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별로 하는 일도 없는데도, 애들 어린이집 데려다주고 오면 꼭 해야 할 일들이 기다리고 있다. 된장. 일정표를 보니까, 점심 약속, 커피 약속, 오매나야 줄줄줄. 강연과 방송 일정을 다 없애고나니까, 또 뭐 별로 우선순위에 넣지 않아도 되어도 좋은 일들이 줄줄줄. 내 입장에서는 집에서 나가게 만드는 일은 다 일이다. 그리고 책 추전 부탁이 엄청은 아닌데, 꽤 온다. 잠시 생각을 정리해본다.

책 추천이 귀찮은 일이다. 특히 나에게 추천 부탁이 오는 책들은 어렵거나 까다로운 책들이다. 전에 내가 지금처럼 요 모양 요꼬라지 아닐 때에는 추천사나 해제로 어마어마하게 팔아준 책들이 있기는 하다. 연이나... 그것은 힘 좋던 시절의 일이고. 지금은 그냥 밥 세 끼 입에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게 생각하는 시절. 내 추천사가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도 까다로운 책, 그것도 읽을 일정에 없던 책을 읽는 것 자체가 부담이다. 요즘 애들 보면서 책 한 권 읽는게, 진짜 없는 시간을 쥐어짜는.

그래서 추천사는 가급적 안 쓴다. 예전부터 그랬다. 꼭 써야 할 거면 차라리 좀 더 공을 들여서 해제를 쓰고, 해제 쓸 정도로 여유가 없으면 아예 안 쓰고.

이 짓도 10년이 지나니까 약간의 이해가 생겼다. 추천사도 10년이 넘었는데, 아직 추천사로 고마워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저자나 출판사나.. 사람이 원래 그렇다. 잘 되면 자기가 잘 한 거고, 안 되면, 다른 넘들이 못한 거고. (88만원 세대 때 남재희 장관이 정말 공들여서 추천사를 써줬고, 그 이후로는 가급 술 받아들인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나도 한 가지 배웠다. 정말로 고맙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바로 그 때가 아니라 훨씬 늦게라도 꼭 고맙다고 전화라도 한다. 그게 어려우면 안부 인사라도 한다. 쑥스럽다고 고맙다는 말을 미적미적하면, 나중에 진짜 어색해진다. 고맙다는 말은, 고맙다고 생각드는 순간에.

출판사에서 부탁오는 경우는 거절이 쉽다. 내가 하루 단가로 생각하는 나의 일당은 50만원이다. 난 가끔만 일하니까. 물론 단가 안 맞거나, 돈 안 줘도 남들 돕거나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일은 한다. 돈 내고도 한다. 그렇지만 상업적인 활동의 최소 단가는 50만원이다. 그 밑은.. 원칙적으로 안 한다. 애 둘 보면서 한 번 움직이기 위한 원가를 생각해보면, 그 이하로는 정말로 삶만 힘들어지고 고달픈 뿐이다. 추천사의 원가는.. 뭐, 택도 없다.

머리 아픈 경우는 저자가 직접 부탁하는 경우. 이 순간 참, 다양한 종류의 생각을 하게 된다. 나도 그걸 해봐서 좀 더 생각이 많아진다. 거절당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편하게 마음먹기로 했다.

내가 거절해야 하는 상황을 만든 사람은,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이야.

냉정하게, 한다 안 한다, 이것만 결정한다. 안 하는 경우에는 최대한의 예절로, 하는 경우에는 아주 짧고 드라이하게 '예스까 노까', 이렇게만 대답한다. 나머지 얘기는 원고로.

추천사 하나를 오늘 내로 써야 하는데, 추천사는 안 쓰고, 추천사에 대한 글만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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