, 쫑코 먹는다.

 

그래도 좀 멋적은 소망 같은 것은 있다. 언젠가 이 직불 카드에 1억원은 넣어 놓고 살리라. 물론 현실은 백 만원 정도 들어가 있다. 그나마도 술 처먹고 나면, 아내가 돈을 다 빼 버린다. 얌전하게 살아야 그 정도 잔고라도 유지시켜 주는.

 

그게 무슨 궁상이냐 싶지만. 나는 두 차례에 걸쳐서 사회를 위해 일 한다고 집에 있는 돈을 다 쓴 적이 있다.

 

아내는 그런 내가 별로 현명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차라리 차를 사거나, 스피커를 사거나, 카메라를 사는 데 돈을 쓰는 게 허망하게 쓰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구경도 해보지 못한 돈이 모두 사라지는 것을 몇 번을 경험한 아내 입장에서는, 당연히 그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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굼뱅이도 기는 재주가 있다. 내가 내 책은 못 팔아도 남의 책은 잘 팔아줬다. '정의란 무엇인가" 처음 나왔을 때, 책 소개하는 행사를 내가 했었다. 그 후 어마무시하게 나갔다. '세상의 절반은 왜 굶주리는가' 혹은 '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 요런 책들이 내 해제를 달고 나가서, 진짜 겁나 잘 팔리는 스테디셀러가 되었다. 물론 다 그런 건 아니다.

이젠 나도 나이를 먹었고, 어마어마하게 빅히트를 만들어주는 재주도 사라졌다. 고만고만하게, 그래도 아주 손해를 보지 않게하는 정도라도.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오세영의 소설 <자산어보>를 너무 재밌게 읽어서 감상문을 길게 썼다. 결국 소설이 재출간되었다. 소설과는 무관할지 모르지만, 어쨌든 이준익의 다음 영화가 <자산어보>다. 한참 캐스팅 진행 중이다. 이런 일련의 일이, 블로그에 작게 남긴 독서 감상문에서부터 시작된.

나도 이제 나이가 50이다. 작게 시작해서 크게 성공하는 경험도 있고, 크게 시작해서 작게 성공한 경험도 있고, 기억 속에서 지워버리고 싶을 정도로 완전히 망한 경험도 있고.

굼뱅이도 기는 재주가.. 내가 나한테 가장 만족스러워하는 성격이다. 남의 일이라도 도와주는.. 어려운 시절, 그렇게라도 버텨야 하지 않겠나 싶다.

 

 

 

[우석훈의 달달하게 책 읽기] 당신이 입은 그 슈트, 400년 역사가 담겼죠

조선일보
  • 우석훈 경제학자
  • 입력 2018.12.01 03:00

    모던 슈트 스토리

    우석훈 경제학자
    우석훈 경제학자
    지난겨울 오래된 슈트들을 버렸다. 1996년 첫 출근을 하면서 당시 돈으로 100만원이 넘는 돈을 주고 산 옷들이다. 감은 정말 좋은 옷들이지만 쉰 살이 넘어가면서 배가 나오기 시작했다. 못 입는다. 그리고 올가을, 한껏 멋을 낸 두꺼운 겨울 재킷들을 버렸다. 코트 없이 스웨터만 받쳐 입으면 겨울에 입을 수 있는 옷들인데, 이제 그렇게 입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남성들의 겨울 슈트는 요즘 터무니없이 얇게 나온다. 유행이 바뀌어서 못 입는다. 슈트를 입어야 하는 남성에게 필요한 최소 숫자는 세 벌. 여름, 겨울 그리고 봄여름. 허리에 살이 붙기 시작한 이후, 나도 매년 세 벌의 슈트를 산다. 싫지만, 자꾸 남들이 내 옷을 쳐다보는 게 싫어서 그냥 적당한 거 산다.

    아스텔리아 사전예약 중

    에든버러대학의 크리스토퍼 브루어드가 쓴 '모던 슈트 스토리'(시대의창)는 직업상 슈트를 입어야 하는 남성들이 자신이 입는 특정한 양식의 옷에 대한 문화사적 상식에 관한 책이다. 근대 국가의 형성과 함께 등장한 군대의 유니폼, 최대한의 금욕을 강조한 종교적 전통, 그리고 측정과 표준이라는 공업화의 과정이 우리가 입는 슈트에 남은 흔적들을 감칠맛 나게 보여준다. 청바지와 티셔츠, 잠바, 모두 서양 옷이지만, 우리는 슈트라는 매우 특정한 옷에만 양복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갑오개혁 이후로 육군 그리고 문관들의 관복을 슈트로 정했기 때문이다.

    모던 슈트 스토리

    책은 문화사의 맥락을 따라서 검은색 상복 같은 슈트가 좀 더 화려하고 도발적인 댄디즘과 부딪히는 과정, 그리고 이탈리아의 아르마니가 전 세계를 휩쓰는 과정 등을 흥미롭게 보여준다. 사실 특별히 패션이나 의상에 대한 공부를 하지 않으면 맨날 입으면서도 이 옷이 뭔지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물론 몰라도 된다. 그러나 알면 일상이 조금은 더 풍성해질 것이다.

    "결국 이 모든 것에는, 인류의 문명을 특정 짓는 이성·평등·아름 다움·진보라는 가치가 슈트와 함께 계속되는 한, 슈트 역시 지금으로부터 또다시 400년을 이어가리라는 희망이 있다." 책의 마무리 문장이다. 저자는 슈트는 앞으로도 400년은 갈 거란다. 섬유와 의류를 사양산업이라고 생각하는 정책 당국자에게 이 얘기를 들려주고 싶다. 남성 그리고 이제는 여성들의 정장, 슈트의 스토리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산업적으로도.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2/01/201812010005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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